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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게시글
송학리 스크랩 장학마을 귀남이재
김향중 추천 0 조회 40 13.02.07 14:1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별량면 송학리 장학마을에는 귀남이재(180m)가 있다. 상사면 비촌리로 넘어가는 고갯길인데, 지금은 군부대에 편입되었다. 돌이 길게 늘어져 있다고 해서 군암(軍岩)재라 한 것이 귀남재, 귀남이재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 군부대가 들어서 있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귀남이재 이름값이라도 하듯 육군 제 7391부대가 장학마을 인근 귀남이재 아래에 자리잡고 있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 귀남이재 이름값이라도 하듯 육군 제 7391부대가 장학마을 인근 귀남이재 아래에 자리잡고 있으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귀남이재 정상에 큰 바위가 있다. 워낙 넓은 바위라 흙과 먼지와 나뭇잎들이 쌓여 얼핏 보면 바위라고 보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 흙으로 덮여 있던 바위가 큰 비만 오면 흙이 씻겨 내려간다. 큰 비가 오면 바위가 맨 살을 드러내는 것이다.

그런데 며칠 지나면 바위가 다시 흙으로 덮여 있다.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몇 년 동안 쌓여도 될까 말까 한데 불과 며칠 사이에 흙이 쌓이다니...

상사 회룡마을. 물 맑고 공기 좋은 회룡마을은 별 다른 걱정 없이 마을 사람들이 평화롭게 살아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좋지 않은 소문이 나돌았다. 평소에는 얌전하던 마을 부녀자들이 잊어버릴 만하면 바람이 난다는 것이다. 소문이려니 했는데 소문이 점차 사실로 밝혀지면서 마을 어른들은 고민에 빠졌다. 한두 명도 아니고 마을 부녀자들이 바람이 난다는 것은 뭔가 원인이 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마을 원로 가운데 한 분이 순천 읍내에서 용하다는 풍수를 모시고 왔다. 지금이야 가까운 거리이지만 옛날에는 왔다 갔다 하는데 꼬박 반나절 이상이 걸리는 거리이기에 칠순이 넘은 마을 원로로서는 죽기를 각오하고 다녀온 것이었다.

마을 원로가 모셔온 풍수는 마을 사람들에게 대접을 받고 잠자리에 들더니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대접만 받은 채 원인을 알아볼 아무런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워낙 유명한 풍수인지라 며칠을 아무 말 없이 대접하던 원로들도 이제는 더는 참을 수 없어 따졌다.

“아니, 도대체 어쩌자는 겁니까? 이렇게 대접만 받고 갈 겁니까?”
그래도 풍수는 요지부동이었다. 별 다른 대책이 없는 마을 원로들로서는 풍수를 어찌 해보지도 못하고 이제는 없는 셈 치고 지냈다.

그러던 차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천둥 번개를 치면서 하루 종일 요란하게 내린 비는 다음날이 되자 언제 그랬냐는 듯 화창한 날씨로 변했다. 마을 이곳저곳을 살피던 풍수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러더니 마을 원로들을 불러 모았다.

“원인을 알아냈습니다.”
마을 원로들은 깜짝 놀랐다. 하지만 대부분은 반신반의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풍수가 마을에 온 지 거의 보름은 되었기 때문이다. 보름 가까이 무위도식하던 풍수가 원인을 알아내었다니 반신반의할 수밖에...

풍수의 이야기는 이랬다. 비가 조금 오면 모르겠지만 이번처럼 큰 비가 내리면 별량과 상사의 경계에 있는 귀남이재 정상에 있는 바위가 빛난다는 것이다. 바위를 덮고 있던 흙먼지들이 쓸려 내려가기 때문이다. 그 빛이 회룡마을에 비쳐 부녀자들이 바람이 난다는 것이다.

믿기 힘든 이야기였지만 돌이켜보니 큰 비가 온 뒤에 마을 부녀자들이 이상해진 것 같기도 하였다. 그래서 마을 남정네들을 시켜 귀남이재 정상에 있는 바위에 흙을 덮게 하였다. 그랬더니 신기하게도 마을 부녀자들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그래서 큰 비만 오면 어김없이 회룡마을 사람들이 귀남이재 정상에 있는 바위에 흙을 덮어놓고 갔다고 한다.

장학마을 뒤편으로 송골재가 있다. 송골재에는 고인돌이 하나 있는데, 옛날 어느 봄날 송골재 고인돌 위에서 스님 한 분이 웃옷을 벗고 이를 잡고 있었다. 이것을 본 마을 청년들이 스님을 골탕 먹이려고 대태(자루에 콩을 넣은 것)를 머리에 매고 양팔을 뒤로 묶었다. 그리고는 대태에 물을 부었다. 처음에는 괜찮지만 콩이 물에 불면 점차 머리를 옥죄어 고통이 아주 심하게 된다. 그러자 스님이 살려주면 마을이 더욱 잘 살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준다고 했다.

솔깃한 청년들이 스님을 풀어주자 스님은 송골재를 뚫고 뒷골에서 흐르는 물줄기를 바람등 서쪽으로 돌리면 부촌이 된다고 일렀다. 예사 스님이 아닌 것 같아 마을 청년들이 그대로 따랐다. 그랬더니 그 뒤부터 동네가 점차 쇠퇴하였고, 설씨들이 맨 처음 들어와 살았는데 모두 떠나갔다.

◇ 별량과 상사의 경계에 있는 귀남이재. 군암(軍岩)재라 한 것이 귀남이재가 되었다. 지금은 상사로 넘어가는 도로가 나 있다.

◇ 별량과 상사의 경계에 있는 귀남이재. 군암(軍岩)재라 한 것이 귀남이재가 되었다. 지금은 상사로 넘어가는 도로가 나 있다.



글 허석/사진 이종철
제501호-201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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