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바라는 세상 / 이기철(낭송:구나현)
이세상 살면서 내가하고 싶은 일은
사람 많이 다니는 길가에 꽃모종을 심는 일입니다.
한번도 이름 불려지지 않은 꽃들이 길가에 피어나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그꽃을 제맘대로 이름지어 부르게 하는 일입니다.
아무에게도 불려지지 않는꽃이 혼자 눈시울을 붉히면
발자욱 소리 죽이고 그꽃에 다가가
시처럼 따뜻한 이름을 그꽃에 달아주는 일입니다.
부리가 하얀새가와서 시의 이름을 단꽃이 물고 하늘을 날아가면
그새가 가는쪽의 마을을 오래오래 바라보는 일입니다.
그러면 그 마을도 꽃처럼 예쁜 이름을 처음으로 달게 되겠지요.
그러고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이미 꽃이 된사람의 마음을 시로 읽는 일입니다.
마을 마다 살구꽃같은 등불 오르고
식구들이 저녁강가에 모여앉아 꽃물든 손으로 수저들때
식구들의 이마에 환한꽃빛이 비치는것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어둠이 목화송이 꽃처럼 내려와 꽃들이 잎을 포개면
그날밤 갓 시집온 신부는 꽃처럼 아름다운 첫 아길 가질것입니다.
그러면 나 혼자 배갯모를 베고
그 소문을 화신처럼 듣는 일입니다.
이기철 시인은 197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해 시집 ‘청산행’, ‘지상에서 부르고 싶은 노래’, ‘유리의 나날’ 등을 발표했다. 또한 김수영문학상, 시와시학상, 최계락문학상, 후광문학상 등을 수상하며 시·문학계의 인정을 받아왔다.
https://www.youtube.com/watch?v=3q92d2-DWbU