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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3주>
♠ 조선일보 ♠
[재계의 정치자금 사면 요구 성급하다] - 11월 6일
전경련이 개별기업 차원의 정치자금 제공을 금지하고, 선관위나 경제단체를 통해 간접 지원하는 것을 골자로 한 정치자금 제도개선 방안을 내놓았다. 기업이 정치자금 조성방법, 규모, 지정여부 등에 대해 일정 기간마다 주주총회의 승인을 받도록 하고, 20만원 이상 정치자금 기부자의 명단과 기부액을 대외적으로 공개하는 것도 함께 포함돼 있다.
정치자금을 주주총회에서 승인받도록 한 것은 불법 정치자금 제공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도록 기업 내부에 엄격한 통제장치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과거보다 진전된 발상이다.
그러나 이번 제안 중에서 1997년에 폐지됐던 지정기탁금 제도를 부활시켜 기업이 선호하는 정책방향을 가진 정당이나 정치인을 지정해 정치자금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많다. 정치자금이 여당이나 실세(實勢) 정치인들에게 몰리는 폐단이 다시 나타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재계의 정치자금 지원이 친(親)기업 성향의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집중되는 경우에도 우리 사회가 이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무엇보다 논란이 되는 것은 과거 정치자금에 대해 일괄 사면을 요구한 대목이다. 전경련은 형사상 사면뿐만 아니라 소액주주들의 손해배상 소송 같은 민사상의 책임까지 면제받을 수 있도록 특별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사적(私的)인 거래·계약관계인 주주와 기업 사이에 국가가 끼어들어 주주에게 손실을 끼친 기업과 기업인의 책임을 면제해줘야 한다는 주장은 시장경제 원리에 어긋날 뿐 아니라 위헌(違憲)적인 발상이라는 시비를 낳을 수 있다.
지금 당장의 과제는 정당과 기업 사이에 정치자금을 얼마나 어떻게 건네고 받았는지 진상을 규명하고, 그 재발 방지를 위한 개선책을 마련하는 것이다. 기업에 대한 사면 여부는 그 다음에 국민의 여론과 정치권·재계가 내놓은 대안의 현실성 등을 모두 감안한 최종적인 판단을 기다리는 것이 순리(順理)다.
[현금다발이 山을 이룬 사진을 보며] - 11월 7일
할리우드 갱 영화에서도 보지 못할, 무지막지한 현찰 더미 사진이 어제 아침 신문에 실렸다. 어느 건설사 간부가 회삿돈을 빼돌려 만든 비자금 70억원을 ‘금고용’으로 구입한 빈 빌라의 방에 쌓아둔 모습은 성벽(城壁) 같았다.
정가의 비자금 뉴스가 연일 이어지면서 몇 백억원, 몇 천만달러에도 그저 그런가 보다 했던 독자들도 막상 현금 무더기의 실체를 접하면서 놀랐을 것이다. 70억이 저쯤이니 요즘 문제된 비자금들은 도대체 얼마나 막대한 것일까 가늠해보고, 저 돈더미에서 단 몇 줄, 몇 다발만 떼내면 아파트를 한 채 사겠다는 씁쓸한 계산도 해봤을 것이다.
이런 현장 사진이 나올 수 있는 나라는 한국 말고 세계에 다시 없을 것이다. 돈더미 사진은 동그라미 숫자도 헤아리기 벅찬 거액 현금들이 뇌물, 탈세, 정치자금용으로 세탁되고 운반되고 보관되는 ‘부패 공화국’의 자화상이다.
어느 비자금사건 재판부는 승용차가 현금 40억원을 싣고 움직일 수 있는지 현장검증을 한다고 하고, 돈세탁 전문가의 집 화장대에는 1000만원짜리 돈다발이 굴러 다니고, 분양사기 피의자는 100만원을 ‘잔돈’이라고 하는 게 한국이다. 전직 국회의원의 부인이 재벌 비자금을 방 천장까지 쌓아뒀다가 “돈 냄새 때문에 잠을 잘 수 없었다”고 말하는 이 땅에서 부패 척결 운운하는 것이 처량하게 들릴 지경이다.
국민은 온 나라를 진동하는 구린 돈의 악취에 코를 싸맨 채 좌절하고 분노하고 있다. 정치권과 검찰, 재계는 비자금 정치의 일대 전환을 통해 뒷돈만 있으면 안 될 일도 척척이고, 뒷돈 없이는 될 일도 안 되는 나라라는 오명을 씻을 마지막 기회로 여기고 각오를 더욱 다져야 할 것이다.
[총선에 목숨 건 대한민국] - 11월 9일
지금 이 나라의 주요 현안들은 모조리 내년 4월 총선에 매달려 있는 형국이다. 정치권과 정부는 시급히 결단을 내려야 할 사안도 총선에서의 유·불리를 저울질하며 마냥 미적거리고 있고, 반대로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문제도 표 얻는 데 도움이 되겠다 싶으면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들고 있다.
정치권 전체의 운명이 걸린 불법 대선자금 문제도 결국은 각 당의 총선 전략과 밀접히 맞물려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은 모르지 않는다. 각 당은 어떻게 하면 총선에서 자신의 피해는 최소화하면서 상대방에게 최대의 타격을 줄 것인지에만 온갖 머리를 짜면서 총선이 다가올수록 더욱 피터지는 폭로전을 벌이게 될 것이다. 검찰수사냐 특검이냐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총선을 겨냥한 정치권의 정략적 태도가 노골화하면 대선자금의 진실 규명과 이에 따른 정치개혁은 오리무중에 빠져 옆길로 새 버릴지도 모른다.
이라크 추가 파병 문제는 한·미간 이견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면서 더 이상 미룰 경우 “파병하고도 욕먹는 것 아닌가”하는 지적이 나올 지경이 됐다. 그럼에도 현 정권이 이에 대한 결단을 미루고 있는 것은 총선에서의 지지층 이탈을 우려한 때문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이밖에도 부안 핵폐기물 처리장, 공무원노조 합법화문제 등 민감한 문제들은 총선 전에 결말이 날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총선 이후로 주요 일정을 잡아놓은 행정수도 이전문제의 추진 방식에서도 총선 전략이 읽혀진다. 즉석 효과를 노린 쾌도난마식 처방을 총동원한 듯한 부동산 대책에서도 총선 효과를 겨냥한 냄새가 물씬 풍기고 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권이 선거를 의식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책 제시나 국정 수행의 결과로써 국민 심판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지 선거 자체가 목적이 돼 국정을 희생시켜도 된다는 말이 아니다. 총선에 발목잡혀 결단의 시기를 놓치거나 왜곡당한 국가 현안들은 나중에 훨씬 많은 비용과 대가를 요구하게 마련이다. 정부나 야당이 하나같이 총선에 목숨을 걸고 있는 대한민국을 벗어나면 세계는 지금 미래의 돌파구 마련을 위해 목숨을 걸고 있다는 사실을 보며 국민은 답답하고 불안하다.
[심상치 않은 한·미의 파병 입장 차] - 11월 10일
지난주 워싱턴에서 열렸던 한·미 협의에서, 한국이 ‘공병과 의료부대를 주축으로 한 3000명선’에서 추가파병하는 방안을 내놓자 미국이 “별 도움이 안 된다”며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고 한다.
마치 이라크 문제로 어려움에 빠진 미국이 동맹국인 한국에 도와달라며 손을 내밀었고, 이에 한국이 ‘이 정도면 되겠느냐’고 하자 미국이 ‘생색이나 내는 것이라면 필요없다’고 역정을 내며 뿌리쳐 버린 듯한 상황이 돼버린 것이다.
파병을 통해 흔들리던 한·미관계를 단단히 다져놓겠다던 당초의 목표가 달성되기는커녕 한·미 사이의 불신의 골만 더 깊게 파이게 만든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기까지 하다.
이라크에 보내는 한국 군대의 성격이 무엇이며, 얼마만한 규모의 군대를 보낼 것인가 하는 문제는 한국이 주권국가로서 독자적으로 판단해야 할 사안인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중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파병 규모와 성격에 관한 결정은, 지난달 18일 정부가 추가파병 결정을 내렸을 때, 어떤 국익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를 판단했던 그 틀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의 근본은 미국과 관계된 일이 터질 때마다 여론을 이끌기보다는 여론의 눈치만 살피는 듯한 인상을 주는 이 정부와 집권측의 태도가 상황을 더욱 꼬이게 만든다는 것이다. 주한 미국대사관을 옛 경기여고 자리로 옮겨 신축하는 문제만 해도 그렇다.
이번 워싱턴 협의에서 “신축이 쉽지 않다”는 입장을 미국측에 통보했다고 하지만, 한·미 사이에는 미국대사관을 옛 경기여고 터로 옮기기로 한 법적인 효력을 갖는 합의가 있다. 만약 이곳이 안 된다면 정부가 나서서 대안을 찾아야 할 텐데 그저 여론의 눈치만 보고 있을 뿐이다.
만일 이 정부의 이런 대미(對美) 태도가 내년 총선과 관련한 어떤 계산과 얽혀 있다면, 그 계산착오에 대한 대가를 결국 국민들이 지불해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외국인근로자 돈 떼먹고 부자될건가] - 11월 11일
16일부터 시작될 외국인 불법체류자 강제출국을 앞두고 외국인 근로자의 임금을 고의로 체불하는 일이 급증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달 말 현재 체불 총액이 31억원을 넘어 한 명당 평균 215만원이나 된다니 외국인 근로자들의 딱한 형편에서는 결코 적은 돈이 아니다. 임금체불이 당국에 신고되지 않은 기업까지 치면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다.
체불한 중소기업 중에는 경제난으로 임금지급을 미루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부 설명대로 강제출국을 앞둔 근로자라 해서 고의로 임금까지 체불하고 있다면 낯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값싼 노동력에 구미가 당겨 외국인 근로자를 부릴 때는 언제고 눈물과 한숨 속에 밀려나는 그들에 대해 이제 와서 나 몰라라 하는 식이어서는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러고도 어디 가서 우리나라의 경제규모가 세계 12~13위 국가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곧 출국할 불법체류자라는 약점을 잡아 그간 일한 정당한 임금을 떼먹는 정신상태로 무슨 큰돈을 벌겠으며, 그 돈인들 얼마나 떳떳하겠는가.
더군다나 이들은 우리 기업에 취업해 한국말을 배우면서 ‘밀린 돈 주세요’ ‘때리지 마세요’라는 표현부터 익힌 사람들이다. 이들이 정부의 단속에 걸려 일한 삯도 받지 못한 채 강제로 비행기를 타야 할 경우 본국에 돌아가 한국에 대해 뭐라고 말하게 될지는 물어보나 마나다. 입장을 바꿔 내 가족, 친지가 해외에 나가 이런 억울한 지경을 당하고 쫓겨온다면 어떻겠는가.
정부는 이들이 그간 다들 피해가는 우리 3D업종의 인력난을 메워주는 역할을 했던 점을 유념해 그들이 일한 대가만은 반드시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임금체불 실태를 철저히 조사해 이번 강제출국 노동자들의 억울함만은 풀어줘야 한다. 이들이 밀린 임금 받겠다고 한국 사회에 그대로 숨어 버티면 불법체류 문제는 앞으로 더 해결하기 어려워질 것이다.
[교실 수업은 입시에 쓸모가 없다니] - 11월 12일
지방의 고3생들이 교사 인솔로 서울로 와 합숙하며 학원을 다니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대학입시의 심층면접이나 논술시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강의실 밖에서 학생들 공부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운전사 노릇 해야 하는 교사의 자괴심(自愧心)은 말로 못 다할 수준이었을 것이다.
엊그제 교육부 학교정책실장과 간담회에서 만난 고교생들은 또 “학교가 학원만큼 학생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뼈 있는 말을 했다. 한마디로 학생들은 교실수업이 대학입시에 별반 쓸모가 없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하긴 교육당국조차 사교육 대책이라면서 방과 후 수업을 학원강사에게 맡기자는 발상을 내놓을 정도니 더 보탤 말도 없다.
대학도 고교 교육을 믿지 않는다. 대학입시가 내신과 수능과 논술면접의 3중(重)구조를 갖고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대학들이 3년간 누적된 내신평가보다는 몇 시간 동안의 필답고사가 더 믿을 만하다고 보기 때문에 수능성적에 의존해 신입생을 뽑고 있고, 그것도 못 믿어 논술면접을 치르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교육 자체가 학교와 학원과 과외의 3중구조로 굳어졌고, 입시는 돈 싸움이라는 말이 나오게 돼 버린 것이다.
이 모든 문제의 병원(病源)은 부실한 학교 교육에 있다. 공교육의 질을 높이지 않으면 무슨 방안을 내놓아도 공염불일 따름인 것이다. 그런데도 교육당국의 대책이란 것은 강남 학원들 세무조사 한다든지 학원은 허가제로 하고 강사는 면허제로 한다는 식으로 잘 나가는 학원 뒷다리나 잡는 미봉책으로 일관하고 있어 어쩐지 구두 신은 발을 긁고 있다는 느낌이다.
교사의 채용, 업무평가, 승진 등을 비롯한 학교교육 전반에 엄격한 경쟁원리가 도입돼 공교육의 질이 향상되지 않는 한 ‘학원보다 못한 학교’란 불평은 계속될 것이고 노사협상에서 과외비 대달라는 요구도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농·어민 피해복구비까지 가압류하다니] - 11월 13일
태풍 ‘매미’로 피해를 입은 농어민들에게 정부가 지원하는 피해복구비를 금융기관과 일반 채권자들이 채권확보를 위해 압류·가압류하고 있다는 소식은 단순히 야박하다기보다 뭔가 단단히 잘못되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주고 있다.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어민과 양식업자들에 대한 복구비 압류·가압류만 310건에 금액으로 180억8000만원에 이른다고 한다. 정부가 어민 피해복구를 위해 지방자치단체에 교부한 보조금 2185억원의 8.3%에 달하는 규모다. 그 가운데는 채권자들이 아직 지급하지도 않은 복구비에 대해서까지 지자체를 상대로 한 소송을 통해 압류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또 농민들의 경우도 지역 농협이 태풍 피해보상금이 입금된 계좌에 대해 지급정지 조치를 하거나 압류·가압류한 사례가 드러나, 지난 10월 14일 농협중앙회가 이를 중단하게 한 일도 있었다.
물론 금융기관과 채권자들도 나름대로 할 말이 있을 수 있다. 또 농어민 중에는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채권을 회수할 수 없는 악성(惡性) 신용불량자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사람 사는 세상에선 법적으로 정당하다 해서 무엇이든 허용되는 것은 아니다. 어떤 경우에는 법적 정당성보다 상식과 부합 여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태풍에 모든 것을 앗기고 넋을 잃은 농어민들이 얼마 안 되는 복구지원비까지 압류당해 다시 좌절하게 내버려 둔다면 그건 너무 잔인한 일이다. 더욱이 정부가 올해 복구비 지원방식을 ‘선복구-후지원’에서 ‘선지원-후복구’로 바꾼 것은 사상 최악의 태풍 피해를 입은 농어민들이 하루라도 빨리 일어설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이런 정부의 배려를 내동댕이치는 듯한 복구비 압류·가압류 조치가 더 번지기 전에 정부 차원의 대책이 나와야 할 것이다.
♠ 동아일보 ♠
[수능은 인생의 끝이 아니다] - 11월 6일
2004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끝났다. 가슴을 졸이며 시험을 치른 64만여 수험생의 노고와 이들을 돌보고 가르치느라 애쓴 학부모 교사의 수고를 위로한다. 어느 수험생 가족은 수능을 보고 온 아들과 그의 부모가 서로 맞절을 하며 그동안의 노고와 헌신에 감사를 표시했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를 위로했다는 아름다운 얘기도 들린다.
안타까운 것은 서울과 남원에서 수능시험을 제대로 치르지 못했다고 생각한 여고생 2명이 꽃다운 삶을 포기한 사실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12년에 걸쳐 수능을 준비해 온 수험생들에게 단 한 번의 시험으로 성패를 결정짓는 것은 너무 가혹한 현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자살은 자기 존재에 대한 부인이자 돌이킬 수 없는 불효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한 수험생과 그 가족에게 이 시점에서 우리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수능은 대학 진학에 이르는 과정일 뿐 결코 인생의 최종 목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노력한 만큼 반드시 좋은 성적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수능 성적표가 곧 인생 성적표일 수도 없다. 몇 차례 고배를 마신 끝에 대학에 들어가 성공한 사람이 얼마든지 있고, 중고교만 졸업해서도 자기 분야에서 일가(一家)를 이룬 사람들 또한 적지 않다.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평범한 두 시골 젊은이가 남다른 노력과 자기 계발로 연거푸 대한민국 대통령이 된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이제 학생과 학부모 모두가 수능 결과를 담담하게 받아들이면서 객관적인 자기 평가로 새로운 인생과 미래를 설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수능이라는 단기 경주가 아니라 인생이라는 장기 레이스에서 승리하는 삶이 그 최종 목표인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가정과 학교는 민감한 시기에 수험생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없도록 따뜻한 대화와 배려를 아끼지 않아야 한다. 탈 없는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길 잃은 한 마리 양에게 더 관심을 쏟는 것이 참된 가정이자 학교다.
[행정수도 ‘총선전략용’은 안 된다] - 11월 7일
태조 이성계가 정도(定都)한 이래 600여년 역사를 지닌 수도를 옮기는 문제는 통일 후 시대에 대비한 백년대계여야 한다. 행정수도 이전은 건국 이후 최대 국책사업이라고 할 만큼 엄청난 재정이 소요되고 국가적으로 막중한 영향을 미칠 사업이다. 그러나 현재의 행정수도 이전 안은 지난 대선과정에서 충청권 표를 얻기 위해 설익은 채 나온 측면이 강한 게 사실이다.
신행정수도 연구단은 2030년까지 50만명 규모의 신행정수도를 만드는 데 들 순수한 재정부담을 8조4000억원으로 예상했다. 대통령직인수위 때 추산보다 2배가량 늘어난 액수이다. 다른 국책사업의 선례에서 드러나듯이 완공까지 재정 소요가 얼마나 더 늘어날지 예측하기 어렵다.
신행정수도 연구단이 마련한 밑그림을 보더라도 2020년 1단계 완공까지 17년이 걸리는 사업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 임기 안에 무엇을 해내겠다는 조급함을 가져서는 안 된다. 충분한 여론수렴과 치밀한 계획수립을 통해 다음은 물론 그 다음 대통령대에도 차질 없이 추진될 수 있는 계획을 세워야 한다.
정부가 바뀌면 지난 정부가 추진해 온 국책사업이 하루아침에 재검토되는 일이 비일비재 하지 않았던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국가적 사업이 중단되거나 재검토되는 낭비를 없애기 위해서는 예상되는 비용과 효과에 대한 철저한 분석을 거쳐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행정수도를 건설하다가 통일이 되면 어떻게 할 것인가 하는 점도 고려에 넣어야 한다. 수도권과 신행정수도의 후보지가 가까워 수도권 과밀해소에 기여하지 못하고 공무원들의 생활만 불편하게 할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더욱이 국책사업을 밀어붙이는 힘이 강했던 박정희, 전두환 대통령 시대에도 쉽게 결정하지 못했을 정도로 수많은 난관이 예상되는 사업이다. 이런 국가적 ‘백년대계 사업’이 눈앞의 총선전략용이 되어서는 숱한 난관을 돌파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태풍 복구비 지원 이렇게 늦어서야] - 11월 9일
날씨가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지며 겨울의 초입으로 성큼 다가섰다. 태풍 ‘매미’에 집과 생계의 터전을 잃어버린 농어민 도시서민에게 다가오는 겨울은 두려움과 고통 그 자체일 것이다. 태풍에 무너지거나 부서진 집들은 이달 안으로 복구를 서둘러야 하고 새 집을 지을 때까지는 임시 거처가 필요하다.
수재민들의 형편이 이렇듯 딱한데도 ‘매미’가 지나간 지 두 달이 지나도록 주택복구비 지급률은 겨우 37%를 기록했다. 예산집행이 이렇게 늦어진 데 대한 책임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구태의연한 행정에 물을 수밖에 없다. 복구비를 지급하는 절차가 여전히 복잡하고 행정편의주의로 돼있기 때문이다.
일선 시군에서는 사유시설의 경우 복구 후 지원이라는 과거 관행을 고집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다 보니 사유시설 복구비 지원액은 이제 절반가량 집행됐을 뿐이다. 수재민들을 긴급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정한 ‘선(先) 지원, 후(後) 정산’ 방침이 일선 행정기관에서 외면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 부처간 힘겨루기와 정치권의 생색내기 다툼으로 공공시설 복구예산은 이달 초에야 책정됐다. 하천 제방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 또 붕괴된 지역의 주민들은 착공이 늦어져 부실공사가 되다보면 내년 장마철에 3년 연속 피해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유실된 농경지는 내년 농사철이 오기 전인 4월 말까지, 파괴된 하천 구조물은 장마가 오기 전까지 복구돼야 하는데 이렇게 예산집행이 늦어져서야 시한을 맞추기가 어려울 것은 뻔한 노릇이다.
‘매미’는 피해 발생부터 복구까지 행정분야의 낙후성을 여지없이 드러내고 있다. 연례행사처럼 태풍과 집중호우를 당하면서도 낡은 행정시스템은 좀처럼 개선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정부는 이제라도 수재민들에 대한 지원이 하루빨리 이뤄질 수 있도록 행정력을 동원해야 한다. 겨울이 다 지나고 지원해서야 수재민의 원성만 높아질 뿐이다.
[‘조폭과의 전쟁’에 나서야] - 11월 10일
노무현 대통령은 어제 전국의 강력검사들과 오찬 회동을 갖고 강력범죄 대처에 만전을 기해 줄 것을 당부했다. 재신임과 대선자금에 대한 정치권 공방에 묶여 있던 대통령이 모처럼 조직폭력과 흉악범죄 척결 등 민생치안에 관심을 보인 것이다.
유흥업소와 매춘, 공사입찰 등 제한적인 영역에서 활동해 온 조폭이 막강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건설 재건축 인력수출 카지노 오락실 벤처 파이낸스 등 전방위로 활동영역을 넓혀 온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최근에는 ‘국제 공조’의 양상마저 보이고 있다. 한국과 중국의 조폭이 4년간 수천명의 중국 동포를 밀입국시키며 수백억원을 챙겨 온 사실이 그 예다. 그렇지 않아도 사채시장 자금의 상당액이 일본 야쿠자 자금이라는 얘기가 나오고 있는 마당에 중국과 러시아 조폭마저 한국을 자신의 영업장처럼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부산지역 성인오락실 불법 영업실태 및 상납 고리를 추적 보도한 언론이 조폭으로부터 협박을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마저도 벌어지고 있다. 말 그대로 ‘조폭 세상’인 셈이다.
경찰에 따르면 전국에서 200여 조직, 4000여명이 각종 ‘조폭 비즈니스’에 개입하고 있다. 이들 조직은 날로 ‘기업화’ ‘지역화’ ‘세계화’하고 있다. 한국이 동북아 ‘물류 중심’이 되기 이전에 ‘조폭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올 지경이다.
정부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조폭을 뿌리 뽑아야 한다. 전시용 반짝 수사를 펼치기보다는 지속적이고 종합적인 단속으로 조직을 철저히 와해시켜야 한다. 세무당국은 조폭의 자금원을 차단해 이들의 불법적 영리활동의 싹을 잘라야 한다. 정치권 및 수사기관 내에 숨어 있을지도 모를 이들의 비호세력을 척결하는 일에도 주저해서는 안 된다.
조직폭력의 정신적 물리적 위협으로부터 선량한 국민을 지켜낼 수 없는 정부는 제대로 된 정부일 수 없다. 정부가 ‘조폭과의 전쟁’에 나서야 하는 명백한 이유다.
[민노총,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인가] - 11월 11일
화염병, 볼트 너트 등 살상무기를 투척하는 과격시위를 벌인 민주노총이 자숙하기는커녕 3일 만에 총파업을 하고 도심 시위에 나서겠다고 발표했다. 전국 대형 사업장에서 15만명이 참여해 파업과 태업, 작업 거부를 동시다발적으로 벌이겠다는 것이다. 민주노총 지도부에 묻고 싶다. 정말 이래도 되는 것인가.
민주노총의 기자회견문에는 일요일 도심의 폭력시위에 대해서는 한마디 사과도 없다. 사과는커녕 ‘정부당국이 왜 격렬한 도심 시위가 일어났는지에 대해 성찰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매도한다’는 대목에 이르러선 할 말을 잊게 된다. ‘화염병 시위를 옹호할 생각이 없다’는 말은 또 무슨 소리인가. 전경들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고 새총으로 볼트 너트를 쏘는 위험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민주노총이 아닌 다른 단체가 했단 말인가.
총파업 이유에 ‘이라크 파병 반대’는 왜 들어가는지 모르겠다. 노동운동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노동자의 복지와 근로조건의 개선이다. 민감한 외교안보 문제에 민주노총이 섣부르게 끼어들 일이 아니다. 이번에는 철도노조 서울도시철도 인천지하철까지 ‘준법 운행’을 하겠다고 하는데 말이 좋아 ‘준법 운행’이지 시민의 발을 볼모로 잡는 태업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는 시민의 지지를 잃은 노동운동은 결국 어디에서도 발을 붙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민주노총은 경제위기에 대해서도 큰 책임을 느껴야 한다. 권위 있는 경제연구기관들이 한국경제의 성장엔진이 급속히 식어 가고 있으며 산업공동화가 우려된다는 진단을 내놓고 있다. 강성 노동운동은 국가신인도를 떨어뜨리고 일자리를 해외로 내보내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다.
민주노총은 8시간 파업 후 서울 도심에서 1만여명이 참여하는 집회를 벌일 계획이어서 원천봉쇄에 들어가는 경찰과 다시 폭력 충돌이 일어날까 우려된다. 경찰은 폭력시위와 불법파업을 지휘하는 민주노총 지도부에 대해 더 이상 정당한 법집행을 미뤄서는 안 된다.
[공교육은 지금 ‘上京과외’ 중] - 11월 12일
지방고교 교사가 학생들을 이끌고 서울 강남의 학원으로 ‘유학’을 온다니, 이렇게까지 추락한 우리 공교육의 현실이 개탄스럽다. 대입 구술고사와 논술 수준이 너무 전문적이고 특화돼 있어 지방교사들이 다룰 수 없기 때문이라는 설명은 듣기에 안타깝다.
어찌 보면 한계를 인정하고 사교육기관으로 학생들을 넘기는 지방고교가 학생 교육을 포기하다시피 하는 학교보다 나을지 모른다. 서울에서도 학생들이 학원에서 지원 대학별 입시공부를 하느라 학교가 텅 비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아무리 입시교육만이 교육은 아니라 해도 학교의 ‘존재 이유’를 잃은 현실에 대해 교육자들은 자기반성을 해야 할 것이다.
수능 성적을 비관한 고교 3년생들이 자살을 하고, 사교육비와 교육이민으로 가정이 흔들리는 등 문제의 핵심은 부실한 공교육에 있다. 교육인적자원부 간담회에서 학생들이 “사교육비 증가는 학교가 학원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 것은 이를 대변한다. 현재의 대입제도가 오히려 사교육을 부추긴다는 어린 학생들의 발언에 어른들은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학교 교사가 학원 강사만큼 학생들을 이해하느냐”는 항의에선 전인교육마저 실종된 공교육 붕괴 실상이 드러난다.
더 이상 공교육 개혁을 미룰 수는 없다. 교육개혁의 큰 틀은 경쟁력 있는 인재를 기르는 정책전환에서 이뤄져야 하되 당장은 학교와 교사부터 스스로 개혁해야 한다. 물론 우리는 자기계발에 힘쓰는 교사들도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현직 교사들이 학습효율성 극대화와 수업방식 개선에 대해 학원 강사 못지않은 노력을 하고 있는지, 현실과 제도적 한계를 탓하면서 무사안일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다양한 사고능력을 측정하는 수능시험과 각 대학의 전형 방향은 옳다. 그렇다면 학교교육이 이에 맞춰 변화해야 마땅하다. 공교육 종사자들이 우리 아이들에게 더 이상 죄를 짓지 않으려면 공교육부터 제자리에 올려놓아야 한다.
[비효율 예산은 ‘세금 도둑’이다] - 11월 13일
새해 예산안에 대한 국회 심의가 시작되자 각 상임위원회가 증액 경쟁을 벌이고 있다. 합치면 정부안보다 7조원이나 많다. 건설교통위원회에서만도 2조원 이상 늘리려는 모습에서 ‘선심성 지역구 예산 챙기기’의 구태를 다시 보게 된다. 총선을 염두에 둔 ‘선거 운동용’ 성격이 짙다.
예산은 세금이다. 우리 국민의 조세부담은 해마다 늘어 납세자들의 고통이 이만저만 아니다. 국내총생산에서 세금이 차지하는 조세부담률(올해 22.8%)은 일본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사회보험과 연금까지 합친 국민부담률은 이미 작년에 28%에 이르렀다. 4인 가족 가구당 연간 1400만원을 국가에 바친 셈이다.
경제 튼튼히 하기와 나라 전체의 이익을 위해 예산이 효율적으로 배분 투자되고 생산적으로 쓰이면 국민의 세금 고생에 값할 수 있다. 하지만 정권과 특정 정당 및 소수 정치인들의 인기를 위해, 그리고 이에 편승한 지역 이기주의와 정부부처 이기주의를 채우기 위해 왜곡 지출되면 반(反)국민적 세금 낭비가 커진다. 또 예산의 무분별한 증가는 그만큼 민간부문의 투자 여력을 줄여 경제의 활력을 좀먹는다.
그런 점에서 예산이 비효율적으로 편성되면 국민 세금이 도둑맞는 결과가 되며, 정치권의 예산 선심은 국민 전체에게 약이 아닌 독이라는 사실을 납세자와 유권자들은 인식할 필요가 있다. 경실련 등 일부 시민단체가 이 같은 점을 중시해 국회의 예산심의에 대해 펴고 있는 감시활동은 국민의 호응을 받을 만하다. 경실련은 정부의 새해 예산안에서만도 50개 사업 2조원 이상이 낭비성이라며 삭감을 촉구하고 있다.
여야는 밀실 흥정을 통해 예산을 ‘나눠 먹고 끼워 넣는’ 행태를 중단해야 한다. 그보다는 국민의 세금부담을 늘리지 않으면서, 소비성 예산을 줄여 성장잠재력을 높이는 쪽으로 전환하는 노력과 실적을 보여줘야 한다. 언론 또한 국민을 대신해 예산편성에 대한 밀착 감시와 비판적 보도를 강화해야 한다.
♠ 중앙일보 ♠
[대입 修能 횟수 늘려야 한다] - 11월 6일
올해도 수능성적 부진을 비관한 수험생의 자살이 잇따르고 있다. 시험을 잘 못치른 고3 여고생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행위는 당사자와 가족 차원의 불행으로만 여기기에는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수능시험이 생을 포기할 만큼 중요한 것인지, 또 다른 대안은 없었는지 등 수능에 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수능자살이 연례행사처럼 되풀이되는 것을 보면 수능제도가 여러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시행 10년이 된 수능은 대입의 중요한 전형자료로 자리잡은 게 사실이다. 모든 대학과 전문대학이 입시에서 가장 비중있게 반영하고, 기업도 신입사원을 선발하며 수능점수를 확인할 정도로 신뢰성이 높다. 하지만 점차 시험문항이 정형화하면서 학교교육을 암기 위주와 문제풀이 중심의 수업으로 황폐화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수험생의 대학수학능력을 측정해 대학교육을 받을 만한 적격자를 선발하는 기능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도 돌아봐야 한다.
따라서 이제는 수능의 공과를 따져 미비한 점을 보완.개선하는 작업을 서둘러야 할 때다. 가장 시급한 일은 수능 횟수를 늘리는 것이다. 지금처럼 단 한번 시험보고 대학을 선택하는 것은 가혹한 처사다. 시험 당일 수험생의 건강이 안 좋을 수도, 집안에 갑작스레 불상사가 생길 수도, 여학생은 생리적인 현상이 겹칠 수도 있지 않은가. 미국의 경우 대학입학 적성시험을 일년에 7회 실시한다.
올해 들어 수능을 관장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전국 규모의 모의고사를 두 차례 마련한 바 있다. 모의시험의 난이도나 이번 수능의 난이도가 비슷한 것으로 나타난 만큼 교수와 고교 교사들이 한달 이상 합숙하며 출제하는 절차가 꼭 필요하지 않을 듯하다.
또 그간 비축된 2천여개의 문항을 문제은행으로 활용하면 시험을 더 치른다 해도 부작용은 없을 것이다. 수능을 연간 2~3회 실시해 수험생들에게 한결 여유를 주고 좋은 점수를 활용하도록 기회와 편의를 제공해야 한다. 내년에는 부디 수능 때문에 고귀한 생명을 저버리는 수험생이 없기를 고대한다.
[돈 더미 … 너희가 이 분노를 아는가] - 11월 7일
어제 아침 신문을 본 독자들은 제 눈을 의심했을 것이다. 방 한쪽을 그득 채운 돈다발 더미 사진 때문이다. 부정한 방법으로 조성한 비자금을 빌라를 금고 삼아 보관하는 현실 앞에 우리는 허탈감을 넘어 분노까지 인다.
권력과의 음흉한 뒷거래에 쓰인 돈들이 사무실.차 트렁크.안방.베란다를 가리지 않고 넘쳐난다. 그것도 한 번에 적어야 수천만원이고, 보통 수백억원대를 넘나드는 엄청난 떼돈이다. 현찰을 가득 넣었을 때 007가방은 1억원, 골프백은 1억2천만원, 사과상자와 골프채 가방은 2억원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이제 모르는 국민은 거의 없다.
불법 정치자금을 수사하는 검찰이 승용차에 현금 40억원을 싣고 운행할 수 있는가를 현장검증할 정도다. 회사돈을 부정하게 빼돌려 개인자금화하는 일부 기업경영인과 이권을 손에 쥔 정치인들의 음습한 거래가 잇따라 판친 탓이다.
세월이 흐르고 정권이 바뀌어도 달라지는 것이 없다. 오히려 세상이 발전하는 만큼 수법은 더 악랄해지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로 세계 12위라는 경제대국의 공당 사무실이 현금보관소로 쓰인 의혹을 받고 있다.
서울에서 제 집이 없는 서민들이 40%나 되는데도 사람은 살지 않고 악취 나는 돈만 쌓아 놓는 집이 있다. 빌린 돈을 갚지 못한 신용불량자가 3백50만명을 헤아리는데 장롱.서재.화장대 서랍을 열기만 하면 돈과 상품권이 쏟아져 나오는 '요술 가구'를 가진 세무관리가 존재하는 아이러니.
온갖 곳에서 돈 냄새가 진동하는 것은 불법이 판을 치고 있고, 부정한 돈이 그만큼 널려있다는 증거다. 열심히 땀 흘린 대가로 번 돈이나, 꼬박꼬박 세금을 내고 모은 돈은 신성하다. 반면, 손쉽게 돈을 벌어 요리조리 세금을 피해가며 모은 돈은 악의 근원이 된다. 집 없는 서민을 울리는 불법 투기를 엄단하고, 기업 회계의 투명성을 확보해 검은 돈의 탄생을 막는 데 정부는 온 힘을 다해야 한다.
기업가.정치가.공무원들에게 우리는 묻는다. 서민들이 돈다발 사진을 보며 들끓는 분노를 알기나 하는가.
[중소제조업 붕괴 보고만 있을 건가] - 11월 9일
중소기업, 특히 중소제조업의 기반 붕괴를 우려하는 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런 징후들도 속속 나타난다.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조사 결과 중소기업의 평균가동률은 줄곧 60%대에 머물고 있다. 공장 3개 중 하나는 논다는 얘기다. 한은 조사에서는 부도 위험이 높은 상장.등록 중소기업이 1년간 26%나 늘었고, 자금난을 호소하는 곳도 계속 늘고 있다.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란 하소연 속에서 연말이면 내수위주의 중소기업들이 줄도산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공장 매물이 쌓이고 기계를 팔아 달라는 의뢰도 수천건에 이른다고 한다. 대기업의 체감 경기는 호전되고 있고, 제조업 평균가동률은 78.7%에 이른 것을 보면 불황 탓만도 아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위축된 마음이다. 중소기업 경영자 86%가 지금을 위기로 보고 있으며, 대부분 한국을 떠나거나 그도 안 되면 문닫는 문제를 검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1990년대 말 대기업의 20~40%에 불과했던 중기의 해외투자가 올 상반기에는 대기업을 앞질렀다.
한때 '중소기업'은 정부 육성.지원의 1순위였다. 그러나 각종 현안에 밀려 이제는 아예 정책의 관심권 밖으로 밀려났다. 여기다 비싼 인건비와 땅값, 규제와 노사 갈등, 제조업 기피 현상 등이 겹치면서 중소기업이 붕괴 위기에 이른 것이다.
한국 경제의 성장 이면에는 중소 제조업체들의 땀이 숨겨져 있다. 한국 제조업에서 중소기업 비중은 종업원 기준으로 75%, 부가가치는 50%에 이른다. 최근 수출 호조 등에도 불구하고 소비가 꿈쩍하지 않는 것은 중소기업이 서민 경제와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중소기업 기반이 붕괴하게 내버려 둬서는 안 된다. 정부는 인력난과 기술 축적, 일시적 자금난을 도와줄 수 있는 종합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대기업 역시 중소기업과 함께 사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없으면 대기업도 없고, 몇 년 후 우리 일자리도 없고, 한국 경제의 미래가 없다는 점을 더 늦기 전에 깨달아야 한다.
[폭력 시위, 민노총 지휘부 엄단하라] - 11월 10일
그저께 서울 도심에서 열린 민주노총의 전국노동자대회가 폭력시위로 변질된 것은 유감이다. 2만여명의 시위대가 돌을 던지고 새총으로 볼트와 너트를 쏘며 경찰과 충돌하면서 장시간 도심 교통이 마비됐다. 특히 1997년 5월 한총련 시위 이후 6년여 만에 대규모 화염병이 등장해 시가전을 방불케 했다. 도시 게릴라처럼 얼굴에 복면을 하고 경찰을 향해 화염병을 던지는 시위대의 폭력성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되지 못한다.
이래서는 노동자들의 잇따른 분신.자살의 직접적 이유가 된 손배소.가압류의 철회.철폐를 정부에 촉구하겠다는 민주노총의 주장은 외면당할 수밖에 없다. 시위를 주도한 민주노총은 비난받아 마땅하다. 평화적 시위를 벌이려 했지만 경찰이 과잉진압을 해 무력 충돌 사태가 빚어졌다는 민주노총의 주장은 그야말로 적반하장(賊反荷杖)이다. 화염병.복면.쇠파이프가 미리 준비됐고 집회신고 장소인 시청앞 광장을 벗어나 시내 곳곳으로 행진을 시도한 것은 분명한 법 위반이다. 법을 무시하고 폭력을 행사해 놓고도 눈감아 달라니 너무나 뻔뻔스럽다. 민주노총이 철도와 지하철 노조까지 가세시켜 오는 12일 다시 총파업을 강행하겠다고 하니 또 폭력사태가 우려된다.
지금은 민주노총이 노.정 간의 소모적 대결로 산업현장을 뒤흔들고 국민을 불안하게 할 때가 아니다. 노동현장의 분위기가 격앙됐다고 사태를 강경 일변도로 몰아가서는 안 된다. 정부도 국제기준에 맞는 노사관계 개혁의 로드맵을 제시하지 않았는가. 물론 그 내용과 속도에 불만이 있을 수 있다. 그렇더라도 협상과 평화적 시위를 통해 조정해 나가는 것이 정도다. 노동계는 더 늦기 전에 시대착오적 폭력시위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정부는 폭력시위를 준비하고 지시한 세력을 끝까지 추적해 엄단해야 한다. 집회를 개최한 민주노총 지도부에 엄정하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집회에 동참한 한총련과 전교조 등 다른 단체의 위법성도 그냥 지나치지 말아야할 것이다. 불법 폭력을 휘두르는 세력과는 절대로 타협해선 안 된다.
[돈만 쏟아 붓는 농촌대책은 안돼] - 11월 11일
어제 농업인의 날을 맞아 노무현 대통령은 농업부문에 향후 10년간 1백19조원을 지원할 뜻을 밝혔다. 농림부의 세부계획에 따르면 이 돈은 주로 농업의 체질 강화, 농가소득의 안정, 농촌 교육복지시설의 확충에 사용될 것이라고 한다.
과거 중점을 두었던 생산기반 정비 등 인프라 투자는 축소해 간다는 것이다. 자유무역협정(FTA).도하개발어젠다(DDA)의 진전에 따라 개방 압력에 시달리고 있는 우리 농업의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이번 계획에서 보여준 의욕과 정책 방향에 큰 문제는 없다고 본다.
그러나 돈과 계획이 있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성과가 보장된다는 법은 없다. 지난 11년간 농업부문에 들어간 돈은 82조원에 달했지만 아직도 우리 농업은 낙후돼 있으며 농민들은 누적된 부채의 원리금 상환에 영일이 없다.
자금이 지나치게 풍부해지자 생산성이 낮은 부문에까지 돈이 쏟아부어졌고 도덕적 해이가 난무하면서 생긴 결과다. 추곡수매가 결정에도 정치논리 때문에 정책이 우왕좌왕하다 보니 돈은 돈대로 들어갔지만 국민은 여전히 국제시세보다 3, 4배 비싼 값으로 쌀을 사먹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실천에 있어서 경제논리를 무시한 농정은 결국 실패하게 마련이라는 교훈을 정책당국은 철저하게 되새겨야 할 것이다.
1백19조원은 큰돈이며 최대한 효율적으로 사용돼야 한다. 사업의 경제성을 엄격히 따져보고 차주의 신용도를 철저하게 심사한 다음 투자와 융자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정부뿐만 아니라 비농업 민간부문도 농업의 발전과 농촌환경의 개선에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는 것도 필요한 일이다.
예를 들면 정부 쪽에서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농지에 대한 규제를 대폭 완화하는 등 시장원리가 제대로 작동하게 해준다면 민간자금이 자연스럽게 농촌으로 흘러들어가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그만큼 정부 돈은 절약되면서 국토는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될 것이고 농촌의 회복과 농가소득의 향상이 가속될 수 있을 것이다.
[학원 강사가 수능 출제위원이라니] - 11월 12일
수능 언어영역 출제위원에 인터넷 입시사이트에서 활동하는 대학 초빙교수가 포함된 것은 심각한 사안이다. 더구나 그 출제위원의 석사학위 논문 내용과 동일한 지문이 실제로 출제됐다니 어안이 벙벙하다. 출제위원 선정이 잘못된 것은 물론 출제과정에도 하자가 있는 등 올해 수능관리에 허점이 있었음이 드러난 것이다.
대학의 신입생 선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형자료가 바로 수능이다. 수험생들이 학교교육은 뒷전으로 미루고 학원에서 한점이라도 더 높은 수능점수를 따기 위해 발버둥치는 게 우리의 교육현실이다. 이런 판국에 학원가의 유명 논술강사가 수능 출제에 관여했다는 것은 수능의 공정성을 명백하게 훼손하는 일이다.
문제의 강사는 수능 적중 능력이 뛰어나 대입 준비생이면 이름만 들어도 단번에 알 수 있을 정도라고 한다. 이처럼 학원 강사를 데려다 출제를 하니 수능에 대비하려면 교과서로 아무리 공부해도 소용없고 학원이 훨씬 유리하다는 말이 전혀 거짓이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 강사를 출제위원 명단에 넣은 것을 실수라고 해명하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교육인적자원부와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태도는 정말로 몰염치하다.
특히 그 강사가 일한 사이트에는 수능시험 이전에 이미 언어영역 출제진 한명의 전공이 철학이고, 학위논문 관련 내용이 출제된다는 소문이 게재돼 있었다고 한다.
이 사이트를 시험 전에 접한 수험생은 문제풀이에 상당한 도움을, 그렇지 않은 학생은 불이익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정해도 무리가 아닐 듯하다. 평가원 홈페이지에 재시험을 실시하라는 글이 빗발치는 것을 이해할 만하다.
이번 일은 지난 10년간 수능이 별다른 사고없이 실시되면서 교육부와 평가원이 나태해진 탓이다. 정부는 철저한 진상조사를 통해 관련자에 대해 책임을 추궁하고, 출제위원 선정 방식을 개선해 재발을 방지해야 할 것이다. 피해를 본 학생이 없다고 무조건 단정할 것이 아니라 만의 하나라도 그런 사례가 없는지 살펴보는 적극적인 자세도 필요하다.
[난데없는'江南학원과의 전쟁'] - 11월 13일
서울시교육청이 강남지역 학원에 대해 전쟁을 선포했다. 심야교습과 과다한 수강료를 규제할 수 있는 조례가 있으니 단속은 합법적이다. 또 학원의 폐해에 대해 이런저런 사례들이 보도되고 있으니 관련 당국으로서 이를 단속하겠다고 나설 수도 있다.
그러나 바로 직전까지 학원의 불법을 방치해오던 서울시교육감이 갑작스레 학원을 단속하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 모든 학원들이 수강료를 많이 받거나, 심야 강의를 한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데 강남과 서초구 학원만을 골라 단속하겠다니 '강남 죽이기' 코드에 영합하자는 심리는 아닌지 모르겠다.
다른 지역은 규정대로 오후 10시까지 강의하고 학원비를 받으며, 수강인원도 정원을 초과하지 않는다는 말인가. 강남만 단속한다면 그곳에서 논술, 면접.구술시험 준비를 하는 수험생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시험이 내일 모레인 학부모로서는 학원이 문을 닫으면 그보다 더 비싼 개인교습을 시켜야 한다는 현실을 왜 모르는가.
서울시교육감이 학원과 전쟁을 선포할 만큼 사교육의 폐해를 걱정하는 교육자였다면 재임 7년 간 학생이 학원을 다니지 않아도 될 정도로 공교육의 기반을 단단히 구축했어야 한다. 우등생과 열등생이 공존하고, 가르침에는 열의를 잃어버린 선생님들 밑에서는 수능시험 준비가 안되니 학생들이 학원을 찾는 것 아닌가. 고교 학력 저하의 주원인으로 꼽히는 평준화제도를 개선하자는 교육계 안팎의 요구를 외면하는 장본인이 바로 서울시교육감이다. 그는 평등교육을 내세우며 특목고와 자립형 사립고 설립조차 반대해 왔다. 공교육의 하향 평준화 때문에 '학원 전성시대'가 온 것인데 이제와서 학원을 잡겠다니 본말이 전도된 형국이다.
학원과의 전쟁이 반짝 효과는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수요가 있는 곳에 언제나 공급이 있게 마련이다. 공부를 열심히 해 좋은 대학에 가고자 하는 학생이나 부모는 지금 같은 공교육에 만족할 수 없기 때문에 학원은 번창할 수밖에 없다. 지금 할 일은 학원 때려잡기보다 교육의 경쟁체제를 도입하는 것이다.
♠ 한국일보 ♠
[순수성 안보이는 정치자금 개선안] - 11월 6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정치자금 제도개선 방안’을 제시했다. 정치자금 투명화, 지정기탁제 부활, 처벌 강화, 저비용 정당구조 등이 골자다. 정치권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었던 재계의 고충과 정치자금 수사와 관련된 우려가 담긴 이번 제안은 대체적으로 4당이 합의한 정치개혁 방향과 궤를 같이 하는 것으로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 고질적 정경유착의 고리에서 벗어나려는 재계의 단호한 결단도 엿보인다.
그러나 전경련의 제안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곳곳에 결코 순수해 보이지만은 않는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경제단체를 통한 정치자금 배분이나 지정기탁금제 부활은 재계의 정치적 영향력 행사 의도가 간파된다. 현명관 전경련부회장은 지정기탁금제가 부활되면 정치자금이 친기업적 정당에 몰리지 않겠느냐는 우려에 대해 “그럴 가능성이 있다.
그걸 바란다”고 시인했다. 적극적인 의미로는 기업이익을 위해, 소극적으로는 불이익을 막기 위해 정치자금을 냈다가 오늘의 파국에 직면한 재계가 여전히 영향력 행사를 바란다면 결코 국민이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과거 정치자금 관련 위법행위에 대해 전경련은 정치권의 고해성사 및 조사단계를 거쳐 국민동의에 의해 사면하고 정치자금과 관련한 기업 회계처리도 일괄 사면하되 사면대상이 되는 행위에 대해 민사상 책임도 면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문제는 전경련이 언급할 사항이 아니다. 정치개혁이라는 중차대한 수술을 앞두고 공범관계에 있는 재계만은 다치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너무 무리하고 이기적이다.
정치개혁은 정치권의 뼈를 깎는 각성과 함께 재계의 용기와 의지가 뒤따라야 한다. 아무리 좋은 제도를 만들어놓아도 재계가 부당한 정치자금 압력을 받았을 때 ‘NO’라고 거부할 수 있는 용기와 의지가 없으면 정치개혁은 요원하다.
[너무 가벼운 고관님네 입] - 11월 7일
김화중 복지부장관과 이명박 서울시장에 대한 시민?사회단체의 항의와 반발이 커져가고 있다. 참여연대등 여러 단체는 다음 주부터 김 장관 퇴진운동을 벌일 기세다.
‘불신임’의 사유는 의료?복지분야 개혁 부진과 정책 혼선이다. 공공의료 분야를 30%로 확충키로 했으나 예산을 확보하지 못했고, 담뱃값 인상수익금으로 빈곤층을 지원하겠다고 했다가 말을 바꾸었다는 것이다. 직접적인 동기는 포괄수가제 후퇴를 비난하는 시민단체를 무식하다고 매도하면서 시민단체의 인사청탁 사례를 공개한 인터뷰 때문으로 보인다.
동기부분이야 어쨌든 김 장관에 대한 불신은 취임 이후 누적돼 왔다. 포괄수가제만 해도 자주 입장을 바꾸다 전면실시를 백지화하면서 설득노력이 부족했다. 다른 부처와 합의한 사안도 파기해 물의를 빚었다. 취임 직후 돌연 발표한 보육업무의 여성부 이관도 자질 부족을 드러낸 사례로 꼽히고 있다.
이 시장은 윤덕홍 교육부총리를 비롯한 교육 책임자들이 시골출신이어서 서울교육을 모른다고 한 발언 때문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교육부공직협 전교조등 교육단체들의 발언 취소와 공개사과 요구에는 경제관료와 지자체장들의 무분별한 교육 간여에 대한 항의가 담겨 있다. 이 시장은 시 교육청과 협의 없이 영어 체험마을 조성계획과 뉴 타운 내의 특목고?자립형 사립고 유치를 발표, 교육갈등을 조장하고 있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고위 공직자들의 능력과 정책수행 방식은 당연히 공적 감시대상이다. 정책 소비자들은 충분히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이 정부 들어 그런 요구는 더욱 커졌다. 최근의 의사표현 방식이 옳으냐를 따지기보다 왜 비난과 항의를 받게 됐는지를 알아야 할 것이다. 면밀한 정책검토와 일관성 있는 추진, 신중하고 사려깊은 발언을 다시 촉구한다.
[36세에 명예퇴직하는 세상] - 11월 9일
사회적으로 가장 활기 있게 일할 30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금융권에서 시작된 30대 명예퇴직 바람이 전 업종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 제조업체가 사무직을 대상으로 명예퇴직 신청을 받은 결과, 평균연령이 36세였다. 불황이 장기화하면서 명예 퇴직자의 연령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제는 ‘삼팔선(38세도 선선히 퇴직해야 하는 대상)’마저 붕괴되고 있는 상황이다.
통계를 보면 30대가 얼마나 어려운 상태에 있는지 잘 나타난다. 30대 남녀의 신용 불량자 증가율은 7월부터 3개월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9월에는 30대 여성의 증가율이 가장 높았는데, 이는 남편이 신용 불량자가 되면 부인 명의로 카드를 발급받아 사용하다 함께 신용불량자가 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됐다.
실업률도 마찬가지다. 9월에도 30대만 증가세를 지속했다. 얼마 전 LG경제연구원은 ‘청년세대의 경제적 고통 커진다’는 보고서에서 노동시장의 불안에 따른 청년실업의 급등, 부동산 가격 폭등, 치열한 경쟁 등이 청년세대의 사회경제적 입지를 크게 어렵게 만들면서 절망과 좌절을 확산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이것이 오늘날 30대의 위치다.
30대는 사회의 허리에 해당한다. 허리가 약해지면 제대로 설 수가 없다. 기업들은 당장 비용절감 차원에서 30대를 구조조정하지만 이는 조금만 길게 보면 경쟁력 약화로 직결된다. 핵심인력이 빠져나가는 것은 물론이고, 남아있는 사람들에 대해 최선을 다해 일하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에 가깝다.
고령화 문제에 못지않게 30대 문제를 신경 써야 할 때가 됐다. 재정경제부는 ‘인구 고령화 현황 및 정책대응 방안’ 자료에서 정년을 연장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더 시급한 것은 무너지는 30대를 바로 세울 대책이다.
[화염병으론 문제 못푼다] - 11월 10일
일요일인 9일 서울 도심에서 벌어진 화염병 시위로 위태롭게 유지돼 온 집회?시위의 평화가 완전히 깨졌다. 노동자대회를 주관한 민주노총은 경찰의 과잉대응과 강경진압을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집회 신고지역에 관한 약속을 어기고 폭력시위를 벌인 것은 잘못이다.
화염병은 시청 앞을 벗어나 광화문 일대까지 진출하는 노동자들을 경찰이 저지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 수많은 화염병이 현장에서 만들어졌다고 볼 수는 없다. 중앙조직 차원에서 계획적으로 준비한 바 없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자체 단속과 점검이 부족했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화염병과 쇠파이프, 금속 볼트 너트를 이용한 새총 공격에 경찰이 강경하게 맞서 양측은 물론 일반시민들까지 많은 사람들이 다쳤다. 폭력의 결과는 폭력과 증오의 악순환일 뿐이며 폭력성이 부각될수록 얻고자 하는 것은 더 멀어진다. 12일의 총파업, 15일의 범국민대회, 19일 농민대회 등 앞으로 예정된 집회에 대한 우려도 더욱 커지고 있다.
경찰은 신고된 집회에 경찰력을 배치하지 않고 무차별 검문 검색도 하지 않는다는 자율적 집회시위 관리지침을 5월 1일의 전국노동자대회부터 적용해 왔다. 지침은 결국 공염불이 됐지만, 그 취지마저 퇴색시켜서는 안 된다.
경찰이 1998년 9월 이후 중단된 최루탄의 사용을 다시 검토하겠다고 했을 때 모든 언론이 비판한 것은 평화적 집회?시위의 정착을 바랐기 때문이었다. 화염병에 대응하는 수단으로 최루탄이 등장하는 명분과 빌미를 주는 것은 분별없는 일이다.
손배소?가압류 문제, 비정규직 문제는 폭력으로 해결될 수 없다. 정부와 재계, 노동계의 더 진지한 해결노력이 필요하다. 노동자들의 절박함과 정부에 대한 배신감은 이해되지만, 법규와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현안일수록 비폭력적인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불법자금 요구 수용한다면] - 11월 11일
대한상공회의소가 자산이 2조원 넘는 41개 기업집단을 대상으로 실시한 ‘정치자금에 대한 기업인 인식’ 조사 결과는 정치권과 기업인의 발상의 전환이 불가피함을 일깨운다. 기업이 정치자금을 제공한 가장 큰 이유는 불이익을 막자는 것으로 전체의 63%에 달했다. 반면 반대 급부를 기대한 것은 3%에 불과했다. 기업들의 변명이나 자기 합리화가 어느 정도 가미됐겠지만, 권력이 기업 경영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검찰의 수사로 해당 기업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향후 정치권의 부당한 자금 지원 요청에 절반 가까이가 계속 응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힌 점은 주목된다. 정경유착의 관행이 얼마나 뿌리가 깊고, 그래서 버리기가 쉽지 않다는 점을 기업 스스로가 인정한 셈이다. 이는 또 정치자금에 대한 개혁이 바람직하지만 실현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최근 한 여론조사의 결과와도 맥락을 같이 하고 있다.
어쩌다가 이런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는지 안타깝다. 수없이 되풀이되어 온 개혁이 결국은 용두사미로 끝났던 과거의 결과가 이를 웅변한다. 정치권과 재계가 위기 국면을 ‘말로만 개혁’으로 넘겼고, 실망과 분노를 거듭한 국민들은 이제 더 이상 기대하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른 것이다.
이번 상의 조사를 보면 정치자금 성격은 보험성이 강하다. 기업경영을 권력에 의지하려는 극심한 도덕적 해이를 기업 스스로가 자초하고 있다. 이는 마치 돈을 받고 안심하고 장사할 수 있도록 뒤를 봐주는 조직 폭력배의 행태와 하등 다를 바가 없다. 입으로는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정반대 행동을 정치권이 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이번 조사가 시사하는 의미가 그렇다.
[전철 밟는 農政은 안 된다] - 11월 12일
2004년부터 10년간 농업?농촌에 119조원을 지원하겠다는 정부의 계획은 솔직히 기대보다는 우려를 먼저 갖게 한다. 최근 논의가 활발해진 자유무역협정(FTA), 새로운 다자간 무역협상인 도하개발아젠다(DDA), 2004년의 쌀 재협상 등 발등의 불이 코앞에 닥친 시기에, 그것도 농업인의 날(11일) 기념식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밝힌 청사진이라 그 절박성을 납득하면서도 계획의 실현 가능성과 효과에 대해서는 회의를 떨칠 수 없다.
한?칠레 FTA 비준안이 국회에 상정돼있고 이에 반대하는 농민들의 대규모 시위가 예고된 시기에 나온 것이라 분노한 농심(農心) 무마용이 아닐까 하는 오해의 소지도 없지 않다. 정부의 정책의지를 순수하게 받아들인다 해도 과연 농업구조조정을 통한 농업체질 강화라는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지 믿음을 갖기 어렵다. 그 많은 돈을 쏟아 붓고도 농촌의 황폐화를 막지 못한 과거의 실패가 너무도 생생하기 때문이다.
농업 개방파도가 일기 시작한 우루과이라운드(UR)이후 10년간(1993~2002년) 정부는 농업구조조정을 위해 62조원을 투입했지만 결과는 25조원이라는 빚더미 위에서 시름하는 오늘의 농촌으로 나타났다. 그 많은 돈이 정작 필요한 농민들에게는 돌아가지 않고 지역유지의 주유소, 모텔 건설비용 등으로 유실되는 것을 보아온 국민으로서는 119조원이라는 막대한 돈이 정말 용처에 맞게 제대로 쓰일까 걱정하는 것은 당연하다.
농업은 포기할 수 없다. 농촌의 황폐화를 방치해서도 안 된다. 진정 농업?농촌을 회생시키려면 보다 정치(精緻)한 계획이 제시되어야 하며 지원자금의 쓰임새를 철저하게 관리하는 장치가 마련되어야 한다. 우연이겠지만 화재신고 전화번호와 같은 119조원이라는 천문학적 규모의 국민 혈세가 분노한 농심 진화용으로 쓰이지 않길 바란다.
[학생부 제작 거부 옳지 않다] - 11월 13일
대입 수능시험이 끝나고 정시모집 전형일정을 눈 앞에 둔 시점에서 전교조가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문제를 들고 나온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서울대 연세대 등 경인지역 일부 대학이 NEIS로 처리된 학생생활기록부만 전형자료로 접수하겠다는 방침을 밝히자, 전교조는 독단적인 결정이라고 반발하면서 기록부 입력과 CD 제작을 거부하고 나섰다. 또 NEIS 문제 협의를 위한 국무총리 산하 정보화위원회에서도 탈퇴하겠다고 위협하고 있다.
결론부터 말해 우리는 전교조의 기록부 제작 거부는 교사로서의 본분을 망각한 처사라고 본다.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그들의 상급학교 진학을 지도하고 도와주는 일이 교사의 직무다. 그러므로 아무리 합당한 이유가 있다고 해도 대학입시의 중요한 전형자료 제작을 거부한다는 것은 직무유기다. 전교조가 말하는 학생 인권이 그렇게 소중하다면, 그들의 학습권은 그렇게 짓밟혀도 좋은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전교조 주장대로 NEIS 체제에 불필요한 교무사항과 보건 관련 항목 등 인권침해 요소가 있다는 것은 정부도 인정하고 있다. 그래서 총리 산하에 협의기구를 만들어 개선안을 논의 중인데, 이제 와서 탈퇴위협을 가하는 것은 다수의 힘을 이용한 횡포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전교조가 진정으로 참 교육을 주장한다면 학생들에게 좀 더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권하고 싶다. 엊그제 교육인적자원부 간담회에서 학생들이 쏟아낸 불평에 교육자들은 부끄러워해야 한다. “학생 개개인에 대한 관심과 배려에서 학교는 학원과 비교도 안 된다”는 한 학생의 말은 오늘의 학교 현실에 대한 고발이다. 학생들 입에서 그런 말이 터져 나오는데, 대학입시 업무를 거부하는 것은 교사이기를 포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 한겨례 ♠
[젊은 죽음 부른 ‘수능' ] - 11월 6일
진학시험에 불과한 대학 수학능력 시험 성적에 모든 것을 걸고 새벽녘까지 학원을 찾아 헤매는 이 나라의 청소년들은 불행하다. 그들에게 즐거움이어야 할 배움이 우울한 질곡과 고통을 의미하는 이 사회는 비극적이다. 자율과 생명을 죽이고 타율과 죽음이 지배하는 출구없는 ‘입시 지옥’에서 가쁜 숨을 몰아쉬는 젊은 생명의 모습은 처절하다. 이들은 최후의 순간에 기성세대의 줄세우기를 거부하고 죽음으로 항거한다. 한 조사를 보면 우리 사회 젊은이들 대다수가 한번쯤 자살을 생각해보지 않은 적이 없다고 답해 위험 수위에 이른 ‘반생명적 현실’을 보는 것같다.
올해도 젊은 수험생들이 수능 시험을 잘못 치렀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이어지고 있다. 참으로 안타깝고 슬픈 일이다. 수능 당일인 그제 1교시 시험을 마치고 곧바로 고사장을 빠져나온 전북 남원의 한 여학생이 인근 아파트 옥상으로 달려가 몸을 날리더니 어제 새벽에는 잠든 부모 몰래 집을 나온 한 여학생이 아파트 옥상에 올라가 슬픈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짧은 생을 마감했다. 죽음을 앞둔 순간에도 이들은 시험지 또는 친구에게 보낸 문자 메시지를 통해 사랑하는 마음을 남겼다고 하니 어른된 처지로 부끄럽기만 하다.
죽음을 택한 이들은 이 사회가 대학, 특히 명문대를 나와야만 행세하는 살벌한 학벌사회라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벌써부터 이런 세상에서 자신들이 살아갈 길이 안보인다고 알아차렸기 때문일까. 학벌사회가 득세하는 속에서 이런 안타까운 죽음들에 아랑곳 하지 않고 입시를 향한, 경쟁위주의 교육은 좀처럼 개선되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다. 비극이 되풀이되어도 교훈을 얻지 못하는 뒤틀린 현실 앞에서 또 얼마나 많은 젊은 목숨이 바쳐져야 하는가. 나름의 소질과 가능성이 부정당한 채 던져진 젊은 그들의 죽음 앞에서 우리 모두 부끄러워하고 자성할 때이다.
[전경련 ‘제안’ 문제많다] - 11월 7일
전경련이 내놓은 ‘정치자금 제도 개선방안’에는 경청할 대목이 적지 않다고 본다. 20만원 이상을 기부한 사람의 이름과 금액을 공개하고 정치자금법을 어기면 기부자와 정치인 모두 무조건 처벌하자는 제안 등이 바로 그것이다. 그대로 현실화한다면 정치자금의 투명성을 높이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약화시키는 등 정치권과 재계의 일그러진 모습을 바로잡는 데 한몫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몇몇 대목은 문제가 많다.
먼저 지정기탁금제를 부활하자는 것은 재계의 정치권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다른 방식으로 지속하려는 의도로서 자칫 ‘금권정치’를 합법화하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그간의 관행 등에 비춰 재계 입맛에 맛는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합법적으로 돈을 더 몰아주고 반대급부를 챙기려는 것 아니겠는가. 경제단체를 통해 정치자금을 배분하는 것도 비슷한 문제가 있다.
특히 이전의 불법 정치자금 제공과 관련한 기업들의 분식회계 등을 전면 사면하고, 특별법이라도 만들어 민사책임까지 면제시켜야 한다는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 이는 과거 불법 행위에 대해 전경련이 정치권한테 고해성사와 검찰 조사를 거친 뒤 국민동의로 사면을 받으라고 요구하는 것에 견줘 우선 형평에 어긋난다. 또한 전경련의 이런 주장에는 정치권 압력이 무서워 재계가 어쩔 수 없이 불법 자금을 제공했다는 논리가 깔려 있다. 자신들은 ‘희생양’이라는 투다. 만일 그렇다면 정경유착이 우리사회에서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재계가 대가를 노리고 검은 돈을 댄 경우가 대부분 아니겠는가.
전경련이 정치개혁과 관련해 제법 괜찮은 내용이 담긴 제안을 하고서도 ‘진정성’에서 의구심을 유발하는 것은 이런 탓이 크다. 불법 정치자금을 제공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여러 차례 어겼으니 말이다. 그런 만큼 재계가 자신들의 주장에 설득력을 확보하려면 과거 잘못에 대해 무조건 면죄부를 요구할 게 아니라 진솔하게 밝히고 반성하는 자세부터 보여야 한다.
[‘취재 협박’은 언론 자유에 대한 도전] - 11월 9일
부산 지역 성인오락실 불법 영업 실태와 검·경 상납 비리를 보도 중인 〈한겨레〉 취재진에 대한 정체불명 집단의 대담한 ‘테러’가 방치되고 있어 검찰 등의 수사 의지를 의심케 한다. 취재차의 바퀴가 잇따라 예리한 흉기로 찢기는가 하면, 취재진에게 협박전화가 걸려와 “얼굴을 잘 기억하고 있다” “가족들도 조심시켜라”는 등 공공연한 협박 행위가 당국의 단속 와중에서도 버젓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런 취재 방해 협박은 한겨레가 한달반 전부터 사전 취재를 마치고 핵심 영역이자, 이들 불법 오락실의 업주인 조직폭력배 두목들에 대한 본격적인 밀착 취재로 옮겨가면서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현지 업계에서는 언론 보도로 인해 전체 폭력 조직의 ‘영업 피해’가 예상을 웃도는 큰 규모에 이르자 이를 보복하려고 ‘위해 행위’를 꾸미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 사례로 13개의 대형 불법 오락실을 운영 중인 한 폭력조직의 경우 하루 1천만~2천만원씩 총 20억원의 매출 손실을 입었다고 한다. 몇 해 전 뇌물을 거부하고 단속을 강행하던 한 경찰관이 폭력배들한테 뭇매를 맞고 단속이 흐지부지됐던 사례를 들어 이번에도 일부 조직이 언론 보도를 중단시킬 목적으로 등 뒤에서 협박을 한 것으로 의심하는 사람도 있다.
이런 범죄행위는 언론자유에 대한 중대한 침해일 뿐만 아니라, 법 질서에 대한 공공연한 도전 행위로서 결코 묵과되어서는 안 된다. 성인오락실에서 나오는 불법 자금은 보통 조직폭력배들의 주요 자금원이 되었다가, 다시 마약과 밀수 등 더 큰 범죄를 저지를 종잣돈으로 쓰이게 된다. 언론이 심층 보도를 통해 이를 막는 것은 공익적으로 정당한 것인만큼 법의 철저한 보호를 받아야 할 일이다. 이런 공공연한 위해 행위가 발붙이지 못하게 검·경은 확실하게 민생치안의 각오를 다져야 할 것이다.
[무리한 파병 요구 단호히 거절해야] - 11월 10일
미국은 지난주 열린 이라크 파병 관련 한-미 협의에서 독자적인 작전 능력을 갖춘 대규모 전투병력 파견을 강력하게 요청해, 비전투병 중심의 파병안을 들고간 우리 대표단과 의견이 크게 엇갈렸다고 한다. 협의단 수석대표였던 이수혁 외교통상부 차관보는 “한국은 평화·재건을 위한 3천명 규모가 적절하다고 판단했고, 미국은 안정화 작전을 위해 더 큰 규모의 파병을 기대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오늘 노무현 대통령 주재로 열리는 안보관계 장관회의에서 파병 문제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이라크 파병 문제는 갈수록 우리 정부에 큰 짐이 되고 있다. 이는 모두 지난달 18일 섣부르게 파병 결정을 내린 데 기인한다. 당시 정부는 파병 결정 이유로 “우리의 국익, 한-미 관계, 유엔 안보리 결의 등 제반 사항”을 꼽았지만 어느 것도 설득력이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지난 여름부터 상승 곡선을 그려온 미군과 현지 저항세력 사이의 무력 대결은 이제 거의 전면전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이에 따라 점령군 일부가 될 대규모 전투병력을 바라는 미국의 요청도 더 강해지고 있다. 이런 파병에 어떤 국익이 있단 말인가 역시 미국으로부터 대규모 파병 요청을 받았던 인도·파키스탄·방글라데시·터키 등은 미국과의 관계를 경시하고 국익이 뭔지도 몰라서 파병을 거부하거나 파병 결정을 거둬들인 것인가
파병 문제의 ‘원점’은 파병 결정을 철회하는 것이다.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파병 요청이라면, 당장에는 불편하더라도 정중하게 거절하는 게 건설적인 한-미 관계 구축에 훨씬 도움이 된다. 만에 하나, 파병 문제를 재검토한다면서 미국의 요청 쪽으로 슬며시 끌려들어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는 건 물론이다. 그저께 돌아온 2차 이라크 정부 합동조사단은 이라크 각계 인사들이 전후 복구지원을 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현지인들이 복구 지원을 바란다면 이후에 민간 지원단을 보내도 아무 문제가 없다.
[평등권에 둔감한 대학들] - 11월 11일
서울대를 비롯한 일부 수도권 대학 10여 곳이 그저께 2004학년도 대학 정시모집을 코앞에 두고 교육행정 정보시스템(네이스)으로 된 전형자료만 받겠다는 공동 발표를 해 큰 물의를 빚고 있다. 물론 일부 대학의 이런 조처로 이번 입시에 큰 혼란이 일어날 것 같지는 않다. 콤팩트디스크(시디) 제작용 생활기록부를 제출하지 않은 학교가 전국 2050개 고교 가운데 39개교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 대학의 일방적 발표는 위헌적 행위였다는 점에서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아무리 적은 수험생이라 하더라도 생활기록부를 시디로 내지 않고 수기나 출력물로 냈다는 이유만으로 정시모집에서 해당 수험생을 차별하는 것은 기회균등 원칙을 원천적으로 부인하고 헌법상 평등권을 정면으로 유린하는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전형자료 제출 책임은 해당 학교에 있는 것이지, 개별 학생에게 그 책임을 물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생활부를 시디로 담아 제출하면 행정처리가 편리해지므로 행정력이 그만큼 절감되는 측면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것이 수험생들의 ‘평등권’을 무시하면서까지 추구해야 할 가치가 아님은 대학 당국이 더 잘 알 것이다.
다행히 전국교직원노조가 이에 강력 항의하는 등 일선 교사들이 문제를 제기하자 교육부에서 네이스 자료 이외의 자료를 제출하더라도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조처하겠다며 진화에 나섰다. 우리는 교육부의 조처와는 별도로 말썽을 일으킨 대학들이 잘못된 결정을 스스로 철회하는 것이 대학으로서 올바른 자세라고 생각한다. 평등권 침해도 그렇거니와, 전교조의 지적대로 애초 대학들에 입학 사정자료의 형식을 결정해 학교에 요구할 권한은 없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 네이스 파동 때 제기된 여러가지 문제들을 교육정보화위원회가 연말께 조정·결정하기로 한 바 있다. 이런 마당에 일부 대학들이 이런 섣부른 결정을 한 것은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음을 거듭 강조한다.
[수능시험, 이런 방식으론 안된다] - 11월 12일
현직 학원강사가 올 수능시험의 출제위원이었으며, 그의 석사논문이 철학 지문의 내용과 비슷한 것이었다는 믿지 못할 사실이 밝혀졌다. 학원강사이자 한 대학의 초빙교수인 그에 대해서는 수능시험 전부터 출제위원이라는 소문이 나돌았다니 참으로 어이없는 일이다. 이는 수능시험의 공정성과 신뢰성에 막대한 타격을 준 것일 뿐 아니라 시험결과를 놓고도 엄청난 반발이 예상된다. 당장 재시험 요구 등이 불거져 나올 것으로 보여 파문이 일고 있다.
수능시험 주관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이 출제위원이 학원강사인 줄 몰랐을 뿐 자격에는 문제가 없었다고 주장한다. 그리 어물어물 넘어가도 될 일인가. 지금 온 국민이 사교육비로 몸살을 앓고 부동산 문제까지 연결되어 국가적인 대책을 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나라에서 치르는 시험은 학교교육 과정에 충실한 문제를 출제하므로써 공교육에 중점을 두도록 해야 하는 것이 제일차 목표여야 한다. 학원강사인지 아닌지는 기본적인 검증 대상이어야 한다. 입시학원의 스타급 강사이고 입시 관련 참고서도 세 권이나 낸 사람을 걸러내지 못했다는 게 말이 되는가. 출제위원 선정과정에서 누가 어떻게 그를 천거했는지도 밝혀야 하고, 본인의 해명도 있어야 할 것이다. 교육부도 수습대책을 시급히 세우는 한편, 수능시험 관리 전반을 감사해야 한다.
수능시험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것은 확실해졌다. 며칠 전 교육부에서 열린 공청회에서 고교생들은 수능시험을 자격고사로 바꿀 것을 요구했다. 또한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는 문제를 학원에서 가르쳐주고, 그런 문제가 시험에 출제되니까 학원에 매달리게 된다고 정확하게 문제점을 지적한 바 있다. 학교교육은 내신용, 학원교육은 수능시험용으로 이미 규정되어 있다는 이야기다. 학교교육을 바꾸든지 수능제도를 학교교육에 맞추든지 수능시험의 성격에 대한 일대 전환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주 노동자 강제출국 재고하라] - 11월 13일
한나라당은 여전히 재벌개혁에 별 관심이 없는 모양이다. 심하게 말하면 한나라당은 지금의 재벌체제를 존속시키면서 공생관계를 지속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지 않고서야 증권 집단소송제 도입과 출자총액 제한제 폐지 등을 연계해 추진하겠다는 발상을 할 수 있겠는가. 이들 정책이 추구하는 목표가 많이 다른데도 한가지 제도를 도입하는 대신 다른 제도를 폐지하겠다는 게 무엇보다 상식으로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한나라당이 제시한 증권 집단소송제 자체가 유명무실한 제도가 될 가능성이 크지 않은가.
증권 집단소송제는 개별기업이 분식회계, 허위공시, 주가조작 등의 잘못을 저질렀을 때 사후적으로 규제할 수 있는 장치다. 기본적으로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기 위한 것이다. 반면, 출자총액 제한제는 소수의 지분밖에 보유하지 않은 재벌총수가 계열사 출자를 통해 가공할 지배력을 행사하면서도 제대로 책임은 지지 않는 소유지배구조를 개선하려는 최소한의 사전적 조처다. 재벌그룹의 경제력 집중을 억제하는 것도 중요한 목표다. 둘 다 재벌개혁에 필요한 제도이긴 하지만 이처럼 정책목표가 상이해 도입과 폐지를 연계하는 것은 아귀가 맞지 않는다.
회계제도 개혁방안 도입과 공정위 계좌추적권 폐지도 마찬가지다. 외부감사법 개정 등 회계제도 개혁은 기업회계 투명성을 높이고 증권시장 선진화를 위해 집단소송제와 함께 시행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공정위 계좌추적권은 재벌그룹의 부당 내부거래에 적용되는 것이어서 직접적인 연계성을 찾기 어렵다. 한나라당도 이런 점을 전혀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 제도의 주고받기식 도입-폐지를 내세우고 있으니 재벌 비호당이라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이 재벌개혁을 외면하지 않는다면 이들 제도를 모두 도입·시행하도록 하되, 특히 제구실을 할 수 있는 집단소송제를 만들게 해야 한다.★★★ 강제 출국을 앞둔 이주 노동자들이 줄이어 자살한 충격적인 사건이 벌어졌다.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에 와서 4년 동안 힘든 노동에 종사하다 결국 자살로 꿈을 접은 스리랑카와 네팔의 30대 두 노동자의 비극은 바로 한국의 비극이다.
두 외국인의 자살은 사실 충분히 예상됐던 참사였다. 그러기에 외국인 고용법안이 지난 7월 말 국회를 통과했을 때 우리는 ‘4년 이상 불법 체류자’에 대한 강제 출국이 불러올 파장을 우려하면서 정부의 ‘정책적 보완장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런데도 정부는 법안 통과 뒤 ‘법대로’만 외치는 강경책으로 일관했다. 두 노동자가 자살했는데도 전국에 50개 전담반을 편성해 대대적 단속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전혀 굽히지 않고 있다. 물론, 정부로서는 법이 제정된 상황에서 법에 따라 행정을 펼 수밖에 없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법 제정 뒤 지금까지 노동계와 인권단체가 제기한 문제점들을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보이지 않은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출국을 앞둔 상황에서 체임이나 ‘수속 비리’ 등이 해결되지 못한 노동자도 적지않은 실정이다.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더해 인권유린에 시달린 이주 노동자들을 벼랑으로 몰아 결국 죽음에 이른 것은 국제적으로 대한민국의 이미지를 크게 깎아내리는 일이다. 더구나 반월·시화공단 중소기업 대표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말을 잘하는 4년 이상 숙련된 노동자들을 강제로 추방해 상당수 기업들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고 한 것을 보면 정부의 ‘법대로’ 정책이 얼마나 현실과 동떨어졌는지를 짐작할 수 있다. 두 이주 노동자들이 자살로 외친 호소에 정부는 진지하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 외국인 노동자의 인권을 위해서는 물론이고, 중소기업들이 처한 어려운 상황을 감안할 때 더욱 그렇다. 정부는 지금이라도 강제출국 강행을 재고하고, 이주 노동자 정책을 좀더 현실적이고 개방적인 방향으로 수정하기를 거듭 촉구한다.★★★ 한국군 서희·제마 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곳에서 불과 20㎞ 떨어진 이라크 나시리야에서 이탈리아 병력이 차량 폭탄 공격을 당해 현지인을 포함해 수십명이 숨지는 참사가 일어났다. 특히 이번 사건은 비교적 치안이 안정된 것으로 얘기돼온 남부 지역에서 일어난데다 미군 아닌 외국군을 노린 첫 대형 공격이라는 점에서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다.
미국 중앙정보국도 밝혔듯이 이라크 치안 상황은 수도 바그다드와 그 주위는 물론, 북부와 남부에서도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미군정과 과도통치위원회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떨어진 만큼 저항세력에 대한 지지가 늘어나는 등 정치 상황도 암울하다. 이라크 전역이 거의 전쟁 상태에 빠지자 군사 전문가들은 사담 후세인 전 이라크 대통령 쪽이 오래 전부터 준비해온 게릴라전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는 분석까지 내놓고 있다.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다급해진 조지 부시 미국 행정부는 그 이전에 총선 등을 통해 이라크인에게 권력을 넘기는 안을 마련했다고 하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공병·의료가 중심인 서희·제마 부대는 현지인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또 민가에서 상당히 떨어진 벌판에 주둔하고 있어 위험성이 아주 낮다고 정부 관계자들은 말한다. 하지만 이동 중에 공격받을 수도 있는 등 섣부르게 안전을 장담할 상황은 아니다. 미군에 협조하는 외국군에 대한 적대감은 이라크 저항세력뿐만 아니라 평범한 시민 사이에서도 커지고 있다고 한다. 미군과 저항세력의 대결이 계속되는 한 어떤 외국군도 공격 대상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이번 사건은 보여준다.
희생을 감수하면서까지 재건 지원을 해야 할 이유는 없으며, 서두를 일도 아니다. 이라크인에게 권력이 넘어간 이후에 민간 지원단을 보내도 충분하다. 정부는 추가 파병 결정 철회와 함께 서희·제마 부대의 철수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