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길(lines of my life)! (brunch.co.kr)
인생길(lines of my life)!
송곳!
두꺼운 합판에 구멍 뚫기 딱 좋은 기구다.
엄지 손가락이 아파 구멍 뚫기 힘들 때는 작은 망치를 사용해 송곳을 두들겨 구멍을 낼 때도 있다.
화선지에 바늘과 실을 사용해 작품을 완성할 수 있음에도 작가는 가장 어렵고 힘든 길을 선택했다.
합판에 붙이는 일합지 또는 이합지나 삼합지에 구멍 뚫고 지끈을 넣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작가는 작품명(lines of my life)에서 보듯 자신의 삶과 연계된 인생길을 장지 위에 수놓고 있다.
송곳은 집중하지 않는 자에게 따끔한 아픔을 선물한다.
송곳에 찔린 손가락에서 피가 솟고 장지 위에 떨어지는 아픔도 감수하며 한 올 한 올 앞으로 나아간다.
피가 멈추고 아픔을 치유하기까지 긴 시간이 필요하다.
긴 시간의 아픔은 자신을 뒤돌아보게 한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
어떤 삶이 바람직한 삶인가."
작가는 집중하지 못하고 망각에 빠진 이유를 찾아가는 여정을 포기하지 않는다.
손가락에 반창고를 감아가며 이를 악물고 장지에 구멍을 뚫었다.
구멍이 늘어날수록 송곳은 예리하고 날카로웠다.
눈 깜짝할 사이에 송곳은 장지를 빗나가 작가의 심장을 향해 날아가 피를 쏟게 한다.
그 아픔은 심장을 지나 뼛속까지 전달된다.
그럼에도 작가는 자신의 인생길을 포기 않고 앞으로 나아간다.
인생길은 앞으로 나아가다 꺾이고 뒤틀리고 멈출 때도 있다.
지끈의 색을 어떻게 배치할까 고민할 때도 작가는 의도하지 않은 상태로 불확실성을 하나하나 해결해 나갔다.
장지(동양화 화판)!
합판 위에 풀을 바르고 종이를 발랐다.
다 마른 다음에 종이에 채색하고 그 위에 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지끈을 넣어 가며 작품을 완성했다.
쉬운 방법도 있는데 장지를 선택한 이유가 뭘까!
송곳이 장지를 통과할 때마다 내는 소리가 뼛속까지 전달된다.
그 아픔의 시련을 이겨내고 한 올 한 올 송곳은 자리를 찾고 흔적을 남기며 따라오는 지끈(실의 종류)을 잡아당긴다.
"조심! 조심!"
작가는 힘주어 구멍을 뚫는다.
"천천히!
당겨야 해."
작가는 자신에게 말한다.
송곳이 장지를 통과할 때마다 전달되는 아픔을 인내하며 지끈을 잡아당겼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멀다.
이걸!
언제 마무리할까.
괜히!
시작했나."
작가의 이마에 땀방울이 고였다.
그만큼 집중하고 있다는 증거다.
'툭!'
송곳이 장지를 통과할 때 내는 마지막 소리다.
가장 쉬운 보자기나 옷감에 바느질할 때와 전혀 다른 오감을 자극한다.
화선지 같은 가냘픈 종이에서 나는 소리보다 투박하게 들렸다.
"어디로 향할까!
어디서 꺾어야 할까.
어떤 퍼즐을 만들어 갈까.
손이 가는 대로 갈까.
아니!
송곳이 가는 대로 갈까.
길이는 얼마나 띄울까.
이것도 쉽지 않군."
작가의 마음은 멈추고 장지를 내려다본다.
내가 가야 할 길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다.
광활한 대지도 아니다.
고작!
가로 1미터 세로 2미터 정도의 장지 안에서 길을 잃을 때가 많았다.
"생각이 많은 걸까!
가야 할 길이 많은 걸까."
작가는 길 잃은 나그네처럼 송곳으로 구멍 뚫는 것을 멈추고 가야 할 길을 찾았다.
"어디로 가야 할까!
맘대로 가도 될까.
아니!
밑그림이라도 그릴까."
작가는 그림 배우던 어린 시절을 생각했다.
하얀색 도화지에 연필로 밑그림 그리는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밑그림!
꼭 필요한 것도 아닌데 온 열정을 쏟았어.
몰입하고 그리면 되었을 텐데."
작가는 다시 송곳을 잡았다.
그 뒤로 하얀색 지끈이 지렁이처럼 꼼지락 거리며 따랐다.
"넌!
지렁이야.
아니면
백사야."
작가는 앞장서 가는 하얀색 지끈을 향해 말할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끈은 불평불만 없이 송곳이 뚫은 구멍을 향해 뻗어 나갔다.
"내가 그랬다!
남편이 송곳이라면 난 지끈이었다.
남편이 당기는 대로 따랐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작가는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지끈!
지끈은 말없이 따라만 갔다.
당기면 당기는 방향으로 끌려갔다.
하얀색 지끈이 지나간 뒤로 빨간색 지끈과 분홍색 지끈이 엎치락뒤치락하며 겹치거나 터널을 통과하듯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퍼즐을 완성해 갔다.
"내가 주인공이야!
그러니까
너희들은 천천히 와."
백의민족답게 하얀색 지끈은 장지 위에서 주인공이고 싶었다.
"무슨 소리!
빨간색이 주인공이야.
자세히 봐봐!
장지 위에 활짝 핀 꽃처럼 보이잖아.
분홍아!
내 말이 맞지."
빨간색 지끈도 장지 위에서 주인공이고 싶었다.
"넌!
백의민족
달항아리
조선백자
들어보지 않았구나.
하얀색은 마법의 색이야.
그러니까
내가 장지 위에선 주인공이야
잘 봐봐!
하얀색 지끈을 많이 사용했잖아."
하얀색 지끈은 한국적 백의민족의 색을 주장하며 장지 위에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빨간색 지끈도 포기하지 않았다.
"난!
그럼 뭐야?
나도 주인공 되고 싶어."
분홍색 지끈도 한 마디 했다.
지끈의 싸움은 계속되었다.
"어느 색!
어느 색 차례일까."
작가는 송곳이 뚫은 구멍에 어떤 색을 끼워야 하는지 순서를 잊어버렸다.
"뭐야!
인생이 꼬인 것 같잖아.
웃겨!
내 인생을 내가 꼬이게 할 순 없지."
작가는 명상을 하며 지끈의 순서를 찾아갔다.
"하얀색!
빨간색
분홍색
하얀색
빨간색
분홍색
다음엔 뭐지!"
작가는 알았다.
시작부터 순서를 정하고 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지끈을 넣은 것이 아니었다.
바람이 불면 바람이 부는 대로 비가 오면 비를 맞고 파도가 치면 파도를 따라 한바탕 소용돌이 속을 헤매다 오곤 했다.
그것이 곧!
작가 삶의 전부였다.
작가는 지끈으로 복조리나 가방 같은 조형물을 만들지 않았다.
바늘과 실을 대체할 송곳과 지끈의 만남을 이용해 작품을 완성해 갔다.
지끈의 끈끈함과 단단함이 작가의 인생길을 든든하게 지켜주는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손가락 사이 살점이 떨어져 나가도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이를 악물고 한 올 한 올 구멍을 뚫고 지끈을 넣어 새로운 길을 열고 지나간 길을 닫고 앞으로 나아갔다.
열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개척정신이 없다면 한 올도 나아갈 수 없다.
지끈은 높이와 두께에 따라 빛을 통해 장지 위에 그림자를 만들어 간다.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지끈이 만들어내는 그림자를 볼 수 없다.
지끈은 앞으로 나아가다 뒤로 물러설 때도 있다.
우리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의미가 담겨 있는 일보 후퇴다.
앞으로만 나아간다면 삶은 재미가 없다.
산을 오르듯!
골짜기가 있고 높은 언덕이 있다.
산 꼭대기에 오르면 내려와야 한다.
장지 위에 얽히고설킨 지끈이 바로 삶의 희로애락을 알려준다.
"어디가 희(喜)일까!
지끈이 교차하는 곳일까.
아니면
지끈이 터널을 통과하는 곳일까."
작가의 의도를 찾아가는 여정 또한 재미있다.
각자가 이성이 다르듯 희로애락의 지점 또한 각자의 몫이다.
lines of my life / 최재영
점 선 면!
장지의 형태는 점. 선. 면으로 이뤄졌다.
작가의 작품( lines of my life)은 한국적이다.
합판
종이
지끈
풀
송곳
하얀색(백의민족)
빨간색(열정이 강한 민족)
분홍색(무궁화)
장지를 뚫는
송곳은 비수가 되어 작가의 심장을 파고든다.
아픔
고통
쓰라림
비애
좌절
억울함
분노
한
눈물
통곡
완성된 작품은 보잘것없어 보인다.
그렇지만
한국적인 정서가 가득하다.
대중들은
장지와 지끈으로 작가 맘대로 완성한 작품 같다고 말한다.
그런데
작가의 심장을 파고든 바느질 같은 여정은 조선 여인의 아픔과 비교된다.
그래서
작가의 작품(lines of my life)이 한국적이라는 것이다.
다시!
작품을 감상해 보자.
색동옷을 입고 춤추는 모습이지 않은가!
날카롭고 예리한 송곳이 장지를 찌를 때마다 색동옷 입은 여인의 춤사위가 달라져 보일 것이다.
바느질
색동옷
역동성
독창성
한국성
모든 것을 갖춘 작가의 작품(lines of my life)은 경이로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