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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업시집 <별을 품다>
평론
내면세계의 도플갱어, 별의 상징성
-김영업의『별을 품다』의 시세계
김관식(시인, 문학평론가)
1. 들어가는 말
서정시란 시인 자신의 주관적인 정서나 감동을 노래로 전달하는 시를 일컫는다. 오랫동안 노래로 불리워왔던 것이 현대에 이르러서는 회화적인 이미지로 재현됨으로써 음악적인 요소보다는 회화적인 요소가 강조되고 있다. 노래와 춤과 시가 곁들여진 원시종합예술의 형태에서 점차 분화되어 오늘날에 이르렀지만 서정시의 근본적인 정신은 주관적인 정서표현이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 주관적이라고 하여 아무렇게나 시인 마음대로 감정을 토로하는 방식이 아니라 시적 대상과 일체화시켜 이미지로 형상화하여 구체화시켜 다른 사람에게 시인 자신이 느낌 정서를 환기시켜야 한다. 그러나 많은 시인들이 정서를 환기시키는 작업을 시적 대상과 자신을 이원화시켜 관조함으로써 환기시키려고 한다. 물론 관조함으로써 사물 속에서 자신의 내면세계와 유사한 이미지를 상상력으로 형상화하여 재현해낸다. 사물 속에 숨어있는 것들을 시인자신의 내면세계를 투사하여 동일화하거나 시적 대상인 사물을 끌어와 자신의 내면세계와 융합하여 동일화를 도모할 때 도플갱어로 또 다른 자기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김영업의 시는 우주론적 관점에서 신화적인 상상력으로 자신의 도플갱어를 바라보고 사물에 대한 관념과 주관적인 정서를 해석적 진술로 풀어내는 시를 쓰고 있다.
그의 두 번째 시집『별을 품다』의 시세계를 살펴보기로 한다.
2. 내면세계의 도플갱어, 별의 상징성
시는 내면세계의 보고서일 것이다. 일찍이 동양과 서양은 우주를 해석하는 견해는 아름다움을 보는 바라보는 견해도 전혀 이질적이다. 서구에서는 사물의 본질을 추구하고 주체적인 지성과 감성, 그리고 의지를 분리하고 예술의 통일성이라는 세 가지 근원에 기초하고 있지만, 동양에서는 이 세 가지 파악 방식이나 분류 방식 자체가 전무하다. 객관적으로 사물을 인식은 할 수 있으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다고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노자』1장에서 “말로 표현할 수 있는 도는 영원불변의 도가 아니며, 말로 표현할 수 있는 이름은 영원불변의 이름이 아니다”(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라고 말하고 있다.
도플갱어는 서양의 신화나 민담에서도 자주 등장한 용어로, 오늘날 원시부족의 풍습에서도 그림자를 생명이나 영혼과 동일시한다거나 사람의 영혼이 그림자나 물이나 연못에 비친 그림자 속에 들어있다고 믿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시적 대상을 바라보고 말로 표현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잠재된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시로 표현하고자 한다.
「자연의 분노」는 시 인 자신을 포함한 지구상에 살아가는 인류가 자신의 행복을 추구한 나머지 무분별하게 자연을 훼손하고 생태계의 질서를 교란시킨 결과, 자업자득의 분노를 일으키게 되고, 생존권의 위협하게 된 생태주의 생태관에 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 “자신들을 위해서 개발하고, 자연의 형질을 변형하여/결국 고리를 끊는 죽음을 찾아 이별하고 마는/지구의 장례요. 살아 있는 별을 무덤으로 만든다.”라고 생태계의 파괴에 대한 실상을 해석적 진술로 고발하고 있다. 그의 시「별을 품다」를 보면 도플갱어의 모습을 첨단과학문명의 미디어를 통해 바라보고 해석적 진술로 대량복제의 시대, 인간은 주체성을 상실하고 객체화된 미래사회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인터넷. 폰
빠르고, 널리 퍼지고, 누구나 공유하는 시대
최상품이 되고자 하는 너무 많은 물건들
잠시 한눈을 팔거나, 낮잠이라도 잘 양이면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는 뒤떨어진 상품
잠결에 뛰쳐나온 어리버리한 사람 같아
세상 돌아가는 속도에 뒤처지는 작품들
머리는 눈과 손을 가진 영웅적인 죽음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삶과 죽음을 딛고 빠른 속도로 녹아 내린다
목적지를 찾는 것은 독도법이 아니라 내비게이션 이다
상품들은 오병이어 기적을 쏟아내고
짝퉁들의 행 열 너무 많은 협잡꾼들
오래 전 내게도 열정이 살고 있었다
불한당들의 변태적인 쿠데타
감염된 아이들 귀가 녹아 기어 다니는 벌레들
꿈속 귀신이 되어 무진장의 익명성
자의식처럼 우주를 장악하고 환상적인 세계가 실제의 세계로
사물들은 복제되어 창출한다
나를 흔든다
내 맘속에 빛나는 너라는 별들이
대량 홍수를 이루며
편리성 유익성 못지않게
5차원의 예술을 공연한다
버드나무 줄기는 백 번 찢어내도
또 새로운 가지가 나듯이 광야를 메운다
5차원의 기적이
-「별을 품다」전문
이 시는 화자가 주관적인 관념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혼돈상태에서 “5차원의 기적이”일어나기를 기대하는 상상력으로 가슴 속에 품은 미적 대상으로 별의 환상 속공연 즉, “5차원의 예술을 공연한다”는 원시상태로 환원하는 신화적인 상상력을 보이고 있다. 우주를 바라보는 또 다른 가상세계를 보여주는 인간의 과학기술은 인간에게는 편리함을 가져다주었지만 “불한당들의 변태적인 쿠데타”로 인간을 정복하고 인간을 수동적인 존재로 만들어버렸음을 고발하고 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말은 곧 신 이외에 정신과 물체라고 하는 서로 독립된 두 가지 실체를 제시하고 있으나 오늘날 소비사회의 풍속도를 나타내는 말로 “나는 소비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말로 대체되고 있는 현실이다. 최근 미세먼지 대란으로 길거리 마스크를 쓰는 사람이 늘어났다. 산, 강, 바다, 하늘까지 모두 오염되어 숨을 쉴 수 없다. 인간의 무한정한 욕망이 만들어낸 결과다. 대량생산 대량소비를 위해 인간의 욕망을 채워줄 물건을 만들어낼 각종 공장에서 뿜어져 나온 매연, 화력발전, 자동차 배기가스 등이 공기를 오염시킨 결과다.
이제「기상예보」도 “서녘 하늘에 검은 이끼가 끼고/뼈마디마다 얼음 알갱이가 섬뜩해진 순간/무엇이 닿았는지 통증은 아득히/공통분모처럼 허공에 던져놓는다”처럼 인간을 고통 속에 몰아넣고 있다.
남은 인생 길지 않습니다.
미워할 시간 나태할 시간. 멈추고 노닥거릴 시간 없다.
별이 되려거든 암흑물질이 되어야 한다
우주 벌판에서 당신을 불러야 하나요
광화문 우주 쇼와 별들의 함성을 듣고 보라
여자는 우주인에 암흑물질이 되어야 한다
암흑물질은 우주의 자궁이고 우주의 포용이다
별이 되려거든 별과 결혼하고 암흑물질이 되어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우주 상여를 타고 떠날 것이다
-「우주 상여」일부
인간은 이제「우주 상여」를 탄 위기상황에 처해있는 것이다. “별이 되려거든 암흑물질”이 되어야 한다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공상 미래 과학 영화 「인터스텔라」의 상황은 상상 속의 이야기가 아니라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 지구에서 생존이 불가하게 지구를 떠나 생존이 가능한 행성을 찾아 나서게 된 우주 탐사선을 타게 될지도 모른다.
제1부 20편은 우주론적인 관점과 신화적 상상력에서 지구의 미래를 상상하고 우주 속에 존재하는 또 다른 자아를 관조하는 내면세계의 도플갱어다. 그는 신의 존재를 망각하고 인간의 의지대로 살아가는 구심점이 도플갱어의 모습을 통해 살아온 자신의 존재에 대한 성찰을 하고 있는 것이다.
광활한 우주세계에 대한 사유를 끝내고 소박한 소시민의 일상으로 돌아온다.「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어지러진 신발이 눈에 들어온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하여
현관에 들어서니, 신발이 많이 있다.
꼬마 신발,
어른 신발.
운동화, 실내화, 등산화 구두, 슬리퍼.
모두 먹고 살기 바빴나 보다
꼬마 신발은 혀를 내밀고 뒤집혀 자고 있다.
한쪽 구석 굽 높은 광이 번쩍이는 삐딱 구두.
처음 본 신발인데 저건. 응,
옆집 수다쟁이 아줌마 건가
손님이 왔나
저건 산길을 많이 걸었나 보다.
흙이 잔뜩 묻었네.
저건 뒤축이 꺾여 거꾸로 서있다.
급했나 보다
신발을 우측으로 쑥 밀어붙이고
아무런 일이 없는 듯.
내 신발을 벗었다.
순간 난리다.
이리 엉키고, 저리 엉키고.짓눌려
뒤틀리고 앞뒤가 바뀌었다.
울고 웃고 죽는다 소리치고 난리다.
옛날 토방이 생각난다.
널찍한 그 공간
-「현관」전문
그가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순간「현관」의 모습을 세밀한 관찰력으로 집안의 상황을 직관적으로 해석하고 공간의 좁다라는 생각한다. 그리고 어린 시절 시골 마을 넓은 공간 속의 토방을 대비시킨다. 이는 현재의 상황과 과거의 상황을 공감의 넓이로 대비시킴으로써 협소해진 현재의 공간 속에 살아가는 자신과 가족들을 떠올리는 것이다. 여기에서 공간의 크기는 자연의 크기와 인간의 욕망의 크기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과거의 공간이 크다는 것은 자연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서 인간이 자유스럽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이 컸다는 의미이고, 현재의 공간이 좁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이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들었고, 욕망은 커졌으나 경쟁이 심화되어 각 개인이 소유할 수 있는 자연적인 공간이 줄어들었을 의미한다. 흩어져 있는 신발 공간에 자신의 신발을 놓을 공간을 밀어내자 신발은 그만 흩어져버린다. 자신의 존재 공간을 차지하고 있는 신발들 틈에 시인은 자신을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신 “발을 우측으로 쑥 밀어붙이”는 순간 “이리 엉키고, 저리 엉키고. 짓눌려/뒤틀리고 앞뒤가 바뀌었다./ 울고 웃고 죽는다 소리치고 난리다”라는 무질서의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그는 내면 속에 말없이 살아온 또 다른 자신의 도플갱어와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그는 지난 삶을 반추하면서 자신의 존재를 확인해가며 시를 써오는 김영업 시인은 주의 공간에 자라한 사물들을 유심히 관찰하고 그 사물 속에 내재한 자신의 도플갱어를 바라본다. 도플갱어는 과거와 현재를 살아오면서 그 상황 속에서 변화하는 자신의 모습인 것이다. 자연과 사물을 통해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진정한 자아를 찾아 나선다. 그 과정에 혼란한 정서를 관념으로 표현함으로써 관념 속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통해 도플갱어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겨우 세 들어 자리잡은 터
가난한 척추를 새우며 최대한 낮춘다.
우울과 비참을 더듬을 때
딱딱한 구두 슬그머니 지날 때
급했는지 차 바퀴도 굴러간다.
허리 디스크 시름은 깊디깊어
죽음을 흔들어 깨울 때
검은 피를 흘리며 묵시의 고충 녹아 내리고
그 와중에도 개미는 우왕좌왕 부산을 떤다
굽은 허리 연고를 발라보지만
뻔뻔한 무지에서
틈과 틈을 더듬으며 납작해진 각오
영혼 없는 영혼처럼
바짝 말라버린 태양
쓰다 버린 모래알
바람 불면 바람이 모아다 주고,
비가 오면 빗물이 모아 주고.
바닥에 대한 믿음
평 토장(平 土葬)으로 허물을 덮어준다
-「잡초」전문
보도 불럭을 비집고 생명을 이어가는「잡초」를 관찰하고 열악한 환경을 견디며 생명을 부지하기 위해 납작 엎드려 살아가는 자신의 도플갱어를 발견하게 된다. 억눌려 살아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그의 측은지심은 바로 시인의 진심일 것이다. 오늘날 시인은 많으나 자신의 돋보이기 위해 위장하는 시인들이 많고 언어를 화려하게 장식하여 진술하려는 시인들이 많은 현실에서 우직하게 때로는 당당하게 현실과 맞서서 거침없는 묘사와 진술로「잡초」와 같이 억눌려 살아가는 가난한 이웃에 따뜻한 애정을 쏟는 김영업 시인이야말로 시를 통해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확인해가는 참다운 시인일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지난날을 반성한다. 그러나 한번 지나간 일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잠시 존재하는 인간의 존재는 극히 미약한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시간을 망각한다. 우리의 일상이 똑같이 되풀이 되는 것 같으나 어제의 시간과 오늘의 시간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과학기술의 발달은 시간의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더 많은 경험을 제공해 따라서 오늘날 우리들은 옛날 사람들의 생활에 비해 훨씬 많은 경험을 하고 살아간다. 옛날에는 먼 곳에 있는 사람을 만나려면 한번 만남을 위해 몇 날 며칠을 걸어가서 만났으나 오늘날 교통통신의 발달로 상상도 못한 먼 거리 세계 곳곳 먼 나라도 비행기를 타고 몇 시간 안에 구경하고 사람을 만나고 살아가는 등 시간과 공간을 제약을 뛰어넘어 옛날 사람들의 몇 배의 경험을 하고 살아간다.
핸드폰을 이용하여 먼 거리의 사람과도 즉석에서 소식을 주고받는 세상이다. 이런 편리한 세상을 움직이는 것은 물질이기 때문에 물질에 집착한 나머지 만남의 가치를 소홀히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물질주의 가치를 숭상한 나머지 소중한 인간의 만남이 궁극적인 목적이요 본질인데도 불구하고 물질이 본질인 줄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하고 자신의 잘못도 모르고 살아가는 세상이다.
시인은 만남을 소중히 하는 사람이다. 인간성을 존중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오늘날 시인의 수가 기하급수적으로 많아지고 있다. 이 얼마나 반가운 현상인가? 인간적으로 살고 싶은 사람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이 되고자하는 것은 인간성을 존중하고 인간의 정신적인 가치를 존중하여 옛날처럼 만남을 소중히 하려는 현상으로 보아야겠지만 물질을 추구하기 위한 방편으로 시인이 되겠다고 하는 일은 시인의 자세와는 역행하는 그야말로 사람으로는 못할 짓일 것이다.
김영업 시인은 시를 통해 자기 수양을 하며 본질적인 가치를 찾아가는 시인이다. 그의 진실한 내면속의 도플갱어를 통해 자기 존재의 정당성을 확인하려는 가치지향의 의지를 엿볼 수 있었다.
빡빡 문지르지 말걸
저 많은 흔적
그리고 기억들
보내지 말았어야 했어.
혹시나 했는데
떠나버린 지금
이렇게 아파하지 말았어야 했어
휑하고 가버린 것들
쑥쑥 닦지 말았어야 했어
그냥 내버려 뒀을걸
괜히 어깃장을 놓았어
가는 데로 내버려뒀어야
이렇게 아파하지 않았을 걸
내 집도 많이 헐었는데
손톱이나 물어뜯지 말걸.
-「후회」전문
우리는 생활하면서 “회자정리(會者定離) 거자필반(去者必返)” 즉 “만난 사람은 반드시 헤어진다. 떠난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세상의 이치로 살아간다. 우리는 수없는 사람을 만나고 헤어진다. 이 지구장에 존재할 주어진 시간 안에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그들과 아름다운 관계를 맺기를 원한다. 때로는 아름답지 못하고 미워하고 상처를 주고받는 관계를 맺다가 헤어지고 하고 또다시 만나다가 영원히 헤어지기도 한다. 과거는 지나놓고 보면 아름답던 아름답지 않던 모두 한꺼번에 되새김질할 때「후회」로 남게 된다.
정현종 시인의 “모든 순간이 꽃봉오리인 것을” 망각하고 살아가다가 후회하게 된다. “나는 가끔 후회한다./그 때 그일이/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그때 그사람이/그때 그 물건이/노다지였을지도 모르는데……./더 열심히 파고들고/더 열심히 말을 걸고/더 열심히 귀 기울이고/더 열심히 사랑할걸”하는 안타까운 후회를 경험하게 된다. 김영업 시인은 타인의 모습 속에 도플갱어의 자아를 유리창을 닦듯 빡빡 문질러서 보낸 것을 후회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진정으로 자신을 사랑했던 어머니의 모습 속에서 자신의 발견하게 된다. “623번지는 구십구의 통점을 누르며/들어갔던 문을 다시 통과해 나오는/당신의 발걸음 소리”는 어머님의 발걸음 소리다. 지신의 존재의 정당성의 원초적인 공간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자신의 태어난 공간으로 가는「덕림리 가는 길」은 「아버지」가 살 고계시던 곳이고,「염전」,「청보리밭」이 있으며, 어머니의「칠남매의 기도」가 있고「동창생」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3. 나오며
김영업 시인의 두 번째 시집『별을 품다』는 가슴 속에 꺼지지 않는 사랑의 별을 떠올리려는 시인의 열정이 담긴 시집이다. 별을 품고 살아가는 사람은 가슴이 뜨겁다. 아름답다. 따뜻한 가슴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웃과 더불어 오순도순 살아가려는 시인의 의지는 온 세상을 밝고 따뜻하게 해줄 별빛일 것이다.
광활한 우주 속에 던져진 우리들은 한 순간을 아름답게 후회 없게 살다가 사그러드는 별빛과 같아야 할 것이다. 김영업 시인의 시는 인간의 무분별한 욕망에 의해 자연이 파괴되고 생태계의 질서가 무너져 인간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오늘의 현실에 대한 냉철한 성찰의식을 보이며,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내면세계의 갈등을 자신의 도플갱어를 통해 보여준다. 내면세계의 도플갱어 모습을 통해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발견하고 자신의 가슴속에 숨겨둔 별을 통해 진정한 인간의 절대적인 가치가 무엇인지 발견하는 지혜를 준다.
우주에 대한 관념적인 해석과 관념어를 통한 해석적 진술로 풀어낸 시들이 독자들의 가슴까지 울림으로 옮겨 별빛으로 반짝거리길 바랄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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