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시인 / 한창옥
1 .후쿠호카 형무소 현장을 찾아서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대학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곰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윤동주시 < 쉽게 씌어진 시 > 육첩방은 좁은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육보다 작은 숫자도 많건만 굳이 육이란 숫자를 고집한 것은 다른 뜻이 있을 것이다 3박4일간에 있을 현지 세미나에서 토론할 요지를 생각해보았다 동경교외 어느 조그마한 하숙방에서 넋이 빠진 채 아무 것도 잡히지 않는 그 무엇만을 기다리며 자아를 구속하는 암울한 현실에 실망하고 고통스러워하던 윤동주시인, 그러나 자신을 부끄러워하면서도 결코 역경에 굴하지 않았던 윤동주시인, 그는 후쿠호카 형무소에서 이름 모를 치명적인 주사를 매일같이 맞고 죽음을 당해야만 했다 일본의 < 윤동주를 생각하는 모임 > 과 < 윤동주의 시를 낭송하는 모임 > 그리고 < 윤동주를 추모 하는 모임 > 팀과 최초의 문학교류라는 일정에 잠을 설치고 말았다 첫 새벽부터 그의 작품 '쉽게 씌어진 시' '호주머니' 를 떠올리며 후쿠호카로 출발하기 위해 가방 속 짐을 늘렸다 줄였다 수 십번 되풀이 하다가 하늘과 바람과 별을 꼭꼭 담아놓고서야 여권을 챙겨들고 집결 장소인 부산 김해국제공항으로 향했다 해방 60년이자 윤동주시인 서거 60주년이 되는 해를 기념해서 부산 문화연구회와 동보서적 주최로 국제신문사에서 44번째 신문학기행 행사를 8월 8일부터11일까지 일정을 잡고 '윤동주 발자취를 찾아서 '란 주제로 행선지가 일본으로 정해진 것이다 또한 윤정모의 소설 '님'의 작품무대의 현장을 작가와 함께 기행 하는 '소설가 윤정모의 문학 걷기' 를 위해 서울에서 윤정모소설가 일행이 합류하기로 되어 있었다 그런데 공항에서 시간이 다 되어도 일행은 보이지 않았다 부산문화연구회의 김성배님이 꼼꼼히 일행을 챙겨주고 먼저 도착한 순서대로 출발 수속을 하고 있는데 일행이 도착 했다는 소식을 듣고 안심이 되었다 김해국제공항에서 10시 30분에 향발한지 40여분 만에 후쿠호카 국제공항에 도착하였다 도착해서야 생각보다 앳띤 모습의 윤정모님을 만났다 마른 체형에 확 트이신 성격이 참으로 인간적인 분이란 느낌이 들었다
일정에 따라 전용버스를 타고 학문의 신을 모신 '태재부 천만궁'과 '캐널시티 프라자'를 잠시 들러보았다 부산보다 습도가 높고 후끈거리는 날씨였다 일본에서 윤동주 작품 낭송과 문학 토론회의 계획이 빡빡하게 짜여 진 터라 곧바로 윤동주시인이 옥사한 후쿠호카 형무소 자리를 찾아 나섰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버스에서 내린 일행이 땀을 줄줄 흘리며 왔다갔다 찾아보았지만 후쿠호카 형무소는 흔적도 없었다 그 자리에는 한적하게 법무성 직원들 숙소인 아파트 단지와 주차장으로 변해있었다 다행히 작은 공원이 들어선 곳에 후쿠호카 형무소를 알려주는 조그마한 표지판을 발견하고 일행은 몇개의 벤치에 둘러앉아 그의 넋을 위로하였다 일제에 대한 저항시를 쓴다는 이유와 조선어를 쓰고 독립운동을 한다는 죄명으로 1944년 투옥 되었던 식민지 반도의 청년 윤동주시인은 고국을 그리워 하다가 결국은 해방 6개월을 남겨 놓고 적국의 감옥에서 1945년 2월 16일 사랑스런 추억을 가슴에 간직 한 채 젊은 나이로 옥사한 후쿠호카 형무소, 그 참혹의 현장 앞에 서서 우리 일행의 가슴은 무겁게 가라앉았고 그 분위기에서 추모의 시를 읊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점 구름도 없는 하늘을 바라보며 "서시" 를 낭송 하는 내 음성은 바르르 떨렸고 나도 모르게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어쩔 수 없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 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윤동주 시 < 서 시 > 모두가 숙연해졌다 그 곳에서 젊음을 송두리째 빼앗기고 그 짧은 인생과 한이 응어리져 있는 행을 낭송 하면서 다시 한 번 민족이란 단어를 생각해 보았다 떨어지지 않는 발길을 어쩌지 못하고 후쿠호카 중앙문화센터에서 저녁 7시에 있을 < 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 >과의 문학토론회를 갖기 위해 버스로 이동을 해야만 했다. 가는 길에 한국식 뷔페식당에 들러 저녁식사를 하였다 일행은 서로의 얼굴에 조금씩 익숙해져 대화도 나누고 친숙해 지는 모습이 보였다 국제신문에 강춘진기자와 동보서적 <책소식>의 박현주 편집장, 김영은기자도 순간순간 현장을 놓치지 않고 메모하기에 바빴다 소설가 윤정모님의 일행인 연세대학교 영문학과의 길마스터 도로시 교수가 타고난 특유의 재치로 주위를 환하게 해주었다 저녁식사 중 조개류와 육류를 구워먹는 재미도 있었다 생맥주는 자판기에서 따로 뽑는데 우리 돈으로 200cc에 삼 천 원 쯤 되어 한 모금씩 나눠 마시며 즐거운 분위기였다 식사 후 전용버스로 중앙 문화센터 행사장으로 출발 하였는데 예상 못했던 러시아워에 걸려 40분이나 늦게 도착 되는 바람에 현지 팀에게 실례를 범하게 되었다 그분들은 시간 개념이 철저해서 단 1분도 헛되게 하지 않는 습관이 젖어 있었다 미리 와서 세미나 준비를 하고 기다리다가 많은 시간을 흘려보내 황당해하는 모습에 일행은 참으로 미안 해 했다 2시간으로 예정된 세미나가 반으로 줄어버려 마음이 급해졌다
윤동주시인이 옥사한 지 50주년이 되는 해 1995 년2월16일 결성되어 10년이 되었다는 후쿠호카에 < 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 >과 교토 도지샤 대학 출신들이 결성한 < 윤동주를 생각하는 모임 > 등 20여명 회원들과의 만남에 가슴이 울렁거렸다 30대부터 60대의 연령층으로 구성 되어 우리시인의 시를 연구 해왔다는 사실도 놀랍지만 10년째 시를 사랑하는 모임을 지속하고 있다는 점에 우리는 추모 행사 한 번 없이 빛을 잃어가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앞서기도 했다 부산에서 매월 정기 공연하는 ' 시울림시낭송회' 에서 6개월 전부터 특별기획으로 윤동주의 시를 낭송하고 생각해보는 시간을 마련해온 것이 퍽 다행이라 생각 되었다 넣을 것 없어 걱정이던 호주머니는 겨울만 되면 주먹 두 개 갑북갑북 윤동주 시 < 호주머니 > 윤동주의 시 '호주머니' 를 일본의 ' 이노우에 미키코 '사회로 '마나기미키코'의 발표와 양쪽 팀의 토론이 있었다 이 짧은 시에서는 마음이 춥고 공허한 화자의 모습이 보였다 그렇다면 그나마 주먹 두개가 위안이 된다는 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고 호주머니가 상징하는 의미가 무엇인지 각자의 느낌이 나왔지만 부족한 시간이 아쉬웠다 매월 모여서 윤동주의 작품을 토론 하는 이 모임은 벌써 111번째 문학모임을 갖는 자리라며 일본에는 이들 뿐 아니라 도쿄에 < 윤동주 고향을 찾는모임 > < 윤동주를 사랑하는모임 > 등이 곳곳에 있다고 한다 < 일본 속의 윤동주 > 란 주제 발표를 맡은 서일본 신문의 이데준사쿠 논설위원은 " 윤동주시인의 시를 마음속 깊이 느끼고 끊임없이 이어져 읽어가는 것만이 그의 영혼에 다가가는 길이라 생각 한다" 라고 의미심장한 말을 전했다 " 식민지 지배하에 시인의 고독과 고통을 강요당한 남의 나라 일본에서 그를 죽게 한 땅인 것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으며 그의 시를 읽는 행위는 그를 여기서 죽이고 말았다라는 마음에 아픔과 슬픔을 새롭게 하여 그 것들을 참아내는 일이다 " 라고 하였다 일본에서 윤동주시가 일본어로 처음 소개 된 것은 반세기 전의 일이며 윤동주시인이 작고한지 10년 후로서 작품은 '슬픈 족석' 한 편 뿐이었다 한다 일본에서 윤동주 연구자의 개척자중 한 명인 '우지고쓰요시' 는 시인의 짧은 생애를 3행시에 농축시킨 '슬픈 족석' 아래쪽에 적힌 < 1917년 중국 간도에서 출생 경성 연희전문 학교를 거쳐 교토 도지샤 대학에서 재학 중 피검. 후쿠호카 형무소에서 복역중 1945년 옥사 > 라는 약력에 마음이 예리하게 찔렸던 것은 그 시대와 민족이 떠맡은 비극을 슬쩍 엿보았기 때문이라고 썼으며 '슬픈 족속' 에 약력이 붙어 있었던 것이 일본인에 있어서의 윤동주의 원점이라고 했다 일본에서 비약적으로 윤동주 시를 읽게 된 것은 1984년 11월에 출간 된 <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의 힘이 컸다 한다 한 달에 한 번 모이는 자그마한 그룹이지만 윤동주의 시작품을 한 달에 한 편씩 참가자가 시간을 들여 토론하는 것이야 말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일이며 작품 하나 하나가 의미하는 것을 깊이 감상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그분들은 결코 연구자가 아닌, 회사원, 주부, 학생, 화가, 시인등 윤동주를 사랑하는 다양한 시민의 모임인 것이다 그리고 윤동주시인과 그에 작품에 그토록 끌리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맑은 생애에 대한 인간으로서의 깊은 공감과 또 하나는 깊은 정신성과 인간을 바라보는 온화한 시선, 투명감 있는 그의 시세계에 대한 사랑이라고 했다 후쿠호카에 윤동주시를 읽는 모임은 한국의 문학평론가 김우종 교수의 권유에 응해 1995년 2월 16일 시인이 죽은 후 50년째 되는 날에 후쿠호카시에서 합동 추도식을 연 것으로 구체적인 활동을 시작 하였다고 하는데 또한 도쿄에서는 < 윤동주의 고향을 찾는 모임 > 팀이 있어서 시인의 고향을 실제로 여행을 하거나 도쿄시절에 시인의 발자취를 찾거나 일본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시인의 정서를 찾는 작업 등 다양하게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물론 도지샤대학 구내에 있는 윤동주시비를 건립한 것 이외도 시인의 학우들을 찾아 시인의 추억을 듣는 일도 계속해가고 있다고 했다 우리 쪽 대표로 '윤동주의 문학정신' 에 대해 < 부산 교육대학 > 이해웅 교수님의 주제 발표가 있었다 '한 사람의 시인 , 작가의 사상은 어디로부터 배태 되는가? 윤동주의 서시를 읽어보면 일제 암흑기에 올 곧은 정신을 갖은 시인이 자신의 양심을 지키며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던가 하는 것이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끝내는 그의 시와 삶을 일치시켜 현세적 삶을 떠나 영원 속에 그의 삶을 위치시킴으로 해서 우리 문학사에 한 획을 긋게 된 것이다 ' 라고 하셨다 현지팀에서 참회록을 낭송하고 우리 팀에서 자화상 낭송으로 우리 팀 25명과의 세미나는 일본의 < 윤동주 시를 읽는 모임 > 과 한.일 공동 주체 문학행사를 갖는 기록을 남겼다 짧은 만남의 아쉬움은 컸지만 단체 기념 찰영을 하면서 첫날 행사를 마쳤다 저녁 늦게 전용버스로 하카다에 있는 호텔로 이동하면서 차창에 비치는 내 얼굴에 얼핏얼핏 윤동주시인의 모습이 오버랩 되고 있었다 시인의 짧은 삶이 짧은 여름밤 차창에 아스라이 새겨지고 있는 것이다 그의 시'자화상 '을 되 읊어 보며 밤안개를 헤치고 밤 10시가 넘어서야 숙소에 도착 되어 체크인 하였다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 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읍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읍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 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 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읍니다 윤동주시 < 자화상 > 당신의 하늘은 무슨빛이길래, 당신의 시들이 이토록 숨을 쉬고 있나요 2 . -교토 동지샤대학 교내 시비 앞에서 - 아침 일찍 식당에 모인 일행의 모습은 어제의 빡빡한 일정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피곤한 기색이 없이 밝고 경쾌해보였다 윤정모 소설가와 오랜 기간을 잡지사에 함께 근무하였다는 신인영 룸메이트와 마주 앉아 연두부에 된장국물 그리고 토스트로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셨다 신인영님은 서울 문예진흥원에 근무하며 외모나 성격이 참으로 쿨하고 보이쉬한 여성이다 행사 기획자님이 우리 두 사람이 잘 어울릴 것이란 생각에 룸메이트로 정했다니 나로선 이번 여행에 보너스를 받은 셈이다 둘쨋날 일정은 교토 동지샤대학을 방문하고 윤동주시비 탐방과 일본의 < 코리아클럽 >과 < 윤동주 추모회 > 와의 교류 및 세미나 행사가 있다 행사 전에 오사카성을 둘러보기로 했다 일행은 신칸센으로 오사카까지 이동하기 위해 도보로 3분거리에 위치한 하카다 역으로 갔다 신칸센으로 오사카까지 약 3시간이 소요되는 거리인데 미리 예매를 못하는 바람에 일행 모두가 흡연실로 탑승하게 되었다 일본인들의 자유로운 담배 피기는 혀를 두를 정도였다 물론 흡연실로 정해진 자유로운 칸이지만 오로지 흡연을 위해 사는 사람들처럼 끊임없이 연기를 뿜어대는데 우리 일행은 그 상황의 곤혹스럼을 서로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그나마 미소로 위로의 느낌을 표현했다 그러나 각기 다른 사람들의 모습과 행동을 바라보며 많은 것을 느꼈고 부정적 인식을 허물어 보면서 오랫만에 여행하는 기분을 만끽 하였다 신칸센 속도 양쪽으로 지나치는 풍경 속의 작은 집들이 소박하게 내 시야로 자꾸만 들어오는 것은 왜일까? 잠시나마 시간을 놓아버리고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는 동안 우리를 태운 신칸센은 담배 연기 휘날리며 오사카에 도착 하였다 일행은 오사카성 입구에 있는 2층 식당에서 우동전골로 점심식사를 하였다 우리의 김치가 일본 식당에서 색깔도 맛도 변질되어 담겨져 있다는 게 섭섭했다 누군가 중국산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식탁마다 세 사람씩 앉도록 되어 있어서 편하긴 한데 왜 그런지 묻지는 못했다 오사카의 대표적인 오사카성은 계속 되는 전란으로 분열 된 나라를 통일한 장수, '도요토미히데요시' 에 의해 세워진 녹음이 울창한 역사공원이다 십 년 전에 여행 온 적이 있는 나는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라서 낯설지 않은 풍경이었다 첫날처럼 시간에 쫒기지 않고 문학세미나 장소인 동지샤대학 내 윤동주시비 앞에서 현지 < 코리아클럽 > 과 < 윤동주추모회 > 회원과의 미팅 시간까지 늦지 않기위해 저녁식사 시간은 행사 후에 갖기로 하고 중간의 시간을 '신사이바시' 와 '도우톤보리가'를 관광 하기로 하였다 오사카 제일의 쇼핑지역으로서 유럽촌으로 불리는 엘레강스한 분위기의 거리와, 유행에 민감한 젊은이 취향의 캐쥬얼한 상점들이 많이 모여 있는 아메리카촌 거리로 분리 되어 있는데 거리 풍경을 보는 것만도 눈이 즐겁고 바빴다 특히 각국의 다양한 음식 맛을 볼 수 있는 음식점이 줄비 하게 있어 정신이 없기도 했다 '도우톤 보리가' 는 관광객과 시민들로 붐비고 있는' 보우톤 보리강' 의 남안을 따라 형성된 번화가이다 음식점과 오락시설이 줄비 하고 극장과 영화관이 많이 있는 좀 사치한 거리라 할까? 아무튼 많은 것을 눈요기 할 수 있었다 일행은 가이드가 안내 하는 대로 에어컨을 켜놓고 기다리고 있는 전용버스로 들어가 땀을 식히고 있는데 도로시교수가 보이지 않았다 도로시는 좋은 체격에 우리 나이로 회갑이라는데 언제나 함박꽃 웃음이 떠나지 않는 마치 열일곱 소녀같이 맑은 분이다 잠시후 가이드가 찾아 모시고 왔는데 "쇼핑 중에 예쁜 옷을 보면 유혹을 못참아 적당한 시간만 되면 사라져서 여행에 기쁨 두 배였다" 고 서울에 돌아가 메일을 보내주신 변성욱님의 얘기가 실감 나듯, 새로 산 화려한 꽃무늬 부라우스로 바꿔 입고 버스에 올라서는 모습에 모두가 박장대소를 하였다 도로시의 새로운 패션에 크게 박수를 쳤다 서울에서 다큐멘터리영화 제작을 하는 정선호님과 동행한 캐나다인 다니엘교수도 우리말은 못하지만 상대의 표정과 입모양을 보고 눈치로 알아채며 끄떡이기도 하고 미소를 짓기도 하며 느낌과 표현과 감성은 우리와 조금도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윤정모님이 열심히 통역을 하시기도 했다 도로시를 찾았다는 마음에 일행은 안도의 한 숨을 돌리고 우리말을 전혀 모르는 운전기사에게도 기다려준 미안함을 " 도라이버상 고멘나사이" " 도라이버상 오 쯔까레사마데시다" 라며 인사를 건네주었다 그리고 버스는 교토로 출발하였다
우리는 원코리아(One Korea)를 지향 한다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 별을 사랑한 시인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동지샤대학 가는 길에 윤동주 시비 앞에 헌화 할 꽃을 사기로 하였다 이동 중인 버스 안에서 밖을 보며 꽃집을 찾다가 근처쯤 가서야 꽃집을 발견하였다 가이드가 차를 세우고 내려가서 일행의 수대로 주먹보다도 커다란 흰 국화를 한 아름 사서 안고 올라왔다 적당히 해가 넘어갈 무렵 목적지에 도착 하였는데 동지샤대학 출신들이 결성한 < 윤동주를 생각하는 모임 > 과 < 코리아클럽 >회원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지샤대학을 둘러보고 캠퍼스 내 윤동주 시비 앞에 모였다. 윤동주시인의 자필과 일본어 번역으로 나란히 새겨진 '서시' 시비 앞에서 한, 일 양팀이 단체 묵념을 올리고 도지샤대학 교우회와 코리아클럽과 공동으로 헌화식을 가졌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 그의 영혼이 맴돌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니 너무도 오랜동안 시간이 흘러서야 꽃 한 송이를 올리니 부끄러운 마음이 앞섰다 시비 오른 쪽에는 무궁화와 왼쪽에는 진달래가 심어져 있고 한반도를 향해 있는 윤동주시인의 시비를 보며 ' 우리는 원코리아를 지향 한다 ' 코리언클럽 이우경회장의 외침이 의미 깊게 와 닿았다 양쪽팀은 헌화를 마치고 캠퍼스 내 신학관으로 자리를 옮겨 ' 자화상' 시를 소재로 한.일 공동 문학세미나를 열었다 '십자가' '쉽게 씌어진 시' ' 별 헤는 밤' 등의 시를 한, 일 양쪽에서 낭송을 하고 '이다이쯔미' 목사는 윤동주님께 바치는 노래라며 " 죽어가는 모든 것을 사랑했던 당신은 /차라리 아름다운 영혼의 빛갈이어라 " 라고 시작 되는 가사로 불러주어 장내는 더욱 윤동주시인을 추모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 별을 사랑한 시인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 윤동주의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 그러나 또 다른 한 쪽에선 식민지 지배시대의 사실까지 왜곡 하려는 사악한 바람이 불고 있습니다! " 라고 슬퍼했다 " 그렇지만 윤동주시인은 우리들이 그의 시를 읽고 있는 것을 반드시 기뻐하고 계신다, 수줍어 하는 듯한 표정으로 우리들의 모습을 지켜보고 계신다, 그리고 그의 시를 깊이있게 읽는 것이 그의 영혼에 다가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라 생각하며 앞으로도 오래도록 계속해서 읽어가려고 합니다 " 라고 비장하게 < 일본 속의 윤동주 > 를 발표하였다 인상 깊었던 것은 윤정모소설가의 작품 < 님> 의 주인공' 래영 ' 의 실제 모델인 현순혜씨가 참석한 것이다 우리와 함께 '십자가' 등 시낭송을 하기도 했는데 구분지어 틀어올린 머리모양과 흰무늬가 들어간 검정색 의상이 눈에 띄는 아련한 모습의 40대 한국여성이었다 저녁은 일본팀에서 마련한 만찬으로 아사히 맥주를 곁들인 안주류와 음식으로 참으로 후한 대접을 받았다 파란 녹이 낀 구리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王朝)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 만 24년 1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 왔든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한다 ----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든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 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隕石)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온다. 윤동주시 <참회록 > 셋 째 날은 신칸센을 타고 동경으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숙소인 교토 신미야코 호텔에서 교토 역으로 워킹을 하였다 밤새 비가 내렸는지 행길마다 촉촉하니 젖어 시원한 기분이었다 노동복지 회관 3층에서 있을 윤정모 소설 낭독 및 문학세미나가 있는 마지막 일정이 남아있다 3, ㅡ윤정모의 소설 <님>의 현장을 찾아서 ㅡ 도쿄에 좁고 좁은 골목길을 따라서 찾아 나선 동경대학은 눈에 띄지 않았다 뜨거운 태양 아래 얼굴이 벌겋게 달아 우리를 안내 하는 일본의 사이또 학생을 쫒아다녔지만 몇 번이나 길을 잘 못 들었다 윤동주시인 짧은 생의 숨찬 여정이 이러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드는 순간 땀이 흘러든 두 눈 앞이 희뿌여졌다
윤동주시인이 동지샤대학에 편입하기 전 1942년 영문과에 입학했던 동경대학이며 소설 '님'의 조총련계인 여학생 '래영'을 사랑한 남자 '진국'이 다니던 대학이다 수 도 없이 돌고돌아서야 정문으로 들어섰다 우리 일행은 힘들여 찾아가는 것도 문학기행의 즐거움이라고 상기 된 표정이었다 정문 앞에 철로가 있었는데 윤동주 시인의 시 한 줄이 떠올랐다 "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게다 " 어울리지 않는 유학생으로서 고국을 그리는 향수를 노래한 시다 나무 숲 속에 파묻혀 있는 동경대학은 방학 중 이라서 그런지 매우 조용한 분위기였다 일행은 동경대학 도서관 앞에서 1986년 발표된 윤정모님의 소설 " 님" 의 배경을 작가에게 생생하게 들었다 윤정모님은 이 소설이 20년쯤 지났으니 주인공들도 나도 20년은 더 살고 나서 독자들과 함께 '님'의 현장을 찾아오게 되어 한없이 눈물이 나고 기쁘다고 했다 많은 시간을 윤정모님과 함께 하며 그 당시 글쓰기가 자유롭지 못했던 시절이었건만 ' 님' 이란 소설이 나왔다는 것이 대단한 사건이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저녁에 시민회관 강의실에서 일본의 < 식민지 문화 연구소 시민모임 > 과 자리를 같이 했다 윤정모님의 체험적 소설쓰기에 주제 발표가 있었고 '나시다 마사루' (전, 호세이대) 교수의 '윤정모의 소설 찿기와 식민지 문화' 란 주제 토론이 있었다 양팀은 두 줄로 겹쳐진 ㄷ자 형태로 자리를 잡고 통역자와 사회자가 중간에 앉아 행사를 이끌어갔는데 질문과 통역, 통역과 또 통역이 이어지는 현장에서 국제적 행사임이 실감났다 윤정모님도 상기된 음성으로 질의에 성심껏 응해주셨다 그들은 교과서 왜곡 문제도 거론 했으며 영화배우 배용준의 한류 열풍에 대해 문화적 자존심이 많이 상해 있음을 토로 하며 우리에게 동의를 구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명확한 결론이 내려지는 일이 아니었다 한류열풍에 대해 역사 의식이 없어 부끄럽다는 얘기가 나오자 우리팀의 막내 장수희양이 " 그 건 역사가 아니고 한국을 좋아하는 각자의 취향이며 흘러가는 유행일 뿐이다" 라고 신세대다운 재치로 답변을 하여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어 주었다 모임 전 저녁식사는 식민지 문화연구소 회원인 제일교포 여성이 맡아서 도시락 준비를 하였다는데 한국식 나물류와 양념 불고기를 얹은 밥이 맛깔스럽게 담겨져 있었다 그들은 대체적으로 유행과는 거리가 먼 듯 수수한 모습의 옷차림이지만 매우 진지하게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면서 다양한 문화 속으로 다가서며 참여에 대한 소중함과 긍지를 갖고 있었다 생활 자세를 많이 보고 느낀 하루였다 하룻밤 지나면 부산으로 돌아가야 한다 앞으로도 영원히 일본에서의 민족시인 윤동주 바람은 잔잔하게 또는 세차게 모두의 가슴 속으로 스며들어가리라 윤동주의 '서시' 처럼 우리는 기도하는 자세로 자신의 길을 걸어가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에 싯귀처럼 괴로움을 아는 마음이 소중하지 않을까? 다시 한 번 새겨 본다 죽음의 사연도 모르고 형무소에서 이름모를 치명적인 주사를 매일같이 맞았다는 증언만으로 모두가 비통해야만 하는 억울한 60년의 세월이 흘렀건만 당신의 바람은 어디로 불었길래. 당신의 별들은 무엇을 말했길래 오늘도 그들은 당신의 '참회록'을 릂으며 당신을 노래하며 당신에게 한없는 연민으로 젖어드는 것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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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주변인과 시" 발행인 원문보기 글쓴이: 한창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