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독어 2교시 내용 정리
1. 12-3
Mit dem Tiere verglichen, das immer Ja zum Wirklichsein sagt,-auch da wo es verabscheut und flieht,- ist der Mensch der Neinsagenkönner, der Asket des Lebens, der ewige Protestant gegen alle bloße Wirklichkeit.
혐오하고 도망치는 와중에도 항상 현실에 대해 긍정할 수 밖에 없는 동물과 비교해보면, 인간은 아니오를 말할 수 있는 존재이며 고행(금욕)할 수 있으며 모든 현실성에 대항할 수 있는 영원한 반항자이다.
Verglichen : 고르게 하다, 평평하게 하다, 조정하다
Wirklichsein : 있다, 존재하다, 열리다.
Verabscheut – verabscheuen : 증오하다, 혐오하다.
Flieht – fliehen : 달아나다, 도망하다.
Neinsagenkönner : 아니오라고 할 수 있는 존재
Protestant : 이의 제기자, 신교도
2. - 10 - 칸딘스키 145쪽
Ich moechte kurz bemerken, dass die Etikette <<abstrakt>> zum Irrtum verleitet un schaedlich ist, wenn man sei buchstaeblich nimmt. Aber soviel ich weiss, wurde zu ihrer Zeit die Etikette <<impressionistisch>> asugedacht und angewendet, um dieser bewegung eine wendung ins Laecherliche zu geben. Der Ausdruck <<Kubismus>>, woertlich genommen, ist eine schaedliche bandalisierung des neuen im kubismus. Die Vorwuerfe, die man der abstrakten malerei macht, sind mir seit langem bekannt.
나는 추상적이라는 푯말이 오류로 잘못 유도하고 해롭다는 점을 짧게 설명을 부가하고 싶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한 인상주의적이라는 말은 인상주의 운동에 조롱점으로서 하나의 전환점을 부여하기 위해 고안됐고 사용됐다. 입체파라는 표현은 말 그대로 취급해본다면 입체파 속의 새로운 점을 깔아뭉개는 아주 해로운 반달리즘(평가절하)이다. 추상회화에 대해서 사람들이 만드는 질타는 나에게 아주 오래전부터 알려져왔다.
Bemerken : 인지하다. 깨닫다.
Etikette : 예법, 예의범절
Abstrakt : 추상적인, 개념적인
Irrtum : 오류, 오해, 잘못
Verleitet : 유혹하다, 미혹하다.
Schädlich : 유해한, 해로운
Buchstaeblich : 문자그대로
Impressionistisch : 인상주의의
Laecherliche : 조롱하다, 웃음거리로 만들다.
Vorwuerfe : 비난, 질책
Malerei : 회화.
3. 내용 정리
각각 첫 번째 글과 두번째 글에 대한 생각을 서술해보겠다. 첫 번째 글은 가장 근원적으로 인간 고유한 능력을 고민하게 만드는 글이었다. 우리는 가끔 길거리를 활보하는 고양이들을 본다. 고양이들이 평소에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알 길은 없지만, 정말이지 천하태평하게 낮잠자는 고양이들을 보노라면 인간인 우리조차 고양이처럼 되고 싶다는 상상이 들곤 한다.
하지만 인간은 결코 고양이처럼 될 수는 없다. 고양이는 기본적으로 환계와 본능에 갇혀 살기 때문에 감정이나 욕구를 부정하거나, 미래의 자신을 위해 시간을 투자하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인간이 고양이 같았다면 욕망을 억제하고 좀 더 위대하고 나은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능력이 사라져 지금과 같은 눈부신 인류문명을 건설하지 못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인간은 동물들과 달리 눈 앞의 욕망을 금욕할 수 있기 때문에 다른 동물들보다 위대해질 수 있는 것이다.
두번째 글은 인상주의와 입체파가 조롱거리로 전락하는 모습을 보고 우려의 목소리를 내는 칸딘스키의 생각을 담고 있다. 원래 인상주의라는 말이 특정 부류의 예술가들을 조롱하기 위해 고안된 말이었지만 지금은 공통적으로 이들을 지칭하는 표현으로 굳어졌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하지만 어쩌면 예술가들의 고귀함은 이러한 아이러니에서 파생되는게 아닐까?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조롱하든, 심지어 어떤 이름과 어떤 정체성으로 규정하든 자신이 믿는 진리를 추구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이 바로 예술가들이다. 특히나 인상주의 학파 사람들은 어떠한 부유한 사람들도, 동서고금 어떤 권력자들도 쉽게 실현하지 못하는, 외롭지만 고귀한 투쟁의 훈장을 자신들의 이름인 “인상주의” 안에 담아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4. 질문 정리
질문은 두가지다. 첫째, 과연 금욕하고 절제할 수 있는 동물이 인간밖에 없을까? 우리는 가끔 훈련된 강아지들이 눈 앞에 있는 먹이를 먹지 않고 참는 모습이나 또한 주인이 도착할 때 까지 먹이를 먹지 않고 차분히 기다리는 모습도 자주 볼 수 있다. 둘째, 과연 예술가들의 예술 경향이나 스타일에 이름을 부여하고 특정 예술이라고 규정하는게 의미 있는 작업일까? 특히나 현대 예술에 이르러서는 작가 개개인마다의 스타일이 매우 달라졌기 때문에 특정 예술계열이라고 묶는게 대단히 힘들어 보인다.
첫댓글 철독토론6) 안녕하세요 차재헌학우님, 발표 잘 보았습니다! 깔끔하게 정리 잘 해주신 것 같고 마지막에 질문까지 생각할 거리를 많이 던져주신 것 같습니다. 제기해주신 질문에 대해 저도 의견을 조금 보태고자 합니다. 첫번째 질문에 대해서, 저도 어느 정도는 동의하는 바이지만 훈련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인간의 금욕과 조금은 달리 보아야 할 것 같다고 생각이 됩니다. 훈련되지 않은 강아지는 말씀해주신 예시에서 기다림이나 절제 능력이 보이지 않을 것이고, 훈련된 강아지의 경우에도 보상이라는 조건이 수반되기에 절제와 기다림이 가능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반면 인간은 어떠한 보상에 대한 기대없이 그 스스로 금욕할 수 있는 존재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동물에 관한 연구가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고 새로운 능력들이 많이 발견된만큼 특정동물이 그 스스로 절제할 수 있다는 새로운 발견이 추후 제기될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번째 질문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현대예술로 들어서서는 작가 개인마다 개성이 뚜렷하게 드러납니다. 이러한 점에서 작품들을 특정 계열로 분류하는 것이 무의미할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분류라는 것이 무수한 예술작품들 사이에서 감상에 있어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필요할 수도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의견 공유해주시고 고양이 사진도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의견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욱 연구되어야만 하는 분야이긴 하겠지만, 저는 그럼에도 강아지가 처음부터 금욕하거나 절제할 수 있는 능력을 타고났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훈련이 없이도 사람을 잘 따르는 강아지를 보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입니다. 동물윤리학은 저도 아는바가 적어 이만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하이데거조차 인간이 도구와의 관계 맺다는 점에 출발합니다. 그러나 단지 인간이 도구를 사용하는 바가 아니요. 동물도 도구를 이용하는 사례가 많아요. 그러나 많은 학자 단지 주장에 알맞은 사례만 우리에게 보여줄 것 같아요. 동물이 훈련을 통해서 금욕할 수 있어요. 물론, 만약에 나중에 동물이 스스로 금욕할 수 있는 사례를 발견할 수도 있어요. 인간의 금욕이 미래 어떤 목표를 설정하거나 사물의 본질에 들어가는 목적과 동기가 알고 있는데 동물이 자유롭게 스스로 금욕의 결정을 내리지 않고 인간의 요구에 따라서 행위할 뿐만이예요. 동물이 금욕할 수 있더라도 동물이 금욕을 통해 욕체를 나가고 탈현실화하고 순수의지의 세계로 떠날 수 없어요. 또한, 개별적인 사례가 동물이 금욕을 발견해도 동물 전제 보편적 현상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술, 철학,등 자신 스스로 선택하는 길에 외로운 투쟁입니다. 각각인이 마음, 삶의 방식도 다릅니다. YOLO. 창의력이 높은 아인슈타인도 과학계의 인정이 오래동안 기다렸어요, 시대를 초월하는 사상이 궁중의 수긍이 시간이 필요해요. 키에르케고르는 1843년 <이것이 아니면 저것이다> 책을 쓰고 궁중의 지적을 많이 받아서
키에르케고르는 자신이 이제 당시 사람의 의견에 따라지 말고, 미래의 독자를 위해 글을 써요. 니체도 마찬가지로.
토론2) 안녕하세요. 인상깊은 발표였습니다. 차재헌 학우님의 발표 마지막 부분에서 '과연 금욕하고 절제할 수 있는 동물이 인간밖에 없을까?'에 대한 질문을 하셨는데 금욕과 절제가 인간과 동물의 차이가 될 수 없다면 두 대상을 구분할 수 있는 차이는 무엇이라 생각하신가요?
안녕하세요 발표 잘 보았습니다. 금욕이라는 의미가 욕구를 누르는 것인지 욕망을 누르는 것인지, 어떤 의미로 정의하느냐에 따라 의견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