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용어 기초지식 석연원 옮김 2564. 4. 8.
제1장 불교란 무엇인가?
1. 불교의 정의
불교는 문자 그대로 풀어 보면 '부처님의 가르침'이란 뜻이다. 따라서 인간의 번뇌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깨달음의 도를 성취할 수 있도록 불타의 가르침을 전해 주고 실천을 도와 주는 종교라 할 수 있다.
불은 불타를 말하는 것으로 인도어인 'buddha'의 음역이다. 각자(깨친 자)란 의미가 담겨 있으며, 우주와 인생의 진리를 깨쳐 통달한 존재를 가리킨다. 석존은 석가모니 세존의 약자로, 석가모니란 석가족 출신의 성자라는 뜻이다. 세존은 부처님을 가리키므로 석가모니불(Sakyamuni-buddha) 이라고도 한다. 또는 석가족의 성이 고다마(Gotama)인 관계로 석존을 고다마불(Gotama-buddha)이라고도 부르는데, 2,500년 전 인도의 석가국에서 태어나 불교를 창시한 인물이다.
불교의 가르침에 의하면 모든 사람은 불타가 될 수 있지만 '성불(부처님을 이룬다는 뜻)'이라는 단어 또는 '성불하다'는 표현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대승불교가 형성되면서부터다. 불타를 완전한 인격자로 해석한다면, 불교는 인격의 완성을 목표로 하는 것이 되므로 불교는 '불타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수행하는 종교'라 정의할 수 있다.
2. 불교의 분류
불교는 보통 다음의 세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2승 또는 3승, 둘째 원시불교•부파불교•대승불교, 셋째 남방불교•북방불교로 나눈다. 그 밖에 현교•밀교와 자력교•타력교등이 있다. 이것은 주로 일본 불교에서 분류하는 기준이다.
※ 현교•밀교의 분류 공해(홍법대사)의 진언밀교에서 분류한 것으로, 불교의 참뜻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므로 밀교라 하며, 밀교 이외의 언어로 나타내는 모든 불교를 현교라 한다.
※ 자력교•타력교의 분류 친란등이 주장하는 정토교로, 아미타불에게 절대적으로 귀의 신봉하여 왕생 정토하는 가르침을 타력교라 한다면, 자기 스스로 정진하여 완성을 목표로 하는 성도문을 자력교라 할수 있다.
1) 2승•3승에 의한 분류
불교는 이를 두 종류로 나누어서 2승이라 하고, 또는 세 종류로 나누어서 3승이라고도 한다.
(1) 2승
2승이란 소승과 대승, 또는 성문승과 보살승을 말한다. 소승은 성문승을 가리키고, 대승은 보살승을 가리킨다. '소승과 대승' '성문승과 보살승'은 같은 의미다. 여기서 승(yana)은 타는 것이란 의미이며, 불교가 차안의 현실세계에서 어리석게 고통받고 있는 중생들을 피안의 이상세계로 태워다 건네 주는 역할을 한다고 해서 승에 비유한 것이다. 또한 대승•소승과, 성문승•보살승 이외에도 소승을 가지고 2승이라 부를 때도 있다. 이 경우에는 성문승과 연각승을 가리킨다.(이것은 3승 가운데 처음의 둘을 가리키는 말이다. 다음 <3승>의 설명 참조)
1) 소승불교 소승은 열승이라고도 하는데, 혼자만이 탈 수 있는 작고 힘없는 수레라는 뜻이다. 그것은 자기 자신만의 구제나 완성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소승이라 부르는 것이다. 또한 성문승이라고 하는 이유도 소승불교에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는 것만으로 깨침을 얻기 때문이다. 성문은 제자를 가리키는 말로, 10대제자를 시작으로 부처님의 제자는 모두 성문에 속한다.
소승이나 성문이라는 명칭은, 대승불교 쪽에서 부파불교를 가볍게 보아 부르는 말로, 부파불교는 스스로를 소승이니 성문이니 하고 부르지 않는다. 천태의 교학 등에서는 소승불교를 삼장교 또는 줄여서 장교라고 부른다. 소승의 가르침이 경•율•론 3장으로부터 성립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100년 전 중국이나 한국, 일본 불교에서는 소승불교 가운데 부파불교 뿐만 아니라, 부파 이전의 원시불교까지 합쳐서 소승이라고 불렀지만, 형식적인 부파불교는 소승이라 지칭할 수 있으나 원시불교나 근본불교인 초기불교를 소승이라 할 수 없다 해서 구분해서 부르게 되었던 것이다.
2) 대승불교 대승을 음역하면 마하연이 된다. 크고 훌륭한 수레라는 뜻이니 자신만의 성취로 완성을 이루는 데서 나아가 다른 사람들도 깨치게 해서 완성이 되도록 널리 책임을 지고 가르치는 것을 뜻한다. 말하자면 소승불교와 달리 자기도 이롭고 다른 사람도 이롭도록 하는 것이 대승불교이다. 따라서 그러한 이상을 가지고 완성된 인간인 불타가 되는 것이 보살승(bodhisattva-yana) 또는 불승(buddha-yana)으로 대승불교의 뜻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3) 대승과 소승의 다른 점 원시불교 다음으로 불멸 후 100년경부터 성립된 부파불교는 차츰 형식적으로 변하면서 불교 본래의 목적을 상실하게 되었다. 따라서 부처님의 바른 정신에 복귀하려는 운동이 불멸 후 400년경부터 일기 시작하였는데, 이것이 바로 대승불교인 것이다. 부파불교를 소승이나 성문승이라고 이름하여 경시하는 반면 이러한 움직임이야말로 바른 불교의 정신으로 받아들여져 대승이라 일컬어졌던 것이다. 여기서 부파불교(소승)와 초기의 대승불교와의 다르게 나타나는 특징을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부파불교> 아라한이 되는것을 목적으로 하는 성문사상(성문승), 업보윤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 타율주의( 업보사상),자기만의 완성과 해탈을 위해서 수행 노력하는 자리주의( 소승), 성전의 언구에 집착해서 사물에 구애되어 있는 것같이 보이는 태도, 이론적이고 학문으로만 치우치는 경향이 많고, 이론의 실천은 별로 보이지 않음(이론적), 출가 수행 전문이면서도, 그 경지는 세속적으로 아집이 세고 저속함( 저속의 출가불교) < 초기 대승불교 > 불타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보살사상(보살승), 성불의 원행을 행해서 자기 스스로 원하여 가는 자율주의( 원행사상), 일체중생을 구제하고 사회 전체를 정화 향상시키는 이타주의(대승), 반야의 지혜에 의해서 무아•무집착인 공의 태도(공), 이론이나 학문보다는 신앙의 실천을 중요시하고, 그 실천이 헛되지 않도록 기초가 되는 초심을 중요시(실천적), 재가의 대중적이면서도 경지가 높아 제1의적(승의의 재가 불교)
대승불교도 중기 이후부터는 철학적 이론이 중시되면서 이론적으로 치우치게 되었다. 이 시점으로부터 말하면, 종교면에서 불교의 신앙적 실천을 대승불교에서는 첫째 보리심을 강조했고, 둘째 발보리심의 원천으로써 불성 또는 여래장 사상에 대해서 철학적 고찰을 중시했고, 셋째 무아설을 인무아(아공) • 법무아의 2무아(2공)를 설했고, 넷째 심식작용을 6식의 표면심 뿐만 아니라 말나식, 아뢰야식의 잠재심 등을 설했고, 다섯째 보살론•불신론•불토론•열반론 등에 대해서 상세히 철학적 고찰이 되어 있다. 이는 소승불교나 초기 대승불교에서는 보이지 않던 점이다. 그래서 소승과 대승과의 특수하게 다른 점을, 부파불교와 초기 대승불교에서 서로 다르게 나타나는 점을 보충해서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 성문승과 보살승 불멸 100여 년 후 부파불교 시대가 열리면서 불교의 개조가 되는 불타는 신격화되어 특별한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불타는 불제자들과는 달리 처음부터 특별한 성격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불제자들한테서는 보지 못하는 18불공법이나 32상 80종호 등의 특별한 상호(위인의 상)를 갖추었다는 것이다. 불타가 보살 시대에 삼아승지백대겁이라는 긴 세월 동안 바라밀 등의 갖가지 선행을 닦아 온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반해 불제자들은 오직 불타의 가르침만 듣고, 그것을 좇아 수행하는 것뿐이므로, 불타가 될 수는 없고 겨우 성문의 최고 깨침인 아라한과를 얻는 데 멈춘다는 것이다.(18불공법은 제2장 `불타론'의 설명 참조)
※ 32상 80종호 부처님 보살 시대에 백대겁을 거치면서 선행을 닦은 결과 보통사람에게는 없는 32가지의 좋은 상호와, 그 밖에 80종의 특징을 가지고 태어나셨다고 전해진다. 이것을 특별히 훌륭한 상호라고 일컫는다. 이 상호를 구비한 자는 3계의 대도사가 되어 불타가 되든지, 4천하를 덕으로 통치하는 전륜성왕이 된다는 요지인데, 부처님 시대에는 상호에 관한 학문이 성했던 모양이다. 말하자면 부처님 당시는 사회를 구제하는 이상적 인물로서 정신계에는 불타, 세속계에는 전륜왕을 꼽았던 터라 보통사람에게는 없는 32상 80종호를 가지고 있다고 전해졌던 듯싶다. ※ 삼아승지백대겁 간략히 삼지백겁이라고도 하는데, 삼아승지겁과 백대겁을 의미한다. 겁(kalpa)에는 소겁. 중겁. 대겁 등이 있고, 80겁의 중겁이 1대겁이 되고, 그 80중겁의 사이에 우리들의 세계가 형성되어 발생하는 때를 생겁, 존속하는 때를 주겁, 파괴되는 때를 괴겁, 부서져서 아무 것도 없어지는 때를 공겁이라 한다. 요컨대 겁이란 수백천억 년의 긴 세월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 백 배가 백대겁이 되므로, 아승지의 배가 곧 아승지겁이 된다. asankhyeya의 음역인 아승지는 '셀 수 없는 숫자'라는 의미인데, 10의 140승에 상당하는 것으로, 인간으로서는 더 이상 셀 수 없는 궁극을 의미한다. 아승지겁의 셋이 삼아승지겁이 된다. 결국 부처님의 후보자로서의 보살은 삼아승지겁인 한량없는 긴 세월 동안 바라밀(paramita) 등의 선근공덕을 쌓아야만이 부처님이 된다는 것이다. 보살이나 바라밀에 대해서는 다음에 설명한다.
성문의 깨침에 있어서, 성위는 4향4과의 여덟 단계가 있다. 수다원향(예류향). 수다원과(예류과). 사다함향(일래향). 사다함과(일래과). 아나함향(불환향). 아나함과(불환과). 아라한향, 아라한과가 그것인데, 맨 마지막의 아라한과가 최고의 깨침이 된다. 아라한과를 얻은 자는 모든 것을 다 배워 마쳐서 더 이상 배울 게 없다는 뜻으로 무학이라고도 이르고, 또는 일곱 단계의 배움을 거치는 성자라 해서 유학이라고도 일컫는다. 유학의 가운데 최초의 수다원향은 견도의 단계로 치고, 다른 여섯 개는 수도의 단계로 친다. 견도는 이론적 번뇌[견혹]를 끊는 단계이고, 수도는 습관적 번뇌[사혹 또는 수혹]를 다 끊은 단계이므로, 양쪽의 일체 번뇌를 다 끊어 버린 단계가 아라한과[무학과]를 성취한 깨침이 된다.결국 성문으로서 최고의 깨침은 아라한과가 되는 것이다.
이에 비해 대승불교 쪽에서는 모든 사람은 불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보리심을 발함으로써 보살이 된다고 주장한다. 원을 세워 스스로 깨달아 6바라밀 등의 수행을 쌓으면 누구든지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금생에 부처를 이루지 못하면 미래에는 꼭 성불한다'는 자각의 결의를 가지고 정진하면 언젠가는 꼭 성취한다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성문승과 보살승의 가장 큰 차이점이다.
대승에서는 '일체중생 실유불설'이라고 해서, 모든 인간(다른 동물도 포함)은 부처가 될 수 있는 바탕인 불성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보리심은 바로 도심이며 깨침을 구하는 마음이다. 보리심을 일으키는 자를 보살이라 부르는데, 보살은 동시에 사홍서원 등의 원을 갖는 존재이다. 사홍서원이란 모든 보살이 공통으로 갖는 네 개의 서원으로서, 중생무변 서원도(한도 끝도 없는 중생을 제도하고 구제해서 맹세코 해탈을 이루도록 서원함), 번뇌무진 서원단(깨침을 방해하는 한량없는 번뇌를 맹세코 끊어서 멸하기를 서원함), 법문무량 서원학(한량없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두 배우기를 서원함), 불도무상 서원성(위없는 부처님의 도를 반드시 성취하기를 원함)이 그것이니,다른사람도 구제하고 자기 자신도 완성을 이루기 위한 원을 이르는 것이다. 보살이란 보리살타(bodhi-sattva)를 줄인 말로, 각유정, 또는 개사라고도 번역한다. 보리는 각(깨침), 살타(saytva)는 유정(중생 또는 함식)을 의미한다. 결국 깨침을 목적으로 구하는 자를 가르키는 말이니, 다른 사람도 깨침을 얻도록 노력하는 의미도 들어 있다. 보살은 긴 수행 기간 동안 바라밀 등의 선행을 닦는다.(이것은 다음의 `대승과 소승' 참조)
¡¡ 업보사상과 원행사상 성문의 가르침에 의하면, 최고의 깨침을 얻은 아라한은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의 세계에 도달하는 것을 최고의 이상으로 삼는다. 그러나 이는 남음이 없는 열반이라고 해서, 육체가 죽은 후 윤회에서 벗어난 상태라고 한다.이것은 어디까지나 업보윤회의 인과만을 문제시하여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 열반의 즐거움만을 얻고자 하는 것이므로 일신상의 문제만을 목적으로 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비해 대승보살의 수행이란 보리심을 일으켜 다른 사람이 먼저 성취하도록 원을 세우는 게 우선이므로, 소승과 같이 새요ㅏ윤회를 벗어나 죽음이 없는 열반에 자신만이 다다르려고 하는 것과는 다르다. 따라서 괴로움과 즐거움에 집착함이 없고, 업보윤회에도 끌림이 없이, 오직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서 스스로 험하고 고통스러운 세계에 뛰어들어 고난을 감수하는 것이다. 말하자면 오직 중생을 구제하겠다고 하는 서원이 있을 따름이다. 이것은 자주적이고 자율적인 자세로, 업보 고락에 좌우되는 타율적 행위와는 구별된다. 윤회(samsara)는 생사라고도 하는데, 번뇌에 둘러싸인 범부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즉 선악의 업보에 지배를 받는 결과 선업을 쌓은 사람은 천상이나 인간의 선취(선도)에 태어나 복락을 받고, 악업을 범한 사람은 그 보를 받아서 지옥. 아귀. 축생 등의 악취(악도)에 떨어져서 고통을 받는다는 뜻이다. 여기에 오도, 또는 수라(아수라)를 더해서 '6도의 생사에 윤회한다'는 표현을 쓴다. 이러한 생각들은 불교 이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도 전반에 널리 퍼져 있던 일반적인 사상이다. 열반은 nirvana(nibbana)의 음역으로서 고요하다, 적멸이라고도 번역한다. 불교 이전에는 불사(감로)라고 했다. 생사윤회를 벗어난 이상의 상태를 가리키는 말로서, 욕심(탐욕). 분노(진에;날라서 사라진다는 뜻). 우치(어리석음). 즉 일체의 번뇌가 불을 끄는 것과 같이 순간 사라지고, 또는 모든 번뇌의 불을 불어 끈 것과 같은 상태를 말한다. 말하자면 최고의 깨친 경지인 것이다. 부파불교 시대에는 열반을 남음이 있는 유여열반과 남음이 없는 무여열반의 두 종류로 구분했다. 유여열반이란 업보에 의해서 태어난 육체가 남아 존재하는 동안의 마음의 열반을 의미하고, 무여열반이란 육체가 남아 있지 않은, 마음과 몸이 함께 열반에 든 상태를 이르는데, 말하자면 완전열반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생각은 외교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불교 본래의 가르침과는 다르다. 그러나 부처님의 죽음을 무여열반이라고 하여, 이것을 반열반(parinirvana, parinirvana 원적, 완전열반)이라고 일컫는다.그러던 것이 나중에는 열반 그자체가 부처님이나 성자들의 죽음을 의미하게 되었고, 열반경. 열반상. 열반회 등으로 두루 쓰이면서 열반은 부처님의 죽음, 사몋을 의미하게 되었던 것이다. 소승 부파불교에서는 열반의 개념이 전술한 두 가지였지만 대승불교에서는 이 두 가지 외에 자성청정열반과 무주처열반이 더해져서 네 가지로 언급했다. 이 중 자성청정열반이란 모든 존재의 근본이 되는 진여(연시의 진리)를 열반이라고 한 것으로써, 즉 일체제법의 진리가 되는 법성연기를 자성청정열반이라고 한다. 무주처열반이란 생사에 머물지 않고 열반에도 머물지 않는 열반으로서, 생사를 싫어하지도.않고, 열반을 바라지도 않아서, 생사나 열반에 집착함이 없어 중생구제의 자비활동에 전념하는 상태다. 따라서 참으로 이상적인 열반은 무주처열반이라 할 수 있겠다. 이것을 생사즉열반이라고도 한다.(열반은 제4장 '열반적정' 참조)
¡¡¡ 소승과 대승 성문의 가르침은 자신을 완성하기 위한 4제, 8정도를 근본 학설로 한다. 4제, 8정도만 이루면 자신의 인격이 완성됨과 동시에 다른 이를 구제하기 위해서 활동하게 된다. 성문으로써 최고의 깨침을 얻은 아라한이라고 해도 독선적으로 자기 완벽만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을 교화 구제하는데 힘을 쓰게 된다. 오늘날 아라한(arhan, arahan)을 응공이라 번역하듯이, 다른 사람으로부터 공양이나 존경을 받을 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로서 세인을 교화하며 그들에게 복덕과 이익을 전하고 그에 상응하는 세인의 존경과 공양을 받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아라한이 결코 세간과 교섭 없이 독선만을 행하는 것은 아니다. 성문이 자기의 이익만을 취한다고 하는 것은 대승으로부터 부당한 비난이다. 대승불교 운동이 일어날 때의 부파(소승)불교는 세상 사람들을 교화, 지도할 만한 종교성이 상실되어 있는 상황이어서 이러한 비난이 대두됐을 것이다.(아라한은 제2장 '여래10호' 응공의 설명 참조) 자기의 인격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4제, 8정도만 가지고도 충분하지만, 대승불교에서는 이것만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이에 대승불교에서는 보살의 수행방법으로서 8정도를 채용하는 대신 6바라밀을 독자의 수행 방법으로 들었다. 8정도는 자신을 완성하기 위한 항목밖에 없으므로 보시나 인욕과 같은 사회를 위한 항목이 들어있는 6바라밀이 보살의 수행방법으로 적당하다고 본 것이다. 그리고 6바라밀의 수행법에는 보시를 최우선에 넣은 다음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보시나 자선을 행하며 상부상조하며 살아가는 것을 최고 이상으로 삼았다. 요컨대 대승이란 많은 사람들을 구제하는데 목적을 둔 큰 수레이고, 부파불교는 개인의 수양이나 완성만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조그만 수레라고 규정지은 것이다.
4제, 8정도에 대해서는 제6장에서 설명을 하겠지만, 8정도와 6바라밀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표시하면 아래 도표와 같다. 이 도표를 보면 6바라밀에는 8정도의 모든 행이 들어가 있는데, 8정도에는 보시나 인욕이 없다. 이 두 가지는 사회적인 것으로, 대승의 특질이라고 할 수 있는 이타행이 된다. 8정도:정견, 정사유, 정어, 정업, 정명, 정정진, 정념, 정정 6바라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 8정도의 정견, 정사유는 6바라밀의 지혜에, 8정도의 정어, 정업, 정명은 6바라밀의 지계에, 8정도의 정정진은 6바라밀의 정진에, 8정도의 정념, 정정은 6바라밀의 선정과 같다. ※6바라밀과 10바라밀 먼저 보살의 수행법인 6바라밀에 관해 간단히 설명하자면, 바라밀은 바라밀다라고도 음역한다. 의역을 하자면 도, 도무극, 도피안이라고도 하는데, 이 말은 param(피안에)ita(이르다)라 해석해서 도피안이 되고, 바라밀의 수행에 의해서 생사윤회의 차안으로 부터 보리열반의 피안인 이상의 세계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 옛날 중국이나 한국, 일본에서는 바라밀을 이와 같이 해석했다. 그러나 본래 의미는 paramin(1) 보시 dana 단나, 단, 시 (2) 지계 sila 시라, 시, 계 (3) 인욕 ksanti 산제, 인 (4) 정진 virus 비리야, 진 (5) 선정 dhyana 선나, 선, 정려 (6) 지혜 prawns 반야, 지, 혜
보살과 삼지백겁의 사이, 6바라밀을 닦는다고 되어 있지만, 《화엄경》에서는 보살 10지수행에 10바라밀을 닦는다고 해서 6바라밀 다음에 4바라밀을 더한다. 그것은 다음의 네 가지다. (7) 방편 playa 구바야 (8) 원 pranidhana 서원 (9) 력 balance 마라 (10) 지 jnana 야나, 사도
※ 남방불교의 10바라밀 또한 남방 상좌부 팔리 불교에서는 보살의 수행법으로 위와는 다른 10바라밀(dasa-parami)을 설하고 있다. 그것은 (1)시(dana), (2)계(sila), (3) 출리(nekkhamma),(4) 혜(pana), (5) 정진(viriya), (6) 인욕(khanti), (7)체(sacca), (8) 결의(adhitthana), (9) 자(metta), (10) 사(upekkha)이다. 팔리 불교에서는 보살의 수행 기간 또한 북방불교와는 달리 4아승지백천겁( 시방)을 정해 놓은 바 있다.
※ 4선법 또한 보살의 수행법으로는 보시. 애어. 이행. 동사의 4선법[4섭사] 등이 있다. 이것은 보시를 중심으로 보살의 자비행을 모은 것이다.
iv 유와 공 부파불교는 '아비달마'로 통하는 교학을 면밀히 연구했지만, 그 내용은 부처님이 언급을 금한 유(존재)에 대한 것이 많았다. 부처님은 당시 외교(불교 이외의 다른 종교인)들이 문제화했던 실체의 유무(존재론, 실재론)에 의존해서는 절대로 인생의 재문제를 해결 할 수 없다고 보고, 이러한 문제를 취급하는 것을 금했다. 불교에서 문제시하는 것은 본체가 아니라, 우리들의 주위에서 생멸 변화하는 현상이다. 그 현상이 '어떻게 있는가?'(상태), 그것을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떻게 대처하면 좋은가?'(태도)만을 취급했을 뿐이다. 이를 연기설이라고 한다. 4제. 8정도. 12인연 등 불교의 기본학설 전부가 이러한 입장을 기준으로 한다. 그런데 부파불교가 유(존재)에 대해서 논의한 결과 불교 본래의 입장을 일탈함으로써 대승의 사람들은 부처님의 바른 가르침에 복귀해서 '어떻게 하여 있는가' '어떻게 있을 것인가'라는 반야의 공을 강조하게 되었고, 바른 연기설을 부활시켰던 것이다.
아비달마((abhidharma, abhidhamma)는 아비달마, 아비담으로 음역하는데, 논리나 대법을 의역한 것이다. 이것은 '법에 대하는것'이라는 뜻으로, 법이란 주지하다시피 부처님이 말씀하신 경전을 가리키며, 경전에 대한 설명. 주석. 연구 등 법에 대하여 설명하는 것으로 아비달마라고 한다. 경전을 주석하기도 하고, 그 용어를 정의, 설명하기도 하고, 그것에서 말하고 있는 교리와 학설을 조직, 정리하는 아비달마의 연구방법이 부파불교에서 크게 유행하여, 아비달마 연구문헌이 경전 이외에 독자적으로 성립되어 발달되었다. 이것을 아비달마 피다카(Abhidharma-pitaka), 즉 논장이라 칭하고, 원시불교 시대부터 존재한 부처님의 말씀인 설법집이나 경전을 모은 경장(Sutra-pitaka), 불교교단의 일상 생활 규칙을 모은 율장(Vinaya-pitaka)에 새로 성립된 논장을 더해 구성된 3장이 부파불교 시대에 이미 구비되었다. 각 부파는 자기 나름대로 3장을 전수받아 가지고 있었지만, 이 중 논장이 부파불교의 특색을 갖췄는데, 그것에서 형식적인 번쇄철학을 논하여, 부처님이 금지한 유무등의 존재론이 취급되었다. 이것은 소위 불교의 출가전문화, 이론화에 해당하지만 형식적으로 불교에서 제일로 주장하는 신앙이나 실천은 결여된 것이다.
v 이론과 실천 부파불교는 존재론 등에 대해서 상세하게 이론적 연구를 해온 결과 부파 상호간에 이론적 논쟁을 펼치게 되었지만, 정작 실천에는 관계없는 무의미한 논쟁만 일삼아서 실천 수행이나 종교 활동을 등한시하게 되었다. 대승에서는 이러한 병폐를 교정하기 위해 불필요한 이론보다는 신앙이나 실천을 강조했던 것이다. 또한 이론이라고 해도 원시불교와는 달리 실천행이 될 수 있는 기초의 범위 내에서였다.
vi 저속의 출가 불교와 승의의 재가 불교 부파불교에서는 아비달마에 의한 학문적 이론연구를 상세하고 면밀하게 행했지만, 일반 민중에게는 전문적이고 난해해서 신앙의 실천이라는 면에서는 필요 없는 것이 많았다. 이와 함께 지도적 입장에 있는 사람들은 사원 안에만 기거하여 전문적 교리 연구에만 몰두하게 되어, 불교를 종파로 하여금 전파 활동하는데 큰 장애가 되어 쇠퇴하는 원인이 되었다. 이에 대승의 사람들이 모든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쉬운 신앙적 실천불교를 제창하게 되었던 것이다. 보살의 수행법인 6바라밀이 바로 그것인데, 그 중 처음 설한 보시는 재가 일반의 사람들도 쉽게 받아들이고 실행할 수 있는 조목이다. 이러한 보시는 3륜공적의 입장에서 베풀어야 한다고 하여 베푸는 자와 받는 자는 주고받는 물건의 3자를 의식하지 않을 뿐 아니라 베푼 것에 대해 보은도 기대하지 않으며, 공무아의 진실한 자비심에 의해서 베푸는 것이므로, 보시라는 것은 최상의 진리가 된다. 이것은 보시만이 아니고, 계와 인욕, 지혜에도 모두 철저한 본질의 입장에서 최상의 승의여야 한다. 그래서 바라밀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결국 대승의 가르침은, 재가에 있어서 일상 생활의 모든 행위가 불교의 제1의적인 가르침이 되므로 생활의 터전이 그대로 불교 수행의 도량이 되는 것이다.
(2) 3승 3승은 성문승. 연각승. 불승의 세 가지를 일컫는데, 이 중 앞에서 언급한 소승은 성문승과 연각승의 둘로 나뉘고, 대승은 불승의 다른 말이다. 또한 성문승(소승)과 불승(대승)은 앞에서 설명한 바와 같다. 연각승(pratyekabddha-yana)은 벽지불승이라고도 한다. 연각(pratyekabuddha, paccekabuddha)을 음역하면 벽지불이 되며, 또는 독각이라고도 의역한다. 연각은 다른 이의 가르침을 들어서 깨치는 성문과는 달리, 다른 이의 가르침에 의존하지 않고 자기 스스로 인연을 일으켜 도리를 관찰함으로써 깨침을 얻는 것이다. 이는 중생을 구제하는 불타와는 달리 자기만의 깨침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산 속에 은둔하여 세상을 등지고, 세상의 사람들을 지도, 구제하는 것을 회피하기 때문에 독선적이라 할 수 있다. ※연각사상 부처님은 보리수 밑에서 연기의 도리를 관찰하고 정각을 성취하여 불타가 되고 난 후, 몇 주일을 선정사유를 계속하며 성도의 즐거운 향락을 느끼던 차였다. 부처님은 스스로 깨친 연기의 도리는 극히 난해한 것으로 세상에 내놓아도 이해하지 못 할 것을 알았다. 따라서 힘들게 말해서 이해하지 못할 바에야 차라리 말함을 단념하고 은둔하느니만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고 한다. 이때의 부처님은 말하자면 연각의 상태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범천이라는 신이 부처님 앞에 나타나 '만약 부처님이 법을 설하지 않으면 세상 사람들은 더욱더 타락의 고뇌에 빠지게 될것이므로 설사 부처님의 설법이 난해한 것이라고 하여도, 설법하는 방법을 찾으면 이해하는 자가 나타날 것이므로 필히 설법하여 주십시오'하고 간청하므로 부처님은 범천의 청에 따라 결의하고, 그때부터 전도 교화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이다.(이는 제6장의 '4제설법의 경과' 참조) 이때의 부처님은 이미 연각이 아니라 정등각자로서의 불타이다. 한편 연각[독각]사상은 이미 불교 이전부터 존재한 것으로 보인다. 원시경전에도 연각에 대해 말하는 부분이 나온다. 이를테면 《중부》 116의 '선탄경'에는, 부처님의 말씀에 '선탄산'에는 옛날에 500명의 독각(연각)이 살고 있었다'는 구절이 나온다. 뒤에 부파불교에서는 독각을 두 종류로 분류했다. 집단으로 수행하는 부행독각과, 단독으로 수행하는 인각유(뿔이 하나밖에 없는 무소의 뿔처럼)독각이 그것이다. 옛날 성문의 가르침은 4제, 8정도였고, 연각의 가르침은 12인연이었고, 불보살의 가르침은 6바라밀이라고 했지만, 이것은 대승의 주장을 나열한 것에 지난지 않는다. 불교 역사상 연각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연각, 독각의 가르침도 없다. 따라서 3승의 가르침을 앞과 같이 구분하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4제. 8정도. 12인연. 6바라밀은 모두가 불교의 기본적 교리 학설이다.
2) 원시불교• 부파불교•대승불교의 분류 불교 교리는 시대순으로 나누면 원시불교•부파불교•대승불교로도 구분되는데, 이는 주로 인도 본토의 불교를 기준한 것이다. (1) 원시불교 일반적으로 부처님 당시부터 불멸 후 100년경까지를 초기불교라 이른다. 물론 그 불교교단은 분열이나 분파가 없이 모두가 한덩어리가 되어 원초의 모습 그대로였다. 일각에서는 이 초기불교의 전반을 근본불교로, 후반을 협의의 원시불교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근본불교란 좀더 순수하고 근본적인 부처님의 가르침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부처님과 함께 한 직계 제자들이 불멸 후 30년까지 생존해 있을 때까지의 불교를 가리킨다. ※ 원시불교의 자료 넓은 의미로서 원시불교를 '근본불교'와 협의의 '원시불교'로 나누는 것은 이론적으로 타당하다. 엄밀히 말하면 부처님의 불교는 직계 제자들이 이해하고 체득한 불교와는 달랐던 듯싶다. 그러나 현존의 자료로부터, 이와 같은 차이점을 끌어내기는 힘들다. 현존하는 불교 경전에서 가장 오래된 《아함경》이나 율장 등은, 부파불교에 의해서 전수된 것이므로, 그 틀이 갖춰지기 시작한 것은 부파불교가 성립되고 나서부터이다. 따라서 부파의 교리 학설과 영향을 주고받은 탓에 현존의 자료에서는 넓은 의미의 원시불교의 학설마저 확실하게 찾아낼 수는 없다. 그러나 현존하는 모든 부파가 전해 온 《아함경》이나 율장을 비교하여, 모든 부파가 공통으로 전하는 사항이나 학설을 끌어냄으로써 대체적으로 부파분열 이전의 원시불교의 대강을 추측할 수 있다.
(2) 부파불교 불멸 후 100여 년경부터 불교교단 속에는 계율이나 교리의 해석 등에 대해 서로 다른 설이 나타나, 보수파와 혁신파 사이에 의견 대립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혁신파는 대중부(Mahasanghika)라 칭하고, 보수파는 상좌부(Theravada)라 칭해서 전통을 형식적으로 지키기 시작했다. 이와 같이 최초의 대립과 분열은 불멸 후 100년경에 일어났다고 알려져 있다. 한 번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하자 그 후부터는 교단 내에서 더욱 세부적인 면에까지 의견 대립이 빈번해지면서 순차적으로 인도 모든 지방에까지 발전•보급되었고, 근본의 두 파벌 내에서도 그 나름대로 분파가 계속되어 더욱더 세분화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300년후에는 18부, 또는 20부라고 칭하는 부파들로 분열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분열한 모든 부파의 불교를 부파불교라 한다.
부파불교의 성전, 3장 이렇듯 많아진 부파에서는 제각각 성전이라고 칭하는, 원시불교 시대부터 전해 온 《아함경》(경장)과 율장을 다소 변화시키면서 유통시킨 아비달마라는 논장을 갖게 되었다. 아비달마란 '아함경'(달마)에서 말하는 어구를 정의•설명하기도 하고, 교리 학설을 조직하며 분류•정리하기도 하는 동시에, 철학적(신학적) 연구를 병행하여 부파시대에 와서 발달 성립시킨 것이다. 그 뒤 각 부파는 아비달마 문헌이라고 하는 논장을 제작하여 전하고 소지하게 되었다. (전항 '유와 공' 참조) 이에 각 부파는 근본 성전으로 부처님의 설법을 모은 《아함경》이라는 경장(Sutta-pitaka, Sutra-p.)과, 교단의 생활 규정을 모아 기록한 율장(Vinaya-pitaka)과, 철학서로서의 논장(Abhidharma-pitaka, Abhidharma-p.)의 3장(ti-pitaka, tri-pitaka)을 소지하게 되었다. 경장과 율장은 각 파마다 특징이 있지만, 원시불교 시대부터 전해오는 것이므로, 모든 부파 간에 공통으로 일치하는 점이 많다. 이에 비해서 논장은 각 부파가 독자적으로 제작한 것이므로 공통점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부파 간의 개성이 강해서 다른 점이 많다. 경장과 율장에는 부처님의 말씀이 들어 있지만, 논장은 그 다음 시대에 성립된 탓에 형식적이고 번쇄한 철학적 이론을 많이 취급하여 일반 불자에게는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부파분열의 원인 전통적으로 크게 두 가지로 구분하는데, 그 하나는 다음과 같다. 계율의 해석과 적용에 대하여 의견이 다른 형식적인 보수파에 대해서 혁신파는 실제적으로 그 시대나 지방의 풍습과 습관, 기후, 풍토에 적응할 수 있도록 계율 및 규정을 고쳐야 한다며 10개조의 규정에 대한 독자적 의견을 주장했던 것이다. 이때가 불멸 후 100년경으로 베사리의 비구들 사이에서의 일이다. 이에 대해 보수파인 장로들은 앞의 10개조의 의견을 비법이라고 하여 배제하였다. 이때의 충돌을 계기로 하여 보수파인 상좌부와 혁신파인 대중부가 분열하기에 이른 것이다. 또 하나의 설은 다음과 같다. 불멸 후 100여 년경 불교교단에서 교설 학설에 대해서 5개조의 다른 설을 주장하는 자가 나타났다는 것이다. 형식을 중시하는 장로들인 보수파에서는 이를 반대했지만,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는 혁신설에 찬성하는 자가 많았던 탓에 결국 의견의 대립이 생겨 상좌, 대중의 근본2파의 분열이 나타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당시의 교단에서는 율장 가운데 계율 규정이나 경장 속의 교리 학설에 대해서 그 해석이나 분류•정리 등의 학문적 연구가 있어, 거기에서 다른 학설이 나타나게 되었다. 따라서 아쇼카왕이 불교를 신봉하여 인도.내외의 전지역에 선포, 확대되면서부터 모든 지방의 불교교단 사이에 서로 교섭 연락이 끊어진 것과, 교리 학설이 서로 다른 것이 원인이 되어 부파는 더욱 세분화하게 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각 부파는 아비달마 문헌을 각자 제작하게 되었고, 경•율•론 3장을 원칙적인 성전으로 제각기 소지하면서 전하게 된 것이다.
※부파분열의 전통성 18부 또는 20부라고 하는 부파불교가 제각기 어떠한 특징을 지니고 있느냐는 것은, 각 부파에 따라서 다소 다른 점이 있다. 오늘날 전하고 있는 부파설에는 10여 종이 있지만, 그 대표적인 것으로는 팔리 불교(남방상좌부)의 설일체유부가 전하고 있는 두 계통의 분파설을 표시하도록 했다. 또한 후세 근본설일체유부에서는 설일체유부, 대중부, 정량부, 상좌부의 네 파가 모든 부파를 대표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며, 다른 부파는 이 네 파 어느 곳에든 소속이 되어 있다. 7세기 인도를 여행한 현장이나 의정은 이 네 파에 의거해서 당시 인도 불교의 제파를 소개하고 있다. 오직 서북인도지방(지금의 파키스탄)의 불교만은 이 분류에 따르지 않고 그 지방 5부파의 이름을 드러내고 있다. 설일체유부•화지부•법장부•음광부•대중부가 그것이다.
※ 현장이 가지고 온 제부파의 3장 따라서 현장 삼장이 인도로부터 제부파의 성전 사본( 이것을 패엽이라고 한다)을 중국으로 가지고 돌아온 것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다. ( '대당서역기' 12권) 상좌부경• 율• 론 14부 대중부경• 율• 론 15부 삼미저부(정량부)경• 율• 론 15부 미사새부(화지부)경• 율• 론 22부 가섭비야부(음광부)경• 율• 론 17부 법밀부(법장부)경• 율• 론 42부 설일체유부경• 율• 론 67부 이 중에서 현장이 한역한 것은 설일체유부의 논서 10여 부에 지나지 않는데 그 외에는 모두 번역하지 못했으며, 원본마저 없어지고 말았다.
이상 부파불교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한 것처럼 부파불교 시대란 원시불교 시대 이후 모든 부파가 성립되고 완성되어 대승불교가 흥왕하기까지, 즉 기원전 3세기부터 서기 원년의 200~300년간을 말한다. 그러나 서기 이후에도 부파불교(소승)는 대승불교와 함께 인도 각지에 전파되어 그 세를 유지해 왔다. 현장에 의하면 7세기경 인도 각 지방의 사원이나 승려들의 수에서는 대승보다는 소승쪽이 더 많았다고 한다. (현존하는 모든 부파의 삼장성전에 대해서는 제2장의 3보 가운데'제1결집'이하 참조)
(3) 대승불교 대승불교는 부파불교가 형식화되며 학문에만 치중하여 불교 본래의 정교활동을 등한시하자 불교를 본래 모습으로 복귀하자는 취지로 일어난 운동의 일환으로서 대개 서기 1세기경에 비롯된 새로운 불교 운동이다. 이 새 불교는 종래의 부파불교를 소승, 혹은 성문승이라고 낮춰 부르면서 경시 배척하며 부파의 삼장성전과는 다른 독자의 성전을 부처님의 말씀으로 삼아 제작했다. 이것이 대승경전이며 그 작자는 물론 알 수 없다. 그들의 신념에 의하면, 부처님이 이 시대에 법을 설했다고 한다면 이와 같이 설했을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실한 불법으로, 이곳에 전해진 말씀이 부파불교가 가지고 있는 성전보다는 부처님의 참 정신을 더욱 잘 나타내고 있다는 신념을 갖고, 객관적으로 보아도 타당하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 불설과 비불설 새로운 대승경전에 대해서, 부파불교에서는 이것은 악마의 말이며 부처님 말씀은 아니라고 비난했다고 한다. 대승비불설의 주장이 그것이다. 일본의 메이지 유신 이후 서양의 역사 연구법이 일본에 채용되면서 일본의 역사학자들 사이에서도 '대승은 역사상 불타의 말씀이 아니므로 부처님 말씀이 될 수 없다 ' 고 간주하는 이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부처님의 말씀이란 무엇인가, 이것이 문제가 아닌가. 석존의 설법 그 자체가 부처님 말씀이라고 한다면 원시경전으로 분류되는 '아함경' 속에도 부처님 제자들의 말씀이 상당수 차지하고 있으니 그것도 일종의 비불설이 되는 것이다. 또한 부처님 말씀이라고 하는 '아함경'도 현재와 같은 경전이 되기까지는 불멸 후 수백 년이 지난 뒤였다.그 동안 제자들이 기억을 더듬으며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더듬어 가며 변화시킨 것이라, 반드시 부처님의 설법이라고만 할 수 없다. 이와 같이 엄밀히 말하면 원시경전이라고 하여도 부처님 말씀 그대로라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오늘날에 와서는, 불타의 참뜻을 전하고, 불교의 법을 바르게 말한 것은 부처님 말씀으로 보는 것이 학계의 통설로 되어 있다. 이런 의미에서 대승경전도 부처님 말씀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불교의 융성과 쇠퇴 새로운 대승불교 운동에 대해서 부파불교측에서도 공감하는 이들이 많이 나와 이 운동은 급속도로 인도 각지에 확산, 보급되었다. 부파불교도 대승불교에 상응하는 반성과 개선이 행해졌던 것이다. 양자 사이에는 대립과 항쟁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점점 양자는 협력을 해서 오히려 불교의 전성기를 연출하게 되었다. 원래 인도에서는 불교가 기원전 3세기부터 기원후 5세기경까지 수백 년간 다른 종교나 철학 등 제파를 누르고 더욱더 융성했기 때문에 서양의 학자 가운데는 이 시대의 인도를 '불교의 인도'라고 말하는 사람까지 있지만 이는 과대한 평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어느 정도 불교가 번성하기는 했지만 실제로는 민중의 정신적 상부 구조에만 영향을 미쳤을 뿐 하부 구조인 풍습이나 습관, 계급 제도까지는 미치지 못하여서 사회를 전반적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었으며, 또한 그것을 목적으로 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불교가 번성했던 시대의 인도에서나 힌두교적 하부 구조인 사회 조직은 그대로 정체돼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바로 불교가 인도 땅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한 이유인 것이다. 인도에서는 4, 5세기경부터 정통 민족 종교인 힌두교가 다시 일어나 점점 세력을 넓히며 민간신앙을 흡수함과 동시에 한편으로는 불교의 훌륭한 학설이나 계율 등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결국 기본적인 불교의 정신은 힌두교로 흡수되고, 이에 반해 불교는 정반대로 전문적 교리나 학문의 연구에만 전진하면서 신앙의 실천면에서는 뒤떨어지기 시작했다. 게다가 7, 8세기 이후에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졌다. 이때는 이미 이슬람겨가 침입하여 자연히 그 세력을 확대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이슬람교도들은 무력으로 다른 종교를 공격했던 탓에 불교도 그 때문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다. 경전은 불태워졌고, 불상이나 사원은 파괴되었으며, 승려들은 살육되는 등 인도 본토의 불교는 1,200년경 거의 멸망하여 흔적조차 없게 되었다.
대승불교의 3기 인도의 대승불교는 초기. 중기. 후기로 대별된다. 여기에는 성격. 사상. 문헌 등에 있어서 각자 다른 특징이 있다.
초기 대승불교 서기 전후부터 서기 300년경까지의 불교로, 대승불교가 근원적이고 순수한 형태로 존재한 시대이다. 불교 신앙을 중심으로 부처님의 참 정신을 더욱더 발휘하고 실천한 시기이기도 하다. 이런 점은 초기 대승경전이나 논서(철학)에서 잘 나타나 있다. ※ 초기 대승의 경론 초기 대승경전에는 《반야제경》('대반야경'. '대반야품'. '서품반'. '금강반야'. '이취반야'. '반야심경'. '인왕반야' 등) • 《유마경》 • 《화엄경》(60권본, 80권본, 40권본 등)• 《법화경》• 《무량수경》등이 있는데, 이 경전을 연구한 학자로는 용수•제파 등이 있다. 용수는 《중론》 • 《십이문론》• 《대지도론》 • 《십주비파사론》• 《회쟁론》 이외에도 많은 저술을 남겼고, 제파는 《백론》 • 《사백론》 등을 썼다.
중기 대승불교 서기 300년부터 650년까지의 사이의 불교를 가리킨다. 이 시대에 이르러서는 대승불교도 점점 철학적, 학문적으로 기울었던 탓에 철학적인 연구와 고찰에 힘썼다. 당시에는 외부의 사상들이 유입되어 크게 흥왕한 나머지, 이를 테면 6파철학 등이 대성황을 이룰 때이므로, 이에 대응하기 위해서 불교에서도 철학적 이론을 전개할 필요가 있었다. 대승뿐만이 아니고, 부파(소승)불교에서도 상세하고 치밀한 철학사상을 발전시킨 것도 그러한 시대적 흐름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반면 민중신앙의 실제라고 할 수 있는 종교적 실천 면으로는 소홀해진 나머지 종교로서의 불교는 쇠퇴해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이유로 중기 대승불교의 문헌은 경전이나 논서조차 철학서의 양상을 많이 드러내고 있다. 또한 중기 대승불교는 인도 불교의 전 역사를 통틀어서도 그렇지만 인도 철학 전체에서 가장 우수한 철학사상을 가지게 되었다. ※ 중기 대승의 경론 중기 대승경전은 사상적 면에서 세 계통으로 대별된다. 첫째, 《여래장경》 • 《승만경》 • 《대승열반경》등과 같은 여래장 불성을 설한 경전 둘째, 《해심밀경》 • 《대승아비달마경》 등과 같은 유가행파 계통의 경전 셋째, 《능가경》과 같이 앞의 두 가지를 총합한 경전이 그것이다. 이외에도 《금광명경》 • 《보적경》 • 《대집경》 등이 있다. 중기 대승경전을 연구하는 한편 교리를 조직하고 해석한 학자는 참으로 많다. 미륵• 무착• 세친• 천친• 안혜• 견해• 진해• 진나 • 호법 등인데, 그들이 저술한 철학서로는 유가행파에 《유가사지론》 • 《섭대승론》 • 《대승장엄경론》 • 《유식이십론》 • 《유식삼십송》 • 《성유식론》 등이 있고, 여래장 계통으로는 《불성론》 • 《보성론》 등이 있으며, 이 양자를 종합한 《대승기신론》이 있다. ※ 중기 시대의 불교 제파 이 시기에는 많은 중기 대승경전이나 논서가 중국으로 전해져 한역되면서 남북조 시대로부터 수 • 당 시대에 걸쳐 중국 불교에 꽃을 피웠다. 그 밖에 인도 불교의 중기에는 초기 대승의 《중론》이 연구 • 해석되면서 중관학파가 발생하여 크게 성행하였다. 그러나 이 학파에도 다른 설이 생겨 두 파로 갈라지는 한편 유가행파에도 분파가 생겨 중관과 유가행의 종합이 행해지기도 해서 더없이 복잡해지기도 했지만, 이러한 것이 중국으로 전해지는 과정에서 적쟎이 티벳어로도 번역되어 현존하는 것이 많다. 어쨌든 이 시기에 있어서 불교철학의 대표적인 것으로 대승에 있어서는 외교에도 채용된 것으로 중관학파(Madhymika)와 유가학파(Yogacara)가 있고, 소승에 있어서는 비파사파(Vaibhasika 설일체유부)와 경부파(Sautrantika)의 두 파가 있다. 중국에서 소승불교의 대표격으로 일컬어지는 설일체유부의 문헌으로는 《비파사론》 • 《잡아비담심론》 • 《구사론》 • 《순정이론》 등 수많은 글들이 있는데 대부분 한역되었다. 경부에 관계가 깊은 논서로는 《성실론》이 한역되어 있다.
후기 대승불교 7세기경부터 13세기까지는 불교가 인도 본토에서 멸망하기까지의 시기이다. 중기 대승불교가 철학적 이론과 주석학의 전문화에만 치중하여 민중신앙으로서의 실천을 등한시했기 때문에 이를 다시 종교활동으로 복귀하려고 일어난 것이 후기 대승불교이다. 그들은 중기의 학문적인 바탕을 계승하는 한편 민중의 이해를 돕기 위하여 상징적인 표현을 사용함으로써 불교의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다. 당시의 인도에서는 상징주의적 탄트라 문학이 성행했기 때문에 이 풍조를 좇아서 상징주의적인 후기 불교가 탄생했는데, 이를 진언밀교라 한다. 진언밀교에 따르면 손으로 인계( 손가락을 맞추어서 상징적 형상을 짓는 것)를 맺는 신밀, 입으로 진언을 외우는 어밀, 마음에 부처님이나 그 상징으로 종자( 범자를 관함)를 염하는 의밀, 이 3밀을 통해 불교 사상을 실현하려고 한 것이다. 이와 같은 상징적 불교는 고원한 철학사상을 쉽고 평범한 모양으로 이끌어 냄으로써 당시 불교의 본거지였던 동부인도지방에서 신흥불교로서 크게 유행하였다. 그러나 이 밀교도 민간신앙과 융합하면서 타락하기 시작하여 불교의 바른 이상을 상실하였고, 그 결과 다른 지방에서 힌두교나 이슬람교의 압박과 공격을 받아 인도 본토로부터 그 모습을 감추게 되었다.
※후기 대승불교의 문헌 후기 대승불교로는 《대일경》 • 《금강정경》 • 《소실지경》을 시작으로 여러 가지 진언다라니나 의궤(밀교의식)의 종류가 있다. 이밖에 많은 문헌이 한역되었으며, 티벳어로는 한역에 없는 많은 밀교 문헌들이 번역되어 있다. 티벳 불교인 라마교는 밀교계의 불교이므로, 인도 후기의 대승불교 연구를 위해서는 티벳에서 엮은 문헌이 더욱더 중요하게 취급되는 실정이다. 이는 중기 대승불교 시대의 주석서 연구에도 마찬가지다.
불교의 인도 이외의 전파 부파불교를 시작으로 초기, 중기, 후기로 이어진 대승불교는 점차 중앙아시아 또는 남방 해로를 통해서 1세기경부터 중국에 전해져 그 후 1,000년에 걸쳐서 경전등이 한역되었다. 또한 7세기경부터 인도 불교가 멸망할 때까지 수백 년간에 걸쳐서 인조의 경전이 티벳에 수입, 번역되었다. 자바. 수마트라. 보르네오 등의 남방지방에도 4, 5세기경부터 인도 본토의 불교가 전파되어 크게 번성했던 시대도 있었다. 중국 불교는 한국과 일본에 전파되어 오늘날에 이르렀고, 티벳의 라마교는 몽고, 만주(동북성)에 전파되었다. 한편 부파불교에서는 스리랑카. 버마. 타이. 캄보디아. 라오스 등의 남방지역의 상좌부불교가 전파되었으며 오늘날 깊이 신봉되고 있는 것은 다음에서 말하는 도리와 같다.
3) 남방불교와 북방불교 불교를 지역적으로 구분한다면 남방불교와 북방불교로 나눌 수 있다. 그러나 편의상 구분한 것이며, 주로 인도 본토로부터 남방에 전해진 것은 남방불교, 북방으로 나아가 형성된 것은 북방불교, 또는 북전불교라고 일컫는다. 지리적 위치로 보아서 남방불교는 북방불교보다 남방에 위치하므로 그렇게 부르기는 하지만 북방불교에 속하는 것이 옛날에는 남해지방의 자바. 수마트라 등에서 행해지고 있었으므로, 단순히 위치에 따라서 남과 북으로 나누는 것은 타당하지 못하다는 견해도 있다.
남방불교(Southern Buddhism) 오늘날 스리랑카. 버마. 타이. 라오스 등의 남방 지역에서 행해진 불교로서 남전불교라고도 부른다. 이는 소승 부파불교의 일파로서 상좌부불교(Theravada Buddhism),혹은 팔리 불교(Pali Buddhism)라는 명칭으로도 불린다. 팔리 불교라는 명칭은 불교가 옛날 인도말인 팔리어로 쓰여진 불교성전 3장을 전한 데서 기인한 것이다.
팔리어란 원래 성전어란 뜻이다. 팔리(Pali 성전)란 경•율•론 삼장성전을 가리키며, 그의 주석서에 대하여 근본 성전임을 의미하는 언어이다. 상좌부불교가 스리랑카에서부터 버마. 타이 등으로 전해지면서 각국의 비구들이 이야기를 듣고 글을 전할 때 모국어를 사용하면 상호간에 불교를 익혀 체득하는 데 불편하므로 공통의 성전어가 교섭, 교제의 실제 용어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그들은 이것을 성전어, 즉 팔리어라고 부른다. 근세에 와서 서양 사람들이 남방불교나 그 성전 등을 연구하게 되면서, 이곳의 비구들이 부르는 호칭에 따라서 '팔리어'라고 부르고, 이를 언어학적 명칭으로 사용하기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원래는 고대 서인도지방의 일상어로부터 유래한 것으로 피사차어(paisaci 마귀어)의 일종에 속한다. 언어학적으로 피사차어는 중기 인도의 아리아어로 푸라쿠리트(prakrit 속어)의 일종이다. 팔리어는 이 피사차어의 일종이지만, 그 속에는 부처님이 설법에 사용한 고대 마갈다어의 영향이 많이 섞여 있다. 원래 부처님은 모든 계급의 사람들이 설법을 차별없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 지방에 맞는 속어를 사용하도록 지시했는데, 부처님 역시 고대 마갈다어인 속어를 사용했다. 그래서 바라문교의 성전에 사용하고 있는 것과 같이 고급스러운 범어는 지식계급을 이해시키는 데만 사용되었고, 하층의 서민들은 이해하지 못하므로 불교를 전파하는 데 범어 사용을 금지하여, 반드시 그 지방 민중의 토속어를 가지고 설법하도록 엄명하였던 것이다. 팔리 불교는 원래 서부인도에 전파된 상좌부이므로 부처님의 법어인 고대 마갈다어로부터 서방 인도의 피사차어로 변한 것이 많다. 게다가 그 속에는 부처님을 연모하는 마갈다어의 특징이 적지 않게 남아 있다고 보아야 한다. 팔리어가 현존하는 푸라쿠리트(중기 인도 아리아어) 속에서 불교 범어를 빼면, 더욱 범어(Sanskrit 고전범어)에 가깝다. 또한 푸라쿠리트 문헌에는 많은 팔리어가 다량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팔리어는 남방 상좌부만의 성전으로서 다른 부파나 인도 문학에서는 사용하지 않았다. 기원전 3세기에 인도를 통치한 당시의 아쇼카왕이 불교를 신봉하면서 인도 전역뿐만이 아니고 스리랑카에까지 전파되었다. 팔리 불교가 전하는 바에 의하면, 당시 불교교단은 인도 내외의 각 지방 9개소에 전도사를 파견했는데, 스리랑카 섬의 불교 전도도 그 중 하나였으며, 섬에는 아쇼카왕의 아들로 출가한 마힌다(Mahinda)장로가 상좌부불교를 전하였다고 한다.
※ 9개소의 전도사 파견 팔리에 전하는 문헌에 의하면, 전도사가 파견된 지방과 전도사는 다음과 같다. • 카슈미르, 간다라(Kasmira, Gandhara; 서북 인도) 지방의 전도사는 마잔티카(Majjhantika 말전지) • 마히사만다라(Mahisa-mandala; 남방인도 동부) 지방의 전도사는 마하데바(Mahadeva 대천) • 바나바사 (Vanavasa; 남인도 서부)지방의 전도사는 라키타(Rakkita) • 아파란타카( Aparantaka; 서방인도 해안지방) 지방의 전도사는 그리스인 단마라키타(Yonaka Dhammarakkhita) • 마하라타( Maharattha; 서남인도) 지방의 전도사는 마하단마라키타( Mahadhammarakkhita) • 요나(Yona; 서방 그리스 세계) 지방의 전도사는 마하라키타( Maharakkita) • 설산지방( Himavanta; 히말라야 산록) 지방의 전도사는 마지마( Majjhima 말시마) • 스반나부미(Suvannabhumi; 버마 해안지방) 지방의 전도사는 소나 유타라(Sona-Uttara) • 탐바판니(TambapannI 적동엽; 스리랑카) 지방의 전도사는 마힌다(Mahinda)
스리랑카 불교 9개소에 선포된 불교가 후세까지 번창하며 맥을 이은 곳은, 서북인도( 오늘날의 서파키스탄)의 카슈밀과, 간다라 지방에 전한 설일체유부와, 스리랑카에 전한 상좌부의 두 곳이다. 스리랑카 불교는 그 후 역대 국왕의 귀의와 보호에 힘입어 크게 발전하였는데, 국교적 가치를 지닌 채 오늘날까지 전해 오고 있다. 그간 긴 세월을 거치면서 오랫동안 소멸된 적도 있었으며, 때로는 다른 부파나 대승불교가 이 섬을 침입하여 우위에 선 적도 있었고, 인도 본토 힌두교의 타미루인들에 의해 공격과 압박을 받아 점령된 적도 있었다. 근세에 와서는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그리스도교도들에 의한 침략으로 400년간 압박을 받기도 하면서 불교교단이 단절되기도 하는 등 수많은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충직한 상좌부에 의해 순수한 전통이 유지되었고, 엄중한 계율로 민중의 귀의 신앙을 연결하면서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이다. 팔리 불교 성전이 조금도 손실 없이 완전한 보존, 전승되고 있어서 오늘날까지 잔존한 불교로는 팔리 불교만큼 순수한 예는 찾아볼 수 없다. 한편 스리랑카의 상좌불교는 10세기경부터 버마에 전해졌고, 또다시 13세기 이후에는 타이. 캄보디아. 라오스 등에도 자연히 전해지면서 번창하였는데 버마나 타이에서는 국교적 지위까지 차지하며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일본에 있어서 남방불교 연구 1920년대 이전에는 남방불교의 존재에 대해서는 전혀 인식이 되어 있지 않았다. 한편 서양에서는 일본과는 달리 150년 전부터 이미 연구하고 있었는데 서양인들을 통해서 한역이나 티벳역의 불교보다도 팔리 불교가 더욱 잘 전해지게 된 것이다. 1920년개 이후부터 서양의 문물이 일본에 수입됨과 동시에 남방불교도 일본의 불교학저들에 의해서 연구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늘날에 와서는 팔리 불교성전과 한역 불교성전과의 비교 연구도 이루어진 결과 팔리 성전은 원시불교 연구에 없어서는 안 되는 자료로서 일본의 학자들도 널리 연구를 하고 있다. 팔리어 성전이나 중요한 문헌들은 영어. 독어. 불어 등 서양의 모든 언어로도 번역되어 있지만, 일본에서는 《남전대장경》 65권 70책이 전쟁 전에 출판되었다. 《남전대장경》은 고남 박사의 공적 기념으로 1935년부터 1941년까지 일본의 모든 학자들을 총동원해서 팔리 3장전부와 3장 이외의 중요 불서를 일본어로 출판하였다. 덕분에 일반 독자들도 손쉽게 팔리 불교에 접근할 수 있었다.
(2) 북방불교(Northern Buddhism) 남방에 전해진 불교에 대해서, 서북인도로부터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전해진 불교, 또는 남방 해로를 통해서 중국에 전해진 불교, 중국으로부터 한반도와 일본으로 전해진 불교, 베트남의 불교, 또한 인도 본토로부터 직접 티벳에 전해진 불교 등, 이러한 경로를 거친 불교를 북방불교, 또는 북전불교라고 부른다. 이 중에 번역된 불전으로는 소승 제 부파의 성전도 있지만, 대승에 속하는 것이 더 많다. 여기서 실제로 활발하게 신봉되고 있는 불교로는 모두가 대승불교뿐으로, 소승은 백해무익한 것으로서 배척하였기 때문에 북방불교를 대승불교라 하게 된 것이다. 또한 이들의 불교성전은 원어가 범어로 되어 있는 것이 많으므로, 이를 범어계불교라고도 이르게 되었다.
중국 불교 불교가 중국에 전해진 것은 서기 1세기경인데 경전의 번역은 2세기 이후 1,000여 년에 걸쳐서 진행되어 한역 성전의 분량이 막대하게 불어났다. 실지로 한역 불전에 현존하는 모든 불교성전 중에서 그 분량이나 질적인 면에서도 아주 우수하다. 팔리 성전이 오래되고 순수한 것에 비해 한역 불전은 그 범위가 넓고 더없이 깊어 심원한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다. ※ 한역 불전 제1세기 후한시대에 불교가 국가로부터 공인됨과 동시에 번역되었다고 전해지지만, 현존하는 한역 불전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2세기 후반 안세고 지루가참의 번역이다. 그 후 삼국. 양진. 남북조. 수. 당. 송 등의 시대를 거치면서 인도나 서역(중앙아시아) 등으로부터 건너온 승려나 중국인 구 법승들에 의해 번역이 계속되었다. 바로 일체경 1,000여부 5,000여 권이 그것이다. 이것은 당의 중기에 존재한 숫자로 , 오늘날 현존하고 있는 한역 불전의 수는 1,700부 이상으로, 당 시대보다 배가 넘는다. 그 때문에 불교 연구의 자료로는 한역 불전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티벳 불교 7세기경부터 인도로부터 수입되기 시작한 경전 번역은 이 후 13세기까지 계속되었다. 티벳역의 불전은 점차 웅대하게 팽창되었는데, 이 중에는 한역에서는 볼 수 없는 중기, 후기의 대승경전이나 논서 등이 많다. 따라서 이 시대의 인도 불교 연구에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료들이다. ※티벳 대장경 데루게 판 4,569부, 북경판 6,453부가 수록되어 있어서 부수만을 따진다면 한역 불전의 세 배가 넘지만, 단편적인 것을 포함하면 실지의 양은 한역에 미치질 못한다. 또한 티벳역 중에는 한역과 중복해서 번역한 것들도 있다.
네팔 불교 히말라야산 기슭의 네팔에도 인도로부터 대승불교가 직접 전해졌다. 12, 13세기경 인도에서 이슬람교의 박해를 받은 승려들은 난을 피하기 위해 히말라야 산중으로 들어가 다수의 범어 불전을 네팔에 남겼는데, 19세기경부터 서양인들에게 발견되어, 서양인과 일본인 등에 의해서 수집, 연구되어 오늘에 이르른 것이다. ※ 범문 불전의 사본 1826년 네팔에 외교관으로 부임한 젊은 영국인 호지슨은 잡지 《아시아연구》에 네팔에서 범어 사본의 불전을 발견했다고 발표한 바 있었는데, 그 수는 중복본을 포함해서 381부에 달한다. 그는 이것을 캘커타. 런던. 파리의 도서관 등에 나누어 전달했고, 그 중에서도 프랑스 신진학자 유젠느 뷔르누프에게 사본의 연구를 의뢰했다. 뷔르누프는 사본을 10여 년간 연구해서 그 내용을 정리한 결과 《인도 불교사 서설》이라는 전인 미답의 훌륭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또한 범문 《법화경》을 프랑스어로 번역하기도 했는데, 이는 불교경전의 구주어 역의 최초가 된다. 다음으로 네팔에 주재한 영국 공사관의 의관 다니엘 라이트가 캠브리지 대학의 의뢰를 받아서 네팔에 있는 범문 불전을 수집하기 시작하여 1873~6년 사이에 불교 문헌의 사본 325부를 발견했다. 그 후에도 영국. 프랑스. 일본등지의 학자들에 의해 발굴이 계속되어 여러 종류의 진귀한 사본이 발견되었고, 그 중에는 오늘날까지 정리 출판한 것이 적지 않다. 일본 내에는 동경 대학. 경도 대학 등에 꽤 많은 사본들이 소장되어 있다.
그 밖의 중앙아시아 범본 단편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에 걸쳐서 영국. 독일. 프랑스. 러시아. 일본 등의 원정대가 각지를 탐험해서 단편적이기는 하지만 상당한 양의 범문 불전 등의 사본을 발견했다. 또한 근래에도 인도 본토나 티벳으로부터 범문 사본을 찾아내고 있다. 일본에는 패엽이라고 칭하는 범문 사본이 전해지고 있다. 바로 《반야심경광략이종》 • 《금강반야경》 • 《대무량수경》 • 《아미타경》 등인데, 막스 뮬러에 의해 1925년 옥스퍼드 대학에서 출판된 바 있다.
남해의 불교 북방계의 불교는 이밖에 남해라고 하는 인도네시아 지방에서도 전해졌다. 라오스 • 수마트라• 자바• 보르네오• 세레베스 등지에서 현재의 이슬람교가 침입하기 이전 3세기경부터 14세기경까지 1,000여 년간은 직접 인도 본토로부터 대• 소승의 불교가 전해졌는데, 서기 700년경 전후에는 수마트라의 바렌바[삼불서]가 불교 연구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지금도 남해 모든 지방에서 불상이나 불교 유적이 많이 발견되고 있어 옛날의 전성시대를 그려 볼 수 있는 자료 구실을 하고 있다.
사경자 감로화 합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