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개산-지장봉(877m)
-경기도 포천군 관인면-연천군 신서면
지장봉(地藏峰)은 서울을 중심으로한 수도권 지역의 산꾼이라면 대부분 한번쯤은 다녀왔
음직한 경기북부 지역에서 꽤 알려진 산이다. 그러나 우리 경향신문OB산악회 대부분의 회원
들은 지장봉 산행경험자가 별로 없어 이 산을 오르기로 하고 2003년 7월20일 정기산행으로
이곳을 택했다.
7월 중순인데도 무더운 날씨다. 필자는 그간 지장봉 산행을 여러차례 하면서 느낀점은 결
코 만만치 않은 산행코스임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경향OB산악회 회원 모두가 찾기에는 벅차
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지장봉 산행에는 체력과 주력 좋은 산행 경험 풍부
한 베테랑 회원만이 참석하기를 은근히 바랐다.
지용우 이정세 정운종 박강지 김충한 김종수 이상호(필자) 지익주(명예회원.지용우 고문
조카) 회원 등 8명이 참석함으로써 오늘의 산행은 원만하게 진행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
다.
지장계곡 입구의 중리저수지를 벗어나면서 우리가 탄 15인승 승합차는 좁은 계곡길로 접
어 든다. 지장계곡 끝인 담터고개까지 가려면 8개의 다리를 건너게 된다. 우리가 오늘 산행
기점으로 잡은 절터까지는 매표소로 부터 6개의 다리를 건너야 하며 부지런히 걸어서 약 40
분의 시간이 소요된다. 애초부터 계곡을 따르지 않고 능선산행을 한다면 매표소에서 계곡입
구로 들어서면서 왼쪽 지능선을 타야한다. 이 코스는 보개산 종주산행을 완주하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중간 허리부터 산행을 계획했기 때문에 이 지점을 통과한다. 계곡은 전
과 다르게 잘 정돈된 진입로와 깨끗한 주위환경을 볼 수 있었다. 첫번째 다리를 건너면서
우측 숲사이 사면사이로 궁예가 쌓아놓은 보가산성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이 산성을 보려
면 계류를 건너야하며 아주 일부분의 산성석만이 남아있다. 지장계곡의 계류는 이곳 지방의
특산물이랄 수 있는 현무암 사이로 흐르고 있으며 흐르는 물은 너무 차거워 발을 오랫동안
담글 수가 없다.
지장계곡은 왼쪽의 보개능선과 정상인 지장봉, 우측의 관인봉 능선과 관인봉, 두 봉이 만
나는 지점의 담터고개, 마치 U자형의 계곡을 이루고 있어 아늑함을 느끼게한다. 그리고 간
간이 나타나는 첨예한 단애들은 이곳을 찾는 이들에게 또한 위압감을 느끼게도 한다.
우리가 탄 승합차는 10여분만에 산행기점인 6번째 다리에 11시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궁
예시절에 창건해 흔적만 남아 있는 북대사 또는 신흥사라 불리던 절터가 있다. 현재는 곳곳
에 돌부처와 비석만이 남아 있으며 누군가가 새롭게 주위를 정돈하고 부처를 모셔 놓고 불
공을 드리는 제단을 만들어 놓았다.
절터 바로 못미쳐에 보개산 주능선으로 오르는 산행로를 따라 산행을 시작했다. 6번째 다
리에서 계류를 따라 오르면 문바위와 삼형제봉,북대를 바로 오를 수있으나 오늘 산행계획은
이를 생략하기로 했기때문에 절터밑에서 바로 오르기로 한다.산행로 입구에는 리번을 여러
개 달아놓아 산행로를 금방 찾을 수가 있었다. 이곳에는 잣나무와 낙엽송이 빽빽이 들어차
있으며 산행로 초반부터 매우 가파르다. 10여분 오르자 임도가 나타난다. 이곳에서 왼쪽으
로 1백여m 임도를 따라가다 우측 가파른 지역으로 산행로가 나있다. 임도로 계속 직진하면
문바위와 삼형제봉으로도 오를 수있으나 역시 우리는 정상을 빨리 오르기 위해 우측 산행로
를 택한다.
가파른 산행로가 계속된다. 산행 20분정도 오르면서 지능선에 올라서고 구슬땀을 흘리며
30분정도 오르자 높은 단애를 만나면서 바위틈을 비집고 올라서니 앞이 훤이 내다보이는 휼
륭한 전망대에 올라서게 된다. 이곳에서는 화인봉을 비롯한 지장봉 정상, 그 오른쪽으로 담
터고개 마루턱이 확연히 보이며 건너편의 관인봉과 그능선이 손에 잡힐듯 앞에 와 닿는다.
이곳에서 잠시 쉰다. 산행처음부터 내내 가파른 등로를 주파해서인지 모두 힘들어 보인다.
제일 연장자인 이정세 국장은 얼마전 디스크 수술을 했으므로 매우 조심을 하는 것 같다.
간단히 과일로 피로를 푼후 왼쪽 능선을 따라 주능선으로 향한다. 조금 가니 60대 초반의
남자와 젊은이를 만난다. 서로 인사를 나눈후 그들은 급히 주능선을 향해 달음박질한다. 오
늘 산행길에서 처음 만나는 등산객이다. 그들은 아마도 부자지간인 것 같다. 처음으로 지장
봉을 왔다고 한다.
산행한지 1시간 정도에 주능선에 도달했다. 향로봉 3.5km, 지장봉 1.5km의 표지판이 꽂힌
670봉 헬기장이다. 전에 있었던 허름한 통나무집이 안보인다. 몽탕 철거해 버렸다. 이곳에
서 이정표 푯말을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한다. 항상 힘들어 하지 않고 즐거운 말솜씨로 주위
를 부드럽게 해주는 정운종 위원이 참 좋다고 소리친다. 힘들게 올라오면서 전망좋은 곳에
도착하면 누구나 그런 심정일 것이다. 지익주 회원은 사진찍기에 바쁘다. 남쪽으로 북대봉
이 코앞에 있다. 사실 거대한 문바위나 삼형제봉을 거쳐 북대를 통해 이곳에 도착해야하나
지름길로 올라왔음이 좀 서운하다. 보개산 종주에서는 문바위 삼형제봉 북대코스가 하이라
이트를 이룬다. 대체로 주력 좋은 건각들은 반드시 이 코스를 즐긴다. 이날따라 바람 한점
없는 매우 건조한 날씨여서 우리 일행은 조금 고전하는 눈치다. 이제 부터 능선을 따라 정
상인 지장봉을 향한다. 정상까지는 약 2시간이 소요된다. 앞에 멀리 보이는 정상이 까마득
하다.
능선상의 작은 암봉들을 오르내리면서 605 암봉을 통과하니 고개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
에서 오른쪽으로 하산하면 절터 위쪽 갈림길로 내려간다. 조금 더 진행하니 610봉에 도달하
고 이곳에서 첫번째로 로프타기를 만난다. 내리 꽂힌 가파른 지역으로 로프를 이용함이 안
전할 것 같다.
우리는 한사람씩 주의깊게 로프를 잡고 내려가기 시작한다. 제일 먼저 지용우고문이 내려
간다. 로프타기에서 유의할 점은 앞사람이 다 내려간다음 그다음 사람이 진행해야한다. 둘
이 매달리면 각자 중심을 잡기위해 로프의 흔들림이 불규칙하므로 안전사고의 요인이 된다.
계속해서 로프타기가 진행중에 밑에서 누군가가 우렁찬 목소리로 불만스런 항의를 한다.역
으로 내려오는 등산객 한 사람이 자기가 먼저 로프지대를 통과하겠다는 것이다. 우리 일행
이 많으므로 그 요구는 지당하나 목청이 너무 크다. 그를 먼저 통과시키면서 혼자 왔느냐고
물으니 그때는 공손히 그렇다고 대답을 한다.
얼마가지않아 동마네미로 불리는 안부가 나타나면서 우측으로 희미한 하산로가 보이고 이
곳을 따라 내려가면 북대사 절터가 나온다. 안부좌측으로는 거의 등로가 없다시피하다. 작
은 봉우리를 여러개 넘으면서 오르내리기를 몇번 한다. 이날 따라 바람 한점없는 무더운 날
씨다. 나뭇잎마저 조금도 흔들림없는 참으로 무더운 날씨다. 우리는 작은 암릉과 그 밑에
전개되는 수십m의 낭떠러지 단애를 감지하며 계속 전진한다.
산행 시작한지 2시간정도가 되면서 약간의 내리막길이 되는가 싶더니 다시 오르막길이 앞
에 닥친다. 이제부터 해발 700m이상의 3개의 산을 오르는 서막이 시작된다. 우리는 이제
710봉을 오르기 위해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다. 모두가 지친 모습이다. 이렇게 바람없는 날
씨가 원망스럽다. 710봉 정상을 밟으면서 앞에 전개되는 화인봉과 그 뒤로 보이는 지장봉을
바라보며 이 더위에 저 곳에 가야하는 의무를 꼭 지켜야되는가를 질문해 본다. 표정은 멀쩡
하지만 정말 괴롭다.
710 무명봉 정상을 벗어나면서 곧이어 가파른 골목형 10여m 협로를 내려간다. 중간부터
로프가 걸쳐 있어 수월하게 내려선다.마지막으로 내려오는 박강지 회원의 모습을 보고 놀라
지 않을 수가 없다. 비오듯 땀이 얼굴을 뒤덮고 있지 않은가. 매우 지쳐 있었다. 며칠 전
산행에서 대단한 더위를 먹은 경험이 있어 이것이 재발하는 느낌이란다. 웃통까지 벗어 젖
힌 후에도 땀이 비오듯한다.
오후 1시가 좀 지났다. 우리는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넓은 안부라 자리를 편하게 잡
았다. 좀 있자니 인천에서 온 한 무리의 등산객들이 로프를 타고 내려온다. 이들은 오른쪽
하산로를 따라내려간다. 이 길을 내려가면 담터고개 바로 밑의 큰 길을 만나게 된다.
화인봉을 오르는 등로는 매우 가파르다. 바람좀 불어주기를 바라지만 좀처럼 기미를 보이
지 않는다. 매우 힘든 고행이다. 화인봉만 무사히 오르면 지장봉은 다 간것이나 다름없다.
속도를 늦추며 화인봉 정상에 도달한다. 해발 810m의 화인봉. 경기도 119구조대 지장산1-3
긴급연락처 위치 표시판이 보인다. 우측으로는 수십길이나 됨직한 낭떠러지 단애가 나무가
지에 가려 아득히 보이고 있다. 사실 우리가 지나온 능선 등로 동쪽편은 이러한 낭떠러지가
수없이 많았다. 지장봉은 얼른 보면 육산으로 보이나 실은 골산에 속한다.
전망없는 화인봉을 지나면 또다시 로프지대를 내려간다. 지장봉 가는 길 마지막 로프타기
이다. 이곳을 내려서자 안부가 나오고 이곳에 지장봉 0.5km, 삼형제봉 2.6km, 향로봉
4.5km, 담터고개 1.2km의 산행길을 알리는 이정표가 반갑게 서있다. 마지막의 피치를 올린
다. 마음속으로 100m 200m 300m를 되뇌며 지장봉 턱 밑에 닿는다. 왼쪽으로 꺾이는 등로를
버리고 우리는 우회하여 오후 2시경 정상에 발을 딛는다. 헬기장이 조성된 볼품없는 정상이
다. 바로 앞에 보이는 금학산, 바로 옆으로 고대산,우측으로 철원평야가 전개된다. 사방으
로 확 트여 전망은 매우 좋다. 포천의 각흘산악회가 정상 표지판을 목조로 세워놓았다. 그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하산한다.
복쪽의 담터계곡을 바라?만? 잘 닦인 등로를 따라 계속 담터고개를 향해 달린다. 불현듯
아이스박스에 가져온 캔맥주가 생각난다. 신동아관광의 강재남씨를 휴대전화로 부른다. 그
런데 묵묵부답이다. 차가 고개밑으로 오기는 다 틀렸다. 1시간 가량을 달려 담터고개에 도
착한다. 지장봉 1.8km로 표시된 이정표가 우리를 반긴다.
강재남에게 계속 전화한다. 그러나 회신이 없다. 고개를 얼마큼 내려가자 강재남이 계류
가 시작되는 지점까지 차를 끌고 와 자리를 잡아놓고 있다. 급한 것은 시원한 캔맥주다. 정
신없이 먹어치운다.
이정세 고문의 끼(?)가 발동한다. 물이 너무 차서 발을 오랫동안 담글 수 없는 계류에 알
몸으로 물속으로 뛰어든다. 겨울에도 냉수마찰로 건강을 다지는 이고문의 실력이 나온다.
지용우고문을 비롯한 모두는 팬티바람으로 발을 담그는 정도이다. 더위를 머금은 박강지 회
원은 연거푸 맥주캔을 3개나 들이킨다.
점심을 부실하게 먹은 우리는 지장봉 입구 중리마을에 있는 칡냉면 집에서 생두부와 냉면
을 곁들인 주연(酒宴)으로 지장봉 산행을 마무리한다. 바람 한점 없는 무더위에 모두가 고
생한 산행이었다.앞으로 지장봉을 다시 찾는다면 가을철을 택해 향로봉을 시작으로 삼형제
봉, 문바위, 북대, 남대를 거치는 종주산행을 해보기를 권하고 싶다. 이번 산행은 보개산의
진수를 보지 못했음을 아쉽게 생각한다. 반면 궁예에 충성하며 궁예를 지키기 위해 마지막
까지 격전을 벌이며 그 목숨을 기꺼이 내던진 음부장군의 숨결을 느끼는 듯, 그 지장봉 계
곡을 밟았음에 의의를 두는 산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