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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호랑이 해가 가고 토끼해란다.
언제나 그렇듯 정월 초하루를 맞은 감회가 얼마되지 않은 듯 싶은데 어느 새 삼백육십다섯날이 후딱 지나가고 토끼해의 초하루를 맞았다. 한껏 자느라고 잤는데도 일어나 보니 7시다. 늦게 잠자리에 들었으면 응당 늦잠을 자야 정상이겠으나 아침 6시반과 7시를 넘기지 못하는 것은 5학년이 되기 전에 새벽영감이 되려는 징조인 것 같아 걱정이다.
일어나면 언제나 그러하듯 얼굴에 물찍어 바르고 머리 감고 컴퓨터 앞에 앉아 자주가는 카페를 순회한다. 직장에 출근하는 여정이 같은 것처럼 인터넷이 연결된 컴퓨터가 도처에 있으니 카페님들과 정다운 이야기를 주고 받는 것이 아침의 주요 일과다. 딸아이가 갖고 싶어하는 스마트폰을 촌부도 갖고 싶어졌다. 요즘 인터넷은 트위터 기능이 있어서 내가 누군가와 사촌을 맺어놓으면 일부러 그 분을 찾지 않아도 스마트폰으로 정다운 님들의 글을 볼 수 있어서 좋다고 하니 그게 부쩍 갖고 싶어졌다.
여러 카페님들이 일출광경과 복많이 받으시라는 메시지들을 주고 받고 있었다.
복 많이 받으라는 한마디가 해마다 별 의미없이 되풀이되는 정월 초 인사가 아닌 가 싶다. 보이지 않는 복을 막연히 어떻게 받으라는 말인가? 내가 직접 퍼줄 수 있는 복도 아닌데 상대방에게 무조건 많이 받으라 하고 상대방도 감사하다며 복많이 받으라고 응수하는 인사법이 재미있다.
앞으로는 <복받을 일을 많이 만들어 가세요>라는 새해 인사를 하면 어떨까 싶다. 복이라는 것이 수동적으로 받을 확률은 적고 능동적으로 만들어가는 복이 훨씬 확률이 높고 값질 것이기 때문이다.
해맑게 웃을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넘치는 복을 이미 받았지요
10시다.
처자식이 일어나려면 아직도 멀었다. 아침잠 잘 자는 것도 복일 것이다. 하루해가 언제 저무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시골에 놀러가려고 해도 구제역이다 조류독감이다 하여 길목마다 분무기를 설치하여 뿌연 물을 차창에 뿌리는 것이 싫어 어디서 오라는 것이 겁날 정도다. 요즘처럼 추운 날에 분사액이 뿌려지면 금방 얼음으로 변하기에 그렇다. 읽었던 책과 신문을 뒤적여 본다. 무료하다. 안되겠다. 자리를 툭툭 털고 일어났다. 어쩌다 맞는 레드데이는 농사철이 아니기에 별로 반가운 날이 아니다.
“형님, 오늘 등산 어때요?”
“나야 좋지. 언제 오려는가?”
“눈이 많을까요? 눈을 대비하는 장구가 없는데 용품점 문 열었을까요?”
“걱정하지 말게. 등산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눈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게야. 그리고 새해 첫 날이라 문 여는 스포츠용품점도 없을 테니 가벼운 곳으로 등산한번 하지.”
역시 등산 좋아하는 형님이 있다는 것이 좋은 위안이다.
승지봉(해발 300미터)에 올랐다.
횡성읍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아직 바람이 차지만 스키복의 살갗을 뚫지 못한다. 오히려 장갑낀 손이 더워 답답할 정도다. 얼굴에 스치는 바람이 상큼하다. 다리 쉬임을 하고는 정산에 설치해 놓은 운동기구에서 이십여 분 정도 휴식하다가 하산했다.
야산이지만 하산길도 오르는 것 못지않은 경사가 있었다. 매니아들이 길을 만들어 놓았지만 아직 녹지 않은 터라 미끄러웠다.
“내려갈 때는 보폭을 좁게 하면서 착지간격을 짧게 하라고. 종종걸음을 하면 아무리 미끄럽고 미끄러운 신발을 신었더라도 미끄러지지 않지.”
선배님다운 형님의 조언이다.
비탈 내리막길은 종종걸음 아니면 뒤통수에 혹을 달 수 있어 조심스럽다
휘리릭, 촌부는 분명히 그렇게 느꼈다.
형님의 말씀대로 종종걸음을 하며 조심스럽게 내려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의 곁을 휙 지나갔다. 촌부는 내려가고 그 사람은 올라가는 상태인데 오르막을 뛰어가는 실력이 심상치 않다. 혹시 무협지에서 볼 수 있는 경공술?
“간혹 저렇게 미친 사람도 만나지. 등산에 미치다 보면 저렇게 뛰어다닌다네.”
“정말 맛나네요. 고맙습니다. 형수님.”
식당은 먹거리 단지 초입에 있었다. 지하 1층의 가게에 고급스러워 보이진 않지만 다른 가게가 열지 않은 것에 비하면 나름 성실한 집이다. 칼국수와 떡에 들깨가루와 들기름을 넣었는데 매운 고춧가루를 약간 뿌리니 생전 처음 맛본 요리다.
“그리 맛나는 건 아닌데 아우님이 등산을 다녀온 덕분일 거야.”
“농부님 놀러가려는데 외지인 출입금지 안하는지요?”
“걱정 말고 들어와요. 강원도 차량넘버는 통과시킨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요즘 구제역 소란이 일어난 후로는 동생네 집이나 장모님 댁 출입을 삼가고 있었다. 간다고 하면 동넷분들과 실랑이 할 일도 겁나지만 꽁꽁 언 날 차창에 소독액을 뿌려 뿌옇게 얼면 유리창을 긁어야 한다. 동생네 집에 다녀올 때 소독시설을 세 군데를 통과하게 되니 왕복 여섯 번을 그 짓을 해야 했다. 하루빨리 구제역 소란이 그쳐주길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청일 못 미치는 삼거리에 60대로 보이는 두 분이 교통지도를 하고 있었다.
“고시리 들어가려구요.”
“이 쪽으로 가세요.”
한낮이라 기온이 올랐다고는 하나 아직 바람이 차다. 봉사는 아니겠지만 저 분들의 고통을 덜어드리기 위해서라도 봄날이 얼른 왔으면 좋겠다. 구제역 뿐 아니라 AI까지 와서 축산농가를 위협한다고 하니 언제부터인가 이 나라는 해로운 외국 바이러스 전시장이 되어가는 건 아닌지 걱정스럽다.
“엇, 손님이 계셨군요.”
“새해 복많이 받으세요.”
미리 와있는 분들은 어답산 별님 내외였다. 후덕해 보이는 어답산 별님과 야무져 보이는 옆지기님이셨다. B4크기의 두툼한 서류가 보였다. 사업계획서인데 꼼꼼하게 써 내려간 내용들과 맨 뒤에는 추동리 부근의 임야와 하천에 여러 가지 사업계획 청사진이 들어 있었다.
“기대됩니다. 곧 횡성에서 멋진 관광단지를 볼 수 있겠네요.”
알땅콩을 만들고 계셨다.
태기산농부님 내외와 어답산 별님 내외분이 땅콩을 까고 계셨다. 기계로 작업하면 후다닥이겠으나 한알한알 작업하는 모습들이 농사는 정성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것도 골라내야 되나요?”
약간 무늬가 있지만 식용에는 별 부담이 없어 보이는 것들이었다.
“그럼요. 몇 년째 신용으로 주문하시는 분들께 드리는 것이니 깨끗한 것만 보내드려야지요.”
태기산 농부님의 강직한 성격이 그대로 배어 있었다.
옆에는 지퍼백에 담은 땅콩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땅콩이 아니라 그 분들의 정성이 한알한알 들어있었다.
“이젠 태기산 농부님도 인증농사를 하시지요. 생산시설을 잘 갖추셨으면 재료에 대한 인증도 필요한 시절이 아닌지요?”
“내 마음이 인증이지요. 정부에서 친환경인증을 해 주려면 농민들의 피를 빨지 말아야 해요. 농약성분검사 한다고 158,000원이나 받아먹는 나라가 뭐 농민을 위한 거냐고요. 이 늙은이가 농사를 지으면 얼마나 더 짓겠다고 나라 배불리는 일은 하고 싶지 않군요. <불검출>이라는 석자에 15만원이면 한 자당 5만원씩에 팔아먹는군”
그래도 인증농사가 대세인데 농부님 마음의 상처가 안타깝다. 친환경 무농약농사를 동생과 태기산농부님으로부터 전수받았기 때문이다.
“농사지어 돈벌려면 내가 지은 농산물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길이지요. 기름짜는 기계를 들여서 들기름, 참기름을 내서 판매하려구요.”
“이 냥반 뭘 또 벌이시려구. 나이에 육자도 아닌 칠자가 들어간 분이 뭘 그렇게 욕심을 부린대요.”
“내하고 싶은 걸 당신이 몰라서 그래요?”
농부님의 꿈을 듣고 보니 남북통일 후 북한땅에 교회를 설립하시는 일이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면 복받을 꿈이니 어떤 방법이든 농부님의 좋은 꿈 꼭 이루셨으면 좋겠다.
마분(가루)와 쥐눈이콩 청국장가루를 섞어 환을 지은 것으로
태기산농부님 소망농장의 대표적인 건강식품입니다. 포장이 아주 고급스럽네요
“이제 배불러서 더 못 먹습니다.”
신정이든 구정이든 초하룻날은 배터지는 날이다. 낮에 밥맛 좋다고 깨국수를 실컷 먹은데다 태기산농부님 댁에서 파전먹고 조금 있다가 저녁상을 받으니 진미에 소화불량이 올 정도다. 아비가일님의 베풀어주시는 인정이 후덕하다.
“번개한번 치셔야죠. 별채가 넓어서 1박2일 번개라면 아주 좋을 것 같습니다. 반가운 님들 얼른 보고 싶구만요.”
“그렇지 않아도 설날 이전에 한번 계획해 봐야죠.”
짧은 시간이지만 언제 보아도 웃음잃지 않는 태기산 농부님 내외를 보는 것만으로도 팍팍한 삶에 위안이 된다.
“농사란 거 맨 지얄같애. 안성 콩밭 내 놓고 남녘에 알아보니 거긴 도지를 1400원 1800월 막 달래는구만.”
이 분은 걸찍한 말투가 일품이다. 보통 다른 분들이 욕설을 섞으면 이내 피해 가지만 이 분의 말씀을 들어보면 걸찍해도 정감이 넘쳐서 수화기를 아무리 오래 잡고 있어도 부담이 없다. <자연을 닮은 사람들>부터 <모 다음카페>시절까지 이 분의 행적을 놓치지 않았고 세미나에 가끔 참석하게 했고, 촌부를 일찍이 친환경농사에 눈뜨게 해주신 서울농부다.
“금년 배추값이 엄청 좋았다고 땅을 내놓는 사람이 없어요.”
“중간상만 돈벌었다고 하더니 그게 아닌 가 보죠?”
“중간상만 돈번 거 아니지. 지금 봄동배추도 가격이 아주 좋아요. 금년(음력기준)에 배추농사한 사람들 모두 돈 벌었어요. 심어놓고 평당 12,000원에 팔아버렸으니 만평 배추한 사람은 1억2천이 떨어져요. 그 동안에 진 빚 다 갚고 많이 남았을 걸.”
하긴, 촌부가 자주 뵙는 장모님에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내면에서 삼만 평 배추농사한 사람이 1억정도 빚 갚고 3억정도 남았다던가? 하늘이 배추농부들에게 오랜만에 안겨준 선물일 것이다.
“도지 천원이면 몰라도 그 이상 올라가면 잡곡농사는 지으나 마나가 되요. 이제는 해마다 인삼경작면적 늘어나는데다 배추값 좋았다고 배추농사면적을 늘이겠다고 땅을 내놓지 않으니 도지만 올라가는 거여. 몸도 아프고 이 짓도 그만해야 할 가벼.”
“그래요. 최선생님 이제 그만 쉬시죠. 자녀분들 공부 다 가르치셨죠?”
“이제 딸래미가 대학 졸업하니 돈 들어갈 건 더 없어요.”
“배추농사 하시는 분들이 요행히 돈을 버셨다고 다음해(2011년)에도 대박이 기다리고 있을까요? 그들의 착각이겠지요. 사정이 그러니 한 일년 정도 쉬시지요. 힘든 농사 그만 하시구요.”
쉬시라고 권해 보지만 어림없는 소린 줄 이미 안다. 농사로 뼈가 굵은 농부가 무얼하든 해마다 농사짓지 않으면 온 몸에 녹이 슬 것이기에 서울농부님도 뭔가를 벌이실 테지.
요즘 구제역 소란에 셋이 운다고 한다.
소가 울고 농민이 울고 수의사가 운다. 소로 태어난 것이 억울해서 울고, 농민은 소가 불쌍해서 울고, 수의사는 배 가른 소가 끔찍해서 운다고 한다.
“아니 소를 안락사 시켰으면 그냥 파묻으면 되지 배를 왜 가르나요?”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부패과정에서 가스가 많이 생기는데 발생가스를 빨리 배출하게 하기 위한 거라 하더군.”
불쌍한 소는 두 번 죽는다.
에휴, 농사는 무얼하든 정답이 없다.
첫댓글 농사는 노력과 천운이.....ㅋ/정초부터 맛나거 많이 드시고 부럽네요.ㅋ/나도 친정가서 잘 먹고 왔지만요.
늘 건강하시고 밭에 자주 불러주세요. 특히 머우대날때요.ㅋㅋㅋㅋㅋ
그러죠. 서정남님 드실 만큼 준비할게요
금년 좋은 거 많이 드시고 늘 행복하세요
구제역? 다 사람에의해서 생기고 자연을 거스리기 때문에 나타나는 질병같네요.
말로는 현대식 축사에 사료는 g.m.o 수입사료에 수입건초 또환경은 햋빛이 차단되고 바람도 안통하는
축사에 바닥은 딱딱한 시멘트로 ...사람이나 가축이나 땅을 발바야 미생물에 의해 면역력도 키울수 있을텐데
좁은공간에 단시간에 키워서 내보내는 안타까운 현대축산 농정을 지도 하시는 분들이 빨리 알아 채리셧으면
하는 마음에 몇자 적어봅니다.구제역 관련해 종사 하시는 분들 힘내십시요.
야채농부님이 정답을 말씀하셨습니다.
결국 먹이와 운동부족이 면역성을 떨어뜨리는 것 맞습니다. 많이 움직이는 만큼 살로 가지 않으므로 운동을 제한하는 것이며 면역성이 떨어지기에 잦은 소독과 항생제 남용으로 더욱 면역성을 떨어뜨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약간이라도 힘있는 외국바이러스가 들어오면 맥을 못추고 당하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