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15기로 한국불교대학에 입학하였습니다.
남구청 앞 관음사에서부터 공부를 시작해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진리를 향해 하루하루를 알차게 보내고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것입니다.
저는 불교대학 다니기 전만 해도 사교성이 없고, 소극적이었으며, 삶에 대해 회의적이었습니다. 그래서 회사 다니면서도 동료들과 친하게 지내지 못하고 서른다섯이 되도록 결혼도 하지 못했습니다. 어떤 여자를 만나도 말 한마디 하지 못했고, 언제나 30분 이상을 같이 있지 못했습니다. 결국 결혼도 포기하고 말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생활이 제게는 맞지 않았고, 의욕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퇴근하면 곧바로 혼자 있는 아파트에 돌아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TV나 보다가 자고, 다음날 또 출근하는 다람쥐 쳇바퀴 도는 것 같은 생활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집에 들어온 신문 사이에서 불교대학에 대한 광고를 보았고 불교에 대한 이미지가 저와 맞을 것 같아 입학원서를 내게 되었습니다.
처음 입학하여 공부를 시작했을 때, 저는 관음회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습니다. 공부만 끝나면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집으로 돌아오면 그 날 배운 것들을 다시 읽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불교 책들도 사 보게 되었습니다. 모든 것이 머릿속에 쏙쏙 들어오고, 스님께서 하시는 모든 말씀이 참 진리로 다가왔습니다. 저는 목마른 여행자처럼 허덕이며 진리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평소 갖고 있던 삶에 대한 갈증은 이렇게 해소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도반들과 함께 하는 시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주제를 갖고 이야기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조금도 어색하지 않았고, 두렵지도 않았습니다. 직장에서는 마치 물 먹은 쥐처럼 웅크리고 있다가 절에만 오면 기운이 펄펄 나는 것이었습니다.
4층 전세로 있었던 그 작은 법당이 우리들에게 차츰 부족하게 느껴졌습니다. 많은 신입생들로 법당이 좁아졌고, 기도 때나 큰 행사 때에는 언제나 터져 나갈 것 같았습니다. 도반들 사이에서도 그에 대한 걱정을 많이 하였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절에서는 새 법당 마련을 위한 천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저는 그 날 회사 일이 조금 늦게 끝나서 8시쯤에야 절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법당에 들어서는 순간 몹시 놀랐습니다. 법당 한가운데는 촛불꽂이판이 오색의 빛깔을 띄우며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법당을 돌면서 초를 꽂고 있었습니다. 저 역시도 동참했습니다. 우리들은 스님과 함께 발원문을 읽었고 부처님께 모두의 진심어린 마음을 모아 기도를 드렸습니다. 법당 안은 모여 있는 모든 사람들의 뜨거운 열기로 후끈거렸습니다. 그 아름다운 촛불의 은은한 빛 속에서 너무도 기뻤습니다.
마음속에서 부처님에 대한 믿음과 환희심이 솟았습니다. 저의 모든 죄를 참회하고 진정으로 우리 모두의 도량이 이루어지길 발원했습니다. 그 크나큰 발원 앞에 저의 작은 마음도 함께 할 수 있다는 자부심이 솟았습니다. 이 작은 마음이 큰일을 이루게 되는 힘이 되길 간절히 바랬습니다.
108통장 천일기도에 동참했습니다. 이름을 정성들여 적어서 부처님 전에 올렸습니다. 그날, 오랫동안 절에서 떠나지 못했습니다. 첫 달 처음으로 108통장에 3만원을 넣었습니다. 앞으로 3년 동안, 천일동안 매달 한 번씩 3만원을 입금하는 것은 보통 인내심이 아니었습니다. 무작정 완불할 수도 있었지만, 마음을 모으기로 했습니다.
처음 3만원을 입금하고 놀랍게도 한 달 뒤에 저는 대리로 승진했습니다. 정말이지, 단 한 번도 승진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으며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저와 승진은 거리가 멀었습니다. 다른 동료들이 모두 승진하였어도, 이 날 이때껏 내게 그런 영광이 오리라고는…….
그저 자기 일만 하고 사교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어서 술자리에도 참석하지 않았으며 아니, 그러한 일 자체를 두려워하는 저에게는 일찌감치 말단 자리가 어울린다고 체념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뜻밖의 일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난감했습니다. 너무도 기뻤습니다. 저도 어딘가 쓸모가 있다고 생각하니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었습니다.
그리고 또 얼마 뒤 놀랍게도 우리절의 새로운 도량이 생겼습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천일기도를 시작한 지 불과 얼마 되지 않은 때였습니다. 이렇게 일어나는 모든 일이 신기하기만 했습니다. 어떻게 이렇게 바라는 바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단 말입니까!
그 일들로 인해 얼마나 흥분했는지 모릅니다.
저는 새로 생긴 영대병원네거리의 그 도량에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습니다. 퇴근하면 당장 새 도량으로 가서 도량을 수리하는 다른 기수의 선배님들과 함께 일했습니다. 스님께서는 매일 밤늦게까지, 저희들이 돌아간 뒤에도 도량을 돌아보시고 일하셨습니다.
기억납니다.
어느 일요일, 늦게까지 남아 일하던 거사님을 모셔다 드리고 잠깐 절에 들렀습니다. 웃옷을 공사장에 그냥 두고 온 것이었습니다. 옷을 들고 나오다가 무슨 소리를 듣고 긴장했습니다. 이런 곳에 도둑이 들리는 없고, 동네 불량배들이 거처로 하는 게 아닌가 해서 살금살금 안을 엿보았습니다. 그런데 희미한 전등불 아래서 스님께서 책상을 옮기고 계셨습니다.
“스님, 뭐하십니까?”
“어? 거사님! 어째 아직도 안가셨습니까?”
스님께서 놀라시며 돌아보았습니다.
“옷을 두고 가서요. 스님, 절로 돌아가셔서 쉬셔야지 내일 수업하시지 않습니까?”
“아, 밤새 비가 올 것 같아서 책상을 안으로 좀 들여 놓았습니다. 아이들이 손수 칠을 한 책상들인데…….”
하시며 걸어 나오시는 것이었습니다.
그 때, 스님의 그 말씀을 듣고 작은 정성의 중요함을 다시금 깨달았습니다.
지금 수업 때 쓰고 있는 그 책상은 그 때 선배님들이 손수 만들고 청소년, 어린이반 학생들이 직접 페인트칠을 한 것이며, 비 맞을까 걱정하여 한밤중에 스님께서 안으로 들여놓은 바로 그것입니다.
처음에는 다 쓰러져 가는 3층 건물이었습니다. 건축물 자체는 튼튼하였지만, 오랫동안 방치되었던 건물이라 시설이 엉망이었고 유리창 하나도 제대로 된 게 없었습니다. 시설물들은 온통 부서진 채 널려져 있었고, 어두컴컴한 건물 안에는 비상으로 켜 놓은 전구가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신도들은 합심해서 새로운 건물로 만들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각자 기술이 있는 사람들의 지도하에 직접 건물을 수리하게 된 것입니다.
한여름 그 뜨거운 날씨 속에서 정말 힘들었습니다. 일요일이면 어린이, 청소년반 아이들까지 일을 거들러 왔습니다. 그 땀방울이 너무도 소중했습니다. 저의 마음이 그들을 향해 열렸습니다. 완전히!
많은 도반들과 힘든 일을 하면서 서로를 위로하고 챙겨 주었습니다. 저의 외로운 마음이 충족되어 갔습니다. 저는 가족처럼 그 분들이 좋았습니다. 저의 가족은 우리절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에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페인트칠을 하던 거사님이 쓰러지기까지 하였습니다. 그 뜨거운 여름 태양아래 외벽을 칠하다가 생긴 일이었습니다. 그 거사님의 햇볕에 탄 얼굴이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
그렇게 우리의 새 도량은 옷단장을 했습니다. 어느 것 하나, 유리창 하나 끼우는 것도 모두 우리의 손으로 했습니다. 드디어 새 도량이 만들어졌습니다. 그 감동을 아직도 잊을 수 없습니다. 새로운 도량, 우리 손으로 직접 만들어 놓은 깨끗한 도량!
그 도량을 개관하던 날, 한 잠도 이루지 못하다가 이른 아침 절로 달려갔습니다. 많은 신도님들이 서로를 격려하고 칭찬했으며, 그 날의 자부심은 저를 한층 더 크게 만들었습니다.
그 때 들어온 신입생들은 그 큰 법당 3층 모두를 꽉 채웠습니다. 저의 마음은 터져나갈 것 같았습니다. 신입생을 안내하면서 저는 그들을 향해 수없이 절했습니다. 우리의 도량에 들어선 그 분들을 위해 절을 올렸습니다. 3층 법당 위에는 108통장 천일기도 동참자들의 연등이 걸렸습니다.
그 날 저녁, 저는 절에서 신입생을 안내하다 한 분을 만났습니다. 어깨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이 몹시 부드러워 보였고 인상도 좋은 여성이었습니다. 그 후 신입생 수업 때마다 그 여성을 만났고 우리는 불교 이야기를 하면서 어색함을 넘기며 친해졌습니다.
저는 차츰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그 여자 분도 제게 관심을 주었습니다. 우리는 수업시간 외에도 종종 만나게 되었습니다. 십만 배 기도가 시작되었고 또 얼마 되지 않아 노천 법당이 생겼습니다. 노천 법당 대원력 관세음보살님을 모시던 날 우리는 결혼을 약속했고 곧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지금은 부부가 되어 부처님의 법을 함께 공부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꿈만 같습니다. 저의 성격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회사에서도 다시 진급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마음입니다. 제가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에서 만났던 모든 일들이 기적이었습니다. 저는 기적을 보면서 살았습니다. 그 기적은 오늘의 우리절 한국불교대학 大관음사의 모습 속에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 기적은 끊이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계속 그 기적을 지켜보며, 또 그 기적을 직접 일구어 나갈 것입니다.
바로 작은 힘들이 모여 있을 수 없는 일을 창조해 내는 우리 모두의 힘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힘은 이 세상 어둠이 있는 모든 곳을 환히 밝혀 줄 것입니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서,
그리고 참 진리의 실현을 위해서,
부처님과 스님과 신도님들께 삼배 올립니다. |
날마다 좋은날^^....인드라망 부처님()()()
관세음보살()()().........♡
♡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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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좋은 인연입니다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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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입니다~
불법을 만나 부처님을 만나셨군요~
내내 행복과 성불의 향이 항상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