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國 작가는 한 손에, 現代史라는 수갑을 차고 있다"
박해현 문학전문기자
2015/06/29 03:00
올해로 팔순을 맞은 소설가 최인훈씨의 문학이 외국의 한국학 연구자들 사이에서 재조명된다.
유럽 한국학협회가 7월 10~13일 독일 보쿰의 루르대학에서 주최하는 학술대회에서 최인훈 문학 토론회(7월 11일)가 열린다.
올해는 소설 '광장' 발표 55주년이기도 하다. 토론회에서 논문을 발표할 바버라 월 교수(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대학),
김성렬 대진대 교수, 김영찬 계명대 교수가 지난 27일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최인훈씨의 자택을 찾아 학회에서 보여줄
영상 대담을 나눴다.
김성렬=최인훈 문학은 거친 한국 현대사를 학구적(學究的)으로 다루면서도 예술적 완성도를 추구했고, 더 나아가서
인간 구원까지 지향했다.
또한 동서양 고전소설을 10편 넘게 패러디했다. 고전소설 '구운몽' 등을 패러디하면서 고전과 현대 한국 문학의 연속성을
찾으려고 했다.
최인훈=얼마 전에 영화 '드라큘라'의 주연을 맡았던 배우 크리스토퍼 리가 세상을 떴다.
나는 드라큘라 영화를 매우 좋아했다. 사찰의 불상이나 성당의 예수상 앞에서 느끼지 못한 영감을 얻었다.
다른 한국 작가가 샤머니즘에서 영감을 얻듯이 나는 드라큘라에게서 많은 것을 느꼈다.
내 소설 '구운몽'은 관 속에 누웠던 사람이 깨어나 마치 드라큘라의 성(城) 속을 돌아다니듯이 도시를 배회하는 것이다.
드라큘라의 나쁜 점은 내 이성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지만, 어떤 다른 지성과 종교도 주지 못하는 드라큘라의 생리적 매력은
무엇인가를 탐구하고자 했다.
(최인훈은 소설 '회색인'에서 드라큘라를 기독교에 반발해 스스로 신(神)이 되고자 한 인간으로 그리면서 현실 권력에 저항하는
지하 운동의 상징으로 삼기도 했다.)
바버라 월=저는 중국 소설 '서유기'가 한국에 수용된 과정을 연구하다가 최인훈의 소설 '서유기'를 읽게 됐다.
처음엔 하나도 이해 못 했다(웃음). 이 소설이 여러 목소리를 지니고 있을 뿐 아니라 이데올로기 사이의 대화를 지향한다고
해석했다.
한 이데올로기만 절대적 진리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지금 선생님의 '화두'를 읽고 있다.
최인훈='화두'를 읽으면 내 생애와 작품 활동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다.
나는 철학자가 아님에도 철학적으로 생각했고, 아마추어 역사학자이면서도 지난 100년 동안 한국 역사의 주요 문제를
되돌아봐야 했다.
한국 문학은 민족주의에 꽉 잡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서양에서처럼 문학의 아름다움만 탐구할 수 없었다.
나는 '소설가로만' 살기 힘들었다. 그래서 나를 삼류 정치평론가, 삼류 역사학자, 삼류 박물학자로 보는 사람도 있다.
나는 개인의 실존을 국가의 영고성쇠(榮枯盛衰)와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시대를 살았다.
내 문학은 그러니까 독자들이 적당히 가감해서 읽어줬으면 좋겠다.
세상 일에는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는데, 너무 쉽게 어느 한쪽만 옳고 어느 한쪽은 나쁘다고 할 수가 없다.
내 소설 '광장'을 괴테의 '파우스트'와 비교해서 연구한 사람도 있다.
두 작품이 모두 같은 문제를 놓고 각자 답변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관점에 따라서 이렇게 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영찬=선생님의 소설 '회색인'은 '4·19가 왜 실패할 수밖에 없었는가'라는 질문을 '혁명의 고고학'으로 탐구한 작품이라고 본다.
그 소설을 쓴 까닭은 무엇인가.
최인훈=그것은 내가 현실과 대화하는 형식이었다.
갱 영화를 보면 형사가 범인의 한쪽 손에 수갑을 채우고 자기 손에도 채우곤 하지 않는가.
한국 작가는 현대사와 함께 수갑을 차고 있다.
나는 6·25 때 원산에서 내려온 피란민이다. 내 문학은 '피란민의 문학'이다.
내 소설에는 대도시에서 길을 잃은 여행자의 공포가 들어 있다.
국가 기관에 느닷없이 붙잡혀가서 심문받는 사람의 공포도 들어 있다.
최인훈이란 작가는 현대 한국이라는 원더랜드(이상한 나라)를 헤매고 다닌 셈이다.
김영찬=지금 한국문학에는 노작가(老作家)의 지혜가 부족한데 선생님께서 (신작 발표로) 점을 찍어주시면 어떨까.
최인훈=작가는 누구나 머릿속에 쓸거리를 가득 담고 있다.
문제는 그걸 언제 쓰느냐다(웃음).
내 선배들에 비해서 내 문학은 행복했다.
선배들은 먹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고, 쓰고 싶어도 쓸 수 없는 게 많았다.
내가 이상이나 이태준이었다면 어떤 생각을 했을까, 이런 걸 언제 써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