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기왕의 비원•1
-어두워니
최보정 시
먼 옛날, 선조들이 애틋해 하던
어두워니를, 그대는 아시나요.
그곳은
패전한 태기왕을 도우려
달려온 군사들이
한망대에서 한탄의 눈물로 제사 지낸 그 자리
날이 어두워져 자고 갔다 해서 어두워니
이토록
강한 마음 슬픔을 이겨내고
패했다는 비보(悲報)속에도
전진했던 우리 횡성마을 이름들
아마도 그것은,
볍씨를 갖고 온 명철한 왕이 있어
처음으로 벼농사를 지은 화동리, 또는,
성을 쌓았다하여 횡성이라 했다지요
여기는
서리서리 굽이굽이
태기왕의 전설이
서려있는
횡성입니다, 그대는 아시나요.
태기왕의 비원•2
기산백운 화동리(禾洞里)
시: 최보정 낭송: 최보정
아주 먼 옛날 어느 현인은,
‘심장은, 이성이 알지 못하는 비밀을 알고 있다’고 말했지요
바로 천오백여 년 전 삼한시대에,
저 높은 태기산으로 수 천 길을 걸어온 진한의 마지막 왕이 있었지요
멀리서는 사나운 눈길로 신라가 쫓아오고
숨어서 요새를 짓는 태기산 근방에는
저항하는 선주민이 많았겠지요
허나, 그들이 감복한 것은,
태기왕은 명철한 왕이어서
피, 조, 수수에 볍씨를 갖고 왔지요
운해에 덥힌 화전에 볍씨를 뿌리고
철기 농기구를 만든 유적을 남겼지요. 그들,
스스로 성을 짓고 현명한 왕을 심장으로 도왔을 거예요
4년여 만에 신라군에게 분패했다고 전하오나,
신라는 곳곳에 큰 절을 지었으니,
태기산 기운으로 활기찬 심장 속에 스스로 녹아 들었겠지요.
벼농사를 지었다는 화동리나,
골짜기마다 줄기차게 흘러내렸다는 쌀뜨물이나
내 유년시절의 밭벼처럼,
禾洞里 벼농사처럼, 꿋꿋이
불볕도 이겨내고 대대손손 풍년드는 곡식창고가 있었으니,
이는, 태기왕은 비록 패전한 왕이라 전하오나
우리들의 심장 속에
새로운 비전을 꿈꾸게 하는,
불굴의 기개를
심어주었나 봐요.
하여, 마침내 우리는
풍요로운 삶의 터전을 이루었나 봐요.
태기왕의 비원•3
-아라왕비를 찾아서
록은 최보정
칠월 그믐날
우리는 어답산 뒷골로 들어갔지요.
선조들의 얼을 닮고 싶어서 걸어갔지요.
먼 먼 부족국가시절
진한의 아라왕비 누굴 찾아 수천 길을 왔을까요
격전지를 지나 슬픈 소식을 헤치며 북으로 북으로 가는데,
산라군에게 붙잡혀 능멸이 보이매,
달빛보다 더 푸른 칼날을 들어 자결코자하니,
신라 혁거세왕 놓아주라 명했다지요
지아비 찾아가라고
산은 깊고 계곡물은 싸늘하니 파고들고,
쓰라린 그녀의 눈물보다 더 지아비 걱정에
타들어가는 애간장을 녹여주었지요
한뎃잠을 자는 아라왕비를 생각하며 걷는데,
갑자기 허리를 곧추세우고 숲길에 나타난 독사 혓바닥
생각도 없이 뒷걸음쳐 한참을 내달았네요. 아 부끄러워라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은데
내게는 신념도 없는 것인가요, 허영에 물들어 뱀을 혐오 했으니
그녀는 신념으로 전진하는데, 태기산 붉은 소나무 같네요.
너덜겅, 솔수펑이를 꿋꿋이 걸어가고 있네요.
산꼭대기로 열구름 흘러가고
그녀의 신망(信望)이 산목련 향기로
코끝에 와 닿는 군요.
하들하들 흔들리는 솔가지도 그녀의 마음을
대변하여주고,
새소리도 우금 속 아라왕비를 칭송하고 있는 먼 시간을
나도 그녀에게 가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