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저는 17년차 서울 직장인이었습니다. 갑자기 이천공장으로 발령이 나면서 서울 목동에서 이천까지 왕복 5시간을 대중교통으로 택시 – 고속버스 – 다시 택시로 갈아타고 매일 출퇴근을 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택시나 버스에서 책을 읽어 보려고 했는데 눈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출퇴근 때는 역시 음악을 듣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것 같았습니다. 음악 감상을 밸런스 있게 해 보려고 여러가지 한국가요사 책을 사서 MP3도 수집하고 작곡가 별로 자료도 모으던 중 작곡가 “상록수”의 보컬로이드 곡들을 만났습니다. 보컬로이드는 야마하에서 만든 음성합성 소프트웨어입니다.
상록수는 보컬로이드 작곡 데뷔당시 18세 고등학생이었는데 40대 중반이었던 제가 네이버 검색에서 심훈의 상록수가 아닌 프로듀서 상록수를 만나게 될 줄은 꿈에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이천공장으로 가는 출근길 고속버스 안에서 그의 보컬로이드 프로그램 “시유(SeeU)”가 부른 「Uninstall」을 들었습니다.
「Uninstall」은 보컬로이드 소프트웨어 “시유”가 컴퓨터에서 삭제당하면서 느낀 인생과 행복에 대한 생각을 노래한 곡입니다. 그동안 화려했던 서울생활을 끝내고 어디론가 사라져가는 잊혀져 가는 제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그 곡을 들을 때 마다 울컥하면서 많은 위안을 받았습니다..
2013년 작곡 당시 19세 고등학생의 노랫말이 중년의 저에게 이렇게 절실하게 와 닿는걸 보면 “상록수”가 참 젊은 나이에 정신적으로 성숙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시유의 목소리는 슬프면서도 아름답습니다. 다른 가수나 우타이테가 이 곡을 커버한다고 해도 시유보다 더 강렬하게 사라져가는 자신의 모습과 추억들을 동시에 소환해 내지는 못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