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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녹산에 있는 부응산 대성암 주지 진종스님으로 부터 '월간 고경(古鏡)' 몇 권과
질 좋은 김을 정성껒 구워서 보내왔다. 아궁이에 남은 재 불에 구운것이라고 하신다.
스님의 정성이 참으로 고맙다.
오랜만에 고경을 단숨에 읽다보니 눈에 띄는 것이 '성철스님의 미공개 법문 - 동안상찰스님의
십현담' 강설이었다. 전체 자료를 다 수집못하였지만, 우선 몇 편을 정리하여 도반님들에게
빨리 소개하고 싶었다. 성철스님의 칼칼한 성품이 느껴지는 대목도 보여서 너무 반갑다.
궁극적인 법문이라 어렵기는 하지만, 본문에도 나와 있듯이 알아놓는 것이 좋은 것이니
도반님들 함께 스님의 강설을 맛 보도록 합시다.
분당에서 혜 원 문 창 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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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철스님 미공개 법문1
[동안상찰선사 「십현담十玄談」 강설]
- 1965년 성철스님 김용사(金龍寺) 설선당(說禪堂) 강설분 -
해인사 백련암의 성철 큰스님 서고 장경각에는 「십현담요해」 및 「십현담요해언해」가 소장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1965년 문경 김용사에서 열렸던 성철 큰스님의 첫 공식법문인 운달산 법회를 녹음한 릴 테이프 중 어렵게 복원된 내용 중 「십현담」을 강설한 대목이 있었습니다.
큰스님의 육성을 담은 가장 이른 시기의 자료인 이 강설 녹음은 이미 공개된 바 있어 많은 분들이 들었을 것이지만 글로 옮겨 적은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녹취한 원고를 몇 차례에 걸쳐 『고경』에 연재하고자 합니다. 잘못된 부분이 있다면 꾸짖고 바로잡아 주시기 바랍니다.
「십현담」은 동안상찰同安常察(?~961) 스님이 선수행을 심인, 조의, 현기, 진이, 연고, 달본, 파환향, 전위, 회기, 일색이라는 십현(十玄)으로 나누어 밝힌 글입니다. 여기에 법안종을 창시한 청량문익(855~958)은 원문의 내용에 충실하면서도 조동선(曹洞禪)의 입장에서 주석을 달았고, 조선 초의 설잠 김시습(1435~1493)은 「십현담요해」를 저술하였고, 만해 한용운(1879~1944)은 설악산 오세암에서 설잠의 요해를 보고 소견이 다른 바가 있어 「십현담주해」를 내고 그 감회를 이어 「님의 침묵」이라는 시집을 상재하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성철스님 강설]
동안상찰(同安常察, ?~961) 스님인데, 동안同安은, 같을 동同자 또는 한 가지 동同자, 편안할 안安자, 상찰常察은 항상 상常자, 살필 찰察자를 씁니다.
학인: 어느 때 사람인가요?
스님: 송나라 때, 아니 당나라 때인데, 그이가 선종 가풍을 가지고 시(詩) 열 개를 지었어. 종문(宗門)에서 아주 유명합니다. 「십현시(十玄詩)」라고도 합니다. 지금까지 한 진도(進度)보다 조금 어려운 점이 있긴 있는데, 그래도 인자 한 번 알아 놓으면 좋지.
1. 심인(心印)
문군심인작하안(問君心印作何顔) 그대에게 묻노니 심인(心印)이란 어찌 생겼는가
심인수인감수전(心印誰人敢授傳) 심인(心印)을 뉘라서 감히 전할 수 있겠는가
역겁탄연무이색(歷劫坦然無異色) 긴 세월 한결같이 다른 색깔이 없으니
호위심인조허언(呼爲心印早虛言) 심인(心印)이라고 호칭을 붙이면 벌써 잘못이다.
수지본자허공성(須知本自虛空性)본래부터 텅 비고 공한 성품인 줄 반드시 알아야 하니
장유홍로화리연(將喩紅爐火裏蓮)비유하자면 붉은 화로 속에 피어난 연꽃 같다고나 할까
막이무심운시도(莫以無心云是道) (그렇다고)무심(無心)을 도라고도 절대로 말하지 말게
무심유격일중관(無心猶隔一重關) 무심(無心)하더라도 오히려 한 관문에 가로막힌다.
심인心印
학인: 이거는 아무리 봐도 뭐가 뭔지 잘 모르… (우물쭈물)
스님: 응? 이거 모르겄제? 진도(進度)가 좀 어렵제?
학인:비유같은 것을 많이 들어서 해 주시면… (대중, 성철스님 큰 웃음)
스님: 임마! 그러면 되나? 이놈아가 자꾸 고함을 질러샀네. 니 말대로 하면 내 목만 아프거든? 이놈은 아무리 고함을 질러도 귀에 안 듣길 판인데 내 목만 아프게 자꾸 고함을 질러라 하네. 응? 그래 그 말도 좋아. 그러면 우째 함 보자. 고함 한번 질러보자. 듣기나 안 듣기나 보자.
問君心印作何顔 문군심인작하안
심인(心印)이라, 마음이라, 마음자리다 그 말이여. 이건 천상 직접 해석해야지 달리 해석할 수 없으니까, 심인(心印)이라는 것은 마음자리라 그 말입니다. 마음자리라 하니까 마음자리라는 무슨 자리가 있는 줄 알면 안 돼. 그런데 말로 하자니까 마음자리라 하는 거야.
그대에게 묻노니 마음자리가 어떠한 모양을 갖추었나 말입니다. 어떠한 낯을 갖추었느냐? 앞에 마음자리라는 표제를 내놓았거든? 그걸 너한테 물어본다 이 말이여.마음자리의 모양이, 얼굴이 어떻게 생겼느냐 말입니다.
心印誰人敢授傳 심인수인감수전
그 마음자리를 어떤 사람이 대중에게 전하겠느냐?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는 말을 하거든? 이심전심(以心傳心) 그런 소리 안 해? 이심전심이라 이렇게들 흔히 하는데, 이것은 실제에 있어서 ‘석가유미회(釋迦猶未會) 가섭기능전(迦葉豈能傳)’, 즉 석가도 모르는데 가섭이 어찌 전하겠나 하는 것과 같아. 말을 하자니 전한다고 하지만, 이것은 실제 가섭이 전하려야 전할 수 없고, 받으려야 받을 수 없어.
그렇지만 전하려야 전할 수 없고 받으려야 받을 수 없는 이것을 깨쳐놓으면 바로 깨쳤나 못 깨쳤나 하는 것을 감정(鑑定)은 다 해. 감정(鑑定), 감정(鑑定)하는 그게 전(傳)하는 것이지, 실제 뭔가 물건이 있어 그걸 갖고 말하는 게 아니야.감정인가(鑑定認可)라 말이여. 감정을 할 때는 전하고 받고 할 수 없잖아, 응? 이 물건이 어떻게 되나 감정하는 것이라 말이여.
‘문군심인작하안(問君心印作何顔)’, 그대에게 묻노니 마음자리가 어떤 모양이더냐? ‘심인수인감수전(心印誰人敢授傳)’, 심인(心印), 즉 마음이 대체 어떻게 된 물건이길래, 어떤 사람은 받고, 또 어떤 사람이 그걸 전한다는 말이냐? 석가도 모르는데, 가섭이 어찌 전할 수 있는 일이겠어? 이것은 전하려야 전할 수 없고 받으려야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없는 게 아니거든? 분명히 깨친다 말입니다. 깨치게 되면 그 사람이 바로 깨쳤나 못 깨쳤나 하는 것을 분명히 감정(鑑定)합니다. 그것을 전한다 하고 받는다 하는 것이지, 실제 무슨 물건이 있어서 받고 물건이 있어서 전하는 게 아닙니다.
歷劫坦然無異色 역겁탄연무이색
여러 억천만겁 동안 이 마음자리는 탄연(坦然)해서 즉, 평탄해서 아무 티끌이 없이 청정하다는 말입니다. 억천만겁이 지나도록 이 마음은 청정해서 자성(自性)에 무이색(無異色), 즉 다른 빛, 잡색(雜色)이 없습니다. 자기는 본시 청정하다 말입니다.
呼爲心印早虛言 호위심인조허언
불러서 마음자리다 할 때 그것도 벌써 거짓말이야. 자성(自性)은 청정(淸淨)해서 부처가 아니면 알 수 없고, 조사가 전하려야 전할 수 없는데, 거기에서 뭐 심인(心印)이니 마음이니 뭐니 잡아 말하는 것은 할 수 없어서 하는 것이지, 심(心)이라고 말을 할 때 벌써 거짓말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이것입니다.
須知本自靈空性 수지본자영공성
모름지기 알지라. 본래 스스로 신령하고 공한 성품이라. 심인(心印)을 영공성(靈空性)이라 하는데, 영공성(靈空性)이란 말도 안 맞는 말이야.심인(心印)이라 하는 것도 거짓말인데, 영공성(靈空性)이라 하면 더 말이 될 건가 말이야. 그렇지만 천상 그냥 아무 말도 하기 싫다면 할 수 없지만,중생을 위한다면 할 수 없이 경상(境相)을 안 쓸 수 없거든? 수지본자영공성(須知本自靈空性)은, 모름지기 알지라, 심인(心印)은 본래 스스로 영공한 성품이라.
將喻紅爐火裏蓮 장유홍로화리연
비유로 말하자면, 벌건 화로에 불이 훤하게 댕겼는데 그 화로 속에 연꽃이 완전하게 피어 있더라 말입니다. 이전에도 화리연(火裏蓮), 화로 속에 연꽃 얘기를 했는데 지금 이것은 이전 비유와는 달라. 영공성(靈空性)을 화리연(火裏蓮)이라 한 이것은 깨쳐야 알지 그렇지 않으면 안 돼.
勿謂無心云是道 물위무심운시도
곧 이렇게 되면 모든 것이 다 떨어져 결국 무심(無心)이 되는 것이거든? 그렇지만, 무심(無心)을 가지고 도(道)라 하지 말라 말이야.
無心猶隔一重關 무심유격일중관
무심(無心)도 한 중관(重關), 태산이 앞을 가렸더라 이것입니다.결국 성불(成佛)이다, 견성(見性)이다 하는 것은 무심(無心)을 다해 성불(成佛) 한다는 것을 먼저 많이 이야기했지? 부처님도 말씀하셨어. 무심(無心)을 다해 견성(見性)해서 성불(成佛)했다 안 하던가 말이야.무심(無心)이 무념(無念)이고 무주(無住)고, 육조六祖스님 『단경壇經』에 말씀했잖아? 무심무념(無心無念)을 갖고 구경(究竟)이라 해놓은 게 있다 말이야. 무심무념을 갖고 이 심인(心印), 심지(心地)를 알 수 있나 이것이야.그렇지만 무심(無心)을 갖고는 모른다 말이야.그러면 어찌해야 하겠나? 참으로 무심(舞心)해 버리면 이 기별(奇別)을 완전히 알 수 있는 것이지만 무심(無心)도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오종무심, 오위무심五位無心(주1)이라고 그때 먼저 말 안했어? 여기에서 말하는 무심(無心)이라 하는 것은 제8아뢰야(第八阿賴耶) 무심이라고 얘기하는 거야. 아뢰야근본식(阿賴耶根本識)이 완전 떨어져야 이 심인(心印)을 알 수 있는 것이거든? 제8아뢰야식의 근본무명(根本無明)이 떨어지지 않은 자재위(自在位)의 무심(無心) 갖고는 이 심인(心印)을 모른다 이것이야.자재위의 무심(無心)으로서는 절대로 심인(心印)을 모르고 태산이 앞을 가리고 있는 것 같아. 자재위의 무심을 완전히 벗어나서 제8아뢰야식이 완전히 다 끊어진 대원경지(大圓境地)가 나타나야 이 심인(心印)을 알 수 있습니다.
학인: 그런데, 아까 스님께서 석가도 유미회(猶未會)라고 하셨는데 지금은 대원경지(大圓鏡智 )가 나타나야 심인(心印)을 알 수 있다고 하시는군요?
스님: 그래, 유미회(猶未會)라고 했지. 아직 몰랐다고 했어. 그게 그렇게 어렵다는 말이야.그렇지만 알 수 있다고 하는 건 분명히 아는 데서 하는 소리야. 응? 분명히 아는 데서 하는 소린데, 가섭도 전하지 못하고 석가도 모르고 하는 그런 말이 아니라, 그렇게 어렵지만 근본을 얻어 분명히 알고 분명히 전하는 가운데서 하는 소리야. 그래 그것도 물어 봐야지.그래 말뜻은 잘 들을 줄 아는가? 인제 그런 줄 알면 됐잖아?
심인心印
문군심인작하안(問君心印作何顔) 그대에게 묻노니 심인(心印)이란 어찌 생겼는가
심인수인감수전(心印誰人敢授傳) 심인(心印)을 뉘라서 감히 전할 수 있겠는가
역겁탄연무이색(歷劫坦然無異色) 긴 세월 한결같이 다른 색깔이 없으니
호위심인조허언呼爲心印早虛言 심인(心印)이라고 호칭을 붙이면 벌써 잘못이다.
수지본자허공성須知本自虛空性 본래부터 텅 비고 공한 성품인 줄 반드시 알아야 하니
장유홍로화리연將喩紅爐火裏蓮 비유하자면 붉은 화로 속에 피어난 연꽃 같다고나 할까
막이무심운시도莫以無心云是道 (그렇다고) 무심(無心)을 도라고도 절대로 말하지 말게
무심유격일중관無心猶隔一重關 무심(無心)하더라도 오히려 한 관문에 가로막힌다.
<각주>
(주1) 오위무심五位無心 : ①극수면(極睡眠-아주 깊은 잠), ②민절(泯絶-기절상태), ③무상천(無想天-어떠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는 세계), ④무상정(無想定-심리작용 멸절상태), ⑤멸진정(滅盡定-모든 것이 끊어진 禪定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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