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첫 연재만화는 '멍텅구리 헛물켜기'다. 1924년 지면 혁신의 일환으로 시도한 이 작품은 노수현 화백의 네 컷 만화로, 우리나라 최초의 대중 인기 만화로 꼽힌다. 문화평론가 손석인은 잡지 월간미술 2009년 7월호에서 "(멍텅구리 헛물켜기가) 얼마나 인기가 있었던지 반도키네마사의 이필우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영화 「멍텅구리 헛물켜기까지 만들어 1926년 서울 인사동의 「조선극장에서 개봉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첫 시사만평은 '멍텅구리' 연재 시작 두 달이 지난 1924년 11월 16일 등장했다. 이 날자 1면에 실린 '만히도 먹어야 하려니와, 대관절, 떡은 익었는가?"는 작가의 이름을 확인할 수 없다. 만평에는 '투고 환영'이라고 적어 독자의 기고를 유도했다.
당시 실명으로 시사만평을 조선일보에 그린 작가는 웅초 김규택 화백이다. 웅초는 1930년 3월4일자부터 1면에 연재를 시작, 부정기적으로 지면에 만평을 선보였다. 웅초는 1933년 '벽창호'란이름의 네 컷 만화를 그리기도 했고, 1933년에는 '무성판 딸국질'이라는 생활 만평을 연재하는 등 조선일보를 통해 맹활약했다.
여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 첫 조선일보 연재만화는 노석규 화백의 네 컷 만화 '초롱껄'이다. 1963년 4월 19일부터 총 45회 연재됐다. 노 화백은 “기존 남자 만화주인공이 워낙 많다보니 가정에서 일어나는 일을 통해 사회·정치 풍자를 하고 싶어 일부러 여주인공을 택했다"고 말했다.
독자가 그리는 만화 코너 '유모어살롱 독자만화'도 1964년 7월 26일부터 1966년 6월 9일까지 연재됐다. 주로 한 컷 만화 위주였다.
신문만화는 이후 사회적인 모습이 됐다. 특히 김성환 화백이 1980년 9월 11일부터 1992년 8월 10일까지 조선일보에 연재한 네컷 만화 '고바우 영감'은 시사만화의 전설로 불린다. 이후 조선일보 네 컷 만화는 1996년 6월 '야로씨'를 마지막으로 사회면에서 사라졌다. 시사만평은 고정적으로 종합면에 계속되다가 신경무 화백의 백혈병 투병으로 2011년 1월 29일 중단됐다.
조선일보는 외국 유명 만화의 연재 공간으로도 기능했다. 미국 월트디즈니 대표 만화 캐릭터 '미키 마우스가 1963년 6월 18일부터 그해 8월 20일까지 세 컷 가로 만화 형태로 연재된 것이 대표적이다. 뉴질랜드 만화가 킴 카잘리의 '사랑이란...'도 1984년 5월 1일부터 1988년 7월 31일까지 연재됐다. LA타임스 등 미국 주요일간지에 연재된 인기 만화로, 조선일보를 통해 한국 독자들에게 소개됐다.
스타 작가의 산실이었다. '광수생각'의 경우 연재만화의 새 유행을 선도한 작품으로 손꼽힌다.
만화가 박광수가 1997년 4월 4일부터 2000년 11월 21일까지 연재했고, 1컷에서부터 9컷까지 자유롭게 구성해 짧은 이야기를 따스한 느낌의 그림으로 전달하는 형식이었다. 외환위기 당시 각박한 정서를 달래주는 코너였다. 단행본으로도 출간돼 250만부 넘게 판매됐고, 2006년 연극으로도 제작될 만큼 인기를 끌었다. 김동화 작가는 '빨간 자전거'를 2002년 3월 16일부터 2005년 4월 18일까지 '느낌' 섹션에 총 152회 연재했다. 이 만화는 온가족이 즐기는 가족동화로 전국민적 사랑을 받는 그의 대표작이 됐다.
이색 만화가들도 등장했다. 2017년 1월 17일부터 그해 12월 23일까지 주말 섹션 'Why?'에 '어려서 그래'를 격주 연재한 휘모는 13세(초등학교 6학년)로 최연소 연재 작가였다. 만화가 양영순의딸이다. 2017년 6월 30일부터 2018년 9월 21일까지 'Friday' 섹션에 매주 연재된 한 컷 만화 ‘시누이의 그림일기'의 작가 신미나는 시인 겸 웹툰작가로 활동 중이다. (기사 출처: 조선일보100년사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