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은 돼지국밥집 판별법 아세요.
일단 출입문 앞에 솥 3개가 보여야죠. 사골 육수·국·수육용입니다. 그런데 2개라면? 그건 대충 국밥만 판다고 보면 됩니다. 수육용 솥이 없는 겁니다. 수육이 안 팔린다는 건 돼지고기 맛이 별로입니다.
솥이 밖에 없고 주방 한 구석에 있다면? 그건 감점 요인입니다. 밖에 솥이 있다는 건 그만큼 육수에 자신있다는 증거죠. 손님이 늘 보니 육수를 속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솥이 주방에 있다면 육수 갖고 장난칠 확률도 그만큼 높아지겠죠. 손님이 한꺼번에 밀어닥칠 땐 육수가 부족해집니다. 육수를 별도로 뺄 겨를도 없습니다. 양심적인 주인이라면 감당할 수 없는 손님은 돌려보낼 것입니다. 그러나 식당 경영이 빠듯할 경우 양심을 속이게 됩니다. 우유나 프리마 등를 넣고 육수 흉내를 내죠. 거기에 화학조미료까지 넣을 경우 허기진 상당수 손님들은 육수가 왜곡된 걸 거의 눈치채지 못합니다.덜 남아도 손님에게 제대로 된 걸 먹여야 된다는 믿음이 강하면 그럴수록 육수는 상품형에서 '작품형'으로 진화됩니다. 물론 단골의 안목도 한몫하죠.
"오늘 이 육수, 내 평생 맛본 것 중 최고."
장인급 주인이라면 이런 한 마디에 갑니다. 그런 격려에 힘입어 더욱 명품 육수를 만들 겁니다. 그런데 요즘 국밥집 주인들은 맛보다는 돈이 우선인 듯 합니다.
# "이곳엔 2호집이 더 유명해요"
대구시 수성구 그랜드 호텔의 위세에 가려진 수성구 범어시장.
안타깝게도 2000년 5월8일 새벽화재로 시장은 사라지고 현재 그 자리에 H 아파트가 서 있습니다. 상당수 상인들은 그 바닥을 떴고 달리 점포를 구하지 못한 주인들은 옆 골목으로 이전했습니다. 식도락가에게 어필된 건 이 시장의 돼지국밥집. 현재 1호집, 2호집, 쌈지돈, 현풍, 동남 등 국밥집 5군데와 정통 과메기로 유명한 17년 역사의 삼성식당(대표 박천식)이 보입니다.
비오는 오후 3시30분. 이 골목 명물 돼지국밥집 2호집을 찾았습니다. 비가 와서 그런지 손님이 적잖게 앉아 있습니다. 빗소리와 섞여 피어나는 육수 끓는 소리가 참 운치있네요. 문 앞에 솥이 3개 있습니다. 오전 7시30분 사골을 고기 시작하면 사골은 맹물과 만나 애벌·재벌 육수를 빚습니다. 역시 사골 육수만한 게 없다네요. 분산해 끓이는 건 한번에 너무 오래 고면 짠네가 나서 맛을 버리기 때문입니다. 소주·생강·마늘 정도면 누린네를 잡습니다. 멀겋고 물내가 나면 잘못 끓인 겁니다. 잘된 육수는 입술이 쩍쩍 들러붙습니다. 구수함을 더하기 위해 족발도 넣습니다.
# 경상도 돼지국밥 전통 이어
봉덕 시장의 경우 오직 돼지머릿살을 사용하지만 2호집은 오직 삼겹살 위주로 냅니다. 이밖에 목살과 암뽕, 대창(일명 보살감투) 등이 덧붙여집니다. 간, 곱창, 허파, 염통, 귀, 코 등은 맛을 텁텁하게 한다고 해서 넣지 않습니다. 경남식인 부추는 사절입니다. 그녀는 국에 밥을 말지 않습니다. 다른 곳에선 따로 내면 1천원 비쌉니다. 국에 밥을 말면 고기가 들어갈 자리가 줄어들어서 그렇겠죠. 2호집의 맛은 목련시장 대성식당, 동구시장, 정화팔레스 옆 정화국밥 등으로 번졌습니다. 딸 이지애씨는 동성초등 건너편에 직영점을 열었다네요.
보통 1호점이 유명한데 범어시장에선 2호점이 더 유명합니다. 30년 이상 '국밥 아지매'로 살아오고 있는 정실경씨(62) 때문입니다. 뒤로 묶은 생머리, 곱게 화장한 얼굴. 늙음이 전혀 감지되지 않습니다. 평생 돼지와 동고동락하느라 늙음을 인식할 겨를이 없었겠죠.
"국밥 만들기가 여간 까다로운 게 아니라서… 1분만 늦어도 고기가 다 녹아내려 버립니다. 이젠 물 끓는 모양만 봐도 고기가 다 익었는 지를 압니다. 오직 돼지 생각만 해야됩니다."
그녀가 먹고살기 위해 이 시장을 찾았던 1978년. 범어시장은 경산·자인사람들까지 찾았던 제법 큰 규모였습니다. 예전엔 상대가 안되던 수성시장이 거인처럼 커버렸습니다. 초창기엔 경기가 좋았습니다. 바로 옆 현재 대구은행 본점 자리에 남부정류장, 대구농고, 수성구청 등이 있었고 건너편에 코오롱 공장이 있었습니다. 2호집은 처음엔 분식을 취급했습니다. 테이블도 없고 길다란 송판을 깔았습니다.
# 행사 때는 돼지 수육 인기 짱
손님은 좌판에 엉덩이를 맞대고 음식을 먹었습니다. 가스도 없어 연탄불로 요리를 했습니다. 국수, 정구지(부추) 부침개, 김밥, 단술, 팥죽, 잡채 등 웬만한 음식은 다 팔았습니다. 얼마 안돼 수성구청에서 단속을 나와 간판을 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특별한 상호가 생각나지 않아 그냥 가게 붙은 순서대로 호집을 적었습니다. 세 집은 그 바닥을 떴고 2호집만 남았습니다. 한창 때는 현풍, 동남, 1호, 2호, 3호, 5호, 7호 등 7개 업소가 있었습니다. 80년대까지만 해도 돼지고기는 요즘 튀김닭·피자 못지 않게 잘 팔렸습니다. 각종 길흉사, 회사 단합대회, 체육대회 등에선 돼지수육이 짱이었죠. 지금은 거의 팔리지 않는 눌린머리가 불티나게 팔렸습니다. 4천원짜리 국밥을 먹으면서 빗소리를 듣습니다. 편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동네 가게에 라면사러 가는 기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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