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정체성은 작곡사역자다.
나에게 여러 가지 재능과 관심사와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들이 있지만,
그 모든 활동들은 모두 주님을 위한 곡을 쓰려는 작곡가로서의 정체성에 연결되어 있다.
솔직히 말해서, 나의 작곡자로서의 정체성에도 불구하고 정작 나는 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음악 사역자가 되어
교회로부터 재정을 받아서 생계를 해결해오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전혀 내가 예상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생계를 위해 곡을 쓰는 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작곡된 곡들을 통해 생계가 자연스럽게 해결되기 원한 것은 사실이었다.
내가 기억하는 한 내가 음악활동을 통해 처음으로 수입원이 생긴 것은 컴퓨터 음악 프리랜서를 할 때 받은
편곡/연주비였다.
그 이후 내가 후배의 곡에 붙여준 가사가 어떤 CCM 사역자 음반에 실리면서 받게 된 소정의 작사료가 한 번 있었으며,
그 후 동역자들과 함께 '프레이즈 캠프(Praise Camp)'라는 프로젝트 그룹 활동을 할 때 몇 번의 초청 공연을 하고
사례를 받은 것 몇 번이었다.
나의 자작곡이 실린 음반들은 1997년과 2002년에 출시되었지만, 널리 알려지지 않았기에 음반 수익금이나 작곡에 대한
저작권료를 받은 일은 전혀 없었다.
나의 고정 수입은 오히려 2003년 가을부터 시작된 교회에서의 음악사역을 통해 이루어졌다.
예배 인도는 주로 아내가 하고 나는 그 교회에 아직 정식 연주자가 없는 여러 악기들을 모두 연주했다.
작곡을 하는 사역자는 3가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데,
첫 번째는 예배 인도자이며,
두 번째는 음반 프로듀서나 뮤직 디렉터이고,
세 번째는 연주자나 편곡자인데, 나의 주된 수입원은 오히려 내가 가장 자신 없어 했던 연주사역을 통해서 왔다.
전문 세션들과 비할 실력은 분명 아니지만, 더 좋은 작곡자가 되기 위해 여러 악기들을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은
늘 배워왔던 것이, 알려진 곡 없는 작곡자의 플랜 B처럼 된 것이었다.
아내와는 다른 교회에서 단독으로 사역하게 된 2009년부터는 어쩔 수 없이 나의 정체성 순위의 3,4위 정도인 '예배
인도자'사역을 하게 되었다.
나의 보컬이 풍성하고 카리스마 있는 리드 보컬은 아닌 것은 잘 알기에 가장 부담되는 사역은 언제나 예배인도였다.
그동안 사역했던 모든 교회들에 풀 밴드가 갖추어지지 않았기에, 나는 예배를 인도하면서 어떤 악기 하나를 온전히
책임져야 했다.
때로는 예배를 인도하는 찬양전도사처럼 되고 때로는 연주자처럼 되어 여러 가지 모습으로 다양하게 사역을 해올 수밖에
없었지만, 그 모든 다양성은 내가 작곡자라는 사실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관되게 증명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잘 안다.
나의 정체성이 만약 교회사역자, 즉 교역자였으면 지금껏 굳이 신학을 안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를 필요로 하는 교회나 주님께서 보내시는 교회에 파송 받아 가서 사역하는 음악가일 뿐이다.
나는 더 정확하게는 음악사역자로서의 정체성도 아니고 주님을 위해 살아가고 싶은 음악가일지도 모른다.
나는 마치 교역자들처럼 말씀을 매일 깊이 읽고 묵상하며, 예배사역자들처럼 예배에 대해 깊은 영성을 추구한다.
또한 나는 악기 세션들처럼 국내외의 여러 훌륭한 연주자들의 음악을 듣고 배우고 있으며, 여러 악기들에 대해 관심이
많다.
또한, 마치 음악전공자인 것처럼 음악이론과 악기론과 독보도 공부해오고 있다.
또한, 마치 음반기획자처럼 여러 음반들의 출시와 제작에 대해 늘 새로운 소식을 접하며,
음악평론가들처럼 음악 사역자들과 음반들의 리뷰도 열심히 하고 있다.
그리고, 마치 보컬리스트인 것처럼 여러 가수들을 들으며 발성을 연구하고 공부하며,
스튜디오 엔지니어나 프로듀서처럼 녹음장비와 여러 음악 소프트웨어와 컴퓨터들에 대해서도 공부를 한다.
또, 마치 음반 자켓 디자이너처럼 음반 디자인과 사진과 그림에도 관심이 많다.
만약, 주께서 주신 작곡자로서의 정체성이 불확실했다면 이 모든 다양한 재능과 관심들은 오히려 나를 어느 하나에도
제대로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어서 나를 이도저도 아닌 애매한 사역자로 만들었을 것이다.
또한, 작곡으로 인해 아무 수입이나 활동이 없을지라도, 개의치 않고 1986년부터 지금까지 계속 주님을 위한 곡을
만드는데 전심을 기울이게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에게 일관된 정체성이 있다면, 다른 여러 다양한 사역들을 하나로 묶어 오히려 상승작용을 할 것이지만,
일관된 정체성이 없이 자기 스스로의 재능과 관심사에 다른 사람들이나 교회의 요구에 따라 휘둘린다면
오히려 다양한 사역들은 자기에게 큰 해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