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개관
1. 시편의 명칭과 저자
히브리 원문 성경에는 본서에 포함된 각각의 시편에 대한 개별적 표제는 있으나 본서 전체를 지칭하는 제목은 없습니다. 그러던 것이 후대로 전승되면서 유대인 랍비들은 본서를 ‘찬양’을 의미하는 ‘테힐림’, 혹은 ‘세페르 테힐림’, 즉 ‘찬송의 책’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 가운데 시편에는 “현악기(하프, 수금 등)와 함께 노래하다”는 뜻을 가진 ‘자마르’라는 어근에서 나온 단어인 ‘미즈르’라는 단어가 57번 표제로 나타나고 있는 바, 헬라어 70인역 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프살모이’(Psalmoi)로 번역하여 본서의 명칭으로 채택하였습니다.
그 후 라틴역에서도 이러한 70인역(LXX)의 명칭을 그대로 음역하여 ‘리베르 살모룸’(Liber Psalmorum) 또는 그 단축형으로 ‘Psalmoi’라는 표제를 사용하였고, 영어 성경들도 이에 따라 ‘Psalms’이라고 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과정 속에서 원래 히브리어로 시를 뜻하는 ‘미즈르’라는 단어가 갖고 있었던 ‘곡조가 있는 노래’로서의 의미는 사라지고 ‘시선집’(詩選集. anthology)으로서의 뜻만 갖게 되었습니다. 한글 개역 성경 역시 이러한 명칭을 그대로 수용하여 ‘시편(詩篇)’이라고 칭한 것입니다.
본서의 저자는 단일한 사람이 아닌 여러 시대의 여러 사람들로서, 본서에 수록된 시들의 제목에서 그 저자를 밝히고 있는 것으로서는 다윗이 73편, 솔로몬이 2편(72, 127), 고라 자손들이 12편(42, 44-49, 84-85, 87-88), 아삽이 12편(50, 73-83), 그리고 헤만(88), 에단(89), 모세(90)가 각 1편에 이릅니다. 이처럼 본서의 저자는 아주 다양하지만 다윗이 이 모든 시편의 절반 가량을 지은 것으로 나타나며, 또 제2권의 마지막 시편인 72편의 끝머리에 “이새의 아들 다윗의 기도가 필하다”라는 언급이 삽입되고 있는데, 이것은 비록 시편 전체가 다윗의 직접적인 저작은 아니지만 시편이 수집되고 편집되는 과정에서 다윗의 신앙관과 신앙 자세를 그 표준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주는 것으로서, 말하자면 시편의 대표 저자는 다윗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이처럼 B.C. 15세기의 모세로부터 B.C. 5세기 포로 귀환 시대의 고라 자손에 이르기까지 1,000년 이상의 세월에 걸쳐 여러 사람들에 의하여 창작된 본서의 시들은 아마도 B.C. 10세기경 다윗의 시대 때로부터 성전 예배를 위하여 수집이 되고 편집되기 시작하여 B.C. 5세기 말이나 4세기 초 이스라엘의 포로 귀환 후 성전이 재건되고 나서 전 5권으로 편성된 현재의 모습으로 시편 전체의 편집이 완성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2. 시편의 주제
시편은 오랜 세월에 걸쳐 다양한 배경을 가진 저자들에 의해 지어진 시들의 시선집(anthology)으로서, 이런 특성으로 인해 시편 전체에서 중심적이고 공통적인 주제를 파악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신구약 성경 66권이 1,500년에 걸쳐서 기록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일관된 구속사적 흐름을 갖고 있는 것처럼 시편 전체에는 그 저변에 흐르는 분명하고 통일된 신학적 사상과 주제가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것은 시편들이 수집되고 편집되는 과정에서 그 모든 작업을 한 사람들이 분명한 신앙관을 갖고 그 일을 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시편 전편(全篇)에서 나타나고 있는 중심적인 사상은 대략 몇 가지로 요약이 될 수가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유일성과 왕권
시편에서는 하나님의 존재 여부를 증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모든 시편에는 시편 기자들이 알고 있으며 체험한 하나님께 대한 고백이 그 중심에 있는데, 그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유일하신 신으로서 세상을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인간 역사를 주관하고 다스리시는 절대 주권자이시며 왕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시편의 왕권 사상은 비록 역사적으로 이스라엘이 때로는 다른 민족들에게 압제를 당하거나 주권을 상실한 가운데서도 여호와 하나님의 궁극적인 승리를 바라보며 ‘하나님 나라’의 최후 완성을 바라보는 신앙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2) 두 종류의 인간
시편 전체의 서론이라고 할 수 있는 시편 1편은 의인과 악인을 날카롭게 대조함으로써 시편을 열고 있는데, 그 기준은 그들이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가 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는 자는 의인이며, 반면에 인간 스스로의 능력과 꾀를 의지하여 살아가는 자는 오만한 자이며 악한 자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의인은 복 있는 자로서 하나님이 그들을 형통하게 하실 것이지만, 악인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으므로 종내에는 망할 것이 선포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세상 현실 속에서는 자주 악인들이 의인들보다 더 형통하며 또 악인들에 의해서 의인들이 고난을 당하는 일들이 일어나며, 그런 모순적인 현실이 많은 시편 기자들의 고뇌와 신앙적 갈등의 원인이 됩니다만(시편 37편과 73편이 대표적), 이런 모순은 궁극적으로 미래에 온전히 성취될 하나님의 공의로운 최후의 심판을 상정하게 되며, 더 나아가서는 사후 세계의 궁극성을 바라보게 해 줍니다. 그런 중에 시편에는 이미 부활의 사상이 나타나고 있기도 한 것입니다(시 16:10).
(3) 언약 안에 있는 의인
시편에서는 의인을 다른 말로 ‘경건한 자들’이라고 하는데(4:3; 12:1; 16:10; 32:6), 이 말은 물론 결과적으로는 도덕성도 포함합니다만, 본질적으로 도덕적인 의(義)와 종교적인 경건을 뜻하기보다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하나님의 성도이며 백성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성도, 즉 ‘경건한 자’란 말(‘하시드’, 복수로는 ‘하시딤’)의 히브리 원어의 뜻은 ‘은혜(헤세드)를 입은 자’로서, 그렇기 때문에 성도들의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인 ‘헤세드’(한글 성경에서는 인자, 은혜, 인애 등으로 번역이 됨)로 말미암는 것임이 시편 곳곳에서 고백이 됩니다(6:4; 13:5; 21:7; 25:7; 31:16; 86:13; 147:11 등등). 시편에는 이런 하나님의 언약적 사랑을 나타내는 히브리 단어인 헤세드가 성경의 다른 곳들에서 나온 모든 회수보다 더 많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4) 죄의 문제에 대한 인식
시편 기자들은 각종 사회적인 불의와 죄악에 대해서도 민감하게 취급하며, 하나님께서 그에 대해 엄중히 다루시며 분노하심을 강조하고 있으나, 시편 기자들의 고백을 보면 근본적으로 모든 죄악은 영적인 것으로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릇되어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으로 이해합니다. 즉, 소위 구조악, 혹은 사회악이란 것도 영적이고 내면적인 죄악이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으로 해석이 됩니다. 그런 가운데 시편에는 모든 인간들이 근원적으로 죄인이라는 사실에 대한 인식과 함께 많은 회개의 시가 있는데, 이 시편들에서는 인간의 죄가 해결되는 길은 종교적인 제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가 그 죄 사함의 유일한 근거임을 밝힘으로써 궁극적으로 대속자의 필요성을 시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5) 메시아에 대한 대망과 예언
시편은 시편 기자들이 다양한 삶의 정황 가운데서 겪은 개인적이거나 민족적인 체험과 내면적인 고통과 또는 구원의 감격 등을 시적인 표현을 통해 묘사한 문학작품들의 집성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는데, 그것은 시편에는 수많은 예언들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시편의 절반 가량을 지은 다윗의 경우에도 때때로 그의 개인적인 신앙 경험들은 장차 오실 메시아가 행하시거나 겪으실 일들에 대한 선취적(先取的)이고 모형적인 경험으로 묘사가 될 때가 많습니다.
가령 고난시인 시편 22편은 그 대표적인 예로서 거기서 다윗이 당한 극심한 고난과 수치의 경험들은 나중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수난을 당하실 때 거의 문자적으로 다 이루어질 정도인데, 이것은 시편이 그저 문학적 소양이 많은 사람들의 창작품이 아니라 성령의 감동으로 지어진 것들임을 말해주는 것으로서, 신약 사도들은 그런 면에서 다윗을 선지자라고 칭하고 있습니다(행 2:30). 그래서 예수님께서도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라”(눅 24:44)고 말씀하심으로써, 시편도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해석이 되어야 함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시편의 이런 성격 때문에 신약에서 구약의 본문을 인용할 때 이사야서와 함께 시편을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414회 인용).
이런 상기의 주제들과 함께 시편에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처소로서의 예루살렘, 즉 시온과 성전의 영광과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예루살렘 찬가들이 있는데, 이 역시 장차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질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바라보는 예언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시편은 시편 기자들의 내면적 경험을 나의 것으로 동일시함으로써 개인적인 묵상의 자료로서도 유용하겠지만, 시편을 읽고 묵상함에 있어서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보는 관점이 꼭 필요하다고 할 것입니다.
3. 시편의 구조와 내용
Ⅰ. 제1권(10-41편)
서시(1, 2편), 다윗의 시(3, 29, 11-32, 34-43) 무명의 시( 10, 33편)
Ⅱ. 제2권(42-72)
고라 자손의 시(42, 44-49편), 아삽의 시(50편), 다윗의 시(51-65, 68-70편), 솔로몬의 시(72편), 무명의 시(43,
66, 67, 71편)
Ⅲ. 제3권(73-89편)
아삽의 시(73-83편), 고라 자손의 시(84, 85, 87편), 다윗의 시(86편), 헤만과 에단의 시(88, 89편)
Ⅳ. 제4권(90-106편)
모세의 시(90편), 무명의 시(91-100, 102, 104-106편), 다윗의 시(101, 103편)
Ⅴ. 제5권(107-150편)
무명의 시(107, 111-119, 135-137편), 다윗의 시(108-110, 138-145편),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120-134편), 할렐루야 시(146-150편)
첫댓글 시편말씀도 기대해 봅니다.^^
주님께서 더욱 넘치도록 영감과 힘을 주시기를 기도드려요.
감사합니다.
예. 격려 감사합니다. 시편이 구속사적 성경묵상의 마지막인데, 이렇게 가장 마지막에 묵상하는 것이 나름대로 의미가 크네요. 집필 중에 큰 위로와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함께 묵상하는 분들께도 은혜가 넘치기를.....
은혜 감사합니다.
아르헨티나에 계신 것 같은데, 그런가요? 하나님 말씀의 은혜를 함께 나누게 되어서 저도 기쁩니다.
반갑습니다.
교통함이 없었습니다.
믿음에 많은 유익을 얻습니다.
감사할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