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해외여행 순례기> -검은 진주 크림반도-
박병율
우크라이나 고려인 가정식
크림반도
현지인 가정
소비엣 유니언(소련) 붕괴 후 러시아가 가장 되찾고 싶어 하는 검은 진주라면 우크라이나의 크림반도다. 한반도 분단의 씨앗이 된 ‘얄타회담’열렸던 얄타가 있는 크림반도는 천혜의 아름다운 흑해 연안에 위치해 있다. 고려인 강제이주사가 있는 곳이라 더하다. 서쪽 끝이라고 해서 우리 피와 숨결이 닿지 않을 수 없었다. 척박한 현실에 밀려나 손끝이 닳아 없어지며 일군 검은 옥토에 빨간 토마토가 애처롭다. 현지해화 되어가는 속에서도 고려인 그대로의 자태를 만난다. 피는 못 속인다니 고려인 3세가 되어도 뼛속 고향까지 현지인이 되지는 못하나보다.
흑해라고 해서 검은 바닷물을 예상하고 갔지만, 푸르고 맑은 바닷물에 그만 실망과 안도의 한숨을 동시에 쉬고야 말았다. 더운 여름 날씨에 손과 발을 담그니 가슴까지 시원해진다. 몇 해 전부터 이주해 살고 있는 지인의 말에 의하면 바다 밑바닥 흙이 흑색이라 흑해라고 부른다니, 바닥 색이 얼마나 검길래 흑해라고 부를 정도일까 궁금하기만 하다. 더 이상 이것저것 꼬찌 꼬찌 묻자니 가뜩이나 습하고 더운 날씨가 허락 하지 않는다. 장코이에서 달려오는 동안 감질나게 틀어준 에어컨은 승용차에 꽉 들어찬 인원의 몸에서 나오는 열기를 모두 다 식혀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첨부터 선택하기에 어려운 여행지였지만 우선 지인의 초대가 있었고, 우크라이나의 자연 그대로의 멋과 향기를 무시하기엔 인내력에 한계가 있었다. 서유럽이나 북유럽의 편리한 여행이 낫지 않느냐며 의아하게 생각했던 사람들의 탁견에 자꾸 마음이 가도 이젠 소용이 없다. 고속도로(고속이라고 부르기엔 좁은 왕복 2차선)를 타고 달려오는 내내 창밖엔 끝없는 들판이 지나간다. 농업이 이 나라의 주업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체르노빌 원전사고로 농산물에 대한 안전문제로 어려웠던 시절이 있었고 그 여파가 끝나기도 전에 러시아와 분쟁으로 우크라이나는 최근까지도 전쟁 상황이 전개 되었던 것이다. 수시로 날아드는 우크라이나의 다급한 소식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면밀히 살폈던 이유도 끝없이 이어질 우크라이나 독립의 후유증이 원인이다. 우리나라도 상황은 다소 다르지만 식민지배와 독립의 후유증에 있어서 후유증은 여전하다고 생각하다. 우크라이나는 농업이 주업인 서부와 달리 공업으로 부유한 삶을 사는 동부인들이 친 러시아적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 동부인들이 러시아와 통합하기를 원하고 더구나 크림반도 인들의 95%는 러시아에 귀속되길 원한다고 하니 우크라이나는 사실상 분단이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도 그 큰 대국임에도 불구하고 연해주 동부 항과 흑해 군항밖엔 바다에 진출 할 수 있는 여지가 없으니 크림반도에 대한 애착은 어쩌면 당연할 것이다. 그런 리스크를 짊어지고 시작한 여행이다. 모스크바공항에 잠시 기착 할 때만 해도 낭만적 기대를 잔뜩 가지고 있었다. 배낭을 베게 삼아 의자에 기대어 있다 보니 두어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갈아 탄 비행기는 작은 두 줄 객석이 있는 것인데, 좌석에 앉자 무릎이 닿아 꽉 끼인 느낌이다. 키 큰 러시아·우크라이나인들은 과연 어떻게 타고 가는지 의문이다. 미리 들었지만 자동차 한번 사면 3,40년은 거뜬히 탄다는데 비행기라고 예외가 없나보다. 대부분 수리는 직접 다 할 줄 안다고 한다. 자동차가 귀금속이라도 되는 양 지하 벙커를 파고 보관해야 바퀴가 사라지고 부품이 해체 되어 사라지는 우환을 방지 할 수 있는 희한한 나라다. 동서 문명이 조우하고 충돌하고, 체르노빌 원전사고에 최근까지 있었던 분쟁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마디가 수없이 맺혀 있다는 사실을 그려본다면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오랜 소련 사회주의 체제하에서 벗어 난지 얼마 되지 않아 가장 가능성 있는 국가라는 전망도 자연스럽게 점쳐진다. 크림반도에서 ‘장코이’로 가는 편은 열차편을 이용했다. 긴 여행이 있는 문화에는 침대열차가 늘 있다. 하루 꼬박 달려도 도달 하지 않는 그 여정을 앞에 두고는 모든 짐처럼 마음도 내려 놓고야 만다. 진정한 여행은 거리와 비례하여 시작 되는가보다. 짧은 거리도 견디지 못해 KTX를 타야 직성이 풀리는 짧은 호흡에 길들여진 나다. 그래서 나에게 여행은 산으로 막힌 우리나라를 벗어나 가도 가도 끝없을 공간에 있어야 하는가보다. 장코이 지인의 집에서 하룻밤 지나 다음날 아침 일찍 크림반도 행 승용차에 몸을 싣는다. 대절승용차기사는 아 얘 웃통을 벗고 운전한다. 이유는 에어컨 바람을 원하지 않는단다. 선풍기도 멀리 한다는데 이해가 가지 않지만 건강을 끔찍이도 생각한다고 여기며 작은 야유와 항의로 겨우 에어컨 동양을 얻어냈다. 동서 냉전의 상징 같은 러시아 함대의 자취가 있었던 세바스토플은 러시아 정교와 카톨릭 등 기독교 문화가 찬란한 도시다. 고딕양식 이오니아식 코린토식 건축양식이 혼재해 있는 문화의 융합이 이루어지는 크림반도 해안 도시는 한때 찬란한 문명과 문화가 꽃피웠던 곳이라 생각이 든다. 흑해의 푸른 바다와 깎아지른 절벽꼭대기 위에 세워진 사원, 동서 문명의 만남을 내려다보는 지정학적 위치, 우리역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얄타를 거쳐 구석구석 내려앉아 보냈던 시간은 감히 지면에 다 담아 오지 못해 아쉬울 따름이다. 친절하고 여유있는 사람들의 모습과 고려인 가족이 베풀어 주었던 고려음식과 갖가지 사연.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보내다가 마음은 아직도 찾아오지 않은 우크라이나 여행은 두고두고 떠올라 또 복기하고 싶은 여행지다. 애국가 ‘우크라이나의 영광은 사라지지 않으리’라는 노래가 개발을 미루고 검은 진주 같은 우크라이나를 그려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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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칠맛 나는 여행기, 머물다 갑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