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의 역사
양치기 소년의 발견설
아주 오랜 옛날(7세기경으로 추정)아프리카의 에티오피아에서 양치기 소년 칼디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칼디는 자기가 기르고 있는 염소들이 흥분하여 잠을 자지 못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동안 얌전했던 염소들이 갑작스레 흥분한 모습을 본 칼디는 그 뒤로 염소들의 행동을 주의 깊게 관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염소들이 주변에 있는 어떤 나무의 빨간 열매를 따 먹었을 때 이러한 현상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칼디는 곧 이러한 사실을 가까운 이슬람 사원 승려에게 알렸고 이에 승려는 여러 가지 실험을 거쳐 그 빨간 열매에 잠을 쫓는 효과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 뒤로 커피는 곧 여러 사원으로 퍼져나갔고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고 합니다.
오르마르 발견설
칼디의 전설과는 달리 아라비아의 이슬람교 승려인 셰이크 오마르가 커피를 처음 마신뒤 전파되었다는 오마르 발견설이 있다. 이에 따르면 1258년 아라비아의 승려 셰이크 오마르(sheik omar) 가 문책을 당해 아라비아의 오사바산으로 추방된 뒤, 배고픔에 못 이겨 산속을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다가, 우연히 한 마리의 새가 빨간 열매를 쪼아 먹는 모습 을보고 그 역시 열매를 따 먹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오마르는 이 열매가 피로를 풀고 심신에 활력을 되살아나게 한다는 사실을 알아내었다. 그 뒤로부터 그는 그 열매를 사용하여 많은 환자들을 구제하는데 성공, 결국 그동안의 최가 풀리고 성자로서 존경받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열매가 바로 커피열매였던 것이다, 이슬람 나라 아라비아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로 오마는 아라비아 모카의 수호성주 세크칼데의 제자로 중병에 시달리는 성주의 딸을 치료한 후 그 공주를 사랑하게 된다, 그러나 그것이 발각되어 오자브라는 지방으로 유배당하는데 그곳에서 우연히 커피를 발견한다. 그 후 오마는 이를 의약제로 사용하여 큰 효과를 발휘, 이로 인해 면죄를 받아 고향에 돌아간 후 커피를 전파하여 널리 퍼졌다는 설이다.
야생종 커피
한편 원예학자들은 아프리카의 고대왕국인 아비시니아(Avysinia,현재의 이디오피아)의 야생종 커피가 오늘날 커피의 기원이라고 보고 있는데 현재까지도 그 야생종은 자라고 있다. 이 지역을 정복한 아랍의 예언자들이 이 야생종 커피나무의 열매를 원주민들이 복용한 후 힘을 내어 일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아랍인들은 이 열매가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것이라고 믿고 그 씨를 예멘지역으로 가지고 왔다, 이를 오늘날 세계적으로 커피가 확산된 기원으로 본다.
우리나라의 역사
한국에 커피가 들어온 역사는 1895년(고종32년)에 을미사변(아관파천시)때 러시아 공사가 커피나무의 열매를 한국에 가져오면서부터 였습니다. 이때 러시아는 이미 커피가 국내에 많이 전래 되어 일반화될 무렵이었다고 합니다. 러시아 공사는 가지고 온 커피열매를 건조하여 잘 으깬 다음 끓인 물을 넣고 맛있게 만들어서 고종황제에게 진상하여 시음하게 한 것이 최초라고 전하여 집니다. 당시 고종은 세자(후에 순종)와함께 약 1년간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면서 커피를 마셨고 덕수궁으로 돌아온 뒤에도 그 맛을 잊지 못해 커피를 찾았다고 합니다. 그때부터 커피는 궁중내의 기호 식품으로 주로 벼슬아치들이 즐겨 마셨다고 합니다. 바로 숭늉문화에서 커피문화로 가는 하나의 선구자 역할 노릇을 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커피를 좋아했던 고종은 그로 인해 독살 될뻔 하기도 했습니다. 1889년 러시아 역관으로 세도를 부리던 김홍륙이 친러파의 몰락으로 관직에서 쫓겨나고 또 러시아와의 통상에 거액을 착복한 사건이 들통 나 흑산도 유배가 결정되자 앙심을 품었던 것입니다. 김홍륙은 덕수궁에서 일하던 두 하수인을 매수, 고종의 생일에 독약을 탄 커피를 마시게 하려다 발각되었다고 합니다. 그 후 독일여자 손 탁이 러시아 공사관(정동위치)근처에서 정동구락부라는 커피 점을 열었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최초의 다방입니다. 커피가 처음으로 판매되게 되었는데 당시 커피 한잔 값이 너무나 비싸 부유한 사람만이 사 마실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중 6.25동란이 발발하여 미군이 진주하면서 1회용 인스턴트커피가 등장하여 무질서하게 유출됨으로서 일반화 되었습니다. 그 당시 미군으로부터 유출된 인스턴트커피는 카페인이 너무 많이 함유되어있어 과음을 하게 되면 불면증에 걸려 많은 사람들이 고생하였다고 합니다. 1970년 우리나라 최초로 인스턴트커피를 생산하게 되었습니다. 그 맛을 잊지 못해 커피를 찾았다고 합니다.
90년대 후반 들어 커피문화 급변
서울 대학로 학림에서 커피를 마시는 젊은이들 학림은 현존하는 구내에서 가장 오래된 커피 하우스다. 1896년 아관파천때 웨델 러시아 공사 처형인 손탁 이라는 여인이 고종의 음식을 돌보면서 처음 커피를 드렸는데, 이후 고종은 이후 고종은 커피 애호가가 되었다. 커피를 즐긴 고종은 덕수궁에 청관헌 이라는 커피 집을 짓고 이따금 대신들을 불러 함께 커피를 즐겼다고 한다. 나중에 고종이 정동에 호텔을 지어 손탁 여사에게 하사한 것이 손탁호텔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바로 이 손탁호텔 1층에 문을 연 정동구락부 다. 이곳을 드나들었던 외국의 저명인사로는 데오도르 루즈벨트 미국대통령의 딸 앨리스와 종군 기자로 한국에 왔던 유명한 소설가 마크 트웨인 등이 있다. 내국인 중에는 이상재. 민영환. 윤치호등 개화파 인사들이 자주 들렀다, 민간에서는 1900년 초 서울 광교에서 장사하던 서양인이 거래하던 조선 상인들에게 커피를 대접하면서 존재를 알렸다. 검은 색깔이 나는 탕약 같다고 해 커피를 양탕국 이라고 불렀다. 20년대에는 서울 다동에는 전통다방들이 많아서 다방 골이라고도 했다. 객주들이 이곳을 상거래 장소로 자주 이용했다. 당시 다방에서 일하는 넉살좋은 여자를 다모(茶母)라고 불렀다, 20년대 들어서면서 일본식 커피하우스인 끽다점(喫茶店)이들어오기 시작했다. 한국인이 세운 최초의 커피하우스는 영화감독 이경석씨가 차린 카카듀 다 당시 서울에는 세 곳의 끽다점이 인기가 높았다. 배우 복혜숙 여사가 서울 인사동에서 경영한 비너스 에는 나운규 문예봉 이청전 같은 예술인고 여운형 김준연 같은 정치인들이 단골로 들러 담론을 나누곤 했다, 소공동에서는 김연실 여사가 연 낙랑 이라는 커피하우스가 인기였는데 이광수 정지용 김기림 이헌구 모윤숙 등 작가들이 주요 고객 이였다. 충무로에는 강석연씨가 차린 모나리자 에 주로 가수들과 음악인들이 많이 모였다. 시인 이상도 한때 제비 라는 소문난 커피하우스를 운영했으나 경영미숙으로 문을 닫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