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
1348년 피렌체의 도시에 페스트가 유행하자 속수무책, 매일 수많은 사망자가 생겨서 시내는 아비규환의 황폐를 초래했다. 돈이 있는 자는 마구 술을 퍼마시며 조금이라도 공포를 잊으려 했고, 가난한 사람들은 별도리 없이 두문불출, 사람들과의 접촉을 피하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 상태였다. 또 어떤 자는 집도 재산도 버리고, 자기들의 별장이나 남의 별장을 빌어서라도 연명하려고 애썼다. 이러한 혼란 속의 어느날, 산타 마리아 노베루라 사원에서 고귀하고 총명한 일곱명의 숙녀와 교양 높고 지체 높은 세 명의 청년이 만나서 가공할 전염병을 피하기 위해서 피렌체 교외의 별장으로 가서 즐기기로 작정했다.
각각 한 사람의 머슴이나 하녀를 데리고 열 명은 샘물이나 숲에 둘러싸인 시골의 아름다운 별장에 와서, 그곳에서 따분하지 않게 이야기와 노래와 춤으로 10여 일을 보내는 것이다. 그들은 매일 한 사람씩 번갈아가며 사회자를 선택해서, 그의 명령에 의해서 하루의 일과를 진행한다. 또한 사회자가 선정한 주제의 이야기를 각자 한가지씩 말하는 것이다.
해제
1349∼1351년의 작품으로, ‘10일간의 이야기’라고 번역된다. 서사(序詞)에서 불행한 사람들의 고뇌를 덜어 주기 위하여 이 책을 쓴다고 말하고, 1348년의 페스트에 관한 기술로 작품 제1일의 서화(序話)가 시작된다. 난을 피하여 피렌체 교외의 별장으로 옮겨 온 숙녀 7명, 신사 3명이 10일간 체류하며 오후의 가장 더운 시간에 나무그늘에 모여 앉아 이야기를 한다. 한 사람이 한 가지씩, 하루에 열 가지의 이야기를 하고는 헤어지기 전에 좌상을 임명하여 다음날의 주제를 정하고 저녁 식사 후에는 노래를 부르고 잠자리에 든다. 신을 경외하는 뜻으로 금요일과 토요일에는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따라서, 설화는 12일간에 100가지에 달하고 한 테두리 안에서 이야기를 구성하는 형식으로 되어 있어서 내용은 다채로우면서 통일성이 유지되고 있다. 여성 중에서 가장 젊은 네이피레의 이야기는 제일 천진스럽고, 팜피로와 디오네오가 대담한 이야기를 하는 등, 이야기하는 사람에 따라서 내용과 리듬이 달라지고 등장인물도 여러 계층이다.
전작을 통하여 2개의 주제를 끌어낼 수가 있는데 사랑과 지혜가 그것이다. 사랑을 주제로 한 이야기에서는 인간의 누를 수 없는 욕망이 때로는 냉정히 억제되고 또 여러 가지로 위장되어 표현되고 있다. 한편, 무뢰한의 용의주도한 교활함에서 기사(騎士)의 고상한 재지(才智)에 이르기까지 지혜의 모든 단계가 관찰되고 이들 주제는 때로는 교차되기도 한다. 이 작품을 새로운 시대정신의 표현으로 보고 중세의 교회와 봉건제도를 조소하는 신흥 부르주아지 사회의 승리의 기록이라고 단정한 것은 데 상크티스였다. 그러나 최근에 이르러 이 작품의 내용 ·구성에 관해서 중세적 요소를 강조하는 설도 나타났다. 어쨌든 이는 풍부한 생활 체험과 고전 및 남북 프랑스 문학에서 배양된 천재적인 이야기 작가의 인간관찰에 대한 일대 집성으로서, 수세기에 걸친 설화의 호색성(好色性)에 대한 독자의 그릇된 관심은 작자의 본의와는 관계가 없다.
단테의 《신곡(神曲)》과 견주어 이 작품을 《인곡(人曲)》이라고도 하지만, 단테는 높은 이상을 내걸고 중세에 대한 경고를 한 데 대하여, 보카치오는 풍속 교정자로서 접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냉정하게 받아들이고, 그러면서도 대상으로부터 거리를 두고 미소와 풍자까지도 섞어 묘사함으로써 근대소설의 선구자가 되었다. 또 이 작품에 사용된 이탈리아어는 보카치오적 문체라고 하는 것으로, 그후 오랫동안 산문의 본보기가 되었다. 《데카메론》의 모작(模作)은 대단히 많아서 많은 작가에게 소재를 제공하고 있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작품 감상
세 번째 이야기
유대인 멜기세덱은 세 개의 반지 이야기로 살라디노가 꾸민 큰 위기를 모면한다.
네이필레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갈채 속에서 끝나자, 여왕의 희망에 따라 이번에는 필로메나의 이야기가 시작됐습니다.
네이필레의 이야기를 듣고 저는 어느 유대인이 겪은 재난이 생각났습니다. 하느님에 관한 일이라든가 사람들의 실제 신앙에 대해선 이제 충분한 이야기를 들었으니 속계 사람들한테 일어난 사건이나 행동을 이야기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여러분은 사람들에게 질문을 받았을 때 성의를 다해서 대답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깨달을 겁니다.
여러분, 어리석기 때문에 흔히 사람들은 불행한 꼴을 당하거나 최악의 비참한 처지에 빠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영리한 사람은 그 지혜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나 확고한 안주의 경지를 얻는 법이랍니다.
사실 어리석음으로 인해 행복한 생활에서 하루 아침에 비참한 처지로 떨어지는 경우는 헤아릴 수 없이 많지요. 그런 일은 우리 주위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는 일이므로 새삼 말씀드릴 필요도 없을 것 같군요. 그래서 저는 지혜의 덕택으로 위안을 얻게 된 이야기를 약속대로 짤막하게 들려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살라디노는 매우 용감한 분으로 낮은 신분에서 바빌로니아의 군주의 자리에까지 올랐을 뿐만 아니라 사라센과 그리스도교를 믿는 국가의 왕들과도 싸워 수많은 승리를 거둔 분입니다. 그런데 거듭되는 전쟁과 그 자신의 사치스런 생활 때문에 재산이 바닥 나게 되었습니다. 거기에다가 다시 새로운 사건이 터져 막대한 비용이 들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많은 돈을 별안간 어디서 마련해야 할지 무척 난처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멜기세덱이라는 돈 많은 유대인이 머리에 떠올랐습니다.
그 사람은 알렉산드리아에서 고리대금업을 하고 있었으므로 손만 벌리면 그 정도의 돈은 기꺼이 마련해 줄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사내는 무척 욕심쟁이였으므로 자진해서 빌려 주지는 않을 것 같고, 그렇다고 해서 권력을 휘두르면서 까지 얻어낼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돈이 필요한 날짜는 자꾸만 다가왔습니다. 살라디노는 좋은 방도가 없을까 곰곰이 생각하는 동안 한 번쯤 구실을 만들어 권력을 휘둘러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을 불러들여 상냥하게 맞이한 다음 가까이에 앉혀 놓고 말했습니다.
"훌륭한 분이여, 나는 많은 사람들한테서 그대가 현인이라는 말을 들었소, 또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아주 깊은 분이라고도 들었소. 그러니 그대의 입으로 유대교와 회교와 그리스도교 가운데 어느 것이 가장 훌륭한 종교라고 생각하는지 한번 들려 주시기를 바라겠소."
이 유대인은 슬기로운 사람이었으므로, 살라디노 왕이 말꼬리를 잡아 트집을 잡을 생각이라는 것을 금방 눈치챘습니다. 그래서 그는 왕의 술책에 말려들지 않으려면 세 가지의 종교 가운데 어느 하나도 칭찬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상대편의 덫에 걸리지 않도록 대답하기로 하고 궁리를 하자 그의 머리에 묘안이 떠올랐습니다.
"임금님께서는 지금 참으로 훌륭한 질문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 의견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 전에 꼭 들려 드리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니 먼저 그것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저는 자주 들어서 잘 기억하고 있습니다만, 옛날에 큰 부자에다가 인격까지 훌륭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는 보물 중에서도 특히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신비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반지가 하나 있었답니다. 그 값어치와 아름다움으로 해서 그는 이것을 가보로 삼아 자손 대대로 영구히 물려줄 생각을 하고, 자기 아들 가운데 그 반지를 받을 수 있는 자를 상속자로 하여 다른 사람들은 그를 가장으로서 존경과 명예를 바쳐야 한다고 선고했습니다. 그 반지를 받은 사람은 역시 다음 후계자에게 물려주었지요. 이와 같이, 선대의 유지가 실행되어 간 것입니다. 이르러서 어느 아버지의 손에 건너갔습니다. 이 사람에게는 잘 생기고 품행도 방정한 매우 효성스러운 아들이 세 명이나 있었습니다. 그러니 세 아들은 조금도 차별없이 귀여워할 수밖에 없었겠지요. 물론 자식들도 그 반지에 관한 경위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마다 자기야말로 그 영예를 차지할 자격이 있다고 자신하고, 이제 연로하신 아버지에게 죽음의 때가 다가왔을 때 꼭 자기를 그 반지의 후계자로 지목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세 아들을 똑같이 사랑하고 있던 훌륭한 부친은 누구에게 넘겨 주어야 할 것인지 고심한 끝에 세 사람 모두에게 반지를 하나씩 나눠 주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살며시 솜씨가 뛰어난 기술자에게 부탁해서 따로 두 개의 반지를 더 만들게 했지요. 그것은 어느 것이 진짜인지 그 자신도 분간할 수 없을 만큼 감쪽같이 만들어졌습니다.
마침내 임종이 다가오자 아버지는 자식들에게 저마다 반지를 하나씩 내주었습니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아들들은 유산과 명예를 상속받기 위해서 그 권리의 증거로 가지고 있던 반지를 내보이며 서로 상대편이 가진 것을 부정했습니다. 그런데 세 개의 반지가 앞서 말한 대로 너무 똑같았으므로 세 사람은 누가 아버지의 진정한 후계자가 되어야 하는지 지금도 해결되지 못한 채 싸우고 있는 형편이랍니다. 현명한 왕이시여, 저는 인류의 아버지이신 하느님께서 백성에게 주신 세 가지의 종교에 관해서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백성들은 저마다 그 유산과 법도를 이어받아 법도가 명하는 대로 살아가고 있는 줄 압니다. 하지만 어느 백성의 것이 옳은가의 문제는 방금 말씀드린 반지의 진정한 계승자처럼 미해결인 채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살라디노왕은 유대인이 자기가 걸어 놓은 덫에서 교묘하게 빠져 나간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솔직하게 자기의 청을 밝히고, 마련해 주겠느냐고 물어 보기로 했습니다. 게다가 만일 방금 한 그런 대답을 하지 않았더라면 권력을 휘두를 작정이었다는 것까지 실토했습니다.
유대인은 너그럽게 살라디노왕이 청한 금액을 고스란히 마련해 주었습니다. 그 뒤 왕은 그에게 진 빚을 모두 갚고 선물까지 주었으며, 그를 친구로서 높고 명예로운 지위에 앉혔다고 합니다.
보카치오(1313~75)
단테, 페트라르카와 견줄 수 있는 이탈리아 문예 부흥기의 시인 겸작가이다. 제명은 그리스어로, 데카는 10일, 메론은 날을 의미한다. 따라서 <10일 이야기>라고도 한다. 이 작품은 어떤 의미에서 유럽의 산문 소설의 기원이 된 것으로, 단테의 <신곡>에 대해서 <인곡>으로 불리는 걸작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라틴어의 작품이 전성 시대였고, 당시의 속어 였던 이탈리아어를 가지고도 훌륭한 작품을 쓸수 있다는 것을 실증했다고 할 수 있다. 이야기의 주제는 각양각색으로 비극적인 요소도 있고, 희극적인 기분도 있고, 또한 풍자적인 기호도 있지만, 가장 두드러진 경향은 호색적이라는 점이다. <10일 이야기>의 특징의 하나는 담화형식으로 전편이 10명의 화자가 매일 한 사람이 하나씩 이야기를 하고 10일간에 100개의 이야기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