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할 수 없는 기후 현상…
모조리 먹어치우는 美 영화 외계 생명체서 이름 따왔대요
블 롭
미국의 한 마을에 외계 생명체가 나타납니다. 끈적이는 덩어리같이 생긴 이 생명체는 처음 발견한 사람을 시작으로 병원의 간호사·의사 등 보이는 사람들을 다 먹어 치웁니다. 이 생명체는 문을 닫으면 문틈으로 들어오고 총에 맞아도 끄떡없습니다. 1958년에 만들어진 공상과학 영화 '더 블롭(The Blob)'에 나오는 내용인데요.
이후 '소년과 블롭'이라는 게임에서 블롭이 다시 나옵니다. 게임 속 블롭은 둥글고 하얀 눈사람처럼 생긴 젤리 괴물입니다. 어떤 젤리를 먹느냐에 따라 18가지 모습으로 변신합니다.
과학자들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명체가 새로 발견되면 '블롭'이라는 이름을 붙이곤 합니다. 2019년 프랑스 파리 동물원은 새롭게 발견된 기괴한 생명체 '황색망사점균'에 '블롭'이라는 별칭을 붙였어요. 블롭은 노란색 점액질 형태로 동물처럼 움직입니다. 눈이나 입, 소화기관이 없는데도 음식을 찾아 먹고 소화시킵니다. 팔다리가 없지만 자유자재로 몸을 넓히며 시간당 최대 4㎝의 속도로 먹이를 찾아 이동합니다. 성별은 무려 720개나 된다고 합니다.
블롭은 끔찍한 기후 현상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입니다. 2014년부터 2016년 사이 미국 서부 해안에 인접한 바닷물이 엄청 뜨거워졌습니다. 바닷물 온도가 급격히 상승하자 육지 근처 바다에 사는 플랑크톤부터 대구·고래 같은 대형 해양 동물까지 수많은 해양 생물이 죽어갔어요. 치누크 연어 알이 95% 이상 사라졌고, 물고기를 먹고 사는 바다사자와 바닷새 100만 마리가 죽었지요. 미 서부의 워싱턴주는 독성이 심한 적조(赤潮) 현상으로 인해 조개 캐는 것을 아예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과학자들은 이처럼 도저히 이해가 안 되는 기괴한 현상에 '블롭'이라는 이름을 붙입니다. 기후변화가 점점 심해져 블롭 현상이 수시로 발생하면 해양 생명체를 더 이상 보지 못하게 될 수도 있어요. 스위스 취리히 연방 공대(ETH) 등 국제공동연구팀은 블롭이 발생했을 때 왜 수많은 생물이 죽었는지를 연구했어요. 우선 바닷물 온도가 높아진 영향이 있었고요. 또 공기 중으로 배출된 이산화탄소가 늘어나면서 바닷물에 녹아드는 이산화탄소량이 증가한 탓도 있다고 해요. 바닷속 산소가 부족해졌기 때문이지요.
연구팀은 블롭 같은 현상이 기후변화에 따라 얼마나 더 발생하는지도 연구했어요. 1861년부터 2020년까지의 자료를 수퍼컴퓨터로 계산해보니 전 세계적으로 해수면의 이상고온 일수는 매년 4일에서 40일로 10배 증가했어요. 저(低)산소 현상이 일어난 날은 5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출저. 조선일보 '기후와 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