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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까지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자급자족이 가능했다. 19세기는 유럽의 제국주의 국가들이 식민지 쟁탈전을 벌이며 지구상 곳곳을 군함을 파견하던 때이기도 하다. 식민지 쟁탈전은, 유럽 국가간의 전쟁을 스포츠로 생각했던 유럽왕들의 시선을 제 3세계로 돌리게했던 매력적인 것이었다. 유럽 각국은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대륙에 넘쳐나는 식민지를 두고 서로 싸울 필요조차 없었다. 또, 그 많은 식민지를 한꺼번에 도둑질 할 능력(군대)을 가질 수도 없었기에, 각국은 협약에 의해 나누어 가지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19세기는 유럽 각국이 식민지 전쟁이외에 커다란 전쟁이 없었던 유일한 시기이기도 했다. 또한, 19세기는 유럽의 자본주의가 어느 정도 완성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 유럽 각국의 얄팍한 평화는 오래가지 못했다. 자본주의의 폐악이 각국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그것이 국가간의 갈등으로 번졌다. 19세기 식민지 쟁탈전에 미국과 일본이 끼여들지 못한 것은, 미국은 인디언으로부터 빼앗은 드넒은 신대륙을 관리하기도 벅찼던 것이다. 일본은 1860년대 메이지유신을 통해 유럽의 제국주의를 모방하느라 정신이 없을 때이기도 했다. 그러나, 미국은 인디언들을 완전히 몰아내면서, 일본은 겨우 메이지유신을 완성을 하고 숨돌릴 틈도 없이 제국주의 땅따먹기에 19세기가 끝날 즈음에 겨우 뛰어들게 된 것이다.
그 결과, 미국과 일본은 데프트 가쓰라 비밀협약을 통해 일본은 조선을 미국은 필리핀을 차지 하여 겨우 자존심을 회복할 수 있었다.
20세기에 들어와 유럽은 제국주의 선두주자였던 영국과 프랑스등의 나라들과 후발주자였던 독일 이탈리아 등의 국가간의 갈등이 일어나게 되었다.
그것은 산업화의 발전 단계에 따라 일어나는 자연스런 현상이었다. 산업화가 제국주의를 통해 도둑질한 착취물의 양에 따라 각국의 경제력의 차이는 엄청나게 되었고 그것이 각국의 정치 질서를 변하게 하는 요인이 되게 되었다. 그리하여 독일과 이탈리아는 시장과 대의민주주의 두개를 때려잡는 파시즘으로 변질되게 되었고, 러시아가 마지막에 산업화의 대열에 뛰어들어 맑스의 의도와는 전혀 다르게 영국이 아닌 농업국가 러시아에서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났던 것이다.
한반도가 일제의 식민지가 된 원인은 단 한가지 뿐이었다. 제국주의를 모방의 속도였던 것이다. 뒤늦게 깨달은 고종이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스스로 광무황제로 등극하지만 때는 이미 늦었던 것이다. 아마, 메이지유신 보다 40년이나 빨랐던 효명세자의 개혁이 성공했더라면 조선은 일본보다 먼저 제국주의 대열에 동참했을 지도 모르겠다.
효명세자가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조선은 제대로 된 왕의 승계가 일어나지 못하여 어거지 족보로 만들어 힘 없는 왕족의 아이들을 양자로 받아들여 허수아비 왕으로 세우지만, 대비들의 수렴청정으로 외척이 득세하는 세도정치에 의해 왕권이 위축되고 고종에 이르러서 겨우 왕이 직접 정치를 하게 되었으나 고종과 대원군과 며느리의 엇박자에 의해 정국를 제대로 읽을 수가 없었다.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온 일본은 기가 막힌 외교술을 발휘하여 영국을 등에 업고 청일 전쟁을 성공시키고 미국을 등에 업고 러일전쟁에 승리하여 조선을 독차지 할 수 있었던 것이다.
1,2 차 대전을 통하여 제국주의 국가들은 뼈 아픈 교훈 두 가지를 얻었다. 하나는, 식량의 자급자족이었다. 공업화에 몰두하여 상품을 수출하는 것에 역점을 두고 농산물은 수입하면 된다는 안이한 생각이, 전쟁을 통하여 무역이 중단이 되자, 특히 농토가 작아 농산물을 수입하던 후발 산업주의 국가 독일과 이탈이아에서는 식료품 값이 천정부지로 올랐다. 인플레가 일어나 원인은 물론 식료품의 품귀현상도 있었지만, 그 보다 무역의 결제 수단이었던 환율의 불균형 또한 한 몫을 했다.
또 하나는, 전쟁의 원인이 되기도 했고 전쟁 후 인플레이션의 단서이기 했던 무역 불균형과 환율은 무엇인가 공통의 화폐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그것이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 브래튼우즈에 모인 각국은 드디어 달러를 세계 주축 통화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던 것이다. 그것이 오늘날 미국 주도하의 세계 경제로 재편 될 수 있던 이유였다.
또한, 세계 대전을 통해 농업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낀 제국주의 국가들은 농업을 보호하고 식량 자급율을 어느 정도 확보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산업화에 성공한 제국주의 국가들은 공업화로 농업이 위축되었으나 그들의 식민지였던 제 3세계 국가들은 농업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대전이 끝나고 식민지에서 독립을 하게 되지만, 일부 국가를 제외하고는 굶주림에 허덕이는 나라가 생겨나게 되는 것은 아이러니 한 일이었다. 그런데, 기아의 속도는 선진 복지국가로 탈바꿈한 제국주의 국가 주도의 무역이 증가 속도와 비례한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선진국을 모방하여 뒤늦게 산업화에 성공하고 무역 전쟁에 뛰어든 한국을 비롯한 나라들은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뼈아프게 후회하는 농업 경시 정책을 본 받아 식량자급율이 세계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의 산업화는 제 3세계 국가들만 착취한 것이 아니었다. 국내에서도 역시 비슷한 일들이 벌어졌다.
16세기부터 영국 농촌에 불어닥쳤던 종획운동(인클로저)도 지금으로 말하자면 농업을 산업화시키자는 소위 최첨단 농촌개량사업에서 시작되었다. 소규모 농토에 작물을 키우는 것보다는 대규모 초지에 양을 대량 사육하는 것이 지역경제뿐 아니라 국가경제에도 훨씬 더 이익이었다. 다시 말해 인클로저는 토지에서 더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추진된 현대적 의미의 용도변경 사업인 셈이다.
그런데 영국 역사에서 ‘빈곤’이 본격적인 사회문제로 대두된 것도 바로 영국 의회가 이런 인클로저를 전국적인 규모로 확대했던 18세기부터였다. 특히 산업혁명 시기의 인클로저는 횟수뿐 아니라 규모에서도 전례가 없었다. 그 결과 그동안 영국 농촌을 지탱해 왔던 자작농들은 대부분 사라지고, 농부들은 임금농업노동자가 되거나 노동력이 부족한 산업도시의 공장노동자가 되었다. 바로 프롤레타리아의 등장이었다. 어디에 살든 임금노동자로 전락한 이들의 삶은 ‘개선’과는 거리가 멀었다. 대부분 비정규직이었고, 임금은 터무니없이 낮았다. 당시 영국은 무역과 산업기술의 놀라운 발전으로 전대미문의 국부로 흥청거리고 있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전대미문의 규모로 빈곤층이 빠르게 늘어났던 것이다.
맬서스 같은 진보주의자들은 무역이 흥성하는데도 빈곤이 증대하는 이유로 인구의 기하급수적인 증가 법칙 외에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 벤담 같은 공리주의자들도 증가하던 빈민들의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원형감시체계(파놉티콘)가 달린 노역소를 구상했을 뿐이다. 지금으로 말하자면 이들은 인류 역사상 처음 등장한 ‘근로빈곤층’(working poor)이었지만 왜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추진한 토지의 상품화가 엄청난 풍요와 함께 극도의 빈곤을 초래했는지 도무지 설명할 길이 없었다.
인클로저와 성공적인 산업혁명으로 세계 최초의 자본주의 국가가 된 영국은 눈부신 번영과 동시에 최초의 현대화된 빈곤을 경험했다. 빈곤층의 분노와 규모에 놀란 나머지 의회는 각 교구를 중심으로 최저생계비를 현금으로 보조하는 유럽 복지법의 원조였던 스피넘랜드 법과 넘쳐나는 실업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집단노역소를 운영했지만 대부분의 농부와 노동자들은 구빈원에 들어가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다. 그것은 이 제도가 인간의 자존심과 영혼을 무시한 자본주의 방식의 기계적인 구걸이자 자선이었기 때문이다. 곧 영국이 최초로 경험한 경제적 번영은 새로운 방식으로 빈곤을 만들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풍요였으며, 그 결과 영국 민중들에게는 오직 먹고살기 위해서만 일하는 지옥 같은 헐벗은 삶이 시작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일부 학자들은 영국의 종획운동을 자본주의 시작점으로 보기도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콜롬부스의 신대륙 발견을 자본주의의 시작이라 본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 제국주의 각국들의 산업화는 국내적으로 문제를 일으키기 했지만, 그 보다 더 커다란 해악이 식민지에서 벌어졌던 것이다. 그것은 단순한 경제적 수탈만의 문제 보다도 훨씬 엄청난 일이었다.
1만6천 년 전부터 아메리카 대륙에 살아왔던 인디언은 약 7천 년 전부터 지역별 특성을 반영한 생활방식을 정립했다. 인디언에게는 약 170가지가 넘는 언어가 다양한 문화와 함께 존재했다. “작고 평등하며 자율적인 공동체에서 더욱 복잡한 경제구조의 집중화된 정치집단으로 변모했다.” 유럽인들이 이 대륙에 왔을 때는 현재의 조지아와 플로리다주의 크리크 연방, 남북 캐롤라이나의 체로키 민족과 초크토 민족 연방, 세인트로렌스강 유역의 호데노소니 연방, 그 이웃인 휴런 연방, 뉴잉글랜드의 페나쿠크 연방 등이 있었다. 이 중에서 미국의 식민지 시절과 독립 당시 백인들과 가장 활발한 접촉을 하며, 영국과 프랑스 전쟁, 미국 독립전쟁에서도 한 변수였던 호데노소니 연방의 사회체제와 그 민주주의는 인디언들이 꾸려왔던 고도의 민주주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미국 독립 이전 영국 영토와 프랑스 영토 사이에 있던 호데노소니 연방은 콜럼버스 도착 전후 200년간 리오그란데강 이북 최대의 정치조직이었다. 이 연방을 이루는 세네카, 카유가, 오논다가, 오네이다, 모호크라는 다섯 민족은 1142년 연방을 수립했다. 이들 민족의 폭력적 분쟁이 끊이지 않자 데가나위다라는 전설적 인물은 다섯 민족 지도자를 모아 “평화, 동포애, 단결, 권력의 균형, 모든 사람의 자연권, 자원의 공유 그리고 지도자의 탄핵과 해임 절차 등을 상세히 규정한 117개 조항의 ‘가이라네레코와’(위대한 평화의 법)를 제정”한다. 그들의 이 헌법에 따라 “폭력 행사의 정당성 독점은 씨족에서 연방에게 옮겨졌다. …개인의 자유를 중시한 호데노소니에서는 공적 권위에 대해 필요 이상의 거대한 힘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로쿼이 연방으로도 불리는 호데노소니 연방은 뉴잉글랜드에서 미시시피강 유역에 이르는 영토를 지배했다. 여러 민족이 하나의 정부를 구성하는 연방정치 형태는 유럽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이어서 유럽인의 호기심 대상이었다”.
연방의 기본 구조는 연방 밑에 민족, 씨족으로 구성됐다. 연방은 전쟁과 평화 및 조약 체결과 같은 대외 문제만 관장하고, 각 민족의 민족장도 그 민족과 타민족 사이의 문제에만 관여했다. 이른바 내치는 씨족의 전권 사항이었다. 호데노소니는 모계사회로 어머니와 그 자녀들로 가족을 구성했다. 몇몇 가족은 오티아너라는 큰 집단에 속했고, 오티아너가 모여 씨족을 형성했다. 이런 모계제에서 씨족 어머니(이들을 오티아니라고도 불렀다)를 우두머리로 하는 결속력 강한 정치집단을 형성했다. 여성의 투표로 결정되는 씨족 어머니는 남성 사절을 대표로 임명하고, 그 남성이 씨족을 대표해 민족회의에 참가했다. 12씨족이 한 마을을 이루고, 마을이 모여 민족을 형성했다. 마을회의, 민족회의, 연방회의가 각 단위 통치기구다. 이는 미국 독립 전의 마을회의(town meeting)와 주의회와 연방의회의 모태가 됐다.
여성은 지도자인 남성을 지명하거나 파면하고, 전쟁에 대한 동의를 했다. 민족장은 씨족 어머니들이 임명했다. 민족장의 자격, 권리와 의무는 엄격하게 정해졌다. 민족장은 권력이 없는 우두머리였다. 이런 민족장은 인디언 아나키 민주주의의 본질을 잘 보여준다. 민족장은 평화의 유지자·중재자, 집단의 조정자로, 이는 전시와 평시의 권력 분화로 나타났다. 평시 민족장과 전시 민족장이 따로 있었다. 민족장에게는 물질적 보상이 없었고, 오히려 구성원들에게 물질적 요구를 들어주는 관대함이 있어야 했다. 말을 잘해야 했다. “국가가 형성된 사회에서 말하는 것은 권력이 지닌 권리인 데 반해, 국가 없는 사회에서는 말하기가 권력의 의무다.” 그는 매일 교훈적인 말로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훈계해야 했다. 우리에게 알려진 이른바 ‘인디언 추장들의 교훈적 말’은 그들의 의무였다.
연방은 각 민족 대표 8~15명씩, 모두 50명으로 구성된 연방회의를 두었다. 만장일치제여서, 각 민족의 대표 수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연방회의에는 대표들뿐만 아니라 일반 남성, 씨족 어머니, 여성, 아이 등 성별·연령 불문으로 참가할 수 있다. 서로 존중하고, 공정한 결과를 위한 복잡한 회의 절차도 상론할 가치가 충분하나, 발표자를 존중하고, 이야기를 중단시키는 것을 엄단한 데서 잘 드러난다. 의원이나 내각 구성원이 말할 때 야유와 칭찬을 보내는 유럽 의회와 달리 미국 의회가 발표자의 발표 때 경청하는 제도는 여기서 연유한다.
회의가 결렬될 위협을 받으면 민족장들은 그 문제를 민중의 결정에 위임해야 했다. 이는 미국의 몇 주가 채택한 주민발의권의 모태가 됐다. 또 민중은 탄핵 심의나 반역 고소의 발의 외에, 특정 문제에 대한 민의를 연방회의에 직접 호소할 수 있었다.
한탕주의자 콜럼버스의 인디언에 대한 배신은 평화주의자 인디언 사회의 아나키 민주주의 공동체를 말살하였다. 뿐만아니라 인디언 사회를 닮은 제 3세계 국가들의 아나키 사회는 세계 곳곳에 살아있었다. 중국의 오지 부족들, 아프리카 아메리카 부족들 그리고 러시아 농촌 공동체 미르, 유럽인들보다 훨씬 앞선 문명국가들이었던 잉카와 아즈택 문명들, 알래스카의 원주민들....이런 사회들은 우리가 역사에서 배웠던 중세 봉권국가 로마제국 보다 훨씬 더 앞서있고 평등한 사회였다.
아니, 중세 봉건국가 안의 시골영주의 장원에서 조차 농노들 스스로 결정하고 경작하던 공유지가 있었던 것이다.
아나키 사회의 구성원들은 富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그래서, 식민지를 건설하고 현대 산업농과 기업농, 다국적 기업의 모태가 되었던 플렌테이션 농업을 하기 위한 노동자를 식민지 사람들에게 구하기 위해서는 돈을 아무리 주어보았자 헛수고였다. 그래서 제국주의가 선택한 것이 그들의 공동체 방식을 파괴하는 일이었다.
현대 자본주의의 화두가 된 부와 빈곤의 개념은, 빈곤을 타파하자고 부르짖는 것은, 전 세계의 자본주의 국가들 스스로가 만든 것이다. 이런 무개념이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런 바보 같은 짓이 어디 있단 말인가.
세계 자유무역과 자유시장을 하늘 같이 섬기는 한국의 뉴라이트들은 일제 강점기를 한국 역사의 근대화로 여긴다. 그들의 그러한 의식에 민족주의자들은 기가 막힌 듯 놀란다. 그런데, 가만히 민족이라는 개념을 내던진다면, 뉴라이트들의 말에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 왜냐하면, 봉건사회에서 현대사회로 넘어가는 그 시점에 일제 강점기가 있기도 하고, 그 시기가 제국주의 국가들이 맹위를 떨치다가 나락으로 떨어진 시기와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의 시각은 민족주의자(국가주의자)들 만큼이나 협소하다. 뉴라이트들의 역사에 대한 시선은 서양에 머믈러 있고 민족주의자들의 시선은 피해자의 자격지심에 머믈러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가해자 피해자의 위치만 다를 뿐이지, 역사를 보는 관점은 권력이라는 한곳을 응시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한국 근대화의 시기는 박정희 군사정부이다. 그 시기는 농촌이 새마을 운동으로 산업농으로 전환하고 수출이 국가 경제의 모든 것이었기 때문이다. 새마을 운동은 영국의 종획운동과 너무나 흡사하고 무역이 자본주의 경제적 밑바탕이기 때문이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국이 주도가 된 경제 질서는 전쟁을 없애는 것이 주요 임무였다. 전쟁은 제국주의 각국에 엄청난 손실을 가져다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계 대전이야말로 자본주의가 가지는 문제점(공황)을 일시에 해결했다는 것을 그들은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미국의 뉴딜정책만으로는 그 커다란 재난을 해결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오로지 전쟁만이 자본주의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것이다. 전쟁을 대신한 것이 국제연합 국제법 국가간 군사동맹 국제 사법재판소 등 정치적 기구들과 IMF 세계은행 무역결제 기준을 제시한 BIS 등 경제적 기구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오로지 미국이 중심이 된 선진국 위주의 제도일 뿐이다. 이 제도는 식민지 지배하는 노력과 경제력이 없어도 제 3세계를 착취할 수 있는 간편한 도구이고 합법적이고 효율적인 것이다. 이 체제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는 나라는 미국과 유럽국들은 가차없이 응징을 하게 된다. 석유로 풍요를 누리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나라들 중에 달러를 결제화폐를 사용하지 않은 나라들이 있는데, 이상하게도 그 나라들에 민중 봉기가 일어나고 미국이 전쟁을 벌인 나라들이다. 이란,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등.......
물론 북한도 미국이 손 보아야 할 나라 중에 하나지만, 나는 누구 보다도 굳게 믿고 있는 것이 있다. 만약, 북한 정권에 정권유지가 확실하게 보장이 되고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 토대를 미국이 마련해 준다면, 북한은 아마 세계에서 가장 친미적인 국가가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그래서 나는 종북의 주사파나 종미의 극우파를 같은 족속들이라 보고 있다.
노름을 좋아하고 평생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맑스와 휴머니스트 점잖은 영국 신사 아담 스미스는 자본주의를 합리적이고 과학적으로 분석을 하였다. 물론, 맑스는 부정의 눈으로 아담 스미스는 긍정의 눈으로 바라 보았지만, 합리성이라는 점에서는 같았다. 그것이 20세기 국가들이 사회주의와 자본주의 두 진영으로 나누게 된 원인이 되었지만, 그 시대의 천재였고 진보주의자였던 두 사람 역시 옹졸한 시선이었다. 그들은 한 곳에만 머물러 있었다. 그들은 그래서 그것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다고 여겼고 이론을 책으로 만들었다. 아담 스미스의 자본주의 시장의 자기 조정 능력과 비교우위론은 세계 대전으로 거짓임이 밝혀졌고, 맑스의 사회주의는 러시아 중국이 자본주의에 어느 국가 보다도 열을 올리고 있고 돈을 너무나 밝혀 인민들까지 혹사 시키는 북한을 보면 알 수가 있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富를 정당한 것이라고 보았던 것이다. 다만, 그것을 나누는 방식에 대한 차이였을 뿐이다. 그것을 법과 제도나 혹은 그것의 자유를 보장하는 것으로 대신하였을 뿐이다.
그들은 자본주의의 부가 폭력이었고 음모였고 사기였고 전쟁이었고, 평화로운 아나키 사회를 파괴한 장물임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를 분석한 책들은 모두 쓰레기통에 처넣어야 한다. 사회주의 역시 그렇다. 모든 것이 권력을 염두에 둔 과학적 사고 방식인 것이다.
인간 사회를 분석이 가능한 과학적 시선이야말로 손 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일과 같다.
나는,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설 수 있는 사회를 과거 전통의 아나키 사회에서 찾고자 한다. 특히, 인디언들의 아나키 민주주의는 미국 민주주의와 러시아 연방의 단서가 되기도 했다. 물론, 그것이 망가진 원인은 법과 제도로 무장한 권력이었지만 말이다. 아마, 인디언들의 민주주의를 그대로 모방하기만해도 상당한 진전이 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그리고 인민들 스스로 조직하고 살아가는 수 많은 공동체가 국가라는 틀 속에서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협동조합 운동, 지역화폐, 로칼푸드 운동 등등 지금도 지구 곳곳에 이러한 시도는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
그래서 아나키즘은 과거에서 배울 수 있는 미래사회의 대안일 수 있고 진보 운동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촉매제가 될 수 있고, 국가를 다시 보는 새로눈 시선일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사회가 안착 된다면, 이석기류, 국가 정보원 댓글, 검찰 총장 채동욱 사건 같은 일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아마, 미래의 사람들은 과거 한반도에 있었던 그런 웃기는 일을 역사 교과서에서 보았다면 배를 잡고 웃을 지도 모르겠다.
마지막으로, 진정한 평화주의자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을 올린다.
시애틀 인디언 추장의 연설문은(1854년)
미국대통령 피어스에 의해 파견된 백인 대표자들이
이 땅(오늘의 시애틀 지역)을 팔 것을 강압적으로 요구하자
그에 대한 답글인데 이 문건은 미국독립 200주년을 기념한 '古文書비밀해제'로
120년 만에 세상에 햇볕을 보게 되었다.
당시 피어스 대통령은 추장 시애틀의 편지에 감복한 나머지
이 지역을 '시애틀'이라고 명명했으니 캐나다 접경도시
태평양 연안 이곳이 바로 오늘날의 <시애틀 市>가 된 것이다.
[우리는 모두 형제들이다! ] - 시애틀 인디언 추장의 연설문(1854년)
나와 함께 온, 지금 당신들 앞에 서 있는
한 무리의 이 사람들은 나의 부족이며 나는 그들의 추장이다.
우리는 왜 이곳에 왔는가? 연어 떼를 구경하기 위해서이다.
올해의 첫 연어 떼가 강물로 거슬러 올라오는 것을 축하하기 위해 여기에 왔다.
연어는 우리의 주된 식량이기 때문에 연어 떼가 일찌감치 큰 무리를 지어
강의 위쪽으로 거슬러 오는 걸 보는 일만큼 우리에게 즐거운 일은 없다.
그 숫자를 보고서 우리는 다가오는 겨울에 식량이 풍부할 것인가를 미리 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이 더없이 기쁜 까닭은 그 때문이다.
수를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연어 떼가 햇살에 반짝이며 춤추는 것을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직접 보았다.
또 한 번의 행복한 겨울이 우리를 찾아올 것을 짐작한다.
우리가 무리를 이루어 몰려왔다고 해서
전투를 벌이려고 온 것으로 생각하지 말아달라.
나는 당신들이 우리의 땅에 온 것을 기쁘게 여기고 있다.
당신들과 우리는 모두가 이 대지의 아들들이며,
어느 한 사람 뜻 없이 만들어진 사람이 없다.
하지만 한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다.
당신들은 이 땅에 와서, 이 대지 위에 무엇을 세우고자 하는가?
어떤 꿈을 당신들의 아이들에게 들려주는가?
내가 보기에 당신들은 그저 땅을 파헤치고
건물을 세우고 나무들을 쓰러뜨릴 뿐이다. 그래서 행복한가?
연어 떼를 바라보며 다가올 겨울의 행복을 짐작하는 우리만큼 행복한 것인가?
워싱턴의 대추장(대통령)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왔다.
대추장은 우정과 선의의 말도 함께 보냈다.
그가 답례로 우리의 우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므로
이는 그로서는 친절한 일이다. 그의 부족은 숫자가 많다.
그들은 초원을 뒤덮은 풀과 같다. 하지만 나의 부족은 적다.
마치 폭풍이 휩쓸고 간 다음에 드문드문 서 있는 들판의 나무들과 같다.
백인 대추장은 우리의 땅을 사고 싶다는 제의를 하며 우리에게는 아무런 불편 없이
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그대들의 제안을 진지하게 고려해 볼 것이다.
우리가 땅을 팔지 않으면 백인이 총을 들고 와서 우리 땅을 빼앗을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대들은 어떻게 저 하늘이나 땅의 온기를 사고 팔 수 있는가?
우리로서는 이상한 생각이다.
공기의 신선함과 반짝이는 물은
우리가 소유하고 있지도 않은데 어떻게 그것들을 팔 수 있다는 말인가?
우리에게는 이 땅의 모든 부분이 거룩하다.
빛나는 솔잎, 모래 기슭, 어두운 숲 속 안개, 맑게 노래하는 온갖 벌레들,
이 모두가 우리의 기억과 경험 속에서는 신성한 것들이다.
나무 속에 흐르는 수액은 우리들 황색인(혹은 붉은 얼굴)의 기억을 실어 나른다.
백인은 죽어서 별들 사이를 거닐 적에 그들이 태어난 곳을 망각해 버리지만,
우리가 죽어서도 이 아름다운 땅을 결코 잊지 못하는 것은
이곳이 바로 우리 황색인들에겐 어머니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땅의 한 부분이고 땅은 우리의 한 부분이다.
향기로운 꽃은 우리의 형제자매이다. 사슴, 말, 큰 독수리, 이들은 우리의 형제들이다.
바위산 꼭대기, 풀잎의 수액, 조랑말과 인간의 체온 모두가 한 가족이다.
워싱턴 대추장이 우리 땅을 사고 싶다는 전갈을 보내온 것은
곧 우리의 아버지가 되고 우리는 그의 자식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안을 잘 고려해 보겠지만,
우리에게 있어 이 땅은 거룩한 것이기에 그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개울과 강을 흐르는 이 반짝이는 물은 그저 물이 아니라 우리 조상들의 피다.
만약 우리가 이 땅을 팔 경우에는 이 땅이 거룩한 것이라는 걸 기억해 달라.
거룩할 뿐만 아니라, 호수의 맑은 물 속에 비췬 신령스러운 모습들 하나 하나가
우리네 삶의 일들과 기억들을 이야기해 주고 있음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물결의 속삭임은 우리 아버지의 아버지가 내는 소리이다.
강은 우리의 형제이고 우리의 갈증을 풀어준다. 카누를 날라주고 자식들을 길러준다.
만약 우리가 땅을 팔게 되면 저 강들이 우리와 그대들의 형제임을 잊지 말고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형제들에게 하듯 강에게도 친절을 베풀어야 할 것이다.
아침 햇살 앞에서 산 안개가 달아나듯이 황색인은 백인 앞에서 언제나 뒤로 물러났지만
우리 조상들의 유골은 신성한 것이고 그들의 무덤은 거룩한 땅이다.
그러니 이 언덕, 이 나무, 이 땅의 흙은 우리에게 신성한 것이다.
백인은 우리의 방식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백인에게는 땅의 한 부분이 다른 부분과 똑같다.
그는 한밤중에 와서는 필요한 것을 빼앗아 가는 이방인이기 때문이다.
땅은 그들에게 형제가 아니라 적이며 그것을 다 정복했을 때 그는 또 다른 곳으로 나아간다.
백인은 거리낌 없이 아버지의 무덤을 내팽개치는가 하면 아이들에게서 땅을 빼앗고도 개의치 않는다.
아버지의 무덤과 아이들의 타고난 권리는 잊혀지고 만다.
백인은 어머니인 대지와 형제인 저 하늘을 마치 양이나 목걸이처럼
사고 약탈하고 팔 수 있는 것으로 대한다.
백인의 식욕은 땅을 삼켜 버리고 오직 사막만을 남겨놓을 것이다. 모를 일이다.
우리의 방식은 그대들과는 다르다.
그대들 도시의 모습은 황색인의 눈에 고통을 준다.
백인의 도시에는 조용한 곳이 없다.
봄날 잎새 날리는 소리나 벌레들의 날개 부딪치는 소리를 들을 곳이 없다.
나는 황색인이라서 이해할 수가 없다.
인디언은 연못 위를 쏜살같이 달려가는 부드러운 바람소리와
한낮의 비에 씻긴 바람이 머금은 소나무 내음을 사랑한다.
만물이 숨결을 나누고 있음으로 공기는 황색인에게 소중한 것이다.
짐승들, 나무들, 그리고 인간은 같은 숨결을 나누고 산다.
백인은 자기가 숨쉬는 공기를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여러 날 동안 죽어가고 있는 사람처럼 그들은 악취에 무감각하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그대들에게 땅을 팔게 되더라도
우리에게 공기가 소중하고, 또한 공기는 그것이 지탱해 주는 온갖 생명과 영기(靈氣)를
나누어 갖는다는 사실을 그대들은 기억해야만 한다.
우리들의 할아버지에게 첫 숨결을 베풀어준 바람은 그의 마지막 한숨도 받아준다.
바람은 또한 우리의 아이들에게 생명의 기운을 준다.
우리가 우리 땅을 팔게 되더라도 그것을 잘 간수해서
백인들도 들꽃들로 향기로워진 바람을 맛볼 수 있는 신성한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의를 고려해보겠다.
그러나 제의를 받아들일 경우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즉 이 땅의 짐승들을 형제처럼 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미개인이니 달리 생각할 길이 없다.
나는 초원에서 썩어가고 있는 수많은 물소를 본 일이 있는데
모두 달리는 기차에서 백인들이 총으로 쏘고는 그대로 내버려 둔 것들이었다.
연기를 뿜어대는 철마가 우리가 오직 생존을 위해서 죽이는 물소보다
어째서 더 중요한지를 모르는 것도 우리가 미개인이기 때문인지 모른다.
짐승들이 없는 세상에서 인간이란 무엇인가?
모든 짐승이 사라져버린다면 인간은 영혼의 외로움으로 죽게 될 것이다.
짐승들에게 일어난 일은 인간들에게도 일어나기 마련이다.
만물은 서로 맺어져 있다. 그대들이 온 이후로 모든 것이 사라졌다.
이제 삶은 끝났고 살아남는 일만이 시작되었다.
이 넓은 대지와 하늘은 삶을 살 때는 더없이 풍요로웠지만,
살아남는 일에 있어서는 더없이 삭막한 곳일 따름이다.
그대들은 아이들에게 그들이 딛고 선 땅이 우리 조상의 뼈라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그들이 땅을 존경할 수 있도록 그 땅이 우리 종족의 삶들로 충만해 있다고 말해 주라.
우리가 우리 아이들에게 가르친 것을 그대들의 아이들에게도 땅을 우리 어머니라고 가르쳐 주라.
땅 위에 닥친 일은 그 땅의 아들들에게도 닥칠 것이니 그들이 땅에다 침을 뱉으면
그것은 곧 자신에게 침을 뱉는 것과 같다.
땅이 인간에게 속하는 것임을 우리는 알고 있다.
만물은 마치 한 가족을 맺어주는 피와도 같이 맺어져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인간은 생명의 그물을 짜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 그물의 한 가닥에 불과하다.
그가 그 그물에 무슨 짓을 하든 그것은 곧 자신에게 하는 짓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종족을 위해 그대들이 마련해 준 곳으로 가라는 그대들의 제의를
고려해 보겠다. 우리는 떨어져서 평화롭게 살 것이다.
우리가 여생을 어디서 보낼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의 아이들은 그들의 아버지가 패배의 굴욕을 당하는 모습을 보았다.
우리의 전사들은 수치심에 사로잡혔으며 패배한 이후로 헛되이 나날을 보내면서
단 음식과 독한 술로 그들의 육신을 더럽히고 있다.
우리가 어디서 우리의 나머지 나날을 보낼 것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그렇게 많은 날도 남아있지 않다. 몇 시간, 혹은 몇 번의 겨울이 더 지나가면 언젠가
이 땅에 살았거나 숲 속에서 조그맣게 무리를 지어 지금도 살고 있는 위대한 부족의
자식들 중에 그 누구도 살아남아서 한때 그대들만큼이나 힘세고 희망에 넘쳤던
사람들의 무덤을 슬퍼해 줄 수도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내가 왜 우리 부족의 열망을 슬퍼해야 하는가?
부족이란 인간들로 이루어져 있을 뿐 그 이상은 아니다.
인간들은 바다의 파도처럼 왔다가 가는 것이다.
자기네 하느님과 친구처럼 함께 걷고 이야기하는 백인들조차도
이 공통된 운명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백인들 또한 언젠가는 알게 되겠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한가지는
우리 모두의 하느님은 하나라는 것이다.
그대들이 땅을 소유하고 싶어하듯
하느님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하느님은 인간의 하느님이며 그의 자비로움은 황색인에게나 백인에게나 꼭 같은 것이다.
이 땅은 하느님에게 소중한 것이므로 땅을 해치는 것은 창조주에 대한 모욕이다.
백인들도 마찬가지로 사라져 갈 것이다. 어쩌면 다른 종족보다 더 빨리 사라질지 모른다.
계속해서 그대들의 잠자리를 더럽힌다면
어느 날 밤 그대들은 쓰레기더미 속에서 숨이 막혀 죽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이 멸망할 때 그대들을 이 땅에 보내주고 어떤 특별한 목적으로
그대들에게 이 땅과 황색인을 지배할 권한을 허락해 준 하느님에 의해
그대들은 불태워져 환하게 빛날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는 불가사의한 신비이다.
언제 물소들이 모두 살육되고 야생마가 길들여지고 은밀한 숲 구석구석이
수많은 인간들의 냄새로 가득 차고 무르익은 언덕이
‘말하는 쇠줄’ (電話線)로 더럽혀질 것인지를 우리는 모르기 때문이다.
숲 덤불은 어디에 있는가? 사라지고 말았다.
독수리는 어디에 있는가? 사라지고 말았다.
날랜 조랑말과 사냥에 작별을 고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삶의 끝이자 죽음의 시작이다.
우리 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 제의를 고려해 보겠다.
우리가 거기에 동의한다면 그대들이 약속한 보호구역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아마도 거기에서 우리는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은 마치게 될 것이다.
마지막 황색인이 이 땅에서 사라지고
그들이 다만 초원을 가로질러 흐르는
구름의 그림자처럼 희미하게 기억될 때라도,
산기슭과 숲들은 여전히 내 백성의 영혼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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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늘부터 기마봉(장상렬)님의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연재물을 퍼오겠습니다.
잘보았습니다..좋은글이네요..
감사합니다. 계속 기대해주세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잘 읽었읍니다 좋은글입니다
좋은글 잘 보왔습니다
시애틀 인디언 추장의 연설문은...한편의 시를 읽고 난 기준이며, 매우 감동적입니다.
시애틀이란 지명이 그런 역사적인 내용을 담고있군요.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링컨의 민주주의 보다 더 마음에 와 닿는 민주주의 입니다.자본주의자들이 120년동안 묵혀둔 이유를 알겠네요..
굿굿 ^^
시애틀추장의 연설문은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서 깨달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경지를 보여 주네요! 감동적입니다!
새삼 다시한번 생각해봅니다 ~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만 가득한 삶이 되도록 노력하려구요
감동입니다 고맙습니다
생각을 다시 하게 만드는 내용 이네요 .
좋은글 감사합니다.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잘읽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경이롭고 아름다워 눈가가 시큰 거리네요
지혜가 들어있고 감동적 이네요
인상적입니다
정말 많은 걸 배우고 가네여^^
감사합니다~~
정말 유용한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좋은글입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우리는 우리땅을 사겠다는 그대들의제안을 고려해보겠다. ! 인디언 추장의 말에 이문장이 여러번 나오는군요..가슴이 무너져내리는
아픔이 느껴지는 문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