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8일부터 일 주일간 태국에 선교 여행 다녀오신 이금향 요안나 자매님의 선교 에세이를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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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웃 치앙마이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말씀하셨다.
“기쁨은 어디서 태어납니까? 진정한 기쁨은 어떤 사물이나 소유에서 태어나지 않습니다. 기쁨은 만남에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태어나며 자신이 받아들여지고 이해받고 사랑받았다는 느낌에서 태어납니다. 선행하고 있습니까? 작은 것이어도 좋으니 이웃에게 선행을 하세요.”
우리 일행은 불교의 나라 태국으로 향했다. 불교 국가 속에서 생존하는 그리스도인 타이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발걸음이었다. 한겨울에 여름옷을 챙기며 우리의 여정이 어떻게 펼쳐질 지 모른 채 새로움에 놀랄 마음의 준비를 하고 설레는 길을 나섰다.
1월 달의 태국 치앙마이는 선선한 날씨로 우리를 맞이해 주었다. 우리 일행은 김동원 비오 신부님과 선교사님 두 분 그리고 일곱 명의 직암선교후원 회원 모두 열 명이었다. 우리는 차에 올라 묵주기도 5단으로 일정을 열었다. 치앙마이를 달리는 차 안에서 아베 아베 아베마리아 성가로 우리는 이미 하나 되었다.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다. 우리는 선교 체험이 아니라 선교를 하러 왔다고 성령께 나를 내어놓고 성령의 이끄심으로 따르자고 하셨다.
우리의 숙소는 치앙마이에서 한 시간 떨어진 참통 타마린 마을이었다. 조용한 농촌 마을에는 버팔로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자연과 더불어 평화로운 그곳에 아누락 수사님이 국제청소년연수센타와 아름다운 라우다토씨 성당을 지어놓으셨다. 라우다토씨는 찬미 받으소서 뜻이다. 원목 나무로만 소박하게 지어진 성당은 진복팔단의 의미로 팔각형으로 지어졌다. 기둥 없이 팔각 텐트형의 성당 안은 원형으로 되어 있다. 신발을 벗고 넓은 성당 안에 원형으로 둘러 앉으니 우리 모두가 하나가 되었다. 높고 낮음도 없이 각자의 존재로 하나가 되었다. 하느님 안에서 한마음으로 하나 되니 친교 사명 참여 시노달리타스가 원형의 공간 안에서 우리 안에서 저절로 이루어졌다.
이튿날 이른 아침 어둑한 성당에서 묵상 시간을 가졌다. 일상을 떠나 오롯이 하느님과의 시간이었다. 일찍 일어난 새들의 합창을 들으며 동쪽 창문에서 햇살이 비춰왔다. 하느님은 찬미 받으소서. 하느님의 거룩한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찬미 받으소서. 마음 속 찬미가 울려 퍼졌다. 하느님께서 주신 이 시간의 선물을 나는 잊지 못한다.
아름다운 이 공간을 만드신 아누락 수사님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수사님은 너무나 온화하고 소박한 모습 그리고 부드러운 카리스마를 가지셨다. 수사님도 우리를 보고 봉헌된 사람들이구나 느꼈다고 하셨다. 우리는 서로에게 계시는 하느님을 본 것이다. 수사님은 대학에서 20년 동안 학생들을 가르치셨다. 그러나 가진 자들에게만 돌아가는 혜택을 보고 가난하고 힘든 젊은이를 위하여 일하기로 하셨다. 95프로 불교도의 나라에서 고군부투 하시는 수사님을 보고 우리 식구 중 한명이 질문했다. 우리가 복음화를 위하여 여기서 무엇을 하면 좋을까요? 수사님이 말씀하셨다. Just be, Just stay, 그냥 머무르라고 하셨다. 그리고 한국인 전광수씨 얘기를 해주셨다. 이곳에서 한달살이 한 전광수씨는 아침이면 산책하고 동네사람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한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 한명의 가난한 청년을 불러 자신이 운영하는 카페에서 석달 동안 커피를 가르쳤다고 하셨다. 그 청년은 돌아와서 다른 청년들을 가르친다고 했다. 우리는 그 청년이 만든 다람쥐 모양의 라떼를 마시며 감탄을 했다. 선교는 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하는 것이다. 우리는 수사님에게서 선교를 배우고 왔다.
둘째 날 오후 우리는 치앙마이 비라 주교님을 만났다. 주교님과 주교관 경당에서 미사도 드리고 사진도 함께 찍고 대화의 시간도 가졌다. 비라 주교님도 아누락 수사님처럼 온화한 인상을 가지셨다. 주교님께서는 장인남 태국 주재 교황대사님 얘기도 해주시고 치앙마이 교구가 방콕 교구로부터 분리되었을 때 이만 명의 신자가 세례를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셨다. 치앙마이에는 7만 명의 신자가 있고 그중 4만 명이 소수민족 카렌족이라 한다. 도대체 카렌족은 누구인가 궁금했다.
넷째 날 드디어 우리는 태국과 미얀마의 국경 지역 메솟으로 갔다. 다섯 시간 넘게 차를 타고 가며 우리는 묵주기도 5단을 바치고 성가를 불렀다. 여러 곡의 성가를 부르며 우리의 마음은 충만함으로 가득차고 차 안의 공기는 사랑과 우정으로 가득찼다.
메솟에는 난민을 위한 모든 국제단체들이 모여 있었다. 미얀마 민주화운동 양심수 단체(AAPP) 한국메솟협력센타(KMCC) 미얀마 청년들과의 만남(YPD) 천주교 긴급구호와 난민사무소(COERR) 무료진료소 메타오 병원 이렇게 다섯 단체들과 대화의 시간을 가졌다.
미얀마 군부는 21년 2월 코로나 시국에 군사 쿠테타를 일으켰다. 시민들은 아웅산수치의 민주주의 민족 동맹 정권을 지지하며 냄비를 두드리고 경적을 울리며 저항했다. 군부의 유혈 진압으로 사망자는 4천 여 명, 구금된 사람 2만명, 난민이 260만 명이 발생했다. 미안마 사태는 4년째 접어들었고 경제는 파탄되고 국민들의 삶은 피폐해져 갔다.
미안마와 태국의 국경 쪽에 카렌족이 모여 산다. 카렌족은 미안마예서 세 번째로 많은 소수민족이다. 인구수는 약 360만 명이고 그들의 언어가 있고 문화가 있고 영국 식민지 시절 그리스도교를 가장 많이 받아들인 민족이다. 그들은 군부에 대항하며 끊임없이 독립을 주장한다. 군인들의 공습을 피해 마을을 버리고 산속 깊숙이 숨은 그들을 난민 봉사 단체들이 돕는다. 하루에 6톤의 쓰레기는 미국 단체가 맡아서 하고 식량 공급과 산 속에서 어린이 교육 봉사도 이루어진다. 난민 구호 단체는 생명을 살린다. 그들이 착한 사마리아인이다.
태국은 불교국가의 정신으로 그 많은 난민을 받아들이고 보살핀다. 미얀마의 88항쟁 이전부터 39년째 난민을 돕는다. 난민 캠프에서 자란 아이들의 꿈은 간호사, 선생님 그리고 구호 단체 봉사자가 되는 것이다. 그들의 눈에 보이는 세상은 그곳에만 한정되어 있다. 우리는 다섯 단체를 방문하고 대화를 나누었다. 미얀마에서 8년, 13년 감옥살이 한 양심수들의 얘기를 듣고 카렌 소수민족의 투쟁을 들었다. 가톨릭 단체 COERR의 총괄 책임자 Ben 아저씨로부터 난민들의 생활상을 자세히 들었다. 그리고 군부독재를 피해 난민으로 온 신시아씨의 무료병원도 방문했다. 메솟은 도시 전체가 인생학교이고 전 세계 봉사단체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하느님께서는 그곳에서 그들과 아파하고 힘들어하시며 함께 계셨다.
우리를 메솟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는 자꾸 질문하신다. 무엇을 보았느냐? 무엇을 느꼈느냐? 너 안에 가득 찬 그 갈망과 연민을 너는 어떻게 할 것이냐? 다음날 미사 강론 때 신부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날 복음은 예수님께서 “무엇을 찾느냐? 와서 보아라.” 하신 말씀이다. 예수님은 두 제자를 집으로 초대하시고 당신의 마음을 보여주셨다. 이번 여행에서 하느님께서 초대하시고 보여 주신대로 우리는 하느님과 깊은 친교를 통하여 아시아의 그들과 이웃이 되고 제1독서의 사무엘처럼 하느님의 음성을 알아듣고 인식하여 함께 참여하자고 하셨다. 친교 사명 참여로 우리를 초대하셨다.
직암선교회는 혼자서 할 수 없는 일을 중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도록 중개해 준다. 이번 선교여행은 나라 잃고 집 잃고 가족까지 잃어버린 이가 많은 곳으로 우리를 데리고 갔다. 그들에 대하여 무관심에서 관심으로 우리의 지평이 넓어졌다. 그들의 이웃이 되는 길을 생각해 본다.
이번 여행에 우리에게 통역해 주신 이성훈 안셀모님, 함께 우리를 이끌어 주신 조은상 토마스님 그리고 귀여운 베르따, 우리의 식사를 책임진 비원님께 감사를 보낸다.
첫댓글 + 샬롬.
이금향 요안나님~
선교지 체험 나누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함께 동행한 듯 그 감동이 느껴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