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10월26일 12회 공인중개사자격시험 수험생이 모여 “ 행정심판 청구인 모임”을 오픈 한 지도 어연
8년이란 세월이 흘렀습니다
2001년 9월16일 건설교통부 토지관리과에서 시행한 제 12회 공인중개사 시험은 132,996명이 접수하였고
전국고사장에서 85456명이 응시 하였습니다.
유난히 공인중개사시험은 해마다 시험 후 가. 정답 발표 시 출제오류로 말도 탈도 많습니다
12회 당시 부동산학문은
일본 부동산 학문을 중심으로 한 국내파 학자와 해외파 학자로 나뉘어져 두 계파 간에 반목과 갈등으로
부동산 학문은 정립, 체계화가 되지 못했습니다.
특히 학원 강의를 듣는 수험생들에게는 시험 준비하기에 무척 혼란스럽고 애로 점도 많았습니다.
모름지기 국가자격시험인 공인중개사시험은 객관적이며 공정하게 출제 하여야 함에도 타 시험과 달리
그렇지 못 하였습니다
12회 시험 직후 발표 된 가답안 역시 출제에 참여하지 않은 현직 대학교수들조차 일부문항에서 가답안을
부정하는 사태도 발생하였던 것입니다
그로인한 공인중개사 시험에 응시한 수험생들은 혼란이 가중되고 공권력으로 밀어붙이기식 건교부 당국
의 정답안 발표로 선의의 응시자가 불합격되는 사태로 이어졌던 2001년 이었습니다.
불이익을 입은 수험생들은 과천 건설부당국에 공정한 답안을 요구하고 집회 시위를 가지며 권리를 주장도
했습니다만
공권력 앞에선 저희는 너무나 무력했습니다
법제처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에 당시 1200여명 수험생은 불합격처분을 취소하라는 행정심판을 청구
했었습니다
12회 청구는 법제처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에 심판을 청구한 사상 최다 청구인 이었습니다
2000~ 2001년 당시는 인터넷 보급률이 열악해서 행정심판이라는 제도가 있는지,
또 어떻게 행정심판을 청구 하는 것인지 몰랐던 응시자가 대부분 이었습니다.
2001년10월26일 본 카페가
인터넷상 공인중개사자격시험 행정심판 청구인 모임 단체로 처음으로 개설되자 전국 응시자들이 모였고
이 계기로 “12회 공인중개사 행정심판 청구인 모임”이 탄생 되어 객관적이고 공정한 공인중개사 시험 출제를 건의하는 수험생의 대표모임으로서 응시자의 권익을 보호하고 정부와 각계각층에 대변을 해왔습니다
역대 공인중개사 시험 역사를 간단하게 살펴보자면
12회 공인중개사 시험 가답안과 정답안 발표시 공정성. 형평성 논란으로 수험생들은 과천서 처음 집회시위를 가졌습니다
건설교통부에서 산업인력공단으로 이관되어 첫 시행한 13회 공인중개사 시험은
기출문제가 사전 유출되고 대전 모 교수와 공단직원 수명이 대전지검에 구속되고 또 일부고사장에서 시험지 부족사태로 시험 중단이 속출 되었고 일부수험생은 공단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하여 대법원에서
30-300만원씩 지급하라는 판결도 받아냈습니다
14회 공인중개사 시험은
최다 출제오류로 10문항이 가답안에서 정답으로 수정 발표되었고 법제처 국무총리행정심판위원회에서도
2문항이 또 인용재결 되었습니다
대법원 상고심도 2차 1문항이 승소되기도 하였습니다
15회 공인중개사 시험은 최대의 난이도 조절 실패로 시험 직 후
사시보다 난이도가 어렵다는 공인중개사 시험 문제점이 연일 언론과 방송에 보도되고 학원가의 적극적인
협조로 전국 수 천 명 수험생들은 조직적으로 서울로 집결하여 대규모 집회시위로 확산 되었습니다
수험생들은 시험 무효화와 건교부 장관 사퇴를 주장하여 연일 서울로 상경하여 집회시위를 가지는 극한
상황으로 반정부 시위 사태로 옮겨가기도 했습니다
시험 직 후 공단측은 마킹 답안지를 컴퓨터 채점하니 합격자가 도저히 나오지 않자 15문항을 수정 정답으로
발표를 했지만 최종합격자는 400명 1차합격자 800명으로 전체 응시자의 0.5%가 합격자 이었습니다.
해방 후 사상
과천청사가 민간인 수험생들에게 점거 파손되는 사태가 발생 되었으며 주도한 수험생 일부가 과천 경찰서 및 안양경찰서로 연행되어 검찰에 구속되는 사태로 이어졌습니다
당시 국무총리는 공인중개사 시험 문제점으로 수험생에게 불이익을 주지마라는 지시와 공정한 시험 출제
개선을 약속하고, 건교부 장관은 전례 없는 사과 성명을 내며 2005년 5월 22일 15회 추가시험을
시행 하였습니다 .
15회 추가시험부터 출제시행기관이 산업인력공단에서 토지공사로 이관되었습니다만
15회추가 16회 17회 18회를 끝으로 19회 시험부터는 다시 공단으로 이관 되었습니다
탈도 많고 ,말도 많은 공인중개사 시험 !
본모임은 합격의 기쁨도 좌절의 눈물도 아픔도 여러분과 같이 해 왔습니다
“12회 공인중개사자격시험 행정심판 및 소송 모임”으로 출발한 본 모임은
13회 부터는 카페 명칭을 ‘공인중개사 행정심판 및 소송 모임’으로 변경 하였으며
14회부터는 ‘공인중개사 행정심판 모임’ 으로 변경하여 수험생들을 위하여
헌신적인 봉사와 불이익 당한 응시자를 위하여 지난 8년간 권익을 위한 대변자 역활을 충분히 다했다고
자부합니다.
이제 2008년 한국은
인터넷 세계 강국으로서 이제 수험생 개개인이 인터넷상으로 많은 정보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고
타 소송모임에서도 본모임을 대신하여 응시자의 권리주장에 앞장 서 주리라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하여 2008년 11월부터 본 '공인중개사 행정심판 모임'은
소속 회원이 공인중개사가 절대다수인 7000명이 넘어 “부동산을 사랑하는 공인중개사 모임” 으로 탈바꿈
하게 되었습니다
지난 8년 동안
함께 기뻐하고 고통도 함께 나누어 온 회원 분들께 고개 숙여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도
본모임 소속 공인중개사 회원 분들을 위하여 공동중개 및 친목 모임으로 봉사 할 것이며,
공인중개사 시험에 응시하는 회원에게도 행정심판에 대하여 많은 정보 및 자료를 제공 할 것입니다.
끝으로
그동안 자격을 취득한 회원께서는 정기모임에 시간 내어 많은 참석을 바라며 추억과 꿈을 이야기 하는
따뜻한 모임이 되었으면 합니다
모두들 성공하시기를 기원 합니다.
감사 합니다
카페운영자 공인중개사 강 현 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