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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가서 세상을 보라"
오늘 보는것 모두 평생 기억에 남을 것이다.
꼭 한번 원없이 걸어보고 싶었던 임진각에서 부산 을숙도까지 640km의 국토종주길
(임진각-문산-파주-고양시-서울시-한강-양평-여주-충주- 달천-괴산-새재-문경-영강-상주-낙동강-구미-왜관-대구-밀양-부산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그길에 있어 그동안 100대 강이며 해안길이며 부분적으로 100% 걸었던 길이었건만 한번에 걸어 볼일이 없어 언제나 마음에 두고 있었던곳
긴 발걸음이 예상 되지만 별다른 준비는 하지않고 회사가 조용한 틈을 타서 8일간 나들이 길로 떠나본다.
시간이 많았다면 좀더 여유를 가지고 준비해 떠나 보겠지만 몸과 마음은 다르니 전날 저녁에 급하게 준비를 한다
배낭안에 여름옷 몇벌과 양말 여덟켤레,신발,슬리퍼,침낭,은박 돗자리,의약품,휴대폰 밧데리 몇개, 렌턴을 챙겨넣고 이른 아침에 ktx로 서울로 향한다.
서울에서 경의선을 타고 1시간 가량 걸려 경기도 문산역에 내려 다시 택시로 임진각에 도착한다.
그러고 보니 이곳 임진각에도 서너번 찾아온것 같다.
삐그덕 거리며 달리고 싶다는 경의선 장단역 중기 기관차 철마는 언제나 그자리에 서있으며
한국전쟁 중 피폭,탈선된 후 반세기 넘게 비무장지대에 방치되어 있었던 남북 분단의 상징물이다.
2004년 역사의 증거물로 보존하기 위해 문화재로 등록된후 포스커의 지원으로 녹쓴때를 벗겨내고 현위치로 옮겨와 전시되고 있다.
전쟁 당시 군수물자를 운반하기 위해 개성에서 평양으로 가던중 중공군의 개입으로 황해도 한포역에서 후진하여
장단역에 도착했을때 파괴되었다 하며 기관차에는 1,020개의 총탄자국과 히어진 바퀴는 그당시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다.
아직 아침이지만 날씨는 무척 뜨겁고
배낭 무게도 대략 10KG가 넘는듯
임진각
임진각 "철마는 달리고 싶다" 앞에서 기념품 가게 하시는 사장님과 함께
발바닥에 물집이 생긴다면 바늘로 터트릴 생각으로 조그만 태극기에 바늘 달려 있는것으로 하나 골라 앞가슴에 붙여두고
국토종주
8일간 하루 평균 80KM 대장정길
8×8=64
하루 평균 80km를 걸어야 주어진 시간안에 부산 낙동강 하구 을숙도에 도착할것 같다.
오늘은 첫날이니 조금 무리를 해서라도 24시간 기준으로 100km는 가야하니 큰 숨한번 내쉬고
가자 "부산으로"...
날짜 | 내 용 식 사 |
7월 3일 | 09시 40분 임진각-서울 올림픽 대로 양화대교 아래(노숙) *오전 소고기 국밥, 저녁 닭꼬치1개 |
4일 | 양화대교-양평군 개군면 하자포 3리(노숙) *오전 계란 3개, 저녁 큰맘 할매 순대국밥 |
5일 | 하자포 3리-충주 중앙탑면 (모텔) *오전 컵라면 1개,저녁식사 |
6일 | 중앙탑면- 문경읍(모텔) *아침 식사와 오후 옥수수 한개,저녁 삼겹살 |
7일 | 문경읍-상주시 낙단면 자전거(들꽃민박-노숙) *돼지국밥,오후 소고기 덥밥,저녁 민박집에서 육계장 |
8일 | 자전거 들꽃 민박-현풍면 자모리(노숙) *오전 주먹밥-오후 왜관에서 소고기 |
9일 | 현풍 자모리-창녕 남지 모텔 *아침 식사, 오후 해안팀께 식사지원 |
10일 | 남지-양산시 물금읍 모텔 *아침 라면,점심 식사 |
11일 | 물금-을숙도(09시06분) *우유하나 |
전체 191시간중 잠잔 시간은 24시간 (하루 평균 3시간 휴대폰 밧데리 충전겸해서 모텔에 ) 잤으며
그외 21시간중 18시간은 걸었고 나머지 몇시간은 휴식시간과 식사시간
거리
1,임진각-팔당대교 아래 100km
2,팔당대교-충주 비내섬 인근 200km
3,비내섬- 백두대간 문경새재 278km- 문경 진남교 300km
4,진남교-구미 공단 SM남선 알미늄 400KM
5,구미공단-합천군 청덕면 적포리 500KM
6,적포리-양산시 원동면 서룡리 600KM
7,서룡리- 을숙도 40KM
임진각에서 77번도로 아래 자전거길을 따라 오다보면 임진강변 언덕에 자리잡은 황희 정승의 반구정을 만난다.
입장료는 얼마정도 내야 하고 조용한 반구정 기념관 안으로 들어와 ...
한강의 1지류인 임진강은 백두산에서 남으로 이어오는 백두대간의 북한지역(법동군 용포리) 두류산 정상 남쪽 계곡에서
발원해 남으로 흘러와 강원도 판교군- 이천군- 철원군 -경기도 연천군- 파주시 탄현면에서 한강과 만나 서해 용왕품에
안기는 276km의 강이다.
이중 남한구간은 도상거리 85km이며 우리가 갈 수 있는 구간은 경기도 연천군 왕징면 군남댐부터 한강이 만나는 파주시
탄현면 오두산 전망대까지 실거리 83km이다
반구정 정자안에 허묵선생의 반구정기가 있어
반구정기
반구정
황희선생 유적지 반구정
조선 5대 명 제상이신 황희선생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은거하다 조선 조정의 요청에 의해 관직에 오르게 되신분
세종때 영의정에 올랐으며 문종 2년에 90세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말년에 이곳 반구정에서 여생을 보내셨다고 한다
이곳 반구정에서 다시 밖으로 나가 자유로 77번길로 올라와 질주하는 차량은 있지만 그리많은 편이 아니기에 갓길로
문산대교를 지나 1km정도 진행하다가 좌측 자전거길로 이어간다.
낙하리 600 불고기집을 운영하시는 사장님
지난번 임진강을 하면서 오두산 전망대 찾아 가는길에 들러 훗날 다시한번 더 오겠다고 말씀 드렸는데
그날 제가 밥값으로 드린 1만원은 액자에 고이넣어 아파트 거실 눈에 잘 보이는곳에 걸어 두셨다고 하셨으며
이쁜 따님과 주인 아주머니까지 테이블로 오셨어 인사를 하셨는데 오늘 뭘 드시던지 밥값을 안받겠다고 하신다
그래서 낙하리 600 가게집의 행운을 기원하는 싸인을 해 드리고 나온다.
사장님 가게 대박 기원 드리며 소중한 마음을 담아 부산까지 이어 가도록하겠습니다.
혹시라도 이길을 지나는 회원님들 계시면 꼭 한번 들러서 맛있는 식사 하시기 바랍니다.
낙하리 600 식당(031-944-8626)(사장님:010-5335-5685번)
나중에 시간나면 꼭 다시 찾아 달라며 배웅 해주시는 사장님
고맙습니다.늘 건강 하시구요 잊지 않겠습니다.
오두산 전망대는 코로나 영향으로 출입이 금지되어 있어 곧바로 진행한다.
한강까지 가는길은 자전거 길이며 길 찾기는 조금만 주의한다면 그렇게 어렵진 않다.
공릉천에서 본 한북 정맥 노고산과 우측으로 삼각산이 보이고
공릉천은 조선 세조때 한명회의 딸이자 조선 제 8대 왕이던 예종의 비 장순왕후의 릉(공릉)에서 따온 강 이름이니
원(源)발원지로는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한북정맥의 첼봉 남쪽에서 발원 하지만, 최장 발원지는 도봉산과 오봉산 중간 지점인 송추계곡 상류이니
원발원지와 최장 발원지와의 거리는 약 200-300m로 송추계곡 상류인 도봉산 북쪽 계곡이 조금 더 길다.
두곳에서 흘러온 물은 양주시 장흥면 부곡리 교현고 위에서 만나 양주시,고양시,파주시를 거처 53km를 흘러 한강에 합류한
다.
공릉천과 한강이 만나는곳에 자리하는 오두산 통일 전망대
지난날 찍은 오두산전망대에서 본 공릉천 방향
파주 출판도시 앞을 지나
이길은 지난날 해안길 걸으며 걸었길인데 이렇게 다시 서게 될줄을
한강이 흐르는 곳에 자리하는 마지막 다리 일선교로 가는길에 만나는 커다란 송전탑이 마치 프랑스 파리의 명물인
에펠탑을 연상 시키는데 그아래 자라는 보라빛 도라지꽃이 파란하늘을 닮아가고 있다.
이산포 jc에서 일선대교를 지나며 본 자유로
일선대교에서 한강을 거슬러 약 34개의 다리를 지나 팔당댐까지 가야하는데 거리는 70KM이다
서울이 크기도 하니 강따라 거슬러 올라가는길도 멀기만 하고
멀리 한남정맥 문수산이 보이고 마침 물때시간이 밀물시간 이므로 물이 아래로 흐르지 않고 위로 올라오는 모습이다
한강은 백두대간 금대봉 북쪽 계곡에서 발원해서 494K를 내려 오면서 이름있는 지류 81개를 만난다.
이 중에서 발원지 금대봉 북쪽으로는 송천-오대천-평창강(주천강-서강)-제천천 -섬강-흑천-북한강(개동연천,금강천,금성천,양구천,
소양강-홍천강-가평천-조종천-왕숙천-공릉천-임진강이 흐르고
한강 남쪽으로는 어천 -지장천- 옥동천-달천-청미천-복하천-경안천-탄천-안양천을 거느리며 서해로 흐른다
한강넘어 고양시와 삼각산
인천에서 올라오는 자전거길
한남정맥 산길을 절하(切下)하여 만든 아라뱃길
인천 아라뱃길 하구에서 시작하는 국토 종주길은 633KM
임진각에서 시작하는 국토종주길은 7KM가 더 긴 640KM이다.
어디에서 시작하건 본인들 마음이지만 지나가는 차량 안전문제로 본다면 인천에서 시작하는 발걸음이 조금 더 편안할것 같고 상징성으로 본다면
임진각이 더 큰 의미가 있다.
전호교에서
서울에 들어오니 비가 오려나 하늘에는 온통 먹구름이 짙게 깔리기 시작한다.
아라뱃길과 경인항 그리고 멀리 계양산
좌측 컨테이너 부두
한강옆으로 들어와
자전거길과 인도가 분리되어 있는곳이다. 자전거길에는 많은 자전거족들이 시원스레 달리고
사람이 다니는 좁은 흙길에는 해가 빠지니 사람들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
편의점 앞에서 저녁 겸해서 닭꼬치 하나 시켜놓고
가양대교와 좌측으로 난지도
영등포구 양화동의 안양천이 흘러와 한강에 합수되는 부분에서 빗방울이 하나,둘 떨어지기 시작한다.
일 안하는 사람들이 모이는 국회 의사당을 앞에 두고
한강 철교에서 비는 처발 처발오고
잠오는 시간이 되어가니 졸음이 찾아온다.
한강 34개 다리 아래로 평상이 많이 있고 원두막 그리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지천에 널려있어 어디가서 잠자는건 어렵지 않을것 같다.
올림픽대로 노량대교 다리아래 평상에 사람이 없고 조용해서 은박지 깔고 서너시간 누워있다 가기로 한다.
빗소리와 차량 지나가는 시끄러운 소리에 잠못 이루고
비는 그친듯 하고 다시 비몽 사몽으로 걸어가니
새벽까지 돌아 다니는 사람들이 꽤 보인다.
이른 아침 아직 운동하러 나오신 분들은 없고
간밤에 나도 저러고 널부러져 잠을 잤으니 친근감은 이웃사촌격이라...
남의 일이 아닌듯하여 한장 담아 온다.
수영 강습인가 아니면 반대편으로 건너가려고 저러나
서울 분들은 한강이 아주 깨끗한줄 아나 봅니다.
참 대단하다.
구름이 사라지고 파란하늘이 보이니 오늘은 무지 더울듯
하지만 운동하러 나오신 분들이 너무 많아 눈을 어디다 둬야할지 모르겠다.
짙은 썬글라스 하나 사던지 해야지...지나가는 아가씨 구경하느라 눈이 팽팽 돌아가고
발걸음이 가벼우니 거리 마져도 팍팍 줄어드는 느낌이다.
중랑천이 한강에 합류하는곳과 바위산이 아름다운 불암산 방향
한북정맥 임꺽정봉 북쪽 경사진 계곡에서 발원하는 중랑천은 양주시-의정부-서울시 도봉구를 지나 동대문구,성동구 옥수동에서 한강에 합류하는 38km의 강이다
한강 다리 아래서 노점상을 하시는 아주머니
삶은 계란 몇개사서 입에 넣고 일어서니 "부산까지 잘가라"며 얼음물 한병 넣어 주신다.
아주머니께 인증사진 한장 부탁하니 환하게 웃어 주시고...
한강 건너편의 예봉산과 예빈산
팔당 화수변 공원 메타쉐쿼이아 숲에서 100km지점에서 인증담고
팔당대교를 건너며
이곳부터 완전 땡볕에 노출되어 걸어간다
팔당대교에서 본 가야할 길
팔당댐
대한민국 인구 절반이 산다는 서울의 식수원이죠
능내역으로 가는 터널을 지나
아주 시원하니 좋고
능내역 매점 앞에서 인간의 몸은 육체적으로 움직이도록 만들어 져있는데
하루 저녁 잠못잤더니 어째 몰골이 말이 아니다.
쭈쭈바와 콜라,물 사서 한번에 원샷으로 집어 넣고
쉴때마다 발바닥 열기를 식혀 본다.
그러고 보니 아직 쌀구경을 못했는데 가다보면 있겠지
능내역에는 많은 자전거족들로 분주하고
640km중 이제 550km만 더가면 끝나니
한강과 낙동을 나누는 백두대간 문경새재까지 278km 지점될듯
양수리 두물머리로 가는 북한강 철교
북한강
물을 보려면 물빛을 보고
물빛을 보려면 물속을 보고
물속을 들여야 보면 ...답이 없다
북한강은 강원도 금강군의 옥발봉에서 발원해서 화천-춘천-가평-청평-남한강과 만나는 경기도 양평 두물머리까지 317km
흘러오는 한강 제 1지류이다.
양수리로 가는길에 양수역을 지나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곳의 두물경 표지석
양평으로 가는길에 5개의 터널을 지나야 한다.
터널속은 아주 시원하며 그렇게 많던 자전거족들은 북한강길따라 강촌으로 올라간듯하다.
몇개의 터널을 지나니 어린여자애와 할아버지 할머니가 옛 경의선길을 걷고 계신다.
멀리 양평의 용문산 인듯한데
국수역으로 가는길에 마을에 사시는 노부부를 만나 이야기 나누다가
양평군 양서면의 국수역
해는 넘어 갈 준비를 하고 어디가서 밥이라도 먹어야 할텐데
이리저리 걷다가 양평군 옥천면 큰맘 할매 순대국집이 있어 밥먹고 나온다
멀리 양평군의 양근대교가 보이고
양평의 양근대교를 지나
한강으로 양평대교가 자리하고
가로등불 아래 운동하러 나온 아가씨와 아주머니가 많이 보이지만
남자분들은 보이지 않고 달빛이 참 좋다
이밤 달빛을 벗삼아 원없이 걸어 보자
.
그렇게 늦은 밤은 아니지만 아직도 운동 하시는 분들이 다니고 계시는 아름다운 양평의 벚꽃나무 길
양평군 회현리 수도 사업소를 지나 흑천 다리를 건너면서 부터 운동하러 나오신분들은 전혀 보이지 않고
밤하늘 마져 보이지 않을 정도의 양쪽으로 늘어선 벚나무길따라 진행한다.
자전거길은 시골길로 이어지며 개군면 앙덕리 후미개 고개를 올라 진행하다 보니 검은색 차광막(비닐 하우스)으로 만든 불켜진 매점이 있어
들어가 음료수 몇병 사들고 나온다.
후미개 고개를 올라 내리막 길따라 오다보니 멀리 이포보 불빛이 보인다
밤12시무렵 양평군 개군면 어느 마을을 지나는데 마침 깨끗한 정자가 보여 은박 돗자리 깔고 침낭 펴고 자려는데
술취한 아제 두분이 오는 소리가 들들리더니 정자에 걸터 앉는데 ...
남의 동네 정자에서 잠자는것도 허락을 받아야 하나 싶어 일어나 앉으며 잠시 쉬어 가도 되냐고 하니
"뭐하는 분이냐" 묻는다
"걸어서 국토 종주 한다"고 하니
"대단하다"고 하시며 우리끼리 이야기 좀 하다 갈테니 얼른 주무시란다.
곧 가겠지 싶어 다시 누웠는데...
듣기 싫어도 들리는 대화 내용은 참으로 가관이로고
한분은 평소에 "개새끼"로 부르고 한분은 "십새야"로 부르는 모양이다.
야! 개새끼야 너그집에 가서 술 담은거 가온다"
야! 십새야 마이 무따 그만 쳐머라
야! 개새끼야 그래도 너그집에 가자
야!십새야 우리집에 가면 마누라 때문에 못나온다,죽고싶나
야! 개새끼야 그리도 가자
야!십새야 다른데 가서 한잔 더하러 가자
야! 개새끼야 다른데 필요없고 너그집 가자
40분정도 큰소리로 개새끼!십새야! 소리에 잠 올리는 만무라고 그렇다고 듣기 싫다며 일어 서자니 눈치 보이고
숨죽이고 자는척 하는것도 죽을 지경이다.
언놈 한놈 죽어야 끝날것 같더니 "시끄럽게 해서 지송하다"며 가버린다.
아무래도 술 한병 들고 또 찾아올까 무서버 정자에 널부러진 물품들 대충 둘둘말아 배낭에 넣고 도망치듯 일어선다.
동네를 지나니 개들은 짖고 "야 **새야 한마디 해주려다가 배운 내가 참는며 슬리퍼 질질 끌며 지나간다
이포보 지나 여주시 대신면 사용하지 않는 비행기 활주로길 약 4km걸어 가는데 길이 넓으니
눈감고 지나간다
탄금대 79KM지점에서
저녁무렵에 도착할것 같은데
4대강 하면서 퍼낸 모래가 산을 이루는곳
지금은 나무와 잡풀이 자라니 누군가는 저곳도 산이라며 올라갈듯하다.
이른 아침에 만나는 여주보
일출
오늘은 가는 걸음마다 편의점이나 식당이 빼곡하게 있기를 바라며 기도 드린다.
앞으로 보이는 작은 산들은 모두 4대강 하면서 퍼올린 모래가 산을 이루는곳
여주보를 건너고
여주보에서 본 한강
여주보를 지나면서 운동하러 나오신 분들과 강가로 낚시하시는 분들이 많이 보이고
여주시에 들어와 식당을 찾았지만 아침에 문여는곳을 찾지 못해 조금만 더가면 나타나겠지 하며 걷다보니
여주시 끝에 도착한다.
다시 돌아가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이라도 하나들고 나와야 하나...그마져도 이미 돌아 가기에는 늦었고
여주로 들어와 영월루에 올라본다.
영월루 내용
영월루에서 본 가야할 한강
강천보에 와서
이곳 편의점에 문이 잠겨있어 잠시 기다렸다가 컵라면 하나 사서 먹고 일어선다.
강천보에서
날씨는 덥고
그늘은 없고 죽을 맛이다.
자전거족들은 오늘도 쌩쌩 내 달리고
경기도에서 강원도로 나뉘게 되는 섬강교
섬강이 한강으로 흘러드는곳이다
섬강은 한강의 여섯 큰 지류중 짧은 편에 속하며 발원지 강원도 횡성의 봉복산 이후로 부터 횡성- 원주-남한강에 합류하기까지
이렇다 할 조망이나 특별한것 없는 강이다.
섬강의 유래는 송강 정철(조선 중종-선조)의 관동별곡( 선조 13년인 1580년)중 "평구역(양주)에서 말을 타고 흑수(지금의 여주땅)로 돌아드니
" 섬강(蟾江)이 어듸메뇨 치악(雉岳)이 여기로다"
소양강 흘린물이 어디로 흘러 간단 말인고...
관동별곡에 등장 하는걸 봐서 옛날부터 섬강이란 이름이 쓰였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며,
그외 달강 달래강 으로도 불렀으며 섬강의 섬(蟾두꺼비 섬)은 두꺼비를 뜻하며 달을 의미 한다고 한다.
섬강을 지나는 원주시 간현리 절벽위에 "토정 이지암"(1559년-1633년)이 썼다는 병풍바위를 뜻하는 병암(屛岩)이란
글씨가 있는데 그위에 올라앉은 바위 모습이 두꺼비를 닮았다고 섬강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송강 정철이 관동별곡을 지었을 당시 1580년대 이 당시 토정 이지암 선생은 21세 였으니 토정선생의 썼다는
병암(屛岩)과 섬강의 유래는 맞지 않은듯하다
그리고 서거정이(1420년 세종때 출생-1488 성종 19년 ) 쓴 "신증 동국여지승람에
"동쪽에는 치악이 서리고 서쪽에는 섬강이 달리니 천년고국(千年古國)이다" 라고 했으며
또하나 그의 시에는 "치악산은 푸른 빛을 모아서 조령에 있었고 섬강은 흰빛을 끌어서 여성(驪城 지금의여주)에 닿았네" 라고 하였다
섬강의 유래는 두꺼비를 닮았다는 유래는 조선 전기 아니면 그 이전 부터라고 봐야 할듯하다
섬강이 한강과 만나는곳
한강 양옆으로 경기도 여주 점동면과 강천면이며 이곳은 강원도 원주땅이다.
저녁 무렵에 보는 일몰이 아름다운곳인데 그늘없는 땡볕길이 한동안 길게 이어진다
경기도땅은 끝나고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에 들어와 음료수와 물 부터 사서넣고, 아이스크림 서너개 들고 먹으며 진행하니
몸은 덥고 입은 얼얼하다.
다리 건너면 충주땅
산은 끊임없이 흘러 강물 속으로 잠기고
강물은 산허리를 곱게 돌아가며 흐른다.
서로는 그렇게 천년을 두고 그리워하면서 이루지어 질 수 없다보니
산은 물을 품고, 물은 산을 품는 풍경을 만들어 낸다.
어서오세요!
고드미와 바르미가 반기는 안내판
경비행기 타고 "스카이" 점프 하시는 분들이 하강하며 내리는곳
더버라
직선이 주는 차가움이란 바로 이런걸까
어디가 들어가는 문이고 어디가 나오는 문인지 알길없는 직선길
"오늘 한번 죽어 보라"며 태양은 내리쬐고 아스길 열기는 올라오고
강바람은 어디로 간건지 바람 한점없다.
마침 길가에 커피 파는곳이 있어 달달한 음료수 연거푸 두잔시켜 마시고
서해 살던 용이 이곳 한강변에 앉아 물만 흘리고 있다.
아마도 더워서 질린듯
지나온 한강길
200KM 지점에서 심심하니 인증담고
걷는것 보다 걷지 않는게 더 힘든시간
구름은 바람없이 못 간다고 했는데 이렇게 걷는동안 많은 분들께 응원의 메세지와 전화를 받는다.
어디 가는지 묻지마라
끝날때 까지 비상구는 없다.
비내섬 들어가는 입구에 자리하는 비내쉼터 매점에 들어가니 밥이나 라면은 안된다며 ...
하는 수 없이 그냥 나온다.
비내섬으로 들어가 갈대만 실컷 구경하고
비내섬 일몰
비내섬에서 좋은길은 버리고 양지말산 강가길로 가다보면
아름다운 풍경이 계속이어진다. 하지만 모기가 얼마나 많은지 잠시 동안 모기 밥주듯 지나
봉황산 투구바위
마치 투구를 쓴 장군의 머리처럼 보이는 바위가 보이고
배는 고프고 어디가서 밥을 먹어야 하는데
족저근막염 때문에 걷지를 못하겠다.
충주시 중앙탑면 가흥리를 지나며 국토종주 접어야 하나 생각끝에 잠시 서성이니 외국에서 온 젊은 노동자 몇명이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오른손으로 밥먹는 시슝을 하니 그중에 한사람이 "조금만 가면 식당 있어요" 라며
연신 길을 가르쳐 준다.
일단 식당에서 밥부터 먹고 계속이어갈지 결정하자며 몇굽이 돌아가니 "강변 흥부네" 식당에 불이 켜져있다.
된장찌개를 시켜놓고 주인 아주머니께 혹시 안신는 신발 깔창 있으면 하나 달라고 하니
자기집 아들 신는 신발 속에서 깔창을 빼내어 갖다 주신다.
고맙다며 인사를 드리고 빈속이라 밥은 들어가지 않고 겨우 몇 숟갈 뜨고 인사하고 일어선다.
충주에 왔으니 충주시내에 살고 계시는 형님께 전화를 드리니 택시타고 집에와서 자고 가란다
괘찮다며 사양하니 걱정이 되는지 전화가 오고...
"조금만 더 가다보면 어찌 되겠지"라며 몇발짝 걷다가 쉬기를 반복하며 지나오니 마침 앞에 모텔이 보여 들어가 휴대폰 충전과 보조밧데리 충전겸해서 몇시간 자고 나온다.
새벽 1시 겨우 일어나 모텔에서 나와
끝날때까지 먹지 않으려 했던 진통제 2알 억지로 삼키고
하루 80KM 걸어야 답이 나온다며 조금 일찍나와 전날 부족한 부분을 채우려고 서둘러본다.
중앙탑면에 들러 중앙탑을 보니 마침 달이 휘영청 밝다
달이 보이고 그위로 명왕성과 토성이 보인다.
잠시 두손모아 탑돌이 한번 하고
지나온 우륵대교
남한강 옆으로 충주의 봉수대가 있는 대림산과 대문산에 자리하는 탄금대가 보인다.
속리산 북쪽 계곡에서 흘러온 달천이 남한강에 합수되는 지점
탄금대교
탄금대가 자리하는 대문산과 달천 평야
오래전 신립장군이 저곳에 배수진을 치고 질퍽한 논바닥에 말 달리다 몰살한 곳이 바로 이곳쯤이겠다.
신립 장군이 험준한 조령을 버리고 충주 달천과 남한강이 만나는 달천평야에서 말타고 전투을 하겠다고 하니, 부하장수인 종사관 김여울이 조령산의 험준한 지형을 이용하여
매복과 기습을 한다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했지만
신립장군은 종사관 김여울의 말을 무시하고 탄금대로 향한다.
아마도,북방에서 여진족과 말타고 싸우던 기마전투가 이길 가능성이 많고, 새재 인근의 이화령이나 하늘재(계립령),벌재로 적의 후속 부대가 돌아 온다면
자칫 조령에서 고립될 수 있다고 판단을 했던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결국 고갯길을 모두 막을 수 없었으니 달천에서 말타고 싸우는 전법을 구상하고 오합지졸이던 군사들을 결사적으로 싸울 수밖에 없는 전투를 배수진 전법을 구상한다.
조선군 신립과 8천 이상의 군사 활과 창,칼 ,일본군 최전방 고니시와 후속 부대인 가토 조총으로 무장
백전노장 신립장군 기마병으로 돌격하지만 논바닥이 질퍽하고
왜놈들은 조선군을 사방에서 포위하고 조총으로 공격하며 한편으로 충주성 공격한다
신립 장군은 불타는 충주성을 구원하려 이동하는 사이 전열이 무너져 김여울 장군과 함께 탄금대에서 투신
나머지 군사들은 대부분 싸우다 전사한다.
북방에서 여진족과 싸워 패배를 모르던 신립은 단,한번 패하게 되는데 그곳이 탄금대 전투다.
탄금대 충장공 신립장군과 팔천 고혼 위령탑
1592년 4월 28일 도순변사 신립장군이 휘하 장졸 8천명과 함께 이곳 탄금대에서 배수진을 치고 나라를 수호하고자 왜적과
싸우다 장열하게 순절한 전적지다.
달천 평야
강길에 편의점도 없고 식당은 더 없고
아침부터 햇살이 뜨겁다.
우회도로가 생기기 전에는 대림산 아래로 차가 다녔는데 지금은 차량은 뜸하고 가끔 자전거 타는 분들만 지나다닌다.
아름드리 플라타너스 길이 이어지고
두릉산 자락의 수주팔봉
백두대간 마패봉에서 흘러온 석문천이 인근 여러 고을을 지나며 산굽이 치다가 달천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야 하지만
일제때 농경지로 활용하기 위해 물길을 이곳으로 돌리려고 바위를 절단하였다가 해방이 되면서 중단 그리고 1963년도에
이렇게 끊어 놓음
석문동천의 물을 저곳 산자락을 절단해 만든곳이라 그렇게 정겹거나 좋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곳이다.
형수님이 밥을하고 형님이 밥을 가지고 오신다고 해서 집밥을 먹을 생각에
형님께 전화를 드려 오는길에 스프레이 파스와 슬리퍼 하나 부탁드려 본다.
수수팔봉 과 달천이 흐르는 곳에 피서객들이 제법 보이고.
달천은 맑은 강이라 한여름밤에 가시면 반딧불이를 만날 수 있는 강이다.
충주시 살미면 토계리 마을 앞에서
형님이 가지고 오신 아침밥을 놓고
일단 켄맥주 부터 한잔하고
위장이 줄어들어 그런지 밥이 넘어가지 않고 물만 연신 찾는다.
밥은 먹고 물종류는 모두 배낭에 넣어간다.
수안보 찾아 가는길에
도로길에 그늘이 없고 얼마나 뜨거운지
충주시 수안보면 수화리 마을앞 해바라기
발바닥에 물집이 생기고 족저 근막염으로 힘든길이 이어지니
잠시라도 앉아 쉬며
3번 국도 수안보 만남의 광장 휴게소에 들러 각얼음 한봉지와 생수 하나 사고
주인 아주머니께 부탁해서 비닐 봉투 하나 얻어 열나는 발바닥 진정 시키며 앉아 있다.
둘쨋날 부터 족저근막염 때문에 끝나는날까지 고생한다.
수안보를 지나며
밥 생각이 없고 식당 찾아 가려니 족저근막염 때문에 몇발짝 움직이는것도 귀찮게 느껴져 그대로 진행
북바위산에서 조산으로 이어지는 산줄기에 자리하는 서낭당 고개
이곳에서 그늘 찾아 잠시 낮잠을 청해보고 합장하며 갈길 간다
수안보면 안보리 백두대간 마패봉에서 흘러온 석문천이 흐르는곳
안보리 마을앞에서
안보리 마을 과거길
3번 국도 월악산 교차로 앞에 옥수수와 칡차 파는곳에서
얼음같이 차가운 칡차를 하나 사니 덤으로 옥수수 한통을 주신다.
다음에 이길을 지나가는 분 계시면 꼭 옥수수 맛보고 가십시요
발바닥에 아파서 운동화와 슬리퍼를 1시간 단위로 갈아신고
문경 새재로 가는길에
소조령 오름길에 만나는 자전거 타고 국토종주 하시는 분들
대학생들인데 다리에 힘이 좋은지 오르막길도 잘 올라가고
백두대간 마패봉에서 이어지는 신선지맥길의 소조령
충북 과산군 연풍면 원풍리 고사리 마을에서 새재로 올라가는길에
백두대간이 가까워 질수록 바람이 시원하니 좋고
발바닥이 아파서 맨발로 지압삼아 올라간다
드디어 백두대간길 새재에 도착한다. 이곳으로는 자전거나 차량 출입이 통제되어 있어 걸어서 올라와야 한다.
한강은 이곳에서 끝나고
문경새재 278KM지점
이제 낙동강 유역으로 진입하며
2관문 조곡관을 지나고
새재 용추를 지나
드라마 찰영장에서
1관문 주흘관은 공사중이라
새재마을에 식당을 하셨던 할매 식당에 들러보니 할매분은 오래전에 돌아가셨단다.
지금은 그분의 따님인지 맏 며누리인지 계시는데 할매와의 인연을 이야기 해드리니 커피라도 한잔하고 가라며 잡는다
가는길이 멀고 약속한 분이있어 가야 한다며
멀리 이화령에서 백화산으로 오르는 대간길이 보이고
경상북도 문경읍에서 본 주흘산
주흘산은 여자 산이며 문경시 마성땅에서 보면 여인이 머리를 길게 풀고 누워있는 모습이다.그리고 하늘의 성곽처럼 때로는 사대부집의 기와지붕처럼
웅장하며 화려하게 솟구친 산마루가 인상적인 산이다
오래전 자기가 태어난 땅이 한양인줄 알았는데 그곳에는 북한산이라는 더 아름다운 산이있어 한양을 등지고 서 있다는 전설이 있다.
이곳에서 미리 만나기로 약속한 포항지부의 대영호 지부장님을 만나 삼겹살에 모텔까지 지원 받으며 저녁에 내리는 비를
피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가 새벽 1시 무렵에 나오니 비는 그쳤다
지나온 문경읍과 백두대간 대미산 여우고개에서 흘러온 신북천
조령천 옆길따라 내려오며 개구리 소리와 이름모를 산새소리를 벗삼아 길을 걷는다.
발바닥 통증이 너무 심해 진행이 힘들 정도다
앉아쉬며 걷다보니 진행은 점차 느려지고
달이 구름을 벗어나려 안간힘을 쓰는게 보인다.
그래! 너도 그러니 나도 그리해 보마
너는 구름을 벗어날때까지 나는 가는데까지
가다가 다 못가면 내년에 또 하면 될테고
아직 아침이 되려면 멀었는데 운동하러 나오신 동네 아주머니 두분이 보여 먼저 인사를 드리며
야간에 마실길을 걸어 갈때는 누군가와 만나게 될 수 있되니 서로간의 거부감을 없애려면 먼저 반갑게 인사를 드려야 한다.
조금만 더가면 진남교이니 그곳에서 좀 쉬던가...
진남교 휴게소
임진각에서 300KM 지점이다.
조령천이 속리산 천왕에서 흘러온 영강과 만나는곳이며 이제부터 영강길따라 낙동강이 보이는곳으로
짙은 구름이 머리위에 있지만
해가뜨면 뜨면 더운걸 각오해야 하고
비오면 진흙을 각오해야 하니 오늘은 또 얼마나 더울지
ㅋㅋㅋ 산삼은 닭백숙과 함께 푹 삶아 먹어야 합니다.
삼 복용만 잘 했어도 그리 고통스런 길은 아니었을 텐데... 앞으론 잎사귀도 없을 겁니다. ㅎ
백숙은 인삼이 으뜸 입니다. 대추 세개랑 ㅎ
1부 다 읽고 2부로 넘어 갑니다.ㅎ
2부도 별개 없는데 잘 읽어 주시기 바랍니다.
이고생을 하고 계셨는데 저는 꼴랑 비 좀 온다고
중탈한다 설래발 쳤네요...ㅠㅠ
일단 고생 많으셨습니다.
얼릉 2부 넘어 가야지...ㅎㅎ
ㅎㅎㅎ 저는 집에 가도 할게 없어
눈물 콧물짜가며 부산으로 갔었습니다.
다음주에 기쁜 맘으로 뵙겠습니다.
참 할말없심다~~~
우리나라 구석구석 종단 제대로 하셨네요
더운여름 비도 맞으며 ~~
죽어라 긴긴 도로만 달렸던 기억이 가물가물~~
2부 고행길 만나러 갑니다
누님 글 감사합니다.
혹시나 부산 을숙도에 오시지 않을까 했는데...
조용한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와 종일 자고
대간길 안전한 산행 기원 드리겠습니다.
죄송해서 할말이 없심더~~~
국토종단 사고 소식에 정신줄 놓고 잊어버렸어요
어짜든동 몸조리 잘하세요
후기 읽는것도 몇날 몇일을 읽어도 재미지는데 640키로 홀로걸음 하셨으니 진짜 좋았겠습니다~~비오는 날 홀로 한강 다리 밑에서 비 피해 웅크리고있는 모습 상상만 해도 운치있어 보입니다.
2부는 몇일을 읽을지 ㅋㅋㅋ
제가 느끼기에는 400km가 딱 좋았습니다.
그이상은 별로 감흥도 없고 그저 그렇더군요
한강 다리 참 좋았구요 ...
간만에 들어와보니 이런일이~ 2부까지마저~ ^^
이제사 방장님의 국토종주기를 보게 되는군요.
족저근막염에 그 힘든 아스발트트길 수고 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