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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기획 의도 한국사진은 현재 새로운 지형이 형성되고 있다. 사진 전문 화랑이 불과 3년 사이에 서울. 경기 지역만 2개에서 10여개로 늘어났고, 다양하고 개성적인 내용의 개인전과 그룹전도 점점 더 늘어나고 있다. 미술시장에서도 사진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젊은 작가들 중에는 독창적이기 보다는 현대사진의 특정한 흐름을 모방하는 경우도 없지 않아 독창적이고 작가적인 고뇌와 사색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을 만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열정적으로 자신들의 작품세계를 가꾸어가고 있는 젊은 작가들도 많기 때문에 전체적인 상황은 희망적이다.
이러한 한국사진의 새로운 현실을 한국사진계가 능동적으로 극복하고 주도하고자 ‘2008 Wake up - 한국사진의 새로운 탐색’전 을 기획하였다. 현재 인사동에는 4개의 사진 전문 갤러리가 있다. 1999년에 개관하여 인사동 최초의 사진전문 갤러리로서 한국사진문화발전과 신인 발굴에 기여한 갤러리 룩스를 비롯하여 2003년에 한국 최초의 상업 화랑으로 출발하여 사진전시회 문화와 사진시장 개척에 기초를 다진 김영섭 사진화랑, 2006년도와 2007년에 개관하여 새로운 사진전문화를 주도하고 있는 갤러리 나우와 아트 비트 갤러리가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2008 Wake up전은 이들 갤러리를 주축으로 한국사진의 새로운 가능성과 변화된 지형을 탐구하고자 기획되었다. 현대사진의 특정한 흐름이나 이즘(ism)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들의 작품세계를 구축하고자 노력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집대성하였고, 이것을 바탕으로 한국사진의 새로운 미래를 탐색하고자 하였다.
• 전시기간 : 2008 2.13(수) ~ 2008 .2. 26(화) • 전시장소 : 김영섭사진화랑, 갤러리 룩스, 갤러리 나우, 아트비트 갤러리 • 오프닝 : 2008. 2. 13(수) p.m 5:00 • 전시기획: 김남진, 김영태 • 전시 코디네이터 : 성 민 • 참여 작가: 강홍구, 정동석, 전소정, 이수철, 이소영, 안옥현, 서애리, 파 야 양정아, 김병걸 이민호, 이정록, 노정하, 강보라, 난 다, 이순영
욕망의 프로세스에 관하여 *장 소 : 김영섭사진화랑 참여 작가 : 서애리, 안옥현, 이순영, 파야
욕망은 개인적인 것이다. 주체는 세계와 끊임없이 부딪히며 자신을 제한하는 모든 자극들에 대해 다양한 욕망을 품는 것으로 반응한다. 그래서 욕망의 진실을 들여다보는 것은 개인에 대한 이해의 시도이면서 동시에 대상이 놓인 세계를 우회적으로 만나는 행위가 된다. 이번 전시는 욕망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선에 관한 것이다. 사진을 찍는 행위 또한 작가 개인의 욕망으로부터 시작된다. 관객은 작품 내용 안에서 존재하는 욕망과 만나고, 한 걸음 옆으로 옮겨 작가 개인의 욕망을 엿보게 된다. 그 욕망들이 부딪히는 세계는 관객이 살아가는 현실이기에 대상과 작가, 관객의 시선은 어지럽게 얽히며 다양한 의미들을 생산한다.
서애리 서애리의 작업들은 욕망의 프로세스에 대한 노골적인 관찰의 결과이다. 개인의 다양함만큼이나 욕망은 제각각이지만 현대사회에서 욕망을 자극하는 감각에 대한 호소는 유형화되고 획일화 되어있다. 그 결과 개인은 욕망하는 구체적 대상을 자신도 알지 못한 채 반사적으로 쏟아지는 자극들에 반응한다. 서애리는 여전히 유효한 ‘몸’이라는 화두를 욕망과 결합하여 인간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포르노그래피에나 등장할 법한 배경과 포즈는 노골적으로 상품화된 여성의 성을 재현하고 있다. 그러나 이미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여성이 감각을 자극하는 상품으로 변질될 때의 획일성을 보여주는 듯 서로 비슷한 얼굴들을 하고 있어 섬뜩함 마저 느껴진다. 작가는 화려한 색채와 분위기로 감각을 자극하면서 동시에 영혼을 상실한 듯한 인물들을 배치시켜 관습적 이미지를 비틀고 있다.
안옥현 안옥현의 작품은 욕망의 불완전한 완성을 재현하고 있다. 화려한 차림새와 늘어진 인물들의 포즈는 욕망, 혹은 유혹과 같은 익숙한 코드로 읽혀지지만 그 여성들은 유혹이나 욕망과 무관한 일상적인 공간들에 배치되어 있다. 무심하게 뒤집혀진 장난감 자동차나 수평이 맞지 않은 소파, 벽면의 가상적 확장을 제한하는 코너의 노출은 공간의 일상성을 강화한다. 이미지가 사회적으로 이해되는 원칙들은 교묘하게 배반되고 있으며, 이로써 대상의 욕망은 이미지 내의 공간에서 해소되지 못하고 그들의 시선을 따라 보는 이에게 투영된다. 안옥현의 작업은 보는 이들에게 해소되지 못한 욕망의 불편함을 공유시킴으로써 완결되지 못한 내러티브를 내적으로 소화하도록 만든다.
이순영 코스프레는 그 자체로 가상의 재현이며 욕망의 직접적인 해소방법이다. 서로를 ‘코스어(coser)’라 지칭하는 행위자들은 현실의 원칙이 아닌 그들이 기원한 가상 속 세계의 문법으로 소통한다. 이 재현을 사진이라는 매체를 통해 2차적으로 재현하고 있는 이순영의 작업들은 재현의 기원이 되는 소재 자체가 아니라 행위 하는 인간의 욕망들을 가시적인 형태로 바꾸어 놓는다. 이순영은 대상들을 가상으로부터 분리시켜 현실 속에 세워놓거나 직접 가상의 세계로 뛰어들어 재현을 완성하지 않는다. 카메라의 시선이 향하는 곳은 엄밀한 현실의 공간이지만, 재현되는 이미지에서 대상들을 둘러싸고 있는 공기들은 어른거리며 대상이 속한 가상의 세계와 현실의 공간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 부유하는 듯한 공기의 흐름 아래로 보도블록의 경계선은 희미하지만 뚜렷이 존재하는 것이다.
파 야 작품에 등장하는 대상은 작가의 어머니이다. 패션모델을 꿈꾸었던 어머니의 욕망과 작품에 대한 작가로서의 욕망은 이미지 내에서 서로 결합되어 있다. 대상의 욕망을 구체화하는 데 충실할수록 대상과 작가는 가상을 실제처럼 재연한다. 재연의 핵심은 대상이 패션모델을 연기하고 주체는 패션사진가를 연기하는 것이다. 이 한바탕의 연기는 개인의 욕망의 능동적인 해소이면서 동시에 여성의 욕망을 죄악시하고 억압하는 사회적 관습에 저항하는 퍼포먼스적 성격을 띤다. 그 퍼포먼스의 결과물로서의 사진은 개인의 욕망과 그 구체적 재현이 기록된 기념비적 증거가 된다.
이탈된 장면
* 장 소: 갤러리 룩스 * 참여 작가 : 이수철, 이소영, 전소정, 정동석
사진은 현실의 단순한 재현이라기보다는, 작가의 의지에 의해서 해석된 결과물이다. 작가의 경험은 개인적 미적 주관과 세계관을 바탕으로 인화지 위에 재구성된다. 그것을 좀 더 극대화해서 자신들의 정체성을 드러낸 작가들의 작품을 모았다. 작품들은 자동적인 프로세스에 의존하기 보다는 카메라 메커니즘과 디지털 매체 환경의 특성을 능동적으로 이용하여 외부세계에 대한 자신들의 견해와 내밀하고 지극히 사적인 감정의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보는 이들은 또 다른 공간과 현실을 느낄 수 있다.
이수철 이수철의 작업에서 이미지는 각각 압도적인 비중의 차이로 경험과 비경험의 세계로 나누어지며 현실의 인간세계와 초현실적인 우주적 풍경은 이미지 안에서 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우주적 공간을 부유하려는 관객의 시선을 중력처럼 끌어당기는 것은 낮게 자리 잡은 현실의 이미지다. 이 세계에서 현재는 빛의 인상으로 그려진 추상적 기억들로 구성된 과거의 연장선 위에 놓여지고 결과적으로 이미지들은 모호한 빛의 편린으로 저장된 기억 속 장면들에 대한 인덱스가 된다. 친숙하지만 경험될 수 없는 밤의 풍경은 친숙함은 낯선 두려움과 함께 공존한다. 태고적 기억과도 같은 형형한 빛의 무리와 현실의 풍경과의 결합은 밤하늘의 별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현대인에게 던지는 낭만적이지만 음울한 조소와도 같다.
이소영 이소영의 작업에서 이미지의 배경이 되는 공간은 침실이나 도서관과 같은 일상적 장소들이다. 작가는 익숙한 공간과 사물이 순수한 미적 대상으로 구현되는 순간을 재현한다. 현실의 법칙으로부터 벗어난 미적 대상으로서의 사물은 가상에 구현될 수밖에 없는데, 그녀의 작업에서는 이것을 지각하는 주체의 상태에 대한 설정이 전제된다. 주체는 익숙한 공간에서 방향의 기억을 상실함으로써 역설적으로 자기를 발견하게 된 존재다. 작품은 주관적 주체가 익숙한 공간을 낯설게 바라보는 시점을 재현하고 있다. 찰나적으로 스치는 기억들의 편린은 주체의 지각을 간헐적으로 자극하고 이로써 익숙한 장소는 객관화된 세계와 주관화된 세계가 간섭하는 공간이 된다. 그녀의 작업은 미적 대상으로서의 사물들을 가상으로 구현시킴으로써 관객의 미적체험과 하나의 맥락을 형성하게 한다.
전소정 전소정의 작업은 시각적 정보의 단편들이 잡아당기는 개인적인 기억들을 끄집어내어 가시화한다. 기억이라는 과거의 순간들이 수많은 층이 되어 이미지 위에 쌓이면서, 카메라가 포착한 순간은 역설적으로 스펀지처럼 시간을 빨아들여 머금는 이미지가 된다. 이러한 작업은 사물이 갖고 있던 순간성을 주체의 기억과 대상 자체의 역사와 결합시키면서 대상에 완전성을 부여한다. 이미지는 감각의 불완전성을 지적함과 동시에, 결과적으로 감각에 대한 평가절하가 아닌 시각으로 대표되는 감각에 대한 완전한 이해의 지향으로 이해된다. 이로써 작업의 프로세스는 우리의 시각적 메커니즘에 대한 보다 정확한 모방이 되고 낯설게 이지러진 이미지들은 감각이 미처 보여주지 못하는 대상의 본질을 보여준다.
정동석 정동석의 작업에서 조형적 아름다움과 인간에 대한 관심은 동시에 추구된다. 빛의 조형으로 완성된 추상적 풍경은 모호한 빛의 멍울에 의한 인상이나 암시가 아니라, 날선 현실의 채집임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네온사인의 기하학적 궤적이 만들어 내는 추상적 조형성은 삶과 괴리된 미적 유희가 아니라 현실과 인간을 향하는 작가의 시선에 의한 해석된 풍경인 것이다. 작가가 해석하는 이 풍경은 어둡고 차가운 밤이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것은 인위적인 사물뿐이고 이 때 이미지 속의 세계는 현실의 한 순간이면서 동시에 인간의 의지만이 오롯이 남은 꿈의 풍경이 재현된 세계다. 속도가 제거된 듯 정지된 직선들은 부산스러운 움직임 없이 지향(指向)만을 담당하며 침묵하고, 불현듯 등장하는 달마저도 짧은 수직의 직선이 갖는 지향성에 무게를 더한다. 이로써 ‘밤의 꿈’은, 허황된 꿈이나 욕망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묵묵히 삶을 지탱해 가는 힘과 의지에 관한 것으로 이해된다.
이화(異化)로서의 풍경 * 장 소 : 갤러리 나우 * 참여 작가 : 강홍구, 김병걸, 양정아, 이민호, 이정록
재현된 가상의 이미지는 현실에 맞선다. 현실에 배치된 이미지들은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세차게 흔들며 공간이 갖는 내용을 질적으로 변화시킨다. 재구성된 공간에서 삶을 꾸려가는 주체는 가상을 재현하는 이미지들이 펼치는 세계와 오브제로서의 이미지가 놓인 현실의 문턱을 하루에도 몇 번씩 넘나든다. 전시에 참여한 작가들은 때로는 그 가상의 공간과 현실의 공간이 이질적으로 접합된 경계를 날카롭게 바라보기도 하고, 주관적 가상의 세계를 현실에 투영시키기도 하며, 복제된 이미지들의 조합으로 현실을 모방하고 그것을 허물어 놓기도 한다. 그들의 시선은 제각각 다른 곳을 향하지만 언제나 두 발은 현실에 맞닿아 있기에 그들이 바라보는 낯선 풍경은 비현실적 가상이 아닌 현실의 이화(異化)로서의 풍경이다.
강홍구 강홍구는 사진매체가 갖는 객관적 사실주의에 대한 환상을 부정하듯 이미지 위에 붓을 댄다. 어딘 지도 모를 풍경이 주는 괴리감과 지리 한 감흥 대신 오히려 남는 것은 작가의 존재다. 작가는 이미지들의 차용을 바탕으로 현대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조소를 보여주었던 기존 작품들에서 더 나아가 이미지 위에 물리적인 행위를 얹어놓음으로써 한층 직접적이고 파괴적인 힘을 부여한다. 작품의 내부에 등장하는 자연과 인공물의 조합은 조악하고 위태롭지만 현실 그대로가 아닌 채집된 이미지들로, 작가의 의도적 배치에 따르고 있다. 작품 속 자연과 인공물은 모두 이상적인 상태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어 새롭게 구축된 가상의 세계는 오히려 반이상적인 현실의 단면이 된다. 최종적으로 인쇄된 가상의 표면에 덧칠되고 번지고 흐르는 질료들은 불안한 가상의 공간과 혼연하게 어울리면서 그 세계의 붕괴를 암시한다. 복제된 현실로서의 가상과 작품 안에 제한되는 현실 속 작가의 행위, 그 행위의 증인으로서의 실제 현실의 관객은 작품을 매개로 복잡한 관계를 맺으면서 다양한 의미를 발생시킨다.
김병걸 김병걸의 문제의식은 감각적 정보가 인식되는 순간에 위치한다. 의식은 실제와 가상을 진실과 거짓이라는 이분법적인 결론으로 판결내리기 위해 불완전한 감각에 기대고 있다. 김병걸의 작업은 가상과 실제가 혼연하게 결합된 이미지의 제시를 통해 감각의 축적된 경험에 대한 믿음에 의문을 제기한다. 김병걸의 작업에서 익숙한 사물들은 관습적인 믿음의 인력을 상실한 채 진동한다. 흐릿하게 진동하는 사물의 모습은 실제의 증거로서의 사진의 기능을 마비시키고, 이로써 실제 혹은 가상이라는 이분법적 판단은 보류된다. 이미지 내에서 진동하며 분열되는 사물들은 변질되거나 소멸되지 않고 간극만을 벌인다. 그리고 각각의 사물이 일정한 간극으로 분열하며 결합되어 창조된 새로운 풍경들은 실제 이상의 무게를 가진 구체적 오브제인 현실이 된다.
양정아 현대의 도시는 2차원의 면 위에 3차원의 다른 이미지를 덧씌움으로써 공간을 확장하고 분위기를 환기시킨다. 그러나 인위로 가득 찬 현실을 순수한 자연의 이미지로 가려보려는 키치적 욕망의 결과물들은 그 현실과의 동떨어진 거리만큼이나 모순적으로 공간을 왜곡한다. 양정아의 시선은 그 아이러니가 만들어 내는 공간의 이지러짐을 좇고 있다. 벽면 속 자연은 실제보다 더 이상적이다. 답답한 지하는 탁 트인 숲과 결합되고 삭막한 방음 벽 위로 사철 푸른 나무가 자란다. 그러나 가상의 자연은 구체적인 현실의 공간과 이질적으로 접합되어 있으며 그 이미지마저도 온전하게 보존되지 않고 실제의 사물들에 의해 불쑥 침범된다. 숲은 건물의 기계실로 이어지는 통로가 되고 하늘은 일그러져 조명 스위치와 연결된다. 양정아의 작업은 새롭게 구축된 공간들이 어떤 모습으로 재현되는지 가감 없이 보여주고 그 공간이 갖는 의미는 어떤 것인지 질문을 던진다.
이민호 이민호의 작업에서 여행용 트렁크 혹은 상자 속에 설치된 잔디는 현실의 여러 장소와 조우하기를 강요받는다. 네모난 상자에서 떠나지 못하는 잔디의 운명은 옮기는 이의 발걸음에 따라 이동될 뿐 뿌리내리지 못한다. 상자가 향하는 곳은 다양하다. 때로는 도시의 풍경이고, 해변이거나, 버려진 땅이다. 이미지 내에서 상자들은 스냅 사진의 주인공처럼 자리 잡고 내용물을 공개한다. 배경이 되는 장소들은 온전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암시되면서 현실의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일반적 공간으로 바뀐다. 이로써 특수한 장소로의 여행은 현실의 불특정한 공간을 떠도는 불확실한 방황이 된다. 상자의 윗면에 나타나는 또 다른 사진 속 이미지는 정박한 장소와 대치되고 단절되면서 이 방황의 불안감을 고조시킨다. 합성이나 디지털 기술에 의한 결과가 아닌 아날로그 이미지와 설치가 결합된 작업들은 경험적 실재의 세계가 구성되는 방법들을 재현해 내고 있으며, 개념적 가상으로서의 공간이 아닌 재구성된 실제의 이미지라는 점에서 메시지는 더 직접적으로 전달된다.
이정록 신화의 작자는 인간 일반이며, 다양한 욕망이 투사되어 구축된 이야기다. 인간 욕망의 집합체로서의 신화는 현실을 초월하지만 비현실적 이야기가 아니라 삶과 강하게 연관되어있다. 이정록이 만드는 풍경은 개인이 삶의 터전에서 꿈꾸는 신화의 이미지다. 작품 속 특정 장소나 사물은 개인적인 체험과 영적 상상력이 부여되어 머릿속 신화의 세계로 재현된다. 그러나 작품은 신화의 배경이 되는 자연의 스펙터클을 재현하는 데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기존 신화의 배경이 되어왔던 자연은 그의 신화적 풍경에서도 존중받고 있지만 그는 신화의 클리셰Cliché와 같은 환상적인 빛의 사용과 구체(球體), 날개 모티프의 설치를 통해 초월적 존재의 탄생을 재현하고자 한다. 자연이 가지고 있는 재생과 탄생의 이미지가 극대화 되면서, 작품은 현실의 모든 존재가 초월되고 치유되는 신화적 체험의 매개가 된다.
나는 나를 바라본다 * 장 소: 아트비트 갤러리 * 참여 작가 : 강보라, 난다, 노정하
현대예술은 단순히 미와 추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동 시대의 특정한 현실에 대한 작가의 견해를 드러내거나 작가의 개인적인 욕망과 꿈을 표현하기도 한다. 그것에 적합한 매체 중에 하나가 사진이다. 이번 전시회에서는 사진이라는 매체를 이용하여 작가 개인의 꿈과 욕망을 이야기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모았다. 이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표현하고자 연극적인 장치를 이용하거나 디지털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숨겨진 욕망과 의식세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이 작업들은 현실 속에서 자신의 위치를 묻고 존재를 확인하는 행위이자 관객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강보라 강보라의 작업은 불완전하게 재생되는 기억의 이미지처럼 보인다. 기억이 맞닿은 곳은 인과적으로 진행되는 온전한 사건 전체가 아니라 흐릿하지만 결코 지워지지 않는 인상들이다. 그 인상들은 중심과 주변을 나누지 않고, 현실의 사소한 것들은 재현된 이미지 내에서 동등한 지위를 갖는다. 그녀의 작업에서 재현되는 이미지들은 무의식처럼 정돈되지 않았다. 마치 꿈속의 세상처럼 모든 대상은 흐릿하고 몽환적이다. 하지만 이 꿈 은 해피엔딩으로 끝날 동화의 과정이거나 혹은 행복했던 기억의 반추가 아니다. 푸른색과 물방울, 가벼움과 하강의 이미지가 지배하는 죽음과 슬픔이 가라앉은 환상이다. 난 다 난다의 작품에는 수없이 복제된 ‘난다’들이 등장한다. 원본을 상정하지 않은 무한한 닮음 꼴의 복제가 가득한 세계에서 원본과 복제의 구별은 의미 없는 행위가 된다. 제각각 행동하는 난다들은 자아의 분열과 유일성의 부정에 대한 인간의 근원적 공포를 비웃듯이 춤을 추고 비가 되어 내리며 사진 속 공간을 유희적 공간으로 바꾸어 놓는다. 작가는 ‘난다’라는 존재를 통해 현실과 가상의 경계마저 허물어 놓는다. 수없이 복제된 난다들은 인터넷 상에서 끊임없는 복제를 통해 자기 증식하는 아바타의 존재와 닮아 있다. 이러한 행위는 확고한 주체를 믿었던 근대성의 신화에 대한 인터넷 시대적인 조소이다. 난다의 작업이 가공해 낸 ‘진짜와 가짜를 구별할 수 없는 공간’에서 다양성은 공기처럼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필수적 구성요소가 된다. 노정하 노정하의 작업은 사진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는 시도들이다. 작가는 이미지 내에서 스스로의 도플갱어가 되어 현실의 자기 존재를 소외시킨다. 이미지 안에서 현실과 이미지 내의 존재가 서로를 바라보는 심리적인 간극은 가시화된다. 노정하는 현실에서 자신을 규정하는 시각적인 코드들을 제거하고 전형적으로 여성을 상징하는 기호들 속에 자신을 배치한다. 작업 내에서 외형적 장치들은 이미지 속 여인을 스테레오타입화 하기 위한 일련의 원칙들을 따르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렌즈를 응시하는 인물의 굳은 얼굴은 그 원칙들을 배반하고 있다. 오히려 그녀의 작업은 자신을 그 원칙들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관객을 바라보면서 그 시선의 정당성을 캐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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