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꽃을 좋아하는 줄 나도 몰랐다.
어머니는 꽃을 좋아하셨다.
그래서 나는 결혼 하기 전 까지,
상당히 넓은 정원을 가진 집에서
여러가지 꽃나무들을 그저 무심히, 흔하게 보며 살았다.
봄이 오면,
꽃집에서나 귀하게 팔리던
튤립이나 수선화들이
예쁘게 잔디밭 위로 봉오리를 내미는 것에도
무심히 지나쳐 다녔고,
지금은 가슴 속에 그리움으로 남아 있는,
담을 훌쩍 넘게 자란 철쭉 나무의 겨란 노른자 같은
고운 색 꽃들도
그저 늘 보는 식구 처럼 무덤덤 하였었다.
철철이 제 나름대로 멋을 부리던 많은 꽃나무들이
나의 어린시절을 아름다운 배경으로 채색하고 있었는데도,
잡초를 뽑는 일은 다른 사람의 몫이었고,
언제 잔디밭에 제초제를 뿌리는지,
언제 큰 나무들에 비료를 주는지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그러던 나의 무심한 마음 속에도
꽃을 가꾸시던 어머니의 핏줄이
움트고 있었는지...
호주에 와서 처음 이사 온 집의
그저 초록색 잔디로만 채워진 뒷 마당은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일년 후면 떠날 곳인데...
잔디를 훼손하여 벌금을 많이 물었다는
아줌마들의 이야기도 들었는데...
그래도 나는 나도 모르는 새에
작은 꽃 묘목을 하나 사다,
잔디를 파내고 뒷뜰에 심고 있었다.

처음으로 내 손에 잡혀 와 우리 집 뒷뜰에 심겨진것은
흔하게 팔지 않는 무궁화였다.
나는 어디에 있으나 애국자이니까...
실제로 보면 탐스런 복숭아 색깔과 너무 흡사해
우리가족은 이 작은 꽃나무를 복숭아라고 불렀다.
호주를 떠나겠다던 일 년이 흐르자,
나무는 상당히 많이 자랐는데,
우린 호주를 떠나는 대신 그 집을 떠났다.
사실 나는 그 일 년 간,
그 뒷뜰의 잔디를 다 훼손하고야 말았다.
물 밖에 주는게 없는데도
무럭 무럭 자라주는 무궁화를 보며,
이런것이 농부의 보람이구나...
뒤늦은 깨달음에 무릎을 치면서
다른 꽃도 이것 저것 사다 심었기 때문이다.
결국은 어느날,
뒷마당의 잔디가 다 없어지고 꽃밭이 되어있는것을
매니저에게 들키고 말았는데,
잔디를 도로 원상복귀시켜라...
할 줄 알았던 이 매니저 아저씨가
또 나 처럼 꽃을 사랑하는 분이셨던지,
앞 마당에도 손수 더 많은 꽃을 심어주셨다.
그래서 마흔 다섯집이 있던 그 단지 안에서
우리집 앞뜰 만이 유일한 꽃밭이 되고 말았다.
이사를 가면서,
그렇게 탐스럽던 꽃밭이지만,
남의 집인 이상 다 가져올 수는 없고,
뒷뜰의 무궁화만은 남겨두고 갈 수도 없었다.
그래서 이번엔 상당히 큰 화분을 사다가
옮겨 심어 데리고 갔다.
매니저 아저씨도 그것만은 이해해 주셨다.
많이 자란 무궁화를 빼 내고도
다른 꽃들이
빈자리를 아름답게 채워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새로 이사를 온 집도 역시나 새로 지은 렌트집이라,
마당은 오직 잔디 뿐.
결국은 다시 새 매니저에게
잔디를 좀 파내겠다고 양해를 얻은 뒤,
우리의 무궁화를 심었다.
다시 일 년 반이 흘러,
이 집이 팔리는 바람에 우리는 옆집으로
또 이사를 가게 되었는데...
일 년 반이 흐르고 나니,
여기도 언제 그랬는지,
잔디를 야금 야금 파먹고
꽃들이 들어서서 은근히 꽃밭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번 만큼은 더 많이 자란 무궁화를
옮겨 갈 수가 없었다.
집을 산 할머니가 집을 보러 올 때 부터,
내 화단을 너무나 마음에 들어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 꽃밭 때문에 집을 산것이 아닐까...
착각을 할 정도로
보러 올 때 마다 할머니의 눈길은 늘
화단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아마 멀리 모르는 곳으로 이사를 갔다면,
다른것은 다 놔 두고라도
무궁화만은 다시 옮겨 가 심었을 텐데...
바로 옆집 이웃이 되면서,
무궁화를 바라보던 할머니의 눈 빛을
저버릴 수는 없었다.
내가 심은거라 분명 내것이었고,
잔디만 새로 덮어주면
법적인 문제도 없었지만...

할머니가 이사를 들어오고,
이웃인 나를 처음 초대 한 날.
제일 먼저 내 손을 끌고 간 곳은
나의 무궁화 나무 앞이었다.
할머니는 무궁화 나무 아래에
소중하게 묻은 플라스틱 통 하나를 보여주셨다.
위에 Ray Briffa 라고 쓰여 있는 이름이
바로 할머니 다이앤 브리파의 남편.
할머니는 오 년 전에 죽은 남편의 유분(遺粉)을
이 통에 넣어
그 전 집의 마당,
제일 중앙 꽃나무 아래에 간직하고 있었는데,
이사를 오면서
남편을 묻을 꽃 나무 부터 물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내집 뒷담이 되어버린 이 울타리는
'할머니의 정원' 이라는 이름표도 달고 있다.
.
나는 이 할머니가 딸네 집을 가거나,
시드니의 어머니집을 방문하기 위해 집을 비울 때 마다,
내 마당 처럼 여기 가서 꽃밭에 물을 준다.
누군가 말했다.
"우리가 사는 이 지구 위에
한 뼘의 꽃밭이라도 만들었다면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이 있는것." 이라고.
어린 묘묙을 심어,
이 만큼 키운 우리나라 꽃
무궁화 나무가,
이 할머니가 평생 사랑했던
한 영혼의 그늘이 되어주고 있다니......
다이앤 할머니는 죽을 때 까지 남편의 유분을 보관했다가
자기의 유분과 함께 섞어
바다에 뿌리도록 하고 싶다고 했는데...
남편의 얘기를 할 때 마다 아직도 눈물이 맺히는
다이앤 할머니.

무궁화는 영어명으로 Rose of Sharon.
'샤론의 꽃, 예수' 라는 찬송가에 나오는
바로 그 치유의 꽃이다.
내가 삼 년 전
선택해 나의 뒷뜰에 심었을 때,
무궁화는 이미,
사랑하는 이를 잃은
다이앤 할머니의 아픔을 치유하는
향기로운 꽃이 되도록
예정되어 있었던 것일까?
나는
이제
언제 어디서건
무궁화 꽃만 보면,
결혼 하기 전 까지 평균 열 네명이나 파트너를 바꾼다는
호주 사람 가운데에도
이런 순애보의 주인공이 있음을 떠 올리게 될것이다.
삼년 전에 심었던 작은 무궁화가
새삼 사랑스러워진다.

무궁화의 학명, althea rosea는 그리스어 althea '치료하다' 에서
온 것으로
위경련과 설사 복통등의 약재로 사용된데에 기인한다고 한다.
첫댓글 글을 총 천연색으로 다시 보니 느낌이 새롭고 좋습니다.
계속 좋은글 많이 올려주세요.
이기란님이 문학회에 오셔서 흑백문학회에 칼라가 입혀진 느낌입니다 ^^.
수고에 감사드립니다.
하하 벌써 오셨네요.^*^ 바쁘신 총무님께서 회장님께서 하시는 열정 대단하세요.
문예대전 당선이 이렇게 좋은 문학회 여러분과의 만남을 열어줄줄 누가 알았겠어요?
많은 분들이 더 많이 참여하셔서 정말 멋진 문학회로 키워가면 좋겠네요.^*^
정말 기분 좋은 동반자들입니다. 샤론의 장미는 읽을 때마다 감동입니다. 내가 역시 사람보는 눈이 있어요.
ㅎㅎㅎ..자화자찬하면서...건데 난 사실만을 말하는데..요
이 작품을 선정할때 작가의 모습을 떠올렸는데 이미지가 닮았어요.
항상 예쁜 이기란님 너무 사랑스러워서 한번 안아주고 싶은데... 남편분의 허락이 필요할런지...흠
글을 많이 올려서 자주 들어오도록 해보세요홧~~팅
하하하... 황회장님 칭찬은 저를 춤추게 하네요.^*^ 열심히 할께요. 다음 주부턴 학교 나가시느라 바쁘시겠어요. 건강 항상 챙기시고 지금 처럼 늘 행복하세요.
담에 만나면 제가 안아드릴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