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테너색소폰의 매력적인 톤의 소유자 3명을 꼽으라면 6070년대에 길옥윤.이봉조,최인재등이 대상이 되는데 길옥윤은
Noble 한 톤이라고 할수 있겠고 이봉조는 Sexy 한 톤, 최인재는 편안하게 들을수있는 Popular 한 톤이라고 말할수 있겠다.
길옥윤은 60년대초 일본에서 일시 귀국하여 미8군쇼 대행기관인 화양(한국흥행주식회사)의 휴게실에서 연주자들을
대상으로 재즈와 연주에 관한 워크숍을 가져서 호평을 받았고 그 당시 그의 연주는 국내의 그것보다 굉장히 앞선것이어서
주목의 대상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연주계의 현실은 어떠한 이론적인 배경도 없이 각자 뛰어난 감각으로 레코드를 듣고
흉내를 내며 자신이 개척해 나가는 시절이어서 일본에서 체계적으로 배운 그의 연주와 연습과정이 모든 연주인들의
부러움을 사기에 충분했다.
그는 언제 어디서나 공연전에 악기를 꺼내들면 항상 스케일 연습과 톤연습을 습관적으로 하고 무대에 오르곤 했다.
이런것은 후배들에게도 크나큰 귀감이 되는 본받아야 할 좋은 습관이었다.기초를 定石으로 배운사람들만이 가능한
습관인것이다.
"이별"을 연주한 이곡에서도 느낄수 있지만 그는 단순히 멜로디만 깨끗하게 연주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재즈의 즉흥연주기법에 기초하여 멜로디를 Fake하여 연주곡형식으로 연주하기를 좋아하는 스타일인데 그가 하고 싶은대로
하면 음반은 많이 안 팔릴것은 뻔하기에 연주속에 그의 고뇌가 들어 있는듯하다.
지금은 대중음악인들중에 음악대학 대중음악분야에서 강의를 맡는 사람이 많지만 그 시작은 바로 길옥윤이 처음이었다.
前 서울예술전문대학(현 서울예대)에 실용음악과가 생기면서 주임교수로 부임하게 된것이다.
어릴적 부잣집에서 자랐고 머리도 현명하여 공부도 잘했던 그였기에 서울대학교 치과대학에 다니면서도 기타를 치며 당시
트럼펫의 김영순(베니김), 노명석,박춘석등과 함께 대중음악활동을 했고 1950년 일본으로 건너가서 테너색소폰을 익히고
체계있게 배워 불과 얼마후에는 일본 전국악단경연대회에서 Crew Cuts(당시 유행하던 짧은머리의 헤어스타일= 一名
스포츠가리)라는이름의 Combo Band를 이끌고 경연하여 당당히 1위에 입상하므로 일본에서도 그의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다.
(단원이 모두 머리를 짧게 깎아서 악단이름도Crew Cuts로)
귀국한 후에도 대중음악 분야에서 수준높고 품위있게 처신하면서 대중음악인의 위치를 격상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고
하겠다. 많은 히트곡과 연주활동으로 대중음악계에 한 획을 그었던 그가 안타깝게도.....
1994년 6월18일에는 암으로 투병중에 SBS-TV의 길옥윤특집생방송에 출연하여 미소를 잃지않는 여유와 헤어진 前부인
패티김의 우정출연으로 많은 시청자들의 눈물을 자아내기도 했다.다음해인 1995년 3월21에 연예협회장으로 우리곁을
떠났다.
[아래사진은 1988년11월1일 힐튼호텔 볼룸에서 열린 미국담배회사 Paliament가 주최하는 문화행사로
미국 유명 재즈맨들로 구성된 올스타 재즈밴드의 공연을 관람한 후 음악인들이 모여서]
{왼쪽부터 이백천(평론가)최세진(Dr.)홍덕표(Trb.)권혁순(Trp.)김종택(Trb.)길옥윤.서봉석(Trb.카페지기)
김수열(T.Sax.)정홍택(언론인)}
첫댓글 길과김 공연 부타탁해요
감명깊게 잘 들었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