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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30분. 새벽임에도 서현역에서 인천공항 가는 버스는 좌석이 꽉 찼다. 인천공항 역시 인파로 북적인다. 카트만두 행 비행기 역시 만석이다.
가는 동안 Jon Krakauer의 『Into Thin Air』를 읽다. 1996년 5월 에베레스트 등반 참사를 다룬 등반기록이다. 암벽등반 등 기술등반을 주로 했던 저자가 에베레스트 상업등반에 참여하기 전까지 상업등반에 대해 냉소적 태도를 가졌던 점, 충분한 준비없는 도전이 사고를 불러온다는 점 등이 마음을 콕 찌른다. 내 사정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지난 4월의 임자체 등반 이후 메라피크를 이렇게 금새 찾으리라고는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마음 속에는 메라피크는 단순히 걷는 산행이니까 등반성이 떨어질거라는 오만한 생각도 자리잡고 있었다. 꿈은 아마다블람에 머물러 있었다. 하지만 당장은 준비가 부족하고 고산 경험도 더 쌓아야겠다는 생각에 메라피크를 찾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 역시 준비가 부족하다. 제대로 산행연습도 안했을 뿐 아니라 오기 직전에 감기까지 걸려 병원을 두 번이나 들락거려야 했으니..
카트만두 공항은 봄보다 약간 쌀쌀하다. 줄을 잘 선 덕분에 비자도 빨리 받고 짐도 빨리 나온다. 일이 술술 잘 풀리는 느낌이다.
Tibet Guest house에서 나온 무료의 공항픽업 차를 타고 타멜로 들어간다. 시내가 이전보다는 좀 더 차분한 모습이다. 아니면 내가 카트만두의 혼잡에 이미 적응이 된 것인지도 몰라..
Jvill Nepal은 시즌이라서인지 한국손님들로 북적인다. 홈(Hom)사장은 바쁜 가운데서도 웃는 모습이 좋다. 내일 아침 루크라 비행기표와 등반퍼밋을 받다. 퍼밋에는 메라피크 높이가 6654m라고 되어있다. 그런데 보통 6461m로 알려져 있으니 거의 200m나 차이가 난다.
홈사장에게 등반 제비용(클라이밍 퍼밋, 클라이밍 가이드, 3박4일 등반의 텐트 및 음식, 기타)으로 950달러, 루클라 왕복항공료 326달러, 그리고 보름치 포터비용(225달러) 중 125달러를 선불로 지급하다. 그리고 약 18-20일간의 경비로 쓸 800달러를 1달러당 99루피에 환전하다. 좀 전에 타멜 환전상을 지날 때 달러당 96.6루피라고 봤는데 그보다 2루피 이상 후하게 쳐준다.
이번 등반일정은 다음과 같이 짰다.
1일차: 카트만두 - 루클라 이동 및 고소적응. 루클라 숙박
2일차: 루클라 - 추탕가(3500m) 트레킹
3일차: 추탕가 - 카르카탱(4000m)
4일차: 카르카탱 - 체트라 패스(4600m) 넘어 - 툴리카르카(4200m)
5일차: 툴리카르카 - 코테(3600m)
6일차: 코테 휴식일
7일차: 코테 - 당낙(4300m)
8일차: 당낙 - 카레(4900m)
9일차: 카레 고소적응 및 휴식일
10일차: 카레 - 메라 BC(5400m)
11일차: 메라 BC - 메라 HC (5800m)
12일차: 메라피크 1차 등정일 - 카레로 하산
13일차: 2차 등정일 (기상등으로 1차 등정 불가할 경우)
14일차: 카레 - 코테
15일차: 코테 - 툴리카르카
16일차: 툴리카르카 - 루클라
17일차: 루클라 - 카트만두 귀환
등반일정 초반에 4600미터 체트라 패스를 넘는 것은 상당한 부담이 따른다. 그래서 원래는 우회루트로 가려 했으나 단체 아닌 혼자 가는 경우 식사와 잠잘 곳 등이 마땅치 않다는 홈 사장의 말에 할수없이 체트라패스를 넘는 일정으로 짰다. 그 대신 충분한 고소적응을 위해 루클라에서 1박, 추탕가에서 1박, 카르카탱에서 1박 등 고개를 넘기 전에 가급적 천천히 가도록 일정을 짰다. (빨리 가는 사람들은 첫날 추탕가까지 가서 1박하고 그 다음날 바로 고개를 넘기도 하지만 고소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
호텔에 돌아와 다시 짐을 싸다. 왜 이리 무거운가? 헐.. 26kg이나 나간다. 150리터 더플백 지퍼를 간신히 채우고 35리터 배낭과 비교하니 꼭 항공모함과 연락선같다. 어떤 분은 달랑 배낭 하나 가지고 오던데... 나는 알파인부츠, 크램폰, 안전벨트와 각종 비너, 어센더 및 피켈 등 등반장비는 물론 지난 봄 임자체에서 텐트 때문에 고생한 경험이 있어 2인용 몽벨 텐트까지 들고 왔으니 짐이 많을 수 밖에. 장비 무게 때문에 다른 무게를 줄이느라 음식물은 거의 가져오지 못했다. 그래도 정상등반 직전에 입맛을 돋굴 김병장 전투식량은 챙겨왔다. ^^
저녁은 Jvill Nepal 옆에 있는 한식당 경복궁에서 삼겹살로 하다. 한국인은 나밖에 없고 중국인이 두 팀이나 있다. 갈수록 타멜에 중국인이 많아진다.
10. 26(토) 맑음
4시 15분 기상. 4시 30분에 호텔 식당에서 어제밤 예약해 둔 아침식사(포리지, 삶은계란, 커피)를 들다. 건너편에 네팔 젊은이 남녀 각 3명이 앉아 와인을 마시고 있다. 젊은 처녀 하나는 술이 제법 된 듯 웃으며 날 쳐다보는 눈이 야릇하다. 이들에겐 불금이 아직 끝나지 않았나 보다. 청년 한명이 말을 건다. “금요일 밤 새워본 적 있으세요?” “암, 나도 니들만 할 때는 밤새 춤추고 새벽에 해장국집 가고는 했지.” “누구랑 가셨는데요? ” “그건 말할 수 없어. ㅎㅎ” 우리는 같이 웃었다.
5시 20분 공항 도착. 부지런한 트레커들이 벌써 와서 문 열리기를 기다리고 있다. 내 앞에 있는 중년여성은 Russia에서 왔다. 칼라파타르 경유하여 임자체 등반한단다. 그녀에게 묻는다. “Do you know Lenin peak(레닌봉)?” 물론 안다. 성수기는 7-8월이고 BC는 3600m, C1 4100m, C2 5300m, C3 6200m이고 그 다음이 정상(7126m)이란다. 고소적응만 되면 어렵지 않단다.
문이 열리자 대부분이 서양인 트레커들인 여행자들이 쏟아져 들어간다. 이어서 체크인. 그런데 날더러 7시45분 비행기를 타란다. 6시15분 비행기는 좌석이 오버부킹된 모양이다. 할 수 없지.
기다리는 동안 약을 먹는데 혈압약, 콜레스트롤약, 비타민, 감기약까지 고소약 빼고도 10알이나 된다. 이 몸으로 등반을 하겠다니 내가 대단한건지 아니면 모자란건지..
6시15분경 갑자기 빨리 체크인하고 비행기 타란다. 한 자리가 비었나 보다. 급히 초과수하물료 1100루피 지불하고 직원 도움으로 일사천리로 보안검사 통과 후 비행기로 연결하는 버스에 오르니 러시아 여성이 웃으며 반긴다.
타라 항공은 이제 막 해가 떠오르려는 활주로를 이륙한다. 부조종사는 아주 앳되 보인다. 나는 조종석 바로 뒤 왼쪽에 앉는다. 그래야 설산이 잘 보이니까.
설산이 보이기 시작한다. 멋있다. 역시 지구의 지붕다운 위용을 갖추고 있다.
기수가 내려가기 시작한다. 손가락만한 활주로가 보인다. 항상 긴장되는 순간이다. 루클라 활주로 길이는 불과 450m.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활주로다. 바퀴 닿는 소리와 함께 작은 기체가 출렁인다. 이내 터지는 박수소리.. 매번 승객은 달라도 착륙 전의 긴장감과 착륙 후의 안도감은 똑같다.
비행기는 우리를 내려놓고 바로 다시 루클라로 가는 승객들을 싣느라 바쁘다. 사진찍지 말고 빨리 나가라는 군인들 호루라기 소리도 몇 년 째 똑같다. 어? 근데 달라진게 있다. 나와서 짐을 받아주기로 한 포터가 안 보인다. 할 수 없이 내가 26키로짜리를 낑낑대고 운반한다. 금새 숨이 헉헉. 몇 걸음 옮기고 숨 고르고.. 몇 걸음 옮기고 숨 고르고..
나의 숙소 Sherpa롯지가 공항 코앞에 있기 망정이지 짐 옮기다 고소 올 뻔하다.
지난 봄에 만난 나를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해가 잘 들고 따뜻한 21호실을 배정해주신다.
롯지의 식당은 아침에 도착한 사람, 이제 떠날 사람이 뒤섞여 있다. 미국아가씨 Joy Summers는 이제 막 한국에서의 2년 영어선생님 일을 마치고 여행을 시작했단다. 근데 이 아가씨 방금 도착해서는 오늘 남체까지 가겠다고 한다. 내가 말린다. “방금 2800미터에 내렸는데 오늘 바로 3400미터 남체까지 가는 것은 무리 아닐까요? 또 여기서 남체까지는 8시간 이상 걸리는 거리에요.” “네, 알아요. 그렇지만 남체의 토요일 밤이 좋다는데 오늘이 토요일이잖아요?” 그러니까 토요일 밤의 산중 Pub(술집)을 즐기기 위해 오늘 남체까지 가겠다는거다. 허걱, 내가 졌다! 선진국이고 후진국이고 가릴 것없이 젊은이들은 주말이 되면 타오른다. 아무쪼록 고소증 없이 남체의 토요일 밤을 즐기기 바란다.
오늘은 고소적응차 여기서 쉬는 날이다. 휴대용 개스와 보온모자 등 쇼핑을 위해 나서다. 시즌이라 모든 가게가 열었는데 악착같은 호객은 하지 않아서 둘러보기에 좋다. 그런데 웬 청년이 나타나더니 “Jvill Nepal? I am Sonam” 이런다. 이제 스물쯤 되었을까? 갸름하고 남자로서는 예쁜 얼굴이다. “네가 진짜 소남 맞냐? 내 포터 맡기로 한 소남이냐?” 소남이 홈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해준다. 맞구나. Mera Peak 6461m 라 수놓아진 모자를 400루피, 개스는 좀 비싸게 1천루피에 사서 소남과 숙소로 돌아온다. 소남에게 짐을 들어보라 하니 들어보고는 “No Problem.” 한다. 다행이다. 무거운 짐드는 수고에 대해 미리 선불 팁으로 20달러를 주니 좋아라 한다.
점심으로 모모를 맛있게 먹고는 고소적응차 추탕가 방향으로 걷는다. 길은 Sherpa 롯지 바로 옆 골목길로 가게 되어 있다. 한 고개 돌자 완연한 산길이다. EBC 쪽과는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 그쪽은 통행이 많아 분주한데 여기는 통행도 거의 없고 띄엄띄엄 있는 집들조차 전통가옥 모습이라 히말라야 산중 분위기가 살아있다. 이런 분위기 좋다 좋아.. 계곡물도 아주 맑고 수량도 콸콸. 고도계가 3100m를 가리키는 지점에서 돌아서다. 천천히 돌아오는데 뒤에서 내려오는 팀이 있다. 메라피크 마치고 오는 6-7명의 폴란드 팀이다. 10여일 전에 눈이 많이 왔으나 지금은 괜찮다고 한다. 등반을 성공적으로 끝낸 이들이 부럽다.
저녁을 먹고 방에 올라와 Into Thin Air 뒷부분을 읽다. 에베레스트 정상 등반일의 연이은 어려움, 하산시의 기상악화, 뒤이은 사고 등등.. 무섭다. 다른 때 다른 곳에서 읽었으면 모르겠는데 하필 메라피크 등반길에 히말라야 사고 내용을 다룬 책을 읽으니 더 실감나면서 마음이 무겁다. 가뜩이나 내 몸 상태는 준비가 안 되어 있는데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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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흥마진진한 메라피크 등정기 기대가 큽니다. 잘 읽겠습니다.
네 솜씨는 부족하지만 사실대로, 최선을 다해 올리겠습니다.
네, 자료 감사합니다.
도움이 되셨기를 바랍니다. 저는 카레까지는 독립적으로 가고 카레에서부터 클라이밍 가이드를 쓰는 방법을 택했지만 루클라나 카트만두부터 가이드가 동행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장단점이 있는 것 같으니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2012. 4월 아일랜드 피크를 추궁에서 셀파 한사람만 섭외하여, 등반을 하였습니다. 그때 심정으로 메라피크를 따라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아일랜드 피크는 다녀오셨군요. 메라피크를 아직 등반하지 않으셨다면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멋진메라피크등정기 마음이 설레입니다 금년5월 씨나님
3패스후기 덕분에 3패스3리환상적이고행복한 경험을했네요제가이드겸포토가 씨나님포터겸가이드였던 카르마하고아주비슷하게
생겨서 속으로웃으면서 즐겁게 한트래킹이었네요
아! 그러셨군요.. 3패스는 정말 좋은 트레킹 코스지요?
저도 아직 그때 생각이 많이 납니다. 카르마도 보고 싶네요..
씨나님 안녕 하세요 메라피크 등정 성공을 축하 드립니다
자세한 산행기 흥미진지하게 읽어 봅니다
저는 마카루베이스캠프 트레킹하다가 bc부근에서 눈이 많이와 철수 하였읍니다만
씨나님에 산행기를 읽어 보면 부럽기만 합니다
네, 마카루베이스캠프 트레킹도 좋다고 하더군요. 하필 가신 때가 폭설이 내린 때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