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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을도 곡우치성 도담 : 천지부모님과 나 그리고 태을도
종장님 :
우리가 생각해 봐야 될 게, 이제 숫자가 좀 늘어나고 그러니까, 이제는 우리 각자가 우리 역할이랄까 우리 사명이랄까 이것을 좀 더 확실하게 자각을 해서 우리가 책임의식을 좀 더 가져야 되겠다. 백년도사에서 이제는 강증산의 제자들이 정말로 현실속에서 성사재인의 주역으로 드러나는구나, 말 그대로 태평천하한 세상을 저 사람들이 만들어가는구나, 저 사람들의 현실적인 감각, 저 사람들이 갖고 있는 이상, 꿈과 현실을 조화해 나가는 강증산의 참다운 제자들이 이제 나왔다. 그런 자각을 가지고 출발을 해야 할 것 같애요.
제가 메시지로 ‘천지부모님과 나 그리고 태을도’에 대해서 3분에서 10분정도 발표준비해오라 한 것도 그런 측면이죠. 천지부모님의 도자로서 현실속에서 신앙해 오면서 어떤 걸 느꼈고 어떻게 해갈 것인지 각오를 돌아가면서 한 번씩 얘기를 해보시죠. 그리고 ‘용봉서신’ 1장 읽고 독후감 쓰시라는 문자도 보냈는데 읽어보시고서 느낀 것도 같이 한 번 얘기를 해보시죠. 최00 도인 독후감 올리셨던데, 여기서부터 쭉 한 번 얘기해 보시죠.
최00 도인 :
한 번 주욱 읽었다가 독후감 쓰느라고 다시 쓰면서 읽고, 쓰면서 읽고 하니까, 이것저것 잡생각이 많아서 그런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이 들었습니다. 두서없이 느낀 것들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종장님 :
원래 자유로운 생각에 진심이 담겨있는 거예요. 부담 갖지 마시고...
최00 도인 :
예전에 마음공부할 때 객관성에 대해 들었던 게 있었는데, 예전에는 잘 이해가 안되더니, 이제 많이 와 닿더라구요. 객관에 대한 정의가 어땠냐 하면, 상대가 또는 어떤 것이 이해안되는 게 하나없이 완전히 100% 완전히 이해되는 것이 객관이라 그러더라구요. 그때는 그게 무슨 소린가 했었는데, 지나고 보니까 이제는 자기의 주관이 남아 있으면, 나라는 의식-자의식 이런 것이 남아있으면, 나라는 의식이 상대를 또는 어떤 것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방해하는 것 같더라구요. 그래서 이해가 조금이라도 안 되거나 상대의 마음이 완벽하게 안 느껴지면 ‘아, 이건 내가 문제구나, 내게 자의식이 남아있어서 상대가 완벽하게 안 보이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용봉서신 27페이지에 ‘증산상제님께 영광을’ 이 부분을 읽다 보니까, 예전에 공부할 때 ‘나란 무엇인가’ 이런 걸 공부해 봤었거든요. 처음에 나는 최00이다 그러면, 그건 나가 아니고 나의 이름이다. 다음은 나는 남자다. 그러면 그건 나의 성별이지 내가 아니다. 이런 식으로 나를 둘러싸고 있는 나의 것, 이런 것들이 쭉- 제거되고 나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남는 것 같더라구요.
그게 독후감에도 올렸듯이 예수의 영성이고, 석가의 불성이고, 노자의 덕성이고, 공자의 인성이고, 천이라고 하기도 하고, 생명, 태을 이런 것 같더라구요. ‘태을도인의 노래’ 그 책, 시집이죠. 거기 ‘벌거숭이의 독백’이 나오던데, 나와 관련된 것 모두 하나하나 떼고 나면 정말 벌거숭이가 되고 우주에서 아주 미약한 존재고 정말 불쌍한 존재고 그렇지만 그 속에는 천이 있고 생명이 있고 해서 정말 사랑스런 존재인 자기, 나가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런 식으로 쭉 읽다 보니까 이것저것 걸리던 것들이 많이 떠오르더라구요. 상대에 대해서 조그마한 것이라도 불편한 생각이 든다면, 내가 아직 객관화가 안 되어서 내 자의식이 남아 있어서 상대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하는구나 반성하면 될 거 같더라구요.
그리고, 그것 말고도 이것저것 많이 떠오르는데, 그리고 나와 태을도 관계에서 볼 때 태을도가 뭐가 다를까 궁구를 해 봤습니다.
해봤더니 대학에 나오는 얘기, 사랑을 하라, 독기와 살기를 풀어라, 태을주, 상제님, 수부님. 태을도가 독창적으로 얘기하는 건 거의 없더라구요. 상제님을 얘기하는 단체도 많고 수부님을 얘기하는 단체도 있고, 그 다음에 사랑을 하라고 얘기하는 것도... 태을도만 그 얘기 하는 게 아니거든요. 어떻게 보면 거의 99.99% 이상이 정말 세상 속에 다 있는, 세상이 굴러가는 평범한 것들을, 그렇지만 진실에 부합한다고 하는 것들을 다 얘기하고 있는 것이고.
그래서 뭐가 독창적일까 계속 부정하고 부정해 보니까 태을천상원군님의 존재와 상제님 수부님을 닮아가는 심법 내지는 태을을 찾는 것이, 상제님 수부님을 통해서 전수되고 흘러야 되고, 거기에 따라서 경위가 서고 가정도 서고 국가가 만들어지고 이런 것들을 얘기하는 것은, 제가 아직 보고들은 게 적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태을도 밖에 없는 것 같더라구요.
그거 하나. 그러면서 천지 부모님과 나의 관계에서 상제님 수부님 말씀하시는 대로 당위성을 지켜야 되는 건지 아직 잘 모르지만 그렇게 하라고 하시니까 하는 그런 것도 일부 있는 것 같구요, 제게는. 근데 좀 많이 생각하게 된 것은 용봉서신에도 나오더라구요, 선천 상극세상이다 보니까 자기 허물이나 죄를 계속 뉘우치고, 죄가 없더라도 있는 듯이 하라는 말씀을 곰곰이 생각해 보니까, 내가 잘했건 잘못했건을 떠나 내가 이 자리에 앉아서 존재하는 것 자체를 꺼려하고 싫어하고 불만을 가지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겠더라구요.
내가 상대방한테 뭘 해꼬지를 한다고 해서 원한과 척이 생기는 것도 있겠지만, 아무 하는 것 없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누군가가 나를 싫어하고 보기싫다고 할 수도 있는 거고. 내가 존재하는 것 자체로도 상대가 그런 마음을 가졌다면, 그것 또한 100%는 아니지만 내가 또 뉘우치고 반성해야 될 부분이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여튼 생각이 이것저것 많아가지고. ㅎㅎ
종장님:
정리를 잘해 주셨는데, 책이라는 게, 말과 글이라는 게 어떻게 보면 마음의 각주거든요. 논문을 쓰려면 각주를 쓰잖아요. 말과 글이라는 게 각주에요, 각주. 풀어내는 거지. 이제 그 풀어낸 각주를 통해서 그 사람의 마음과 우리가 간접적으로 대화를 하는 거죠. 근데 여긴 우리가 직접 만났으니까 직접적인 대화지. 말을 한다고 하는 건 각자 마음의 각주를 얘기하는 거예요. 여기 최00도인이 얘기하는 건 최00도인이 생각한 것을 각주를 단 거라.
다음 류00 도인.
류00도인 :
참았다가 한 번에 터트리시는 거 같은데요. 형님이 아까 말씀하셨던 부분에 저도 말하려는 게 있었는데, 형님이 지난 번에 저희들끼리 모였을 때 딱 물어보시더라구요. “너는 누구냐.” 술자리에서. 저 류00 입니다. 그러니까 “그건 너의 이름이고.” 그래서 아까 그런 말씀하셨잖아요. 그때도 본인이 나라는 것에 대해 많이 생각하셨을 거 같고, 종장님도 천지부모님과 나와 태을도에 대해서 말씀을 하셨잖아요.
그래서 저도 생각을 해보니까, 그 태을도인의 길 독후감을 쓰시라고 하셔서, 책을 읽어 보기도 했지만, 머리말에 정수와 액기스를 담아서 쓰실 거 아니에요. 그래서 머리말을 다시 한 번 읽어봤는데, 이 우주가 있고 이 우주의 율려소리와 맥박소리가 천지를 창조하고 이어나가고 있는데, 우리는 인간으로서 이 우주의 한 존재라면 이 우주의 소리를 들어야 되고 들숨과 날숨으로 그것을 호흡을 해야 되는데, 그걸 모르고 지냈지만 상제님이 오셔서 그게 소울음 소리요 태을주 소리라는 걸 알려 주셨고, 저희한테 주셨고 우리도 우주의 정기를 받아서 생활하려면 태을주를 읽어야 되고 태을주를 읽음으로써 우리가 태을도인이 되는 거잖아요.
태을도인이 가야 할 길이 세 가지가 있는데 태을천상원군의 길과, 법사의 길과 성사의 길이 있다 큰 흐름을 정리해 주셨더라구요. 물론 디테일한 건 책에 들어가면 자세하게 성구말씀과 그런 게 있겠지만, 큰 그림을 잡을 때 머리말을 읽으니까 간결하게 머리에 와 닿구요.
제가 3월달에 여기에 입도한 다음에 길고도 짧을 수 있는 시간이지만 지금 주신 주제나 나와 개인적인 마음과 이런 것도 있지만 저희는 실제 현실적인 생활을 하고 있잖아요. 60억개의 마음이 지구위에 존재하고 있잖아요. 그 사람들과 마음을 열고 말과 행동으로 교류를 하고 있는데 그 속에서 나를 드러내고 태을도를 드러내고 태을을 드러내야 되잖아요. 그 분들이 이쪽으로 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줘야 되는데 그런 거에 대해서 저는 더 많이 생각을 하게 됐어요.
포교라고 해야 되나요. 그런 것일 수도 있지만, 우리가 먼저 나가서 상제님과 태을도를 얘기하기 전에 ‘아~ 00가 점점 달라지는 거 같은데, 좋아지는 거 같은데’, 우리 속된 말로, 남자들끼리 얘기로, 얘가 약 먹었나 이럴 수 있잖아요. ‘얘가 뭔데 달라졌을까? 왜 그러지? 쟤가 뭐 좋아진거 같다, 표현도 좋아지고.’ 아니면 체형도 좋아지고 말하는 것도 달라지고 행동하는 것도 달라졌다 하면 다들 스스로 되게 궁금해 할 거 같애요.
그리고 옛날과 달리 통신기술도 발달하고 해서 우리 상제님이나 이런 것에 대해서도 딱 치면 다 나오고 어떤 단체가 있고 이런 것도 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데, 스테레오타입이라고 그러잖아요, 고정관념. 사람들이 한번 고정관념을 가지게 되면 그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서는 진짜 90% 확정돼서 뇌속에 있기 때문에 900%의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더라구요. 근데 지금 우리가 먼저 몸담고 활동했던 000나 다른 단체에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생각하는 우리 상제님이나 그런 분들에 대해서 스테레오타입이 되게 강한 거 같더라구요. 저희는 그런 걸 뛰어 넘어야 되잖아요. 요즘 전 그런 걸 생각해 봤습니다. 말이 좀 길었습니다. ㅎㅎ
종장님:
중요한 건 뭐냐 하면, 과학기술이 발달되면서 지식적인 말들은 다 유통이 되어 있어요. 글 쓰는 사람들 편하게 되어 있죠. 옛날엔 하나하나 읽어서 기억을 하던가 메모를 하던가 해야 되는데, 메모를 다 해주니까, 상제님 성구도 이젠 딱 치면 딱 나오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그것을 사람의 몸뚱이로서 인간적으로 증명해 내는 그런 것이 약해요. 그리니까 인성이 약해졌다고 할까. 메모리 기능은 많아졌는데 실제로 이 몸으로 , 공부도 한문으로 ‘工夫’잖아요.
몸으로 하는 게 공부거든요. 후천은 뭘로 여느냐, 내 몸으로 여는 거거든요, 몸으로. 체화가 되어야 한다고. 상제님 말씀 들으면 그걸 가지고 내 몸부터, 가정부터, 직장부터, 이렇게 변모해 가야 하는데 지적인 유희에서 끝나버리고 마니까 위선자가 되어버리는 거지. 현대사회일 수록 위선자, 가면을 쓴 얼굴들이 많거든. 상제님이 그렇게 하지 말라는 거거든.
상극세상이라는 건 가면을 쓴 얼굴형세로도 큰 지장이 없는 세상이었어요. 근데 후천세상이라는 건 가면을 벗으라는 거거든. 이제 상제님이 오셔서 100년이 지났는데, 그 기간에 정말로 필요했던 건 뭔가 하면 상제님같이 현실 속에서 실천해내는, 몸으로 증명해내는 사람들이, 세상사람들이 인정하는 그런 사람들이 드물었다는 거예요.
아까 얘기했듯이 김수환 추기경, 법정스님, 바오로 2세, 그런 사람들은 몸으로 낮아져서 몸으로 보여줬기 때문에 감동이 오는 거잖아요. 인간극장을 보면 왜 감동이 오냐, 몸으로 실천해 냈기 때문에, 어려움 속에서 가족부양하고 어렵게 야간대학 다니고 어렵게 고시합격하고 뭘 발명하고. 몸으로 그걸 해냈거든.
상제님 신앙하는데 잘못하면 관념의 노예가 된다니까요, 종통을 딱 만들어가지고. 내가 이제 ‘천지부모님과 나 태을도‘라고 얘기한 건 방점은 뭐냐 하면 내가 어떻게 천지부모님의 입장을 대변하고 내가 어떻게 태을도를 이화시켜 나갈 것인지, 이 몸으로. 얼마만큼 내가 변화가 됐는지, 태을도를 만나서 변화하려고 하는 몸짓이 있었는지 그런 걸 느낀 게 있었는지 그걸 얘기해 보라는 거죠. 어떻게 좀 많이 변화가 됐어요 ?
정00 도인 :
변화가 됐다고 생각을 하는 데요 정도는 아직 약한 것 같구요. 저는 대학교때 써클에 들어가서 ‘이것이 개벽이다’라는 책을 접했는데 그 앞에 왜 태어났는가에 대한 해답을 그 책에서 못 구했어요. 계속 그런 생각은 갖고 있었는데 졸업하고 사회생활하면서 잊고 있다가, 당뇨가 있어서 ‘절 체조’를 하면 좋다고 해서 ‘절 체조’를 하면서 첨엔 숫자를 세다가 저한테 부족한 것을 내용을 써봤어요. 그 내용이 점차 바뀌다가 정립이 됐어요.
우선은 이번 생에 제 영혼을 크게 진화시키고 다른 사람에게 큰 도움을 줄 수 있는 삶을 살려는 거거든요. 그리고 그 다음 기도가 이번 생에 제가 태어난 목적을 깨닫게 해달라는 것이고 못 깨닫더라도 그 길로 인도해 달라고 기도를 드렸는데, 그 기도가 정립되고 얼마 안 돼서 여기 오게 되었어요. 그래서 여기로 인도해 주셨나보다 생각을 했는데, 자기 합리화일 수도 있지만,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말씀 들으면서, 주신 책들을 읽어 보면서, 제가 아직까지도 좀 안타까운 것은, 마음을 닦으라고 하는데 마음 닦는 법을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리고 기도중에 다른 사람에게 큰 도움을 주고 싶은데 어떻게 줘야 되는 건지, 영혼을 진화시켜야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하는 건지 그 방법을 모르겠더라구요. 태을도에서 얘기하는 천하사라든지 그런 것들을 저는 매치를 시키고 싶지는 않았구요. 저는 그것을 연구해 가는 과정인 거 같구요.
저는 정말 마음 닦는 법을 알고 싶고, 예전에는 주문을 외워도 그냥 외웠는데, 그 주문의 뜻을 모르고 그냥 외우고 있더라구요. 그래서 요즘은 주문이 의미하는 바가 뭔지를 인터넷 찾고 하면서, 그 주문이 나에게 그 길을 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는 단계입니다. 이상입니다.
종장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말이, 가장 아름답고, 부드럽고, 다정다감하고, 생명력을 주는 말이 엄마라는 말이에요, 엄마. “엄마” 라고 말하면 다들 어떤 느낌이 있잖아요. 말이라고 하는 거는 정신이 있어요. 거기에 기운이 들어가 있고 신명이 응기해 있고. 가장 신령스럽고 가장 고귀하고 생명이 넘치는 것이 상제님 말씀에 의하면 시천주와 태을주라는 거예요.
시천주는 천주님과 하나가 되는 거잖아요. 태을주는 태을과 하나가 되는 거잖아요. 상제님과 하나가 되면 상제님 마음하고 이심전심이 되잖아요. 또 태을주를 통해 태을과 하나가 되면 생명력이 넘쳐 난다고. 상제님께서 스님들같이 화두 트는 법을 가르쳐 준 게 없다고. ‘오는 잠 자고 태을주를 많이 읽으라.’ 시천주를 통해서 속육임을 정하는 공사도 보시고. 그러니까 엄마를 부르면 엄마 생각이 나고 추억도 떠오르고 기운도 받잖아요. 그렇듯이 시천주 태을주를 이렇게 읽으면 그 마음도 느껴지고 기운도 느껴지고 신명도 응하고. 마음을 열고서 열린 마음으로 시천주 태을주를 읽으면 마음이 열려감을 느껴요. 시천, 하느님을 모시고, 태을, 태을이라는 건 끊임없이 변해가는 생명력을 얘기하는 거거든요.
그래서 시천주 봉태을의 인간이다. 중요한건 뭐냐 하면 마음을 비워가면서 시천주 태을주 수행을 열심히 하면 내 스스로 중심이 잡혀요. 우주의 중심을 주재하는 상제님이 계시니까. 그리고 그 태을이 나에게 들어오고. 그래서 주문수행하는 게 굉장히 중요해요. 그렇게 하면 마음이 자동적으로 닦여요. 무슨 선입관 갖지 말고 시천주 태을주 열심히 읽으면 그 속에서. 그렇지 않아요 교정님? 안 그래요, 전에 교정하실 때?
강00 도인 :
한 4년정도 된 거 같은데, 까페에 진실을 찾는 사람들이란 곳이 있었는데, 나름 까페에 좋은 글들을 많이 올려 놨더라구요. 그래서 한번 모임이 있어서 참석을 했는데 그날 타로점을 치는 강사가 왔어요. “타로점을 쳐볼래?” 그래서 얼른 손을 들어서 타로점을 쳤어요. 처음 뽑았을 때 좋은 점괘가 나오는 사람만 타로점을 쳐주겠다 그랬어요. 제가 뽑았는데 좋은 게 나왔어요. 그래서 내 인생이 피는가보다 (생각했지요.) 그 다음장을 뽑았는데 그 사람 하는 얘기가 당신은 전생에 돈하고 관계된 안 좋은 일이 있었는데 이생에 환생해서 이생에서 돈을 갚음으로써 전생에 잘못된 것이 갚아진다 이렇게 얘길 하더라구요.
그런 얘길 듣고 나서 그야말로 살림이 많이 궁핍해졌죠. 그렇다고 밥을 굶는 건 아닌데. 저는 큰 스승님 두 분을 모시고 살아요. 우리 와이프하고 딸래미. 근데 사실은 그 사람들이 하는 얘기들이 상당히 잔소리 이런 것들이 그전에는 반발심이 들고 울화통이 터지고 했었는데 어느 날인가 보니까 나를 굉장히 단련시켜주더라구요. 그리고 타로점괘가 맞았는지 모르겠지만 그나마 재산이 많지도 않았지만 다 없어지고. 그리고 나서 태을도를 만나게 된 계기가 온 건데.
지금에 와서 생각하면 그래요. 상제님께서 태모님께서, 제가 잘나진 않았지만, 인간적으로 꼴갑을 떠는 사람이면 상제님을 못 만났을 거에요. 저도 여기 계신 분들도 마찬가지지만, 자기 자존심이라는 게 있잖아요. 오십이 넘어가면서 내가 가진 힘 권력 명예 이런 게 있으면 설령 내가 잘못한 게 있어도 잘못했다고 인정 안하거든요.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다보니까 ‘아, 상제님 태모님’, 결국은 이것도 제 위안인지는 모르겠지만 상제님 태모님 좇는 이 길에 들어선 것 자체가 결국은 제가, 제가 머리가 나쁜 거 같애요, 기억을 잊어먹고 있다가, 딸래미를 데리고 와서야, 기억이 났던 거죠.
제가 우리 집사람이 임신했을 때 제가 우리 딸은 제발 상제님 일을 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던 것들이 이제 새록새록 기억이 나는 거예요. 그리고 저는 항상 제 마음의 중심을 상제님 태모님의 그 마음으로 향해야지, 내가 인간의 마음을 보고 따라가면 언제든지 꼭 실패하더라구요. 근데 상제님 태모님이 (직접) 말씀 안해주시니까 종장님 종부님이 이렇게 얘기해 주시잖아요.
아까 “마음을 열어라. 열어야 녹줄도, 생명도, 복록, 성경신, 상제님이 다 갖고 계시는데 내 마음이 열리지 않아서 못 받아들이는 거다.” 아까 그 말씀하시는데 마음에 와 닿더라구요. 역시 상제님 태모님께서 우리 인간들의 열린 마음, 제가 열리진 않았지만, 열려고 하는 마음, 어느 순간엔가 마음이 편해지고, 큰 스승 두 분을 모시고 사니까 그 사람들이 저한테 깨우쳐주시는 게 상당히 많은 거 같애요.
결론적으로 저번 주에 O변호사님하고 종장님 종부님 이렇게 오셨다 가셨는데 그날 집사람이 어떻게 보면 저한테 안했던 얘기까지 다 끄집어내서 했거든요, 그러니까 종부님이 종장님의 인간적인 부분을 그날 얘기를 하셨어요. 저는 이해를 해요. 종장님은 인간적으로 어떻게 참고 넘어갔을까. 나는 왜 못 참을까? 며칠 전에 또 저한테 얘길 해요. 집사람도 울고 저도 울고. 그리고 느끼는 게 아 종장님도 인간적으로 그걸 다 받아주셨을 텐데 그 생각이 퍼뜩 들더라구요. 그래서 그날은 이랬어요. “그래 내가 미안하다. 내가 잘못했다.” 그 말 밖에 안 나오더라구요.
그래도 한 가지 마음이 편한 건 제 뒤에는 상제님과 태모님이 계시다는 거. 제가 머리가 나빠서 평상시에는 잘 못깨우치고, 꼭 올 때만 깨우치고 간다는 게 안타까운데, 그래도 제가 이생에, 후천이 오든 뭐든 이제는 큰 관심은 없어요, 사실은. 단지 상제님 태모님을 만났다는 거 그거에 대해서 너무 행복하고, 제가 집사람하고 딸래미한테 이런 얘길 했어요. 000신앙할 때는 제가 00도장 있을 때 가장 먼저 육임을 짰었어요.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가장 먼저 포교하고 입도시킬 사람은 와이프하고 딸래미인거 같애요. 어제 집사람하고 딸래미한데 이 말을 했거든요.
오늘 아침에 나오는데, 평상시 같으면 “응, 갔다 와.” 그러는데 오늘은 “잘 갔다 와.” 부드럽게. 역시 상제님 태모님의 기운이 뻗친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제 마음도 집사람하고 딸래미도 하루 속히 입도식을 했으면 좋겠고. 기본을 한 다음에는 저도 자신있게 “나 태을도를 한다.” 지금까지 그랬고 과거에도 그랬지만, 제가 종장님 종부님에 대한 반감이 좀 있었잖아요. 근데 그게 하루하루 무너지는 거 같애요. 하여간 상제님 태모님한테 감사드리고 우리 두 분한테도 감사드리고 송도인님에게도 고맙고 윤도인님에게도 고맙고. 이렇게 고맙다는 생각이 자꾸 들어요. 이전에는 내 자신이 잘난 맛에 살고 ‘내가 사업해서 돈 번 거지 누가 도와준 거 아니다’는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고맙다 감사하다’ 그거 하나만큼은 확실히 알아지는 거 같습니다.
종장님:
굉장히 낯이 붉어지는데 더 열심히 노력할게요. 세상이란 건 내가 희망을 꺼내 보이면 상대방도 희망을 꺼내 보이거든요. 꽃이 핀 데 가서 꽃에다 침뱉는 사람 없잖아요. 독일에서 유태인학살때, 아우슈비치 수용소에서, 다 죽는데, 맨먼저 죽이는 사람이 자기가 자기를 포기한 사람. 수염도 안 깎고 머리도 안 깎고, 죽을 거니까. 그런 사람들을 먼저 골라서 죽였다는 거 아니에요. 근데 거기서도 유리를 갈아서 면도하고 깨끗이 한 사람들은 안 죽였다는 거예요. 순번이 자꾸 늦어진 거지. (유태인학살에서) 살아난 사람은 그렇게 살아났어요. 맨 마지막(으로 순번이 밀리는 바람)에. 존엄은 내가 가꾸는 거라니까요.
내가 나를 잘 위해야지 다른 사람이 나를 위해요. 내가 나를 희망있는 사람으로 얘기해야 다른 사람이 나를 희망있게 보지, 내가 나를 별 볼 일없는 사람, 희망없는 사람, ‘나는 가망이 없어, 에이 내가 뭘해’, 이러면 신이 떠난다니까. 상제님이 그러시잖아요. ‘나같이 졸한 자가 무슨 일을 하겠느냐’ 그러면 신명들이 떠난다는 거 아니에요. 상제님 고수부님한테는 ‘니들도 나하고 똑같은 사람이니까, 그 희망을 전하라.’는 거예요. 얼굴에 희망이 나타나는 거 같애요. 여기 희망가지고 OO에서 왔잖아요. 노래도 있잖아요. ‘꿈을 안고 왔단다 내가 왔단다.’ 그렇지 않아요?
김00 도인 :
네. 저는 최근에, 한 달 전쯤에 인터넷에서 전주MBC에서 방영했던 ‘이제는 상생이다’ 특집 다큐멘터리를 봤어요. 다시 봤는데 깜짝 놀랬어요. 너무 잘 만들어졌더라구요. 물론 00000 있을 때 교육을 받았었어요. 여러 번 보기는 했는데, 상제님 안 지 10년 지난 상태에서 그 동영상을 봤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정말 PD가 보통이 아니구나.’ 기승전결이 너무 잘되어 있더라구요.
그거 보고는 너무 깜짝 놀랐어요. 어떻게 그 핵심만 탁탁. 그 동영상을 많이 봤어요. 보면서 많은 걸 배웠습니다. 상제님께 어떤 여자가 물을 가져다 주니까 상제님께서 ‘잘 먹었습니다.’ 하면서 높임말을 쓰시고, 제자가 ‘저희 집 종이옵니다. 말씀 낮추십시오.’ 하니까 ‘그대의 종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겠느뇨.’ 하시는 걸 보고, 정말 PD를 칭찬해주고 싶더라구요.
그리고 저는 원래 예수를 믿었었는데, 정말 열심히 믿었어요. 말을 좀 심하게 하면 칼을 목에 대고 죽겠냐 살겠냐 해도 난 예수를 선택하겠다는 정도의 믿음을 가진 입장에서 상제님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죠. 진짜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순간이었던 거 같애요.
근데 아마 상제님을 선택한 기준 중의 하나가 상제님에게서 어떤 진실한 마음을 느꼈어요. 성경에도 보면 예수의 그 마음이 있거든요. 제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이나 하신 말씀이나. 그걸 똑같이 상제님한테 느꼈어요. 그러니까 상제님 정도의 능력이라면 충분히 천지공사하실 때 부유하게, 품위유지하시면서, 가족도 챙겨가면서 하실 수 있을 텐데, 본인의 가정 자식들 다 죽고, 아버님도 궁핍하게 사시고 하는 것 보면서 그 마음을 느꼈던 거 같애요. ‘아, 이 분은 정말 진실한 분이시구나.’ 상제님만 보고 믿었던 거 같애요, 아마. 그래서 상제님을 믿지 않았나. 그래서 예수가 펼쳤던 마음하고 상제님 마음하고 똑같이 느꼈어요. 상제님 믿게 되었고 그 이후에 ‘이 분이면 충분히 허령은 아니겠구나.’ 그 하나만 잡고 왔어요.
그리고 태을도에 와서 가장 많은 변화가 수꾸지 수행을 하는데 수행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조금씩 깨달음을 느꼈는데 상제님이 왜 잘난 사람이 아닌 못난 사람이 내 일꾼이라 하셨는지 약간이나마 그 의미를 알 거 같애요. 예전 같으면 싸우는 동영상이나 이런 거 보면 웃고 그랬는데, 제일 재밌는 구경이 불구경 싸움구경이라는데, 예전엔 재밌고 웃고 했는데, 이제 마음을 바꿔야 한다 해서 그런 마음보다 안타깝다 그런 마음 가지려고 많이 노력하고 있습니다. 많이 부족하지만 앞으로 마음을 더 닦아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종장님:
우리가 도에 한 발짝 나간다고 하는 것은 마음이 한 발짝 열렸다는 거예요. 전후좌우 사방팔방으로 마음이 열렸기 때문에 내가 너그러워지는 거예요. 내가 열린 만큼 세상은 넓어진다니까요. 경계를 내가 넓혀가는 거예요, 누가 넓혀주는 게 아니고. 그런 단초를 안내를 해 주지만, 결국 내 마음이 닫히면 닫힌 만큼 그 닫힌 세계에서 사는 거고, 내가 열면 열린 만큼 열린 세계에서 사는 거예요.
상제님은 우주 삼계를 확 열어놨어요. 그 길을 열어놨으니까, 백척간두 진일보라고, 놓으라 이거에요. 마음을 확 열어라. 열면 세상이 너를 도와줄 것이다. 이 세상은 너를 도와주려는 사람이 많지 해치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왜냐하면 역사라고 하는 건 상극에서 상생으로 가잖아요. 물돌을 그렇게 파놨기 때문에 쉽게 말하면 도와주는 사람이 많게끔 역사의 물똘을 팠다는 거지, 쉽게 말하면. 그러니까 마음을 놓으면 된다는 거예요, 조마조마하지 말고. 열면 누군가는 도와준다는 거예요, 열은 만큼. 도와줄 사람이 도와주려고 마음이 안 열렸는데 나를 못 믿어주는데. (그래도) 턱 믿고 가면 역사의 순리에 따라 좋은 방향으로, 여기 부산 앞바다에서 깡통을 띄우면 일본 규슈까지도 간다잖아요, 운로를 그렇게 짜셨다고.
상제님 고수부님 믿으라고 하는 건 맹신하라는 게 아니고, 상극세상에서 상생세상으로 간다고 하는 걸 세상을 믿고 마음을 열면, 그런 인연을 만나서 그리로 간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김00도인이 예수한테 진실성을 발견해서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가, 또 상제님한테 진실성을 발견해서 상제님의 제자가 되었잖아요. 상제님도 진실하고, 예수도 진실하고 공자도 진실하고, 다 진실한 분이에요. 뭐에 진실했냐 첫째는 자기한테 진실했고, 역사에 진실했고, 이웃에 진실했어요. 진실하다고 하는 건 믿음을 주는 거라니까요. 믿음을 주지 않으면 절대 진실하지 않아요. 그래서 세상은 믿음을 주는 사람한테 세상사람들이 믿음을 준다니까요. 강00 도인 그렇지 않아요 ?
강00 도인:
독후감 쓸 때마다 의문이 들고 잘 모르는 것을 질문으로 같이 올리고 있는데요. 오늘 용봉서신 독후감 내용도, 실은 아까 정00도인이 제일 궁금하게 여겼던, 마음을 어떻게 해서 닦는 것인지 제일.. 저도 잘 모르겠고요, 그래서 아까 윤00 도인차를 타고 오면서 그런 내용을 얘기했거든요. 마음을 어떻게 닦아야 되냐 했더니 윤00도인이 한 시간정도 조용한 곳에서 조용히 수행을 하면 뭔가 마음을 들여다 볼수 있게 되고 뭔가 느껴지는 게 있을 것이다 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되는지 아직 잘 모르겠구요.
종장님:
그렇게 하면 객관화가 된다니까.
강00도인:
그래서 객관화를 시키면 저 자신을 좀더 자세히 보거나 볼 수 있으면 용봉서신 책에도 나와 있지만 자신을 찾고 자신의 내면과 대화를 하는 것이 증산상제님이 가르쳐주신 심법, 가르침의 기본이다 이렇게 쓰여져 있거든요.
예전에 대학교때 000를 알게 되었고, 그때 공부할 때에는 천지공사랄지 아니면 하늘에서 내려오신 인간하느님이랄지 왜 내려오셨는지 세상은 왜 이렇게 돌아가게 되었는지 이런 것들이 궁금하고 해서 그런 것들을 공부하게 되었는데, 태을도에 와서 바뀐 거랄지, 윤00도인이 제가 태을도 입도하기 일년반 전부터 ‘마음을 닦아야 된다’ 그런 말을 했던 거 같았는데 그렇지만 그때는 그런 생각을 잘하지 않았었고, 그전에 최00도인이랑 친구들이랑 얘기할 때도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객관화하고 마음을 닦고 마음이 하는 소리에 귀 기울여라 그런 얘기를 했지만 잘 몰랐었거든요.
그러다 최근에 말을 줄이고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하거나 어떤 일을 할 때 여유를 갖고 저 자신을 돌아보려고 하고 있는데, 그렇게 하는 방법이 도움이 되는 거 같기는 한데 아직도 많이 확신은 없습니다. 이게 제대로 저한테 마음의 소리를 들으려는 방법인지 그런 것들이 많이 확신이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고 그렇거든요. 자기 마음을 닦고 내면과 대화를 하고 그런 방편적인 것들에 대해 많이 배우고 싶습니다.
종장님:
김00 도인이 얘기했듯이 아무리 멀어도 여기 오면 거리가 가까운 거죠. 아무리 가까워도 여기 안 오면 거리가 먼 거죠, 마음의 거리가. 쓰는 용어를 가만히 들어보면 사람마다 그 쓰는 용어의 기본적인 스타일이 있어요. 예전에 (나 살던) 시골에서 보면 어떤 아줌마가 욕을 아주 잘해요. “썩을...” 뭐 이런 거는 기본이고 “...팔”자가 많이 들고. 하여튼. 자식들한테도 이야기하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이야기하고 . 그러다 보면 그 기운이 갈 거 아니에요. 나중에 시골 가보니까 그 집에 일찍 죽은 자식도 있고 이혼한 자식도 있고, 그렇게 자식이 잘 안되더라고.
상제님이 그런 얘기 하시잖아요. “니가 자식이 그렇게 되길 축수하니, 그렇게 되지 않겠냐.” 내가 쓰는 용어를, 마음이 닦였냐 안닦였냐는, 내가 쓰는 용어를 보면 알아요. 태을도를 만나서 내가 쓰는 용어가 많이 바뀌었느냐, 용서라는 말이 많이 나오느냐, 그것이 인위적으로 했든 모르고 했든 결과론적으로 용어 전체를 봤을 때 내가 사랑하고 용서라는 말을 많이하면 바뀌는 거라. 그게 한 달 두 달 석 달.
내가 증권회사를 두 군데 다녔는데 차트 담당을 했어요. 매일같이 그래프를, 요새는 컴퓨터 딱 치면 나오지만 옛날에는 모눈종이에다 그렸거든요, 분필로 해서, 방송 듣고. 증권회사 초창기 다닐 때. 모눈종이에다 이걸 그려보면 일 주일 되면 그래프가 나타나요. 한 달 되면 추세가 나타나거든. 사람도 하루하루는 잘 몰라요. 내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마음이 잘 닦였는지. 근데 스승이 보면, 그 옆에 지켜보는 사람이 보면, 저 같은 경우 이렇게 보면 보일 거 아니에요. 말을 시켜보잖아요. 돌아가면서 얘기하라 그러잖아요. 이 속에서 느끼는 게 있다고. 저 분은 대충 이런 과정을 거치겠구나.
그러니까 자기 말을 한번 살펴보라고. 인위적으로 했던, 모르고 했던, 그걸 이렇게 노트에 적어보면, 내가 오늘 가장 화났을 때 했던 말, 가장 친한 사람한테 해준 말, 이런 걸 한 달 정도 적어가다 보면, 말의 그래프가 나타나요, 전체적으로. 그러면 지난 달보다 내가 많이 여유로워졌구나 그런 걸 느낀다니까. 그게 연습이에요. 어떻게 보면. 소태산 같은 경우 그런 연습을 많이 시켰어요. 심법공부를 그렇게 시켰어요.
상제님이 얘기한 마음 닦기는 아까 얘기했지만 몸공부예요, 몸공부. 말과 글과 행동과. ‘천지부모님과 나와 태을도’라고 하는 건, 천지부모님을 만나고 태을도를 만나서 내가 얼마나 바뀌었냐, 바뀐 걸 느끼냐, 바뀌어지려고 하느냐. 이 얘길 서로간에 들어보는 거예요. 들어보면 이렇게 알잖아요. 옛날보다 많이 편해졌잖아요, 서로가. 그만큼 파장이 많이 비슷해졌다는 거예요. 그러시잖아요, 송00도인?
송00 도인:
제가 볼 때는 요즘 다들 태을도인이 되어가시는 거 같애요. 오늘 주제에 맞게 말씀을 드리자면, 지금 여러분들이 마음닦는 법이 다들 무엇인가 물어보시는데, 저번에 김00도인이 왔다가 그 말을 물어봤었고, 마음 닦는다는 건 어느 한 순간에 닦고 그런 건 아닌 거 같애요. 제가 나이가 많고 63세인데, 인생으로서 해볼 건 다 해봤고, 맹자의 가장 맞춤한 한 귀절이 있지 않습니까. ‘천장강대임어사인... 증익기소불능’ 저는 항상 그 글을 마음에 두고 있거든요. 항상 제 과정이 보면, 천지부모님과 나, 지금 각자가 모두 태어나고 싶어 태어난 게 아니고 지금 현세에 최소한 000나 태을도에 들어와 있는 사람들은 천지부모님이 다 사명을 주어 태어나게 했다고 확신을 하거든요.
그 마음을 닦게 하기 위해서 욕심도 부려보게 하고, 주색에 빠져보게도 하면서, 탐음진치를 끊게 하는 것이, 사종마를 끊게 하는 것이, 마음 닦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마음 닦는 게 하루아침에 주문을 열심히 읽었다고 해서, 근데 그게 건드려 보면 안 닦인 게 바로 나와요. 예를 들어 제 집사람같은 경우에도 마음을 자기가 알고 닦았다 그러지만 일부러 가끔가다가 화를 나게 만들거든요. 그러면 팍~ 하고 튀어나오는 게 있어요.
우리도 마찬가지에요. 물론 주문은 천지의 마음, 태을 천상원군님의 마음을 받아들이고 하는 것이지만 그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실천이 가장 중요한데, 하여튼 욕심과 이런 걸 버리게 하는 게 마음 닦는 거라고 보이는데, 어떻든 간에 저는 이미 그런 과정을 많이 겪지 않았나 싶어요. 어느 누구보다도 무수한 종교와 단체를 다 돌아다니면서 돈도 많이 날리고 막상 태을도에 와서는 여기서 써야 할 돈을 다 써버려서 이렇게 되어버렸는데, 현재 상제님과 고수부님의 자식으로서 태어나게 하신 것이 저분들의 계획이 있다 (믿고 있어요.)
저는 죽을 고비도 많이 넘겼어요. 그럴 때마다 희한하게 다치지도 않고 살고 이러는 거 보면 내가 뭔가 하늘의 일을 하기 위해 오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한때 연봉 일억육천까지 받은 적도 있지만, 지금은 어떨 땐 정말 차비도 없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도 상제님이 도와주시는지 어디서 돈이 생기게 돼요. 그러면서 태을도를, 종장님이 작년에 찾아오셔서 다시하게 되면서, 상제님을 다시 영접하고 태을도를 하면서, 종교들은 다 좋죠. 예수님도 성인이고. 하지만 가장 완벽한 것이 상제님인데, 태을도가 태을에 이르는 길이잖습니까. 문자 그대로. 이 태을도가 상제님 도가 가장 완벽한 도인데, ‘우리 태을도가 상제님의 진리를 가장 정확하게 가르치고 실천하는 데다.’ 이런 걸 제가 확신하구요. 누구한테도 자신있게 얘기할 수 있구요.
제 인생으로 볼 때는 천지부모님이 저를 태어나게 해서 태을과 하나가 되도록 태을도에 들어오도록 만드는 모든 것이 하나의 일련의 과정이었던 거 같애요. 그래서 갈 수록, 지금은 몇 명 안되지만, 작년에 비하면 많이 늘었지 않습니까. 또 하나하나의 면면을 보면 일당백할 사람들이고. 그래서 확실히 저는 최근에 000에 일어나는 일들을 보면, ‘우리 상제님 일은 태을도를 통해서 된다’ 이걸 확신하고 있습니다.
종장님:
상제님이 원하는 인간상은, 실수를 해도 너무 자책할 필요가 없다는 거예요. 똥오줌 안 묻은 알곡이 어디 있겠어요. 중요한 건 뭐냐 하면 상제님도 부인한테 절해가면서, 어린 시절에 먹장난해서 친구가 하나 죽었잖아요. 그걸 보면 상제님이 얼마나 장난을 잘 쳤으면 그 친구가 열 받아 죽었겠어요, 어린 마음에. 그런 걸 다 고백했거든요. 아우구스티누스의 고백론을 보면 자기가 사창가 갔던 이야기 이런 게 다 나오거든요.
지나온 길을 상제님을 만나서, 상제님이 그런 얘기 하잖아요. 천주교 같은 경우는 신부한테 고해성사하잖아요. 그러면 말로 하는 거니까 신부도 알잖아요. 참 그런 거 보면 상제님은 잘 헤아리셔. 다른 사람 들으면 이목이 있으니까 ‘심고하라’ 그러시잖아요. 심고해라. 우리 입장을 다 헤아려주셔서 ‘나한테 심고해라. 마음으로 일일이 다 고해라. 그러면 내가 진실로 고하면 다 사해준다.’ 참 기가 막힌 분이잖아요. ‘말하지 말고, 다른 사람 표나지 않게, 단둘이 앉아서 이렇게 하면 내가 다 사해주마.’
차경석성도가 상제님 모셔보니까 겁나잖아요. 그러니까 죄지은 게 다 아는 게, 머리가 쭈뼛하잖아요. 내가 어떻게 저런 분의 제자가 돼가지고 천벌 안 받으면 다행이지. 그러니까 항상 고민이 되는 거지. 항상 근심이 있으니까, “너 왜 근심을 하냐.” 그러니까 “제가 너무 죄를 지어서..” “너 지난번에 다 일일이 심고하라고 했는데 아직도 남겨 있냐?” 상제님 그러시잖아요. 상제님 고수부님은 자식들의 죄를 사해주러 오셨다구요. 그러니까 희망을 주고 사랑을 주고 죄를 들춰내지 말고, ‘죄를 자백해!’ 이런 게 아니고 ‘나한테 심고해라.’ 자기가 알잖아요. 양심은 알잖아요. 상제님은 양심을 떳떳하게 만들어주신다고요. 우리 교수님 그렇지 않아요?
김00 도인:
학교라는 것이 교육이라기보다는 취업위주로 기술적으로 다가가서... 옛날부터 통치자는 문사철을 배우고 다른 사람은 다 기술을 가르쳤죠. 기술자들은 시키는 대로 일하고, 어느 나라든 문사철, 글자를 배워서 사회의 법령을 알고, 지나온 역사를 알고, 생각을 해서 통치하는 사람들은 기술자가 아니었던 거 같애요.
지금 대학교 현상을 보면 다 취업을 하기 위한 역량, 스펙 쌓기, 다 이것만 얘기하고 정말 중요한 건 이 나라의 주인으로서 어떻게 생각하고, 이 나라가 옛날에 어떻게 지냈고, 그리고 지금 이 세계가 돌아가는 정보를 취합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한다, 이런 걸 전면에 내세운 게 많이 없는 거 같애요. 좀 드물고, 그러기 힘든 사회 구조가 되었죠. 그래서 학생들에게 교수들이 상당히 그런 얘기를 해 주고 싶은데 현실이 많이 바뀐.. 애들하고 대화할 때도 똑같애요.
저희가 태을도에 있으면서 매일매일 연습하는 거 같애요. 이렇게 이 자리에 안 오고 태을도를 안 만났을 때는, 물론 그 때도 제가 나쁜 사람은 아니었죠. 매일매일 살아왔던 방식대로 흘러 살아갔겠죠. 쭉 습관대로, 내가 배운 습관대로 살아갈 텐데요, 이렇게 태을도를 만나서 책을 읽어보고 상제님이 하신 생활방식을 보고 다른 분들을 보면서 24시간 중에 5분이든 10분이든 또는 다섯 번이든 열 번이든 이 횟수가 어땠을까 라고 생각하는 거, 예전에는 그런 거 없이 그때그때 반응했다면, 지금은 조금이라도 순간적으로 태을도인이라면 증산상제님이라면 이때 어떻게 해야 되는가를 좀 더 의식적으로 생각해보는 시간이 늘어나는 거 같애요. 그런 시간이 좀 많아지며는 무의식적으로 예전 습관대로 하지 않고 좀더 의식적으로 나아질 거 같고 좀더 오래되면 무의식적으로 상제님이나 태을도에서 말하는 그런 식으로 생활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지금은 가는 도중이라고 생각합니다.
종장님:
우리 교수님께 박수 한 번 칩시다. 상제님 그러시잖아요. ‘세상을 악한 세상이라 욕하지 말아라. 너희가 선한 즉 선한 세상이요, 너희가 악한 즉 악한 세상이다.’ 당신이 상극에서 상생으로 가는 물똘을 파 놨는데, 니들이 너를 믿으면, 니들이 남을 믿으면, 상생으로 가게 되어있다 이거예요, 이 세상은. 그렇게 틀을 딱 짜놨으니까 믿으라 이거예요. 너를 믿고 이웃을 믿고, 그러면 마음이 여유로워지고 너그러워지잖아요.
상제님 오죽했으면 그러잖아요. 너희들은 아무리 죽고 싶어도 못 죽는다 이거예요, 내가 놓아주지 않으면. 아까 우리 송도인 말씀하셨지만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내놓고 할 일이 있기 때문에 도문에 들어온 거죠, 어떻게 보면. 그러니까 니들이 세상을 안 믿으면 누가 믿고, 니들이 너를 안 믿으면 누가 믿고, 니들이 니 이웃을 안 믿으면 누가 믿겠냐. 너희들로부터 믿음이 시작되고 너희들로부터 사랑이 시작되고 너희들로부터 희망이 시작된다. 그거거든요. 너희들이 절망을 생산하지 말고 희망을 생산하고, 니들이 악의 씨를 뿌리지 말고 선의 씨를 뿌려라. 뭘로? 몸으로.
아까 김도인 그러잖아요. 상제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상제님이 다 보여주셨거든요. 술집에서, 길가면서, 여자들 대하는 거, 다 보여줬어요, 방안에 앉아서 말로 하신 게 아니고. 상제님이 그러잖아요. 제자가 “선생님 어떻게 대님차지 않고 다니십니까?” “야, 이놈아. 어떻게 대님차고 천지공사하러 다니냐, 바쁜세상에.” 다 몸으로 다 보여주셨어요. 실천을 보여주셨기 때문에 그대로 따라만 하면 돼요. 누가 진법이냐. 상제님을 따라하는 사람이 진법이죠. 진법난법 얘기할 게 없어요. 그렇지 않아요? 우리 방도인?
방00도인:
좋은 말씀 다 하셨고 다 나오셨는데요. 저는 주제가 ‘천지부모님과 나 그리고 태을도인’인데, 일단은 우리는 부모님의 도자들이니까 부모님의 심법을 먼저 닮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게 뭐냐. 종장님 말씀하셨지만, 부모님 마음이다, 어머니 마음이고. 우리가 추구하는 세상은 상생세상이지 상극세상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래서 어머니 마음으로 용서하고 기르고, 자식이 가야 할 길은 기본에 충실하면 된다는 거죠.
우리가 살아갈 길은 기본에 충실하면 그 기본이 뭔지에서 먼저 마음을 닦는 공부도 나오고 여러 가지가 나오는데. 기본이라는 것은 우리가 지금 추구하는 마음이란 자리는 상생시대가 오기 전까지 100% 완벽한 인간이 상제님 이하 나올 수가 없다고 봅니다. 배워가는 과정이고, 깨달아가는 과정이고, 채워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부모님 마음을 배우고 또 온 인류가 제 자식들을 사랑하듯이 지극한 선은 중심을 잡을 때 기본이 나오는데, 세상을 살아가면서 내가 희생과 봉사를 하며 살아가되 너무 치우치는 봉사도 안 되고, 너무 극을 가서도 안 된다는 거죠, 중심을 잡은 상태에서, 기본을 잡은 상태에서, 희생과 봉사를 하면서 상제님 진리를 추구할 때, 우리가 추구하는 상생의 세상으로 가고, 가족들도 본을 받고, 주위의 사람도 본을 받을 거란 생각을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모이고, 상제님은 어느 한 사람을 위해 오신 게 아니라 이 인류를 위해서 오셨거든요.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서. 저는 그런 생각을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죄가 많아서도 그렇고. 또 상제님 공부를 하다 보니까 제가 잘될 욕심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냥 한 사람이라도 더 살리고, 죽어가는 세상, 부모님이 그렇게 오셨으니까 내 가족 살고 내 주위분들 한 분 더 살 수 있다면 그것만 해도 난 행복한 거지, 후천가서 잘되고 도통받고 그 아무 것도 필요 없다는 겁니다. 그 자체가 내 주위사람 하나 더 살리면 후천가서 ‘당신 고맙습니다’ 손 잡아주고 진짜 가서 평생을 은인으로 생각할 거 아닙니까.
그럼 만나서 우리 형제들 만나서 술 한 잔 마시듯이 즐겁게 한 잔 마실 수 있고. 그 안온한 세상을 누릴 수 있다는 것 그 자체가 좋은 거지, 잘될 생각은 없고. 또 나도 가족들 포교나 다 할 수 있었던 게 기본에 충실해서 그렇거든요. 기본에 충실하지 않으면 부모님도 나를 안 믿고 내 동생들도 나를 믿고 따라오지도 않고 그런 부모님 마음으로서 내 가족 내 주위에 전한다면 그게 바로 부모님 마음이고 내가 태을도에 온 이유고 태을도가 많은 사람들 수용해서 가야 할 궁극적인 틀이라고 봅니다.
여기계신 분들은, 저는 항시 자동차에 비유를 많이 합니다만, 사람은 누구나 개개인의 장점들이 있습니다. 하나의 큰 단체가 움직여 하나의 큰 틀이 가기 위해서는 그 장점들을 모아서 그 모조품들을 폭폭폭 찍으면 좋겠지만, 모자라기 때문에 상극이고 모자라기 때문에 상생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고 그런 모자란 부분들을 형제들끼리 도와주면서 그런 역할들을 할 수 있는 형제들이 모여서 융화롭게 상생의 후천을 향해서 여기 모인 분들이 가는 게 부모님의 마음이고 내가 가야 할 길이고 종장님이 운전하시면서 가야 할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종장님:
우리 시골에 오랜만에 내려갔더니 어머니 산소 위에 김공장이 들어섰어요, 김공장이. 그 김공장 보니까 00김 이렇게 쓰여 있더라고. 이름이 똑같애요 00김. 00그룹이야. 00그룹에 (주)00. 일본하고 했는데 일본 쓰나미가 와서 김 많이 쌓아놓았는데 다 쓸려갔대요. 우리 윤00도인을 안 만났으면 그걸 봐도 00김이구나 그럴 건데, 우리 어머니 산소 바로위에 00이 딱 있더라고. 사람이란 게 아 인연이란 게 이렇구나. 몸으로 이렇게 만난다는 게 참 귀한 거예요. 00이라는 게 살아있잖아, 항상 시골 어머니한테 인사하러 가면 윤00 생각이. 그래서 사람이라는 게 가까운 인연일 수록 이렇게 00김도 보이고 자꾸 보이는 거구나.
우리가 이렇게 만난 거 자체는 사실 상제님 그러시잖아요. 마음이 합하여 있으면 반드시 만난다 그러잖아요. 유유상종이라. 천지부모님이 전부 끌어 모으려고 그러잖아요.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전부 후천 넘기려고. 그 얘기는 뭔가 하면 마음만 열면, 상극에서 상생으로 가는 길을 냈기 때문에 내가 마음을 닫아서 못가는 것이지, 마음만 열면 가는데 사람들이 안 열더라 이거여. 왜냐하면 닫힌 세상에서 살아왔기 때문에. 열어라 이거여. 안심하고 열어라. 무서워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근데 사람들이 안 열더라 이거여. 큰 거를 얻으려면 열어야 되는데, 소탐대실이라 그러잖아요. 안 열더라 이거에요. 무극세상이 도래하는데. 그러니까 그렇게 인연이 다가오더라 이거여. 00김. 항상 가면 00김 이렇게 있어요. 00윤하면 좋은데.
윤00 도인:
김은 삼부자김이 맛이 있더라구요. 저도 아들이 둘이라서 삼부자입니다. 삼부자인데.
둘째가 초등학교 1학년인데, 애들 키우다 보면 감탄하는 경우들이 있지 않습니까. 첨에 젖만 빨다가 커가면서 이런 얘기를 하고 할때. 얼마 전에 운전을 하다가 주차장에서 주차요금을 내느라 얘기를 하다가 제가 ‘예, 예’ 하면서 대답을 했는데 얘가 듣기에 제가 건성으로 대답하는 걸로 들렸나 봐요. 하는 얘기가 “아빠는 왜 얘기가 끝나기도 전에 말을 해?” 하면서 지적을 하더란 얘기죠. 그걸 보면서 감탄도 하고 내가 가르친 적도 없는데. 느낀 게 사람의 마음이란 게 그 자체로 그런 판단력을 갖고 있다 하는 걸 느끼게 됩니다.
오늘 마음 닦는다는 게 과연 뭐냐가 화두인거 같은데, 제가 이번에 49일 수행을 하면서, 00사이트 있지 않습니까, 수행을 하면서 느낌이 올 때는 종장님 글이든 용봉서신의 글을 쳐서 게시판에 올리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보편성있는 일반적인 얘기들, 주체적이고 증산종단의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통할 수 있는 얘기들로 올리다가, 반응이 좋더라구요. 이 사람들이 좀 알아 듣는구나 이제 깨어날 때가 되었구나 해서 조금씩 심도있는 얘기를 하다가, 어떻게 보면 000하고 00파하고의 싸움 아닙니까, 지금. 그래서 종장님이 싸움을 말리는 글도 쓰시고 하길래, 가급적 태을도의 색깔은 빼고, 싸우지 말라는 뉘앙스의 글을 올리니까 거부감을 가지더란 얘기죠.
보고 싶은거만 보고 듣고 싶은거만 듣는 거예요. 물론 단기적으로 자기네들이 뒤집어야 되니까 그런 목표를 하는 거다 보니까, 어차피 같은 이야기인데도 불구하고 자기네들이 듣고 싶은 대로 듣고, 보고 싶은 대로만 보는 거죠. 그걸 보면서 원인이 뭘까를 생각해 보면 자기가 자기 마음을 의심해보지 않고 들여다보지 않는다는 거죠. 자기에 대한 성찰이 없기 때문에 바른 판단을 할 수가 없는 거죠. 아무리 얘기해도 자기 판단에 오류가 있으면 먹히지 않는 거죠. 누구라도, 어떻게 보면 그렇게 될 수 있는 거지 않습니까. 그래서 마음 닦는다는 것도 어떻게 보면 사회현실에 있어서 하나의 판단에 있어서 자기 판단을 의심하고 되돌아보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죠.
아까 아들 얘기도 했지만 , 마음 닦는다는 것이, 내 마음에 많은 생각들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그걸 한번 계속 지켜보는 거죠. 내 마음의 순간순간 어떤 생각들이 일어나고 사라지고 또 어떤 생각이 일어나고 하는 것을 지켜보다 보면 내가 객관화가 되거든요. 나의 주관, 나의 자아가 투명해지는 효과가 있는 거거든요. 내 생각 자체를 내가 의심을 하기 때문에, 그리고 이런 생각들이 오고가는 걸 지켜보다 보면 이 생각들이 내가 하는 생각이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의 자아가 없어지는 겁니다.
결국은 뭔가 하면, 요즘 들어 정리가 된 게 뭔가 하면, 전에 종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마음을 안으로 갈무리하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그 때는 그렇게 흘려들었었는데 요즘 와서는 그게 이런 말씀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든 게, 자아,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 간단한 거지만, 내 마음 속에 나를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이 항상 존재하는 거거든요. 요거 하나가 있으면 거기서 모든 게 퍼져나가는 겁니다. 나를 드러내고자 하면 자존심을 세우게 되고 나를 포장하게 되고 꾸미게 되고, 듣는 사람은 불편해지고 척이 생기고, 그런 상극들이 어떻게 보면 단순하지만 내가 나를 드러내고자하는 마음 하나에서 모든 분란들의 씨가 되는 것이거든요. 그것 하나만 붙들고서 내가 말 한마디, 행동 하나를 할 때 이게 내가 자랑하려고 하는 말이냐 아는 척하려고 하는 말이냐, 아니면 상대에게 진정 도움이 되려고 이 말을 하느냐 그것만 하나 붙들고 실천해도 이렇게 갈 때와 반대로 갈 때의 내 마음이 느끼는 바가 천양지차로 달라진다는 것을 느낄 때가 많거든요.
용봉서신의 글들의 읽어 보면 참 많은 얘기들이 있거든요. 화해하고 온화하고 공근해야 하고, 상극을 짓지 말고... 이런 말은 수없이 많이 표현할 수 있지만, 근본자리에서는 사소한 거지만, 그 하나만 맥락만 붙들어도 납득이 되고 다 풀려나갈 수 있는 부분이 있는 거죠. 그래서 일단 제가 느낄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자기를 들여다 보는 거죠. 하루 한시간씩 수행하고 하면서 담담하게 깨어져 있는 상태에서 생각이 들면 어떤 생각이 들고, 이런 걸 지켜보다 보면 순간순간 그런 내 마음의 맥락들이 잡히는 게 있거든요 그런 과정에서 실천이 나오고.
중요한 건 뭔가 하면, 상제님이 말씀하신 건 너희들이 마음을 이렇게 써야 좋은 세상이 된다 하는 방향을 딱 잡아주신 거거든요. 인간이라는 게 그런 말씀이 없다면 살아감에 있어서 왜 그렇게 해야만 하느냐 왜 내가 손해보면서 이렇게 살아야만 하느냐, 필요성을 못 느끼겠죠. 어떻게 보면 우리 태을도인들이라는 사람들은 결국은 상제님이 일러주신 그 방향, 너희들이 마음만 그렇게 먹고 실천만 제대로 해라. 그러면 좋은 세상 된다. 그 길을 일러 주신거죠.
우리가 믿는 것은 그것이라는 거죠. 그걸 믿고 실천만 하면 우리가 당장은 손해를 보지만 이런 후천 세계를 열어가는 기둥들이 될 수 있다는 말씀 같구요. 종장님도 말씀하시지만 항상 마음을 잘 닦고, 자기를 그저 되돌아보면 되는 거 같애요. 내 마음을 객관화시키고, 자아를 비워가고 투명하게 되면 상대의 마음이 그냥 느껴지는 거거든요. 내 자아가 있으면 탁해져서 내 마음의 빛이 남을 비추질 못해 어두워진다는 느낌. 내가 자아가 없으면 상대에 대하는 게 있는 그대로 왜곡없이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더라구요.
말 한 마디만 들어도 마음을 이렇게 쓰는구나 이 사람은 마음자리가 이렇구나 이런 것들이 내가 자아를 비워가다 보면 번득번득 들어오는 그런 게 있더라구요. 그래서 할 일은 그저 마음을 돌이켜보면서 하루 한 시간이라도 자기 몸을 붙들어 매고 그 상태로 지속하다 보면, 어떻게 보면 그것도 사실은 내가 하는 게 아니죠, 나는 비웠을 뿐이고 내 의지에 감동해 누가 열어주든, 신이 들든. 상제님도 마음이라는 것은 신지로라고도 말씀하셨고. 생각이란 게 내가 만든 게 아니거든요. 내 의지라는 건 존재할 수 있겠지만. 그런 내 의지로써 내가 그런 상태를 유지하는 거죠. 내가 만들 수 있는 것은 의지로써 나의 상태를 투명하게 유지하고 그렇게 지속적으로 믿고 가다보면 누군가 열어준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되더라구요.
그렇게 실천을 하나씩 하시다 보면 그 과정에서 스스로 느끼는 감동들이 하나씩 있다 보면 자연히 도의 맛을 알게 되고 계속 지속할 수 있는 그런 추진력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입니다.
종장님:
역시 김은 00김이야. 용봉서신 보고 거기 어떤 아줌마한테서 전화가 왔어요. 대구 팔공산 밑에 산다는 거예요. 부처님 말씀을 참 잘 들었는데 근데 그 부처님이 어디 절에 있느냐고 해요. 그래서 ‘금산사에 있는데요’ 그랬지요. 그 용봉서신 책을 통해 부처님 말씀이라고 들었데요. 증산부처님이 있냐고 물어보더라고. 금산사에 증산부처님을 모시는데 그분을 미륵부처님이라고 합니다. 그 책을 들고서 제 친구한테 갔어요. 포교하러 가려고. 그냥 만나러 가려고 했는데... 이 친구는 교회에 아주 골수예요, 연예부 기자 출신인데. 여름방학이 시작됐는데 책을 줬어요. 그랬더니 고맙게 잘 읽겠다고. 끝난 다음에 한 번 보자고 하더라고. 찾아갔더니, 증산에다 예수를 딱 바꾸니까 진짜 예수말씀처럼 들리더란 거예요. 그래서 여름방학을 정말 잘 보냈대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해줘서 너무 고맙다 그래요. ‘아, 그렇지. 예수님이 결국 하느님 말씀을 전했으니까.’ 사람들이 신앙을 하더라도 열려있으면 그걸 통해 나름대로 감동이 오는 모양이더라구요.
그 내 친구하고 팔공산 아줌마 얘길 들으면서 나도 옛날에 000 신앙을 하면서, 태을도 신앙을 하면서, 나도 나름대로 세상에 대한 벽이 있지 않은가 하는 반성을 굉장히 많이 했어요. 부처님 말씀으로 들렸다고 하는 데, 증산부처님이 어딨어요, 절에서는 증산부처님이 안 가르쳐주잖아요. 근데 그게 부처님 말씀으로 돼가지고 어느 절에 다니느냐고, 내 친구는 증산을 예수로 바꾸니까 너무나 말씀이 좋아서 은혜를 받았다고 하더라구요. 예수님이 자기한테 이 책을 통해서 자기한테 여름방학동안에 은혜를 줬다고 고맙다 그러더라구요. ‘아, 나도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세상 사람들한테. 내 얘기하기에 바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내가 열면 되거든요. 여기 나랑 태을도를 가장 많이 했어요. 유00도인이. 어떻게 보면 OOO의 미묘한 마음의 변화, 태을도를 하면서 모든 일을 다 지켜본 장본인이지, 어떻게 보면. 상제님한테 와서 살아있는 아카샤 기록자지.어떻게 보면. 기록자로서 한 말씀 해 보시죠.
유00도인:
저도 잘 모릅니다. ‘증산상제님과 나 그리고 태을도인’의 메시지를 받고서 무슨 얘길 해야 되냐 고민을 해 봤습니다. 나름대로. 옛날 얘기부터 할 수 밖에 없는데. 저는 원래 87년 5월달에 상제님 신앙을 시작했고, 그 전에는 종교가 없었거든요. 그전에 불경이라든가 성경을 한 번도 읽어본 적은 없었어요. 그 때 사회 상황에 대한 공부도 많이 하고 세상에 대해 고민도 많이 하면서, 그 때 제일 괴로웠던건, 내가 아는 상식과 양심과 현실이랑 봤을 때 이게 설명이 안되는 거에요. 굉장히 심한 갈등이 생기더라구요.
조계사에도 가서 절에도 머물러 보고 여러 가지 생각을 했었어요. 공부를 해 봐도 해결도 안 되고. 그 때 5월달에 000에서 윤0도인이란 분이 생각나는데, 오셔서 상제님 말씀을 선후천 문제하고 해원시대로 설명을 하더라구요. 그 때 정신이 번쩍 들어요. 나름 매력을 느낀 거예요, 상제님 신앙에 대해서. 상제님이 인간으로 오신 문제라든가 개벽이 있고 급살병이 있다는 첨 들어본 소식이 되겠죠.
그래서 개벽과 급살병에 대해서 최근까지도 고민을 했어요. 왜 이걸 죽여야 하나. 이거 어떡하나 이걸. 고민했었죠. 상제님 만나서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나름대로는 이 생명, 그 때는 생명의 목적을 잘 몰랐거든요. 그 때 생각이 이 종교는 죽을 때까지 나중에 생각하자 포기한 사람도 있죠. 왜? 기독교는 하느님 뜻이라고 하고, 불교는 인연설이라 그러는데 어떤 법칙에서 인연설이 지어지냐? 하느님의 뜻이라면 어떤 논리에서 하느님의 뜻이 결정되어지냐? 연필 굴려서 정하는 것 같진 않고. 제 생각은 그 때는 차별을 많이 느낀 거예요. 부모님 농사지어서 저를 가르치셨고, 우리는 분단국가고, 먹고사는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었고, 미국같은 강대국에 태어난 사람들, 대한민국에 태어난 사람, 아프리카에 태어난 사람, 그런 차별은 왜 생기냐? 이 생명에 대한 목적, 생명의 존재 이유, 생명의 흐름이랄까, 이런 걸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나름대로는 그 때 상제님 방법대로 하면 잘살 수 있는 사회가 되겠다. 그런 생각을 가졌어요. 절망에서 희망을 가진 거죠.
그 때도 풀리지 않은 거는 일단 그렇고, 000 나가면서도 크게 마음이 끌리지 않더라구요. 차고 냉냉하고. 그래서 결국은 크게는 희망을 얻었지만 그러다 91년도 결혼하고 안 나갔어요. 그러면서도 개벽이나 급살병은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나가려고 하다고 결국 못나가고 그러다가 98년도 5월달에 종장님이 태을도를 하자 그래서 같이 시작을 했는데 사실 처음에는 저도 태을도를 잘 몰랐죠. 그렇지만 상제님 신앙을 해야 되고 다시 한 번 해 보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차에 이렇게 오게 된거죠.
그때 상제님 신앙을 하면서 풀 수 없는 문제가 있었어요. 도대체가 상제님은 어떻게 인간으로서 사람의 마음을 알아보고 조화를 마음대로 할 수 있는지 그 근원이 뭐냐 그런걸 고민했었는데 그 고민을 태을도 와서 해결을 한 거예요. 도대체 상제님은 어떻게 해서 인간으로서 옥황상제가 되고 조화를 마음대로 쓰고 신명과 인간의 마음을 찔렀다 뺐다 하는 권능을 가졌느냐.
그 문제가 결국은 태을 천상원군의 문제라는 거죠. 태을도에서 얘기하는 태을 천상원군 문제. 그게 태을도 와서 배운 거고 깨달은 건데. 그런 태을 천상원군의 문제와 인간의 정확한 위상을 상제님이 알려 주셨잖아요. 이 두 가지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저는 태을 천상원군을 어떻게 보느냐 하면은, 상제님이 인간으로 와서 학교도 안 다녔지만 스스로 공부를 해서 도를 깨쳤어요. 그걸 무극대도라고 했단 말이에요. 그때는 그럼 도대체 무극대도는 뭐냐, 중통인의는 뭐냐. 상제님이 인간으로서 태을 천상원군이란 걸 알아서 합일이 된 거예요. 태을 천상원군하고 연결되면 그 마음을 훤히 볼수 있는 거거든요. 태을천상원군의 모든 생명의 마음이 다 연결되어 있다구요. 우리 마음까지 다. 태을천상원군을 깨달으면서 모든 사람을 훤히 다 보고 신명을 조화할 수 있는 조화권능까지 가진 거에요 사실은. 왜냐하면 태을천상원군의 모든 인간하고 신명의 생명줄이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래서 그렇게 무극대도를 터득하시고 그렇게 옥황상제로 올라가셔서 소위 천지공사를 통해서 법을 제정한 거죠. 상극에서 상생으로.
또 하나는 상제님이 말씀하신 우리 모든 사람이 태을을 가지고 있다는 거죠. 그것만 밝히면 너희들도 나같이 된다는 말씀을 하신 거 같고. 태을도가 기존 종교와 다른 거는 결국 이 태을주의 문제고 태을 천상원군의 문제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다른 건 사실 다 똑같애요. 마음닦는 거 불교에서 얘기하는 거고, 하느님은 기독교에 있는 거고, 결국 다른 건 태을 하나 아니냐. 태을 아니냐. 그 태을이 생명의 근원이고, 우리 자체도 마음속에 태을이 있기 때문에, 불교에서는 불성을 밝히라 했지만, 우리는 태을을 밝히라는 것이고 태을의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는 주문을 줬다구요. 숟가락을 줬다고요. 태을의 정기를 퍼먹을 수 있는 숟가락을 줬는데 그게 태을주인 거죠. 차별이 되는 거는 더 진일보한 이렇게 높은 수준의 도라는 건 결국 태을 천상원군 태을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구요.
상제님 진리에서. 우리가 태을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 우리 마음에 이미 시천의 마음이 있다는 거, 하느님의 마음이 있다는 거, 그러니까 내가 하느님을 모실 수 있다는 건 이미 하느님 마음이 있기 때문에 내가 하느님 마음을 믿어 삼켜서 결국 시천을, 하느님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이고, 이 내 마음속에 이미 시천이 있기 때문에 내 마음에 있는 시천을 드러내는 거라구요. 발전시키는 것. 그렇게 보거든요, 시천을. 결국 시천하게 되면 내 마음이 하느님처럼 닮아가는 거죠. 그래서 이미 시천을 가지고 있고 태을의 신성을 회복하라고 하신 거죠. 태을주를 주셨다 이거죠. 태을주를 가지고 마음 닦는데 목표가 상제님 마음처럼 되는 것. 그건 여러 가지 말로 표현되지만 시천의 품성을 회복하고 태을신성을 회복하면 상제님처럼 된다. 엄청난 희망이죠, 저한테는. 다 마찬가지겠지만. 모든 갈등과 모순과 죄에서 벗어나서 상제님처럼 되면 거기서 벗어 날수 있고 올바르게 갈 수 있으니까. 굉장히 희망이죠. 상제님 말씀대로 하면 다 될 거 같애요. 그대로 될 거 같애요.
상제님 말씀하신 게 결국 가까이는 급살병도 말씀하셨지만은 길게 보면 대동의 조화세계를 만드는 거거든요. 그래서 저도 상제님이 짜놓으신 방법대로 하면 된다 하는 희망을 가진 거예요. 저는 가장 강한 믿음으로 깨달음으로 와있는 거죠. 그래서 결국은 태을도에서 얘기하는 태을 천상원군하고 인간의 본래의 모습을 비쳐봤을 때, 마음 닦고 태을주 읽어서 그 두 가지를 밝혀내면 의통성업도 해낼 수 있고 더 나아가서 모든 사람이 한마음이 되는 다같이 잘사는 대동세계,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서 거기에 맞춰주는 거예요. 그러면 완전한 조화가 되는 거죠. 지금 불교에서 그런 비슷한 얘기를 하더라구요. 불교TV를 자주 보는데 거기서도 결국 하늘과 연결되면 모든 우주의 진리의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것이라고 하더라구요. 태을도에서 얘기하는 것과 비슷한 얘기거든요. 내 마음하고 태을하고 연결하면 태을천상원군이 가지고 있는 모든 진리를 다 활용할 수 있는 거예요. 그러면 그 진리를 가지고 조화를 시키면 무궁무진한 조화가 나오는 거죠. 가짓수가 엄청 많아지는 거죠.
나는 태을 천상원군 속에 우주의 역사가 다 들어있다고 보거든요. 생명을 조화할 수 있는 모든 진리가 다 들어있다고 봅니다. 제가 느낀 거는 마음 닦고 태을주 읽어서 시천의 품성을 회복하고 태을신성을 회복하면 심통하고, 심통한다는 거는 내 마음을 내가 찾은 거라 볼 수 있는 데요, 심통하면 내 마음에 직통하는 길을 찾을 수 있고, 심심지문을 찾으라고 말씀하셨고, 또 말씀하신 게 제가 저의 심통도 못하고 뭘 한다는가. 저는 이게 요즘 마음에 와서 꽂히는 데요, 그걸 해야 내가 비로소 내가 선천 오만 년동안 하고자 했던 일이 뭐고, 내 마음을 받아서 내 천명을 깨달아서 앞으로 진행될 사항에 대해서 내 역할을 하면 되는 거 아니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고요. 롱텀으로 볼 때는 태을 천상원군으로 원시반본해가지고 합일되어서 내 생명을 영원히 유지시키는 것 그것이라 생각합니다.
이 커다란 흐름 속에서 보면 저도 고민이 있는 거죠. 내가 현실적으로 이렇게 알고 있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느냐 그 부분에 대해 많이 고민하고 있습니다. 마음 닦고 태을주 읽는 것에 대해 일심으로 해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니 그런 부분을 고민하고 있는 거죠. 그래서 여러 가지로 고민도 많고 부족한 점도 많고 하지만, 좌우지간 이런 걸 한 번 이뤄보려고 상제님께서 태을도를 통해서, 종장님이 진법 얘기 하지 말라 그러시지만 또 어차피 생각을 해야 되니까, 진법은 도를 편 분의 마음을 그대로 이어받은 사람이 종통을 받은 사람이고 진법자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그 문제는. 결국은 상제님 진리가 태을도 속에서 본래의 모습이 드러났고 태을도화를 활짝 피우고자 하는데 거기에 동참을 해서 제 꿈도 이루고 하늘이 원하는 바도 이뤄서 다 같이 잘 사는 것, 차별없고 구별없는 세상을 만드는 게 제 꿈이구요, 고민은 그거를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거, 현실적으로 그게 고민이고.
여러 도인님들 말씀하신 게 저와 비슷한데 다른 쪽으로 많이 표현하신 거 같더라구요. 저는 항상 말씀하실 때 보면 제가 가지고 있는 의심이 딱 풀릴 때가 있어요. 어떤 말씀이시든간에요. 항상 고맙고 귀하게 생각을 하구요. 저도 종장님 내주신 숙제를 잘 못해요, 사실은. 하다가 못하고, 못 올리고, 그랬어요. 어떻게든 시간내에 올리려고 하는데, 그 과정에서 제가 배운 것도 있구요. 내가 무슨 문제가 있구나, 나름대로 정리하려면 생각도 해야 되고 논리도 세워야 되니까, 그 과정에서 새롭게 배운 것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진리를 주신 상제님, 태을도를 실제적으로 여신 종장님 종부님께 감사를 드리구요. 저도 부끄럽지 않은 도인이 되려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종장님:
명불허전이네요. 그죠. 옛날에 칡 있잖아요, 칡. 이게 엄청나게 커요. 큰 개(犬)정도? 큰 것은 그래요. 위에는 야리야리 보이는 것도 캐보면 크거든요. 확실히 관록이 있으신 거 같애요. 오늘 (입도하러 처음) 오셨는데 쭉 들어보시고서 태을도라는 게 이런 거구나 느꼈을 테니까 한 마디 하시고, 우리 종부님 정리하시고, 막걸리 한 잔하러 가야죠.
박00 도인:
쭉 말씀 들어보니까 제가 좀 너무 작아지고 또한 여기 입도한 게 정말 잘됐다고, 방도인한테 이 시간을 빌어서 고맙다고, 제가 좀 더 각성하고 해서 누가 안될 수 있는 도인이 되어야겠다. 진짜 마음 닦는 공부, 첨엔 마음을 닦는다 마음을 닦는다 무슨 얘긴지 모르는 부분이 많았는데 듣다 보니 쪼금 이해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래서 아, 제가 행동을 해야 되겠고 그에 뒤따르는 행동이 어떻게 진행이 되어야하는 지에 대한 그런 부분에 대해 착안을 하게 되고 정말 오늘 좋은 시간이 된 거 같습니다.
종장님:
이따 막걸리 맛이 아주 좋겠네요. 이제 종부님 정리하고 나갑시다.
종부님:
저기 제가 그 결혼하기 전에는 제가 굉장히 괜찮은 사람인줄 알았어요. 그래서 저는 결혼식 예복 맞출 때 그랬어요. 저 결혼하고 살찔 거니까 넉넉하게 해주세요 그랬어요. 그때 통통했거든요. 47킬로였는데, 넉넉하게 해주세요 그랬어요. 근데 거기서 딱 한 달 입어봤네. 그러고는 그때부터 마르기 시작하는 거예요. 아, 마르니까 가벼워져서 좋긴 한데, 사람이 겉으로 여유가 없어보이잖아요, 앙상해가지고. 사진보면 눈만 퀭해가지고. 근데 어느 날, 피곤하고 그런 일이 많았어요. 그 과정에서 언니랑 통화하면서 ‘너 왜 그렇게 많이 변했니. 결혼하고 사람이 너무 많이 달라졌다. 변했다’는 말에 너무 충격을 받았어요.
충격을 받았는데 그 때는 (죄송합니다) ‘이 인간을(남편을) 잘못만나서, 내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는데 내가 결혼해서 다 망가졌구나.’ 첨에는 되게 원망스러운 거예요. 이 인간이. 근데 생각을 해 보니 이 사람 때문에 이렇게 된 게 아니고 남탓이 아니고 내 속에, 내가 미처 몰랐던 내 인격의 한 요소, 제 바닥을 그 때 본 거예요. 바닥을 친 거지요, 그 때. 제가 그전에는 중학생 때도 외삼촌이 선거 있으면 “00야, 누굴 찍으면 되겠냐.” 물어볼 정도로 제가 막.. 이랬는데, 집안에 신뢰가 다 떨어진 거예요. 000신앙하면서. 결혼하고 더 떨어졌죠.
이제, 얼마 전에 언니가 입도하겠다, 언니가 입도하겠다고 하는 건 그래도 그랬는데, 엄마가 입도를 하겠다고 할 때에는 정말 눈물이 나더라구요. 아, 이제 내가 상제님을 만나서 가족들간의 신뢰를 이제사 회복을 했구나. 그땐 진짜 감격스러웠어요. 그래서 마음을 닦는다고 하는 건, 일단 내 주변에 가까운 사람들, 가끔 보는 사람들은 가끔 보니까 그 순간은 잘 할 수 있어요. 근데 사실 제일 힘든 게 제 바로 가까이 있는 가족들이거든요. 24시간 나로 하여금 그 존재를 무시할 수도 없고 끝없이 나를 갈구는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내가 마음을 닦는 게, 불가식으로 산에서 혼자 조용히 닦는 게 마음 닦는 게 아니고, 이 구체적인 인간관계들 속에서 내가 그 속에서, 상제님께서 마음의 자취가 행동이고 마음의 소리가 말이라고 하는데, 이 말과 행동이 어떻게 나와서 그 사람에게 어떻게 보여지냐, 그 사람이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 어떻게 판단하냐 그 속에서 태을도인의 마음을 닦아나가야 된다는 거, 생활 속에서 실천 속에서 철저하게 이뤄지는 부분이라, 내 마누라가 서운해 한다 그러면 다시 생각해봐야 된다는 거죠.
이 화상들이 원수들이, 그냥 원수고 화상인 게 아니고, (상제님께서) ‘그래, 너희들이 태을도인으로 열매맺어야 되니까 닦아!’ 하면서 (내)옆에 붙여주신 내 가족들이 스승이라고 생각하고 그 속에서 닦아서 내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 신뢰를 온전히 회복해야 내 마음이 온전히 닦아진 거라는 거죠. 왜? 내가 나중에 이 사람들을 끌고 가야 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가 상제님을 믿는 거는, 처음에 시작은 생사가 걸려 있으니까, 개벽이라는데 영원한 생사가 걸려있으니까, 우리에게 생사라고 하는 문제가 제일 큰 화두잖아요. 아까 종장님도 자기를 포기하는 사람이 자살한다고 했는데, 우리는 지금 나만 사는 게 아니고 내 가족 살리기 위해서 상제님에게 붙어 있는 사람이 굉장히 많을 거예요.
근데 이분들이 나한테 생사를 맡기려면 내가 신뢰를 회복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거죠. 근데 그 신뢰는 어떻게 얻느냐. 평소에 내가 이분들한테 마음닦는 걸로 해야 된다는 거죠. 고수부님께서 상제님을 일년반 정도 딱 겪으시고 나서, 근데 그 인간이 나한테 말도 안하고 사라지더니 나도 모르게 죽어 버렸어. 얼마나 괘씸해요 사실은. 굉장히 괘씸한 일인데, 고수부님께서 딱 가서 옥황상제 (명정) 깔아드리고 절하고 그렇게 한 다음에 나중에 대원사에서 혼례식을 올리잖아요. 이게(고수부님 영정) 그 복장이라고요. 고수부님은 ‘나는 증산이라고 하는 사람의 마누라다, 신부다’ 하는 것을 보이고 싶으신 거라고. 본인의 정체성을 그렇게 두신 거라고. ‘나는 증산의 신부다.’ 이 모습을 종도들이 그린 건데, 오성산 사람들이. 고수부님이 일년반 동안 증산이라는 남자를 겪고 나서 자기 모르게 사라져서 자기 모르게 죽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양반의 명분을 붙들고서 22년간 살림을 해나갔다는 거죠. 그냥 고수부님한테 정성만 다했다면 평생 수절하고 살면서 기억하며 살 수 있는데, 그것만이 아니고 증산상제님의 명분까지 쥐고 있었다는 거예요. 옥황상제라는 대의명분. 그러니까 (증산상제님이) 고수부라고 하는 여자에게 정말 정성을 다했어요, 일년반 동안. 그 정성과 이 양반이 가지고 있는 대의명분을 (고수부님이) 그 정성 속에서 아울러 같이 느낀 거예요.
사실 여자는 굉장히 욕심이 많아요. 생명을 지켜내야 하거든요. 욕심이 너무 많아서, 생명을 지켜낼 수 있다면 얼마든지 희생할 수 있는 게 여자라고요. 그래서 상제님이 대인공부를 여자에게 하라고 안했다니까. 이미 대인이 되어 있으니까. 아무리 원수처럼 보여도 여자들은요, 이 남자가 나에게 온전히 자기 자신을 바치고 순정을 다 바치고 게다가 이 남자가 대의명분까지 쥐고 있으면 그보다 큰 남자를 어떻게 만나. 당연히 그 남자한테 생사를 걸지. 그러니까 그걸 여러분이 여러분 가족에게 보여줘야 된다는 거예요.
항상 제가 종장님한테 왜 이렇게 코가 꿰어져 있냐. 꿈을 꿔도 꿈속에서 마누라가 죽었대. 그러면 ‘저 상제님 일(천명) 더 이상 못하겠습니다. 나는 그 여자 없으면 못 삽니다.’ 하고 상제님한테 따졌다는 거예요. 그 얘길 듣는데 제가 어떻게 코가 안 꿰요. 저는 제 꿈 통제 못하거든요. 꿈은 무의식의 산물이잖아요, 현실 속에서 못다 이룬 게 리바이벌 되기도 하지만. 무의식이 발동이 되는데, 저는 제 꿈을 통제 못해요. 근데 (종장님은) 항상 꿈을 꾸면 아침에 일어나서 얘기를 해주세요. 근데 그 꿈 얘기를 해줄 때 그런 얘기를 여러 번 해요. 어떤 여자가 자기 마누라라고 하니까 ‘당신 내 마누라 아닌데요’ 부터 해가지고. 그게 일이 절이 아냐. 들을 때마다 내가 비교가 되잖아요. 계속 꿀리는 거야. 결국 제가 코 꿰어가지고 가잖아요. 그러니까 결국은 여러분들이 마음을 닦는다고 하는 걸 불가식으로 관념적으로 생각하면 진도가 나가지 않아요. 그러니까 내 가족들 속에서 현실생활 속에서, 신뢰를 회복하고 내 명분으로 이 분들에게 영원한 생사를 나에게 맡길 수 있게 만드시라는 거예요. 그게 마음 닦는 거예요.
종장님:
오늘의 OOO를 이렇게 만들어 준 게 우리 종부님이죠. 실수 투성이인데, 건사도 잘 못하고. 고수부님으로부터 인정받기 시작한 때로부터 상제님이 인정을 받기 시작한 거예요. 가장 가까운 사람이 마누라잖아요. 마누라는 무촌이니까. 볼 거 안볼 거 다 보잖아요. 옥황상제도, 인간으로 온 옥황상제도 당신의 부인한테 인정을 받음으로써 거기서부터 인정을 받기 시작한 거지. 그렇지 않아요? 철저하게 인정받는 것이라니까요. 여기 다 부인한테 인정받으셔서 여기 왔잖아요. 부산에서도 오셨잖아요. 류00도인도 마찬가지고. 효자시더라고. 매듭질께요.
첫댓글 녹음한 내용을 글로 정리하면서 항상 아~ 내가 참 많이도 놓치면서 듣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문회우입니다. 정리된 글로써 모든 도인분들의 말씀의 뜻을 다시 한번 새겨 보시면 서로간에 더 깊이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녹취록을 통해 서로의 마음을 좀더 가까이 이해할 수 있게 되어서 고맙고 감사합니다. 충정도인님 수고하셨습니다.
모이고 모여 하나가 됩니다. 도인님들의 마음을 모아 부족함을 채우고 지평을 넓혀 스스로를 완성해 갑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참 많이도 놓쳤네요. 새롭습니다. 올려주셔 감사합니다.
말과는 또다른 글의 힘을 도담에서도 예외없이 느끼게 되네요. 말씀들의 의미를 곰곰히 되새기는 정독의 시간을 차분히 가질 수 있어 감사합니다.
본의아닌 모니터링으로, 말할 때의 형식을 좀더 생각하며 얘기해야겠구나 하는 반성의 기회도 갖습니다.
결코 적지 않은 양의 도담을 작업해주셔서 저희들에게 좋은 생각의 장을 마련해준 충정님, 수고하셨습니다.
여러 태을도인분들의 마음을 보게 됩니다. 일요일 아침, 한적한 데, 도담소리 끊임없이 눈에 들어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