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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산업혁명에서 인간 해방까지
1801년 영국 코울브룩데일의 어느 밤, 용광로의 불길이 밤하늘을 붉게 물들였다. 산업혁명의 빛과 그림자가 교차하는 이 풍경은 인류가 맞이한 거대한 변혁의 서막이었다. 기계와 증기기관이 만들어낸 폭발적 생산력은 새로운 부와 번영을 약속했지만, 그 불빛 아래 드리운 그림자는 깊고도 짙었다. 거대한 공장 도시에서는 시뻘건 굴뚝 연기와 기계 소음이 가득했고, 그 속에서 수많은 노동자들이 기나긴 노동 행렬을 이루고 있었다.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하루 12~16시간을 기계의 부속품처럼 일하며 땀을 쏟아냈다. 산업혁명이 만들어낸 부는 일부 자본가의 주머니로 들어갔지만, 정작 생산을 떠받치는 이 노동자들의 삶은 지옥과도 같았다. 기술 혁신의 혜택은 아이러니하게도 소수에게만 돌아갔고, 대다수 노동자는 더욱 궁핍하고 비참한 현실에 내몰렸다. 땀과 석탄 재로 얼룩진 노동자들의 얼굴에는 삶의 개선이 아닌 새로운 굴레의 흔적이 새겨졌고, 공장 지대의 하늘은 밝은 미래 대신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산업혁명의 상처와 자본주의의 태동
19세기 산업혁명기의 현실은 약속과 모순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방적기와 증기기관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생산력의 신장을 이루어냈지만, 그 대가는 노동자들의 고통으로 치러졌습니다. 공장주와 자본가들은 부를 축적했지만, 그 밑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은 마치 소모품처럼 착취당했지요. 임시변통의 조치나 자선으로는 이들의 처참한 삶을 바꾸기 어려웠습니다. 실제로 산업혁명 초기 영국의 공장들은 노동 규제가 거의 없어, 어린 아이들도 성인의 10~20% 임금만 받고 하루 12시간 넘게 일했습니다. 일자리를 구하려는 사람들이 넘쳐났기에, 공장주는 임금을 계속 깎고 노동 시간을 늘려도 문제가 없었습니다. 심지어 하루 16시간씩 혹사해도 일할 인력이 차고 넘쳤고, 그만큼 착취도 당연한 듯 자행되었습니다.
기계 앞에 선 사람들은 인간이 아니라 부품 취급을 받았고, 뼈 빠지게 일해도 가난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산업혁명은 새로운 시대를 열었지만, 그 역설적인 풍경 앞에서 사람들은 묻기 시작했습니다. 어째서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상품이 생산되는 시대에 정작 생산자들은 빈곤에 허덕이는가? 산업혁명이 가져온 부는 왜 모두에게 행복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극소수의 풍요와 다수의 빈곤이라는 모순적인 결과를 낳았는가?
이 질문들은 당시 사회에 큰 파문을 일으켰고, 한 젊은 사상가의 가슴에도 불길을 지폈습니다. 그가 바로 칼 마르크스였습니다. 눈앞의 산업사회의 아이러니에 분노하고 연민을 느낀 마르크스는, 이 거대한 모순의 원인을 밝히고자 하는 지적 여정에 뛰어듭니다. 유복한 변호사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기존 질서의 불의를 보며 일찍부터 급진적 사상가로 성장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산업혁명의 상처를 목격하며 스스로에게 다짐했습니다. "왜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는가? 반드시 이 모순을 풀 열쇠를 찾아내리라." 산업화가 남긴 상처와 자본주의의 탄생 과정은 그의 사상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자본주의가 사회를 풍요롭게 할 것이라는 약속과 노동자들을 비참하게 만드는 현실 사이의 틈, 그 틈에서 터져 나오는 신음소리가 바로 마르크스 사상의 원천이었던 것입니다.
변증법의 여명: 헤겔과 포이어바흐를 넘어
마르크스의 위대한 이론을 이해하려면, 그 사상적 뿌리가 된 두 거장을 먼저 짚어봐야 합니다. 하나는 게오르크 헤겔이고, 또 하나는 루트비히 포이어바흐입니다. 젊은 시절 마르크스는 이들의 철학에서 깊은 영감을 받았습니다. 헤겔은 역사를 움직이는 원리로
**정(正)–반(反)–합(合)**의 변증법을 제시했습니다.
하나의 명제가 제기되면(정), 그에 반대되는 힘이 나타나 갈등하고(반), 결국 둘의 대립을 넘어서는 새로운 단계(합)가 출현한다는 사관이었지요. 다만 헤겔은 이러한 변증의 운동을 **정신(관념)**의 자기전개로 보았습니다. 현실의 변화를 이끄는 것은 정신의 변화라는 관념론적 입장이었죠. 마르크스는 헤겔의 이 통찰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그것을 뒤집어 현실을 해명하고자 했습니다. 그는 말했습니다. "헤겔의 변증법은 마치 물구나무선 상태였다. 나는 그것을 바로 세웠다." 정신이 역사를 이끈다는 헤겔의 이상주의를 뒤집어, 물질의 운동이 역사를 이끈다고 본 것입니다. 다시 말해, 아이디어나 의식이 아니라 현실의 물질적 조건이 변화를 낳는다는 방향 전환이었습니다.
또 다른 스승, 포이어바흐는 헤겔에 반기를 들고 유물론을 주창한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신과 관념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 현실 세계를 철학의 중심에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지요. 이 점은 마르크스에게 단단한 토대를 제공했습니다. 그러나 곧 마르크스는 깨달았습니다. 포이어바흐의 유물론도 세상을 바꾸기에는 어딘가 부족하다는 것을 말입니다. 포이어바흐는 관념 대신 물질을 중시했지만, 세상을 그저 관조할 뿐 능동적으로 변혁하지는 못했다는 한계가 있었던 것입니다.
르크스는 생각했습니다. "철학이 세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단순히 해석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 현실을 바꾸는 힘이 되어야 한다."
이리하여 마르크스는 헤겔과 포이어바흐를 종합해 자신만의 무기를 벼려냅니다. 변증법적 유물론의 탄생입니다. 헤겔에게서 역사의 역동적 발전 법칙을 받아들이되, 그것을 물질적 현실에 적용하고, 포이어바흐에게서 현실 세계를 중시하는 관점을 배워 오되, 거기에 실천의 개념을 불어넣었습니다. 이 새로운 철학의 출발점에서 마르크스는 힘주어 선언하지요.
"철학자들은 지금까지 세계를 다양하게 해석해 왔을 뿐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세계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 한 마디에 그의 사명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이제 철학은 책 속의 관조가 아니라 거리의 현실을 바꾸는 실천적 무기여야 했습니다. 마르크스는 생각했습니다. 세상은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 모순으로 가득 찬 현실을 변화시키려면, 행동하는 철학이 필요하다. 행동의 밑거름이 될 과학적 분석과 이론을 구축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삶 전체를 바치기로 결심합니다. 젊은 시절 품었던 열정을 현실의 노동자 투쟁과 접목시키며, 마르크스는 사상의 연금술로 현실을 변혁할 준비를 갖춰나갔습니다.
마르크스의 삶과 『자본』을 향한 고뇌
런던 대영박물관 도서관의 둥근 열람실. 이곳은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집필하며 날마다 머물렀던 학문의 전당이다. 칼 마르크스의 생은 그 자체로 한 편의 투쟁 드라마였습니다. 1818년 프로이센 왕국의 트리어에서 태어난 그는 청년 시절부터 기존 권력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급진 언론인으로 활약했지만, 그로 인해 탄압받고 고향을 등져야 했습니다. 파리와 브뤼셀 등지를 떠돌며 혁명의 불씨를 찾아 헤맸던 그는 결국 산업혁명의 심장부였던 영국 런던에 망명하게 되지요. 그러나 런던에서의 삶은 결코 평탄치 않았습니다. 가족을 데리고 정착한 그는 첫 10년간 극심한 가난과 질병에 시달렸고, 그 와중에 어린 자식들 여럿을 잃는 비극까지 겪어야 했습니다.
혁명을 꿈꾸던 위대한 사상가였지만, 현실의 그는 가족을 먹여 살릴 돈조차 없는 가장이기도 했던 것입니다. 집안 형편은 너무나 어려워서, 그는 애써 쓴 논문의 원고를 담보로 잡히고 푼돈을 빌려야 했고, 셋방의 가구며 옷가지마저 전당포에 맡겨야 했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은 굶주림에 괴로워했고, 사랑하는 자식 네 명이 영양실조와 병으로 눈앞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때의 비통함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이러한 고난 속에서도 인간 해방의 꿈만은 그를 떠나지 않았습니다. 마르크스는 차가운 이불을 그러안고 이를 악물었습니다.
“내 남은 인생을 바쳐서라도 이 자본주의의 비밀을 밝혀내고야 말겠다.”
그 다짐대로, 생계가 막막한 상황에서도 그의 펜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낮에는 가족을 위해 신문 기고를 하고, 밤이면 불빛 아래 책과 씨름했습니다. 마르크스는 하루하루를 영국 박물관 도서관 열람실에서 보냈습니다. 문이 열리기도 전에 도서관 앞에 서성였고, 개장과 동시에 맨 처음 입장해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리고 문 닫을 때까지 자리를 지키며 책더미에 파묻혀 연구에 몰두했습니다. 너무 오래 집중한 나머지 그는 도서관에서 몇 차례 과로로 실신하기까지 했습니다.
직원들이 폐관 시간을 알리고 그를 흔들어 깨워 쫓아내야 했다는 일화도 전해집니다. 그만큼 마르크스의 학구열과 집념은 굳건했습니다. 가족이 굶주리는 와중에도 그는 밤을 지새워가며 통계자료와 책을 분석했고, 절친한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의 경제적 지원과 원고 교정 도움에 힘입어 자신의 이론을 가다듬어 나갔습니다. 엥겔스는 때로 대신 기사를 써서 마르크스 명의로 투고해주기도 했고, 틈틈이 금전 부조를 해주며 친구의 연구를 뒷받침했습니다. 마르크스가 궁핍에 시달리다 못해 엥겔스에게 *"오늘 저녁거리가 한 푼도 없다"*며 편지를 써야 했던 날들도 있었지요. 그럴 때마다 엥겔스는 마치 친형제처럼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습니다.
그렇게 20여 년의 세월을 버틴 끝에 마르크스는 마침내 필생의 역작을 세상에 내놓습니다. 1867년, 『자본론』 제1권이 출간된 것입니다. 그러나 거기까지 이르는 과정은 말 그대로 피를 깎는 고뇌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는 끝없이 경제 데이터와 통계를 추적하며 자본주의 경제의 법칙을 해부했고, 그 속에 감춰진 착취의 메커니즘을 논리의 형태로 폭로하려 애썼습니다. 때로는 복잡한 이론의 벽에 부딪혀 머리를 감싸쥐기도 했고, 인세를 당겨 생활비로 써버린 탓에 출판사가 원고를 압류해가는 수모도 겪었습니다. 질병도 그의 의지를 꺾지 못했습니다.
특히 1870년대, 그는 건강이 급격히 악화되어 몸 여기저기에 악성 종기가 돋고 지독한 기관지염이 그를 괴롭혔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는 고통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 했지요. 그는 친구에게 이런 농담을 건넵니다. "부르주아들이 마지막 날에 내 종기를 기억하게 되길 바라네!". 자신이 앓는 종기로 인해 자본가들이라도 좀 뜨끔해하기를 바란다는 우스갯소리였습니다. 그러나 그조차도 끝내 『자본론』의 후속 작업을 완결하지 못한 채, 1883년 3월 14일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그의 나이 64세였습니다. 런던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에 마련된 가족 묘에 안장될 때, 친구 엥겔스는 깊은 슬픔 속에서 이렇게 추모했습니다.
"만국의 노동자들이여, 그대들은 한 위대한 지성을 잃었다. 그러나 그의 유산은 영원히 살아 숨쉴 것이다."
가난과 시련 속에서도 끝내 인간 해방의 꿈을 놓지 않았던 마르크스. 그의 삶 자체가 하나의 장대한 서사시였고, 이제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가 목숨 바쳐 남긴 사상의 불씨입니다. 마르크스는 비록 눈을 감았지만, 그 불씨는 그의 저서 『자본론』과 사상 속에 뜨겁게 타오르고 있습니다.
『자본론』의 핵심 개념 쉽게 풀기
마르크스의 역작 **『자본론』**에는 자본주의의 내밀한 기제가 마치 해부학처럼 분석되어 있습니다. 방대한 분량과 난해한 전개로 악명이 높지만, 그 핵심 개념만 잘 파악하면 자본주의의 본질을 꿰뚫어볼 수 있습니다. 이제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독자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몇 가지 핵심 개념을 추려 알기 쉽게 풀어보겠습니다. 중요한 개념마다 짧은 설명과 함께 일상의 비유를 곁들여, 마르크스 사상의 정수를 느껴보지요.
상품과 가치의 이중성
자본주의 사회의 부는 **“거대한 상품의 집합”**으로 나타납니다. 여기서 말하는 상품이란 인간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생산된 물건이나 서비스를 뜻하지요. 마르크스는 이 상품 속에 두 가지 가치의 측면이 숨어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첫째는 사용가치입니다. 말 그대로 상품이 지닌 쓸모로서의 가치이지요. 예를 들어 한 조각의 빵은 배고픔을 달래는 사용가치를 가집니다. 사람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는 구체적 효용, 그것이 사용가치입니다. 둘째는 교환가치입니다. 상품이 시장에서 다른 것과 교환될 수 있는 가치, 즉 가격으로 표현되는 가치를 말합니다. 같은 빵 한 조각이라도 시장에서는 돈 1,000원에 교환될 수 있다면, 그 빵의 교환가치는 1,000원이 되는 것이지요. 마르크스는 상품의 이중적 가치구조를 밝혀내며, 상품 속에는 이렇게 두 종류의 가치가 공존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두 가치의 근원은 어디에 있을까요? 마르크스에 따르면, 노동이 그 답입니다. 빵을 예로 들면, 제빵사의 노동을 통해 빵이라는 사용가치가 만들어집니다. 동시에 그 노동은 빵을 시장에서 팔 수 있게 하는 가치를 형성하지요. 즉 노동은 한편으로는 우리에게 유용한 물건(사용가치)을 만들고, 다른 한편으로는 시장에서 팔리는 가치(교환가치)를 만들어냅니다. 이리하여 하나의 노동이 구체적 유용노동이면서 동시에 추상적 가치노동이라는 이중성을 띠게 됩니다. 빵을 굽는 제빵사의 노동은 맛있는 빵이라는 구체적 사용가치를 생산함과 동시에, 그 빵의 교환가치를 높이는 추상적 가치를 생산하는 셈이지요. 마르크스는 이처럼 한 가지 노동 행위가 두 측면을 지닌다는 통찰을 경제학 사상 처음으로 제기했습니다. 이후 경제학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준 이 개념은 자본주의를 이해하는 핵심 열쇠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상품 '물신성'의 비밀
자, 이렇게 노동에 의해 만들어진 상품이 시장에 등장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마르크스는 상품이 시장에 나오는 순간 **“놀라운 교활함과 신비”**를 띠게 된다고 말했습니다. 바로 상품이 마치 스스로 가치의 원천인 양 보이는 현상입니다. 그는 이를 가리켜 **상품의 물신성(物神性)**이라고 불렀습니다. 다소 어려운 말이지만, 비유를 들어 쉽게 설명해봅시다. 우리가 슈퍼마켓에서 우유 한 팩을 살 때를 생각해보죠. 우유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고, 우리는 그 가격을 지불합니다. 이때 우리는 우유의 가치가 그 우유 자체에 깃들어 있는 것처럼 느낍니다.
하지만 실제로 우유의 가치란 낙농업자와 공장 노동자 등 인간의 노동이 응축된 것입니다. 상품 물신성이란, 바로 이처럼 모든 상품의 가치가 인간의 노동에서 나오는데도, 사람들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상품 그 자체를 숭배하는 듯한 현상을 말합니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현상을 종교의 우상 숭배에 빗대어 설명했습니다. 사람들이 신전의 우상을 만들어놓고 그 앞에 절하지만, 실은 그 신상은 인간이 만든 것일 뿐인데도 신비한 힘이 있다고 믿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상품이 가진 가치도 알고 보면 인간 사회적 관계의 산물인데, 우리는 그것을 사물 자체의 고유한 속성으로 착각합니다.
상품은 마치 제 힘으로 움직이는 마법의 인형처럼 여겨지고, 돈과 상품이 사람을 지배하는 듯한 전도된 현상이 벌어집니다. 마르크스는 이를 두고 "상품에 마법의 옷이 씌워졌다"고 꼬집었습니다. 상품의 교환가치가 마치 그 상품의 천부적인 힘처럼 여겨지는 사회, 바로 자본주의의 신비를 폭로하는 개념이 이 상품 물신주의입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물건을 대할 때, 그 이면에 숨은 노동자의 피땀을 보지 못한다면 이미 이 상품 물신의 마법에 홀린 것이라고 마르크스는 경고했습니다.
착취와 잉여가치
이제 마르크스 사상의 심장부로 들어가 보겠습니다. 이윤, 즉 자본가의 이득은 어디에서 오는가? 마르크스는 그 근원을 노동자들의 노동에서 찾았습니다. 자본주의에서 노동자는 자기 노동력을 상품으로 팔고 임금을 받습니다. 표면적으로는 노동과 임금의 공정한 교환처럼 보이지요.
그러나 마르크스는 그 이면에 숨은 비밀을 파헤쳤습니다. 노동자는 하루에 일정한 가치를 생산하지만, 그 중 일부만 임금으로 받고 나머지는 기업(자본가)의 몫으로 남는다는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한 노동자가 하루에 10만 원어치의 상품을 생산한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의 임금은 5만 원에 불과하다면, 나머지 5만 원은 어디로 갈까요? 바로 자본가의 주머니로 들어갑니다. 이처럼 노동자가 생산한 가치 가운데 임금을 뺀 나머지가 자본가에게 귀속되는데, 마르크스는 이 남는 가치를 **잉여가치(剩餘價値)**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노동자가 만들어낸 가치의 일부를 무단으로 가져가는 것이 곧 착취라고 규정했습니다.
마르크스의 통찰을 조금 더 풀어보지요. 노동자는 임금을 받고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사실 그가 일하는 하루 중 일정 시간만 임금에 해당하는 가치를 생산합니다. 나머지 시간에는 자본가를 위한 가치, 즉 잉여가치를 생산한다는 것입니다. 겉보기엔 자유로운 계약으로 임금을 받는 것 같지만, 실은 노동자는 하루 중 일부 시간만 자기 임금의 대가를 벌고, 나머지 시간은 무임으로 자본가를 위해 일하는 셈입니다.
이 무임노동에서 발생한 가치가 잉여가치이고, 그것이 자본가의 이윤이 됩니다. 정리하면, **“노동자들은 자신이 생산한 가치의 일부분만을 임금으로 받고, 나머지는 모두 자본가의 이윤으로 돌아간다”**는 것인데, 이것이 자본주의적 착취의 본질입니다. 따라서 임금 노동자와 자본가의 관계는 본질적으로 착취 관계이며, 잉여가치의 생산 없이는 자본주의도 굴러가지 않는다고 마르크스는 파악했습니다.
이 대목에서 학생 독자들은 이렇게 반문할지 모르겠습니다. "노동자가 동의하고 일한 건데 왜 착취죠?"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노동자가 다른 생계 수단이 없어 울며 겨자 먹기로 자기 노동력을 파는 거라면, 그리고 그로 인해 자신의 노동 생산물 중 상당 부분을 빼앗긴다면, 과연 진정한 자유 계약이라 할 수 있을까요? 마르크스 시대나 지금이나 노동자들은 살기 위해 일해야 하고, 그 약점을 자본이 이용하는 한 이 관계는 결코 대등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본의 축적과 팽창
자본주의에서 자본가는 이윤을 손에 넣으면 그걸 다 써버리지 않고 상당 부분 재투자합니다. 이 과정을 자본의 축적이라고 하지요. 한 번 번 돈으로 다시 기계를 사고 공장을 늘려 더 많이 생산하고, 그로써 더 큰 이윤을 추구합니다. 이처럼 끝없는 확장 충동이 바로 자본의 속성입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초기 형성기에도 이러한 축적 과정이 있었으며, 그것은 대개 폭력적 형태를 띠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를 **“원시적 축적”**이라 부르는데, 대표적 사례로 영국의 인클로저(enclosure) 운동을 들 수 있습니다. 중세부터 이어져온 공유지를 지주들이 울타리를 쳐 자신의 소유로 만들어버린 사건이지요. 그 결과 농민들은 땅을 잃고 내쫓겨 도시의 임금노동자로 전락했습니다. 반대로 지주와 신흥 자본가들은 막대한 부를 축적했지요. 마르크스는 이를 두고 "자본주의의 잔혹사 첫 장은 피로 쓰였다"고 표현했습니다. 그만큼 초기 자본축적은 농민과 노예무역 등 엄청난 희생을 딛고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한편, 자본주의가 성숙한 뒤에도 축적의 논리는 계속됩니다. 기업들은 이윤의 상당 부분을 재투자하여 규모를 키우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더욱 거대한 자본을 이루려 하지요. 그 결과 부의 집중이 일어나 극소수 거대 자본이 경제를 지배하게 되고, 다수는 상대적으로 더 가난해지는 양극화 현상이 발생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목격하는 거대 기업의 독점과 부의 불평등은 이미 19세기 마르크스가 예견한 바이기도 하지요. 또한 끝없는 팽창을 향한 자본의 욕망은 때로 자연과 인간까지 희생시킵니다. 더 많이 생산하고 더 많이 팔기 위해 노동자를 쥐어짜고, 자원을 고갈시키며, 심지어 식민지 수탈과 전쟁도 불사해온 것이 역사적 자본축적의 어두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팽창을 거듭하던 자본은 스스로의 내적 모순에 직면합니다. 계속된 투자로 공장은 늘고 상품은 넘쳐나지만, 정작 임금 억제로 가난해진 대중은 그 상품들을 충분히 사지 못하는 상황이 온 것입니다.
과잉생산에 따른 공황이 여기서 발생합니다. 또는 기술 발전으로 기계설비 등 불변자본에 막대한 비용이 투입되면서, 상대적으로 가변자본(인건비) 비중이 줄어들고 이윤율이 저하되는 경향도 나타납니다.
(노동만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니, 노동 투입이 적어질수록 이윤율이 떨어지는 것이죠.) 마르크스는 "기술이 발전할수록 자본의 평균 이윤율이 자연히 떨어진다"는 이윤율 저하 경향을 지적하며, 이를 자본주의의 숙명적 문제로 보았습니다. 요컨대 자본 축적의 과정은 필연적으로 주기적 위기와 모순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경제 위기의 법칙
자본주의는 왜 주기적으로 불황과 공황에 빠질까요? 19세기에도 10년 주기로 공황이 닥쳤고, 현대 자본주의도 주기적으로 크고 작은 경제 위기를 겪습니다. 마르크스는 이를 자본주의 내적 모순의 폭발로 설명했습니다. 앞서 언급한 과잉생산이 대표적입니다. 기업들은 이윤을 위해 경쟁적으로 생산을 늘리지만, 임금노동자의 소비 여력은 한계가 있으니 팔리지 못한 상품이 창고에 쌓입니다. 시장은 풍요 속의 빈곤 상태에 빠지고, 결국 **공황(crisis)**이 터집니다.
공황 시기에 기업들은 줄도산하고 노동자는 대량 해고되며, 생산설비는 놀고 자원은 폐기됩니다. 사회 전체로 보면 엄청난 낭비와 불행이지요. 마르크스는 이러한 경제 공황이 결코 우연한 사고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본질적으로 안고 있는 모순이 주기적으로 터져 나오는 필연적 질환이라는 것입니다. 이윤을 향한 끝없는 질주와 대중의 제한된 소비능력 사이의 모순이 근본적으로 해소되지 않는 한, 같은 위기는 되풀이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경쟁 격화로 이윤율이 낮아지는 문제를 자본가들은 더 심한 노동착취나 혁신으로 돌파하려 하지만, 그럴수록 전체 이윤율은 더욱 하락하고 위기의 폭은 커지는 악순환에 빠진다고 보았습니다.
정리하면, 자본주의는 스스로 안정적 균형을 지속하지 못하고 주기적으로 폭발하는 체제라는 것이 마르크스의 분석입니다. 이러한 통찰은 1929년 대공황이나 2008년 금융위기 등 현대의 경제위기 상황을 이해하는 데도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는 풍요를 약속하지만, 풍요의 한가운데서 오히려 빈곤과 위기를 낳는 역설적인 법칙을 지닌 체제인 것이지요.
이 밖에도 『자본론』에는 임금과 노동력 상품, 자본의 유기적 구성, 지대와 이자 등 심화된 개념들이 다루어지지만, 핵심 맥락은 위에 설명한 개념들로 충분히 요약됩니다. 이제 이러한 마르크스의 통찰을 가지고 우리 시대와 사회를 비추어보겠습니다. 과연 21세기 대한민국의 자본주의 현실에서도 그의 분석은 유효할까요?
한국 자본주의의 초상: 착취 구조의 현대적 의미
마르크스의 시대에서 한 세기 반 넘게 지난 오늘날, 대한민국은 눈부신 경제 성장을 이룬 자본주의 국가로 자리매김했습니다. 한강의 기적이라 불리는 산업화로 높이 솟은 빌딩 숲, 세계적인 첨단 기술, 풍요로운 소비문화는 겉보기에는 19세기 산업혁명 시절의 참담한 풍경과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현미경을 들이대면, 우리 사회 곳곳에서도 마르크스가 지적한 착취 구조와 모순이 여전히 작동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선 부의 집중과 양극화 문제를 보지요. 한국 경제에는 이른바 **‘재벌’**로 불리는 거대 기업집단들이 있습니다. 삼성, 현대차, LG 등의 재벌 가문들은 전자, 자동차, 건설, 금융, 유통 등 경제 전반에 걸쳐 문어발처럼 사업을 확장해 왔습니다. 그 결과 소수 재벌 기업이 국민 경제 전체를 좌지우지하게 되었고,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자는 그 그늘에 가려 어려움을 겪는 구조가 되었습니다.
소수 재벌이 부를 독점함으로써 극소수만 부유하고 대다수는 상대적으로 빈곤해지는 사회적 양극화가 심화되었다는 지적은 이제 상식이 되었습니다. 실제 통계를 보면 상위 1% 부유층이 전체 부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하위 계층에게 돌아가는 몫은 극히 적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현실은 마치 마르크스의 예언서를 읽는 듯 합니다.
그는 자본 축적의 집중으로 극소수 거대 자본가가 탄생하고, 노동자들과 영세 자본가들은 몰락하여 빈곤화된다고 보았지요. 오늘날 한국의 상황이 딱 그렇습니다. 재벌 대기업은 매년 사상 최고 이윤을 경신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나 하청업체들은 생존을 걱정하는 처지입니다. 부익부 빈익빈의 구조적 문제는 마르크스 시대보다 한층 복잡해졌을지언정, 그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노동 현장의 착취 양상도 살펴볼까요. 산업화 초기와 달리 각종 노동법과 제도가 정비되어 과거의 노골적 아동노동이나 16시간 노동은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착취가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닙니다. 다만 더 교묘하고 보이지 않는 방식으로 변했을 뿐이지요. 예컨대 많은 기업들이 정규직 대신 비정규직 노동자를 쓰는 관행이 있습니다. 비정규직은 저임금과 고용 불안을 감수해야 하기에 사용자에 대한 교섭력이 매우 약합니다. 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 절반도 안 되는 임금을 받는 경우가 허다하지요. 또한 서비스 연장 노동이라 불리는 문화도 있었습니다. 법정 노동시간은 지켜지는 듯하지만, 일이 많으면 공짜 야근이나 주말 근무를 강요받는 것이 오랜 관행이었지요. 최근엔 IT 기술 발달로 재택근무나 프리랜서 계약 등이 늘면서 표면적으로는 자유롭고 유연한 일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노동자를 고립시키고 모든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신종 착취 형태로 악용되는 사례도 등장했습니다.
이런 현실을 보면, 마르크스가 말한 잉여가치 착취가 형태만 바뀐 채 여전함을 알 수 있습니다. 노동자가 만들어낸 부의 일부만 돌려받고 나머지를 기업이 가져가는 구조 자체는 변함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현대 자본가는 IT 관리기법을 총동원해 노동력을 더 은밀하고 정교하게 통제·착취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하루 16시간 노동은 법으로 막혀도, 앱으로 실시간 근태를 감시하고 화장실 가는 시간까지 재는 기업 뉴스가 종종 들려오지요. 이런 사례는 찰리 채플린의 영화 모던 타임즈를 연상케 합니다. 시대와 기술은 변해도, 노동이 기계 톱니바퀴에 포섭되는 현실은 본질적으로 닮아 있습니다.
사회 전체의 이데올로기 통제 측면에서도 흥미로운 연결고리가 있습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지배계급이 대중을 **우민화(愚民化)**하는 장치를 사용한다고 지적했습니다. 현실의 모순을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하게, 더 나아가 저항하지 못하게 만드는 이데올로기적 도구들이지요. 현대 한국사에서도 그런 사례를 찾을 수 있습니다. 특히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 국민의 정치적 관심을 딴 데로 돌리고 체제에 순응하도록 만들기 위해 **‘3S 정책’**이라는 것을 활용했습니다.
3S는 Sports(스포츠), Screen(영화·텔레비전), **Sex(성 산업)**의 머리글자를 딴 말입니다. 신군부 독재 정권은 프로야구 출범과 컬러TV 보급, 선정적 대중문화의 묵인을 통해 국민들의 눈과 귀를 오락과 소비에 묶어두려 했습니다. 실제로 1980년대 초 프로 스포츠 리그가 줄줄이 창설되고, 야간통행금지 해제로 밤 문화가 활성화되었으며, 영화 검열이 일부 완화되어 선정적 영상물이 쏟아졌습니다. 이 모두가 국민의 관심을 정치에서 일상으로 분산시키는 효과를 노렸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이는 마르크스 이론으로 보자면 상부구조를 통한 대중 통제의 전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고대 로마의 황제들이 시민에게 **"빵과 서커스"**를 제공하며 불만을 무마했던 것을 떠올리게 하지요. 물론 스포츠 경기나 예능 프로그램 자체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 배경에 정치적 의도가 있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지배계급은 이렇게 대중이 현실의 모순을 직시하지 못하게 만들고, 체제에 순응하도록 이끕니다. 현대 한국사회에서도 선거철이나 위기 국면마다 온갖 막장 드라마와 화려한 쇼, 소비 열풍이 유독 부각되는 현상을 눈여겨보면 의미심장합니다.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데올로기란 현실의 모순을 가리는 안경과 같습니다. 우리가 텔레비전 화면과 스타 뉴스에 빠져있는 동안, 정작 우리 삶의 터전에서는 어떤 불평등과 착취가 굳어지고 있는지 놓치기 쉽다는 것이지요.
종합해보면, 마르크스가 밝힌 자본주의의 본질은 한국 사회에서도 여러 형태로 투영되어 있습니다. 재벌의 독점과 경제력 집중, 비정규직 확산과 격차 심화, 그리고 대중문화에 숨은 우민화 요소까지 – 이 모든 것이 착취와 모순이라는 키워드로 연결되지요. 중요한 것은 이러한 현실을 객관적 눈으로 인식하는 일입니다. 마르크스의 이론은 바로 그 인식의 도구를 제공합니다. 왜 부자들은 갈수록 부유해지고 가난한 이들은 허덕이는지, 왜 열심히 일해도 삶이 팍팍한지, 왜 사회 곳곳에 불공정과 소외감이 퍼져 있는지를 이해하는 데 큰 통찰을 주지요. 그의 분석은 때로 불편한 진실을 들추어냅니다. 그러나 동시에 변화의 필요성을 일깨워주기도 합니다. 다음 장에서는 그 변화의 방향을, 마르크스가 말한 역사의 변증법을 통해 모색해보겠습니다.
정(正)·반(反)·합(合)의 변증법으로 본 자본주의의 운동
마르크스는 변증법을 단순한 철학 이론이 아니라 역사 발전의 원리로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자본주의 사회를 그 변증법적 움직임 속에서 이해했지요. 이를 정–반–합의 구조에 비추어 정리해 보겠습니다.
먼저 **‘정’(正)**에 해당하는 것은 자본주의 자체의 등장과 발전입니다. 중세 봉건질서를 깨뜨리고 역사 무대에 오른 자본주의는 초창기에는 실로 혁명적 역할을 했습니다. 새로운 기계기술과 산업조직을 통해 생산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켰고, 인간에게 전에 없던 풍요와 가능성을 열어주었습니다. 마르크스와 엥겔스는 『공산당 선언』에서 당시 자본주의 부르주아지를 가리켜 **“혁명적 역할을 수행했다”**고 평가할 정도였습니다. "모든 견고한 것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신성한 것마저 세속화된다"는 선언문의 구절처럼, 자본주의는 낡은 관계들을 산산조각 내고 끊임없는 혁신으로 세상을 재편했습니다. 개인의 자유와 시장의 확대라는 기치는 봉건사회의 속박을 무너뜨리며 사회 진보를 이끈 동력이 되었습니다. 이 시기의 자본주의는 역사의 **정립(定立)**으로서, 거대한 긍정의 에너지와 함께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나 그 내부에는 곧 **‘반’(反)**에 해당하는 내적 모순과 부정적 힘이 자라나기 시작합니다. 앞서 살펴본 대로, 자본주의는 자신의 토대인 **프롤레타리아트(무산계급)**를 형성합니다. 봉건제에서 농토를 잃고 도시로 몰려든 노동자 계급은 처음에는 나약하고 분산되어 있었지만, 산업 발전과 함께 규모가 커지고 계급의식이 높아지게 됩니다. 노동자는 비참한 착취를 당하면서도 동시에 자신들의 힘을 서서히 깨닫기 시작합니다. 하루 종일 기계를 돌리고 사회를 실제로 굴리는 것이 자본가가 아니라 우리 노동자들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이 각성이 퍼져나갈수록 노동계급은 단결과 조직화를 통해 자본에 맞서는 세력으로 성장합니다. 마르크스는 "부르주아지는 자기 무덤을 파는 무덤 파는 자들을 스스로 만들어낸다"고 표현했습니다. 자본주의가 발전할수록 노동계급도 성장하여 결국 기득권 질서를 부정하고 전복시킬 잠재적 주체로 부상한다는 뜻이지요. 또한 반의 측면에는 경제위기와 사회적 혼란의 심화도 포함됩니다. 주기적 공황, 빈부격차, 실업과 같은 문제들이 터져 나오며 체제에 대한 회의와 저항이 싹틉니다. 노동조합 운동, 사회주의 사상, 혁명적 봉기 등은 이러한 모순의 산물로 나타난 반작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세기에도 노동자들이 봉기한 1848년 혁명이나 1871년 파리 코뮌이 있었고, 그것은 자본주의 모순의 폭발이었지요. 한국의 예를 들어도, 1987년 노동자 대투쟁과 같은 사건들은 성장 일변도의 개발독재에 대한 **반(反)**의 분출이었습니다.
끝으로 **‘합’(合)**은 새로운 질서의 탄생을 의미합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이 극한까지 치달으면, 사회혁명을 통해 새로운 사회로 넘어갈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사회주의·공산주의 사회입니다. 이 새로운 사회에서는 생산수단의 사적 소유가 폐지되고, 생산의 목적이 더 이상 이윤이 아닌 인간의 필요 충족과 자유로운 발전이 됩니다. 즉, 이전 단계의 모순을 **지양(止揚)**하여 더 높은 단계의 공동체로 나아간다는 구상이지요. 여기서 정과 반이 단순히 절충되거나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모순이 근본에서 해결되며 질적인 도약이 일어나는 것이 핵심입니다. 마르크스는 어떤 공상적 이상향을 제시한 것이 아니라, 현실 역사 속에서 성숙되어가는 변화의 필연성을 말했습니다. 자본주의 자체가 자신의 대립물을 키워왔고, 언젠가 그 대립물이 폭발하여 새로운 합으로 전개될 것이라는 논리입니다.
물론 실제 역사에서는 마르크스 생전에도 1848년 혁명이나 파리 코뮌처럼 노동자 계급의 봉기가 있었고, 이후 20세기에 러시아 혁명 등 몇몇 사회주의 혁명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그 성과와 한계에 대해서는 오늘날까지 다양한 평가와 논쟁이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가 제시한 역사 발전의 큰 방향입니다. 그의 예언대로 자본주의는 영원불멸한 체제가 아니며, 내부의 모순으로 인해 변혁될 수밖에 없다는 관점 말입니다.
이렇게 보면, 자본주의 역사는 정→반→합의 변증법적 운동으로 요약됩니다. **정(正)**으로서의 자본주의 탄생과 발전, **반(反)**으로서의 모순 심화와 노동계급 형성, **합(合)**으로서의 미래 사회 도래 가능성. 물론 현실 역사는 교과서적인 3단계를 꼭 맞게 밟아나가지 않고, 굴곡과 후퇴, 우회로를 겪습니다.
하지만 마르크스의 통찰은 우리에게 현재를 넘어서 역사의 큰 흐름을 조망하게 해줍니다. 지금 당장의 현실이 영원하지 않으며, 그 속에 새로운 씨앗이 자라고 있다는 희망을 품게 하지요. 이는 막연한 낙관이 아니라, 과학적 분석에 기초한 낙관이기에 더욱 의미가 있습니다. 마르크스가 노동계급에게서 본 것은, 인류 스스로 자기 해방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의 불씨였습니다.
그리고 그 불씨는 정반합의 역사 속에서 언젠가 거대한 불꽃으로 타오를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맺음말: 인간 해방을 향한 꿈
마르크스의 철학적 여정은 단지 한 시대의 경제 분석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 해방과 사회 정의에 대한 영원한 영감을 불어넣는 하나의 이정표입니다. 그는 평생에 걸쳐 자본주의의 심장을 해부함으로써, 인간이 어떻게 자신이 만든 체제에 예속되는가를 밝혀냈습니다. 동시에 그 굴레에서 벗어날 길도 모색했지요. 그의 사상은 억압받는 이들에게 투쟁의 언어를 주었고, 세계 곳곳의 노동운동과 사회 변혁운동에 사상의 뼈대를 제공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산업혁명의 검은 연기 속에서 시작된 이야기는 결국 인간의 존엄을 되찾는 이야기였습니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가 엄청난 생산력을 가져왔음을 인정하면서도, 그 생산물이 인간의 행복이 아닌 고통을 증대시키는 현실에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인간이 착취와 소외 없이 자유롭고 평등하게 살아가는 사회"를 꿈꾸었습니다. 인간 해방은 그의 사상의 궁극적 지향이었습니다. 여기서 해방이란 단지 정치적 자유가 아니라, 경제적 예속으로부터의 자유, 나아가 인간의 창조적 잠재력이 만개하는 조건의 확보를 의미했습니다. 철학이 현실을 해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현실을 바꾸는 무기가 될 때 비로소 의미가 있다고 믿은 그의 삶 자체가 그 증거였습니다.
21세기 현재, 우리는 아직 완전한 해방의 사회에 도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르크스가 던진 질문들은 더욱 절실해지고 있습니다. 전 세계적으로 부의 양극화는 심화되고, 노동의 소외는 새로운 형태로 나타나며, 환경 파괴와 금융 위기 같은 문제들이 지구적 규모로 인류를 위협합니다. 이런 현실 앞에서 그의 통찰은 시대를 넘어 울림을 줍니다. 무엇보다도, 불의와 모순을 직시하는 용기와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의지를 우리가 마르크스로부터 배울 수 있다면, 그것이 가장 큰 유산일 것입니다.
마르크스는 생전에는 불우하고 가난하게 삶을 마쳤지만, 오늘날 그의 동상은 세계 여러 도시의 광장에 세워져 있고 그의 이름은 가장 많이 인용되는 사상가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는 그가 남긴 유령이 아직도 우리 곁을 맴돈다는 뜻이 아닐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모순이 해결되지 않는 한, 마르크스의 사상은 죽지 않고 계속 새로운 의미를 획득할 것입니다.
1883년 3월, 런던 하이게이트 공동묘지. 차가운 이슬비가 내리는 가운데 한 사상가의 장례가 치러졌습니다. 그의 묘비 앞에는 커다란 흉상이 자리했고, 비석에는 이런 말이 새겨졌습니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이는 하나의 구호를 넘어, 모든 인간이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세상을 향한 외침이었습니다. 산업혁명의 어둠 속에서 시작된 마르크스의 철학적 서사는, 언젠가 해방의 밝은 새벽으로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우리 가슴에 남겨주었습니다. 그날이 올 때까지, 마르크스의 이야기는 결코 끝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의 사상은 새로운 세대를 만나 계속해서 진화하고 영향력을 발휘하며, 인류에게 스스로를 돌아보고 변화의 가능성을 꿈꾸게 하는 장대한 내레이션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과연 다른 사회는 가능한가?" 그 물음에 대답하기 위해, 우리 곁에는 아직 마르크스가 있습니다. 그의 유령은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두려워말고, 세계를 바꿔라." 그리고 그 속삭임은 억압받는 이들의 가슴 속에서 거대한 함성으로 메아리칠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2025.10.23 목요일 작성.
박 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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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재밌게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공부의 엑기스를 하나하나 내놓고 계시닙다.
그 열정만큼 건강에 신경써 주세요.
물질세상이니 육신이 일단건강해야 합니다.
정신세계 강화로 물질세계가 약화되어
불균형상태가 된건아닐까요,
물질세계 육신에게도 눈을조금 돌려달라고 몸에서 손짓 하는것이니 그러시면
곧 건강이 또 웃어 주겠지요.
너무달려온 정신세계
육신도 따라 잡아야하니 조금 슬로우로 가주세요.
작가님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정반합 , 합에 이르는 이야기도 뒷부분들 더 듣고 싶습니다 ..
.. 민주주의가 합으로 가는 합의인데, 투영을 해본다면 민주주의가 자유라는 이름으로 극도로 양극화되고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사람들을 살피라는 민주주의로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 농부가 있어야 쌀밥이 있고, 목축 도축이 이뤄줘야 고기가 있고, 이미용서비스들도 있고, 이 상황에서 다른 재벌의 탄생은 법을 조작해서 되기도하고 부패를 통해 돈을 모앗을 수도 있고, 진짜 기술 개발일 수도 있고, 독점도 있고,,. 다양함 속에 나오지만, 과도한 착취구조를 막기 위해서는 입법을 다루는 민주주의가 필요하다 . . 대한민국에는 특히나 부동산이라는 집을 독점함으로서 다음 세대를 착취하는 구조인데 더 이상 그 거품은 민주주의로 선출된 자들이 꺼뜨려야 착취구조가 깨어 진다 ... 하지만, 세력화된 집단은 법도 내것 검사도 내것이니 생산없이 부패해서 착취를 일삼으며 왕이되었으니 네트워크집단화 된 구조를 개혁 할 필요하니 이또한 민주주의를 통한 입법만이 개혁 할수 있습니다 ... 잘 감시하고 민주주의에서 멀어지게 하는 수단인 갈라치기,보는것을 가리기,동조화 시키기를 잘 구분해야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렇게 공부할수 있어서 넘 감사합니다 체중이 자꾸 늘어 난나니 걱정이 많이 됩니다 건강이 제일 먼저입니다 관리 잘 하셔요
감사합니다.
다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잘 보고 갑니다
정독해봤습니다 그리고
제가 현재 서있는 위치를 조금알게하네요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쉽게 설명을 잘해주셔사 감사합니다 강의도 이해가 잘 되개 발씀을 잘해 주셔서 도움이 많이 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글을 보니 헨리 조지에 '사회문제의 경제학'에서 나오는 내용이 마르크스에 내용과 닮은점이 있네요.
헨리조지는 자기 자신이 자신을 고용할 수 있다면 임금 하락에서 해방될 수 있다고 하고있죠.
즉 자신에 땅이 필요하다구요. 자연이 모두에게 준 땅을 왜 땅에 사유재산이라는 것을 만들어 돈이 없는 노동자들에 자녀들까지 평생
지대를 내는 노예로 만드느냐구요. 칼마르크스가 말한것처럼 최초 자본주의는 피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바로 땅을 독차지한것에서 시작된것이 헨리 조지가 지적한 것과 같은것이네요.
좋은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작가님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
잘 봤습니다.
자본론 읽어봐야겟습니다
감사합니다. 몇십년전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배우던 정반합이라는 단어를 이렇게 이해하게 되네요.
생각해보지 않던 주제인지라 읽으면서 자꾸 멍해졌지만, 쉽게 써주셔서 반복해 읽으면서 이해해 보겠습니다.
젋은 시절 몇번인가 관심을 가지고 읽어봐야기 했다가 몇번을 포기하게 만들고 잊혀져 버린 주제가 얼마나 중요한 부분이었는지 새삼 생각하게되네요
열정과 노력에 깊이 감사드립니다. 건강 잘 챙기세요.
마르크스가 오래 살아서 정반합의 이후까지도 우리에게 알려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습니다.
예전에 자본주의는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을 먹고 자란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는데,
소비에트연방과 중국도 결국 자본주의화 된 것을 보면 또다른 정-반-합의 과정을 거쳐서 새로운 사상을 만들어 낼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정리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힙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