李仲燮 생각 1 외 9편 金光林 따분해서 그렸고 배고파서 그렸고 그리워서 그렸다 한지에도 그렸고 시험지에도 그렸고 널판지에도 그렸고 은박지엔 철촉 자국 책뚜껑엔 G펜 자국 장판지엔 연필 자국 자국 자국 그리고 그리고 또 그렸다 부리에 꽃물이 들도록 연방 지상에 꽃잎을 쪼아 떨어뜨리다가 홀연 날아 가버린 이상한 새.
李仲燮 생각 2 金光林 손바닥만한 空間만 있으면 언제 어느 때 어느 곳에서나 쓸 수 있는 詩 그는 詩人이 부러워 詩처럼 그림을 그렸다 깡술 들이키다 말고 때꾹 낀 장판이나 광고 없는 책표지나 시험지 여백 같은 게 모두 예쁜 계집만 같아 호락호락 넘어 선 線과 직직 문질러 댄 色 다하지 못한 情을 葉書에다 그리고 은박지에 그려서 고통을 환희로 바꿔 친 한 사내가 거뜬히 詩의 수렁 속을 가고 있다 갈증도 모르고 허기도 저버린 채.
▲이중섭 판잣집 화실(1954)
李仲燮 생각 3 金光林 八朔童이 첫아들이 죽었을 때 그는 곤드레만드레가 되어 죽은 애 또래의 살아 있는 애들을 그리고 있었다 저승동무 길동무로 天桃 따는 애며 맨손으로 물고기 잡는 애들이랑 鶴 타고 날아다니는 애도 상기도 애비 목 틀어잡는 녀석이며 여직 에미 젖가슴 뒤지는 녀석서껀 오오라 게한테 물린 고추녀석이 제일 늦구나 개구장이 코흘리개 오줌싸개 울보랑 모두 모두 모이자 그는 잠자코 붓을 놓았다 그리고 죽은 애 목덜미에 그림을 걸어주었다 십자가보다 더 빛부신 童心을.
李仲燮 생각 4 金光林 왜 그는 자신의 그림을 가짜라고 우겼을까 그가 진정 진짜로 그리고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어판장에 와서도 여직 살아 꿈틀대는 어기찬 생명력이며 톱밥을 뒤집어쓴 채 다가오는 살육의 손을 피나게 무는 염치없는 집게발이거나 한참씩 위아래로 꼬나보다가 불시에 도약하여 덜미를 낚아채는 닭싸움이거나 숨막히게 오줌을 내깔기는 탱탱한 고추 같은 아뭏든 그런 것들을 왜 그는 더 지켜보지 않았을까. 李仲燮 생각 5 金光林 北에서는 사물을 정직하게 그리지 않는다고 주관을 과장한다고 공포감마저 자아낸다고 인민을 기만하는 敵으로 그를 몰아부쳤는데 南에서는 천진무구한 동심의 소치를 자연인의 벌거숭이 자태를 자유분방한 戲畫를 음탕한 춘화로 몰아 그의 그림을 제거하기도 하였는데 이제 문제의 그림을 두고 은지화인지 은박지 그림인지 아무래도 좋을 두 낱의 호칭을 놓고 오늘도 나는 번갈아 밀쳤다 당겼다 하며 그가 발 붙일 수 없었던 이 땅의 南과 北의 어이없는 처사와 중뿔난 경우를 생각는 것이다. 李仲燮 생각 6 金光林 살아서 못누린 주거(住居)를 망우리(忘憂里)에 와서 지녔구나 따분함도 배고픔도 그리움도 모르는 그곳에서 다시는 맥나는 일도 없을 무덤 속에서 그는 소나무로 환생(還生)하여 남몰래 자라며 크고 있구나 세상에 떠도는 수다한 말씀 따윈 아예 귓전에도 없구나 다만 비명(非)에 간 청년 조각가 C씨가 져나른 묘비(墓碑)가 두꺼비마냥 우두커니 그를 지켜보고 있구나. 化身 金光林 웅크린 황소 멍에 진 붉은 산 등성이에서 소년이 하모니카를 불고 있다 호수에 잠긴 한나절 황소는 투박한 입술로 풍경을 되씹기 시작한다
발톱엔 징이 박혔다 모가지는 코에 걸렸다 고삐엔 주일도 없다 늘 뜨악한 언덕 위의 비구름. 主日 金光林 渴求의 제비 새끼들 노오란 코오러스 少年 聖歌隊는 발돋움하는 橄欖나무 잎사귀 목이 마려운 파이프 올갠 빛이 부신 音階를 밟아 내리면 그늘진 寺院 목둘레가 바알간 少年 服事들이 세 차례나 드나들었다 긴 燭臺를 들고 天上에 불을 켜는 그들이다.
沙漠
金光林 사막이 없는 나라의 메마름 잡음으로 그득 찬 도시에서는 햇빛을 받아들일 겨를도 없다 모래불을 일굴 기력도 없다 줄기찬 隊商을 거느리지도 못한다 하이웨이를 달리는 올훼의 잔등은 서늘하다 모두가 즉흥적이다 파장난 곡마단이다 회오리치는 사막이 없는 나라에서는 막연한 갈증에 사로잡힌다 일요일 때문에 목이 갈한 종소리 신앙을 휴대하고 다니던 종교가 익사 직전에 있다 가장 높은 곳에서 뛰어내린 영혼만이 이를 구할 수 있다 육체를 떼어버린 사람을 찾아야 한다 한밤중 정신병원에서는 미처 격리되지 않은 웃음이 터지고 있다 태엽이 끊긴 벽시계가 空間을 알리고 있다 화가 李仲燮은 사막으로 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고 아랫도리를 게의 예리한 발톱에 찝힌 것이다 물린 순수의 피나는 異蹟을 담배 은종이에 나타내었다. 김광림金光林 약력
문단의 원로 김광림(본명 김충남) 시인이 2024년 6월 9일, 별세했다. 향년 95세, 한국 모더니즘 시의 전통을 이어온 것으로 평가받는 김광림 시인, 한국시인협회. 1929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1948년 단신으로 월남했다. 홀로 시를 습작하던 중 청록파 시인 박두진의 권유로 ‘연합신문’을 통해 시 〈문풍지〉로 등단했다. 한국전쟁이 일어나면서 육군 소위로 참전, 1959년 첫 시집 《상심하는 접목》을 펴냈다. 1961년 고려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해 김종삼, 김요섭 시인 등과 함께 《현대시》의 창간 동인으로 참여, 2009년 《허탈하고플 때》로 ‘청마문학상’ 수상, 총 18권의 시집을 출간하며 왕성한 활동을 펼쳤다. 정지용, 김기림에서 시작해 김광섭, 박남수 등으로 이어져 온 한국 시의 모더니즘 전통을 잇는 시인으로 자리함. 이중섭과 깊은 인연, ‘은박지 그림’
-. 시인 김광림과 화가 이중섭(1916~1956)의 인연은 해방 직후인 1947년 원산에서 이중섭을 처음 만나 화가가 작고한 1956년까지 우정을 이어갔다. -. 이중섭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은박지 그림’은 김광림 시인에 의해 탄생했고, 세상에 살아남았다. -. 시인 김광림은 군 장교 복무 시절, 이중섭의 요청에 따라 외출을 나올 때마다 보급품 박스 속에 있던 양담배 은박지를 모아 이중섭에게 전해줬다고 한다. -. 이후 자신의 예술 활동에 회의를 품은 이중섭은 김 시인에게 “내 그림은 다 가짜”라며 모두 불살라버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 하지만 그는 은박지 그림과 소품들을 잘 보관했다가 이후 이중섭 화가와 같이 머물고 있던 소설가 최태응에게 모두 돌려줘 그림들을 살려냈다. -. 그는 2006년 《진짜와 가짜의 틈새에서-화가 이중섭 생각》이라는 책을 펴내 두 사람의 인연을 기록했다. -. 이중섭에 대한 8편의 연작시, 고통을 예술로 승화시킨 화가의 인생을 회고했다.
▶중앙일보 이영희 기자의 인터넷에 올라온 〈이중섭 은박지 그림 살려냈다…'韓율리시스' 시인 김광림 별세〉 기사에서, ‘중요한 핵심 부분 중 일부’를,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한강문학》 편집부)
소의 말 李仲燮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 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 이 글은 1951년 봄 피난지 서귀포(제주도)의 李重燮씨 방벽에 붙어있던 것을 조카 李暎進씨가 暗誦, 전한 것임.
▲〈포기각서〉 저작권법 때문에(국가기관소유물까지), 민족적, 문화유산級임에도 불구하고, 영리, 비영리를 막론하고, 절차가 완벽하여, 단 한 점의 그림조차, 소개를 포기합니다. 소의 말 李仲燮
높고 뚜렷하고 참된 숨결
나려 나려 이제 여기에 고웁게 나려
두북 두북 쌓이고 철철 넘치소서
삶은 외롭고 서글프고 그리운 것
아름답도다 여기에 맑게 두 눈 열고
가슴 환히 헤치다.
* 이 글은 1951년 봄 피난지 서귀포(제주도)의 李重燮씨 방벽에 붙어있던 것을 조카 李暎進씨가 暗誦, 전한 것임.
▲〈포기각서〉 저작권법 때문에(국가기관소유물까지), 민족적, 문화유산級임에도 불구하고, 영리, 비영리를 막론하고, 절차가 완벽하여, 단 한 점의 그림조차, 소개를 포기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