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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은 이렇게 상류쪽에 깊이 파내고 콩크리트 댐의 공사가 시작되었지요
수많은 강우량과 사태 그리고 장마에 대비한 이 사방댐 공사는
관할도청의 목적이며 거대한 사업의 구상이라 판단되었습니다.
말하자면
계곡물이 불어나서 계곡을 훌터내리면 곧장 나무들 뿌리를 파내여 흙과 모래 그리고
토사들이 흘러내려 결국
하류의 민가와 농작물을 망치는 일이 벌어지는것이고
사방댐 공사로 이러한 피해를 줄여야 하는 국가적인 책임이
국가의 방칭이라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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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사랑 이야기 - 1 (2008. 2. 20)
아니이사람이 뭐 전원사랑이야기를 얼마나 쓰려고...
씨리즈로 나가려나...
제가 이야기 하고 싶은 전원사랑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본인이 이 전주조에 가입한것은 2001년 입니다.
꽤나 오랜일이지요.
그렇다고 그때부터 애착이였을까는 본인도 장담을 못합니다만.
왜 그리 지금생활에 집착을 하는것일까요
ㅎㅎ 웃음이 나올때도 있답니다.
누군가 그렇게 말하더군요
애착은 사랑을 퍼붓는 것이라고 정말 좋은일이라고들
그런데
애착이 심해져서 오래되면 집착이된다고 하네요
그말을 듣는순간 나는 집착하고 있음을 알수있었지요
그런데
잠시후 또
집착이 강하고 심해지면
병적인 증세가 나타난다고 하네요 .
ㅎㅎ 또 웃음을 터트려 보기만 할뿐 정말 그런가 하고 먼하늘을 쳐다보며
넉을읽고 공상에 잠기곤 한답니다.
여러분들이 이글을 읽어가면서 판단을 해주시고 또한
잘못된 전원 사랑이야기라면
리풀을 달아서 악풀을 달아도 좋습니다.
그런데 누군가
이 전주조에 들어와서 이글을 보고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글이라야지
혹은
별로 읽어봐야 필요한 글도 아닌것을 올려 놓아야
픽...
별 관심없이 전주조 의 전원이야기 글이 관심이 없어질것이라 봅니다.
그러나
또한 누구나 개인적인 신상에 대하여 노골적으로
필하고싶은 심정과 달리
솔직히 털어가면서 글을 올릴자신이 없을수도 있다는 점이겠지요
결론적으로
여러분들에게 참조가 되고
도움이 조금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제 1편에 올리면서
또.
잘못쓰는 글이지마는
너무 책하거나 미움을 갖어주지는 말아주시길 바라는 마음이랍니다.
그럼 본인의 시간이 되는데로
또
너무나 도배하듯이 하면 누군가 못난놈이라고 할것 같아서
되도록이면
장편으로 이끌어 가도록 해보겠습니다.
물론
접속자가 많지 않거나 제재의눈길이라면 중간에서 그만끄치도록 하겠습니다.
1950년 주민등록 나이 (기축년생 2월 4일생)
현주소: 경기도 포천시
직업: 전자제품 판매업(17년 lg전자 대리점 )
1967년 신철원종고 졸업
2003년 경복대학 입학
2005년 포천시 경복대학 2년 졸업(이대목이 이상하다 생각할것 입니다.)
생활신조
- 불가능은 없다 --무엇이든지 하면될수 있다.
-시간이 돈이다. --쉬지말고 무엇이든 해야한다.
-자연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인간의 삶을 위해서 자연을 이용해야 한다.
본인의 전화는 011-9150-7373
취미: 등산 --포천시거주 산악회 운영 --안가본산 거의 없음-한달 3회--4회 산행
취미2: 포크레인 운전 --본업도 아니면서 운전면허 취득 활동
농장준비
위치: 산골자기 막다른곳
풍수: 쉼터와 휴양지 조성 (조상님 묘소 종종산 존속)
토목내용 :1400평 밭을 정비중 /돌이맣아서 장비 구입되있음 02
수해복구: 2006년 시작완료 /강원도청 발주공사완료
매년 김장채소 경작 / 고추.무.배추. 들깨. 나무등등
배경현실: 컨테이너 한개 설치
전기시설 : 3상 전기 설치완료
산수와 배경: 계곡물이 쉬지않고 ㅡ흘러내림 / 군방부 사격장 을 지나서 입구설치
현재배경과 본인/ 만족하고 있음
이상은 본인의 신상명세 의 공개내용 입니다.
가족관계
집사람과 아들 2명 딸1명중
아들2명(32) 2007년 결혼식 올리고
딸 (28)하나 공부중
그럼 시간이 되는데로 글올리도록 하겠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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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사랑 이야기 2- 행복과 걱정이 나란히 ( 2008. 2. 20)
작년 봄이오는 5월 장남인 녀석을 장가를 보냈습니다.
인물도 잘생기고 한때는 뭐. 연애도 잘하는 모양이던데
요즘 젊은애들은 학교다니면서 커풀이다 애인이다.
현재 아버지 보다 수단이 좋은지 나보다 잘생겨서 그런지
아뭏든 회사를 다니면서
예쁘장한 신부후보를 데리고 와서 결혼해야 되겠습니다.
하고 인사 소개를 시키고 나서
지난 5월에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그런후
둘째 녀석이 또 그런일을 반복하면서
또 며느리 후보가 연달아 생겨서 지난 12월에 결혼식을 올렸답니다.
한해 두아들 결혼식을 하고 나시
집사람과 말다툼도 생기고 생전처음 은행대출도 받았답니다.
ㅎㅎ 다툼은 금방 돈이 모자랄때 생기더군요 ㅎㅎ
아들까지는 괜찮은데
같이 한아파트에서 살던 딸도 새롭게 방을 얻어주어 내보내야 한다는일이
우리계획에는 빠졌던 것이랍니다.
물론 딸이 시집을 먼저갔으면
거처하는 집이 필요할이유가 없는데 아직은
교사 임용고시라는 것이 남아있어 내년도에 시험을 앞두고
공부중이랍니다.(왕십리 원룸임대)
''
누군가 며느리 둘얻었으니 행복하겠쑤.
좋겠수 등
다니면서 들리는 소리는 매우 흡족한 말을 듣고는 한답니다.
물론 나는 항상 두식구가 늘고 그에 따라서 가족들이 늘어가는것에 대하여
항시 하늘에 고마움과 기쁨에대한 보람을
마음에 담고 다닌답니다.
그런데 마음이 한구석 허전한것은
내 생각대로 .혹은 내 기획대로 하면 크지는 않지마는 작은 아파트
각 한개씩을 해주겠노라 했었는데
지금 한녀석은 전세로 살고 있는것이 늘....
그런데 나의 마음 대로 또는내가 해주는데로 했음
벌서 지네 집들이 한개씩 다 있을텐데
흐음..
괜실이 상계동보다 여기가 좋다 저기가 좋다 하는 바람에
그만
아파트 값을 올라버리고
어이구.. 두아들 똑같은 21평 아파ㅡ트 하나씩 사주려고
항시 걱정하다가
한개는 사놓았는데
다시 한개를 사려고 해서
노원이 교통이 좋고 (4호선.7호선--1호선도 한정거장 차이)
해서리
먼저사놓은 아파트 옆에
다른동에 사려고 다 답사하고 계약단계에 와서
야.
장남 너도 이곳에다가 아파트 하나 사줄려고
계약하려고 한다.
함 보려냐. 하고
퇴근하는 녀석보고 말을 걸었다.
아녀 전 애들을 위해서 중계동으로 갈래요 ..
그래 ? 아니.?
그럼 중계동은 값이 좀 비쌀턴데
하고나서 나는
아쭈. ..저녀석 봐라 돈도 없는 주제에
또 그것도 아비가 사주려고 하는 성의도 무시하고
뭐.
중계동 ...
야..상계동에다가 사는것도 1억5천돈이라서 3천만원이 모자라서 나머지 는
네가 대출받아 갚아나가려고 하는데 뭐...
중계동...
그후 나ㅡ는 1억이란 거금을 모으느라고 집사람과 힘든 장사를 해서
억지로 모아놓았는데
아니
저녀석은 무슨 ...해주는것도 감지덕지 하다고들 하는데
뭐. 중계동....
난은근히 화가나기시작하는데
그날 나는 계약을 포기하고 .그만 포천인 집으로 돌아 왔다.
그리고는 얼마후
내가 농장을 만들어 가는 무랑골의 수해복구 공사를 하는데
명예 감독이라는 명칭으로
서울에 올라올 시간이 없었다.
아니.시간이 없는것이 아니라 속으로
좋아 !!
내가 너에게 사주나 봐라 .하고는 한편 심통이 났다.
그후 집사람도
큰아들 녀석 집을만들어 주어야하잔아요.
하는 말에 난 좀
퉁명스런 말로
난 몰라 안사줘 . 지가 알아서 하라구래.
하곤 나는 토라졋다.
그런후 1년이지난 지금.
나는
가끔 녀석을 만나면.
"신세좋다 전세끼고 살고 있으니 그것도 장남이 "..
야 너 언제 집하나 만드냐.
하고가끔 물어보는 나의 답에 "그저 준비중입니다." 하고
말하는 장남이 그져 대견한것인지
아님
그냥 세월아 네월아 하는것인지.하고
맙니다.
그렇지 않아도 벌써 장손며느리는 몇달후가 출산인데
나는 기쁘기도 하지마는 저녀석은
자식을 낳을때가 다 됬는데 아직 집도 마련못했으니
난 걱정이 태산인데
그녀석의 얼굴은 그저 싱글 벙글 웃음만 가득하다.
저녀석은 내가 아직도
지가 살집을 내가 마련해줄것으로 아는것인가.
아님
아주태평하게 직장만 다니고..
속으로는 난
장남이 남의 전세집을 전전할것이라 보니
마음이 편칠 않는다.
그런데
얼마전에 (12월달에 결혼한 둘째)
21평에 확장공사 까정 하고 결혼식후 신혼방을 채린
차남을 만나러 갈때
집들이에 둘이 온 모습을 보니 아니 벌써 배는
불쑥
손주녀석이 몇달후 나온채비를 하나 본데
어쩜
작은아들은 사놓은아파트에서 새로 꾸미도
잘있는데
첫째 녀석 더 크고 좋은데로 가려는 욕심때문에
남의집 신세를 지고 있는것이
갑자기 나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었다.
아들녀석이 무엇을 알겠어 .
그냥 내가 생각한 옆동 705동 아무곳이나 그저 사주었어야하는데
아니
저뱃속에 있는 손주녀석이 나와서
어릴때야 물론 별일이 아니지마는
유치원이라도 다닐때면
떳떳하게 집도 없고
전세집을 돌아야 하는 손주녀석에게 이 할비가
할말이 없다는 점이
매우 내 마음을 울리는 모양이였다.
저녁만찬이 끝나고 은근히
술도한잔씩 자주 마시는 아들과 의 사이지마는
야.
아들아
현재 이정도 아파트(21평) 만해도 너의이삿짐 다 옮길수 있잔야.
" 그야 그렇지요"
하면서
새롭게 꾸며놓은 동생 신혼살림방을 보면서 우리가 이곳에 와서 살까.
하는 갑작스런 말이 터져 나왔다.
그러고 보니
ㅡ큰아들 녀석이 전세사는 24평보다 작지마는
아담하고 내집이라는 평온이 아마도 마음에 들었던 것이라 짐작이 갔다.
그러니까 "임마 전에 아무말 하지 않았어도
내아파트에서 살수있었잔아."
하고 나는 빙그레 웃으면서 한마디 했다.
그러나 속으로는
큰며느리의 입장에서 얼마나 시아버지의 입장을 탓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니
자꾸만 집장만의 책임이 전갈이 오는 느낌이 닥아오고 있었다.
그러고 저러고 제일의 문제는
시집보낸 딸이 남의 전세집으로 전전하면서 고생하면서
출산하여 애를 키운다는 모습을 보여줄때
사돈댁에 무엇보다도 말할수 없는 부끄러움이 앞서고
어서 빨리
내집방한칸 마련에 힘써야 하는것이구나 하는 부담감이 벌서 나의 머리속으로 헤매고 있었다.
다음날 서울집에서 포천집으로 오려고 할때
마침 가까운 부동산에 들렸다.
전세금 빼서 21평 아파트 천상 하나 사주어야하는데
현재 돈도 없지마는
싼집하나 나오면 사겟노라고 말하려는데
부동산 여사장님 하는말" 현재 21평도 무척이나 올라서
살려면 또 올라가기 전에 서둘러야 한다는 애기를 하면서
지난일에 대한 후회에 다시한번 내 마음을 섭하게 만들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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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사랑 이야기 3 - 맨처음은 관심에서 애착으로 (2008. 2. 20)
직업이란 원래 각자의 생계수단이라고 봅니다.
오랜 시일을 격어오면서
경험하고 몸에 익히면서 모든 노하우 를 갖고 있다는 점은
누구에게도 줄수없은 하나의
천직이라 볼수 있을것이라 봅니다.
기계를 고치고. 전자제품 고장이 난것을 보면
그냥 지나칠수없는 성격에
길을가다가 농기구 를 고치거나 .
어려운일을 당하면 ..그무엇이라도 같이 해결해주려고 하는 마음은
감출길이 없다는 점이 저의 약점이랄까요.
농장에 관심을 두고
그어데에 땅을 매입하고저 노력한것은 2001년도 정도라 볼수 있었답니다.그래서
그당시
전주조 카페에 가입을 하고 나서
다방면 직업과 병행하여 많은 시각을 넓히고 돌아다녔답니다.
푸른언덕에 한가로히 풀을뜯는 소들의 풍경
아름다운 산기슭에 물소리와 새소리로 한가롭게
그리고
조용하고 공기좋은 산속의 풍경을
마음껏 즐길수 있고 자유를 누릴수 있는곳이 매우 본인이 바라는 소망이랄까.
지난날들의 그 세월속에서 그무엇인가를 취득하려고 노력하고
그로인하여 돈을 벌어야 한다는 다짐속에서
무진장 노력한바는 본인아닌 세상이 알아줄정도라 믿고 있습니다.
그로인한 세월이 지나서 7년정도 일까.
본인의 조상님들이 묻힌
고향땅을 매년마다 명절 마다 그리고 한식이고 . 금초/벌초 때마다
년중행사로 가던곳이
그때서야 비로서 나의 눈에 산과 밭이라는 점이 마음에 닦아와 있었습니다.
본인은
매년마다 산소 의 잔디가 잘 안살고 겨울만 지나면 흙이 흘려내리고
남의 묘소 보다 못한것을 안 나는
드디여 지금수원에 계신 작은아버님에게
석재로서 공사를 할것을 요망하였습니다.
석재로 하는 두레석 설치는 상석과 비석등 한묘소에
330만원을 견적하고 그리고
돈걱정하시는 숙부님께 본인이 모두다 부담해서 해놓겠습니다. 하고
말씀드리고 돌아오는 봄에
공사팀을 계약하고 조상님 묘소에 석재공사 를 마쳤습니다.
공사비부담을 반을 해주신 숙부님과 사촌 동생들의 도움도 받고
본인이 장손이라는 마음과 자세이랄까.
왠지 그런생각을 했었는지 본인도 잘모르겟습니다.
다만
6.25 사변으로 인한 저의 할아버님과 아버님. 어머님의 사망이란 계기는
많은 아픔으로 변했고
부모님과 할아버님을 존경하는 마음에
묘소라도 잘해드리고 싶었던 마음이였습니다.
그런데 일은 그때부터 일어났습니다.
본인이 그렇게 다른곳으로 땅을 보려고 다니고
다른 묘소 자리도 보고 ...소위 내가 죽어서 묻힐자리라도 한곳
찾아보자고 하는 생각이있었습니다.
그때 부동산하는 사람과 같이 포천일때를 답사한적이 있는데
아니
조상님들의 묘소 를 두레석으로 하고나서야
지금의 농장을 꾸미고 있는 자리가 눈에 들어왔답니다.
아니 저앞으로 흐르는 개울
그리고 듬성듬성 박혀있는 바윗돌
그리고 수없는 아까시아 나무 그리고 잡목들의 모양을 겨울철
낙옆이 떨어져 있을때 의
전경을 읽어볼수 있었으며 .나ㅡ는 그시각의 영상이
자나 깨나 떠나질 않았읍니다.
ㅡ그때부터 나는 정말 직업과 의 일들이 끝나기만 하면
지금의 무랑골인 농장으로 오곤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으로부터 약 7년전일까.
숙부님께 땅의 모양의 설명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리고 밭이 1.400 평 이고
산이 수정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장손이라는 나에게 보존등기 를 만들어 놓았으며
나는 그때서야
묘소 위에 산에 올라서 산의 풍수 를 더듬어 보았습니다.
좌청용. 우백호 등 의 풍수가 잘 조성 잘되있고
앞으로 흐르는 개울과
그런데 옆산이 좀가려 있다는 점에서 볼때 과히
이만한 곳도 없다는 것을 새삼스례 판단하고 나서
다음해
장비업자 를 동원하여 하천일부 를 보존하면서
현재 의 밭을 개간하였습니다.
그전에는 군인들이 훈련을 하려고 포진지도 가상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잡목들이 무수해서
벌초를 다닐때도 그냥 가까스로 다니는 길만
숙부님과 친척분들이
낫으로 깍고 다니기만 할뿐.
그러나
본인은 누구보다 오래전 예초기를 비싼가격을 구입하여
넓고 넓은 묘소 부근을 깍아나갔으며
점점 확장해나가는 것을 좋아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애착이 많은 진보 를 보이면서 하루도
그곳에 대한 애착이 점점 나의 관심을 끌어들여 습니다.
그당시 300만원을 들여서 밭을 계단식으로 만들어 놓았으며
내가 마음에 드는 밭을 구입해놓은 기분이였답니다.
여름철이면 집사람과 그리고 애들을 불려서
개울이 흐르는 산기슭의 묘소입구에서 고기도 구어먹고
그늘이 좋은 나무 밑에서 가족의 모임도 해보곤 했답니다.
그러한 일이 1년이 지나고 나서
비가내리는 여름철 얼마나 비가 많이 오는지 개울도 못건너 가는 곳인데
장마때면 홍수도 나고 우리 밭을 강타하여
흙이 떨어져 나가고 있는것을 발견할수 있었답니다.
그럴때 마다 본인은
아깝게 마련해주신 조상님의 땅인데 저렇게
장마로 인해 땅이 훼손되는것을 볼때 마음이 아팠던 것입니다.
그렇게 그해를 보내고 나서
다음해 나는 해당군청에 수해복구 라는 민원을 내게 되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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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사랑 이야기 4 - 수해복구 민원동기 (2008. 2. 20)
본인은 경기도청과 인연을 맺은일을
사실상 많이 하고 다녔습니다.
그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무엇이든지 남의일이 내일같고 . 도로를 달리다가 이정표가 지워졌거나 삐뚫어 졌거나
분명히 그모양을 사진에 담고
그리고 해당 시.군청에 보고를 합니다.
그리고 는 그의 답변을 듣곤 하지요 .
그런일을 시작하면서 괜실이
인터넷상으로 인한 모든 일들이 무진장 알고싶고 해보고 싶고
밤이면 인터넷으로 관련있는 산행기를 읽어봐야 하고
반면에 써야 하는 일들이 하고싶기만 했답니다.
또한 등산로 입구 .등산로 정비 등이 우리나라 관광상품에 관련 한
자세한것도 모두 경기도청과 관련 해당시청 으로
통고 를 하고
그시정안을 제안하여 보내고 그리고
그결과 를 통고받곤 했답니다.
뭐랄까 길가에 에어컨 실외기를 방치하는 것을
정부차원에서 각 요식업소나. 공공 그리고
우리나라 모든 가로정비에 대한 정보들을 관련하여 시정토록 한일도 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일본도여러번. 외국여행을 자주 하면서
선진국이나 아님
우리나라 에서 볼수없는 시설이랄까.
개선해야할일들은 하나하나 정부 개선차원에서 많이
모니터링을 하여 올렸던 것이였으며
이런일을 하다보니
현재의 농장을 지나가는 하천관리 수해복구등을
자연스럽게 해당군청에 민원을
인터넷을 통해 올렸던 것입니다.
현장에 답사차 나온 군청직원들도 시각적으로 보아 당연히
수해복구 를 해야함에 봄에 미리 기획한 예산으로 는 다음해나 공사를
할것 같다고 말했읍니다.
일단 일이 시작된김에 한다고 연이여 해당 읍장과 의 면담신청과
해당 직원들이 급파하여
결국 닥쳐오는 여름철의 수해를 막기위해서
본인이 견적을 내어놓은 7일간의 수해복구 작업에서
3일간의 도움을 받게 된 사실이였답니다.
얼마나 기쁜일인지 . 그때의 관공서 의 고마움도 느꼇답니다.
이모든것은 다
본인이 경기도청을 다니면서 알게된 상식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국가의 하천이라는 곳은 개인경비로 해서도 안되고
할필요도 없으며 국가의 예산을 해야 된다.
-하천의 돌과 모래 등 의 자연물을 훼손해도 안되고 운반해도 안된다
-더구나 밭과 논에 관련 하천이 있을때 해당 시.군청에서 모든것을 해결해준다는 것이다.
위와 같은 사실을 알게 된후에
7일간의 공사 견적을 원래는 개인이 하천공사 를 하려고 했던것이랍니다.
처음몰랐을때는 얼마나 멍청하게 개인돈을 투자할려고 했던 것일까요 .
(좌측이 모두 수해로 인해 쓸려 내려온 토사로 쌓인 모양이랍니다.)
이모든것이 사회생활을 통해서 배워서 알았다는것이
더더욱 좋은 방안이라 보았으며
그해는 해당 읍면의 보조아래 남은 비용을 본인이 부담하면서
혹은 본인이 장비를 들여서
장마에 대비한 준비를 하고 무난히 여름철을 넘겼답니다.
결국은 조상님이 보존해주신 땅을 조금이라도 장마에 씻기지 않기위해서 이며
기름진 땅으로 만들기 위한 첫 발을 들이는 과정이라 봅니다.
(이것은 공사후 다음해 의 모습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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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사랑 이야기 5 - 급기야 전기도 끌어 들이고 (2008. 2. 23)
농장이고 전원주택이고
기본이 전기가 있어야 한다는 근본아래
전기공사도 급기야 그때 이루어졌답니다.
물론 농수용 전기 를 신청해서 끌어들이는것인데
이곳은 보이는 것처럼 국방부 사격장을 지나가는 곳이라서
기본 설치비로는 도저히 공사가 될수없는 실정이라서
자부담금이 100여미터 부담되는 공사를 했답니다.
난리 났지요
울 집사람은 산골짜기 속에다가 수백만원씩 쳐들인다고 실은
전기끌어 들인다는 애기가 벌써 수년전 부터인데
마누라와 싸움끝에 반대만 해오다가 이렇게 진행이 되고만것이랍니다.
물론 집사람 동창들도 이부근에서 동창회를 하면서 살고 있는데
아마
내가 하늘일이 여동창 들 모인가운데서 못쓸일을 하는것은
아니라는 애기도 있었던 모양이지요.
그후에는 별다른 애기는 없었답니다.
전기도 끌어들이고 . 이제 하천의 댐은 완성되어 가고 있고
하천아래로 뚝방조성만 해놓으면 준공이 될수 있는 싯점입니다.
이곳을 제가 매일 자나깨나 공상하는것은
막다른 산골짜기 이고.
또 ㄱ끊임없이 흘러내리는 하천이 마음에; 들었구요
남향의 밭이 전원주택 조성에 적지라는 개념이랍니다.
물론 밭을 새로 매입하려면 몇만원씩 주어야 하고
가격이 비싸서 사지도 못하는 현실이고 해서
본인의 계획은 질이 좋은 땅을 만들고 나이가 먹어감에 따라서 이곳에서 귀농의 정착지로
정한이유라 봅니다.
그런데요
귀농의 조건에서 어데선가 가끔 보는 조건이지마는
-첫째가 부부가 참여하지 않으면 실패한다는 조건이 제일 마음에 걸리는것인데
본인으 조건도 이점이랍니다.
-집사람은 비록 농촌소도시에 살고 있지만.
노원집 롯데 백화점의 단골 손님이고 그생활에 젖어 살고 싶어하거든요.
그런 이미지 의 여인으로서 산골짜기에 들어온다는 생각을 하면
아마도
그여인은 생각하기도 싫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나는 어떻게 하면
송아지에 코둘레를 어쩜 일찍 끼워서 고삐를 살살 당기면서
이곳을 끌어 들이냐 하는것이 관건이 되는것이랍니다.ㅓ
이제 막내딸 하나남았고 아들둘을 장가보내고 나니 그런데로
고삐에 힘이 들어가지 않을듯 한데
아뭏든 농장만들기 의 공사는 서서히 이렇게 이루어 져 나갔습니다.
사방댐의 이미지는 바로 이런것이 랍니다.
산골자기에서 홍수와 사태가 나면 이사방댐에서 머물고 토사들이 모여있게 만들고
물만 빠져 나가는 개념이며
하류의 수해피해는 없게끔 만드는 공사랍니다.
그해 여름은 아주 마음놓고 안심하게 지냈으며
국가의 시책대로 잘되여 본인또한 농장 만들기에 보탬이 된셈이랍니다.
그해를 넘기고 나서
다음해는 밭속에 있는 돌들을 여기저기 옮기여 뚝방을 만들고
밭을 흙이좋게 하기위해서 기본작업을 하였답니다.
2005년 부터 의 본인의 애착은 ------
차차 집착이 되고 -------그렇게 하고난다음부터 는 정말 남이 말하는 -----병적이되었을까요.
이에 대한 근본개념을 서술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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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사랑 이야기 6 - 전원에서의 행복 (2008. 2. 25)
본인이 전원을 갖기로 하면서 제일 많이 부디치는것은 바로
가족의 화합입니다.
모든분들이 잘아는 애기지마는
본인역시 나혼자만이 전원에 대한 꿈이 강하고
반대로 집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 매우 강한 벽이라 보고 있었답니다.
그러나
연이어 가야할 산과 고개들을 넘지 않을수 없고 .
한푼 한푼 투자가 되어야 전원의 맛을 볼수 있기에 본인은
매번 농장에 갈때 마다
많은 고심속에서 생각을 같이해나가야 하는 실정이랍니다.
그전에도
3남매 의 자녀들을 학교다닐때마다 도시락을 싸주는 어미 의 심정이 처음에는 재미로 한다고 하고
사랑으로 하는 엄마 들의 심정이라지마는
3남매 그렇게 하고나서 또 나에게도 점심을 먹게 해줄 도시락을 싸야 하는 여자들의 심정은
정말 실증이 날만도하다고 보아야 합니다.
전원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하려고 한것이 3년전일인데
그때 만해도 집사람의 배려가 원만하지 못해서
점심은 그냥 라면도 끓여 먹고 .
이따금 식당에서 밥도 사먹고
한동안은 줄곳 도시락을 싸주기도 했는데
그것도 한때이고
실증이나면
어떤때는 먹기싫어서 그만 굶어도 보고 . 그렇게 3년의세월속에서
보내왔건만
오늘은 이렇게 명절 보름날 먹어보는 나물들을 모아서 이렇게 도시락을 싸서
가져왔답니다.
점심때 나무난로 에 불을 피우고 따스한 컨테이너 안에서
활활타는 난로에 도시락을 올려놓고 보니
그옛날 초등학교 시절이 생각이 나고
공부시간에 도시락에서 냄새가 나는 그때의 생각이
문뜩 감상에 젖기도 했다.
어찌되었든간에 집사람이 점심을 싸준것을 먹는다는 것만큼
행복하다고 생각해본일이 없답니다.
그래서 오늘의 점심시간은 행복한 시간이라 생각하며
덧붙여 싸준 가래떡을
난로위에 구워서
먹는 나의 모습이 정말 전원생활이 행복함을 떠오르게 하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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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사랑 이야기 7 - 결혼기념일 선물이요 (2008. 2. 27)
32년의 결혼기념일 이랍니다.
며칠전에 우리가족들과 의 저녁식사 만남에서
우리아들들이 학생시절에 간직하고 있떤 저금통장에
조금씩 조금씩
집사람이 모은 저축통장과
수년간에 걸쳐 애들앞으로 넣어둔 적금들을 모아서
아들 2과 딸 한명의 분리된 금액으로 오래된 통장들을
며느리 둘에게 전달하고
종자돈이라고 생각하고 앞으로 이통장에 자꾸 자꾸
돈을 모아서 작은 집이라도 살때
보탬이 되달라고 저녁식사시간에 거창하게 건넸답니다.
식사가 끝난뒤
시어미 되는 집사람이 며느리 2사람과 딸
그리고 아들이 있는 자리에서 에게
"27일이 우리 결혼기념일이야."
알았지
하고 말을 하더라고 요 .
그래서 속으로 아니 며느리들 한테 무얼해달라고 통고하는거야 .뭐야 ..
하고나서
며칠이 흘렀는데
이곳 포천에서 ---
--서울 영등포. 인천.을 거쳐 다시 노원을 들려서
포천 집에 와보니
꽃바구니와 함께 삼페인. 케잌 들이 책상에 있더라구요.
왠 선물이냐 고 하고 집사람에게 물으니
"아끌세
서울에 있는 애들이 결혼기념일 축하 꽃바구니 를
보냈지 뭐유.."
이런것 보내달라고 한것은 아닌데
괜실이 돈만 쓴것 아닌지 ..
그냥
시어미 의 결혼기념일 이라는 말만 한것인데 하고 .
웃으면서 ...
그런데 살며시 눈치를 살피는
집사람
입이 커지면서
그래서 싫지는 않은지 오래만에 받아보는 꽃바구니가 좋은가 봅니다.
허허 나도 기분은 좋더라구요 그래서
와..
며느리들한테 엄포놓은 말이 먹혀들었나 보네..
참
우리
지금까지 결혼기념일 챙긴 일도 없는데
아들결혼시키고 보니
결혼기념일도 생겼네 ㅎㅎ
우리 내일은 어데라도 여행이라도 하고
하고 돌아와야 하겠네 하고
웃음을 터뜨렸답니다.
그래서 또 한마디 해보내는 말
"고맙다 .사랑한다. 우리며느리 .딸. 그리고 아들들아."
그래서 이렇게 카페에 들어와서
이글을 남기고 싶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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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사랑 이야기 8 - 우리나라 의 불경기가 바로 전원에 꿈을 심는 첫삽의 시작 (2008. 3. 4)
본인나이에 물론 대학을 다닌다는 것은 물론 힘들었다고나 할까.
고등학교 시절에 아예 진학을 포기하고
기술배우는 단계로 시도했답니다.
그래서 전자제품 수리공으로 시작한 나의 직업이
말그대로 정부 의 난무한
유선방송의 허가로 말미암아
수십개 채널로 유선화 방송으로 홈쇼핑이 생긴다음 부터는
본인 장사에 불경기를 불러 드리기 시작한 시점이라 볼수 있답니다.
할일은 많고 모르는것은 너무 많고
배워야 할것도 너무 많으나 무식이라는 나의 입장이 너무나 현사회의
쫍아진 공간속으로
삐기고 들어가기가 힘들었답니다.
농장을 시작해야할 즈음
장비를 임대하는비용이 너무 비싸서 그만 중고 장비 를 구입하기로 하고
중장비 를 배우고저
맨처음 이론시험을 보고저 필기문제 를 공부하고
필기시험에 합격한 영광으로 다시
서울 마포구 공덕동 한국인력관리공단에서 시험을 보았으며
다음해 실기시험에도 무난히 합격하여 현재의
장비 기술습득의 면허 를 갖게 되었답니다.
더구나 2003년에는 컴퓨터 를 배워야 하는데 키보드 를 쳐야 하는 앞을가로 막는
타자 치는 방법에 대하여
해도 해도 손목만 아프고 도저히 이런 공부 를 해야 하는가 하고
망설이다가 결국은
포천시 경복대학 의 문을 두드리고 입학을 하게 됩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공부를 하려고 하는 만학도 의 꿈을 이루어 지게 되었는데
학비가 학기당 250 만원이넘었으며
그 비용도 집사람의 도움으로 2005년 전문대 졸업을 하게 됩니다.
현직업에 충실하랴 . 공부하랴. 물론 시험도 철저히 보았지마는 실상
머리에 들어가는 지식은 나이가 많아서 인지
젊은 세대 들과 의 공부 에서 .많은 어려움이 닥쳐 왔답니다.
제일 서글푼것은 한.두번은 옆에 학생들이 가르쳐 줄수 는 있지마는
매번 그렇게 해주지않는다는 점에서
결국 자존심이 상해서 . 더욱더 모르는것을 배우게 되었답니다
사진처럼 밭이라고 되어있는 1400평이 모두 이정도 의 바윗돌들이 가득차있었으며
점점 밭을일구어 가는 동안
본인은 저 위에서 내려다 보시고 계시는 할아버님의 뜻을 알게 되었답니다.
이바윗돌이 다 돈이라는것을 말입니다
결국 3년이란 세월이 흘러서 지금의 어느정도 정리가 되어가는
무랑골 농장은 이제
저의 끈질긴 노력과 투지에 변하고 있었답니다.
그러나 또다시 닥쳐오는 일들은 하나둘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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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사랑 이야기 9 - 이제 땅이 녹기 시작했습니다. (2008. 3. 7)
오늘은 이처럼 뚝방을 좁히고 조경석을 이동하여 포ㅡ크레인으로 돌을 쌓았답니다. 기름값은 매일 2만원씩 들어가지만 그것도 한달이면 60만원이나 들어간다고 봅니다.
이곳은 밭으로 우선 쓰다가 자금이 되면 나무와 흙으로 집을 짓고저 터를 닦는 중이랍니다.
지금 포크레인이 있는 밭.... 이위치가 조망이 시원하게 내다 보이는 산중턱이며 동향과 남향의 위치랍니다.
종전에 돌을 쌓고 약초도 심고. 화초도 이곳저곳 심어두었는데 실상 겨울에 모두 싹이 없어지고 나니 그런데로 일하기가 편리하긴 하답니다.
싹이나오는 때 조경석을 쌓으면 틈틈히 보이는 새싹들이 너무나 아까운 마음에 일하기가 너무 힘들답니다.
그래서 인정사정 볼것없이 싹이 없을때 작업하는 것이며 간간히 더덕들이 나오면 아까운 심정일 뿐이랍니다.
곰취. 도라지 등 심어놓은 뿌리들이 각가 흩어지고 ...ㅉㅉ 그래도 집터를 좀 더 넗히기 위ㅇ해서니까. 올해부터는 이제 다시하지 않으렵니다.
들어오는 입구에서 봐도 돌쌓아놓은것이 좀 이쁘게 보이는듯하네요
한개의 돌을 한번에서 두번 아님 세번씩 장비 손에 거쳐야 돌이 쌓아지고 조각가 의 작품이 된다고 봅니다.
문제는 매일 매일 시간만 나면 이곳에 와야 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일이중독인지 아님
미래를 위한 준비라지마는 본인은 너무나 할결같이 매일 매일 와야만이 속이후련하고 안오곤 궁금해서 매일 매일 발걸음이 향하고 만답니다.
이것이 본인이 절제 하지 못하는 일이고 너무나 애착이 집착으로 변하고 집착이 너무 강해서 병적으로 이어진다고 하는 사람들애기처럼
이제는 이곳에 오지 않으면 정말 병이라도 생길듯 하답니다. 마음에 안들면 쌓은것도 다시 허물어 쌓아야 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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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사랑 이야기 10 - 봄이면 너무 바쁜 일들이 (2008. 3. 29)
나의 농장일들을 하랴.
동우회에서 연결된 포크일들을 해주랴.
봄이면 농장에 나무들을 모두 옮겨 심고 . 돌쌓은곳에 철쭉도 심어야 하고
비가오는 날들이 많아서 장비들의 일들이 밀려 드는데
요근래
논에 객토하는 일들이 생겨서 또다시
일단계 흙을 채우기시작했답니다.
이웃의 목장에 새로운 흙으로 보수하려고
덤푸 에 흙을 실어
목장들의 변신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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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애쓰신만큼 좋은 농장으로 거듭날 것입니다~~좋은 농장 만드시느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아직도 할일이 많아요.
황무지를 아름다운 모습으로 되기까지 정말 수고 많이하셨네요. 님의 땀의 결실로 우리네 눈까지 맑아지네요. 건강하세요. ^^
ㅎㅎ 고맙습니다. 전에 모종도 보내주시고. 저도 남을 위해서 돕는일을 해야 하는데
어쩌면 저토록 대장정의 역사를 직접 하시는지...너무 경이로웠습니다. 앞으로 변해져갈 모습이 기대됩니다. 행복하세요~~
벌써 5년이 되어가는가 봅니다. 감사합니다.
대단하십니다. 부럽습니다요... 늘 건강 하시고 행복 하세요. 언제일런지는 모르겠지만 함 찾아 가겠습니다.
존경스럽고 행복하시겠어요...저의 부부도 10년전땅을 구입후 그런 재미에 빠져있는데,처음 카페에 가입해서 배울점이 많을것 같아요 꼭 한번 가 보고 싶어요.
못쓴는 돌이 보석으로 태어나는 과정을 보여주고 계시네요.... 정말 축복 받을 만하시고 그걸 아시니 조상님도 아낌없이 사랑 하시는것 같아요... 대단하십니다... 열정이 부럽습니다...늘 축복 받는 날 들이 되시길 ....
대단 하십니다.
존경스럽습니다 , 좋은결과잇으시기를 ,
대단한 인내와 끈기가 있어야 좋은결실이 맻혀지는군요 대단하십니다''
새로움을 깨달았습니다...저럴수도 있군요!
열정과 애정 부럽구 존경합니다... 모이시는 곳에 묵묵히 봉사하시는 모습.... 존경합니다... 감사하구요... 늘 건강하세요...
감동이네요~~~ 열정과 끈기., 존경스럽습니다 댁내에 평안과 행복이 가득하시고 강건하십시요~~
열정과 감동의 드라마를 본것 같습니다. 존경받기에 충분하십니다.
잘 보았습니다. 늘 건강하시고 행운을 빕니다.
놓아주신 고라니 눈이 너무 맑군요.
뭉클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선택하기를 기대해 봅니다.
저두 눈물이 핑돌았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로 대단한 열정이십니다.
늘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다른 사람들이 가질수없는것을 많이갇고 계시네요. 소신과,열정 그리고 솔직함 까지 .
공부 많이 했어요.감사 합니다.
대단하다는 말밖에는~~존경스럽습니다~~
한수 배우고 갑니다... 부럽네요.
뵐수록 대단한 분이시라는걸 느낍니다.... 가족들은 얼마나 행복할까 생각해봤습니다.
죽을때 후회하는 25가지를 보면 가장 많은 것이 하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죽을때라고 합니다.
그런 후횔 하지 않으려는 확실한 의지가 보입니다.
더 힘 내십시요~~~
꿈같은 일을 하시는군요 화이팅........
인간만세! 대단하십니다, 저도 할일이 태산인데... ^^
존경심이 절로 나네요.
감사합니다.
대단하십니다"
존경스럽습니다"
건강하십시요"
존경스럽습니다 .. 요즘 사진도 같이 올려주세요...
많이 배웠습니다.
전주조에 가입한 후 배울 것 찾다가 이제야 이곳에서 종일 소설 읽듯 읽었습니다.
아~~ 진작 이 글을 읽었어야 하는 것입니다.
병적일 수 없는 것이 문제지,집착. 병적이라야만 꿈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990년까지도 길도 없는 심심산골에 왔다갔다만 했지요. 서울에서.
뒤돌아보고 또 앞으로 나가면서 올려주신 체험담이 큰 보탬이 될 것입니다.
감사하구요. 차츰 변모해가는 모습에 가슴이 뿌듯하고 나의 일처럼 행복합니다.
더욱 열성껏 하시리라 믿으면서 아자! 아자! 꿈의낙원을 위하여!
요즘은 글이 안 올라와 궁금합니다.
잘 지내시는지요?
삭제된 댓글 입니다.
네 반갑습니다.
지금부터....
08.10.22, 2747....
그리고 잎으로의 기여를 기대하자는 새 운영진들의 의결을 거쳐 활성화했습니다.
앞으로 어떤 일이든지 유익한 이야기로 아름답게 만들어 갑시다.
와
아직도 내가써올린글들이남아있네요
감개무량합니다
벌써 10년도 넘었는데 안쓸건가요?
이제부터
써야지요
종종
그간 어떻게 변하였나 왔다가 오잉?
급히 먹은 밥이 목에 걸리셨나?ㅋㅋ
점점 일이 많고 바쁘셔서 글 올릴 틈도 없으신가 보다.
몸살은 피하고 건강하십시요.
ㅎㅎ
임야를 사고싶어서요
문의합니다
그린맨 카페지기님
대단하십니다
아직저에게 공간을주시니까
10년 귀농사업을 마치려구요
그리고
농장관련임야 를 갖고싶고
작은
수목원이랄까?
노후에소망이엿는데
ㅎㅎ
임야를 사고싶어서요
문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