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전쟁 박경석
북한도발
7.4 남북공동성명 1972. 7. 4
남북적십자회담
제1 땅굴발견 1974. 11. 15
제13부 이제는 땅굴밖에 없다
배한성 MC
끝나지 않은 전쟁 북한도발
배 : 베트남전
박 : 박경석 (예) 육군 준장 끝나지 않은 전쟁 북한도발
한국군의 정찰과 매복이 잘되 전투력이 향상되니까
1964년 미2사단 문산방어 제28사단에서 간첩 28명을 사살
땅굴 배경은
1960년대 후반, 베트남 참전 경험이 있는 분대장급, 소대장급 초급 지휘관이
DMZ에 배치되면서 북한의 육상침투가 거의 불가능해짐
67년 68년 69년 사이 주도권을 장악했다
배 : 정보가 없었는냐
☆ 제1땅굴
발견 ‘74. 11. 15
길이 : 35㎞
구조 : 콘크리트 가로 0.9m 세로 1.2m
전술능력 : 1시간에 1개연대
예상기술방향 : 고량포→의정부 → 서울
통일로 속도전 구호
제2땅굴 발견 1975. 3. 19
☆ 제2땅굴
발견 ‘75. 3. 19
깊이 지하 50 -160m
길이 : 3.5㎞
구조 : 암석층 굴진 가로 2m 세로 2m
전술능력 : 1시간에 3만 병력과 야포
예상기술방향 : 철원→ 포천 → 서울
1시간에 1개사단급
김부성 귀순용사
북괴군 총참모장인 대장 오진우와 군 간부들에게 남한을 빨리 해방시키기 위해
지하에다 은밀한 침투로를 조속히 구축하라는 교시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땅굴공사를 진행하는 목적은 첫째로 전면전쟁을 일으킬 때 이 땅굴로써 다량의 병력을 침투시켜서 국군후방을 급습 교란하여 전후방을 차단하고 한국군의 주방어선을 무너뜨려 남한을 3일이내에 완전히 점령하여 적화하는 데 있습니다
제1땅굴(1974년 11월 발견)은 콘크리트 구조물로 이루어진 소규모 땅굴로 1시간 안에 1개 연대 병력 침투 가능
지하 80㎝ 1m
전쟁중에 공격을 위해 땅굴을 판 예는 있어도 평화 시에 국경침투를 기도한 땅굴은 전무후무함
1975년 1월, 철원에서 육군 제5군단 공병단, 육군 제6사단 공병대대
광업진흥공사 시추 팀으로 이루어진 특수임부부대가 땅굴 개척을 시작하여 3월에 제2땅굴 발견
남한의 자작극이다. 3선 개헌과 유신을 감추기 위해서
천공 구멍으로 침투나 작업 방향 추적 나이나마이트 천공이라한다.
남한이 하였다면 천공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미국의 미 태평양 함대 사령관을 위시해서 참모총장이 직접 현지에 왔다
이것은 남침용 땅굴이다 북한 만행임이 확인이 되었다
3선 개헌과 유신을 정당화 하기 위해서
이북에서는 덩달아 오리발을 내밀었다
배 : 군의 분노도 대단했을 것인데
박 : 올것이 왔다. 항시 경계
지뢰밭을 만들었다.
800m 이상 지뢰밭을 만들어 놓고 도망을 갔다.
북한은 경계선에 콘크리트로 막았다.
지뢰밭을 처리하는데 3개월이 걸렸다.
하루에 20m 폭파하고 연기빼고 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우리 장병의 피해가 있었는데 순직자도 전상자도 생겼다.
북한은 파고우리는 계속 추적해서 찾고
제 3당굴 발견 1978. 10. 17
☆ 제3땅굴
발견 ‘78. 10. 17
깊이 지하 73m
길이 : 1.6㎞
구조 : 암석층 굴진 가로 2.1m 세로 1.95m
전술능력 : 1시간에 3만 병력과 야포
짚차 가로 1.7m 세로 1.7m
예상기술방향 : 문산 → 서울
제 4땅굴발견 1990. 3. 3
☆ 제4땅굴
발견 ‘90. 3. 3
깊이 지하 145m
길이 : 1.6㎞
구조 : 암석층 굴진 아치형 가로 1.7m 세로 1.7m
예상기술방향 : 양구→ 원주
반드시 목표 달성을 위한 예상 접근로가 있습니다
남한 침공 시 북한의 예상 접근로
1. 개성→ 문산 → 서울 접근로
2. 철원→ 포천 → 서울 접근로
3. 양구→ 포천 →춘천 → 서울 접근로
끝나지 않은 전쟁.hwp
89년에 독일이 통일이 되면서
냉전체제가 해체되면서
어떻게 해석을 해야
마무리 말씀
두가지이데 첫째는 땅굴을 파고 있다는 개연성이 충분하다
두 번째는 유언비어가 많다. 위기조성을 하는데 믿지 않는다
국방부 조사결과를 믿는 것이 우리의 자세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