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多不有時
심창섭
* 부안이라 불리던 뒷두루(후평동)에 사는 덕택에 출퇴근시마다 강원대학 후문쪽 대학로라 불리는 거리를 이용하고 있다. 이러한 인연으로 젊음과 활기가 넘치고 새로운 문화가 숨쉬는 거리의 풍경에 자연스럽게 익숙해 있었다. 이발소는 보이지 않아도 미용실이 줄을 잇는 거리, 식당, 게임장, 카폐, 술집이 줄을 잇고 청소년들의 유행이 선보이는 거리이다.
80년대 말에는 매일 시위로 인해 재채기와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지나칠 수 없는 길이였고, 지름길을 두고도 멀리 우회하여 갈 수 밖에 없던 항쟁의 상징적 거리였다. 최고학부의 지식인들의 거리가 향락의 거리로 변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지만
늘 다니는 길목이라 무심하게 지나치던 어느 날. 나는 이 거리에서 나름대로의 흥미거리를 찾아 내었다. 바로 도로변에 즐비한 상점들의 이름에서 아름다움을 발견하였기 때문이다..“저문강에 삽을 슬고”라는 문학적인 상호도 멋있었지만
“똥싼바지” “빠데루” 등의 상호도 눈에 띄었다. 그러나 내게 가장 관심을 준 간판은 “용비어천가”라는 주점의 상호였다. 그냥 용비어천가 하면 세종대왕과 한글로된 최초의 책이라는 이미지가 자연스럽게 떠오르지만 상점의 이미지로서는 쉽게 연상되는 것이 없는 평범한 상호지만 그 간판에는 용의 그림과 함께 “용BEER천가” 라고 표기되어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세종대왕께서 보셨다면 노발대발 하셨겠지만 진짜 대학로에 걸맞는 상호라고 생각되었다. 이곳을 지나칠 때마다 다방, 미장원, 이발소, 문방구 등의 추억의 간판이 생각나는건 너무 고리 타분한 구시대적 사고일까?
각설하고
요즈음 어느 집에를 가보아도 거실에 한두점씩의 예술품이 아주당연하다는 듯 걸려 있다. 그중에서도 음식점이나 사무실등에도 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는 많은 동양화나 서예작품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불과 20여년전만 해도 값싼(?)복제 유화를 걸거나 달력그림을 오려 붙힌 풍경이 자연스러웠는데 ............
개업식이나 집들이때면 친지들이 사업번창과 화목하게 살라는 뜻으로 거울이나 시계와 함께 가장 상징적인 선물이 그린 소위 이발소 그림이라는 유화였다. 도로변 유리가게에 즐비하게 걸려 있던 그림들. 10여마리의 새끼돼지들이 어미 젖을 빠는 모습이나, 정겨운 초가집 마당에서 어미닭을 따라가는 병아리 그림등이 가장 대표적이었다. 그외에도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 소문만복래(笑門滿 福來) 등의 글씨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달력그림을 오려 만들거나 유리가게 에서 팔던 복제예술품은 이제 도시에서는 만나보기조차 힘들게 되었다. 집안에서 가장 돋보이는 벽면을 차지한 이러한 예술작품은 공간을 한층 격조있는 분위기로 연출하여 우리의 마음을 한결 여유롭고 편안하게 해주는 어떤 주술적인 능력까지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자작품은 물론이고 가까운 친지나 스승 에게서 받은 작품을 걸어 놓고 그것을 받거나 걸게된 사연과 그 속에 담긴 뜻을 설명하는모습이그렇게도 아름다울수 없다. 물론 아직도 유명 인사나 예술인들의 작품을 걸어놓고 매입 가격만을 떠벌리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생활이 한결여유롭고 문화적으로 윤택해 지고 있다는점을부인 할 수는 없지않은가. 이러한 생활 문화는 반드시 빵이 해결된 뒤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현상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곳곳에서 멋진 표구를 하고 고고하게 걸려 있는 많은 한문 서예작품을 만나게 되지만 뜻은 고사하고 읽을 수도 없어 글씨를 그림으로만 바라보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물론 나의 한문 실력에 문제가 있지만 동행한 동료들에게 물어 봐도 거의 마찬가지로 느끼던 경험이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다 궁굼증을 못이겨 음식점 주인에게 질문을 던져보면 대다수는 모르겠다는 대답이 태반일 뿐이다.
그래서 슬쩍 빈정거리는 어투로 “아니 뜻도 모르는 글씨를 왜 걸어 놓느냐”고 우문(愚問)을 던지면 “뜻이 아무러면 어때요, 장식용으로는 최고예요. 저게 표구 값만 얼마짜린데......라는 기가막힌 현답(賢答)이다.
거기다 장식용은 해서체 글씨보다는 앍기는 힘들어도 초서(草書)나 전서(篆書) 또는 예체(藝體)가 더 멋있다고 덧붙이기까지 한다.
며칠전 점심을 먹은후 동료들과 요선동의 한찻집을 찾았다. 여기서 우리의 한문 실력이 또한번 적라하게 표출된 기막힌 사건이 벌어졌다. 일행중 한사람이 낙관이나 두인도 없이 찻집 구석벽면에 삐딱하게 걸려 있는 휘호 한 점을 보고 저게 무슨 뜻이 냐는 질문을 던졌기 때문이다. 시선들이 한곳으로 몰렸다. 다행히 잘쓴 글씨는 아닌 것 같았지만 해서체로 반듯하게 쓴 글씨여서 모두들 읽는데는 문제가 없었다.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多不有時”라며 큰소리로 읽기는 했지만 뜻을 명쾌히 설명 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돌아가면서 한 마디씩 나름대로의 해석을 내리며 의견이 분분했지만 결론은 나지 않았다.
“많을 다, 아니 불, 있을 유. 때 시”니 시간은 항상 있는것 같으나 실지로는 많은 것이 아니니 시간을 아껴쓰라는 뜻인 모양이야.“ 내가 얕은 한문 실력으로 폼잡 으며 그럴듯하게 마무리를 하고 적당히 넘어가려는 순간에 누군가가 화장실 위치를 묻는다. 계산대에 있던 주인이“ 저기 써있잖아요.”하며 우리가 지금까지 갑론을박 (甲論乙駁)하던 휘호쪽을 가리킨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쪽 에는 휘호 이외 에는 작은 문만 보일 뿐 아무 것도 발견할 수가 없었다. 재차 질문이 던져지자 주인이 빙그레 웃으며 휘호 앞으로 다가서더니 혀꼬부라진 소리로 말했다. "다불유시”(WC). 처음에는 모두들 영문을 몰라했지만 곧 무릎을 치며 정말이지 배가 아프도록 박장대소를 했다. 화장실을 그럴싸하게 한문으로 표기한 것이었다. 하긴 어느 카페의 화장실 문짝에는 화투장에서 11월을 뜻하는 똥 껍질을 큼직하게 그려 놓아 한동안 화제가 된 일도 있었지만 화장실은 근심을 풀어버리는 해우소(解憂所) 라고 우회적으로 표현한 선인들의 기지를 현대인들은 이렇게 대응하다니.......
어디. 그뿐이랴, 대학로에는 세종대왕께서 분노하실 “龍BEER天歌”라는 상호가 술손님을 청하는 정말 재치가 넘치는 세상에 내가 살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이렇게 상술에 동원된 문자의 변형이 상혼(商魂)인지, 재치인지, 박수를 쳐야 할지, 웃고 말아야 할지 어이가 없었지만 우리 모두를 순간적이나마 즐겁게 해준 사건 아닌 사건이었다. *
첫댓글 감상 잘 했습니다.
참으로 공감이 가는 이야기 입니다
쪽집게 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