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세계에서는 BC 1000--600년경: 중국에서 시경'원형 성립 BC 850년경: 그리스, 호메로스 활동 BC 700--500년경: 고조선, 철기문화 시작. 8조 금법 시행
헤시오도스
1930년대의 일이다. 내가 평양에서 중학교에 다닐 때의 사회적 풍토를 회상해본다. 그 당시 평양에는 생각있는 교양인들은 기독교 신앙을 많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기독교가 두 가지 책임을 감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나는 민족정신이며, 다른 하나는 교육을 받아야 된다는 교육적 열성이었다. 나도 그런 풍토 속에서 자랐다. 그뒤 얼마 동안 우리는 한국문학에 접촉하는 기회도 가졌다. 이광수를 비롯한 많은 작가의 작품들이 우리의 정신적 각성과 성장을 일깨워주었다. 학교에서는 초보단계이기는 했으나 화학, 물리학 공부를 했고, 화학실험실에서 배우는 것들이 신기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고도 얼마의 세월이 지난 뒤부터야 철학에 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글로 씌어진 한치진씨의 '철학개론'이 그 즈음에야 나왔던 것이다. 책방에 가보면 종교책이 많았고 문학책이 적은 부분을 차지했는가 하면, 우리말로 된 철학책은 거의 보이지 않았을 정도이다. 어려서 내가 체험한 이런 과정을 서양철학을 공부하게 되면서도 느끼는 것 같은 인상을 받았다.
서양철학은 그리스를 둘러싼 지중해 연안에서 발생된다. 그리고 상당한 세월이 지난 뒤에 아테네를 중심으로 본격적인 철학운동이 전개된다. 그런데 그 초창기의 현상을 보면 철학이 먼저 탄생된 것은 아니었다. 일찍부터 보급되어 있었던 것은 종교문화다. 오르피즘 종교가 그 중심을 만들고 있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이집트와 중동지방에서 흘러들어온 종교가 그 당시 사람들의 정신계를 점령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생활에 필요하고 현실에서 요청되는 단편적인 생활과학이 발달되어왔다. 세계어디서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자연과 더불어 생존하기 위해서는 물과 농토를 다스려야 했고, 기후와 계절을 살피는 기상학적 지식이나 초보적인 천문학이 필요했다. 그런 것들을 위해서는 기하학 같은 초보적인 과학이 필수조건이었다. 그 뒤에 탄생하는 것이 철학이 된다는 과정은 상식처럼 되어있었다. 그리스도 같은 과정을 밟았던 것 같다. 오르피즘 종교의 신앙을 이어받은 예술가들이 나타나 문학적 작품들을 쓰게 된다. 그러므로 그 표현에는 몇 가지 차이가 있다. 연극의 형태를 취하기도 하고 시민들의 시적 작품이 등장하기는 해도, 그 내용은 대부분이 인간의 삶과 문제에 관한 신화적 형식과 성격을 밟게 되었다. 이렇게 나타난 처음 대표적인 작품이 호메로스의 일리아스(Ilias)와 오디세이아(Odysseia)라는 서사시다. 그것이 기원전 9세기의 작품이었으며, BC 7세기에 이르러 완성되었다는 것을 보면, 이것은 한 개인의 이름으로 전해져 내려오던 내용이 오랜 뒤 완성을 보았다는 뜻이다. 이것은 당시의 상황으로 미루어 종교시인 또는 신앙적 시인이 그 시대의 종교관과 사상을 대신했던 것으로도 볼 수가 있다. 그것이 그리스 인들의 신앙을 이어받음과 동시에 또 그들의 사상을 만들어주었다고 볼 수도 있다.
호메로스의 글들이 일반화된 뒤에 헤시오도스(Hesiodos)의 '신통기'라는 책이 나온다. BC 7세기 때의 일이다. 이 책은 종교적 신화와 철학의 중간쯤에 해당하는 내용이다. 수없이 많이 나오는 신화의 주인공들인 신의 계보와 조직을 배후에서 정리하며, 거기에 나타난 정신과 사상을 통해 어떤 공통된 세계관을 얻어보려고 한 노력의 산물이다. 또 신화의 주인공들은 인간에 비해 만능성을 갖고 있으나, 거기에 윤리성을 부여하여 신화를 윤리, 도덕적인 방향으로 유도해나간다. 신화의 주인공인 신들에게는 윤리성이 없었다. 선악관념이 없는 무구함이 그 특성이다. 그것이 윤리성을 갖춘다는 것은 에덴동산이 선악과가 나타나는 것 같은 새로운 발전일 수가 있다. 이렇게 되면 그들의 종교사상이 철학으로 발전할 충분한 여건을 갖추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사상이 대중화되며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사상형성의 길잡이가 되기 위해서는 철학보다 문학이 그 적절한 위치를 차지하게 된다. 문학은 일반성을 가지면서도 이론적 체계를 갖추기 이전의 대중문화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리스 인들이 특출한 소질의 소유자가 아니었더라면 철학은 좀더 늦게 나타났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