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남 보령군 미산면 평라리 출생.
소설가 이문희(李文熙)
2007. 9. 2. 6:05
이문희(李文熙.1933∼1990.10.7)
소설가. 충남(忠南) 보령군(保寧郡) 출생. 고려대학교 경제과 졸업, 1957년 [현대문학]에 <왕소나무의 포효(咆哮)>
<우기(雨期)의 시(詩)>로 데뷔. 1963년 12월호부터 1년간 [현대문학]에 연재되었던 장편 <흑맥(黑麥)>으로
제11회 현대문학 신인상을 수상하였고, 장편 <산바람>(1980)으로 1981년 대한민국문학상을 받았다.
<흑맥>은 서울역 주변의 뒷골목을 무대로 사회로부터 버림받은 사람들의 어두운 생활을 묘사함으로써, 그들이 점차
사랑과 신을 각성하고 인간성을 회복해가는 과정을 그린 대표작이다. 장지 : 벽제(碧蹄) 시립 묘지
【작품경향】
이문희는 <왕소나무의 포효>를 비롯해 80여 편의 단편소설과 서너 편의 장편소설을 썼으나, 문학 연구가들의 본격적 관심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그의 소설 문체는 선배 작가 채만식과 닮아 있고, 동향 후배 이문구에 의해 더욱 창의적으로 계승되고 있다. 특히 우리 문학
에서 보기 드문 충청도 방언의 능숙한 사용은 그의 문체를 더욱 빛냈다.
화려하고 유창한 문장과 어휘 그리고 풍부한 대화법 등은 그의 소설의 전형성을 형성하고 있다. 또 그는 다양한 청춘상을
묘사하였으며, 제재와 작품의 시점을 자유자재로 바꾸어 체취 있는 문학을 확립하였다.
가령, 작품의 제재는 술집이나 사창가, 학교, 빈민굴, 다리 밑, 깡패소굴 등 변화무쌍하며서 재미있고 신선한 공감과 박진력을
준다. 그의 작품은 인상주의적(印象主義的) 냄새를 풍겨주고 있으며, 주제의 설정이나 구성이 현대소설의 전형성을 실험하고
제시해 주고 있다.
【작품】<왕소나무의 포효(咆哮)>(현대문학.1957.5)
<우기(雨期)의 시(詩)>(현대문학.1957.7)
<하얀 패인(敗因)>(현대문학.1958.2)
<희화(戱畵)>(현대문학.1958.8)
<소야(小夜)>(한국평론.1958.9)
<조우기(遭遇記)>(현대문학.1959.5)
<홍가화댁(紅家火宅)>(1959)
<사팔 금석(今昔)>(현대문학.1959.9)
<선혈(鮮血)의 대안(對岸)>(문예.1960.장편)
<소유(所有)>(현대문학.1960.2)
<다리 밑>(문예.1960.2)
<여군>(현대문학.1960.8)
<장갑 단장(斷章)>(1960) <하모니카의 계절>(사상계.1961)
<제목 없는 여인>(현대문학.1961)
<하숙인>(신사조.1962)
<인간의 마을>(1963) <흑맥(黑麥)>(현대문학.1963.장편),
<달빛 속을 내려가다>(신사조.1963)
<오돌막집과 옹달샘>(사상계.1964.7)
<사계(四季)>(1965.장편) <황전일가(荒錢一家)>(문학춘추.1965.1)
<논산(論山)>(1966.장편) <삼각주>(1967)
<조남균선생(趙南均先生)>(신동아.1968.11)
<환상도시>(1968.장편) <움직이는 공원>(1970) <영가(靈歌)>(월간문학.1971.5)
<징기스칸>(한양출판사.1971)
<산중신곡(山中新曲)>(1975) <모자(母子)>(1977) <산바람>(행림출판사.1982)
<안개>(1981) <산바람>(행림출판.1982)
【소설집】
<옥(玉)피리>(현대사.1966)
<산향기(山鄕記)>(을유문화사.1974)
<하모니카의 계절>(삼중당.1975)
<흑맥>(삼성출판사.1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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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희론>
감성적(感性的) 화술(話術)
천이두(千二斗) : <한국단편문학대계>(1969) 발췌
이문희는 전형적인 감성적(感性的) 작가다. 그를 전형적인 감성적 작가라고 하는 것은 대개 다음의 세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 그의 작품을 읽게 되면, 언제나 그것이 수월하고 거뜬하게 써진 작품이라는 인상을 받는다는 점이다. 치밀하고 끈기
있는 계산과 심사숙고의 과정을 통항 고된 출산의 진통을 겪지 않고 언제나 순산(順産)의 행운을 누리며 태어난 작품 같은
인상을 그의 작품에서는 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 사실은 그가 그의 연배의 작가 가운데서 유례없는 다작(多作)의 작가라는
것으로도 충분히 반증된다. 소재의 범위도 매우 다채롭다. 무슨 이야기건 붓을 들기만 하면 단숨에 거뜬히 만들어 낼 수
있는 재간을 그는 가지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의 작품 흐름에서 이 사실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치밀하고 끈기 있는
계산과 심사숙고의 고된 과정을 거쳐야만 반드시 걸작이 생산된다는 법도 없는 이상, 순산의 특권을 누리게 되는 그의
작품들은 아무튼 행운이라 할 수밖에 없겠다.
그를 전형적인 감성적 작가라고 느끼게 되는 둘째 이유는 자기 작품이 내포해야 할 바 추상적 명제 혹은 테마에 대해서
그는 언제나 무관심 이상의 방심상태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가령 헉슬리 같은 작가의 경우 그로 하여금 붓을 들게 하는
직접적 계기는 어떤 추상적 면제에 대한 흥미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무엇인가 전달해야 할 절실한 이슈를 위해서
결국 붓을 들 수밖에 없다 하는 식이 헉슬리의 경우다.
이문희의 경우는 이와 정반대의 과정을 밟고 있다. 그는 무엇인가를 말하지 않을 수 없어 글을 쓴다 하는 식이라기보다도
글을 쓰기 위해서 무엇이든 말한다 하는 식이라 할 수 있다. 헉슬리의 경우 소설의 이야기는 자기의 추상적 이슈를 전달하기
위한 부차적(副次的) 의의를 갖는 것이라 하겠으나, 이문희의 경우는 다만 이야기 그 자체를 위해서 이야기를 쓴다 하는
식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문희의 이야기는 항상 순수한 유희성(遊戱性)으로 뒷받침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말하는 그의 이야기의 유희성(遊戱性)이란 소설의 줄거리에서 오는 재미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가령 통속소설이나
야담(野談)에서와 같은 아기자기한 줄거리를 엮어내는 일이거나, 일부 주지적인 작가들이 시도하고 있는 바와 같은 복합적인
구성의 묘미를 보인다거나 하는 따위의 노력은 작가 이문희에 있어서는 흥미 밖의 일이다. 실상 이문희의 소설은 그 줄거리나
구성이 평범하고 평면적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의 묘미는 이처럼 평범하고 평면적인 이야기일망정 그것을 이끌어 나가는 화술(話術)이 뛰어나게 능란하다는 것이다.
듣고 나면 결국 시시한 이야기인데, 그 시시한 이야기를 엮어나가는 입담이 희한하게 좋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그에게서
느끼는 이야기의 재미는 한 이야기의 종착점에서 성취되는 것이라기보다도(이러한 재미는 가령 통속서설이나 추리소설이
주는 재미이겠다.) 그 이야기의 전행 과정에서 느껴지는 재미인 것이다.
그를 감성적인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세 번째 근거는 그의 모든 단편에는 섬세하고 선연한 시적(詩的) 정서(情緖)가 기본적
톤으로 깔려 있다는 점이다. 그에 있어서 시적 정서란 결코 장식적(裝飾的) 효과로서의 그것이 아니라, 그의 기본적인 문학
가치로서의 그것이다. 앞서 그의 소설의 이야기에는 일종의 순수한 유희성(遊戱性)이 뒷받침되고 있다고 말한 바 있거니와
그러한 이야기의 재미를 단순한 통속작가의 그것으로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시적 정서다. 독자를 자기 이야기
의 gm름 속으로 끌어들이는 데 있어서 그는 희한한 화술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의 이야기는 하찮은 이야기다. 더구나 소설에서 어떤 추상적 이슈를 찾아내고서야 비로소 안심하는 습성을 가진
독자에게는 그의 이야기란 정말 시시한 이야기처럼 보일지 모른다. 대체 이 소설의 테마가 뭐란 말인가? 하고. 그러나 그의
이야기의 흐름을 좇다 보면, 어느새 그의 섬세하고 선연한 시적 감상에 독자는 젖게 된다. 그러고 보면, 이문희의 기본적
매력은 다만 이야기의 재미를 전달하는 데 그치는 게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독자로 하여금 섬세하고 선연한 시적 정서
속에 젖게 하는 데 있다고 해야 하겠다. 요컨대 그의 문학을 바르게 감상하는 방법은 그의 능란한 화술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요, 그의 시적 정서에 함께 감염되는 일이다.
그의 데뷔 작품인 <우기(雨期)의 시(詩)>에서 어떤 거창한 테마를 찾으려는 독자가 있다면 이내 실망할 것이다. 복잡한
이야기의 줄거릴 찾으려는 독자가 있다면 또한 살망할 것이다. 실상 이 작품에는 이렇다 할 테마도 없고, 뼈대 굵은 줄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친척 누이와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영상을 그 누이를 닮은 다른 여성에게서 찾으려 하는 그것은 흔히 있는
방식이다. 그러나 그러한 이야기가 잔잔하게 가라앉은 문장의 흐름 속에 매우 아름답게 펼쳐지고 있다.
주인공이며 내레이터인 ‘나’의. 자꾸 안으로만 침잠하는, 그리하여 그리움의 대상인 ‘성자’(친척누이)에의 집념으로만 내닫는
마음의 분위기를 뒷받침이라도 하려는 듯이 구중중한 비가 내린다. 그리고 그러한 집념에 사로잡혀 있는 어느 날 ‘성자’와
비슷한 모습의 한 여인 ‘혜영’을 만난다. ‘나’에 있어서 ‘혜영’은 ‘혜영’으로서가 아니라, ‘성자’의 대상(代償)으로만 뜻이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성자’에 대한 자기의 금기(禁忌)의 사랑을 ]혜영‘에게 이야기함으로써 ’혜영‘이 나타내는 반응 속에, 이제는
기억의 피안(彼岸)에 가둬 둘 수밖에 없는 ’성자‘의 실체를 확인해 본다. 그것은 곧 ’유방이 없는‘ 사랑의 실체를 유방이 있는
’혜영‘에게서 찾아보는 노력인 것이다. 이 작품은 이문희의 문학적 성격을 잘 반영하고 있는 동시에 그의 많은 작품 가운데서도
가장 아름다운 작품 가운데 하나이다.
<인간의 마을>은 ‘형익’, ‘윤수’, ‘지숙’ 세 빨치산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이다. 그의 많은 작품 가운데서도 비교적 테마에의
이식이 두드러지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땅굴 속에 숨어 살면서 먹이를 찾아 헤매는 이 세 남녀를 그림으로써 작자는 인간의
생명에의 질긴 집념, 추악한 이기심, 끈덕진 증오심, 죽음에의 물리적 공포심 등을 파헤치고 있다. 음울하고 지루한 느낌을
주는 이 작품의 긴 센텐스들은 이 작품의 분위기를 반영하는 데 효과적으로 나타나 잇고, 세 남녀의 각기 다른 개성들을
파악하는 데도 비교적 성공을 거두고 있다.
제목이 암시하고 있는 바와 같이 이 작품은 결국 그 속에 섞여 살 수밖에 없는 ‘인간의 마을’에의 간절한 그리움의 표백으로
끝맺고 있다. ‘지숙’이 땅굴을 탈출한 것은 결국 ‘인간의 마을’로 되돌아가기 위함이었으니까.
<하모니카의 계절>은 여러 가지 점에서 그의 초기작인 <우기(雨期)의 시(詩)>의 바리에이션이라 할 수 있다.
우선 이 작품에 있어서도 <우기(雨期)의 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금기(禁忌)의 문제가 작품의 주요한 모티브로 되어 있다.
<우기의 시>에 있어서는 금기(禁忌: 친척 사이라는) 앞에서 간절한 사랑의 출구를 얻지 못한 인간의 괴로움이 모티브로
되어 있다면, 이 작품에서는 그 금기(禁忌)를 범한 인간의 죄책감이 액션의 기본적 에이젠트로 되어 있다.
‘영규’는 제수(弟嫂)와 동거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그는 병든 실직자(失職者)로서 아내(제수)에게 기식(寄食)하고 있다.
죽은 자기 동생의 딸인 ‘난이’는 ‘영규’를 아빠라고 부르고 큰아빠라고도 부른다. 금기를 범한 죄악의 실체는 ‘난이’의
호칭의 난맥상에서 함축적으로 드러난다. 무엇인가 잘못되어 있다. 이 잘못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세 사람 중에 누구든
하나가 죽어야 한다. 이리하여 ‘영규’는 자살하는 것이다.
이 작품에는 의적(義賊)이라 불리는 이웃집 사나이의 하모니카 소리가 작중 상황의 음산한 분위기를 빚어내는 효과적인 배음
(背音)이 되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그 소리는 ‘영규’의 죄의식을 날카롭게 불러일으키는 양심의 소리라고 볼 수도 있다.
그 하모니카 소리에 이끌려 ‘영규’의 모든 액션들은 규제되고 있는 것이다.
아무튼 <우기(雨期)의 시(詩)>에 있어서 그 구중중한 비가 작중의 분위기를 효과적으로 조성하고 있듯이 이 작품에 있어서의
하모니카 소리도 충분한 효과를 발휘하고 있는 것만은 사실이다. 그의 장편 <흑맥(黑麥)> 이후 이문희의 감성적 작가로서의
면모는 서서히 본격적인 산문적 작가로 변모되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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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이문희씨 별세> - [경향신문](1990. 10. 8)
소설가 이문희씨가 7일 상오 3시 한강성심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이씨는 충남 보령에서 태어나 1957년 <우기의 시>로 문단에 데뷔. 주요작품으로 장편 <흑맥> 등을 남겼다.
장지는 벽제기림묘지.
퍼옴 -재봉틀의 국어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