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여행의 전설 외 2편 〈Legends of the Ancient Journey〉 Not obeying at Sinai’s mount, they wandered wide, Beyond the mountains, deserts, seas, and tide. A scattered tribe in search of other land, They’re refused to enter the Promisted Canaan land. Because of distrusting Words and mading the idol, By God, they'd must be exiled from the idyll. The priests, soldiers and children from distant sand, Had journeyed far away to the foreign land. From dawn to night, exhausted they’d wandered to pace, Beyond the stars, hurried to another place. And myths and legends were born in eastern mound, Far east of the land at last the strangers found. On the Bible, Dan’s losted sons or Levi’s kin, Did they find the refuge where the pines begin? Did sacred songs by hills and rivers sound, Where god and bear's, sons dance and drums resound? A thread o'appointed fate through ages spun, On the world, beneath the same eternal sun. Though history’s heavy cloud obscures the way, And doubt in passed and modern hearts may stay, The mounts fore'er remember their prayers and flames, The relics and echo of ancestral legends and names. A widely whispered bond from past to now, The journey for test of faith to Eastern brow. 〈옛 여행의 전설〉 시나이 산에서 불복종으로 그들은 방황했고 산 그리고 사막과 바다, 조수 너머로 흩어져 또 다른 땅을 찾아 흩어진 부족 말씀을 의심했고 우상을 만들었기에 가나안으로 들어감이 거절되어 하나님에 의해 전원에서 추방되었네. 먼 모래벌판의 제사장 병사들과 아이들 낯선 땅을 향해 먼 길을 떠났네. 새벽부터 밤까지, 지쳤지만 방황하며 걸었네. 별 너머 다른 세계를 향해 재촉했고 마지막으로 동쪽 끝에서 그들이 찾은 땅 동방의 언덕에 신화와 전설이 태어났네. 성경의 단 지파의 후손들인가, 레위 족속인가, 소나무 숲이 시작되는 곳에 은신처를 찾았나? 신과 곰의 아들들의 춤과 북소리 사이, 거룩한 노래가 언덕과 강가에 울렸던가. 세월을 꿰뚫는 예정된 운명의 실타래, 변치 않는 태양 아래 세상에서. 역사의 두터운 구름이 길을 가려도, 현재와 지나간 마음에 의심이 남아 있어도, 산들은 영원히 그들의 기도와 불꽃을 또 조상들의 전설과 이름의 유적과 메아리를 기억하리. 과거에서 지금까지 널리 퍼진 속삭임의 연결, 동방의 언덕까지 믿음의 시험 여행. 〈The Forgotten Years: The Light of the Far East〉 For a long time in the Bible, we've not known his younger days, But in many parts of the Middle East, he lived with his father. It’s said he traveled—by ships and on foot long ways— And once he'd grown, he journeyed farther and farther, To the lands alone, seeking ancestral traces, And meeting tribes and many different faces. From Ethiopia, where the priests of Sheba's Sons, have prayed, And past the Arabian Sea to Ganges’ towers, He wandered plateau, veiled in myth and shade, Where newer tribes had conquered older powers. A young man from Nazareth, roved the desert and swamp land, And followed the wind that whispered from wild land. To seek the truth, he journeyed by ship to the Far East, Long had the vessel sailed with westerlies and currents. He sought the forgotten Jewish people and their priest, And went upstream, defying all deterrents— By small boat, over mountains, reaching the terminal, Then crossed again and met the Jews’ original. After Jesus’ ascension, an apostle followed, Sent forth to preach to east of the world’s farthest end. The people carved on the rock, the name of Thomas, and hallowed This land was once called "Obedient"—though little to spend, Long time, they kept the belief and dreamt the Jerusalem. It's God’s plan: to make this land be East Jerusalem. (27th, Jul., 2025 Kinsley Lee) 〈잊혀진 세월: 동방의 등불〉 오랫동안 성경에서, 우리는 그의 젊은 시절을 알지 못했네. 그러나, 오랫동안 그는 아버지와 중동지역에서 살았네. 먼 거리를 배와 도보로 여행했다 전해지고, 성장한 후에 머나먼 곳으로 사방으로 조상들의 흔적을 찾아, 많은 종족들과 다른 얼굴을 만나려 여행했다고 전해지네. 시바의 자손들인 사제들이 기도하는 에디오피아에서, 아라비아해를 지나 갠지스 지방의 탑까지, 그는 고원지역과, 신화와 그 그늘에 덮인 새 종족이 오래된 권력을 정복한 곳을 방랑했네. 나자렛의 청년은, 사막과 늪 지역을 방황했고, 황량한 곳에서 속삭이는 바람을 따라갔네. 진리를 찾아서, 그는 배로 극동으로 여행했네, 오랫동안 편서풍과 해류와 같이 여행했네. 그는 잊혀진 유대인과 그들의 사제를 찾았고, 강을 거슬러 올라가며, 많은 난관을 견뎠네. 작은 배로, 산들을 지나, 종착지에 도착했고, 다시 또 가로질러, 유대인 복식의 사람들을 만났네. 예수가 승천한 이후, 한 사도는 그들 따랐고, 세상의 가장 먼 곳까지 전도하려 동방으로 떠났네. 사람들은, 바위에 도마의 이름을 새기고, 많이 알져지지 않았으나, 이 신성한 땅은 한 때 “순종하는 사람”이라 불렸네. 오랫동안 그들은 믿음을 가졌고, 예루살렘을 꿈꾸었네. 이 땅을 동방의 예루살렘으로 만들려는 하나님의 계획이었네. 〈The Journey of Thomas to the Far Eastern Land〉 He landed the river port with the porters, Alone, coming here not helpers. Taking a sailing ship at Indus, For seeking the land for another limbus In the eastern place of the far away. He walked and walked the forest way. For long time with a few porters, he climbed the mountain They wiped the sweat and drank the fountain, He looked down the landscape far away And he sat and prayed under sunny ray, For a while, he stood and downed the hill With the porters and stayed when he found the vill. Every day he met the farmers Every night he talked with the villagers. He held the rosary and hung the cross necklace And talked the God and a lamb which’s fleckless. People called him a man of folding his hands And he’d obeyed the order to the far eastern lands. He returned but the traces’re left on the petroglyphs, The neckless statue and letters on stone cliffs. The letters “Thomas who’s prayer” to God, And the Gotaya means the old cell of God. Owing to his effort, we can meet his trace And it’ll be the Eastern Jerusalem, this place. (Feb., 10th, 2024, Kinsley Lee) 〈도마의 극동의 땅으로 여행〉 그는 짐꾼들과 포구에 내렸다. 홀로, 조력자 없이 여기까지 왔네. 멀리 떨어진 동방의 곳에서 또 다른 림보의 땅을 찾으려 인더스 지방에서 범선을 탔네. 그는 숲길을 걷고 또 걸었네. 오랫동안 몇몇 짐꾼들과 걸어서, 산으로 올랐네. 그들은 땀을 닦았고, 샘물을 마셨네. 그는 멀리 풍경을 내려다보았고, 태양 빛 아래 앉아서 기도했네. 잠시, 그는 일어서서 짐꾼들과 함께 산을 내려왔고, 마을을 찾아 머물렀네. 매일 낮에는 농부들을 만났고, 매일 밤에는 마을 사람들과 얘기했네. 그는 묵주를 들고 십자가 목걸이를 걸었고 하나님과 흠결 없는 양을 말했네. 사람들은 그를 두 손을 잡은 사람이라 불렀고, 그는 동방의 땅까지 명령을 따랐네. 그는 돌아갔지만, 흔적은 암각화에, 목 없는 상과 글자들로 남았네. 글자들은 하느님께 “도마 기도하는 사람”, 고타야는 오래된 하느님의 방을 뜻하네. 그의 노력 덕에, 우리는 그의 흔적을 만날 수 있고, 이 지역은 동방의 예루살렘이 될 것이니... 〈작가노트〉 ---------------------- 동방의 등불: 한유공조론韓猶同祖論 한유동조론韓猶同祖論에 이어 최근 경북에서 ‘유대인의 흔적으로 보이는 암각 문자가 발견됐다’ 하여, 특히 기독교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주류 역사학계에서는 ‘출애굽 이후 유대인들이 한반도까지 왔다’는 설說에 실증적 근거가 인정된 적은 없지만, 고대 유물이나 민속 전승에서 그러한 가능성을 이야기하는 소수설이나 민간 연구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다. 또 단군조선 시대의 와당 등에서 여러 고 히브리어로 된 문양들이 유물로 일부 존재하고 있음은 사실로 여겨진다. 히브리 문자가 기와 등의 문양에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에 왔던 유대인들은 기술자들이 주축이 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그렇다면, 당시의 히브리 문자가 이 땅에 전승되었었고, 지속적으로 또는 다른 방향으로라도 발전했어야 할 터인데, 멸절되었다면, 당시 글을 아는 자들이 극소수의 지배계층이었고, 척박한 땅에서 생존하느라 ‘글을 잃었다’는 추론이 타당한 것인지? 일단 의구심을 품을 수는 있겠다. 필자의 상상력을 가미한 담시譚詩 〈동방의 등불: 한유공조론韓猶同祖論〉의 출발선은 여기서부터다. 그래서, 필자는 그들의 기원을 출애굽 때 모세가 자리를 비운 새 하나님의 말을 어기고 우상을 만들었던 자들의 자손이라고 상상해 보았다. 그들의 불순종으로 가나안에서 배척당하고 세상을 방랑하면서 믿음을 시험받고, 확고한 믿음을 다시금 증명함으로 이스라엘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은 것은 아닐까? 모세도 하나님의 명을 따라 이스라엘 민족을 가나안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했지만, 작은 의심으로 인해 결국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나안 밖에서 생을 마감했는데, 우상을 만들었던 자들이 어떤 벌을 받았을지 상상하면, 자손 대대로 가나안을 들어가지 못하는 처벌도 받을 수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조선 후기에 이 땅에는 특히 순교자가 많이 나왔던 것과 어떤 관련이 있지 않을까? 즉 당시 의심했던 죄를 확고한 믿음으로 승화시키려 했던 마음이 자손들에게 계속 이어져 내려온 것이 아닐까? 그리고 봉화의 도촌리 고분군에도 깨진 파편 등에 그들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역사학계에서는 ‘관련이 없다’는 결론을 냈지만… 예수의 행적은 10대 중반에서 20대 후반까지 기록이 사라졌다. 그러나, 예수가 에티오피아 정교의 사원에서 공개된 문서에 의하면 오랜 기간 예수는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사제들과 함께 공부했었다는 기록도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로마에서 기독교가 공인되고 여러 회의에서 예수가 아프리카 흑인들과 같이 공부 했었다면, 그의 영적인 상당 부분이 아프리카의 흑인들로부터 왔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에, 유럽인들이 관련 자료 등은 복음으로 채택하지 않았다는 이야기도 전해온다. 또 청년기의 예수가 인도를 다녀가기도 했고, 도버해협을 건너 영국까지 갔었다는 주장도 있다. 어떤 북미 쪽의 종교인들은 예수가 북아메리카까지 와서 인디안들과 교류했다는 이야기를 정식으로 인정하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다. 필자는 당시 예수가 인도에 왔었다면, 옛날 한반도까지 왔을 가능성도 있다는 가정으로 이 시를 써 보았다. 영주지방에 바위에 그려져있는 암각화가 “도마”를 그린 것으로 글자가 새겨져 있다면, 예수가 말한 ‘땅끝까지’가, 바로 한반도를 의미할 수도 있고, 예수가 왔다 갔기에 후에 도마가 올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하는 상상을 해본다. 예수가 이 땅까지 왔었다면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옛날 잃어버린 유태인의 종족을 찾아서 왔다면, 더 재미있는 상상이 될 것이다. 에티오피아에서도 흑인 유태인들을 찾아서 그들과 공부하면서 그 사제들과 교류했었다면, 동방에서도 그와 비슷한 일이 있었을 것이란 추정도 재미있다. 또 지금의 안동과 영주의 지명이 장수왕 때 불렸던 지명들이, 옛 고古자를 붙여, 여호와의 방, 순종하는 사람이라는 고 히브리어로 해석이 된다면 참으로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평양에서 출토된 와당 등에 고 히브리어 문자들이 새겨진 것이 남아있다면, 당시의 유대인들과의 교류 또 그들 중 일부가 고조선 시대에 이 땅에 들어올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당시 이 땅에 살게 된 유대인들을 계율을 어긴 일부 유대인들이 가나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이 한반도까지 떠돌다 들어왔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또 훗날 예수는 청년기의 공백기 동안 사방에 흩어진 유대인들의 흔적을 찾아다닌 적이 있었다라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찾아 예수가 왔었고, 또 훗날 도마가 다시 와서 선교를 하고 돌아갔다는 상상의 날개를 펴 본다. 그래서 필자는 작가의 상상력으로 시를 써 보았다. (관련 자료는 인터넷과 Chat 지피티의 도움을 받았음) -------------------------------- *안동의 옛 명칭 Gotaya : 안동 지방의 오래된 명칭, 신라 초기에 고타야군(古陁耶郡)이라고 했으나, 타야의 유래는 전통 언어라고 하나 무슨 뜻인지 확실하지 않음. 흔히들 고타야라는 뜻은 ‘고대의 나라’ 또는 ‘고대의 도시’라고 해석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고타야는 낙동강을 이용한 수운의 상류 중심지였으며, 문화와 예술이 발달했던 지역이라, 그런 옛 지명을 갖게 되었고, 또 고타야는 안동의 순 우리말이라고도 알려져 있지만, 이 단어의 유래는 분명히 밝혀지지 않았다. 필자는 이 단어의 유래가 고대 히브리어와 관련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תָּא [tâʼ] 남성형 명사 방, יָהּ [Yâhh] 1. 여호와, 2. 주님이라는 의미가 되는데, 한자어의 古자가 추가되어 古TaYahh가 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다. ‘오래된 여호와의 방’ 또는 ‘오래된 여호와의 땅’ 정도의 의미가 되지 않을까? 그렇다면, 도마가 예수가 승천하면서 다시 오겠다는 말을 따라 예수의 재림을 위해 선택한 땅이 안동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영주의 옛 명칭 그리고, 도마상이 있는 장소가 영주시 평은면 강동리인데, 영주는 고구려 초기 지명이 내기군(奈己郡)또는 급벌산군이라고 했었다. 奈의 음은 내, 또는 나로 읽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Na Ki가 내기로 변했다고 생각하면, נָא [nâʼ] 날, 덜 익은, כִּי [kîy] 상처자국, 낙인, 흉터로 ‘아물지 않은 흉터’ 정도로 생각되며, 혹시 도마가 유달리 예수의 손목의 못자국에 관심이 많았기에, 도마가 부활한 예수를 만났던 당시에는 그 상처가 아물지 않았는데, 재림 시에는 이 상처가 아물 것이라고 자주 얘기해서 그 고대 히브리어가 훗날 “내기”로 한자 표기 되면서 지역의 명칭이 되었던 것이 아닐까? *봉화의 옛 명칭 필자는 봉화의 옛 지명을 찾아 보았다. 봉화는 진한의 기저국, 장수왕 때는 내기군 고사마현(古斯馬縣)이였다. 사마(Shama)의 어원을 고대 히브리어에서 찾아 보았다. שָׁמָע [Shâmâʽ]가 순종하는 이라는 의미로 〈대상〉11:44에 이스라엘 남자 이름으로 나오기도 한다. 즉 풀어본다면 “옛날에는 순종하는 사람들의 마을”이였다는 풀이가 나온다. 우리말로 잘 알 수 없는 고대 안동과 영주의 옛 지명을 고대 히브리어로 읽었을 때, 유대교, 또는 기독교와 관련된 흔적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이를 단순한 우연이라고 치부하기에 궁금증이 더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