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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위기체제와 한국경제 <송병락, 오마에 겐이찌, 박재하>
<송병락>
<화제의 책 「기업을 위한 변명」의 저자 송병락 교수의 金大中 재벌해제정책 정면비판>
『재벌해체하려다 한국의 국부해체할지도 …』
경제위기의 主犯은 재벌이 아니다.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最善이라면 기아는 왜 망했나. 전문화의 길로 나간 기업은 다 망했다. 외국 기업들은 일본점령군사령부(GHQ)가 일본 재벌을 해체하듯 IMF 위기를 맞은 한국 大企業이 해체되기를 바라고 있다
<송병락 서울대부총장 경제학부교수>
1939년 경북 영주 출생.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南캘리포니아대학 경제학 박사. 국제연합(UN), 세계은행(IBRD), 아시아개발은행(ADB) 고문. 하버드 대학교 경제학과 초빙교수. 저서로 「마음의 경제학」「한국경제론」「자본주의의 웃음, 자본주의의 눈물」「경제는 시스템이다」 등 다수
<편집자 注> 한국의 財閥(재벌)은 해체되어야 하는가. 경제위기의 主犯(주범)은 재벌인가. 적어도 요즘 「대우 사태」가 진행되는 가운데 드러나고 있는 국민들의 정서는 이 두 개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는 것 같다. 그러나 그 「정서」라는 것이, 실은 과학적이지 못하다. 왜 재벌은 해체되어야 하는가, 왜 재벌이 경제위기의 主犯인가에 대해서 그 「정서」라는 것들은 설명을 딱 꼬집어내지 못한다. 이 같은 정서에 메스를 든 책이 나와 화제가 되고 있다.
재미있는 경제해설로 잘 알려져 있는 宋丙洛(송병락․서울대 부총장․경제학부 교수) 교수가 쓴 「기업을 위한 변명」이 바로 그것이다. 개혁이라는 이름 아래 「재벌 해체」가 화두로 자리잡은 시대에, 宋교수는 『기업그룹을 굳이 해체할 필요도 없고 현 경제 위기의 主犯도 재벌이 아니다』라고 주장한다. 또한 재벌이란 말은 정부의 공식적인 정의도 없는 말이라 한다. 정부는 기업집단을 인정하는데, 적잖은 사람들이 이의 해체를 주장하는 것이 모순이라고 했다. 宋교수의 「기업을 위한 변명」을 부분 발췌해 요약, 게재한다.
문제없는 업체가 있는가
후진국 사람들은 단기간에 1인당 GNP를 1백 달러에서 1만 달러 수준까지 끌어올린 한국을 배우기 위해 노력한다. 그들은 한국의 발전모델 뿐만 아니라 한국인의 저력, 한국문화, 한국의 기업집단에도 많은 관심을 보인다. 그러나 정작 적잖은 한국인들은 2차 세계대전 전의 일본 재벌과 같다는 이유로 기업집단의 해체를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은 재벌이란 그저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국가사회에 폐해를 끼치는 존재 정도로 생각한다. 어떤 경제학자는 한국인들이 국가의 주된 敵(적)으로 공산주의 다음으로 재벌을 꼽는 것 같아서 걱정이라고 했다.
한국의 기업집단은 정부의 수출주도형 정책, 한국의 후진국적 기업환경, 기업집단이 많은 일본기업과 세계 시장에서의 경쟁 등의 이유로 태어난 조직이다. 그렇게 태어난 그 조직은 한
국을 세계 제일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국으로, 세계 2위의 造船大國(조선대국)으로 만들었다.
이런 기업들이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문제가 없는 업체들은 도대체 어느 나
라의 어떤 것들인가. 한국 기업그룹의 해체를 논하려고 하는 사람은 우선 일본재벌 해체의 배경 및 再(재)조직 경위를 잘 알 필요가 있다.
2차 세계대전 前의 일본재벌이라고 하면 미쓰이, 미쓰비시, 스미모토그룹 등을 의미한다. 2차대전 이전에 일본 재벌들의 종업원은 1백만이 넘었다. 엄청난 고용창출이고, 이런 고용창출이 일본 國富(국부)의 근간이 됐다는 것은많은 일본 경제학자들의 주장이다.
미국의 일본점령군사령부(GHQ)는 일본을 통치하기 시작하면서 일본재벌 해체를 시도했다. GHQ는 당시 몇개 가족을 「자이바쓰(財閥) 가족」으로 지정하고, 그 구성원은 누구도 자이바쓰 관련회사 임원이 될 수 없도록 했다. 이런 기업에서 戰時(전시)관련 업무를 담당하던 경영인들도 회사를 떠나게 했다. 이런 조치로 수천명의 기업 경영인들이 기업을 떠나야 했다.
미국은 왜 일본재벌을 해체하려고 했는가. 일본이 巨大(거대) 산업국가가 되는 것을 막아 다시는 전쟁을 일으키지 못하게 하는 데 목적이 있었다는 게 일본 識者(식자)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GHQ의 일본재벌해체팀 책임자인 코윈 에드워즈도 일본재벌 해체 목적을 『일본의 군사력을 제도적, 심리적으로 파괴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처음에는 강도 높게 재벌해체를 추진하던 GHQ는 얼마 후 작업을 중단했다. 중국의 공산화 때문이다. 일본을 부흥시켜 아시아에서 공산주의에 대항하는 세력으로 키우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 美 軍政(군정)의 정책 변화에 힘입어 일본은 다시 기업그룹을 부흥시켰다. 또 GHQ는 일본 재벌을 해체하면서 각 그룹의 주거래은행을 해체하지 않았다. 따라서 해체됐던 재벌은 주거래은행을 중심으로 곧 再결합해 현재의 그룹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최근에는 재벌해체 때 금지됐던 持株會社(지주회사) 설립이 허용됐다. 再결합된 이들 그룹을 「케이레쓰(系列)」라고 한다.
독일을 점령한 미국, 소련, 영국도 한때 독일의 國力(국력)을 파괴하려 했다. 그들은 독일 경제력의 핵심인 도이체방크를 여러 개로 분할했다. 그러나 이 은행은 1957년에 再결합했다. 결국 패전국에 대한 점령국의 일차적 관심은 패전국이 다시 경제대국이 되는 것을 막는 데 있었다고 보는 견해가 많다. 미국은 일본 경제 부활을 재벌 해체를 통해 막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외국인 중에서도 한국의 기업그룹은 옛날 일본 재벌과 같으므로 해체되어야 한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들은 옛날 일본 「재벌」과 한국의 「기업그룹」 간에는 큰 차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도외시하는 것 같다. 한국의 기업그룹은 옛날 일본 재벌처럼 폐쇄적이지 않다. 수많은 해외지사가 있고 전문 경영인들이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 예이다.
일본 재벌은 주거래은행을 갖고 있었으므로 강력한 금융자본을 중심으로 기업을 거느렸지만, 우리의 경우는 은행을 소유할 수 없으므로 강력한 금융자본과는 거리가 멀다. 한국의 기업그룹은 옛날 일본재벌과 달리 一族(일족) 지배그룹이 아닌 경우가 많다. 삼성그룹이나 대우그룹 등이 그 예이다.
한국 기업경영인의 특성은 愛國心
한국의 기업그룹은 일본재벌과 다르게 방대한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선진국 대기업들과 경쟁하기 위해, 그리고 수출주도형 경제전략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생긴 조직이다.
한국 기업경영인의 특성의 하나로 강한 애국심을 꼽는 趙東成(조동성) 서울대 교수(경영학)는 『한국의 기업그룹은 인간자본 형성에 많은 투자를 하고 세계 제일을 추구하는 등의 확고한 기업정신을 갖고 있다는 면에서 옛날 일본 재벌과 다르다』고 말한다.
한국 기업경영인은 기업정신도 철학도 없이 그저 옛날 일본 재벌 흉내나 낸다고 생각하
는 외국인들의 생각과 근본적으로 다른 시각이다. 우리는 이러한 한국기업의 정신이나 장점을 외국인들에게 올바로 인식시킬 필요가 있다. 全세계에 대한 한국 기업모델과 기업정신의 적절한 PR이 긴요하다. 중국은 한국의 기업그룹을 배우고 또한 육성하고 있다. 중국의 어느 지도자는 『중국정부는 한국식 대기업을 발전시킨다는 기존의 방침을 고수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지만 한국 국민들의 대부분은 여전히 기업그룹의 해체를 주장하고 있다. 한국에 대기업 집단에 反感(반감)을 가진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뭘까. 첫째 공산주의 사상의 영향이고, 둘째 士農工商(사농공상)식 전통사상, 셋째 서양에서 수입된 개인주의적 기업, 특히 주식회사라는 조직에 대한 문화적 갈등, 넷째는 기업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오해, 다섯째 독립된 소기업간의 치열한 경쟁을 강조하는 애덤 스미스류의 경제학을 잘못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여섯째 경제학은 개별기업을 대상으로 하는 微視(미시)경제학과 경제 전체를 대상으로 하는巨視(거시)경제학으로 양분된다. 한국에는 그 중간의 경제단위인 기업그룹이나 기업 및 산업조직을 대상으로 하는 中視(중시)경제학이 없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대표적인 몇 가지를 좀 더 세밀하게 설명하겠다.
한국의 경제력 집중은 정말 높은가
공산주의자들은 기업경영인을 선량한 「인민」을 속이거나 불쌍한 노동자를 착취하는 「인민의 敵」으로 꼽는다. 때문에 자본가, 기업, 기업집단 모두를 타도의 대상으로 본다. 한국에서도 사회주의 사상이 강한 사람들은 최근까지도 이런 생각을 한 것으로 보인다.
경제학 초보자는 애덤 스미스의 「國富論」(국부론) 정도의 경제지식밖에 없다. 애덤 스미스는 國富論에서 小기업간의 치열한 경쟁이 國富를 키우는 길이라는 주장을 폈다. 경제학 초보자들은 이것만 믿고 대기업에 저항감을 느낀다.
또한 英美식 경제학은 기업그룹이 아니라 개별기업 중심의 경제이론을 편다. 그러므로 경제학 초보자들은 서양 경제학 기준으로 일본이나 한국의 기업집단은 잘못된 것으로 판단하기 쉽다. 그러나 기업그룹이나 기업과 산업의 통합조직은 中視경제학의 관점에서 보면 중요한 경제의사 결정단위이다.
외국인들이 『한국 기업그룹을 해산해야 된다』고 했다 해서 왜 우리가 그들의 말을 곧이들어야 하는가. 한국은 이미 반도체나 조선 등의 분야와 같이 서양에 앞선 것도 적지 않다. 이런 산업에 대해서는 서양인들이 충고할 위치에 있지 않다.
한국은 기업그룹 때문에 경제력 집중이 극심하다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나라 30대 그룹이 금융과 보험업을 제외한 全 산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최근 부가가치나 매출액 또는 종업원 기준으로 볼 때 일본의 6대 그룹의 경제력 집중과 비교하면 높은 편이 아니다. OECD 선진국에 비해서도 높지 않다.
스위스는 인구가 경기도보다 적은데 세계적인 대기업을 11개(한국은 9개)나 갖고 있으니 경제력 집중이 심할 수밖에 없다. 룩셈부르크는 금융산업에 경제력이 고도로 집중돼 있다. 이렇게 작은 나라가 세계적인 대기업을 몇 개 가지면 그 나라에서의 경제력 집중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 선진국 중 경제력 집중이 심하지 않은 대표적인 국가는 미국 정도이다. 미국 기준으로 한국이나 스위스, 스웨덴, 룩셈부르크 등의 경제력 집중이 잘못되었다고 할 일이 아니다.
세계 시장을 대상으로 하는 기업들을 국내 시장 기준으로 집중이 심하다고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세계 시장 기준으로 보면 대부분의 업종에 있어서 한국기업의 경제력 집중도는 높지 않다. 오히려 내수위주 산업의 집중도가 문제이다.
일본은 서양보다 1백년 늦게 공업화를 시작하였고, 선진공업국의 대기업과 싸우기 위해 케이레쓰라는 기업무리를 만들었다. 한국도 마찬가지이다.
기업집단의 해산은 한국 기업을 잡아먹을 외국 기업의 입장에서 보면 이치에 맞는다. 그러나 잡아먹혀야 되는 입장에서 보면 다르다.
한국의 어느 대기업도 기업그룹의 지원 없이 일대 일로 같은 업종의 세계적인 대기업들과 싸워 이기는 것은 거의 힘들다. 업종에 따라서는 불가능한 경우도 적지 않다. 한국에서 대기업이라고 하는 것도 국제기준으로 보면 中小규모밖에 안되는 것도 많다.
한국과 일본은 주력 상품이 자동차, 조선, 전자, 반도체 등으로 상당 정도 같다. 일본은 이들 제품을 기업그룹 소속회사들이 생산한다. 그런 상황에서 이들 제품을 생산하는 기업들을 기업그룹에서 분리한다면 불리한 것은 우리 기업일 것이다. 미국인과 달리 한국인의 속마음은 공동체주의적이다. 기업그룹을 하면 잘할 수 있다. 기업그룹이 한국인의 성격에 잘 맞는다는 것이 에즈라 보겔 하버드大 교수 등이 주장한 공동체주의의 핵심이다.
소유와 경영이 1백% 분리된 나라는 공산국가
우리 기업그룹의 문제로 흔히 거론되는 게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았다는 것과 문어발 확장 문제다. 소유와 경영이 1백% 분리된 나라가 공산국가다.
한국의 공기업도 소유와 경영이 1백% 분리돼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소유와 경영의 분리는 성공을 했는가, 아니면 성공을 거두고 있는가. 대답은 부정적이라는 것이 공기업의 민영화 주장이 대두된 배경이다.
기아그룹은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있었는데 왜 부실기업이 되었는가.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 소프트사는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어 있지 않은데도 어떻게 세계 초일류 기업이 되었는가. 반면 미국의 GE社는 소유와 경영이 잘 분리되어 성공을 거두고 있다. 한보철강은 소유자가 경영했는데 부도가 났다. 근본 문제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만에 의하여 해결된다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문어발 확장도 마찬가지다. 상황에 따라 문제가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 일부에서는 문어발 확장이 우리나라에만 있는 기업문화인 것처럼 말한다. 스카치 테이프로 유명한 3M社의 취급품목은 6만 개가 넘는다. 우리 기준으로 보면 문어발 확장이 아니라 「지네발 확장」수준이다. GE社는 16개 사업 분야로 조직되어 있다. GE社는 자회사인 GE캐피털을 통해서도 사업 다각화를 추진하고 있다. 27개의 사업을 하고 있는 이 회사는 최근 유럽에서 다양한 업종으로 70여개의 회사를 인수했다. 앞으로 약 4백억 달러를 사용하여 아시아에서 많은 기업을 인수합병할 계획이라고 한 바도 있다. GE社는 엄청난 문어발 확장으로 고도 성장을 구가하고 있다. 「포천」誌는 최근에 게재한 GE社 특집에서 이 회사를 다각화에 성공한 콩글로머릿(Conglomerate․복합기업)이라고 소개했다. 이런 사업 다각화의 결과는 이 회사를 주식 가격 기준으로 세계 최고 회사로 만들었고, 기업경영인들이 가장 부러워하는 회사로 만든 바 있다.
썩은 문어발은 스스로 자르도록 하라
미국의 어느 컨설팅 그룹의 톰 루이스 亞太지역 수석 부사장은 기업의 업종 전문화는 복잡다양화하는 21세기 세계경영환경에서는 취약성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사업 다각화에 성공하는 프리미엄 복합기업이 21세기 우량기업의 키워드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기업의 목표는 전문화가 아니다. 더 좋은 제품을 더 값싸게 만드는 가운데 더 좋은 일
자리를 더 많이 만들고 국가에 세금도 더 많이 내는 것이다. 전문화는 이를 위한 하나의 방법이다. 유능한 기업에게는 가급적 많은 업종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1965년 한국 최대의 기업은 동명목재였다. 당시 다른 목재회사들은 다각화를 서두는데 이 회사는 반대로 전문화의 길을 걸었다. 그 회사는 얼마 후 없어졌다. 동명목재의 예에서처럼 과거 연탄, 가발, 합판 등에 전문화만 계속한 기업들이 그후 어떻게 되었는가는 우리 모두 잘 아는 사실이다.
기업에 따라서는 한 품목에 전문화하거나 반대로 많은 업종에 다각화하여 성공하는 경우도 있고 실패하는 경우도 있다. 사업에 소질이 없는 사람은 전문화를 하건 다각화를 하건 실패하게 마련이고, 재능이 있는 사람은 어떤 사업을 해도 성공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한국의 주력기업들은 주력업종을 3개 또는 4개로 전문화해야 국제경쟁력이 길러지는 걸까. 주력업종을 3~4개로 줄인다 해서 기업집단의 경쟁력이 세계 수준으로 올라간다는 것은 순진한 생각이다. 모든 종합대학이 기존에 설치되어 있는 수십개 학과의 대부분을 없애고 3~4개 학과만 전문화하면 모두 세계적인 수준의 대학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것과 같다.
어느 나라의 어느 기업이건 국제경쟁력이 강한 것은 반드시 국내에서 치열한 경쟁을 겪은 것이다. 국제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우선 그 나라 안에서 업종마다 경쟁회사가 많아야 한다. 기업이 많아서 문제가 되는 것은 부실화의 우려 때문이지만, 그래도 한국은 아직 기업수가 많아져야 한다. 부실기업은 지식, 기술, 경력이 모두 쌓여야 선진기업이 될 수 있다. 群鷄一鶴(군계일학)이라는 말처럼 많은 기업이 있어야 그중 세계적인 기업도 나오기 쉽다.
30대 기업집단마다 주력업종을 3~4개씩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은 종업원수로 볼 때도 말이 안 된다. 전체 종업원수가 20만명이나 되는 그룹과 1만명이 겨우 되는 그룹에게 일률적으로 3~4개 업종만 하라고 하고 있으니 말이다. 미래산업의 관점에서 보면 주력업종 3~4개라는 것은 별 의미가 없다. 산업의 개념이 바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산업․기술간의 벽이 허물어지고 있다. 기술면에서도 아주 좁은 의미에서의 특정산업 전문화는 의미가 없다. 오히려 실패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다른 각도에서 더 보자. 가령 전자, 섬유, 자동차, 무역, 건설, 증권, 화학, 항공, 유통, 보험업에 전문화하여 성공한 10개의 기업을 하나로 뭉친 기업그룹이 있다고 하자. 이 그룹은 여러 개의 업종을 모두 잘 할 수 있는데도 그룹이 되었으니 3~4개만 해야 된다는 것인가. 소품종 대량생산 시대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시대로 바뀌는 추세에는 맞는가.
국내외에서 세계적인 대기업들과 치열한 경쟁을 하는 기업 그룹들이 만약「썩은 문어발」이 있다면 스스로 알아서 자르도록 하는 것이다. 멀쩡한 발인데도 단순히 수가 많으므로 잘라야 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전문화의 함정
하버드 경영대의 타룬 칸나 교수와 크리슈나 파레푸 교수는 「핵심 업종 전문화 전략은 왜 후진국에서는 잘못된 것일 수 있는가」라는 글에서 후진국 기업들이 뉴욕이나 런던에 가서 핵심업종에 전문화하는 것은 옳은 전략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후진국에서 그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했다.
그 이유로 든 것이 잘못되고 과다한 정부규제와 정부의 법 집행의 非(비)효율성이다. 우리 정부의 규제와 법 집행은 효율적인가를 반추해보면 현재로서 후진국들에게 필요한 기업형태가 어느 것인지 짐작이 가능할 것이다.
시장의 불완전성도 한 이유인데 자본시장, 노동시장, 주식시장, 부동산시장, 외환시장 등
이 불완전하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런 시장의 불완전성으로 후진국에서는 몇 조 단위의 투자가 필요한 반도체, 자동차 등의 산업을 하기 힘들다. 때문에 새로운 사업을 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은행에서 빌리는 게 힘들 때는 그룹 내의 회사들이 힘을 합쳐 모으는 수밖에 없다. 이러한 후진국 특유의 풍토가 기업집단의 형성을 불가피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규억 아주대 교수는 기업그룹의 형성은 한국의 정치․경제․사회의 낮은 수준을 반영하는 것이므로 이의 개선이 없는 상태에서 그룹의 규제는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각화를 잘하더라도 문어발식 확장은 안된다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를 적정수준의 다각화로 볼 것인가 하는 기준을 정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바람직한 것은 다각화를 많이 하는 기업, 전문화만 철저히 하는 기업, 그 중간 형태의 기업 등 다양한 형태의 기업이 수없이 많이 생기는 것이다.
과거 서양학자들은 일본 경제는 종합상사와 기업그룹 때문에 망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런 예측과 달리 일본은 그 이후에도 승승장구하여 1970년대 초까지 서구 선진국들을 모두 추월했다. 관리능력의 문제이지 다각화 자체의 문제가 아님을 보여주는 것이다. 기업이란 시대와 경영환경 변화에 따라서 계속 변화하는 생명체이다. 획일적으로 고정불변한 기업형태를 상정하여 이를 잣대로 규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과잉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한국은 조선, 자동차, 전자산업 모두 생산과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그룹은 생산시설을 확장한다. 정부가 나서서 이들의 기업체수도 줄이고 업종도 통폐합해야 되는 것 아닌가. 공산국가들은 모든 것을 통폐합하여 대형화하는 데 성공했다. 그들은 무엇이나 통폐합하여 크게 건설해야 된다고 믿었다. 그러나 결과는 실패였다.
스위스에서 경쟁력이 제일 강한 산업은 금융산업이다. 이 작은 나라에는 은행이 수백 개 있다.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산업인 시계산업에서도 시계 브랜드만 3백50여 개나 된다. 이 많은 은행이나 시계회사들이 모두 국내에서 치열한 경쟁을 하기 때문에 막강한 국제 경쟁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일제 카메라, 일제 TV, 일제 퍼스널 컴퓨터 등이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는 이유에 대해 국가경쟁력의 세계적인 권위자인 마이클 포터 하버드 경영대 교수는 『일본에서는 생산회사들이 많아 치열한 경쟁을 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럽 여러 나라들이 국내 전자산업을 보호한다고 전자회사를 통폐합한 후 정부가 계속 보호하다 국가경쟁력을 잃었다. 어떤 산업이건 국제경쟁력을 갖추려면 통폐합이 아니라 다수 회사를 설립하여 치열한 경쟁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시장경제는 경쟁을 전제로 하고 경쟁은 다수 기업을 필요로 하므로 시장경제는 항상 중복․과잉투자 문제가 따른다.
全 세계적으로 볼 때 모든 공산품은 급속한 생산기술 혁명 때문에 생산과잉상태다. 세계 시장의 생산과잉 때문에 한국의 전자회사나 자동차회사를 줄여야 된다는 것은 치열한 국제 경쟁 시대에 말이 안되는 소리다.
한국이나 일본에 있는 모든 공장이 문을 닫아도 세계 공산품 생산능력은 엄청난 과잉상태다. 이런 이유 때문에 국제경쟁력 향상은 각별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 한국의 살길은 한국기업과 산업의 통폐합이 아니라 국제경쟁력 향상이다.
IMF 관리체제 이후 경제위기의 주범으로 재벌을 지목하는 이들이 많다. 과연 그런가. 경제위기의 시발점은 생산성을 넘는 인건비 상승이다. 外換(외환)위기 前 한 기업인은 한국, 인도, 멕시코 등 세 곳에 생산공장을 갖고 있었는데 한국 공장은 폐쇄했다.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또 외환위기 발생 전 영국의 「이코노미스트」誌는 한국은 제조업 평균임금이 영국보다 30%나 높아 오래 버티지 못할 것이라고 했다.
경제위기의 주범은 재벌인가
이 상황에서 정부는 기업들이 종업원을 해고시키기 어렵게 만들었다. 만약 종업원들에 대한 해고가 자유로웠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한 조선회사의 예를 들어 보자. 그 회사는 종업원을 3만5천 명에서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1만1천 명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그 결과 인건비는 대폭 절감되고 생산성은 3배나 증가했다. 그 회사는 IMF 사태 이후 환율이 상승하여 최호황을 구가했다.
증권시세의 폭락과 국내 은행의 돈이 정치권의 입김으로 한보 등 부실기업에 집중적으로 융자되면서 엄청난 돈이 낭비됐고, 그만큼 기업들은 자금조달에 애를 먹어야 했다. 국내에서 돈줄이 막힌 기업들이 필요한 돈을 빌릴 수 있는 길은 외국은행으로부터의 借入(차입)이었다.
다음이 高금리 정책과 低환율 정책이다. 정부의 高금리 정책으로 우리 기업들은 경쟁국인 일본 기업의 몇 배가 되는 이자를 은행에 지불해야 했다. 당연히 경쟁이 될 리 없었다. 또 低환율 정책은 국제수지와 수출 의존도가 높은 기업의 영업수지를 악화시켰다. 이런 것이 경제전문가들이 말하는 외환위기 발생의 주요 요인들이다. 그렇다면 경제위기의 主犯이 대기업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해진다.
지금은 기업전쟁의 시대이다. 외환위기 전 이런 상태에 있는 한국 기업을 외국기업이 쓰러뜨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이겠는가. 무엇보다 빌려준 돈을 빨리 회수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실제로 외국은행과 기업들은 그렇게 했고, 그 결과 많은 기업들이 到産(도산)했다. 그나마 그룹 소속 기업들은 버틸 수 있었다. 서로 급한 돈을 빌려주고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럼 외국 기업이 이런 기업을 쓰러뜨리는 길은 무엇인가. 금융시장이 발달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기업그룹을 해산하여 그룹기업들이 서로 돈을 빌려주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실제로 IMF 사태 이후 많은 외국기업들은 한국 정부에 그렇게 해줄 것을 소리높여 외쳤다.
인구가 4천5백만 명이나 되는 한국시장은 상당히 큰 시장이다. 어느 업종에서나 한국 기업이 쓰러지면 외국 기업들은 한국시장에서 떼돈을 벌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대기업을 올바로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재벌을 해산해야 된다고 하는데, 재벌에 대해서는 정부의 공식적인 정의가 없다. 우리 정부는 「기업집단」을 법으로 인정하고 있다. 기업그룹을 정부는 「기업집단」이라 법으로 인정하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를 재벌이라고 하면서 해체의 대상으로 보니 앞뒤가 맞지 않는다.
기업집단을 경영학자들은 기업그룹이라 한다. 기업그룹도 선진국 중에서는 특히 일본과 독일에 많다. 일본은 기업그룹의 나라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기업그룹에 대한 정책은, 우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일본의 기업그룹 정책을 잘 감안해서 해야 할 것이다. 한국의 산업 정책이나 경제 시스템에 대한 정책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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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에 겐이치>
<김대중 대통령 지도하의 한국이 경제적으로 결코 다시 일어설 수 없는 이유 : 오마에 겐이치>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의 비판 : 김대중 대통령에 대한 세계의 평가는 매우 높다. 美언론들은 일제히 김대통령 특집기사를 실었으며, 아시아위크誌는 김대통령을 아시아 실력자 50인중 1위로 선정했다. 그러나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 美UCLA大 교수는 김대통령에게 매우 나쁜 점수를 매기고 있다. 美 언론들의 평가와는 정반대로ꡒ한국 경제를 해체시킨 망국(亡國)의 지도자ꡓ라며 대통령으로서 실격이라고 비판했다. 오마에씨가 본 김대통령의 결점과 한국경제의 약점은 무엇일까.
<편집자 注> 이 글은 일본의 경제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 씨가 일본의 격주간 시사잡지 「SAPIO」(7월28일자)에 게재한 글을 번역한 것이다. 오마에 겐이치씨는 올해 56세로 와세다大 공학부를 졸업하고 MIT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경영 컨설팅 회사인 「맥켄지&컴퍼니」 일본 지사장, 본사 간부를 거쳐 UCLA대 교수, 스탠포드대 객원교수, 경제평론가, 경영 컨설턴트로 활약중이다. 오마에 겐이치씨는 反美 성향의 마하티르 말레이시아 총리와 친한 사이이며 과거 일본 헤이세이유신(平成維新) 그룹의 주도적 멤버였다. 그는 金大中 대통령의 경제정책에 대해 『한국을 미국화한 것』이라며 직격탄을 날렸다.
[오마에 겐이치 약력]
△1943년 출생 △와세다대 공학부 졸업 △미 MIT대 박사(원자력공학) △맥킨지 입사(72년) 및 일본지부장 △미 UCLA대 교수 및 스탠포드대 객원교수 △영 이코노미스트 세계 사상적 지도자 4인 선정 △저서: 아시아인과 일본인, 이단자의 시대, 놀이정신, 국경없는 세상 등 다수
金대통령은 미국의 「금융 제국주의」지지
김대중은 한국을 예속경제로 몰아가고 있다.
98년2월 취임한 이래 김대통령은 무엇을 해왔는가. 김대통령은 결국 한국을 美國化했을 뿐이다. 그는 미국이 하라는 대로 이제까지 한국의 경제성장을 지탱해 온 재벌을 해체했다. 게다가 어떤 새로운 경제적 비전도 제시하지 못하고 IMF나 미국계 투자은행이 하라는 대로 재벌 해체작업을 시작한 것이다.
말하자면 미국의 '금융제국주의' 를 지지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러한 지도자는 당연히 미국내 평판이 좋기 때문에 타임誌 표지인물로 실리거나 뉴스위크誌 특집에 등장하는 등 매우 환영받고 있다. 일본에 비유하면 미국내 평판이 좋지 않았던 이시바시나 이케다, 다나카 前총리들이 아니라 친미(親美) 적이었던 기시나 사또 前총리와 같은 지도자다. 게다가 믿을 수 없게도 김대통령은 취임식에 조지 소로스를 초대해, 자택으로 불러 경제정책에 대한 충고를 들었다 국가와 국민경제를 맡고 있는 대통령이 투기꾼에게서 경제에 관한것을 듣는 것은 매우 좋지 않다. 어쨌든 한국 경제는 소강상태를 유지하면서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이는 미국의 헤게모니속에서 미국에 복종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소로스등 투기꾼들에게 공격당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며 실물경제는 그다지 개선되고 있지 않다. 원래 한국 경제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직접적으로는 중앙은행의 외환준비액이 부족했기 때문에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이며 간접적으로는 미국으로부터 지나치게 많은 돈을 빌렸는데-정확히 말하면 미국이 너무 빌려주었다-이러한 사실들이 원인이 되었던 것이다. 한국에 상환능력이 없다는 것을 안 미국은 한국 경제가 무너지자마자 IMF의 구제시스템을 도입했다. IMF의 돈으로 한국에 돈을 빌려준 미국은행들의 빚을 갚은 것이다.
당시 이들 美은행들이 돈을 되돌려 받지 못했다면 매우 위태로웠을 것이다. IMF의 구제시스템을 도입함으로써 한국에 빌려준 자금의 회수를 확실히 보장받아 美은행들을 보호했다는 것이 한국 경제위기의 진상이다. 게다가 미국계 투자은행들은 재벌해체 과정에서 이득을 보았고 프랑스나 영국 기업에 헐값으로 파는 M&A과정에서도 돈을 벌었으며, 美회계사무소들도 그 당시 매각가치 평가를 통해 이익을 챙겼다. 말하자면 이 문제는 美 혼자만의 잔치판이었으며, 미국은 한국을 미국화해 뼈속까지 우려먹은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은 어떻게 되었나? 재벌은 약체화돼 자력회생이 곤란해졌다. 게다가 새로운 기업들은 아직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 달리 저축성향이 낮기 때문에, 지금처럼 주가나 통화가치가 회복되면 바로 소비를 늘려 비싼 사치품을 사들이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미국화가 추진되고 있지만,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문제점은 아무 것도 해결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한 마디로 美은행으로부터 빌린 돈이 IMF로부터 빌린 빚으로 모습을 바꾼 것뿐이다. 그 빚은 결국 한국 국민이 갚아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 무역흑자는 예전처럼 가능하지 않을 것이고 외환시장도 엔화 하락세로 치닫고
있기 때문에, 이런 상황에서 한국은 절대 선진국이 될 수 없다. 왜냐하면 한국은 엔화가 하락하면 경제가 나빠지고, 엔화가 상승하면 좋아지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제구조 속에는 국민들이 풍요로워지면 국가가 경쟁력을 잃는 시스템이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한국이 생산하는 제품,수출하는 제품의 99%는 일본과 같다. 조선,철강,자동차,가전제품등 완전히 '미니 日本'이다. 따라서 엔화가 하락하면 한국은 경쟁력이 떨어져 수출할 수 없게된다.반대로 엔화가 절상되면 경쟁력이 강화되고 수출도 살아난다. 즉 한국은 美․ 日간의 조건여하에 따라 번영한다는 숙명적인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 취임한지 1년 4개월이 지난 김대통령은 그동안 한국의 독자적인 강점을 만들어냈는가. 예컨대 일본이 만들지 않는 상품을 개발하려고 했는가. 엔/달러 환율이 3백60엔에서 80엔으로 대폭 떨어져도 수출을 계속해온 일본과 같은 경쟁력을 갖추려고 했는가. 또는 아일랜드와 핀란드, 싱가포르처럼국가는 작지만 일본이나 미국의 환율에 영향을 받지 않는 산업구조를 조성하려고 했는가. 김대통령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다.
일본이 엔/달러 환율이 80엔까지 떨어진 상태에서 자동차나 가전제품을 현지 생산해도 거액의 무역흑자를 유지하고 있는 것은 이들 제품들의 중요한 핵심이 되는 전자부품이나 기계부품을 수출할 수 있는 국가가 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은 그러한 기간부품을 제작할 수 없다. 한국 재벌그룹의 한 관계자는 "우리 회사는 최고 수준의 TV를 만들고 있다"고 자랑하지만, 그 기간부품의 대부분은 일본제품이다. 소형․ 경량화하면 할수록 현지에서는 만들지 못한다.
산업의 기반이 되는 부품산업의 유무가 일본과 한국의 최대 차이다. 때문에 한국은 부품과 공작기계를 일본에서 수입, 그것들을 조립해 수출하는 부가가치가 낮은 '통과 경제'가 되고 있다. 즉 미국에 수출해 돈을 벌려고 하면 할수록 일본에서의 수입이 증가하는 구조가돼 버렸다. 한국이 이러한 상황을 장기간 방치하고 있는 것은 정계에도, 재계에도 장기적인 산업정책을 진지하게 추진하는 지도자가 없기 때문이다.
항상 눈앞의 매출이나 무역수지만을 추구했기 때문에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드는 부품제조는 전부 피하고, 겉만 번지르르한 반도체와 사무자동화기기, 휴대폰을 생산하는 것을 반복해 부품산업을 육성하지 않았다. 그러나 무역수지를 지탱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부품산업이다. 그것을 육성하지 않았기 때문에 환율 하나에 나라 전체가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외부의존型 경제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한국에는 '한국외는 없는 상품'이 거의 없다.
나는 한국에서 여러 번 강연했지만 강연장에서 "한국에서만 찾을 수 있는 물건,살 수 있는 상품이 있으면 말해달라"고 청중들에게 물어도 아무도 손을 들지 않았다. 고작해야 도자기나 모피 정도다. 그러나 이것으로 4천5백만 인구를 먹여 살릴 수 없고, 그런 준비가 안돼 있는 것이 한국의 현실정이다.
이러한 본질적인 약점에 손을 대지 않는 한 한국은 자력으로 국가의 미래를 결정해 나갈 수 없다. 또 새로운 산업을 육성한다고 해도 일본이 만들고 있는 것과 똑같은 물건을 만드는 것은 의미가 없다.일본과 겹치는 산업형태와 구조를 바꾸지 않으면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이 문제를 인식하고 있는지 여부가 한국대통령으로서 가장 중요한 조건이다.
한국은 국내시장을 폐쇄하고 수출로 먹고 사는 경제체제로 여기까지 왔다. 수출을 위해 필요한 부품은 수입했지만 사치품등은 수입하지 않고 국내에서 생산한 제품을 우선시했다. 그러나 IMF의 권고대로 시장을 개방하면 美日을 비롯한 세계 각국으로부터 값싸고 질 좋은상품이 밀려들게 된다.그렇게 되면 한국기업중 살아남을 기업이 과연 있을까. 나는 거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국인들은 이중성향을 갖고 있어 정치적으로는 反日을 부르짖어도 일본 제품을 동경하고 있고 일본 브랜드를 매우 선호한다. 가령 일본 제품이 적정 가격에 유통된다면, 무역불균형 문제로 반일운동을 벌여온 미국인들이 니콘 카메라나 도요타 자동차를 애용한 것처럼 한국 소비자들도 이중성을 드러내 일제 구입에 열을 올릴 것이다. 그렇게 되면 독자성이 없고 디자인도 떨어지는 한국 제품은 시장에서 도태될 것이다.예를 들어 삼성자동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한 것은 기억에 새롭지만, 자동차회사중 日本업체와 정면대결해 살아남을 회사는 하나도 없다.
약15년전 美國 시장에 한국의 현대와 대우가 진출한 적이 있다.가격이 1대당 7천~8천달러로 쌌기 때문에 처음에는 일본차의 시장점유율을 5%정도 잠식했지만 그 후 결국 철수하고 말았다. 이들은 높은 국내가격으로 보전되면서 미국에서는 덤핑으로 팔리고 있고 부품의 50%는 일본제를 쓰고 있다. 따라서 판매량이 늘면 늘수록 생산비용이 높아졌다.게다가 공해규제가 엄격한 캘리포니아州등의 기준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더욱더 일본에서 부품수입을 늘려왔다. 결과적으로 한국 메이커는 저가격을 유지할 수 없어 美시장에서 살아 남지 못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한국 시장에서도 같은 조건하에서 일본차와 경쟁한다면 한국차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얘기다.
이것이 부품과 최종제품을 제작할 수 있는 국가와, 부품을 수입해 조립만 하는 국가와의 차이며, 가전등 다른 분야의 공업제품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한국은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좋을까.
우선 일본과 다른 분야에서 독자적인 공업화사회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10년 이상의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한국에서는 전통적으로 문과계가 강해 엔지니어를 중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공업화사회의 경쟁에서는 대만에 불리하다고 생각된다. 대만은 국립대학에서 많은 엔지니어를 계획적으로 양성해 왔기 때문이다. 공업화사회를 뛰어넘어 소프트웨어산업과 서비스산업등에서 승부하는 정보화사회로 이행하려해도 이번에는 그 경쟁상대가 되는 미국과 인도를 상회할 수학 실력과 영어 구사능력이 없다. 또 소로스에 어드바이스를 구해 금융경제로 이행하려 해도 한국에는 마땅한 은행이 없다. 모두 국영이나 재벌계 은행이며 국경없는 무한경제속에서 자력으로 이겨낼 수 있는 은행이 없다.
한마디로 한국은 사방이 꽉 막힌 상태다. 이미 말한 것처럼 김대통령은 그러한 한국 경제의 본질적인 약점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을 아무 것도 강구하지 않고 있다. 단기적으로 위기를 회피하기 위해 미국에 붙었을 뿐이다. IMF권고의 제1막은 그런대로 괜찮을지 모르지만, 제2막은 아수라장이 될 것이다. 한국의 대통령은 5년 단임제이기 때문에 처음 2~3년간은 누구나 복종하고 무슨 말이든 잘 듣는다. 그러나 재선이 안되므로 다음 2~년은 레임덕에 걸려 버린다.
김대통령의 경우도 앞으로 1년 정도 지나면 모두들 태도를 싹 바꿔 아무도 말을 안들을 것이다. 그때 김대통령은 자신이 앞장서서 이끈 IMF권고의 제2막, 즉 제1막에서 약속했던 시장개방을 시작해야 한다.
그러나 실제로 시장개방을 단행하면 한국의 2차산업은 일제에 밀려 괴멸될 것이다. 3차산업은 미국이 독점할 것이 틀림없다. 1차산업도 호주나 뉴질랜드에서 값싼 농산물이 수입되면 뿌리채 흔들리게 된다.
이런 사실을 알고 있는 재벌들은 레임덕이 된 김대통령의 시장개방 정책에 따르지 않고, 태업에 들어가 관료들과 함께 해외제품의 유입을 막을 것이다. 이렇게 되면 외국에서는 압력을 넣기 때문에 다시금 경제가 불안정해질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다. 나는 김대통령
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매우 원기왕성하고 머리가 좋은 인물이지만 결국 미국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방법이 틀렸다고 생각된다.미국이 얼마나 타국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는 국가인지를 몰랐기 때문이다. 그것이 김대통령의 최대 실패였다고 후세 역사가는 낙인찍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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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 호 44 작 성 일 1999년9월29일
* 이 글은 중앙일보 Economist지 1999년 9월 14일자에 실린 오마에 겐이치와 노부호 서강대 교수와의 특별인터뷰 전문입니다.
O 韓國 개방 過速 … ꡒ속도조절 안하면 일난다ꡓ
日 우익성향 주간지 ꡐ사피오ꡑ 기고문 파문…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 특별대담 ꡒ살아남을 한국산업 거의 없어…ꡓ
한국은 미국 입김에 좌지우지되고 있다-. 지난 7월 일본의 저명한 경제평론가 오마에 겐이치가 주간지 ꡐSapioꡑ에서 주장한 내용이다. 그의 독설은 한국에서 곧바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정부쪽 반발이 컸다. 최근 학술회의차 일본에 들른 노부호 서강대 교수가 도쿄에 있는 오마에 겐이치의 사무실에서 그를 만나 전말을 들어봤다.
─경제가 살아나고 있어 김대중 정부에 대한 평가가 좋은 편입니다. 그런데도 한국 경제의 미래와 김대중 대통령의 지도력에 우려를 나타냈는데 이유는 무엇입니까?
ꡒ김대중 대통령은 뛰어난 지도자입니다. 지도자의 덕목을 고루 갖추고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한국은 특히 경제정책면에서 미국에 의존, 또 하나의 미국으로 바뀌고 있습니다. 그래서 김대통령이 한국 경제의 현실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글에서 강조한 것도 바로 이 대목입니다. 제가 보기에 김대통령은 미국으로부터 조언을 구하고 있고 그것들은 대부분 MBA적 유형, 투자은행 그리고 조지 소로스로부터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운용방식은 잘못됐다는 것을 다시 한번 강조하고 싶습니다. 한국은 지금 쓰레기를 투입해서 쓰레기를 만들어내고 있을 뿐입니다.ꡓ
─김대중 대통령은 한국 경제를 국제 무대에 개방하는 쪽으로 경제정책을 펴고 있습니다. 이런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ꡒ물론 개방은 시대의 대세입니다. 그러나 제가 묻고 싶은 것은 한국이 경제를 개방했을 때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에 대해 심각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진정 현명한 정치인이라면 한국의 산업이 갖고 있는 강점과 약점이 무엇인지 숙고해 보아야 합니다. 제 생각으론 개방은 경제에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산업부터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나 미국의 요구로 산업을 개방하게 된다면 이는 잘못된 결과를 가져올 것이 분명합니다. 일본이 경제를 개방하는데는 2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물론 일본 경제가 완전한 형태의 개방경제라고는 보기 어렵지만 아무튼 일본은 잘 해내고 있습니다. 이런 질문을 한번 드리고 싶습니다. 만약 한국 경제가 외부세계에 열렸을 때 한국에서 어떤 산업이 외국과 경쟁해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세계적으로 경쟁력을 갖춰 개방한 후에도 여전히 살아남을 수 있는 산업이 한국에 얼마나 있을까요?ꡓ
─제가 보기엔 한국 정부의 개방 자체보단 개방속도가 문제라고 보는데….
ꡒ세상에는 올바른 일들이 다양하게 존재합니다. 예컨대 당신이 자녀를 25년 또는 20년간 곱게 키웠는데도 그들이 세상을 스스로 개척해나갈 능력이 부족하다고 가정합시다. 그런데 그들에게 갑자기 세상에 나가 스스로 살아남으라고 말하는 것은 결코 신중한 선택이 아니라고 봅니다. 한국 정부는 지난 20여년간 큰 실수를 저질러 왔습니다. 그래서 국민들이나 한국의 산업들이 개방에 대한 준비를 제대로 할 수 없었던 것이죠. 이런 가정을 한번 더 해봅시다. 지금 새로운 부모가 나타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이야, 너는 이제 성인이다. 그리고 너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멤버이고 1인당 GNP가 1만 달러가 넘는 부자가 됐으니 이제는 세상에 홀로 설 수 있을 것이다. 저는 김대통령이 옳고 그른지를 따지는 것이 아닙니다. 김대통령은 아마도 옳은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나 이것은 미국이 겉으로 말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한국 경제를 똑바로 바라봐야 합니다. 제가 보기엔 현재 한국경제는 아직 개방에 필요한 준비가 제대로 돼 있지 않습니다.ꡓ
─그러면 한국경제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ꡒ한국의 산업은 한국에선 대부분 강력한 규제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한국 기업들은 해외에서 경쟁하는 방법은 배웠지만 한국에서 외국 기업들과 경쟁하는 방법은 터득하지 못했습니다. 일본이 불도저, 피아노 그리고 다른 부분들을 점진적으로 개방하는데 35년이 걸렸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전체 산업의 50%는 여러 형태의 보호 아래 놓여 있습니다. 일본에서의 개방 과정은 매우 조심스럽게 이뤄졌기 때문에 외국인들의 불만을 샀던 것도 사실입니다. 저 또한 일본의 개방정책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일본은 완전하게 개방돼야 합니다. 35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보호정책을 취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한두 가지의 예외를 빼곤 일본이 보호정책을 사용해야 하는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ꡓ
─그렇다면 한국이 개방을 늦춰야 한다고 봅니까?
ꡒ한국은 일본과는 사정이 다릅니다. 한국은 당장 해결해야 하는 특수한 위기상황에 놓여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은 먼저 왜 위기가 1997년 11월이나 12월에 발생했는지를 제대로 파악해야 합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한국 경제에는 많은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데만도 아마 10년에서 20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좀 다른 얘기인데 만약 당신이 미국식의 단순한 사고방식에 동의한다면 검은색이 아닌 것은 모두 흰색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미국인들의 사고는 매우 단순한 디지털 방식이라고 할까요. 그러나 한국의 상황은 매우 점진적이고 아날로그적인 해결책을 필요로 합니다. 김대통령은 취임과 더불어 경제위기를 해결해야 했다는 점에서 매우 불행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시점이 그에게는 기회였던 것이죠. 김대통령은 과거를 부정할 수 있는 호기를 잡은 것이고 미국의 조언을 받아들여 전혀 새로운 경제 정책을 채택할 수 있었기 때문이죠. 저도 미국의 주장들 가운데 몇몇 부분들에 대해선 긍정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위기해결에 있어 미국이 제시하는 조언들에 대해서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한국이 중요하게 여겨야 할 문제는 무엇이 옳은가가 아니고 어떻게 위기를 대처할 것인가 하는 점이기 때문입니다.ꡓ
─한국의 재벌들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합니까?
ꡒ한국의 재벌들은 미국에서 자금을 끌어들여 중국․인도․베트남 등으로 진출했습니다. 자신들이 지난 28년간 해왔던 것과 동일한 방식을 쓸 수 있는 것을 찾아나선 셈이죠. 이런 나라에서는 기술의 낙후와 더불어 시대에 뒤떨어진 경영기법이 여전히 쓰이고 있습니다. 이는 일종의 현실도피주의입니다. 한국에서 힘든 경제현실로부터의 도피인 셈이죠.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미국 은행들로부터 빌린 돈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사실 현재 한국의 위기는 한국 정부의 문제라고 보기는 곤란합니다. 한국 정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기 때문이죠. 그러나 한국 정부가 무역흑자 부분에 위기가 닥쳤을 때 한국의 중앙은행이 달러가 부족해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한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정부가 비판받아야 할 또 다른 점은 재벌이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당시 재벌들은 자신들이 세계경영을 수행할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국내의 힘든 현실로부터 벗어나고자 했기 때문에 능력도 없으면서 세계화를 외쳤던 겁니다. 따라서 그들은 다른 국가들에서 지난날 한국에서 행했던 것과 동일한 방식을 취했던 것이죠. 따라서 이들이 재정적으로 과도한 차입경영을 계속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외환위기가 닥쳐 한국의 두 그룹이 부도사태에 이르렀을 때 여러 미국 은행들도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됐던 것이죠. 이는 이들 은행이 한국 정부가 아니라 한국의 재벌들에게 과도하게 대출했기 때문입니다. 이때 재벌들은 자신들이 어느 정도로 과도한 차입상태인지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크게 당황했습니다. 한국 재벌들의 신용관계는 얽힌 실타래처럼 복잡합니다. 이런 복잡성 때문에 어느 누구도 자신들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했던 것이죠. 한국경제를 분석해 얻은 가장 중요한 사실은 한국경제가 확고한 경쟁력을 결여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97년 11월의 위기를 초래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라고 봅니다.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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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에 겐이치와의 대화 (2) 번 호 45 작 성 일 1999년9월29일
* 이 글은 매일경제신문 1999년 9월 1일자 실린 [한국경제 비판 오마에 겐이치에 다시 듣는다](전호림 기자)의 전문입니다.
O "자생력 안키우면 위기 또 온다"
`김대중 대통령이 이끄는 한국이 경제적으로 결코 일어설 수 없는 이유'라는 제목으로 일본 격주간지 사피오(7월28일자)에 기고(매일경제 8월3일자 보도)해 논란을 일으켰던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 씨를 도쿄시내 잇신주쿠(一新塾․자신이 경영하는 정경학교)에서 만났다. 기자가 찾아가자 "한국 각계의 반응을 대충 알고 있다"면서 "10년전 부터 비슷한 얘기를 해왔는데 새삼 그렇게 문제가 된 이유를 모르겠다"고 의아해했다.
그는 "많은 논의들에 일일이 대답할 수는 없다"고 전제하고 "한국을 진정한 친구로 생각하고 기탄없이 털어놓은 충고를 왜곡되게 해석하는가 하면 전혀 엉뚱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데 대해 섭섭하다"고 심중을 털어놓았다.
- 대통령을 편들려고 하는 얘기는 아니지만 당시 한국은 달러 보유고가 수십억달러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이었다. 따라서 국제통화기금(IMF) 요구를 받아들이는 데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걸로 안다.
▲당시 빚을 진 실체는 정부가 아니라 재벌이었다. IMF가 재벌한테 빚을 갚으라고 요구했다는 얘기다. 한국의 경우 국가채무는 거의 없었다. 원화가 폭락해도 팽개쳐뒀더라면 어디선가 멈추게 돼있었다. 재벌이 망하고 외국인 손에 들어갈지언정 국가가 망하지는 않는 상황이었다. 재벌이 빌린 돈은 재벌의 문제다. 결국 들을 것 다 들어주고 지금 재벌기업들을 외국에 넘기는 상황을 맞고 있지 않은가. 정부가 당황해서 우와좌왕할 필요가 없었다.
- 사피오지(誌) 기고를 읽으면 한국은 결국 미국에 이용당했다는 얘기가 되는데
▲뉴스위크에 미국 금융을 주무르는 앨런 그린스펀과 로버트 루빈, 로렌스 서머즈 3사람이 한국의 경제위기에 관해 말한게 실린 적이 있다. 그들은 당시 한국의 위기가 미국은행의 도산을 부르고 나아가 뉴욕 주식시장을 강타할 것이라는 위기때문에 한국을 구했다고 말했다. 결국 한국은 미국은행을 구하기 위해 IMF에 고개숙이고 들어간 것이다. 자칫하면 미국의 금융위기로 치달을 뻔한 상황이었다. 이것을 국가의 문제로 바꿔놓은 것이다. 그러니 김대통령이 경제를 잘 안다고 하지만 실은 모르는 것이다.
- 조지 소로스같은 사람을 만난 데 대해서도 대통령이 스스로 몸을 낮추어 각계 각층의 아이디어를 얻으려 했다는 점에서 높게 평가하는 이들도 많다.
▲김대통령은 매우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다. 그러나 그것과 국가통치는 별개다. 조지 소로스는 일개 투기꾼에 지나지 않는다. 그는 태국 통 화인 바트를 흔들어 아시아 위기도 조장했다. 소로스는 뉴욕시장을 지키는데 급급했지 한국엔 관심도 흥미도 없었다. 그는 한마디로 `정치적인 장사꾼'(POLITICAL MERCHANDISER)이다. 정치를 이용해 돈버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충고를 듣더라도 상대를 잘 골라야 한다. 논의상대가 틀렸다는 얘기다. 확실히 김대통령은 미국 말을 너무 잘 듣는 경향이 있다. 소로스가 말하는게 옳은 말이라고 해도 한국은 그런 준비가 돼있지 않은 상태이다. 배 나오고 살찐 사람을 보고 조깅하고 수영하라는 얘기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좋은 처방이다. 그러나 갓 퇴원한 환자에게는 무리다. 나도 재벌을 해체하라고 말한 적이 있다. 다만 준비를 철저히 하고 순서를 지켜야 한다고 얘기했었다.
- 준비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을 말하는가.
▲10년 정도 잡아 국제경쟁력이 갖춰지도록 산업구조를 바꾸고 튼튼히 한 다음 이노베이션과 창업을 통해 갈길을 만들어 놓고 풀어야 한다는 얘기다.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다.
- 재벌을 해체한다고 표현했는데 정부는 해체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IMF와 약속한 사항이다. 이미 30대 재벌의 절반 가량이 그런 길로 접어들었다. 1개 그룹에 3개 업종만 하게 한다든지 자동차는 누구와 합치고 반도체는 누구에게 주고 하는 것도 그런 과정의 하나 아닌가. 언젠가는 해체해야 하겠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설령 한다고 해도 한국인 스스로 해야지 외부의 힘에 의해서 하면 반드시 부작용이 생긴다.
- 때마침 한국은 지금 재벌개혁으로 시끄럽다. 재벌의 경영행태를 보면 용인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없앨 수도 없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
▲놔두면 저절로 없어진다. 일부러 없애려고 하면 부작용이 생긴다. 지금 한국경제에 재벌을 빼고 나면 무엇이 남는가. 재벌을 없애려는 노력보다는 새로운 사업이 왕성하게 일어나도록 유도하는 정책을 써야 한다. 새 비즈니스가 많이 생겨나면 재벌은 저절로 퇴색해갈 것이다. 일본의 경우도 2차대전 종전 이전의 재벌이 전후에도 재벌 행세를 하는 곳은 거의 없어졌다.
- 벤처기업이 탄생해 재벌을 대체해가는 과정의 일본 사례를 든다면.
▲지금은 국민소득(GNP)이 3만5000달러에 달하지만 맥아더가 재벌을 해체했을 당시 일본의 GNP는 300달러로 매우 가난했다. 따라서 재벌해체에 따른 영향은 적었다. 재벌이 해체되자 전기 중공업 은행 보험 등 각 분야에서 독립된 경영체가 나타나 맹렬한 기세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사령부(지주회사)를 잃어버린 재벌계 기업들도 우왕좌왕하면서 한계상황까지 몰렸으나 이내 그들 스스로 살길을 찾았다. 이렇게 해서 마쓰시다 소니 혼다 야마하 교세라 캐논 같은 세계 초우량기업들의 싹이 돋아났다. 산업정책없이 스스로 길을 찾아 오늘날 각 분야에서 세계에 군림하는 기업으로 성장한 것이다. 따라서 처절한 고민과 몸부림 그리고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 당시 일본정부의 역할은 무엇이었나.
▲정부는 기업을 앞에서 이끌만한 능력이 없어 그다지 힘이 되지 못했다. 오로지 철도에만 신경을 썼다. 인프라 쪽에 정책을 집중한 것이다. 당시 관리들 머릿속은 일본은 미국과 달리 국토가 좁은 만큼 차로 득실거려서는 안된다며 철도만 있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도요타 기이치로같은 사람이 민간에서 나와 사업을 일궜다. 이는 산업정책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가능한 것이었다.
- 한국에는 민간의 그런 역동성이 없다고 보는가
▲서울에 갈 때마다 한국의 진로에 대해 조언해달라는 사람을 만난다. 미국과 일본에 샌드위치처럼 낀 한국을 어찌하면 좋겠냐는 것이다. 그 때마다 나는 한국인들이 스스로 답을 만들어보려는 습성을 가져야한다고 말하곤 했다. 왜냐하면 한국인중 많은 사람들이 답을 들으면(특히 선진국으로부터) 비판이나 신중한 고려없이 즉시 행동에 옮기고 마는 예를 많이 봐왔기 때문이다. 이것이 한국을 망치고 있는 것이다. 강점이 무엇이고 약점은 무엇인지를 따지는 철저한 자기성찰을 거쳐야 진짜 값진 답이 나온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젊은이들을 좀더 자유롭게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독창적인 아이디어가 샘솟고 새로운 사업이 많이 생겨난다. 명문대를 나온 똑똑한 젊은이들은 대부분 재벌기업에 들어가거나 외국에 유학을 간다. 재벌기업에선 창의와 혁신이 발휘되기 어렵고 미국에 가서는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많다. 인재가 새는 것이다. 이는 다양한 벤처가 자라는 것을 막는다. 은행들도 벤처같은 작은 회사에는 대출을 꺼린다. 일본도 미국에 비하면 새로운 비즈니스 생성률이 크게 낮지만 한국보다는 비교가 안되게 많다. 특히 세계적으로 급속한 성장을 보이고 있는 게임기 분야에서는 고나미, 나무코, 매닉스 등 엄청나게 많은 벤처들이 활약하고 있다. 이들 기업의 주역은 젊은이들이다. 전후의 불모지에서 사업을 일으킨 것도 혼다 소니같은 벤처요 비재벌계 젊은이들이었다. 도전하고 실패하고 또 도전하는 가운데 축적된 기술이나 경영 노하우야말로 나중에 피가 되고 자산이 된다.
- 한국이 벤처 육성을 결코 소홀히 하고 있지는 않다고 보는데.
▲한국의 경우 한가지 문제점은 어떤 벤처기업도 탄생해서 사업이 성공하면 점차 재벌(또는 미니재벌)로 변질된다는 점이다. 어느 정도 돈을 벌면 외국에서 라이센서를 들여와 자꾸 사업을 확대하고 이를 통해 덩치가 커지면 은행도 돈을 잘 빌려주니 재벌로 성장하는 것이다. 이는 정치와 결탁하는 정도나 정치 의존성이 크다는 반증이다. 라이센서를 들여오려면 인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 그런 관계가 형성된다. 어떻게든 새사업 속으로 비집고 들어가기만 하면 뒷일은 보장되기 때문에 모두 재벌이 되려고 한다. 문제는 이런 경제행위가 창조성을 크게 좀먹는다는 사실이다. 자기 힘으로 개발하고 생산해서 판매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아무리 세월이 지나도 알맹이는 못 먹는다. 적어도 97년 12월 위기가 닥쳤을 무렵에 한국은 전국민의 생각을 모은 `국가 百年의 計'를 내놨어야 했다.
- 일본과 업종충돌을 피하면서 먹고 살 분야를 찾으라고 했는데 지구상에 외국과 충돌없이 독자적인 분야로만 먹고사는 나라가 얼마나 되나.
▲찾아야 한다. 일본도 과거 유럽과 미국을 따라잡으려고 피나는 노력 끝에 찾아냈다. 조사해보면 알겠지만 이 세상에 없던 것을 일본이 발명하거나 처음 발견한 게 얼마나 많은가. 부품도 완제품도 많이 있다. 그 길을 찾아가는 과정에 많은 새로운 발견이 있을 것이다.
- 역대 정권들이 재벌을 없애려고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성공하지 못한 이유는 무엇인가.
▲확실히 한국의 역대 대통령은 누구할 것없이 처음에는 재벌을 개혁하겠다고 큰 소리치다 정권이 끝날 때쯤이면 약속이나 한듯이 재벌과 친해져 있었다. 김영삼 전대통령 임기종료 2~3년 전부터는 더욱 심했다. 김영삼 대통령 집권후 한때 경기가 좋지 않아 어떻게 손을 쓰면 좋을지 몰라하고 있었다. 그때 마침 엔화가 달러당 80엔까지 가는 강세를 보였다. 이것이 한국경제를 망치는 요인이 됐다. 경제개혁이 필요했지만 그런 고통 없이도 물건은 잘 팔렸고 수출증가와 함께 달러가 들어왔다. 엔고가 개혁의 필요성을 망각하도록 하는 마약이 된 것이다. 수출이 늘어나면서 돈이 많이 들어오자 노조가 들고 일어났다. 그러자 기업인들은 생산시설을 가지고 나갔다. 특히 김영삼 대통령은 전세기를 동원해 재벌그룹 회장 등을 대거 데리고 남미로 나가 한국의 신제국주의라는 말까지 나오기도 했다. 당시 재벌들은 미국에서 돈을 빌어 제나라에는 투자하지 않고 모두 외국에 생산거점을 옮기는데만 신경을 썼다. 노동자들에 대한 분배도 마다했다. 오히려 자신들의 번듯한 사옥을 마련하는데 더 신경을 썼다. 이 과정에 노동자들의 불신은 더 커졌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한국의 근대화 과정을 놓치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됐고 IMF를 불렀다.
- 부연설명을 해달라.
▲모처럼 불러진 주머니를 털어 조국에 투자를 했어야 했다. 제대로 된 산업을 키우고 핵심부품을 키우고 기술의 씨앗을 찾기 위한 연구개발에 투자를 하고 인재를 육성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결코 IMF는 없었을 것이다. 당시 한국인들은 터져나오는 에너지를 통제하지 못하고 허송했기 때문에 이렇게 된 것이다. 국가든 개인이든 결정적인 갈림길에서 선택을 그르치면 이처럼 치명타가 된다. 그런 측면에서 일반대중과 국가사회를 제대로 이끌고 갔어야 할 지도자들이 무엇을 했는지 생각해봐야 한다. IMF 체제에서 한시바삐 벗어나야 하는 지금도 반성을 통한 절실한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지 않다. 한가지 이상한 것은 당시 어느 언론도 김영삼 대통령의 그같은 잘못을 지적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국은 정말 장래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 재벌의 업종간 빅딜은 어떻게 보나
▲자동차를 결합한 것은 최악의 작품이다. 사람으로 말하자면 혈액형이 다른 사람의 피를 수혈한 것이다. 잘못하면 죽을 수 있다는 얘기다. 기업이란 게 문화가 있는데 강제로 합병한다고 되겠나. 강한 기업은 빨리 성장하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줘야지 강한 것과 약한 것을 썩어놓았으니 속도가 떨어질 수밖에. 반도체는 주고 뭐는 받고 하는 이런 게임은 애들이나 할일 아닌가. 정부가 아까운 시간을 쓰면서 힘들이지 않아도 시장에 맡겨두면 재벌문제는 해결된다. 지금은 한국경제에서 재벌빼면 남는게 없다. 청와대가 구체적으로 자동차는 누구 통신은 누구 하는 식으로 지시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건 후유증이 남는다. 패전후 일본에서 맥아더장군이 하던 것을 지금 김대중 장군(미국 제복을 입은)이 하는 것 아닌가. 그전에 물론 삼성이 자동차를 한 것은 이성을 잃은 행동이었다. 전자에만 힘써 세계적인 기업으로 만들었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아까운 자원을 낭비하고 나아갈 시간을 허비했다. 잠시 한눈 팔면 탈락되는 경주에서 모두 앞을 보고 달리는데 삼성만 한동안 옆으로 달린 것이다. 자신의 특기가 아닌 분야에 자꾸 곁눈질을 할 경우 시장이 완전개방되면 살아남을 산업이 없다.
- 한․일자유무역 협정체결은 어떻게 생각하나
▲시기상조가 아닌가 한다. 물론 일본에게는 한국시장의 조건이 자국시장과 같아지는 것이니 좋겠지만 한국은 피해를 볼 것이다. 경쟁력을 키운 다음에 해도 늦지 않다. 서둘 필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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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에 겐이치와의 대화 (3)
번 호 46 작 성 일 1999년9월29일
* 이 글은 한국경제신문 1999년 9월 1일자 실린 [오마에 겐이치에 듣는다](김경식 도쿄특파원)의 전문입니다.
O "재벌 부정하면 경제 무너진다"
"재벌개혁은 결코 개혁 그 자체가 목적이 돼서는 안된다. 정부가 나서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시장에 맡겨야 한다. 재벌개혁에 앞서 먼저 국가가 나아갈 목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재벌을 부정하면 한국경제는 무너진다"
일본의 저명한 경제평론가로 현재 미국 UCLA교수인 오마에 겐이치(56)씨는 한국정부의 재벌개혁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는 심지어 "김대중대통령이 경제를 잘 모르는 것 같다"고 꼬집으면서 미국의 요구대로 따라가는 개혁은 결코 성공할수 없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도쿄시내 그의 사무실 오마에 앤드 어소시에츠에서 그를 31일 만났다.
- 얼마전 주간지 사피오에 기고한 "한국이 경제적으로 일어설수 없는 이유"라는 칼럼이 한국에서 큰 화제가 됐다.
"한국에서의 반응을 잘 알고 있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여러가지 이야기가 들어오고 있다. 정권 출범후 2년간은 아무도 나쁜 얘기를 하기 어렵다. 그러나 마지막 2년간은 누구라도 함부로 얘기한다. 이것은 잘못된 것이다. 대통령이라도 잘못한 것은 있다면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김영삼 전대통령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금융실명제등 30여년간 야당생활을 하면서 느꼈던 문제들을 반년만에 해결했다. 그러나 아무도 반대의견을 내놓지 않았다. 국민들이 토론해야 할 상황인데도 신문도 학자도 처음 2년간은 듣기만 한다. 이것이 문제다"
- 한국경제위기의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가.
"한국은 달러당 80엔대의 엔고가 일어났을때 개혁을 했어야 했다. 한국은 엔고에 따른 수출경쟁력제고에 힘입어 외화를 벌어들였다. 여기에다 미국은행으로부터 빌린 돈까지 합쳐 해외로 나갔다. 한국은 생산성제고와 이노베이션을 위한 재투자를 외면했다. 재벌의 대부분은 미국으로 부터 빌린 돈으로 브라질 동유럽 인도 미얀마 베트남 중국으로 달려갔다. 정작 한국에는 재투자하지 않았다. 노동조합은 더이상 필요하지 않다며 한국을 떠났다. 재벌이 한국을 등진게 바로 한국금융위기의 원인이다. 재벌의 한국이탈은 김영삼 전대통령때 일어났다. 브라질방문때 재벌을 몽땅 데리고가 현지투자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선진국대통령처럼 행동했다. 엉터리였다. 외국을 도우기에 앞서 우선 국내경제를 다시 일으켜 세웠어야 했다. 재벌들이 외국으로 몰려나갔다. 게다가 외국으로 부터 엄청난 돈을 빌렸다. 브라질 동구에 투자를 한 이유는 무엇인가. 지난 15년동안 한국에서 해오던 것을 브라질이나 동구에서 하면 그대로 통했다. "이지 고잉(Easy going)"이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하면 된다는 식이었다. 음악으로 치면 앙콜로 같은 노래를 부르는 것과 같다. 한국경영자들은 이처럼 쉬운 방법을 택했다. 따라서 한국에는 돈이 바닥이 나버렸다. 노동자들이 반발하고 나섰다. 이로인해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 이대로는 한국의 근본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근본문제란 도대체 무엇인가.
"한국은 자신들의 강점과 약점을 모르고 있다. 강점은 자신들이 스스로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전부 빌린 것뿐이다. 기본적으로는 일본을 배울 것인가, 미국을 배울 것인가를 언제나 얘기한다. 일본을 따라서 조선 철강 가전 자동차 반도체등을 만들었다. 그러나 현재 일본은 정체상태여서 배울게 없으므로 미국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본이나 미국으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안된다. 자신들이 갈 방향을 찾아내 역할을 맡아야 한다. 싱가포르의 경우 나라는 작지만 아시아의 수도가 되겠다며 서비스산업을 특화하고 있다. 말레이시아는 정보통신산업에 치중하고 있다. 대만은 "거대한 홍콩"을 겨냥하고 있다. 자신의 나라가 무엇을 겨냥하는가를 우선 명확히 해야한다"
- 목표를 설정하는데 재벌개혁은 불가피하지 않은가.
"재벌 개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두가지 중요한 점이 있다. 지금 한국에는 재벌밖에 없다. 재벌을 빼고나면 무엇이 남는가. 재벌을 부정하면 한국은 없어지고 만다. 현재 재벌을 어떻게 할것인가 생각하지 말고 어떤 나라가 될것인가를 먼저 결정해야 한다. 그런 다음 재벌이 걸림돌이 되는가 아니면 나름대로의 역할이 있는가를 체크해야 한다. 걸림돌이 된다면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돈이 돌아가도록 해야한다고 본다. 일본에서도 젊은사람들에게 돈을 지원하는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어떤 나라가 될 것인가를 확실히한다면 재벌을 어떻게 할것인지도 알 수 있게 된다"
- IMF의 처방에 대해서도 비판적인데.
"IMF가 내린 처방은 재벌해체 시장개방등 종전부터 한국의 문제점으로 지적돼온 것들이다. 그러나 이는 적절치않은 것으로 본다. 현재의 체제가 붕괴되고난 다음 이를 대체할 체제가 자리잡을 때까지는 10년이 걸린다. 어느나라라도 마찬가지다. 기존 체제는 1년만에라도 무너뜨릴 수있지만 그후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를 궁리해야 한다. 정부가 IMF의 권고나 미국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일 경우 10년은 걸려야 회생할 수있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업이 늘어나고 경제의 근간이 무너지며 국력이 쇠퇴해진다. 재벌해체는 프로세서에 따라서 이뤄져야 한다. 처음부터 약속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 재벌을 너무 옹호하는 것 아닌가.
"한국에서는 재벌이라면 무조건 좋지않은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정치가들이 재벌로부터 여러가지 혜택을 입고 그 댓가로 도움을 준다. 특정재벌에 자동차라든가 금융분야진출을 허용해준다. 최근에는 정부가 반도체 자동차사업등을 정리했다. 말도 안되는 얘기다. 정부는 경제를 모른다. 경영은 더더욱 모른다. 재벌은 사업통폐합에서 유리하도록 정치가들에게 돈을 뿌릴것이다. 일견 미국이나 IMF의새로운 처방을 받아들이면서 실제로는 청와대의 영향력이 엄청나게 커졌다. 재벌이 살아남기 위해 청와대의 눈치를 살피게 됐다. 재벌을 죽이려면 경쟁으로 죽여야 한다. 정치가가 끼어들면 판단에 문제가 생긴다. 일본에서도 경쟁에서 살아남은 기업은 튼튼하지만 정부가 도와줘서 강한 기업이 된 곳은 없다. 경쟁에서 이겨야 강한 기업이 된다. 일본에서도 정부가 개입한 산업은 엉망이 됐다. 오히려 전자등 정부가 관심을 가지지 않았던 산업은 성공했다"
- 재벌개혁의 바람직한 방향은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개혁을 달성하기 위한 처방은 무엇인가.
"재벌개혁이란 마지막으로 실시하면 된다. 인가라든가 특별한 배려를 하는 것은 안된다. 재벌을 죽이는 곳이 정부가 돼서는 안된다. IMF가 돼서도 안된다. 현재 한국경제의 절반은 재벌이 차지하고 있다. 또한 우수한 인력을 대부분 확보하고 있다. 인재 돈 기술 경영을 재벌들이 갖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갑자기 재벌이 무너지면 어떻게 되는가. 남아있는 것 가운데 강한 것이 없다. 적어도 새로운 산업이 탄생할수 있도록 정부가 인가를 하지않고 규제도 하지 않아야 한다. 젊은 사람들이 사업을 할수 있도록 돈을 지원해야 한다.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가보면 한국인들이 새로운 회사를 계속 설립하고 있다. 한국인이 할수 없는게 아니라 한국에서 할수 없을뿐이다. 실리콘밸리나 MIT등에서 활약하고 있는 한국인을 보면 창의력이 없는게 아니다. 그러나 한국은 창의력이 없다. 나라가 틀렸다는 의미다. 한국인에게는 문제가 없다. 한국의 시스템이 문제다. 한국에서는 한가지 사업에 성공하면 정치의 도움을 다른쪽으로 확장한다. 정부의 인허가과정에서 금방 재벌이 된다. 한국에서는 세계적으로 성공한 사업이 없다. 30개 거대재벌이 있지만 한가지 분야에서 세계1위가 되지 못했다. 조금씩 단계적으로 개방을 해가면서 한가지 산업에서라도 세계1위를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가치관이다. 이렇게되면 일본이나 미국과도 경쟁할수 있다. 경쟁력없는 재벌도 결국 망하게 될것이다. 경쟁에 의해서 재벌이 정리되는 것이다. 재벌해체는 결과라야 한다. 목적이 돼서는 안된다"
- 한국이 점진적으로 시장을 개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정부는 외자유치에 혼신의 힘을 쏟고있다. 최근 은행등 몇가지 외자유치 사례도 나타나고 있다. 현정부의 개방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시장개방은 바람직하다. 재벌들이 계열사를 팔기 위해 내놓았다. 외자가 들어오고 있다. 그러나 한국기업 가운데 외국인이 경영할수 있는 곳은 한군데도 없다. 외국인 경영은 무리라고 생각한다. 미국기업이 한국회사를 매수할 수는 있다. 그러나 한국노동자와 같이 일하면서 기업을 경영할수 있는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미국인이 일본이나 한국에서 성공한 사례가 없다. 한국은 세계에서 사업하기 가장 어려운 나라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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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하>
<金大中 정부의 재벌정책 : 박제하>
박재하 재정경제부장관 자문관 : 1957년 출생. 전주고․서울대 경제학과, 同 대학원 경제학과졸업. 美 펜실베이니아 주립대 대학원 경제학과 졸업(경제학 박사). 한국금융연구원 금융정책팀장. 대통령 비서실 경제구조조정 기획단 종합반 반장 역임.
오마엔 겐이치의 주장에 대한 반론 : 미국이 시키는 대로 해서 경제회복이 된 것이 아니다 재벌과 관료가 개혁과 개방을 저지할 것이라는 오마에 겐이치씨의 주장과 달리 한국의 개혁은 法과 제도를 통해 수행되고 있고, 지도자와 국민들의 개혁의지가 확고하며, 시민단체와 국제 금융시장이 주시하고 있다.
개혁정책의 성격과 내용 오해
최근 일본의 저명한 경제평론가인 오마에 겐이치(大前硏一)씨는 한국 정부가 취하고 있는 경제정책을 비판하면서 결국 한국은 경제적으로 다시 일어서기 어려울 것이라는 비관적 전망을 제기했다.
그의 비판 중에는 경제전반의 개혁정책을 추진중인 현 시점에서 한국 정부와 기업이 새겨 들을 만한 苦言(고언)도 적지 않지만, 대부분의 내용이 한국 정부가 취하고 있는 개혁정책의 성격과 내용, 그리고 추진방식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어서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무엇보다 그가 제기한 비판은 한국 경제위기의 본질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의 주장대로 한국 경제는 원래 별 문제가 없었는데 단순히 외환보유고 부족 때문에 경제위기가 발생한 것인가. 물론 외형적으로 한국의 경제위기는 외환 유동성 부족 때문에 발생했다. 즉 1997년 1월부터 연쇄적으로 발생한 대기업 도산과 금융기관 부실화로 한국 경제에 대한 대외 신뢰도가 저하되고 일부 외국계 은행이 자금을 급속히 회수하면서 어려움이 가중되기 시작했다.
여기서 오마에 겐이치씨의 비판과 관련해 한 가지 지적해야 하는 점은 그동안 한국에 가장 많은 자금을 빌려주고 또 위기과정에서 가장 적극적으로 자금을 회수함으로써 위기상황을 악화시킨 외국 금융기관은 미국계가 아니라 바로 일본계 은행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와 국민은 IMF 위기가 단순히 외환유동성의 부족 때문에 발생한 것이 아니라, 수십 년 동안 누적된 한국 경제의 내부적 모순이 WTO 체제 이후 급변하는 세계경제 여건에 부합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판단했다. 즉, 금융기관은 官治(관치)금융과 담보대출 관행 등에 의존하여 경영혁신을 외면하다 보니 경영이 낙후되고 부실자산이 급증했으며, 금융기법도 후진성을 면치 못해 금융개방화 시대에 無防備(무방비) 상태에 처해있었다.
기업은 수익성보다는 외형 불리기에 치중하여 국제경쟁력 유무에 관계없이 방만한 투자를 계속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많은 부문에서 과잉투자가 초래됐다. 과잉투자는 과당경쟁을
초래하여 적자가 누적되었으며, 더구나 투자자금을 대부분 채무에 의존하다 보니 터무니 없이 취약한 재무구조를 안게 되었다. 참고로 1997년 말 기준 각국의 기업부채비율을 비교하면 미국 1백55.1%, 일본 1백86.4%, 대만 85.7%에 비해 한국은 이들보다 훨씬 높은 3백96.3%였다. 특히 30대 재벌의 부채 비율은 무려 5백19%에 달했다.
외환위기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적절했다
더구나 1990년대 이후 세계 경제의 글로벌화가 급진전되는 여건하에서 국제적 기준(global standard)에 상응하는 제도와 관행을 정착시키지 못했던 것도 우리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작용했다.
이와 같은 문제들을 도외시한 채 단순히 외환 流動性(유동성) 부족만으로 한국 경제위기의 원인을 이해하려고 하는 한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정책은 불필요하게 기업경영에 간섭하여 결국 경쟁력만 약화시키는 것으로 잘못 이해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또한 IMF가 한국 정부에 구제금융을 지원한 것은 한국에 자금을 빌려준 미국계 은행을 돕기 위한 것이었다는 비판도 IMF 자금이 실제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를 정확히 이해한다면 근거 없는 주장임을 알 수 있다. 즉, 한국 정부는 IMF 자금을 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 확충에 사용했을 뿐 미국을 비롯한 어느 나라의 금융기관 借入金(차입금)을 상환하는 데 사용한 적이 없다.
다음으로 한국 정부가 경제회생의 비전 없이 IMF나 미국계 투자은행들이 시키는 대로 한국 경제를 미국화시킨 것 외에는 한 일이 없다는 비판도 한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개혁정책의 본질과 성격을 정확히 이해하면 근거 없는 비판임이 명확해진다.
경제위기 발생 이후 한국 정부는 위기의 본질에 대한 정확한 이해를 바탕으로 경제를 위기 이전의 상태로 복귀시키는 데 만족하지 않고, 이번 기회를 통해 지난 30여 년간 누적된 경제의 구조적 취약성과 도덕적 해이를 극복함으로써 한국 경제를 선진경제로 도약시킨다는 비전하에 경제 전반의 개혁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정부가 취한 개혁정책의 내용과 그 동안의 성과를 간단히 살펴보면, 정부는 외환위기 발생 직후 최우선적으로 외환 유동성 부족문제를 해결하는 데 정책의 초점을 맞추어 IMF로부터 공적자금 도입, 외채만기 연장 등을 통해 단기간 내에 국가부도 위험을 해소했다. 당시 외환보유고가 거의 고갈되어 가고, 일본을 비롯한 우방국들은 물론 평소 긴밀한 거래관계를 유지하던 외국 금융기관들마저 우리 정부의 자금지원 요청을 거절하던 상황에서 IMF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다. 심지어 미국뿐 아니라 일본 정부마저도 우리 정부에 IMF로부터의 자금 지원을 통한 외환유동성 해결을 권고하지 않았는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병행 발전
우리 정부는 IMF로부터의 구제금융을 받아들이는 동시에 IMF가 요구하는 자금지원 조건이 대부분 우리 경제의 구조적 문제를 해소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하에 이를 충실히 이행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모든 요구사항을 가감 없이 무조건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高금리, 재정긴축 등에 대해서는 외환시장 안정을 바탕으로 IMF와 상호 협의하여 이를 시정하는 등 능동적인 자세로 임했다.
일단 외환 유동성 부족 문제가 어느 정도 해소됨에 따라 정부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이라는 경제철학을 바탕으로 금융, 기업, 노동, 공공부문에 대한 4대 구조개혁
을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하고 이를 근거로 구조개혁 정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중요한 사실은 이와 같은 구조개혁 정책이 미국이나 IMF의 요구나 강압에 의해 추진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한국정부와 국민은 한국 경제가 안고 있는 구조적 모순을 해소하지 않고는 21세기 선진경제로 도약할 수 없다는 인식하에 모든 고통을 감내하면서 개혁정책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개혁정책을 시행한 이후 불과 1년 반 동안 각 부문별로 상당한 성과가 나타나고 있다. 금융부문에서는 1997년 말 기준 총 2천1백2개의 금융기관 중 12.9%에 해당하는 2백71개의 회생불능 금융기관이 정리됐다. 또 회생 가능한 금융기관에 대해서는 강도 높은 自救(자구)노력을 전제로 26조 6천억원(1999년6월 말 현재)의 공적자금을 지원하여 건전은행으로 전환시켰다.
이밖에 금융기관의 상업성과 수익성을 중시하는 경영여건을 구축하고, 금융부실 방지를 위해 국제적 기준에 맞는 감독기준을 도입했다. 이와 같이 신속한 금융 구조조정은 금융 부실화가 심각한 정도에 다다른 일본의 정부 및 금융 당국자조차 부러워할 정도로 획기적인 조치로 평가받고 있다.
기업부문에서는 정부와 대기업이 1998년 1월13일 합의한 기업구조 개혁 5대원칙(기업경영의 투명성 제고, 상호 채무보증 해소, 재무구조 개선, 핵심역량의 집중, 지배주주 및 경영자 책임강화)에 따라 기업 스스로가 자율적으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으며 채권 금융기관은 구조조정의 감시자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또한 기업 구조조정의 효율적인 추진을 위해 기업 규모별 특성에 따른 차별화 전략을 채택하여 5대 계열그룹의 경우 8개 업종의 자율적 사업교환을 추진하는 동시에, 계열사 매각 및 외자유치 등을 통해 1999년 말까지 부채비율을 2백%로 축소하는 등 재무구조 개선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노동부문에서는 이미 1998년 2월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위해 勞使政(노사정)위원회에서 고용조정제와 근로자 파견제 도입에 합의하고 관계법령을 입법화했다. 참고로 1999년 4월15일 현재 1백22개소가 경영상 이유에 의해 1만5천2백83명의 해고계획을 노동부에 신고했으며, 근로자 파견제도 1999년 3월 말 현재 노동부로부터 허가받은 근로자 파견업체수가 9백68개, 파견근로자수가 4만4천6백명, 파견근로자 사용업체가 4천1백80개에 달할 정도로 활성화되고 있다.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와 함께 노조의 정치활동 및 교원노조 결성권 허용, 임금채권보장 입법화 및 사회안전망 확충 등 근로자 권익신장을 위한 제도개선도 함께 추진되고 있다.
미국이 시키는 대로 복종한 결과가 아니다
마지막으로 공공부문에서는 1차 및 2차 정부조직개편을 통해 정부 기능을 재정립하고 핵심역량 위주로 개편했으며, 이 과정에서 1998년 중 중앙 및 지방정부 인력을 4만4천명 감축했다. 1999년 이후 총 6만9천명을 감축할 계획이다. 이와 함께 포철, 한국통신, 韓電(한전) 등 공기업 민영화 방안을 추진중에 있으며, 정부출연․위탁기관에 대해서도 민영화, 민간위탁 등 경영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외국의 언론과 전문가들이 놀랄 정도로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 외환 보유고는 1997년 12월18일 39억 달러에서 1999년 7월 말 현재 6백39억8천만 달러로 급증했다. 국가신용 등급도 외환위기 과정에서 6~12단계 하락하여 투자부적격 등급으로 떨어졌으나 불과 1년여 만인 금년 1~4월중에 다시 투자적격 등급으로 회복됐다. 특히 지난 7월에는 IMF에서 빌렸던 긴급지원자금(SRF) 잔액 40억 달러를 早期(조기) 상환키로 IMF와 합의하
는 등 외환위기를 완전 극복했다.
금융시장도 1998년 초까지는 IMF의 권고대로 高금리를 유지했으나, 외환시장의 빠른 안정 회복을 바탕으로 한자리대로 금리를 낮추어 기업수지 개선 및 실물경제 회복의 견인차 역할을 지원하고 있다. 주가도 1998년중 한때 3백선 밑으로 추락했으나 금년 들어서는 1천 포인트를 넘어서는 등 안정국면을 회복했다.
실물경제도 빠른 속도로 회복되어 금년도 경제성장률은 당초 예상보다 훨씬 높은 7%대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마에 겐이치씨의 비판과 달리 경기회복의 내용도 민간소비뿐 아니라 설비투자와 수출물량 증가세가 성장에 기여하고 있고, 민간소비보다 설비투자 증가세가 두 배 이상 높게 나타나고 있다.
특히 한때 1백78만명에 달했던 실업자 수도 경기회복에 따라 빠른 속도로 감소하여 9~10월경에는 1백20만명(실업률 5%대)으로 하락할 것이며, 빠르면 내년 중반 이전에 실업자수가 1백만명 이내로 감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와 같은 빠른 경기회복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물가는 공식적으로 추계한 이래 半期(반기) 기준으로는 가장 낮은 0.6% 상승에 그치는 안정세를 유지했다.
한국 경제의 빠르고 건실한 회복세는 오마에 겐이치씨가 설명한 것처럼 한국 정부가 미국이 시키는 대로 복종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 정부와 국민이 대통령의 강력한 리더십하에 합심하여 경제회생의 비전을 가지고 지난해부터 꾸준히 추진해 온 구조개혁과 대외개방의 성과가 可視化(가시화)되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
다음으로 IMF 관리체제하에서 재벌들이 해체되기 시작, 自力(자력)회생이 곤란할 정도로 약체화되었다는 오마에 겐이치씨의 비판도 정부 재벌정책의 목적과 내용을 정확히 이해한다면 해소될 수 있다. 우리 재벌들은 그동안 경제의 고도성장에 기여한 바가 적지 않았으나, 1990년대 이후 국제경제 환경이 급변함에 따라 폐해가 점차 커지게 됐다.
정부가 추진중인 재벌정책의 목적은 지난 수십 년간 정경유착, 관치금융으로 인해 왜곡된 불공정 경쟁체제를 공정 경쟁체제로 전환시켜 경쟁력 있는 핵심기업만 생존․발전시키기 위한 것이다. 또한 재벌 총수에게 집중된 기업지배구조를 투명하고 민주적인 지배 구조로 변화시켜 소액주주, 종업원, 협력 중소기업, 채권 금융기관, 소비자 등 관계자 모두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것이며, 이를 통하여 IMF 위기의 근본요인을 치유하고자 하는 데 목적이 있다.
재벌 구조조정의 진상
이와 같은 목적에서 추진되고 있는 정부의 재벌개혁 정책은 재벌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거나 단순히 오너의 이익을 축소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모든 개별기업이 건실한 재무구조를 가지고 경쟁력 있는 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재벌 경쟁력을 강화시키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새로운 모습으로 태어난 재벌이 다가올 21세기에 우리나라 경제발전에 새로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실제로 재벌기업들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이미 과잉설비와 과잉부채 등을 상당부분 해소했으며, 핵심역량 위주로 사업구조를 再編(재편)함으로써 수익성이 크게 개선되고 있다.
더구나 미국의 강요에 따라 재벌을 해체하고 있다는 오마에 겐이치씨의 주장은 억측에 불과할 뿐, 사실은 재벌들 스스로 생존 차원에서 불가피하게 개혁을 추진하고 있는 것이다. 우선 IMF 위기 직후인 1998년 1월 財界(재계)는 재벌의 폐해가 결국 IMF 위기를 불러온 요인이었다는 점을 인정하고 정부와 5개항의 기업구조개혁 원칙에 합의한 바 있다.
오마에 겐이치씨가 비판한 對日(대일) 의존형 산업구조의 문제점 및 장기 산업정책의
不在는 상당 부분 공감이 가는 면이 있다. 그러나 경제 전반의 패러다임이 변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존의 산업구조로만 판단하여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과소평가하거나, 한국의 외환위기 再發(재발)을 단언하는 것은 근시안적인 주장일 뿐이다.
참고로 일본이 오늘과 같이 최종 소비제품과 함께 부품산업을 동시에 육성시킬 수 있었던 것은 공업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장기간 엔화를 약세기조로 유지할 수 있었고, 일본 수출제품을 소화할 수 있는 미국 시장이 있었으며, 세계 경제의 본격적인 개방화가 추진되기 전이었으므로 국내산업을 보호․육성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일본보다 공업화의 시기가 늦었던 한국의 경우 시간적으로 이와 같은 일관 생산체제를 갖추는 것이 어려웠고, 재벌체제의 지속으로 일부 산업에 대해서는 중복․과잉투자가 이루어진 반면 핵심 부품산업에 대한 투자여건은 마련되기 어려웠다. 더구나 세계 경제의 개방화 진전 등으로 국내시장을 보호하거나 특정 산업 육성을 위한 지원정책도 불가능하게 됐다.
문제는 경제의 패러다임이 지금까지와는 판이하게 달라질 21세기에 한국의 산업구조나 산업정책이 어떤 모습을 가져야 하는가의 문제다.
일본보다 희망적
향후 경쟁력의 새로운 원천은 지금까지의 자원․자본으로부터 지식․기술로 바뀌는 지식기반 경제사회가 도래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이 선택해야 하는 산업구조는 과연 무엇인가. 오마에 겐이치씨의 주장대로 핵심 부품산업을 육성하거나, (무엇이 될지는 알 수 없지만) 한국에서밖에 생산할 수 없는 제품을 찾아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적극적인 대외개방을 통해 우리 기업의 체질을 강화하는 동시에, 외국 기업과 전략적 제휴를 강화하여 지역과 국경을 불문하고 질 좋고 값싼 부품과 제품들을 결합함으로써 세계 최강의 경쟁력을 갖춘 핵심 글로벌 제품을 생산하는 전략을 채택해야 하는가.
이에 대한 대답은 너무 자명하다. 국내에 이 문제에 관해 아무도 진지하게 생각하는 지도자들이 없다는 그의 비판에 대해서도 이미 우리 정부는 2000년대 지식기반 경제사회 구축을 위한 종합계획을 마련하고 있으며, 그 결과를 9월중 발표할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한국 경제는 회생 가능성이 없다는 오마에 겐이치씨의 전망과 달리 한국 정부가 추진중인 구조개혁을 차질 없이 마무리하고, 개혁 내용을 소프트웨어 부문으로까지 확대하여 내실을 기하며, 이를 바탕으로 경제회복세를 가속화시켜 나간다면 한국 경제는 내년부터 안정적인 성장기반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낙관한다.
우리 경제의 미래상을 실현시키기 위해서는 구조개혁의 성공이 선결과제이나, 재벌과 관료가 개혁과 개방을 저지할 것이라는 오마에 겐이치씨의 주장과 달리 우리의 개혁은 법과 제도를 통해 수행되고 있고, 지도자와 국민들의 개혁의지가 확고하며, 시민단체와 국제 금융시장에서 주시하고 있다.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중단되거나 되돌려지는 일 없이 성공적으로 완료될 것으로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