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 받고 싶은 마음 있으면 소개 해 줄수 있어요."
"이번 주는 좀 쉬고, 다음 주 지리산둘레길 걸으면서 내 마음 근육을 좀 살펴보고 견딜 수 있는지 들여다 볼고 올께"
아끼고 미루어 놓았던 지리산둘레길, 나의 첫 나들이 가는 날 주말 내내 비가 올거라는 일기예보가 일찌감치 내 안테나에 들어왔다. 집밖으로 나가려는 계획이 있는데 비예보를 접하면 대부분 두가지 마음이 든다. '나가지 말고그냥 집에서 음악 들으면서 책이나 보고 낮잠이나 잘꺼나', '비 오면 운치 있고 사진도 진한 색으로 나와 내가 좋아하는 색감이 보이는데....' 비가 오던 말던 이번 둘레길은 며칠 동안 내 온 마음과 몸이 안달이 날 정도로 마음속에 기다림이 가득했다.
며칠전(이제 벌써 3주차로 접어든다) 45년 지기 하나가 스스로 삶을 마감하고 우리들 곁을 떠났다. 아팠거나 사고로 이미 몇이 먼저 떠나갔지만, 이런 식으로 떠남은 엄청난 충격이었고 나는 감당하기 힘든 마음상태로 며칠을 보냈다. 평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심리상담을 하는 후배에게 내 상황을 말하고 '상담이라도 받아볼까?' 했더니 어떤 분을 소개해 주겠다는 제언을 했다. 나는 우선 지리산에 들어가 평소와 같은 마음으로 길을 걸어보고 말하겠노라고 하고 길을 나섰다. 계획한 이틀내내 지리산에 비 소식이 있다는 말이 오히려 반가웠고, 지금 그 길이 좋았노라고 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남루한 옷차림의 이도령이 변사또 생일 잔치에 불쑥 들어가 내키지 않은 술 상을 받고는, 운봉 영장에게 “여보 운봉 나 기생하나 불러 권주가 하나 시켜 주시오”하니 이때 기생중에 늙고 제일 못생긴 기생이 나와 술을 붓고 권주가를 하는데, “진실로 이잔 곧 잡으시면 천 만년이나 빌어 자시리라”라고 하는 대목이 나온다.' 어사또가 지은 시를 보고 눈치 빠른 운봉현감은 핑계를 대고 자리를 피했고, 덕분에 삭탈관직을 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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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둘레길을 걸으면서 '내 마음근육의 상태는 아직은 견딜만 하다'는 느낌이 왔다. 큰스님의 원적 소식이 큰 위로가 된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야 하는 길을 스스로 자를때의 심정이 어떠했을까 하는 아픔이 아직 남아 있고, 내가 고정적으로 듣는 세미나에서 잠시 이야기를 나눈 지교수님의 말처럼 가끔 다시 그 물결은 몰려올 거라고 했지만, 지리산이 주는 편안함과 길에서 만난 모든 살아있는 생명들에게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 지리산둘레길을 잇는데 큰 역할을 하신 도법스님은 말했다. '지리산둘레길은 생명을 살리는 길'이라고...
많이 웃었고, 많이 먹고 많이 비웠다. 선암사 고매화 필때 내가 꼭 모시겠다고 한 어른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을 것 같고, 올라오는 도중에 또 다시 금산사 벚꽃을 만나러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