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분 |
水 |
火 |
木 |
金 |
土 |
방위 |
北 |
南 |
東,南東 |
西 北西 |
中央 北東 南西 |
계절 |
겨울 |
여름 |
봄 |
가을 |
사계절 |
가족 |
中男 |
中女 |
長男 長女 |
少女 老父 |
少男 老母 |
질병 |
腎臟 |
心臟 |
肝臟 |
肺臟 |
胃臟 |
수치 |
1. 6 |
2, 7 |
3,8 |
4.9 |
5.0 |
* 팔괘(八卦)로 풀면 다음과 같다.
태극 |
태극(핵) | |||||||||||
음양 |
양 ▬ |
음 ▬ ▬ | ||||||||||
4상 |
태양 ▬ ▬ |
태음 ▪ ▪ ▬ |
소양 ▬ ▪ ▪ |
소음 ▪ ▪ ▪ ▪ | ||||||||
8괘 |
건(乾) |
태(兌) |
이(離) |
진(震) |
손(巽) |
감(坎) |
간(艮) |
곤(坤) | ||||
방위 |
西北 |
西 |
南 |
東 |
東南 |
北 |
東北 |
西南 | ||||
괘형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괘순 |
1 |
2 |
3 |
4 |
5 |
6 |
7 |
8 | ||||
오행 |
金 |
金 |
火 |
木 |
木 |
水 |
土 |
土 | ||||
육친 |
아버지 |
삼녀 |
차녀 |
장남 |
장여 |
차남 |
삼남 |
어머니 | ||||
24방위 |
戌亥乾 |
庚酉辛 |
丙午丁 |
甲卯乙 |
辰巽巳 |
壬子癸 |
丑艮寅 |
未坤申 |
84. (풍수)상생과 상극은 어떠한 내용인가?
<상생 : 相生>
水生木 : 물은 나무를 살게 한다.
木生火 : 나무는 불을 만든다.
火生土 : 불은 재를 만들어 흙이 된다.
土生金 : 땅에서 광물질이 난다.
金生水 : 쇠는 차가워지면 수분이 나온다.
<상극 : 相剋>
水剋火 : 물로 불을 끈다.
木剋土 : 나무는 땅에다 뿌리를 내린다.
火剋金 : 불로 쇠를 녹인다.
土剋水 : 흙으로 물을 막는다.
金剋木 : 쇠로 나무를 절단한다.
85. (풍수) 산소자리에서 입수와 활개란?
입수란 묘 바로 뒷면에 언덕을 말하며 용맥이 혈로 들어오는 머리를 말한다. 활개란 묘 양쪽으로 만든 사성을 말하며 활개의 끝은 야구 방망이처럼 크게 뭉쳐서는 안 되며 주먹을 쥔듯해야 한다.
* 풍수 용어로 용(龍)은 산, 사(莎)는 혈 주위에 있는 여러 지형지물의 형상을 말한다.
86. (풍수) 묘를 쓸 때 산세를 보는 요령은?
① 산이 많고 높으며 물이 급류로 흐르는 것이 많으면 절터로는 좋으나 장지는 나쁘다.
② 악산이 없고 흙이 두껍고 흙 색깔이 윤택하고 붉은 색이 진하게 나며 언덕이 잘 생기고 언덕 뒷산이 병풍처럼 둘러친 것 같이 생긴 산은 길하여 군자가 많이 배출한다고 한다.
③ 산세가 좋아도 돌이 많거나 산천이 험하고 급하게 생겼으면 소인이 많이 나오고 길지가 못된다고 한다.
④ 산수(山水)의 흐름이 묘의 길흉(吉凶)터를 좌우하니 이 부분은 전문가에게 물어보는 것이 좋다.
87. (풍수) 묘 자리 중 피해야 할 곳은?
동북방에 골짜기가 있어 바람이 들어오는 곳과 묘 앞에 개울이 흘러 묘전 흙이 줄어드는 곳과 묘 뒤가 허전하고 붕괴될 위험이 있는 곳은 절대로 피해야 한다. 전통풍수에서 삼갈 곳 다섯 곳을 소개한다.
① 다음 날에 길(도로와 교량)이 생길 염려가 있는 곳.
② 성곽이나 촌락이 생길 염려가 있는 곳.
③ 못(우물, 저수지)이 생길 염려가 있는 곳.
④ 세력가에게 빼앗길 염려가 있는 곳.
⑤ 밭(田)가는 사람이 범할 염려가 있는 곳.
88. (풍수) 영사정 묘역의 풍수는?
2005. 7. 1 동방풍수과학연구원 이 주 한 원장이 영사정을 감정하고 평한 내용을 소개 한다.
산이 안정되고 좌(백마섬 쪽) 우(산31번지 쪽)가 안으로 감아 돌아 명당이며 안산(묘에서 바라보이는 앞산)이 없으나 중국 풍수에 의하면 강이 안산을 대신하는 것이고 특히 옥인(玉印)의 역할을 하는 앞 전호리 뒷산은 이 묘역을 명당으로 만드는 산이므로 영사정 같이 좋은 옥인은 별로 볼 수 없다. 앞으로 만약 개발되어 전호리 산이 없어진다면 나쁘므로 잘 보전되도록 종중에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한강 물이 흘러드는 것은 보이고 나가는 것은 안 보이며 항상 묘 앞에 물이 마르지 않으니 후손들이 모두 부유하게 살 수 있는 명당이다. 일반적으로 지류는 들어오는 것이 안 보이고 나가는 것은 보여야 좋은 것인데 이곳은 그러한 조건을 갖추었다.
영사정 묘역은 명예보다는 부(富)가 성할 명당으로 본다.
소위 역장이라고 말하는 후대를 선대보다 높은 지형에 쓴 경우(형갑조묘가 판관공 은조 묘 위쪽에 위치)에도 지맥을 달리해서 썼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으며 역장을 했다고 옮기는 것은 좋지 않다. 정헌공 묘 앞에 재실이 가리는 것 같으나 향이 모서리를 피하여 나쁘지 않다. 같은 맥에 줄줄이 내려 쓴 곳은 한곳(정랑공 단소와 취부공 묘)인데 피해야 하며 다른 묘소는 향을 달리 써서 잘 되어 있고 옆으로 나란히 묘를 쓰는 경우에도 세분 이상 안 쓰는 것이 좋다.
* 정랑공 단소는 풍수 이론에 맞게 2006년 가을 약간 이전하였음.
문열공과 문헌공 묘는 아래에 있지만 오히려 좋은 자리이다. 높이 모신 것 보다 좋다.
전호리 방면에서 들어오는 제방도로 큰 길에 자동차가 많이 달려드는데 살(火 金)이니 피하는 방책(반사경 설치)을 강구함이 좋다.
입구의 무명무묘선조위령비 위치가 매우 잘 선정되어 있어 좋다.
묘 주변의 나무는 뿌리가 길게 뻗지 않는 나무가 좋고 회양목을 너무 많이 심으면 벌래가 생긴다. 비석은 전면을 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묘지의 명당여부도 50%는 후손들이 정성들여 가꾸는데 달렸다고 할 것이며 이렇게 정성들여 가꾼 곳은 국립현충원 외에 별로 보지 못했다.
다만, 2년만 가꾸지 않으면 험한 숲 속으로 변하니 후세에도 계속해서 잘 가꾸도록 지속적 대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재실 지붕의 기와는 청색보다 주황색 적색이 좋다.
89. (장례) 임종에서 초혼까지 어떻게 하나?
① 임종, 속광 : 소생 가망이 없으면 안방으로 모셔 옷을 갈아입힌다.
울음을 참고 기다리다가 숨을 쉬는지 코 밑에 햇솜을 대본다. 이것을 속광이라 한다. 절명 후 곡을 한다.
② 수시- 집안에 경험 있는 분이 눈을 감게 하고 입을 다물게 한 다음 머리를 높이 고이고 팔 다리를 주물러 펴서 두 팔을 배위에 놓고 엄지손가락 끼리 끈으로 묶는다. 두 다리를 가지런히 해서 엄지발가락을 묶어 엄지손가락과 팽팽히 연결하여 묶는다. 시신의 어깨와 다리를 단단히 동여맨다.
③천시- 평상이나 자리를 펴고 집 베개를 3개 만들어 머리 허리 다리부분에 놓고 시신 머리는 남쪽으로 향하도록 하고 홑이불을 덮은 후 병풍으로 가린다.
④고복- 고인이 입던 옷을 가지고 남자가 죽으면 남자가, 여자가 죽으면 여자가 동쪽 지붕에 올라가 죽은 사람의 주소 성명과 관직을 대면서 복! 복! 복! 세 번 부른다. 지붕에 올라 갈수 없으면 마당 한쪽에서 한다.
* 사자 밥, 돈, 신발, 복 부를 때 옷을 대문 앞에 적당한 물건에 바쳐 놓아둔다.
90. (장례) 하관할 때 피할 사람은?
장지에서 하관 할 때 관이 땅에 닿는 시각에 “무슨 생, 무슨 생” 즉 몇 살, 몇 살은 하관을 보지 말고 피하라고 하는데 그 원칙은 다음과 같다.
十干(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 十二支(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에 의하여 갑자 을축 병인 정묘 등 60갑자를 치는데 사람의 나이나 그날의 일진도 여기에 따른다는 것은 모두 다 알고 있다.
그리고 방향을 나타낼 때에도 12지를 쓰는데 자(子)방이 북방이면 반대가 오(午)이니 대립해서 보면 다음과 같다.
子(자) --12시방향 북 반대 午(오)--6시방향 남
癸(계) 반대 丁(정)
丑(축) 반대 未(미)
艮(간)--1시 30분바양 동북 반대 坤(곤)--7시30분방향 남서
寅(인) 반대 申(신)
甲(갑) 반대 庚(경)
卯(묘)--3시방향 동 반대 酉(유)--9시방향 서
乙(을) 반대 辛(신)
辰(진) 반대 戌(술)
巽(손)--4시30분방향 동남 반대 乾(건)--10시30분방향 서북
巳(사) 반대 亥(해)
丙(병) 반대 壬(임)
첫 번째 하관할 때 피할 사람은 정충(正沖)이 닿는 사람,
즉 일간(日干-하관일 일진의 첫 글자)과 현장에 있는 사람의 생년간(生年干- 첫 글자)이 같고 일진의 일지(日支-끝 글자)가 상충(반대)되는 사람은 피한다.
가령 하관일이 갑자일(甲子日)인데 갑오생(甲午生) * 子와 午가 반대
을미일(乙未日)인데 을축생(乙丑생) * 未와 丑이 반대
인 경우이다.
두 번째 하관할 때 피할 사람은 순충(旬沖)에 닿는 사람,
즉 일지(日支-하관일 일진의 끝 글자)와 현장에 있는 사람의 생년지(生年支- 끝 글자)가 상충(반대)되는 사람은 피한다.
가령 하관일이 갑자일(甲子日)인데 경오생(庚午生)
을축일(乙丑日)인데 신미생(辛未생)인 경우이다.
91. (장례) 하관시간을 선택하는 방법은?
하관당일의 일진에 따라 일반적으로 쓰는 황도법(黃道法)에 의함.
子午日: 午時, 申時, 酉時 丑未日: 巳時, 申時
寅申日: 辰時, 巳時, 未時 卯酉日: 午時, 未時
辰戌日: 辰時, 巳時, 申時 巳亥日: 辰時, 午時, 未時
92. (제례) 제사의 연원과 의의 그리고 목적은?
단군시대부터 하늘에 대한 제사가 있었다고 전하며 고조선 그리고 신라, 고구려, 백제 등 삼한 시대와 그 후 고려를 거쳐 오는 동안 제천행사가 이어져 오다가 조선조에서 가장 순수한 유교적인 의례가 시작되었다.
조선조 초기에는 국법으로 계급에 따라 제례의식을 정하였는데 경국대전에 따르면 6품 이상 문무관원은 3대(증조부모,조부모,부모)를 제사하고 7품 이하는 2대, 서민은 부모 제사만 지내라고 하였고 아버지의 복(服)은 3년이나 군사(軍士)와 서민은 100일 동안만 복을 입도록 하였다.
* 서민은 예법이라는 형식에 너무 매달리다 보면 생업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간소화한 것으로 보나 고려 때 형벌제도(형법총71조)를 보면 부모나 남편의 상사가 났다는 말을 듣고도 슬픈 생각을 잊어버리고 잡된 놀이를 하는 자는 도형(징역) 1년, 상이 끝나기 전에 상복을 벗고 보통 옷을 입는 자는 도형 3년, 초상이 난 것을 숨기고 초상을 치르지 않은 자는 2천리 밖으로 귀향, 조부모의 상사가 났다고 거짓말을 하여 휴가를 청하거나 직무를 회피한자는 도형 3년에 처한다고 엄하게 규정하였다.
제례는 공자(孔子) 맹자(孟子) 정자(程子) 주자(朱子)를 이어오면서 정리 되어온 유가(儒家)의 전통적 방식인데 퇴계 이 황, 율곡 이 이 선생도 3대 봉사만 하였으나 율곡 선생의 제자인 김장생(金長生) 선생이 가례집람(家禮輯覽)을 편찬하여 주자(朱子)의 가례(家禮)에 대한 해설을 펴내면서 만민 평등한 주자가례의 준용이 확대되었고 신분의 구분 없이 오늘날의 제사제도가 일반화 되었다.
제사를 지내는 목적은 첫째 복을 기원하는 것, 둘째 풍년들면 가을에 감사하다고 제사를 지내고 부모와 조상에게 보답하는 정성 즉 보본(報本), 셋째 전쟁이나 재앙 질병 등 화(禍)를 피하도록 비는데 있으나 공자에 의하여 강조된 유가(儒家)의 제사 목적은 복을 빌거나 재난을 피하는데 역점을 두는 것 보다 천지 은혜에 대한 감사와 자기를 존재하게 해주고 아껴 길러주신 조상과 부모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는 보본이 주(主)라고 하였다. 따라서 제사는 효도의 연장이므로 다른 욕심이 있어서는 안 되며 제사를 지내는 사람은 자연히 만사가 순탄하게 되고 복을 얻는다고 스스로 생각하면 될 것이다.
참고로 동양에서 우리나라와 같이 전통제례를 올리는 나라가 있지만 중국이나 대만 홍콩 싱가폴 등에서는 만주식으로 서서 향불을 피어들고 세 번 허리만 굽히는 식(式)이거나 청나라 군대에서 하던 식으로 한다. * 후금이 청나라 세우며 동북부 일대를 만주라 부름.
그리고 중국 대륙에서는 현재 제사를 잘 지내지 않으며 지낸다고 해도 만주식 제사의식에 따른다. 만주식이란 명나라(1368-1644)가 여진족이 세운 청나라에 멸망한 후 만주식으로 지내는 제례의식을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병자호란 이후 청나라가 대국 노릇을 하며 군림했지만 조선 선비들은 예법을 모르는 오랑캐 나라인 만주식을 따르지 않았고, 명나라가 없어졌어도 문화국가인 명나라 예법을 중시했다. 예를 들면 조선조 후기의 비석이나 족보 등 문헌에는 숭정 기원{숭정1년은 1628년 무진(戊辰), 숭정17년 1644년 갑신(甲申)에 명나라 멸망}후 몇 년 이라고 명나라 마지막 연호를 써왔다.
1969년 가정의례준칙 및 가정의례법이 제정되어 검소한 제례를 갖추도록 권장해 온 이후 기제(忌祭)의 대상이 부모, 조부모 및 배우자로 국한되는 경향이 많아졌고, 탈상도 100일에서 49일 탈상이 보편화 되었으며, 3일 탈상도 하는데 이는 심각한 생존경쟁 사회 속에서 행동이 제약되는 상주가 오랜 기간 동안 제례라는 규제 속에 묶여서는 안 되기 때문인 것으로 보며 효심이 약한 때문이라고 일방적으로 비난해서는 안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공자께 재아(宰我)라는 제자가 3년상은 너무 길으니 1년상으로 하면 어떻겠느냐고 물은 즉 부모의 상을 당하여 맛있는 음식을 먹어도 맛이 없고, 좋은 음악을 들어도 즐겁지 않은 것이 인정인데 부모가 강보에 싸서 3년을 길렀으니 3년 동안 이를 피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후 “네가 편하면 그렇게 하라”고 말하고 그가 나가자 “재아의 불인(不仁) 함이여!”하고 탄식 하셨다고 논어에 전한다.
시대에 맞게 기간을 조정해서 시행하는 것은 불가피 하더라도 상을 당하면 상당 기간 근신하고 명복을 빌며 부모님의 은혜를 되새기는 것은 사람의 도리이다.
조상에 대한 고마움이나 교육적 효과는 종전 얼굴도 못 본 4대 봉사에서 조부모까지 모시는 것은 좋을 것으로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옛날에는 일찍 결혼했기 때문에 환갑이 되면 보통 증손을 보는 경우가 많았고 농경사회에서 대가족 형태였기 때문에 4대 봉사를 해도 정서적으로 세대차가 별로 없었고 가까웠기 때문일 것으로 보이나 요즈음은 만혼(晩婚)과 핵가족 형태로 보통 조부모까지가 겨우 정을 느끼고 사는 사회가 되었기 때문에 조부모까지 제사를 모시는 형태가 된 것으로 보인다. 부모는 물론 할아버지 할머니의 끔찍한 사랑을 받고 자란 손자 손녀가 조부모 돌아가신 날을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은 당연한 도리로 보며 이렇게 이어지는 사랑이 없으면 인류의 장래는 없다고 할 것이다.
제사의 형식은 어떠한 방식이라고 고집할 필요는 없지만 집안의 뿌리 교육을 위해서도 제사의식은 계속 존중되어야 한다고 본다.
* 세상에 큰 업적을 남기고 간 유명인사는 탄신일이나 돌아가신 날을 몇 백년이 지나도 추모하는데 자기를 존재하게 해준 조상과 그 중에서 가문을 빛낸 조상을 내가 모시지 않으면 도리가 아닌 것이다.
93. (제례) 제물 진설 방식은?
① 지방과 집안 마다 차이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② 잉어나 복숭아는 제물로 올리지 않는 것이다.
③ 1열은 주식, 2열은 적과 전, 3열은 탕, 4열은 나물류
5열은 과일을 놓는다.
④ 홍동백서(紅東白西), 두동서미(頭東西尾), 생동숙서(生東塾西)
좌포우혜(左脯右醯=젖갈), 어동육서(魚東肉西), 건좌습우(乾左濕右)
조율이시(棗栗梨枾) 또는 조율시이(棗栗枾梨)
(진설예) 시접 메 국 메 국 떡
잔 잔 조총
국수 고기 적 삶은 고기 닭찜 생선찜 달걀부침 누름적 두부전
육탕(육류재료) 소탕(두부재료) 어탕(생선재료)
북어 포 나물 간장 김치 김 식혜 젓갈
대추 밤 배 감 사과 귤 약과 색사탕 산자
94. (홀기) 제례진행 순서는?
전통제례에 있어 식 진행 순서에 따른 구령을 한문으로 적은 문건을 홀기(笏記)라 한다.
<묘제 홀기> 홀기를 읽는 것은 아래 문구에 행동 구령만 달면 된다.
예 : 초헌자 세수하고 분향재배하십시오.
① 재배서립-묘 앞에 서서 전원재배하고 차례로 섬.
* 집안에서 지낼 때에는 재배서립 하지 않음.
② 진찬 -집사자 세수 후 진설 확인
③ 강신 -초헌자 세수 분향 재배
-초헌자 삼제우지(비위 잔에 술 담아 모사에 세 번 따름.)
-초헌자 재배
④ 참신 -참석자 전원 재배
⑤ 초헌 -고위와 비위에게 잔을 올림, 삽시 정저, 초헌자 재배
⑥ 독축 -전원 부복하고 독축
-초헌자 재배, 퇴주
⑦ 아헌 -아헌자 세수 후 고위와 비위 순으로 잔 올림.
-아헌자 재배 후 퇴주
⑧ 종헌 -종헌자 세수 후 고위와 비위 순으로 잔 올림.
-종헌자 재배
⑨ 헌다 -초헌자 정위치, 탕을 내리고 냉수를 올린 후 수저로 세 번 메를 떠서 냉수에 넣고 정저를 함.
⑩ 유문 -잠시 돌아서서 기다림.
⑪ 사신 -수저를 내리고 메 뚜껑을 닫음.
-전원 재배함.
⑫ 철상 음복 -잔을 물리고 음복
<참고>
-집안 제사 때 아헌은 보통 주부가 하는데 여자는 절을 네 번 함.
-집안에 따라 삽시는 종헌이 끝난 후 메 뚜껑을 열고 삽시 한다.
95. (제례) 분향재배와 삼제우지는?
분향은 하늘로부터, 삼제우지는 땅으로부터 신을 부르는 의식이다.
* 삼제우지란 술잔에 술을 따라 모사나 땅에 세 번 붓는 절차다.
96. (제례) 전통제례는 유교방식인가?
옛날부터 조상님들이 지내오던 제사방식이 유교방식에 따른 것인가 하는 문제를 논하자면 먼저 유교에 대하여 알아야 할 것이다.
① 유교(儒敎)의 종교성 : 공자로부터 시작된다. 천(天)사상이나 천명사상(天命思想)이 있고 인간관의 핵심은 인(仁)에 있다. 유교에 있어서 제사를 중요시하나 복(福)을 구하거나 대가나 보상을 요구하지 않으며 다만, 세속 세계를 도덕화 하려는 의지를 가진다. 따라서 유교는 현세에 있어 인간의 삶을 충실하게 하는데 힘쓰기를 강조하며, 내세(來世)에 대하여는 명확하게 말해두지 않는다. 인간의 도리를 다함을 인(仁)이라고 할 때 그 기본은 친자관계에서 출발하는데 핵심이 “어버이에 대한 존경과 자식에 대한 사랑”이다. 제사는 효성의 정감을 담는 그릇이고 사후에 문제보다는 현세에 살아 있는 이들의 진실성이 문제이다. 그래서 “事死如事生(사사여사생)” 즉 죽은 이 섬기기를 살아 있는 이 섬기기와 같이 한다고 했고 “吾不與祭 不如祭(오불여제 불여제)” 즉 내가 직접 제사 지내지 않으면 제사 지내지 않는 것과 같다고 말하고, 효는 그것이 조상뿐 아니라 하늘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숭앙심으로 승화하는 것이므로 유교의 종교성을 나타낸다.
그러나 유교는 성균관, 향교, 서원이 있으나 포교를 하지 않으며 종교적 교리를 만들어 신앙의 방식을 규정하지 않는다.
② 유교와 전통제례-제수를 차려 놓고 유생복을 입고 유건을 쓰고 한문으로 된 홀기를 읽으면서 제례를 지내는 방식은 유교적 방식이지만 현대에 있어서 유교적 방식으로 복장을 갖추는 것은 유교를 신봉하기 때문이 아니라, 전통을 이어간다는 자긍심의 일단으로 질서정연하게 예를 행한다는 의미가 크며, 조상에 대한 존경심을 조상이 해오던 방식대로 표현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유교가 있기 이전에도 천신께 제사지내는 제례 등이 있었으니 유교 때문에 제사가 생긴 것은 아니다.
따라서 자신이 믿는 신앙에 배치되지 않는다고 믿고 행하면 누구나 거부감이 없을 것이다.
사람으로서 살아가면서 추구해야 할 가치 가운데 자기 몸에서 직접 발생한 관계에 의한 “부모에 대한 존경과 자식에 대한 사랑”보다 더 귀중한 것은 없느니 만큼 제례를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인간이 만든 각가지 형식(종교적 형식 포함)을 초월할 수 있다고 본다.
97. (제례) 추도식 순서는?
원칙적으로 제사는 집안끼리 지내는 것이 보통이나 고인의 사회적으로 덕망이 높았거나 공익적으로 공헌한 바가 큰 경우에는 고인을 위하여 유족 및 친지 등이 발기하여 추도식을 거행하는 수가 있다. 강당, 운동장 묘소 앞에서 거행하는데 제수는 차리지 않는다.
참가자들은 대개 검은 옷과 리본을 달고 들어와 유가족과 인사하고 자리를 잡고 진행한다. 순서는 아래와 같다.
① 개식--사회자가 개식 선언
② 묵념--전원 묵념
③ 약력보고--활동 업적 보고
④ 추도사--고인과 친분이 두터웠던 사람이 한다.
⑤ 추도가--고인을 추모하는 노래 합창 또는 독창
⑥ 분향--참례자 전원 줄지어 분향(주악)
⑦ 폐식--사회자가 폐식 선언
98. (축문) 유세차(維歲次)란?
維= 이을 유, 또는 발어사(發語辭=發言) 유
歲= 해(年) 세
次= 차례 차
직역을 하면 “이어져 온 해(年)의 차례가” 라고 할 수 있는데 “이제”라는 뜻이다. 한글로 축문을 풀이 할 때는 꼭 넣을 필요가 없는 문구이다. 즉 “유세차 병술 오월 병진삭 초삼일무오 15대손 아무개 감소고우”라고 할 경우 풀어서 말한다면,
“이제” “서기2006년 음력 5월 무오 초3일에 15대손 아무개 고합니다.”라고 하면 되고 한글 축에도 유세차란 말을 넣어 “유세차 서기 모년 모월 모일 아무개 고합니다.”라고 해도 무난한 말이다.
99. (축문) 축문에 자주 나오는 문구의 뜻은?
①현(顯)= 나타날 현, 높을 현, 밝을 현자로 돌아가신 어른을 높여 부 를 때 앞에 붙인다.
② 감소고우(敢昭告于) = 밝혀서 아뢰고자 합니다.
감히 敢. 소명(詳)할 昭, 밝힐 昭. 알릴 告. 말할 于, 어조사 于
③ 세서천역(歲序遷易)= 해가 바뀌어
기서유역(氣序流易)= 절기가 바뀌고 세월이 흘러
성상재회(星霜載回)= 묵은해가 넘어 감.
④ 휘일부임(諱日復臨)= 돌아가신 날이 다시오니
* 다시 부, 또(又) 부 : 돌아올 복, 회복할 복 되풀이할 복
망일부지(亡日復至)= 죽은 날이 다시 오니 (아내의 경우)
⑤ 추원감시(追遠感時)= 돌아가신 때를 맞아 조상이나 부모를 추모하 고 공경하는 마음이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생각이 난다.
⑥ 불승감모(不勝感慕)= 사모하는 마음 이기지 못하여
불승영모(不勝永慕)= 영원히 사모하는 마음 이기지 못하여
호천망극(昊天罔極)= 은혜가 하늘처럼 크고 넓어 다할 수 없음.
(부모의 경우에는 불승영모 대신 호천망극을 사용)
불승감창(不勝感愴)= 아픈 마음 이기지 못하여(남편의 경우)
불자승감(不自勝感)= 스스로 많은 느낌을 이기지 못함(아내)
정하비통(情何悲痛)= 정리로 비통한 마음 한량없음.(형제의 경우)
⑦ 근이(謹以) = 삼가 --써, --을 정성을 다한다는 말.
* 아랫사람인 경우에는 玆以.
청작(淸酌) = 맑은 술
서수(庶羞) = 온갖 맛있는지 음식
⑧ 공신전헌(恭伸奠獻) = 공경하는 마음으로 받들어 올리오니
(공경할 恭. 펼 伸. 베풀 奠, 전 올릴 奠. 받칠 獻)
경신존헌(敬伸奠獻)= 공신전헌과 같은 뜻
⑨ 상향(尙饗) = 신명께서 제물을 받으옵소서. 흠양하십시오.
⑩ 금이(今以) 초목귀근(草木歸根)= 이제 초목이 그 뿌리로 돌아가는 가을철을 맞이하여
상로기강(霜露旣降)= 찬 서리가 이미 내리고
백로기강(白露旣降)= 흰 이슬이 벌써 내려
금이초목(今以草木)= 이제 풀과 나무가
우로기유(雨露旣濡)= (산소가)비와 이슬로 이미 젖어 * 젖을 濡
초목기장(草木旣長)= 풀과 나무 잎이 이미 무성함.
⑪ 추유보본(追惟報本)= 조상이나 부모의 은혜에 대하여 감사 하다는 생각에 따른다는 것.
⑫ 예불감망(禮不敢忘)= 예를 감히 잊을 수 없음.
몰령감망(沒寧敢忘)= 돌아가셨지만 편안하신지 잊을 수 없음.
⑬ 첨소봉영(瞻掃封塋)= 산소를 깨끗이 단장한다는 말.
⑭ 지천세사(祗薦歲事)= 세사로 공경스럽게 천신하오니
(祗=공경할 지. 薦=천신할 천, 드릴 천. 歲事=일년 중 일)
* 지천우(祗薦于)= 공경하여 올리오니(于는 어조사)
⑮ 용신건고(用伸虔告) 근고(謹告)= 정성껏 삼가 고한다는 말.
⑯ 유시보우(惟時保佑)= 천신께서 보호해주신다는 뜻.
⑰ 실뢰신휴(實賴神休)= 신령님의 은혜를 받는다는 뜻.
100. (축문) 축문은 언제 어떻게 짓나?
<먼저 알아 둘 사항>
축문은 장례의 모든 절차마다 작성해서 읽는 것이 전통 방식이므로 장의사에서 표준 축문서식을 모두 준비해 오는데 이것을 사용하면 되겠으나 뜻도 모르고 읽으면 의미가 없으니 꼭 알아 두어야 한다.
첫째, 축문을 지어 꼭 읽어야 할 때와 생략해도 될 때가 있기 때문에 미신적 의미가 크거나 번거로운 축은 줄이는 것이 요즈음 관행이다.
다만, 토지지신에게 지내는 제사는 산역을 함에 있어 조상 묘역의 틀을 다시 짜는 공사의 경우가 많고, 공사 자체가 항상 안전사고의 위험성이 있는 만큼 조심해서 시작하겠다는 뜻이 있으므로 모든 산역에는 공사 시작하기 전에 간략히 시행하는 것이 관례이고 그 묘역의 위 어른에게도 알리는 것이 예의인 것이다.
둘째, 축은 한문으로 압축해서 간결하게 작성했으므로 제사 진행에는 도움이 되나, 한글세대를 위해서는 풀어서 자기가 작성하여도 좋을 것이기에 한글로 푼 축문을 뒤에 붙이니 돌아가신 분의 행적을 간략히 넣어 글을 지어 읽는 것이 바람직하다.
<참고>
① 설날과 추석 제사에는 축을 읽지 않는다.
② 토지지신은 음이고 분향하는 불(火)은 양이므로 상극이기 때문에 산신제(토지지신에게 올리는 제사)에서는 향을 피우지 않는다. 단잔으로 올린다
(현대식 축문 예)
유세차 병술(2006) 0 월 삭 간지 0일 간지 손자 길동이가 고합니다.
(무슨 직을 지내신) 할아버지, 할머니!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지 5주기의 날입니다. 할아버지께서는 어려운 시기에 태어나시어 자수성가로 우리 집안을 일으키시고 아드님 세분과 따님 두 분을 훌륭히 키워 번창한 우리 가문을 만드셨습니다. 할아버지께서 창업하신 회사는 이제 대를 이어 잘 운영하고 있으며 항상 할아버지에게 감사의 마음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할아버지께서 마지막 남기시고 간 유훈을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는 할아버지가 사랑하시던 후손들과 못 보시고 가신 어린 후손까지 모두 모여 할아버지의 공덕을 기리고 있으며 더욱 행복하고 화목하게 살아갈 것을 다짐하고 있습니다..
정성들여 차린 음식과 청주를 올리오니 흠향하시옵소서.
온 가족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명복을 다시 한번 빕니다.
[별첨] 축 문
<항목>
① 발인축 -영구차(상여)가 떠날 때 고별식 축문-------------66
② 산신축 -묘를 쓰기 작업 직전에 토지지신에게 지내는 축문---66
③ 선영 고유축 -묘를 쓰기 전에 선영 윗분 산소에 고하는 축문--66
④ 성분 후 고유축 -묘를 다 만든 후 아뢰는 축문------------67
⑤ 소상축 - 소상(1주기), 3우제, 49제, 100일제, 대상 축문-----67
⑥ 개장 전 산신축 -개장 직전 토지지신에게 제사지내는 축문----67
⑦ 개장 후 묘제축 -개장 후 산소에 고하는 축문-------------68
⑧ 개사초 전 산신축 -개사초 할 때 산신축문---------------68
⑨ 개사초 전 고유축 -묘를 고칠 때 축문------------------69
⑩ 개사초 후 묘제축 -묘를 고친 후 축문------------------69
⑪ 석물 설치 전 산신축 -석물 설치 전에 지내는 산신축문------69
⑫ 석물 설치 후 고유축 -석물 설치 후에 지내는 고유축문------70
⑬ 시제전 산신축 -시향 때 토지지신에게 지내는 축문---------70
⑭ 시제축 - 시향축문---------------------------------71
1. 발인축(發靷祝)
靈輀旣駕 往則幽宅 載陳遣禮 永訣終天
(영이기가 왕칙유택 재진견례 영결종천)
(뜻)
영좌를 실은 상여를 이미 메게 되었으니 가면 곧 무덤이옵니다.
그리하여 보내는 예를 베풀어 영원토록 이별함을 고하나이다.
* 발인축은 한문 그대로 읽고 구태여 한글로 풀이하여 읊을 필요가 없는 축이다.
2. 산신축(山神祝)
* 토지지신은 음이고 분향하는 불(火)은 양이므로 상극이기 때문에 산신제에서는 향을 피우지 않는다. 단잔으로 올린다.
維
歲次 干支(아무해) 0月 干支(당월 초하루 간지)朔 0日干支 아무개 (제주)敢昭告于
土地之神 今爲 아무개(망인) 之墓 塋建宅兆 神其保佑 俾無後艱
謹以 淸酌 脯醢(또는 果) 祗薦于神 尙 饗
* 합봉일때에는 영건택조를 合窆于(합폄우) 아무개 封(봉)으로 고친다.
{유세차 아무해 아무월간지(당월 초하루 간지)삭 아무일간지 아무개 (제주)감소고우
토지지신 금위 아무개(망인) 지묘 영건택조 신기보우 비무후간
근이 청작 포해(또는 과) 지천우신 상 향}
(뜻)
유세차 아무해 아무달 아무날에 아무개가 감이 고합니다.
토지지신이시여 이제 아무 벼슬한 아무개공(公)의 무덤을 여기에 정하오니 신께서 보우하사 뒤에 근심이 없도록 하소서. 삼가 맑은 술과 포(과실)로서 공경하는 마음으로 천신하오니 흠향 하소서.
3. 선영(先塋) 고유축(告諭祝)
維歲次 干支 00月干支朔 00日干支 아무개 敢昭告于
顯 某親某 府君之墓 今爲 孫 某官 營建宅兆 謹以 酒果 用伸虔告 謹告
(유세차 간지 00월간지삭 00일간지 아무개 감소고우
현 모친모 부군지묘 금위 손 모관 영건택조 근이 주과 용신건고 근고) * 모친모란 선영 윗분과의 관계를 말 함.(예 : 18대조고) * 정성 虔
(뜻)
유세차 아무해 아무달 아무날 아무개는 감히 고합니다.
현 몇 대조 무슨 벼슬을 한 아무개공 부군 몇 대손 아무개의 묘를 만들고자 합니다. 정성을 다하여 삼가 술과 과일을 올리면서 고합니다.
4. 성분(成墳) 후 고묘축(告墓祝)
維歲次 干支 00月干支朔 00日干支 孝子 아무개 敢昭告于
顯考 00 府君之墓 營建宅兆 事畢封塋 伏惟尊靈 永安體魄
(유세차 간지 00월간지삭 00일간지 효자 아무개 감소고우
현고 00 부군지묘 영건택조 사필봉영 복유존령 영안체백)
(뜻)
유세차 아무해 아무달 아무날 아들 아무개는 감히 고합니다.
아버님 묘를 만들었사오니 엎드려 생각하건대 높으신 영령께서는
육체와 혼령이 영원히 편안하시기를 빕니다.
5. 소상축(小祥祝, 3虞祭祝, 49祭祝, 百日祭祝, 大祥祝)
維歲次 干支 00月干支朔 00日干支 孝子 아무개 敢昭告于
顯考 00 府君 日月不居 奄及小祥(또는 大祥, 49日, 百日, 三虞) 夙興夜處 哀慕不寧 謹以 淸酌庶羞 哀薦常事 尙 饗
(유세차 간지 00월간지삭 00일간지 효자 아무개 감소고우
현고 00 부군 일월불거 엄급소상(또는 대상 49일, 100일) 숙흥야처 애모불령 근이 청작서수 애천상사 상 향)
* 위 글에서 엄급소상 언급대상, 언급49일, 언급백일로 대입(代入)
(뜻)
유세차 아무해 아무달 아무날 아들 아무개는 감히 고합니다.
세월이 흘러 어언간 아버지 돌아가신지 1주기(또는 2주기, 49일,100일)가 돌아오니 영원토록 애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여 삼가 맑은 술과 여러 음식을 갖추고 슬픔을 다하여 올리오니 흠향 하소서.
6. 개장(改葬) 전 산신축(山神祝)-향은 안 피우고 단잔.
維歲次 干支(무슨해) 0月 干支(당월 초하루 간지)朔 0日干支 아무개 (제주)敢昭告于
土地之神 今爲 아무개(망인) 宅兆不利 將改葬 于此 神其保佑 俾無後艱 謹以 淸酌 脯醢(또는 果) 祗薦于神 尙 饗
(維歲次 干支(무슨해) 0月 干支(당월 초하루 간지)朔 0日干支 아무개 (제주)敢昭告于
토지지신 금위 아무개(망인)택조불리 장개장 우차 신기보우 비무후간
근이 청작 포해(또는 과) 지천우신 상 향
(뜻)
유세차 아무해 아무달 아무날에 아무개가 감이 고합니다.
토지지신이시여 이제 아무벼슬한 아무개공의 무덤이 불리해서 장차 개장하려고 합니다. 신께서 보우하사 뒤에 근심이 없도록 하소서. 삼가 맑은 술과 포(과)로서 공경하여 천신하오니 흠향 하소서.
7. 개장(改葬) 후 묘제축(墓祭祝)
維歲次 干支 00月干支朔 00日干支 孝子 아무개 敢昭告于
顯考 00 府君之墓 新改幽宅 事畢封塋 伏惟尊靈 永安體魄
(유세차 간지 00월간지삭 00일간지 효자 아무개 감소고우
현고 00 부군지묘 영건택조 사필봉영 복유존령 영안체백)
(뜻)
유세차 아무해 아무달 아무날 아들 아무개는 감히 고합니다.
아버님 묘를 새로 만들었사오니 엎드려 생각하건대 높으신 영령께서는 육체와 혼령이 영원히 편안하시기를 빕니다.
8. 개사초(改莎草) 전 산신축(山神祝)- 향은 안 피우고 단잔.
維歲次 干支 00月干支朔 00日干支 아무개 敢昭告于
土地之神 今爲 某官某公 塚宅崩頹 將加修治 神其保佑 俾無後艱 謹以 酒果 祗薦于神 尙 饗
{유세차 간지(무슨해) 0월 간지(당월 초하루 간지)삭 0일간지 아무개 (제주)감소고우
토지지신 금위 모관모공 총택붕퇴 장가수치 신기보우 비무후간 근이
주과 지천우신 상 향)
(뜻)
유세차 아무해 아무달 아무날에 아무개가 감이 고합니다.
토지지신이시여 이제 아무벼슬한 아무개공의 무덤이 허물어져 수리코자 합니다. 신께서 보우하사 뒤에 근심이 없도록 하소서. 삼가 맑은 술과 포(과)로서 공경하여 천신하오니 흠향 하소서.
9. 개사초(改莎草) 전 묘제축(墓祭祝)
維歲次 干支 00月干支朔 00日干支 孝子 아무개 敢昭告于
顯考某官府君 之墓 伏以 封築不謹 歲久土圮 將加修葺 伏惟尊靈 勿震 勿驚 謹以 酒果 用伸虔告 謹告
(유세차 간지 00월간지삭 00일간지 효자 아무개 감소고우
현고모관부군 지묘 복이 봉축불근 세구토비 장가수즙 복유존령 물진물경 근이 주과 용신건고 근고)
(뜻)
유세차 아무해 아무날 아무일 효자 아무개는 감히 밝게 고합니다.
아버님 묘소는 봉분을 살피지 못하여 세월이 오래 되니 흙이 무너졌 으므로 수리하여 떼를 더하고자 하오니 존령께서는 진동하거나 놀라 지 마소서. 삼가 주과를 공경히 펴 놓고 고하나이다.
* 무너질 圮(비). 지붕 이을 葺(즙)
10. 개사초(改莎草) 후 묘제축(墓祭祝)
維歲次 干支 00月干支朔 00日干支 孝子 아무개 敢昭告于
顯考某官府君 旣封旣莎 舊宅惟新 伏惟尊靈 永世是寧
(유세차 간지 00월간지삭 00일간지 효자 아무개 감소고우
현고모관부군 기봉기사 구택유신 복유존령 영세시령)
(뜻)
유세차 아무해 아무날 아무일 효자 아무개는 감히 밝게 고합니다.
아버님 묘소에 봉분을 더하고 떼를 더하여 옛집이 새집이 되었습니 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이에 존령께서는 영세도록 편안하소서.
11. 석물(石物) 설치 전 산신축(山神祝) - 향은 안 피우고 단잔.
維歲次 干支 00月干支朔 00日干支 아무개 敢昭告于
土地之神 今爲 某官 某公 墓儀未具 玆將石物 用衛墓道 神其保佑 俾無 後艱 謹以 酒果 用伸虔告 謹告
[참고] 墓表를 세울 때에는 用衛墓道 대신 用表墓道라 하고 석물의 종류에 따라 今具石物을 今具床石, 今具望柱, 今具石人으로 표시함.
(유세차 간지 00월간지삭 00일간지 아무개 감소고우
토지지신 금위 모관 모공 묘의미구 자장석물 용위묘도 신기보우 비무 후간 근이 주과 용신건고 근고)
(뜻)
유세차 아무해 아무날 아무일 효자 아무개는 감히 밝게 고합니다.
토지지신이여 오늘 무슨 벼슬을 지낸 아무개공의 묘에 석의를 갖추지 못하였다가 석물을 갖추고자하오니 신께서 후환이 없도록 그를 보호해 주십시오. 삼가 주과를 정성 것 펴 놓고 고하나이다.
12. 석물 설치 후 고유축(告諭祝)
維歲次 干支 00月干支朔 00日干支 孝子 아무개 敢昭告于
顯考某官府君之墓 伏以 今具石物 用衛墓道 伏惟尊靈 是憑是安
[참고] 墓表를 세울 때에는 用衛墓道 대신 用表墓道라 하고 석물의 종류에 따라 今具石物을 今具床石, 今具望柱, 今具石人 등으로 표시함.
(유세차 간지 00월간지삭 00일간지 아무개 감소고우
현고모관부군지묘 복이 금구석물 용위구도 복유존령 시빙시안)
(뜻)
유세차 아무해 아무날 아무일 효자 아무개는 감히 밝게 고합니다.
아무 벼슬을 한 아버님 묘소에 이제 석물을 설치하여 묘도를 호위케 하였사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존령께서는 여기에 의지하고 따라 편안하옵소서.
13. 시제(時祭) 산신축(山神祝)
* 토지지신은 음(陰)이므로 불(陽)과 상극이므로 향을 피우지 않는다.
維歲次 干支 00月干支朔 00日干支 幼學 아무개 敢昭告于
土地之神 某官某公 恭修歲事于 顯 몇 代祖考 某官府君之墓 惟時保佑 實賴神休 敢以 酒果饌 敬伸奠獻 尙 饗
(유세차 간지 00월간지삭 00일간지 아무개 감소고우
토지지신 모관모공 공수세사우 현 몇 대조고 모관부군지묘 유시보우 실뢰신휴 감이 주과찬 경신전헌 상 향)
(뜻)
유세차 아무해 아무날 아무일 유학 아무개는 감히 밝게 고합니다.
토지지신이여 오늘 무슨 벼슬을 지낸 아무개공이 해마다 올리는 제사를 공경을 다해 받들어 올립니다. 현 몇 대조 할아버지의 묘(묘가 여러 기 일 때에는 외 몇 위라 함)를 천신께서 보호해주시고 신령님의 은혜를 받아 왔기에 감히 술과 과일로써 차려 공경히 올리오니 흠향 하소서.
(현대식 토지지신 축문예)
유세차 병술(2006년) 시월 갑인삭 십일 계해 일에 유학 아무개 고합니다.
오늘 아무개의 몇 대조 할아버지와 할머님 그리고 그밖에 몇 분의 묘소에 시향을 올리기에 앞서 토지지신께 그동안 보우해주신데 대하여 감사드리며 술과 과일을 올려 천신하오니 흠향 하소서.
14. 시향축(時享祝)
維歲次 干支 00月干支朔 00日干支 무슨 벼슬을 한 몇 代孫
敢昭告于
顯 몇 代祖考 某官 某公 府君
顯 몇 代祖妣 00(품계) 00(본관)氏 之墓
氣序流易 霜露旣降 {今次(以)草木 歸根之時} 瞻掃封塋 不勝感慕
謹以 淸酌庶羞 祗薦歲事 尙 饗
(유세차 간지 00월간지삭 00일간지 무슨 벼슬을 한 몇 대손
감소고우
현 몇 대조고 모관 모공 부군
현 몇 대조비 00(품계) 00(본관)씨 지묘
기서유역 상로기강 {또는 금차(이)초목 귀근지시} 첨소봉영 불승감모
근이 청작서수 지천세사 상 향
(뜻)
유세차 아무해 아무날 아무일 무슨 벼슬을 한 몇 대손 아무개는 감히 밝게 고합니다.
무슨 벼슬을 한 몇 대조 할아버님과
몇 대조 00(본관)씨 할머님 묘 앞에 서니 절기가 바뀌어 벌써 찬 서리가 봉분에 내렸습니다. (또는 절기가 바뀌어 이제 초목의 기운이 뿌리로 돌아가는 시기에) 산소를 깨끗이 하고 쓰다듬으니 사모하는 마음 그지없습니다.
삼가 맑은 술과 여러 음식을 차려 세사로 공경스럽게 올리오니 흠향 하소서.
[추가 1] 재산 상속법의 변천과정
1. 1959.12.31 이전
-호주사망 시는 호주상속인이 재산 전부를 단독 상속한다.
-호주 아닌 가족 사망 시는 직계비속(출가한 여자 제외)이 균등하게 공동 상속한다. * 직계비속-아들. 딸, 손자, 손녀, 증손.
2. 1960. 1. 1 이후 1978. 12. 31까지
-호주 상속인 1.5, 동일가적내(출가전) 여자 0.5, 출가녀와
분가녀 각 0.25, 기타 상속인은 1의 비율로 상속 한다.
-처는 직계비속(자식)과 공동 상속 시는 0.5, 직계존속(부모)과 공동 상속자는 1의 비율로 한다.
3. 1979. 1. 1 이후 1990. 12. 31까지
- 장남 1.5, 출가녀 0.25, 기타 자녀 1, 처 1.5의 비율로 상속한다.
- 처는 1.5의 비율로 상속한다.
4. 1991. 1. 1 이후
사망자의 배우자에 한하여 1.5의 비율을 배정하고 나머지 자식들은 아들 딸 출가녀에 상관없이 각 1의 비율로 한다.
(배우자가 사망자의 부모와 같이 받는 경우에도 1.5로 한다.)
<계산 방법>
상속 받는 비율의 합계를 분모(分母)로 하고 상속받는 비율을 분자(分子)로 하되 소수점을 정수로 고쳐서 표시한다.
예를 들면 배우자, 아들 2, 미혼 딸 1, 출가한 딸 1 등 모두 5인이라면 그 비율의 합계는 5.5이다.(배우자 1.5+아들 2+딸 2). 따라서 배우자는 1.5/5.5인데 소수점을 정수로 고치면 3/11이고 나머지는 모두 2/11이 된다.
[추가 2] 고려 건국 전후의 역사
(태사공 시대 배경)
① 신라 말기의 민중봉기
신라(B.C 57 건국-A.D 935 멸망) 중기 이후인 819년부터는 전국 거의 모든 지역에서 농민의 반란이 일어났고 825년에는 고달산 농민들이 신라 왕실에 반기를 든 김헌창 세력과 함께 한산주(현 경기 광주)를 공격했다.
② 견훤(甄萱)의 후백제(892-936)
서기 867년 경북 상주 가은(현 문경)에서 농민의 아들로 출생, 신라의 군인인 비장이 되었다가 25세 때인 892년 완산주에서 반란을 일으켜 무진주(현 광주)를 쳐서 스스로 왕이 되었으며 8년 뒤인 900년 완산주(현 전주)를 서울로 삼고 “의자왕의 원수를 갚겠다”고 왕위에 올라 후백제라 칭하였다. * 936년 후백제 멸망
③ 궁예(弓裔)의 후고구려(901 건국-918 멸망)
궁예는 신라 왕실의 권력 다툼에서 밀려난 인물로 신라 제47대 헌안왕(857-861)과 후궁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전한다. 혹은 48대 경문왕의 아들이라고도 전한다. 개풍 흥교사(혹은 개성 세달사) 중이 되었다가 진성여왕 5년 891년 안성 죽산에 세력을 떨치던 기 헌을 찾아 갔다가 홀대하자 부하를 이끌고 북원(현 원주)의 양 길 휘하로 들어가 894년 에는 명주(현 강릉)을 점령한 후 양 길에서 독립, 철원을 거점으로 895년 에는 국가 체제를 갖추기 시작했고, 896년 송악의 실력자 왕 융과 왕 건 부자가 귀순하자 2년 후 거점을 송악으로 옮겼으며 이듬해 양 길과 싸워 이기면서 충청, 황해, 강원지방을 장악하고 901년 후고구려를 세웠다. 903년에는 왕 건으로 하여금 후백제의 후방인 금성(현 나주)를 쳐서 점령하였다.
국호를 마진(摩震)이라 고치고 905년 다시 도읍을 철원으로 옮겼으며 911년에는 국호를 태봉(泰封)으로 바꿨다.
* 906년 왕 건이 상주에서 견훤과 싸워 이기고, 910년 나주 포구에서 견훤을 격파했다.
④ 왕 건(王建)의 고려(918-1392) 건국
877년 송악의 호족인 왕 륭(王隆)의 아들로 태어나 17세 때 도선대사에게 군대를 지휘하고 진을 치는 법, 유리한 지형을 선택하고 적당한 시기를 택하는 법, 산천의 형세를 보고 이치를 헤아리는 법 등을 배웠다고 전한다. 896년 궁예에게 들어가 전공을 세우면서 따르는 자가 많았고, 금성을 점령한 후 더욱 위치가 확고해졌다.
913년 파진찬 겸 시중이 되었으나 궁예가 날로 성격이 포악해져 위험을 느끼고 변방을 간청, 수군을 맡아 후백제의 압박을 물리쳤으나 다시 불러들여 죽이려다가 최 응의 기지로 살아났다.
궁예는 915년 왕비 강(康)씨가 충언을 하자 두 아들과 함께 죽였고 수 많은 부하를 죽였다고 한다.
그러던 차에 홍 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 등 4인방의 모반으로 도망치다가 배가 고파 보리 이삭을 잘라 먹다가 평강에서 민간인에 의해 살해되었고 918년 6월 왕 건이 등극, 국호를 고려로 하였다.
고려 건국 4일만에 건국에 참여했던 마군장군 황선길이 부하 50여명과 함께 반란을 일으켜 내전 회의장에 침입했으나 태연자약하자 복병이 있는 줄 알고 도망가다가 근위병에게 잡혀 죽었다.
* 왕 건은 지방호족과 혈연을 가지려고 왕비를 29명 두었고 자녀는 25남 9녀를 두었는데 첫째 부인 유천궁의 딸 신혜왕후에게는 손이 없고 둘째 부인 오다련의 딸 장화왕후의 아들이 2대 혜종이며, 충주 유긍달의 딸 유(劉)씨가 5남 2녀를 두었는데 장남이 3대 정종이며, 차남이 4대 광종이고, 5대 경종은 광종과 왕 건의 넷째 부인 황보씨의 딸사이에서 출생한 주(이름: 伷)이다.
⑤ 후백제의 멸망과 삼국통일
916년 후백제가 신라 대야성을 침공했으며 927년 9월 경주에 침입, 경애왕을 죽이고 김 부를 세우자 왕건이 직접 도우려고 내려가다가 공산(현 팔공산)에서 퇴각하던 견훤 군과 접전 끝에 대패하고 신숭겸이 전사 하였다. * 같은 무렵인 926년 발해가 요(거란)에 멸망.
견훤은 928년 이후 고려와 수년간 접전하였으며 935년 사남 금강에게 왕위를 물려주려다가 장남 신검(神劍)에 금산사에 유폐되었다가 탈출하여 왕 건에게 갔고 왕 건은 이듬해 후백제를 멸망시켰다.
935년 11월 신라 경순왕이 고려에 투항하여 삼국이 통일되었다.
[참고문헌]
1.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한국정신문화연구원) 2. 고려왕조실록(들녁) 3. 신구관혼상제(태서출판사) 4. 생거지풍수건축여행(기문당) 5. 풍수지리(송원문화사) 6. 생활풍수(무한) 7. 신가정의례백과(가원) 8. 풍수비결(생활문화사) 9. 윤리도덕교본(조준하편) 10. 대방세가언행록(교문사) 11. 남원윤씨대동보(2000년판 대종회) 12. 파평윤씨역사요람(파평윤씨대종회) 13. 남원윤씨판관공파파보(2000년판 판관공파종회) 14.세계사(실천문화사) 15. 남원윤씨세고(효문공종중) 16. 김포금석문대관(김포문화원) 16. 삼학사유관자료집Ⅰ(사단법인요령발해대학후원회)
[편집] 종회 고문 ・ 정헌공파 회장 尹 元 鎬
[발행일] 2007년 4월 1일
[수정판] 2007년 8월 1일
[발행처]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성사동 7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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