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임진년이다. 모두들 흑룡의 해라고 야단이다. 그런데 올해는 임진왜란 발발 420주년이 된다. 1592년 4월13일 일본의15만8700명의 대군이 조선의 부산에 상륙한 후 파죽지세로 19일 만에 한양을 함락했고, 선조 임금과 그 일행은 서쪽으로 피난하여 의주까지 갔다. 그 때부터 전 국토는 7년간의 전란으로 무참히 유린되어 그 참혹한 상흔도 교육의 결과로 우리에게 인식되어 있다. 임진왜란은 우리들에게 반일사상의 원점이 될는지 모르는 사건이다.
우리는 ‘불멸의 이순신’ 같은 드라마를 통하여 임진왜란 당시의 시대상을 그려보며 숭고한 애국심을 고취해 오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사실여부를 떠나서 우리나라 사람들보다 기록과 고증에 더 빈틈없는 일본사람들이 만든 텔레비전의 드라마에 등장하는 임진왜란을 보거나 들먹이지 않더라도, 군사력 등 국력의 차이는 실로 엄청난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10년 전에 죽은 직전신장(織田信長, 1534-1582)은 수천 자루의 조총을 가진 최신식 철포 부대를 갖고 있었다. 임진왜란을 공포로 몰아넣은 조총은 1543년 포르투갈 사람이 전해준 화승총이며, 유효사정거리는 200미터 정도였다.
이 조총은 사실 조선의 대형총통, 즉 천자 지자 현자 총통들의 최대사거리가 유효사거리가 되는 무기에 비하면 정말 새발의 피다. 사정거리가 1km나 되기 때문이다. 단지 전쟁준비를 하지 않았고 훈련이 부족하여 총통들을 제대로 운용하지 못했을 뿐이다. 임진왜란 전투도, 즉 부산진전투도나, 동래성전투도나, 평양성전투도 등을 보더라도 그 성위에 대포 하나 설치되어 있지 않은 것들을 보면, 조선군사들의 전쟁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당시 군웅할거하던 다이묘(大名)들을 어떻게 통합해 패권을 장악할 것인가를 궁리하던 풍신수길(豊臣秀吉)은 '다이묘들의 힘을 빼기 위해 전쟁을 일으켰다'는 말도 있다. 그러나 정작 <조선왕조실록>에는 조공(朝貢)의 문제라고 밝히고 있다. 조선사회에서는 중국과 일본을 세상의 전부로 알고 공리공론에 빠져 사화(士禍)나 일으키던 조선의 문약에 빠진 사대부들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그것도 모자라 무능한 선조이긴 해도, 한 사람의 지도자 아래에서마저 패가 갈린 조정은 동인과 서인의 바보같은 황당한 싸움이 벌어졌다. 일본에 파견했던 통신사들의 보고는 정반대였다. “반드시 병화(兵禍)가 있을 것이다. 전쟁에 대비하자”는 서인 측 정사 황윤길의 주장에 대하여, “그런 정황이 없는데 왜 민심을 동요시키느냐?”고 전쟁준비를 안 한 집권파 동인 패거리 부사 김성일의 작태였다.
"전쟁은 국가의 큰 일[國之大事]이므로 절대로 가벼이 여겨서는 안된다"고 한 <손자병법>을 깔고 앉아 무시하고 있었다. 이런 현상은 마치 지난 선거에서 '전쟁이냐, 평화냐'고 하며, 평화추구가 아닌 염전(厭戰)심리를 부추겨서 표를 구걸하던 정당이 뇌리에 떠오른다. 한때 북한을 방문했던 정치지도자들 가운데 "북한의 미사일도, 핵도 남한을 겨냉하지 않는다"고 북한을 변호하던 말이 아직도 눈에 귀에 머리에 생생하다. 그런 말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천안함 기습피격침몰 사건도 터졌고, 연평도 주민 마을 피격 사건도 터졌다.
1589년 대마도주였던 종의지(宗義智)가 사절로 조선을 방문하여 임금에게 조총을 진상했지만 그 우수한 성능을 파악해 실전에 배치할 생각은 꿈도 꾸지 않았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본은 1587년 배 26척에 인원을 싣고 해안에서 정탐활동까지 벌였다. 전쟁 발발 후 동인의 영수 류성룡 같은 대신이 서인이었던 율곡의 ’10만 양병론‘을 배척한 것을 통탄했다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당장 편한 게 좋지’라고 착각한 조정은 많은 일선 지방 관리들의 장계(狀啓)를 무시하고 전비태세 갖추기를 게을리한 결과로 임진왜란이 터졌다. 그러자 리순신, 권율, 김시민, 신립, 송상헌, 정발 등 용감한 장군과 700 의총으로 상징되는 많은 백성들이 의병으로 분전했다. 그러나 전쟁의 수행능력이 부족하여 감당하기 어려워 남아시아 인도와 동남아시아 미얀마 태국의 군사들을 포함하여 중국의 원군을 받으며 22번을 싸워 16번을 이기고 6번을 졌다.
임진왜란으로 민생은 피폐할 대로 피폐해졌다
. 왜군과 맞서 정규군으로, 의병, 의승으로 싸워야했고 수십만 명의 왜군과 중국 군인들이 몇 년간 북새질치는 동안 그들을 먹이고 입혀야 했던 민중의 삶이 얼마나 처참했을 지는 상상마저도 미치지 못할 정도다. 나라의 피폐는 말할 없도 없으며, 왜군에게 능욕당하고, 조선을 구원해준다는 중국군에게도 능욕당하고, 또 수만 명에 이르는 조선 병사들의 코와 귀가 전리품으로 잘려 일본에 보내졌고 수많은 조선 볼모들이 일본으로 끌려갔으며, 일부는 포르투갈 상인들에 의해 유럽으로 노예로 팔려가기도 했다.
역사는 냉정하게 반복되었다. 1910년 일제가 한국을 강제병합했을 때, 초대 총독이었던 테라우치 마사타케(寺內正毅)는 “가등청정(加藤淸正), 소서행장(小西行長) 등이 이 세상에 살아 있다면 조선을 일본의 물건으로 삼은 이 밤의 달을 어떤 기분으로 볼 것인가”라고 읊었고, 통감부 외사국장이었던 고마쓰(小松綠)는 이에 답시를 지어 ‘타이코(太閤, 즉 풍신수길) 전하를 되살아나게 하여 조선의 산들에 높게 나부끼는 일장기를 보여드리고 싶다’라며 기뻐했다고 한다.
우리나라 지도자들은 혹독한 대가를 치르고도 역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다. 요즘 미래를 향한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반대를 전문으로 불나방처럼 정권 쟁취를 향해 뛰어드는 정치인들은 임진왜란에서 어떤 교훈을 얻었는지 궁금하다. "력사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는 나라는 망한다"고 하는 금언이 있다. 눈을 크게 뜨고, 세계를, 현실을 똑바로 봐야 한다.
국가수호의 출발점은 안보다. 국가발전의 출발점도 안보다. 지금의 형세는 임진왜란 전의 당쟁을 닮아있다고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을 것이. 여당이건 야당이건, 국방과 군대를 업신여기거나, 국가안보를 저해하는 정치가 및 정치세력은 국민들이 반드시 철저하게 퇴출시켜야 한다. 영원히 퇴출시켜야 한다.
바로 2012년은 총선 및 대선 투표가 있는 해이다. 앞으로도 자유민주주의가 훼손되는 일이 없도록, 나라의 불행을 막도록 우리들이 반드시 바로잡아야 한다.
어리석은 사람은 당해봐야 알고, 슬기로운 현명한 사람은 들어보면 미리 안다. 즉 어리석은 사람은 체험으로 알고 현명한 사람은 경험으로 안다.
임진왜란을 당하기 전에는 설마 왜란이 일어나날까?하고 생각만했다. 지금 이 임진년을 맞아 여러 정세를 실로 곰곰히 생각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