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눈뜸에의 여정
〖 고향의 산하(山河) – 소년시절의 추억 〗
우에노 역은 동북이나 북륙지방에서 오는 사람들의
도쿄 북쪽의 현관 출입구이다.
어떤 이에게 있어서는 희망에의 첫걸음의 입구이며
또 어떤 이에게는 슬픔에의 현관이겠지만,
우에노역은 누구에게나 친근한 서민적인 분위기가 있다
즉 우리들에게 망향의 그리움을 안겨주는 그곳은 그리운 역이다
나도 시골에 돌아갈 때는 여기서 열차를 탄다.
그날도 나는 평소대로 특급 “아사마호”의 사람이 되었다
태어나 사십 몇 년간 회사 일이나 귀성길로 왕복할 때마다 통하는 우에노 역......
여행은 여기서 시작된다.
열차는 선로 위를 미끄러지듯 빌딩과 주택가를 뒤로하고
마침내 황량한 하천의 철교를 건너 주물(鑄物) 제조도시 가와쿠치를 지나간다.
선로 옆도 해마다 그 풍경을 바꿔 주택가가 밀집한 곳으로 서서히 바뀌고 있다.
오오미야(大宮)시를 통과할 무렵부터
무사시노의 자연이 시야에 들어오면 왠지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하지만 이 자연도 마침내는 공업단지 등에 의해 파괴되고 말 날도 멀지 않을 것이다
녹색의 대지, 오염이 없는 대기는
우리들의 생활 속에 언제까지라도 조화되어 있었으면 하는 것들이다.
흙을 잃는 것은 마음의 정서까지 잃어버리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문명이란 무엇인가!
라고, 나는 차창에서 도회와 자연 등에 관해 생각하고 있었다
-- 문명의 발달이 마음을 잃게 만든다.
사람들은 마음의 터전을 찾고 있지만,
물질경제의 방향은 오히려 마음의 안식을 잃고 역행하고 있다.
우리는 물질적으로는 충족되어 있지만,
항상 마음속은 충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숨기고 있다.
그것은 끝없는 욕망의 탓이기도 하며
물질만으로는 어차피 전부가 만족하지 못한다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소박한 자연의 모습을 누구나 찾고는 있지만
문명의 발달이 사람들의 선한 마음까지 빼앗아 가는 지도 모른다.
문명을 추구하는 생활환경이나 학문의 필요성 등,
예를 들면 끝없는 물질 지상주의적 풍조로
마음의 존재 등은 쳐다보지도 않는 것이 현실이며,
인간이 태어난 목적이나 사명 등을 더 이상 생각할 수 없는 사회 상태이다.
이러한 와중에 혼란한 세상이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 --.
다카사키를 통과할 쯤이면 죠신에츠(上信越)의 산맥이 눈에 들어온다.
고향의 자연이 다가온다.
녹색으로 둘러싸인 터널을 몇 개인가 빠져나오면
산과 골짜기로부터 시야가 전개된다.
국제적인 피서지로 알려진 카루이자와 마을이다
해발 천 미터를 넘는 산간 마을로
그 냉기는 뼛속까지 스며들 정도이며 공기가 맑다.
마침내 낙엽송이랑 자작나무의 숲,
아사마산의 분연을 오른쪽으로 보면서 가면
아사마의 자락이 코모로시(市) 방면으로 넓게 뻗어 펼쳐진다.
사쿠고원의 북방을 장식하는 산들의 위용,
코모로시는 도쿄에서 들어오는 신슈지(信州路)의 현관이다.
<코모로에 있는 고성의 강가 눈, 하얗게 타향인 슬픈……
시마사키토손(島崎藤村)의 시로 유명한 찌쿠마가와강 (千曲川)의 맑은 흐름은
그 사쿠고원의 중앙을 흐르고
산수의 아름다움은 여행자들의 마음을 잠시나마 위로해 준다.
나는 여기서 기차에서 내린다.
그리고 코모로역에서 차로 30분,
그곳이 사쿠라다이라이며, 나의 고향이기도 하다.
남쪽에는 깍아 지른 야츠다케의 연산이 병풍처럼 사쿠다이라는 감싸고
서쪽은 앞산 머리너머로 일본 알프스 산맥이
아름답게 남신과 북신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동쪽에는 전국시대 다케다 세력을 깨고 정월과 전승을 축하하다가
16세 소년 다케다 신겐이 인솔하는 삼백의 군사에 의해
멸망한 히라카 겐신이 살았던 성이 토대만을 남기고
천고의 세월을 견딘 늙은 삼나무로 둘러싸여 있다
그 성터와 나란히 잡목림 속에는 유난히 솟아 있는 오래된 소나무 거목이 있다.
그것은 영고성쇠의 역사를 간직하고 변화하는
사쿠다이라의 모습을 바라보며 견고히 뿌리를 뻗고 있다.
초여름의 모심기, 가을의 벼베기는 나에게 있어서도
전원의 일에 빠져들어 도회의 먼지로부터 벗어나는 즐거움의 한때였다.
들옷으로 갈아입은 나는 고장 사람들과 함께
엄마 품과 같은 대지를 맨발로 밟는다.
아직 차가운 논 안에 들어가면 머리 위까지 살아 있는 자연이 스며든다.
팽팽해진 실을 따라 심어가는 모는 규칙적으로 녹색의 열(列)을 이루어간다.
어린잎의 모종이여, 어머니인 대지에 안겨라,
마음껏 햇빛을 받으라.
그런 가을의 수확을 기원하는 마음속에
논은 온통 푸른 모종의 물결로 변해가는 것이다.
피곤해지면 홀로 논둑 길 녹색의 융단에 걸터앉는다.
평화로운 고원의 아름다운 풍물에 마음을 동화하려고 호흡을 가다듬는다
하굣길 초등학생들이 경쾌한 책가방 차림으로
일부러 논둑길을 삼삼오오 걸어온다.
그 소란에 놀란 참개구리 연인들이 논 속으로 황급히 뛰어들어 간다.
한가로운 도시에는 이미 없는 풍경이다
어떤 아이는 강아지풀 꽃을 두 개로 나누어
수염처럼 코 밑에 붙이고 또 어떤 아이는
대나무 잎으로 배를 만들어 흐름이 빠른 실개천에 띄우면서
즐겁게 집으로 가는 길을 따라간다
자연 속에서 구김살없이 자유롭게 뛰노는 아이들의 순진한 모습은
내 소년 시절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눈을 감으면 내 소년 시절의 추억이 주마등처럼 눈 속을 스쳐간다 --.
다이쇼의 말기에서 쇼와시대에 걸쳐
일본은 평화에서 점차 군국주의의 길을 걷기 시작했던 무렵으로
경제공황과 불황이 닥쳐 대부분 농민들의 생활은 매우 비참한 것이었다
쇼펜하우어의 낭만적 학문에 심취되어
“인생은 난해하다.”
며 도치기현의 화엄폭포에 몸을 던진 한 학생의 죽음이,
인생에의 경종처럼 사람들의 가슴에 울려 퍼진 것도 이 무렵의 일이었다.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