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로빈슨 [Tim Robbins]
생년월일: 1958. 10. 16
출생지 : 미국 캘리포니아 웨스트 코비나
학 력 : UCLA 연극과
가 족 :
본 명 : Timothy Francis Robbins
데 뷔 : 1982년 드라마 < St. Elsewhere >
1992년 영화 <밥 로버츠> 연출
1958년 10월 16일 캘리포니아 주의 웨스트 코비나에서 태어났다. 미국 자유주의자의 계보를 잇고 있는 배우이며 감독이며 각본가인 팀 로빈스는 아마도 헐리우드 시스템 내에서(!) 가장 신중하고도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는 포스트 베트남 세대의 감독일 것이다. 그는 포크 송 가수로 "마이클"이라는 노래를 불렀던 그룹 하이웨이맨의 멤버인 길 로빈스의 아들로 태어나 뉴욕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음악과 문학(어머니는 출판 일을 했다)에 심취하면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는 뉴욕에서 자라나 고등학교 시절부터 연극에 빠져들었고, 틈틈이 오프 브로드웨이 연극무대의 조명기사로 일하는 한편 대부분의 시간을 친구들과 함께 거리에 나가 반전 가두공연을 하는 데 몰두했다. 뉴욕대에 입학해 2년을 다니다가 연극 프로그램이 마음에 들어 UCLA로 대학을 옮길 정도로 열 혈 연극청년이었던 팀 로빈스는 대학 시절 '액터즈 갱' 이라는 이름의 극단을 만들어 활동하는데, 당시 펑크 록에 심취하며 함께 공연했던 오랜 지기들이 바로 존쿠잭, 제임스 스페이더, 피터 갤러거, 프레드 워드 등이다.
직접 희곡도 쓰며 열심이었던 팀 로빈스는 연출, 각본, 연기 외에 공연을 위해 자금을 모으러 다니는 등 액터즈 갱의 수많은 일들을 감당해냈고, 그 와중에 TV영화들에 얼굴을 비치기도 하면서 스물여섯살 때인 84년에는 <토이 솔져>에 단역으로 데뷰하게 된다. 코미디와 팝콘 무비들을 거치면서 연극을 계속하던 팀 로빈스는 90년 애드리안 라인의 <야곱의 사다리>의 베트남전 악몽에 시달리는 '심각한' 연기로 배우로서의 전환점을 맞이한다. 그리고 7년이 지난 지금 그는 로버트 알트만이 가장 신뢰를 보내는 배우이자 후배감독이며, 코엔 형제의 영 화 미로를 함께 걸어가는 로빌 반즈이며, 알트만의 말에 따르면 '다음 세대의 오손 웰즈' 가 되었다. 그리고 팀 로빈스가 걸프전 당시 반전운동에 나섰던 중심인물이며, 헐리우드 시스템 안에서 경계를 늦추지 않는 반골 기질의 자유주의자라는 사실은 당연하게도 배우 팀 로빈스의 연기가 아 니라 감독 팀 로빈스의 영화들에서 증명된다. 팀 로빈스에게 92년 깐느는 <플레이어>로 남우주연 상을 수상했던 곳이라기보다 자신의 감독 데뷰작 <밥 로버츠>가 감독과의 보름 부문에 초대되었던 곳이다.
<밥 로버츠>는 황금카메라상을 놓고 존 터투로의 <맥>에게 고배를 마셨지만, 대통령 선거가 있던 해의 미국에서 아마도 가장 신랄하고 공격적인 정신을 가진 데뷰작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우상 밥 딜런의 록 다큐멘터리 <뒤돌아보지 마라>를 인용해오고, 스스로 대통령 선거 후보에 나선 우익 포크 가수로 등장했던 <밥 로버츠>는 타고난 아웃사이더 기질의 팀 로빈스에게 가장 자연스러운 첫 선택이었다. 그는 여기서 매스컴과 선거전과 대중심리가 어떻게 결탁하는지를 가 짜 다큐멘터리(혹은 극중의 다큐멘터리)를찍는 핸드헬드 카메라의 앵글을 통해서 보여준다. '기타를 든 젊은 조지 부시' 밥 로버츠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팍스 아메리카나 정신의 상징이며, 선거에선 이기기 위해 암살미수극을 조작한다. 은폐된 진실을 캐려던 저널리스트는 암살자로 몰리고, 밥 로버츠는 영웅이 되며, 우익 청년들은 열광한다. 그리고 팀 로빈스는 선거전이란 이런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이 성조기를 바라보며 웃음 짓는다.
그의 두번째 영화 <데드 맨 워 킹>(95)은 정치로부터 한발 물러선 듯한 외양 속에서 더욱 냉철하고 치밀하게 살인 사건과 사형제도를 겹쳐놓고 판단을 기다린다. 이제 그는 섣불리 선동하지 않으며. 오히려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사람이 죽어가는 과정을 지켜 보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섬뜩할 정도로 세밀하게 재생된 사형집행 장면은 몇초에 수십명이 쓰러지는 헐리우드 액션 영화의 죽음도, 눈물 흘리며 이별하는 멜러드라 마의 죽음도 아닌, 인권을 가진 인간의 죽음의 과정을 보여준다. 팀 로빈스는 선동보다 설득을 택하고, 상상보다 경험을 택한다. 그리고 이것이 팀 로빈스가 자신의 영화를 만드는 방법론이며 그 의 정치/사회적 신념을 훼손하지 않고 헐리우드에서 영화를 만드는 전략이다. 팀 로빈스는 자신이 프로듀서를 맡은 아담 사이먼의 가짜 다큐멘터리 (타이프라이터, 권총, 그리고 무비 카메 라)(95)에 사뮤엘 풀러, 마틴 스콜세지, 짐 자무쉬, 쿠엔틴 타란티노와 함께 등장해서 헐리우드와 영화 만들기에 대해 수다떨고 비아냥거리며 선댄스로 몰려갔다. 그리고 지금은 에릭 브로스의 <잃을 것은 없다>(97)에 이어 영화철학자 테렌스 맬릭의 (영화광)에 캐스팅되었다.
1988년 여배우 수잔 서랜든 사이에 아이 둘을 두었다. 2003년 <미스틱 리버>를 통해 남우조연상을 수상, 아카데미 수상 커플에 합류했다.
팀 로빈스는 로버트 알트먼으로부터 ‘다음 세대의 오손 웰즈’라고 칭송 받을 정도로 연기자, 각본가, 제작자, 감독으로서 전세계적으로 명성을 떨치는 인물이다.
적극적인 정치 활동을 권장했던 부모 밑에서 성장한 팀 로빈스는 12세 때부터 뉴욕 시립 극단의 단원으로 활동했다. UCLA를 졸업한 그는 브레히트의 작품을 주로 상연하는 아방가르드 극단 'Actor's Gang'을 결성했고, 곧 <Toy Soldiers> 의 조연으로 스크린에 데뷔한다.
그러나 팀 로빈스는 <19번째 남자>에 출연한 88년이 되어서야 대중에게 이름을 알릴 수 있었다. 오랜 동반자인 수잔 서랜든을 만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던 이 영화 이후, 팀 로빈스는 베트남 전쟁의 기억을 초현실적으로 담아낸 영화 <야곱의 사다리>와 할리우드의 추악한 협잡을 폭로하는 <플레이어>같은, 자신의 사상과 일치하는 영화들에 출연하기도 한다. <플레이어>로 그는 골든 글러브와 깐느 영화제에서 최우수 남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때로 <아이큐>같은 로맨틱 코미디나 ,전미배우협회 최우수 남자배우상 후보에 오른 <쇼생크 탈출> ,<미션 투 마스>같은 흥행작에 출연하기도 하는 팀 로빈스는 배우로서보다 감독으로서 자신의 정체성을 더 확고히 다지고 있다. 1992년, 팀 로빈스는 자신이 감독한 첫 작품 <밥 로버츠>를 통해 미국의 정치 상황을 풍자했다. 사형 제도의 비인간성을 냉철하고 파고든 <데드 맨 워킹>으로 아카데미 감독상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한 극단의 수난을 담은 영화 <크레이들 윌 락> 역시 호평을 받았다. 이후, <미션 투 마스>,<휴먼 네이쳐>,<미스틱 리버>에 출연하기도 했다.
또한 극작가로서 LA, 뉴욕, 시카고, 에딘버러 등지에서 자신이 쓴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도 하였다. 그가 연출한 영화들을 보면 부모에게 이어받은 그의 자유주의적 성향을 엿볼 수 있다.
영화 뿐 아니라 연극 분야에서도 왕성한 창작 활동을 벌이고 있는 팀 로빈스는, 학교에서 예술 관련 강좌를 맡고 있는 것으로도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