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복동 갤러리 산책
작천 면소는 초등학교도 중학교도 있는 면소지만 젊은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새로 생긴 경찰서며 문화센터는 으리으리했다. 건물보다 3배 이상 넓은 주차공간이 인상적이었다. 차량도 없고 사람도 없다. 간혹 길을 걷는 노인이 서넛을 마주쳤을 뿐이다.
이발소도, 농약점도, 슈퍼도, 음식점도, 보건소도 있지만 간판만 만기 일쑤다. 내가 살고 있는 고장에 대해 미안한 말이지만 이곳의 시간은 언제나 황혼 같다. 시간도 정지한 듯 움직이지 않는다. 오직 작천초등학교 앞 신호등만이 명멸하며 심박동을 체크하는 것 같다.
주복동. 나이 70 전후의 그는 분명 농기구 수리점을 한다고 했다. 최근 5,6년 자신을 홍보용으로 이용만 하는 분위기를 실망해 관계를 꺼려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 나는 지역에서 40여년 경운기 등의 고철을 이용해 로봇이나 동물을 만들어온 시골정크 아티스트의 갤러리를 걷고 있다. 하지만 그의 작품은 여기저기 관공서에 기증되어 있고 이름이 없기 태반이다. 작품 이름도, 작가 이름도.
처음에 나는 분노했다. 배경 없는 시골 농기구 수리점 주인이라고 구경거리로 잠깐 주목했다 버리는 세태와 작품이 아닌 신기한 물건 취급하고 마는 지역의 무관심에 대해, 지난 겨울 읍거리에서는 대통령 퇴진 현수막과 승진 축하, 임용고시 합격, 서울대 간호학과 합격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붙어 있다. 뭐든 서울 중심이고 상승욕구가 거침없이 노출되어 있다. 그리고 국가권력의 최고점에 오른 대통령 탄핵이라는 아이러니가 거리 현수막에서 함께 연출되어도 불편하지 않은 듯 부조리와 모순이 너무도 오래 당연한 근대사였기에 미래사도 그럴 것이라는 자포자기가 있는 것처럼. 그래서 마땅히 박수쳐야할 이웃이 더욱 고독해졌다. 나는 주복동 작가를 그렇게 이해했다. 프로의 세계는 냉정하고, 지역 아마는 참혹했다.
시작은 단연 작천면사무소 마당이다. 사람보다 큰 철메뚜기가 당랑권법식으로 서있다. 기백 있다. 작천이 한들평야의 벼농사지대이니 상징으로 어울린다. 하지만 작품 제목도 작가 이름도 없다. 그래서 언뜻 보면 그냥 당랑권법 철메뚜기다. 신기하다. 잘 만들었다. 끝!
면사무소 입구의 작은 연못엔 하얀 스프레이 입은 철백로 두 마리가 서 있다. 주둥이가 가스 벨트로 되어 있다. 다리는 철근. 모가지는 배기 파이프로 휘어져 있었다. 군형 잡힌 모양이다. 청도기 시대부터의 저수지가 많은 한들평야를 생각하면 백로도 지역에 맞는 상징이다.
그러고 보니 당랑권법 철메뚜기는 경운기, 오토바이의 몸체에서 뜯어낸 덮개가 활용되어 있었다. 사실 바퀴달린 기계들이 절지동물을 닮았으니 자연스런 노릇이다.
하지만 앞에서 말한 대로 관에서 민을 바라보는 시선, 바로 주복동 작가가 실망한 이유가 제목도 이름 없이 달랑 세워진 상황 속에서 느껴졌다. 무의식적으로 드러난 하대.
바로 길을 건너면 104년 된 작천초등학교가 있다. 개교백주년기념비 옆 작가의 작품 두 점. 한 점은 로봇 작품이고, 다른 한 점은 ‘도약하는 용’는 제목이 달려 있다. ‘36회 졸업생 주복동’ 작가의 이름도 있다. 그러나 보다 큰 글씨로 ‘정크아트’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초등학생들에게 ‘이런 게 바로 정크 아트야’라고 선생질하는 것 같이. 자랑스런 작천초 졸업생으로 주복동 선생도 흐뭇했을 것이다. 그리고 분명 기증작이었을 것이다. 돈이 아닌 기증이어야 더 의미가 있다는 듯. 짐작컨대 기증에 대한 박수는 언제나 화려했을 것이다. 실력은 프로여도 아마추어로 머무르게 하는 현장으로.
관리기 바퀴, 로터리 날, 선풍기 덮개, 후라이팬 등 90년대 기계들이 소재로 사용되고 있었다.
산책장의 삐딱한 시선은 영광보다 그늘에 더 매력을 느낀다. 피로하다.
초등학교 운동장 거대한 평나무를 구경하고 잠시 쉬었다. 내처 길 따라 작천교로 가다보면 선생의 작업장인 농기계 수리점이 나온다. 내부가 깨끗이 정리되어 있었다. 전혀 작업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그늘이 한 없이 적막하게 느껴졌다.
그대로 작천교를 건너면 금까내 체험휴양마을 선전관이 나온다. 마당에 작가의 동물작품들이 서있다. 작천면의 상징인 철까치 한 쌍, 올라 타 사진을 찍을 수 있게 만든 철마 한 마리, 싸우는 자세의 소 두 마리. 철마에 오르는 철 계단과 철 고삐까지 작가의 배려가 느껴졌다. 소는 사납게 뿔을 세우고 있지만 근육보다는 철풀을 잔뜩 뜯었는지 배가 블룩해 귀여운 면도 있었다. 역시 제목과 이름이 없었다. 아무개의 그냥 철물이라는 듯.
그래서 안 될 것은 없지만 남의 작품이 아닌가? 대우는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고철의 무게를 따져보고 가격을 따져보고 노고를 따져보면, 이름을 기리지 않는 것이 겸손 아닌 무시라는 생각이 든다. 의식적 겸손과 무의식적 무시.
그리고 나는 내 철마차를 타고 강진 읍내 평동마을 평동회관으로 왔다. 정원에 그의 작품이 다섯 점 있기 때문이다. 역시 비슷한 자세의 철황소 두 마리, 바로 앞에 철무당벌레, 그 앞에 경찰배지를 단 철로봇, 그 옆에 철 공작. 이곳에는 나중에 다소 조잡하게 세워진 표지판이 있다. 역시 ‘평동마을 번영회 증’이 제목으로 상단에 위치하고, 밑에 ‘작가 : 주복동’이라고 써 있다. 한동안 작품만 놓여 있다가 누군가 건의했는지 나중에 급하게 만들어 세운 표지판 같았다.
마지막으로 평동이발소 옆 주차장에 세워진 두 로봇을 보면 된다. 컴퓨터 본체 부속과 체인 등 다양한 고철들이 바퀴 발과 함께 변신로봇처럼 서 있다. 두 친구는 악과 맞써 싸워 지구를 지켜낼 것이다. 컴퓨터 부속들이나 바퀴들로 봐서 가장 나중의 작품에 해당할 것 같다.
번영회장이 이발소 주인일까? 이발소 주인과 주복동 선생은 서로 친구일까?
대중의 박수와 관심은 껍데기에 머물렀고 작가는 외로웠다. 작가가 ‘나는 프로다’라고 선언하고, 작품에 제목과 이름을 걸고, 좀 더 의욕적으로 해석과 관념에 대해 고민했더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그래도 지역에서는 근현대 농기구와 생활기계들을 재료 한 시골의 근대정크아티스트로서 주복동 작가를 제대로 기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현란한 플랜카드보다 스스로를 존중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