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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6년 12월 31일, 미국 뉴욕에서 ‘뉴스 월드(News World)’ 창간 미국 제40대 대통령 선거일 레이건 후보의 압승 예언
인간의 이성 넘어 이뤄낸 역사 참부모님께서 미국에서 창간하신 첫 번째 언론 매체는 ‘뉴스 월드(News World)’였다. 일본의 ‘세카이닛뽀’처럼 ‘뉴스 월드’는 지적이며 헌신적인 식구들과 함께 출발됐다. 이들 대부분은 뜻에 대한 열정에 불탔지만 언론 분야에 대한 경험은 거의 없었다. 식구들은 서로서로 가르치고 배웠다. ‘뉴스 월드’는 1976년 초가을, 창간을 위한 본격적인 준비에 돌입했다. 단지 열댓 명만이 기자 경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창간 준비 작업은 하루하루가 전쟁이었다. 초창기 직원들은 비좁고 허름한 사무실에서 일반인에게 판매되는 군수품 책상과 중고 타자기를 사용해서 글을 썼다. 참아버님께서는 이들에게 불과 석 달도 채 남지 않은 상황에서 미국 독립 200주년인 그 해에 신문 발간을 시작하라고 지시하셨다. 그것은 새로운 신문사와 함께 독립 이후 세 번째 세기를 맞이하는 미국을 바른 길로 이끌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뉴스 월드’ 초창기 멤버들은 일본 ‘세카이닛뽀’의 선례에 깊은 감명을 받아 일했다. 당시 초창기 멤버들 중에 한 식구는 훗날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당시에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이 불가능한 일이라는 사실을 몰랐다”라고 말했다. 하늘의 섭리는 이처럼 인간의 이성을 넘어 역사를 만들어갔다. 우여곡절 끝에 ‘뉴스 월드’ 창간호는 1976년 12월 31일 발간되어 뉴욕 시내의 가판대를 장식했다. 임직원들은 ‘해냈다’는 사실에 크게 고무되었다. 그리고 그날부터 그들은 매일 그 일을 해냈다. 초창기 ‘뉴스 월드’는 24면에 다양한 정치·경제·사회적 사건들과 국제, 스포츠, 경마 결과, 주식, 연예 등과 모든 분야의 소식을 흥미로우면서도 깊이 있게 보도했다. 때로는 격렬한 사설을 실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또한 매일 1면에 컬러사진을 실었는데, 이는 1970년대 후반이라 해도 매우 드문 일이었다. 언론의 사명인 정론 보도 통해 전성기 구가창간 후 얼마 안 되어 참아버님께서는 ‘뉴스 월드’ 임직원들을 초청해 조찬식사를 하며 언론계의 동향과 신문 발행과 관련하여 대화를 나누셨다. 그때 신문가격을 10센트로 낮추자는 뜻밖의 의견이 나왔다. 뉴욕의 대표적인 일간지인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 ‘데일리 뉴스(Daily News)’ 그리고 ‘뉴욕 포스트(New York Post)’는 가격은 당시 25센트였기에 10센트는 무척이나 싼 가격이었다. ‘그렇게 가격을 낮추어서 이익이 나겠느냐’는 반박도 뒤이어 나왔다. 그럼에도 그날 회의에서 신문가격을 낮추자는 의견이 통과됐다. 신문을 창간하신 것은 이익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라 올바른 소식을 빠르게 널리 보도하기 위함이었기에 참부모님께서는 조금 손해가 난다고 해도 개의치 않으셨다. 경쟁지들은 가격을 낮추었음에도 독자가 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뉴스 월드’가 얼마 안 가서 문을 닫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독자는 꾸준히 늘었다. 이는 가격 때문이 아니라 정론을 보도하는 신문의 가치에 공감하는 시민들이 늘었기 때문이었다. 창간 첫 해에, 뉴욕 시에서는 엄청난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역사 이래 몇 번밖에 일어나지 않았던 대정전이 일어난 것이다. 순식간에 시내 전체가 암흑 속에 빠져들었고, 상가와 사무실, 주택은 말할 것도 없고 전철마저 불통되는 혼란이 발생했다. 그런 와중에도 ‘뉴스 월드’ 기자들은 촛불을 켜고 밤새 기사를 작성했다. 또한 다행히 ‘뉴스 월드’의 인쇄소는 뉴욕 시 외곽에 위치해 정전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날 신문을 발행한 곳은 ‘뉴스 월드’가 유일했다. ‘뉴스 월드’의 긍지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정전 사태 후 석 달 동안 여러 신문사에서 파업이 진행되었고, 주요 일간지 중에도 신문을 제 때 발간하지 못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하지만 한 가족으로 똘똘 뭉친 ‘뉴스 월드’는 계속해서 신문을 냈고, 이러한 사명감이 독자들의 마음을 움직여 판매 부수가 대폭 늘어나기 시작했다. 판매 부수가 최고 40만 부까지 올라갔을 때는 그야말로 ‘뉴스 월드’의 전성기였다.
레이건 대통령 압도적인 승리 예언 의심할 것 없이 ‘뉴스 월드’의 가장 담대한 보도는 미국 40대 대선 당일인 1980년 11월 4일, 신문 첫 면 헤드라인에 ‘레이건 대통령의 압도적인 득표(Reagan Landslide)’를 예언한 것이다. 미국 내의 거의 모든 신문과 방송 등 언론사 대부분은 “선거가 너무 박빙이라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뉴스 월드’ 편집 담당자들은 선거 관련 모든 통계자료를 철저하게 분석한 결과 도널드 레이건 후보가 지미 카터 후보를 거의 모든 주에서 이기게 될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기에 확신을 갖고 예언자적 보도를 한 것이다. 검표가 끝나고 ‘뉴스 월드’가 예측한대로 레이건은 4개 주를 제외하고 모든 곳에서 승리하였다. 다음 날, ‘뉴스 월드’는 “하나님! 감사합니다! 우리가 옳았습니다”라는 제목의 헤드라인으로 발간됐다. 레이건 대통령 당선인은 전날 발행된 ‘뉴스 월드’를 들고 기념촬영을 했고, 이는 UPI통신사를 통해 전 세계에 보도됐다. 1983년 ‘뉴스 월드’는 사명을 ‘뉴욕 시티 트리뷴(New York City Tribune)’으로 바꾸고 디자인을 개편했다. 정치·경제·국제 뉴스와 그에 대한 분석과 논평을 집중적으로 실었다. 뉴욕 시장인 에드 카치(Ed Koch)는 “‘뉴스 월드’의 논평이야말로 미국 내에서 최고”라고 칭찬했으며, 이후 5년 간 꾸준히 주간 기고문을 투고했다. <기사제공: 기획홍보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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