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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장농목의 활동과 과제
김은곤 목사(16대 기장농목 총무)
들어가는 말
기장의 농촌선교는 크게 3대 축이 함께 맞물려서 돌아가며 이루어져 왔다. 기장총회에서 제시한 선교정책에 따라 진행되었던 총회 차원의 농촌선교와 1978년 공식적인 기장의 기관으로 이양되어 농촌선교의 축으로 합류한 기독교농촌개발원의 실천적 장으로 농촌선교, 아울러 1989년 교단 소속 농촌 목회자들이 조직하여 출범시킨 한국기독교장로회 농민선교목회자연합회의 조직운동 및 지교회에서의 생명운동으로서의 농촌선교가 그것이다. 기장의 이 3대 축은 때로는 원활한 상호협력 관계 속에서, 또 때로는 각자의 길에서 기장의 농촌선교를 감당해 왔다. 기장농목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세 부분에 대한 전반적 이해가 있어야한다. 이를 역사적으로 살펴보려고 한다. 이후에 기장농목이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 알아 본 후, 마지막으로는 기장농목의 과제에 대해서 생각해보도록 하겠다.
1. 기장총회의 농촌선교정책
기장총회의 농촌선교의 역사는 3단계에 걸쳐 구분할 수 있다. 이는 호헌총회에서부터 교단의 선교정책이 발표된 1973년 이전까지와 1973년부터 제5문서가 나온 1987년까지 그리고 현재까지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1) 1973년 이전의 농촌선교
197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사회는 전형적인 농촌사회였다. 전체 교회 중 3/4의 교회들이 농촌지역에 속하고 있었다. 따라서 복음이 전래된 이후부터 70년대까지 한국교회의 선교는 곧 농촌선교였다고 할 수 있다.
초기 한국교회의 농촌선교의 형태는 주로 농촌 전도 운동이었다. 기장 교단으로서 이 시기는 교세를 확장해야 하는 절대적인 명제 앞에 전도하고 개척하고 교회당을 건축하는 일반적인 교회 사업들이 선교의 내용이었다고 하겠다.
이 시기 농촌선교의 정책은 전도, 개척, 건축 등의 과제와 함께 이를 가능케 하기 위해 축산, 경작 등 경제적 자립이라는 하나의 뚜렷한 목표를 가지고 일관성 있게 추진된 것으로 보인다. 총회적으로 농촌교회의 경제적 어려움을 나누고자 하는 목회자 생활비 지원이나 자립기금 운영 등 농촌교회를 지원하는 형태의 사업이 펼쳐졌다.
그러나 이러한 선교자금의 지원이나 농촌사회에 대한 목가적 이상만으로는 농촌문제와 농촌교회 자립의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는 인식에 이르기에 충분했고, 여기에 60년대 말 70년대 초 산업화과정에서 농촌의 상대적 낙후와 피폐를 겪으면서 농촌문제의 구조적 측면에 눈을 뜨게 되고, 결국 농촌교회를 살리는 일이 농촌을 살리는 일과 함께 되지 않으면 안 되고, 농촌을 살리는 일은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매우 초보적 수준이지만 사회과학적 인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인식이 73년(58회 총회)에 채택된 선교정책의 기조에 어느 정도 반영되었다.
2) 1973년부터 1987년까지 농촌선교
1973년 당시 선교 담당부서인 전도부에서는 사업을 추진했던 일을 보고하면서 농촌 교회 부흥을 위한 특별 집회를 춘동교회(강원), 성암교회(강원), 창곡교회(경기), 평라교회(충남), 종천교회(충남)에서 개최한 것을 보고한다.
아울러 농촌교회 교역자 수련회를 개최하였는데, 이는 함께 모여 각 농촌의 사정과 그 지역 사회의 문제를 찾고 이에 대한 선교방책을 연구하여 효과적인 지역 사회 개발과 농촌선교를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3개의 권역별로 호남지구는 전북의 서수교회에서 25명이 참가하였고, 중부지구는 대전의 기독교 연합봉사회 개발원에서 27명이 모였으며, 경기지구는 29명의 인원이 경기의 양지교회에서 모였다. 여기에서 취급되었던 주제들은 ① 총회의 선교정책, 2②농촌교회와 정착목회, ③신용조합 운동, ④농촌목회와 지도자, ⑤농촌개발, ⑥양지에 있어서 농촌선교의 프로그램, ⑦농촌지역사회에 있어서 협동 목회, ⑧이스라엘 농촌과 교회 등 다양한 내용이었다. 수련회에 참가했던 목회자들은 토의를 통해 이와 같은 세미나를 지속적으로 개최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며, 항구적 기구를 조직하여 농촌 선교 프로그램을 추진토록 건의한다. 또한 시범적인 교회를 육성, 사업 추진을 제안하면서 교역자 자립을 위한 방안 역시 마련해 줄 것을 요청한다. 아울러 농촌 교회 강대상 통일 위한 예배서를 마련해 줄 것도 건의하게 된다.
총회 전도부는 농촌교회에 시범이 될 수 있는 프로그램이 있는 교회, 지역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는 계획을 가진 교회, 교회나 노회에서 인적 재정적 협조가 되는 교회를 대상으로 프로그램비를 지원하게 되는데, 이에 계루지교회(경기), 덕촌교회(충북), 서광교회(충남)이 시범 교회가 되어 각 160,000원의 지원금을 받았다.
총회 선교정책에 따라 선교지침서를 발행, 74년 사업에 반영하여 사용토록 하면서 더불어 농어촌 선교사업을 위해 전도부 안에 농어촌 선교위원회를 두기로 하면서 다음과 같은 사업을 추진한다.
㉠ 농촌교회가 직면한 문제점을 발굴하여 이를 토의하고 농촌교회가 자립할 수 있는 방안과 발전책을 구체적으로 협의 작성하도록 하여 총회에 보고하고 이를 추진토록 한다.
㉡농촌교회의 특수한 사정과 지역을 고려하여 연합목회의 방식을 연구 추진하도록 한다.
㉢전국의 자립교회로 하여금 개척교회 및 미자립 농촌교회를 계획적으로 돕는 방안 을 강구한다.
㉣농촌교회의 재원(인물, 재정, 기술)을 조사 발굴하여 농촌선교에 기여케 한다.
㉤농촌교회 교회건축을 위해 가능한대로 지원한다.
㉥농촌교회 교역자들로 하여금 농촌교역자 수련을 위한 협의회를 지역별로 개최하여 농촌의 문제점을 찾고 농촌교회의 특수한 사명과 그 실천 방안을 강구토록 한다.
㉦총회는 농촌 시범개척 사업을 보조한다.
㉧농촌선교를 위한 프로그램으로 신용협동조합을 육성 지도한다.
1974년 59회 총회시 전도부는 농어촌 선교 사업으로 교역자 수련회를 개최하였음을 보고한다. 전년도와 마찬가지로 농어촌 교회가 당면한 문제들을 발굴하여 연구, 토의함으로 농어촌 교회가 자립할 수 있는 방안과 발전책을 모색을 그 목적으로 호남, 중부, 영남 지방으로 구분, 3차례에 걸쳐서 강진읍교회(전남, 23명 참가), 기독교연합봉사회(대전, 25명 참가), 동촌교회(경북, 19명 참가)에서 실시한다. 강의 내용으로 총회 선교정책, 농촌 교회의 발전책, 신용협동조합론, 농촌 개발과 선교, 총회 선교정책과 선교전략, 지역 사회 개발, 농촌교회와 신용협동조합, 하나님의 선교와 교회 발전이라는 주제였다. 전년도에 이어 시범 개척 사업에 대한 보조를 실시하였는데, 74년에는 월곡교회(전북) 한 곳에 300,000만원을 지원하였다.
1975년 60회 총회에 지속사업으로 진행되고 있던 교역자 수련회를 교회 지도자 협의회라는 명칭으로 호남지방(전주신흥교회, 27명 참가)과 중부지방(대전농촌개발원, 22명 참가)에서 실시하였음을 보고한다. 여전히 농어촌 문제와 자립에 대한 방안 모색이 그 목적이었다. 교역자 수련회를 통해 논의됐던 신용조합 운동이 75년 각 노회에 시범적으로 1개처 씩을 조직하는 일을 계획, 진행(경기-삼성리교회, 전남-충장교회)하기도 한다.
75년 총회에 이리농장자문위원회는 74년 3월 기장교단과 가나다연합교회 세계선교국 대표 간에 합의에 따라 이리농장자문위원회라는 위원회를 조직하고 76년 양측에 보고하게 될 사업방향과 교회와의 관계를 연구하면서 중간보고를 하게 된다. 이것이 기장 농촌선교의 중추적 핵심이 되는 기독교농촌개발원의 출발이다.
1976년 교단은 교단사업 10개년 종합계획의 추진과 2,000교회 설립을 위한 선교전략 협의회를 가짐으로 교회개척 설립에 주력하게 된다. 이에 따라 67회 총회 전까지 총회 사업으로 농촌선교의 내용은 부재하게 된다. 다만 농촌선교에 대한 전담은 기독교농촌개발원이 전담하게 되는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1980년대 들어와서 교단의 농촌선교 정책은 총회부서인 특수선교위원회 산하 농어민선교 소위원회에서 담당하게 된다.
1982년 67회 총회에서 선교부는 농어민선교사업 소위원회를 통해 ‘농어민 선교 방향 정립을 위한 세미나’개최 할 것을 보고한다. 하지만 이 사업은 기독교농촌개발원에서 개최됨으로 기실 개발원 사업의 일환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1983년 농어민선교사업 소위원회가 농어민선교전략과 저변확대를 위한 협력, 농어민 종사자들의 육성을 위해 농어민선교 실무자 모임과 농어촌과 긴밀한 관계를 갖는 노회를 선정, 농어민의 지위 향상에 이바지하도록 프로그램을 위한 농어민 선교 시범 교회 지원 사업을 진행한다. 아울러 사회개발과 농어민 의식화의 전문훈련을 위해 선교협력 국가와 전문인 육성을 위해 자부담 원칙으로 해외 연수사업을 계획한다. 또한 농촌 실태조사를 실시키로 하고 기독교농촌개발원과 공동선교사업을 개발,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1984년 총회는 매년 3월 넷째 주를 농어촌선교주일로 재정하며, 1985년에는 도시 농어촌 선교사업의 일환으로 도시, 농어촌 실무자 세미나를 선교교육원을 통해서 실시한다. 한편 충남지역에 농촌개발원을 설립할 것을 허락하여 중부권 농촌선교의 발판을 만들게 된다.
1985년 2,000교회 운동이 만료됨으로 기장 교단은 다시 3,000교회 운동을 제안하게 된다. 1986년 총회에서 선교부는 새역사 50년을 앞두고 3,000교회 운동을 강력하게 전개하지 않을 수 없다고 전제한다. 향후 15년간 교회확장운동에 총력을 기울이기 위해 신앙적 조건을 조성하기 위해 1년간 더 연구키로 결의한다. 사실 1976년부터 1985년 6월까지 738개 교회에서 1,067교회로 총 329개 교회가 개척되었다. 2,000교회 운동은 성취되지 못한 반면, 교단차원의 하나님의 선교에 입각한 부문별 선교, 특히 농어촌선교는 정체되어 버린 결과를 가져왔다 하겠다.
3) 「제5문서」이후 총회의 “농촌선교 정책협의회”
72회 총회에서 결의한 대로 1988년 5월 3일부터 4일까지 기독교농촌개발원에서는 28명의 대상자들이 모인 가운데 제1차 농어촌 선교정책협의회가 개최된다. 이 협의회의 목적은 “교단 선교정책에 입각하여 교단의 농어촌 선교의 활성화를 위한 교회, 시찰, 노회, 총회, 신학교, 유관 기관에 대한 정책을 마련하는데”있었다. 이 협의회에서 발표되고 논의됐던 주요한 내용으로는 “제5문서와 농어민선교”(고민영, 선교사회국장), “농어민 사회와 운동의 현황과 과제”(배종렬), “농촌선교를 위한 교회의 과제와 역할”(이도형, 충북·덕촌교회), “농촌선교를 위한 시찰, 노회의 과제”(이태영, 전북·순창농민의 집), “농촌선교를 위한 총회, 기관, 학교의 과제와 역할”(한규채, 기독교농촌개발원)등이 발제되었고 “농촌교회와 농민운동”(정옥균, 전북서·동련교회), “농민운동을 지향하는 개척교회”(유성일, 경남·갈릴리교회)라는 주제로 사례 연구가 제시되었다. 이 협의회의 참석자들은 열정적으로 다양한 의견들을 개진했는데 그렇게 토론되고 정리된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농민 문제를 바로 알아 농민 선교에 기여하기 위해서는 목회자와 평신도가 함께 연구하거나 농민 교육에 참여하는 것이 좋으며 이러한 교육기회를 노회나 시찰이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② 리 단위 교회 뿐 아니라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모이는 읍, 면, 소재지 농촌교회를 위한 농민선교정책 개발이 필요하다.
③ 비교인 농민운동 관심자들을 위한 농민신학, 성서연구 교재가 개발되어야 한다.
④ 선배 목회자의 성공적 선교 사례를 발굴하여 농민선교에 뜻을 둔 후배 목회자들에게 제공하자.
⑤ 평신도의 활성화 없이 농민선교의 활성화 없다. 농민선교를 위해 노회단위로 평신도 대상의 홍보와 교육과 조직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
⑥ 농어민교회 도시교회와의 자매결연을 통해 상호연대와 경제적 협력의 길을 마련해야 한다.
⑦ 노회단위의 자발적인 농촌 목회자 모임을 전국단위로 확대하여 이들을 통한 농민선교의 활성화에도 노력해야 한다.
⑧ 농어민선교의 조직적, 체계적 활성화를 위한 총회차원의 선교위원회를 두고 전담간사를 두는 일이 필요하다.
⑨ 총회 차원의 선교정책협의회를 정례화하여 교단 전체의 농민선교를 위한 힘을 모이는 일을 도와야 한다.
⑩ 총회 발행 교재(교회학교교재, 구역예배교재 등)를 도시용과 농촌용으로 구분 발행하여야 한다.
⑪ 신학교는 학과목으로 농민운동론, 선교론, 신학 등 현장신학을 필수화해야 하며 현장 활동가의 활동사례를 듣고 토의케 한다.
⑫ 교단 유관 선교기관들의 활동이 총회의 선교정책과 연관을 갖고 교육과 선교를 해나가야 하며 기관간의 협력으로 교육과 훈련 사업의 역할 분담이나 일체성을 가져야 한다.
1차 농어민선교정책협의회의 뜨거운 호응에 따라 88년 73회 총회에서 또한 선교부는 1차 참가자와 전문가 등을 대상으로 2차 농어민선교정책협의회 개최를 결의하고 이듬해인 89년 5월 3-4일 기독교농촌개발원에서 30명의 참가자가 모인 가운데 정책협의회가 개최된다.
1차 선교협의회가 교단 내 농어촌 선교현황 및 한국 농민의 현실을 파악하는데 목적이 있었다면 제 2차 협의회를 통해 교단의 농어촌 선교정책은 어떤 것이 있어 왔으며 각 노회의 농어촌을 위한 특별한 선교 정책현황을 파악하여 구조적으로 피폐해 질 수 밖에 없는 농어촌을 위한 선교정책을 마련하는 것을 그 목적으로 하였다.
1차 협의회 때와 같이 열정적 논의 속에서 “기장농민선교의 흐름”(이도형, 충북 덕촌교회), “농민선교 활성화를 위한 제언”(이태영, 전북 순창 농민상담소)이 발표되었고, 1차 협의회 때와 마찬가지로 “전남 농어민선교목회자연합회의 활동”(심해석, 전남 내리교회), “전북지역 농촌목회자 활동”(정옥균, 전북서 동련교회)의 사례 발표가 이어졌다. 특별히 89년에 창립하게 되는 기장농민선교목회자연합회의 준비 단계로 향후 기장농목에서 총무를 역임한 이도형, 이태영의 기조발제와 각 지역 농어촌 목회자들의 농목 준비 단계에서의 결합과 활동상에 대한 보고가 사례로 발표 된 점이 당시의 열정적 준비를 엿볼 수 있는 자리였다.
총회에서 보고된 보고서에는 이 때 논의된 토론의 내용들에 따르면,
① 1953년 호헌총회이후 교단의 대다수의 교회가 농촌지역에 위치해 있었고, 또한 한국전쟁 이후 피폐해진 경제부흥과 관련된 농촌 재건에 본교단도 많은 관심을 기울였음을 확인 할 수 있었다. 총회록이라는 한정된 자료를 통해서도 50-60년대에는 농촌교회의 자립 및 경제적 향상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 농촌교회 자립기금운용이라든지 농촌 교회당 보조, 교역자의 생활보조, 농촌교회 보조 등의 정책을 수행해 왔다.
② 이 시기 농민선교정책은 전도, 개척, 교회건축 등의 과제와 함께 축산, 양봉,약초재배, 원예 등 경제적 자립이라는 목표를 설정하고 교단의 농촌지역에 대한 정책이 수행되었다.
③ 그러나 60년대 후반부터 변화되기 시작하는 한국경제 여건, 즉 공업우선의 산업화 정책에 농촌이 구조적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되고 수많은 이농현상에 종합적이며 능동적인 대처가 없었으며 이후 전반적인 한국 농촌의 몰락=한국 농촌 교회의 퇴락이라는 길을 걷게 된다.
④ 현재의 기독교농촌개발원과 중부권의 농촌개발원의 농촌교역자와 농민교인들을 교육하는 제도를 보다 활발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한국교회 여건 상 교회 안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는 농촌교회 교역자들이 의식화되어 단순한 전도의 차원을 넘어선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는 교역자들의 체계적이고 집단적인 훈련 및 조직, 활동이 농어촌 선교를 위해 필요하다.
⑤ 본 교단 14개 노회 중 농촌지역이 선교지로 겹쳐있는 12개 노회의 농어촌 지역에 대한 선교정책은 미미한 형편이다. 개척교회 설립도 도시에 치중되어 있고 농어촌지역에서 목회하려는 교역자들도 적은 형편이다. 그러나 본 교단의 교역자 생활보장제도와 점차 증대되는 젊은 목회자들의 낙후된 농어촌 지역에 대한 선교적 관심은 큰 사회적 변화를 기대하기 앞서 복음을 필요로 하는 지역과 사람들에게 구원의 소식을 전할 수 있는 작은 인자를 발굴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⑥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하여 농어민들의 총체적 삶에 관심 갖고 함께 살며 선교활동을 전개하려 하는 농어촌 지역의 목회자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과 이들 목회자들의 자발적인 모임을 통해 서로 격려 받으며 선교활동을 지속할 수 있게 관심을 가져 주고, 지원해 주어야 한다.
⑦ 도시 교회들이 농촌교회를 돕는 여러 사례들이 있음에 감사하며 이러한 사례들은 더욱 확신되어야 하고 단순히 돕는 차원이 아니라 도시와 농촌이 함께 연결되는, 생산과 소비, 삶의 나눔이 함께 실현될 수 있는 관계로 발전되어야 한다.
⑧ 농촌지역의 목회자들이 중심이 된 농촌목회자협의회 등은 교단의 농어촌지역 선교를 위한 확실한 인자들이다. 이들이 총회나 노회의 온갖 정치구조에서 백안시 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선교적 열정이 수렴되고 농민과 더불어 총체적 삶을 나누려 하는 의지들이 폭넓게 수렴되어 시찰회, 노회 차원의 관심과 선교정책들이 반영되는 것이 보다 생산적이고 하나님의 선교실현과 확장을 위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라고 보고하고 있다. 기장 내에 농어촌 선교가 어떻게 진행되어 왔으며, 퇴락하고 쇠퇴해가는 농촌선교에 새로운 희망과 기대감을 얻은 협의회였다고 보고서는 기록하고 있다. 이는 이 시기가 기장 내의 농촌선교의 또 하나의 축인 기장농민선교목회자연합회의 출범에 대한 기대와 함께 이를 전후로 이루어 진 도농 교회간의 자매결연과 직거래 운동의 활성화가 구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고하였다 하겠다.
1990년 3차 농어민선교정책협의회는 단독으로 진행되지 않고 노동자, 농어민, 빈민선교협의회로 6월 25-26일, 서울 교육원에서 개최 된다. 이 협의회는 “피폐화되어가는 농촌과 그와 함께 어렵게 운영되는 농촌교회를 활성화 시키는 일과 도회지의 공단 주변과 빈민지역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하는 작은 교회들의 선교를 적극화하여 하나님의 선교에의 참여 및 3000 교회운동에 기여하는 교회들의 현황을 파악하고 상호간의 선교활동들을 교환함으로써 이 땅 구석구석에서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선교에의 참여를 확대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농촌현실과 농촌 교회의 과제”(김봉환)라는 주제로 농촌선교의 상황을 발표하지만 이 협의회는 협의된 내용과 방향이 노동자, 빈민 등을 대상으로 하는 민중교회에 대한 관심이 주요한 내용이고, 노동자, 빈민선교의 중심에 기장민중교회협의회, 농어민 선교에 농어촌선교목회자협의회(기장농민선교목회자연합회가 바른 명칭임)가 교단 내 공식적 조직은 아니지만 활동하고 있다는 보고, 노회 내 도시산업선교회나 농어촌선교위원회의 활동은 미미하다는 보고에 이어 농어촌교회의 존립의 위기에 대한 인지차원만 다룰 뿐이었다. 이는 독자적 농어민선교정책협의회에 대한 갈망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요청으로 1991년 제4차 농어촌선교정책협의회는 기장농목 여름대회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1991년 8월 19일-21일까지 부여 유스호스텔에서 농어민선교 교회교역자 120여명을 포함한 17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이루어진 “제2회 기장농목 여름대회” 기간 중 농어촌선교정책협의회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 개최된다.
“농촌교회에 활력을, 농촌사회에 희망을”이라는 주제로 개최된 여름대회 기간 중 열린 선교정책협의회는 특히 본격적으로 닥쳐오는 우루과이라운드 폭풍과 이에 따른 농촌사회의 피폐에 직면하여 농촌 교회가 어떻게 선교적 대응을 할 것인가를 논의하고 특별히 강조점을 농촌현장과 교회 실천론에 두었다.
“한국농촌사회의 미래와 교회의 사명”이라는 제목의 주제강연(김경재, 한신대)과 함께 대회기간 중 “우루과이 라운드와 한국농업의 대응”(박진도, 충남대), “농촌지역운동의 관점에서 본 협동·협업운동”(김병태, 건국대) 교수의 강연, 사례 발표로 “중신지역사회 개발 사례”(강진국, 충북중신교회), “남면 한마음 공동체 개발사례”(남상도, 예장, 전남백운교회)가 이어졌으며 특별히 통일문제와 농촌사회를 연결하는 “민족통일을 준비하는 농촌교회의 과제”(박종화, 한신대)라는 강연도 있었다.
이와 같은 강연 및 사례 발표 뿐 아니라 교단의 농어민선교정책 수립을 위한 토론회가 13개 조로 분임토론이 후 선별된 농어민선교정책을 총회에 요청하기로 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① 총회에 『(가칭) 농어민선교위원회』를 설치하여야 한다.
우리 교단은 44회 총회(59년)의 총회기구 개혁안에 의해 농촌부가 전도부에 흡수 편입된 이후, 32년 동안이나 농민선교에 관한 상설부서 하나 없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것은 농민선교에 대한 일관성 있는 정책을 내거나 시행하지 못했다는 입증이기도 하다. 더구나 지금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등 농업의 위기와 농촌의 몰락, 농촌교회의 황폐화로 위기감이 팽배해 있다. 따라서 이에 대처하고 일관성 있고 전문성 있는 농어민 선교를 추진하기 위해서 농어민선교위원회를 상설기구로 설치하도록 시급히 요청한다.
② 총회는 우루과이라운드 협상과 농업정책에 대한 『대정부 농업정책 건의문』으로 정부의 농업정책 전환을 지속적으로 촉구해야 한다.
지금까지 정부는 여타의 우선적인 정책 수행을 이유로 농업정책을 빈번히 희생물 또는 말잔치로 전락시켰다. 마찬가지로 그동안 농어민 문제에 관한 교단의 성명도 해결의지보다 구색 맞추기에 그친 감이 없지 않다. 이제 총회가 전문적인 연구 결과를 수렴하고 거기에 총회에 비중을 실어, 정부의 농업정책의 전환을 진지하게 촉구하고 대응하여야 한다. 정부의 농정담당자나 정책입안자들의 생각이 바뀌어 소신을 가지고 농업육성 정책을 추진할 수 있도록 교회의 가용인물과 호소력을 총동원하여 지속적으로 설득하고 영향력을 끼쳐야 한다.
③ 농어촌 영세 미자립 교회에 대한 제도적 지원 대책이 세워져야 한다.
농어촌의 개척교회나 영세 미자립 교회는 열심부족이나 능력 부족이 원인이라기보다 농어촌 사회의 전반적 몰락에 더 큰 원인이 있다. 최소한 농어촌에 교회를 개척하는 경우, 그리고 교인 30명 이하 정도의 영세 미자립 농어촌 교회의 경우에는 선교의 전망이나 실적과 상관없이 계속적인 지원으로 육성하여야 한다.
④ 농어민 선교를 위한 해외교환 교류를 시작하여야 한다.
국제화 시대를 맞는 오늘, 농어민 문제는 국내 문제만은 아니다. 국제정세의 변화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으며 다르 나라의 경험이나 대응이 어떤 방향으로 추진되고 있는지를 알아야만 한다. 우리의 농어민 선교를 해외 형제 교회들과 공유할 뿐 아니라, 해외 형제 교회들의 경험을 배우는 일도 매우 필요하다. 따라서 농촌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의 해외교환교류를 통하여 농민선교의 전문 확대, 농업 농민 문제의 대안 창출, 선교의 지평을 넓히는 일로서 총회차원에서 해외 교환교류를 적극 추진하기를 요청한다.
⑤ 『총회 농어민선교정책협의회』가 지속적으로 열리고, 선교정책수립에 반영되어야 한다.
농어민 선교를 위한 연구와 경험 교류를 위한 모임이 활성화되어야 하고, 총회의 농어민선교 정책으로 반영되어야 한다. 그 동안 농어민 선교정책협의회는 여러차례 있었으나 구체적인 정책으로 반영되는 경우는 드물었다. 물론 정책적 수준에 미치지 못하는 내용도 있었겠지만, 논의로 그치는 정책협의회가 되어서는 안된다. 따라서 농어민선교정책협의회는 정책다운 정책을 내야 할 것이고 이를 총회 차원에서 반영할 수 있도록 구체적 방안으로 제시해야 함과 아울러, 총회도 이를 진지하게 귀 기울이고 수렴하는 노력을 기울어야 할 것이다. 금번 농어민선교정책협의회는 그런 의미에서 매우 진지하고 유익하였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형태로 지속적으로 개최되기를 요청한다.
위와 같이 기장농민선교목회자연합회의 여름대회를 통해 이루어진 농어촌선교정책협의회는 총회 요청 사항에서와 같이 총회는 논의만 이루어지는 정책, 선언적 차원의 정책이 아니라 실질적인 실천 가능한 정책을 제시, 수용하기 위해 농어촌 현장 목회자들의 조직인 기장농목의 중요한 논의의 자리인 여름대회 등을 활용하여 농어촌선교정책협의회를 개최하고 이를 토대로 실천 가능한 내용들을 정책적으로 수용하며, 이 정책을 다시 농어촌 목회자들이 실천하는 선순환 구조가 이루어지기를 1991년 농어촌선교정책협의회는 진지하게 제안한 것이다.
하지만 이후 농어촌선교정책협의회는 다시 3차 때와 마찬가지로 노동자, 농어민, 빈민선교협의회 형태로 이루어졌고, 이러한 형태의 선교정책협의회 정례화가 허락되었으며, 게다가 지속적으로 요청했던 총회 안의 농어민선교위원회의 구성은 1992년 총회 후 특화된 형태가 아닌 ‘노동자, 농어민, 빈민, 병원, 군 선교를 위한 총회선교위원회’라는 구체성도, 실천성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형태의 위원회가 구성되고 만다. 이는 이후 지속적으로 개최되었던 선교정책협의회가 이러한 틀에서 진행됨으로 농어촌선교정책협의회는 여러 해 동안 단독으로 개최되지 못하게 된다.
1992년 5월 21-22일 유성 대온장에서 개최된 제 5차 노동자, 농어민, 빈민선교 협의회는 20여명의 참석자만으로 노동선교, 농민선교, 빈민선교 향후 대책과 전망이라는 대상만 다른 동일한 주제를 다룬다.
1993년 8월 10일 대전교회에서 노동자, 농어민, 도시빈민 선교협의회가 각 선교영역 대표자 3인과 실무자만 모인 채 개최된다. 여기에서 농촌 자립과 도시교회, 농촌교회의 연대사업의 일환으로 도시교회가 농촌교회에 농기구를 보내 협력해 주는 방안이 제시되지만 구체적 실천 사례는 전무하였다.
1994년에는 그나마 지속적으로 진행됐던 “노동자, 농어민, 빈민선교정책협의회”는 “제7차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3000교회 운동 협의회” 와 통합되어 진행된다. 94년 3월 2-3일 온양교회에서 개최된 이 협의회에서 주요한 방향은 3000교회 운동이었고, 따라서 발제 주제 역시 “3000교회 운동으로서의 농촌교회, 민중교회, 도시빈민교회의 성장과 과제”라는 형태를 띄게 된다. 그러다 보니 ‘3000교회 운동으로서의 민중교회 성장과 과제’, ‘3000교회 운동의 과제로서 빈민교회와 선교’라는 3000교회 운동의 종속적 형태로 발제가 주어지고 농어민 선교의 발제인 ‘UR협상과 농민선교의 전망’(이도형, 충북 덕촌교회) 역시 그 발제의 내용과 상관없이 논의된 내용은 다를 바 없었다 하겠다.
다만 1994년 이 해에 총회 선교위원회에서는 기독교농촌개발원과 기장농민선교목회자연합회와 함께 ‘농촌선교 효율화를 위한 설문지 조사’ 요지를 전국교회에 발송한다. 이 농촌교회 실태조사는 기독교농촌개발원을 다룰 때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1995년, 79회 총회의 주제 “희년의 나팔을 온 땅에!”라는 주제에 따라 두 차례의 정책협의회를 개최한다. 그 중 두 번째 정책협의회가 3월 2-3일 온양교회에서 개최되는데, “성숙한 교회와 목회지도력 양성을 위한 정책협의회”라는 주제 하에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선교를 위한 정책협의회”가 포함된다. 이 두 정책협의회의 내용을 엮어서 “희년정책 자료집”이 발간되는데, 이 자료집 안에 소발제로 ‘농민선교 희년성취를 위한 제언’(정병길, 충남 남전교회)과 ‘민중교회 자립방안과 나눔의 공동체 실현’(차윤재), ‘교회성장과 나눔의 공동체 실현’(김정희), ‘군 선교, 그 회고와 전망’(설영현)등이 발표된다.
이 해 역시 농어촌선교정책협의회 뿐 아니라, 노동자, 도시빈민 정책협의회 역시 총회의 주제의 큰 틀에 묶여 실제적 실천력이 결여된 형태로 발제만 있었을 따름이었다.
1996년 2월 12-13일 유성 경하장에서의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선교를 위한 정책협의회”에서 ‘도시 농어촌 교회간의 나눔 운동’(이태영)의 발제가 있었다.
1997년에는 이나마 도시, 농어촌분과 모임으로 축소되어 5월 29일 총회본부 회의실에서 정책협의회 개최의 필요성, 특수선교를 위한 목회자 조직의 필요, 외국인 노동자 선교를 위한 교단 정책선언서 및 신앙고백서의 필요 등의 논의만 있었다.
1998년은 축소되었던 지속적으로 축소되어갔던 부문별 선교정책협의회가 다시 힘을 받기 시작하는 해였다. 전년도의 분과모임에서 논의한 대로 “특수 선교 활성화를 위한 선교협의회”가 1월에 44명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되었으며, “외국인 노동자 선교협의회”가 20명 참석으로 4월에, “교회에 사회봉사 선교 활성화를 위한 협의회”가 5월에 48명 참석으로 개최, “교회 개척 활성화를 위한 협의회”가 7월에 75명 참석으로 개최되는 등 선교협의회가 활발하게 개최되었다.
무엇보다도 “농촌교회 활성화를 위한 협의회”가 2월 16일 유성 경하장에서 42명의 농촌 목회자들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었다. 여기에서 ‘신정부의 농정방향’(나상기)의 특강과 더불어 ‘기장 농촌교회의 현황과 선교방향’(정병길, 충남 남전교회), ‘기장 농촌선교기구의 현황과 선교방향’(유성일, 경남 영남농촌개발원)의 발제가 있었다.
98년은 국민의 정부가 출범과 더불어 기장의 선교가 다시 활발하게 움직여지던 시기였다는 점에서 기장 선교의 재도약이 기대되던 해였다고도 볼 수 있겠다.
1999 총회는 선교 사업 활성화와 선교정책협의회의 효과적인 개최를 위해 선교위원회 위원들의 역할을 특수선교분과와 농어촌선교분과, 외국인노동자선교분과 등 3개의 소분과로 나누어 활동하게 된다.
“99 총회 선교정책협의회”가 5월 3-4일 유성 아드리아 호텔에서 25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새 하늘과 새 땅의 복음으로 내 백성을 위로하라”라는 주제로 개최된다. 이 협의회 중 도시농어촌 선교분과에서 “새로운 시대의 농민선교의 방향과 그 내용”(이세우, 전북 금평교회)의 발제문이 발표된다.
나아가 6월 21-22일까지 기독교농촌개발원에서는 “농촌선교 발전을 위한 정책협의회”가 개최된다. 32명의 목회자가 참석한 가운데 ‘농촌 선교 기관의 선교과제와 발전방향’(이태영, 전북동 순창농민상담소), ‘농촌교회의 선교과제와 발전방향’(이도형, 충북 덕촌교회)의 발제에 이어 정호진, 권영근의 논찬으로 오랜만에 단독으로 개최된 이 협의회는 뜨거운 열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이 해 총회의 선교위원회에서는 기장의 ‘제6문서(가칭)’ 집필 시 21세기 기장농촌선교정책 선언서의 내용을 첨가해 줄 것을 헌의하기도 하였다.
2000년, 새 천년 들어 총회 선교위원회는 농어촌선교 분과 소위원회를 통해 도시농어촌선교주일을 농사력에 맞추어 5월로 변경할 것을 헌의키로 하면서, 이를 활성화하기 위해 총회회보를 이용, 강단교류 및 현장 소리 듣기 등의 활용 방안을 모색한다. 아울러 ‘새 천년의 농촌교회 성장과 성숙을 위한 농촌교회 실태조사서’ 발간을 허락하고 이를 위한 위원회 총회 본부 실무자 및 기장농목을 중심으로 구성한다. 조사위원회는 기독교농촌개발원의 이태영, 총회 선교위원회의 여태권, 정종영, 함필주, 기장농목의 유성일, 이세우, 이종화, 김승환, 정호진, 신민주가 위원으로 구성된다. 아울러 전년도에 헌의한 ‘제6문서 집필시 21세기 기장농촌선교정책 선언서’ 첨가하기로 결의한다. 이를 위해 제 6문서 집필팀에 이세우, 이도형을 파견한다.
이 해에는 농어촌선교정책협의회는 개최되지 않는다. 이는 총회가 ‘전 기장인 선교대회’에 집중했던 이유였지만 이는 2002년 ‘새역사 희년대회’까지 계획되면서 각 부분별 정책협의회 마저 열리지 않는 상황이 지속되게 된다.
2001년, 2002년, 2003년 연속하여 선교위원회를 통해 보고된 농촌선교는 다만 기독교농촌개발원의 ‘농촌교회실태조사서 계속 사업’만 있었다. 이는 새천년 기장선교대회(2000년) 이후 새역사 희년대회를 준비하는 협의회 개최와 그 일환으로 개최된 ‘교역자 부부 선교대회’(2003년 6월 30일-7월 2일, 양수리 수양관, 150여명 참석)등의 사업에 집중하였던 까닭이겠지만, 이는 2000년 넘어 그나마 존재했던 선교의 정책을 수립하는 협의회마저 대규모의 선교대회 형태로 바뀐 탓이기도 하였다.
4) 「희년문서」이후 현재까지의 기장의 농촌선교
희년문서는 발간되었지만 정작 현장에서 기장의 선교방향은 이론적 제시와는 다르게 움직여졌다. 이는 김대중 정부 초기의 선교적 분출 이후 역설적이게도 노무현 참여정부까지 이어지는 교단내의 행사의 대형화와 실천적 내용의 부실이라는 틀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는 또한 교단의 선교정책이 ‘하나님의 선교’라는 이론적 토대와 별개로 지속되고 있는 3,000교회 운동이라는 양적 성장에 집중하였던 까닭이기도 했다.
2004년 2월 16-17일에 남원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의 교회선교, 사회선교‘라는 주제로 열린 교단 “선교정책협의회”에서는 아예 농촌선교에 대한 논의조차 되지 않는다. 이는 2000년 넘어 들면서 지속된 대규모 선교대회 형태의 이러한 기조가 이어지면서 ‘2004 교역자 선교대회’를 개최하기에 이른다. 2004년 7월 12일-14일까지 유성 아드리아 호텔에서 개최된 선교대회는 400여명의 인원이 참석하게 된다. 이 선교대회 기간 중 특수선교 분과에 농촌선교는 포함되어 Home Comming Day를 통하여 농촌의 원소속 교회 방문 프로그램을 개발하자거나, 농촌개발원을 활성화시켜야 한다는 등의 실제적 방안이 없는 수준의 논의만 진행되었을 뿐이다.
2005년 5월 2일부터 4일까지 유성 아드리아 호텔에서는 “생수의 강이 흐르게 하라”라는 주제로 450여명의 교역자가 참석한 가운데 “2005년 교역자 선교대회”가 개최된다. 이 대회에서 농촌선교에 대한 언급은 단 한 문장으로 정리되어 있다. 즉 ‘농촌지역교회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한 마을 전체를 교회가 책임진다는 자세로 목회에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언급이 전부이다.
2006년 역시 동일한 패턴이 이어졌다.
선교위원회의 보고서는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3,000교회 운동을 위한 정책협의회’ 개최와 더불어 2006년 5월 19-21일 경주 교육문화회관에서 “은총의 하나님, 세상을 변화시키소서!”라는 주제로 300여명의 목회자의 참석으로 “2006 교역자대회”를 개최한다. 이 대회에서 펼쳐진 2개의 강좌는 “우리말, 글 바로 쓰기”, “교회 재정 관리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기장의 선교의 내용과 방향은 마치 실종된 듯 한 흐름이 지속되고 있는 듯 한 것이다.
선교위원회는 아울러 ‘하나님의 선교를 위한 3,000교회 운동’이 종료됨에 따라 3,000교회 운동의 성과를 계승하고 이를 교훈삼아 새 시대 한국교회 전체를 견인해 갈 새로운 교회부흥운동을 모색해 나갈 것을 요청하게 된다. 이는 3,000교회 운동의 성과나 혹은 반성에 앞서 계속해서 이어갈 수 있는 운동을 요청함으로 현재 교단 총회에서 진행 중인 2015운동으로의 전환을 암시하고 있다 하겠다.
하나의 패턴이 정형화 되면 새로운 요구가 있기 전까지 그 패턴은 지속될 수 밖에 없다. 2007년, 6월 11일-13일 부산 아르피나 유스호스텔에서 열린 “2007 교역자 대회” 역시 몇 년간 지속된 흐름의 연장이었다. 300여명의 목사, 사모의 참여 속에서 진행된 대회에서 그나마 농촌형 교회의 목회 사례 발표(김윤석, 충남 두야교회)가 기장의 농촌선교의 모습이었다.
선교위원회는 노동자, 농어촌, 빈민선교정책협의회에서 끊임없이 제기함으로 만들어진 위원회였다. 하지만 선교위원회가 설치된 이래 10년이 넘는 세월 속에서 선교위원회의 본 취지와 달리 행사 위주의 사업만을 진행하게 됨으로 새로운 돌파구를 측면에서 추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리하여 기독교농촌개발원 운영위원회는 사회부 교회와 사회위원회를 통하여 총회주관 “농촌선교정책협의회 개최를 헌의하게 되고 허락받는다.
이후 선교위원회에서 개최하는 “총회 선교정책협의회”는 3,000교회 운동을 이어받은 2015운동의 선교정책협의회로, 그리고 교역자 선교대회를 주최하는 부서로서 선교위원회가 남게 되고, 농촌선교에 관한 정책협의회는 현장 속에서 활동하는 기관을 통해 개최된다.
2008년 4월 14-15일 고창 선운산 관광호텔에서는 70여명의 교역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생명·농촌의 위기와 농촌-도시교회의 협력방안”이라는 주제로 기독교농촌개발원과 기장농목이 주축이 되어 개최된다.
‘세계 식량의 위기와 한국농촌의 전망’(김성훈, 전 농림부장관)이라는 주제 강연에 이어 ‘목회 및 지역사회 선교 측면’(윤인중, 생명평화기독교연대 공동대표), ‘농산물 직거래 및 생활공동체 측면’(이세우, 전북동 들녘교회)의 발제가 있었다. 뜨거운 열기 속에서 계속된 분임토의를 통해 총회에서 농촌선교정책협의회가 지속적으로 개최될 것과 함께 다양한 농촌선교의 방안들이 제안되기도 했다.
2009년 이후 기장 총회는 선교위원회와 교회와 사회위원회 등의 기구가 연합하여 개최한 사회정책협의회는 농촌선교에 관한 주제를 다루지 못한다.
하지만 2009년 총회본부의 조직개편이 진행되면서 평화공동체운동본부나 생태공동체운동본부를 신설하면서 농촌선교라는 단일 주제를 다루지는 않지만, 기장농민선교목회자연합회와 함께 “황소걸음 생명평화 청소년캠프”를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매년 여름수련회 형식으로 개최한다.
금년은 8월 2일(화)~5일(금)까지 무주 푸른꿈 고등학교에서 9차 '2016 황소걸음 청소년 생명평화 캠프'가 열렸다. 생명선교연대가 진행단체로 추가되어 4단체가 공동주관하여, '예수님을 기억하고 예수님처럼 살아요' 주제로 11교회 100여명의 청소년과 인솔교사 포함 30여명이 함께하는 3박4일 캠프는 아침묵상을 시작으로 평화와 만나기, 평화와 걷기, 평화로 살기 등의 주제별 교육과 특별활동 조별자치활동 등으로 구성되었다. 캠프 참여 청소년들이 조별공동체 활동을 통해 예수님의 생명과 평화를 몸으로, 마음으로, 영성으로 구체적이며 실천적으로 체험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마지막 마무리시간에 참여자 모두가 모여서동영상, 연극, 노래 등으로 예수님 주신 생명과 평화를 다양하게 표현하는 새롭고 즐거운 캠프를 스스로 만들었다. 다시 오고 싶다는 후기가 내년 10차 황소걸음 청소년 생명평화 캠프를 준비할 수 있는 힘을 북돋워준다.
아울러 현 정부 하에서 이루어지는 토건사업의 가장 큰 이슈가 되어 있는 ‘4대강 살리기’는 강을 파괴하고 생명을 죽이는 일이라는 점을 각인하고 “4대강 공사 저지와 팔당 유지농지 보존을 위한 기도회 및 결의대회”를 2009년 11월 19일 용진교회당에서 250여명의 목회자, 교인, 지역주민, 시민단체 회원이 참여한 가운데 개최한다. 이 기도회 및 결의대회, 평화행진은 이어 2009년 12월 15일에 국회 앞 산업은행 앞에서 열린 “4대강 정비사업 저지를 위한 4대 종단 공동기도회”에 참여한다.
2010년 들어와 4대강 사업 저지를 위한 활동은 더욱 왕성해 지는데, 용진교회에서 시작한 금식기도를 이어받아 “생명의 강 살리기 사순절 금식기도회”를 2010년 2월 17일 성회수요일부터 4월 4일 부활절까지 진행한다. 팔당유지농지에 금식기도처를 마련하고 기장에 속해있는 적극적인 교역자를 중심으로 하루 1명씩 윤번으로 총 46명이 기도를 이어가면서 북한강가에서 쓰는 편지를 일지로 작성하고, 현장에 3명의 조력자와 기장 여신도회를 통하여 각자의 삶터에서 함께하는 12명의 기도조력자가 함께 기도하는 방식을 취한다. 이 금식기도회는 6월 8일부터 다시 이어져서 2010년 10월 기장농목에서 추진한 4대강 순례와 결합하기까지 100일 금식기도회로 지속된다.
2010년 10월 11일부터 11월 5일까지 기장농목과 생태공동체 운동본부과 공동 주관하여 4대강 걷기 순례에 나선다. 10월 11일에서 14일까지 한강, 10월 20일에서 22일까지 금강, 10월 25일에서 29일까지 낙동강, 11월 1일에서 5일까지 영산강을 대상으로 총 4주간 300km의 대 장정을 걸어서 순례하게 된다. 연인원 700여명이 동참한 가운데 진행된 이 순례는 이후 11월 29일 총회본부에서 순례좌담회를 통해 기장회보에 기록으로 남는다.
2011년 들어와서도 생명의 강 살리기 운동은 지속되었다. “생명의 강 살리는 기장인 1만인 선언 발대식”(2011년 3월 22일, 대전교회, 250여명 참석), “생명의 강 살리기 기장인 1만인 선언 서명 작업”등을 펼쳤으며, 범 종교인들의 “4대강 되찾기 범종교인 생명평화기도회”(4월 8일 시청광장, 500여명 참석), “4대강 되찾기 범종단 성직자 선언”등에 준비단계에서부터 적극 참여하였다.
2015년, 2016년 들어서도 생명의 강 살리기 운동은 내성천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생태공동체운동본부에서는 금년 2016 내성천살리기 운동 프로젝트를 시작하였고, 차세대와 함께! 교회속으로! 라는 두 가지 슬로건을 중심으로 기획되었다. 이러한 흐름속에서 교단의 청년들, 청년회전국연합회와 교단의 차세대 목회자들, 한신대 신학대학원과 함께 기획하여
* 1차 사업: 4대강사업 재이슈화를 위한 영상제작
* 2차 사업: 생명선교를 다짐하는 생명살림토크콘서트 '강가흐르다' 개최
* 3차 사업: 직접 4대강사업의 마지막 종착지인 내성천에 머물면서 세대와 세대가 아우르는 연대와 교육, 친교의 자리로써 '내성천여름대회'를 진행하였다.
2016년 1월 25일(월)~26일(화) 한신대에서 있었던 총회사회선교정책협의회에 기장농목 총무의 자격으로 처음 참석하게 되었다. 농목총무로서 현재 농촌의 어려운 현실을 얘기하며 호봉제에 대한 관심을 피력하였으나, 역시 메아리 없는 공허한 소리로만 남았다. 대부분의 도시교회 목사와 장로들이 참석하므로 농촌의 현실에 대한 얘기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게 되었다. 그나마 성과라면 100회 총회때 연구키로 한 사회선교사 파송에 대한 의견의 합의가 이루어지는 장이었다. 그리고 101회 총회때 연구한 것을 보고하는데 사회선교사 파송을 준비하는데 기장농목이 세칙을 만드는데 있어서 함께 하기로 하였다.
2. 기장 농목의 창립과 주요활동
1989년 10월 16일 기독교농촌개발원에서 기장농민선교목회자연합회(이하 기장농목) 창립대회가 146명이 참여하여 성대하게 열렸다. 이 창립대회에서 회장 김봉환(대전 내곡) 부회장 여태권(전북 율곡) 서용석(전남 용학) 총무 이도형(충북 덕촌) 서기 강진국(충북 중신) 회계 한일웅(경북 무을)을 임원으로 선임하고 농민선교를 위한 힘을 모으게 된다.
창립대회에 참석한 목회자들은 창립선언문을 통해 “농민-농촌-농업, 이는 민족의 뿌리요, 사회의 근본이요, 산업의 기초임을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뿌리가 죽고 바닥이 흔들리는 중병을 앓고 있다.”고 진단하고 “이러한 목회 현장에서 눈물로 기도하며, 때로는 팔을 걷어 노동으로 동참해 보기도 하였고, 때로는 피 끓는 함성으로 같이 호소해 보기도 하였으나 개인과 개교회의 힘으로는 너무나도 역부족임을 뼈저리게 깨달았다”고 고백하면서 개인주의로 인하여 이 죄악의 현실을 막지 못한 책임을 함께 뉘우치면서 “힘을 모아 함께 일하도록 부르시는 하나님의 엄숙한 음성에 복종하고자 한다.”고 모임의 취지를 밝히고 있다. 또한 창립선언문을 통해 오늘의 농민문제를 아래와 같이 5가지로 밝히고 있다.
첫째, 농토는 하나님의 것이다. 따라서 농토는 투기꾼과 부재지주로부터 회수되어 관리자인 농민에게 주어져야 한다.
둘째, 농민들이 피땀 흘려 생산한 농산물은 생명을 살리는 거룩한 것으로서 정당한 값이 보장되어야 한다. 물가안정을 빙자한 저농산물 가격정책이나 소수 재벌들의 이익만 보장하는 무분별한 외국농축산물의 수입은 결과적으로 농민의 품삯을 가로채는 죄악으로 당연히 금지되어야 한다.
셋째, 농가부채는 본질적으로 농업 정책과 사회 모순이 빚어낸 죄악의 결과이다. 농가부채는 희년정신에 의해 탕감되어야 할뿐 아니라 농가부채가 생기지 않도록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넷째, 권력의 독점과 외세에 의한 민족분단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이다. 따라서 이 땅의 농민문제의 진정한 해결은 민주화와 한반도의 자주적 통일을 이루고 민족 구성원 전체 속에 하나님의 평화가 깃들게 됨으로서 완성된다.
다섯째, 복음은 농어민의 삶의 현장에서 희망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 농어촌교회는 농어민과 함께 일하고 함께 고통하며, 불의와 죄악에 대항하여 함께 싸움으로써 벼랑 끝에선 농어민에게 삶의 용기를 제공하여, 저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역사의 주인으로 당당히 서게 하며, 죽음으로 치닫는 농어촌사회 속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전초기지가 되어야 한다.
기장농목의 출발은 총회기구를 통하지 않은 제도권 밖에서 농촌목회자를 중심으로 농민선교를 중심축으로 세우는 계기가 된다. 농목은 ‘정의, 생명, 공동체’ 운동을 모토로 삼고 ‘농촌교회에게 희망을 농민에게 생명을!’ 농업과 농민, 농촌교회를 함께 살려내는 선교적 과제를 실천하는 실질적인 운동력을 가지고 농민선교를 풀어간다. 74회 총회 이후 기장 농민선교는 곧 기장 농목의 농민선교라 할 수 있다.
기장농목이 발족함으로 기장교단의 농촌선교는 구조적으로 완성되어 그 힘을 발휘하게 된다. 총회적으로는 정책을 준비하고, 총회기관인 농촌개발원은 사업부서가 되고, 기장농목 회원들이 목회현장에서 실천하는 구조를 갖게 된 것이다. 실질적으로 농촌교회 현장에서. 선교 과제와 씨름하는 담임목회자들이 당연히 가장 전문가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기장농목이 먼저 제안을 하고 총회 선교국이 받아서 1988년부터 매년 농어촌 선교정책협의회를 개최하게 된다.
기장 농목은 크게 아래와 같이 농민선교를 실천해 갔다.
첫째는 총회 정책을 수립해 가는 일이다. 이 일은 74회 전까지 총회가 해오던 정책적 수립을 연속적으로 실천하는 일이었다. 특히 이후부터 기장농목은 기장 민중교회 목회자들과 함께 기장 민중선교의 중심축을 세워가면서 기장 선교의 핵을 이끌어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기장농목은 매년 총회와 함께 선교 정책협의회를 개최하여 총회 안에 농민 선교적 과제를 풀어갔다. 그 사례로는 다음과 같다.
① 총회 선교교육원과 함께 2년 과정으로 ‘기장농촌교회 실태조사 보고서’ 작성을 위한 팀을 구성하여 기장 농촌교회 실태조사 보고서를 발간하였다. 이 보고서는 한국개신교사에서 최초의 농촌교회 실태 보고서라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다. 이 보고서는 농촌교회의 피폐한 현실이 교회 내부적이 요인보다도 근원적으로는 한국 농촌사회 전체의 몰락에서 파생된 교회 외적(사회적) 요인에 전반적인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농촌교회 피해는 농촌교회 교인들의 신앙부족이나 목회자의 능력 부족 등 내적 요인 보다 농촌사회 문제와 국가 정책, 특히 농업 정책 등 외적 요인들에 의해 더 큰 영향을 받고 있음을 통계적이고 과학적으로 검증하였다.
② 이를 바탕으로 기장 농촌교회(40%) 중에서 절대빈곤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목회를 하고 있는 목회자들을 위한 생활대책을 제안하였다. 총회 안에 생활보장제를 두어 실질적인 도움이 되게 하자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평균생활보장제, 생활보장제 상향조정 등에 대한 실질적인 제안을 해 왔다.
③ 총회 선교위원회 설치였다. 기장 농목은 총회 안에 제도적 장치로써 선교위원회를 설치하여 기장 농목의 정책적 대안과 농민선교 정책을 실천하기 위한 총회적인 기반을 마련하기에 애썼다. 총회는 매년 3월 둘째 주일(현재 5월 넷째주일)을 도시농어촌 선교주일로 지켜오고 있으나 농민선교에 큰 힘이 되지 못하고 있다.
④ 우루과이라운드 협상에 대한 국회 비준 반대를 위한 기도 운동이었다. 총회 교사위원회와 협력하여 농목은 전국적으로 노회별 기도회와 함께 총회적 기도회를 통하여 총회적인 역량을 집결하여 국회비준반대운동을 펼쳤다. 또한 기독교 감리회 농목, 예수교장로회(통합) 농목, 기독교교회협의회, 기독교농민회 등과 함께 우리 쌀 지키기 위한 국민적 공감대 확산을 펼쳐나감과 함께 농목 운동의 조직적 강화와 노회 및 총회 선교단체와 유대를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되어 총회의 농촌선교에 대한 공감대를 확산시켰다.
둘째, 도시교회와 농촌교회 상호간의 나눔과 섬김이었다. 도시와 농촌교회의 영적, 물적, 인적 교류를 기반으로 상호간에 자매결연, 농산물 직거래 등을 실시하였다. 여신도회 연합회와 많은 의제와 방법론으로 다양한 모색을 하였다. 수없이 도시교회의 문을 두드렸지만 소수의 응답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셋째, 노회 안에 농민선교 기구를 제도적으로 만드는 일이었다. 농목은 노회 안에 농어민선교위원회를 설치하는 데 앞장섰다. 이 농어민선교위원회는 각 노회별로 농민선교의 한 몫을 감당하는 노회적 기구였다(전남, 광주, 충남, 대전, 충북, 경기 등). 아울러 이 농어민 선교위원회로 하여금 노회 단위의 농민상담소 및 영남농촌개발원을 설치하게 하여 운영케 하였다.(강진농촌사회개발원, 순창농민상담소, 무안농어민선교센터, 함평농어민선교센터, 해남농어민상담소, 진천농민상담소, 영남 농촌개발원 등.)
넷째, 창조적 농촌 목회를 위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였다. 농목은 우루과이라운드 협상 이후에 농민선교의 다원적 측면을 강조하였다. 농목은 95년 이후에 목회분과, 사회복지분과, 생명분과, 공동체분과 등으로 나누어 위기 시대에 농촌목회의 대안적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이 창조적 목회 운동은 농촌 선교의 통전적 가능성을 내다보게 했으며, 특별히 농민선교에 있어서 복지선교의 가능성을 열어놓게 되었다.
다섯째, 농목은 목회자 운동이면서 동시에 농민선교를 위한 평신도 운동에 각별한 관심을 가져왔다. 농목의 파트너로서 평신도 운동을 위해 지역별 모임, 전국적 모임을 추진하였다.
여섯째, 전문적인 농촌 목회자 양성을 위하여 한신대학 신학대학원에 농촌목회를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과정에 관심을 갖고 학과목 개설 및 목회실습의 현장으로서 농촌교회를 알리는 일에 노력하였다.
일곱째, 회원 교회로 하여금 유기농, 협업운동을 실천하도록 추진하였다. 현장견학교육, 생명농업교육 등 농사의 방법적 측면과 신학을 함께 고민하고 영농조합을 만드는 일과 직거래 운동으로 나가는 일 등에 대해서 모색하고 추진하였다.
여덟째, 타 교단 농목과의 연대와 협력하는 활동을 하였다. 농업, 농촌문제는 한 교회, 한 교단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전체의 사회, 경제적인 문제와 관계된 것이기 때문에 농촌선교에 대해 뜻을 같이 하는 타 교단 농목과의 교류와 협력은 불가피하였다. ‘기독교농촌개발원’과 함께 평신도교육, 목회자교육 교육과정의 내용을 함께 작성하고 공유하며 농촌선교에 인식을 새롭게 하고자 하였다. 1991년 쌀 수입반대, 제값받기, 전량수매를 위한 전국 농촌목회자 결의대회, 1993년 우리 농촌을 지키기 위한 농촌목회자 기도회를 3개 교단 농목이 공동주최 서울 기독교회관에서 개최하였고, 우리 쌀 및 기초 농산물의 수입개방저지를 위한 금식기도회를 일주일 이상 실시하였으며 이후에도 북한 쌀 보내기 등 사안별로 협력과 연대를 계속하였다.
2005년 4월 원주 박경리 토지문화관에서 “세계화에 대한 대안 모색”이라는 주제로 에큐메니칼 연합의 주최로 20개국 70여 명이 참가한 가운데 ‘생명농업 지구포럼’이 개최되었다. 여기에 ‘한국기독교생명농업포럼’이 같은 해 11월에 창립되었다. 2006년 8월에 충남 홍성에서 ‘아시아 기독교교회협의회’와 더불어 제1회 “아시아 기독교생명농업포럼”이 개최되어 “생명농업”을 중요한 미래의 선교적 과제로 채택하고 행도하기 시작한다. 여기에 기장농목이 적극 참여하여 국제적 연대를 하고 있다.
이러한 기장 농목의 활동들은 그동안 전통적인 목회적 영역이라 할 수 있는 예배, 심방, 전도 등에 머물러 있던 농촌목회에 활력을 불어 넣었고 그 내용을 풍부하게 만들었다. 특히 사회적 약자라 할 수 있는 농민의 아픔에 동참하면서 농촌교회가 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고 협력하는 일을 감당하였다.
3. 농민선교의 방향과 과제
1). 농민선교란 무엇인가?
농민선교의 개념이 신학적으로 정리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농민선교가 무엇인가를 살펴보기에 앞서 먼저 하나님의 선교에 관하여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 신학이 농민선교에 커다란 인식의 변화를 가져왔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60년대 이후 WCC의 지배적인 선교개념으로 등장하면서 한국교회와 신학계에 큰 영향을 주게 되었다. 휘체돔(G. F. Vicedom)은 하나님의 선교 개념을 제창한 대표적인 신학자로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하나님의 선교란 우선 선교가 하나님께 속한 활동임을 의미한다. 그는 주이시고 위임 명령하시는 분이시며 소유자이시고 만물을 돌보시는 분이시다. 그는 선교의 주역이시다. 교회와 선교는 모두 하나님의 도구요 기구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서 이것들을 통해 하나님은 자신의 선교를 수행하신다. 교회가 겸손하게 하나님의 선교 의향을 성취할 때 비로소 교회는 자신의 선교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이는 교회의 선교가 하나님의 선교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교는 기존의 선교 개념을 완전히 뒤바꾸어 놓았다. 기존의 선교 개념은 전통적 전도의 개념으로써 비 그리스도인을 그리스도인으로 만들어 교회를 확장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철저히 교회 중심적인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교회는 선교의 출발점이요 목표”라고 하는 것은 현상적인 표현 방식에 불과한 것이지 본질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온 세상’에 선포되어져야 하기 때문에 ‘세상’을 ‘교회 안’으로만 국한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이런 의미에서 선교의 주체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이 하나님 선교 신학의 출발점이다. 하나님의 선교에서 교회는 더 이상 선교의 주체가 아니라 선교의 도구일 뿐이다.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교회는 그의 선교에 동참하도록 부름 받은 존재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교회가 아니라 선교이다. 선교를 위해 교회가 존재하는 것이요, 따라서 교회는 선교 중심적 교회가 되어야 한다.
선교의 주체가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하는 신학적 이해의 변화는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선교의 관점과 내용을 바꾸어 놓았다. 하나는 하나님이 선교의 주체가 되므로 하나님의 활동 영역은 “하늘과 교회”만이 아니라 “땅과 온 세상 그리고 역사”라고 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선교의 목적 면에서의 변화이다. 교회가 선교의 주체가 될 때 선교의 목적은 교회의 확장이지만 하나님이 선교의 주체가 될 때 선교의 목적은 하나님의 구원이 된다. 하나님의 구원은 모든 피조물이 죽은 다음 내세에서 만의 구원이 아니라 하나님은 현세의 모든 피조물도 구원하기 위해 지금도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현세에서의 하나님의 구원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평화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선교 개념은 한국 신학계와 교회에 큰 충격을 주었을 뿐 아니라, 농민선교의 영역에도 큰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80년대 이후 농민선교가 이전과는 달리 농업, 농민문제를 사회 정치적, 또는 사회 경제적인 문제로 이해하게 된 데에는, 하나님의 선교의 영향 때문이다. 이처럼 하나님의 선교는 교회가 선교를 중심으로 하여 존재해야 한다는 분명하고도 확실한 목표 설정을 해 줌으로써, 농촌교회는 농민선교를 중심 과제로 하여 존재하여야 한다는 결론을 도출하는 근거가 되었다.
위의 ‘하나님의 선교’ 신학의 입장에서 농민선교의 개념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농민선교란 하나님의 농민선교로서, 그 주체는 하나님이며 그 대상은 농민이요 그 도구는 교회 및 농촌교인들이다. 농민선교는 사회 복음적인 의미를 가지는데 영혼구원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구체적으로 농촌사회에 임하도록 하는 것이다. 동시에 농민선교는 사회 선교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곧 농촌사회와 농민의 제반 현실에서 수행되는 하나님의 전인적 구원과 해방의 사업을 뜻한다. 또한 농민선교는 공생의 선교적인 의미를 가지는데 농촌사회와 농촌교회, 도시와 농촌, 인간과 자연이 모두 함께 공생하고 모두 함께 구원하는 것을 뜻한다고 하겠다. 따라서 농민선교의 개념이야말로 선교의 지평을 개인이나 교회에나 농촌 지역에만 국한하지 않고 창조세계의 모든 피조물에게 확대하는 보다 포괄적이고 보다 근원적인 선교의 개념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2). 농민선교의 방향
흔히 21세기 인류의 화두는 생명이라고 말한다. 환경오염으로 인한 생태계 파괴로 말미암아 피조 세계의 생명체들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을 비롯한 모든 생명체들은 좋은 먹을거리, 맑은 공기, 깨끗한 물, 비옥한 땅이 있어야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어느 것 하나 온전한 것이 없다. 대기오염, 수질오염, 토양오염, 해양오염 먹거리 오염 등으로 말미암아 피조물은 물론 인간이 살아가기에도 절대적으로 부적합한 환경이 초래된 것이다. 생태계의 위기는 환경오염의 범위를 넘어서서 인류가 살아남느냐 아니면 몰락하느냐의 문제 곧 생존의 문제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므로 생명운동은 21세기 그리스도인들에게 부여된 가장 중요한 선교적인 과제이다.
따라는 농민선교는 당연히 환경을 살리고 모든 피조물들의 생명을 살리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전도 몇 사람 더하여 교회예산 늘리고 교회당 키우는 것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농촌교회의 역할은 이제 생명운동의 전위대로 나서는 것이다. 농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하나님의 생명창조의 역사라고 고백할 때 농촌교회가 이런 농업의 특성을 십분 활용하여 생명운동을 강력히 전개해 나가야 한다.
그 동안 교회가 농민들의 권익실현을 위해 앞장섰다면, 이제는 교회가 여기에다가 농민들로 하여금 생명의 담지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농민들이 손쉽게 농사짓는 방법만을 선호하는 사이에 이미 환경오염의 문제는 심각한 지경에 이르렀다. 농민들이 눈앞의 이익에만 눈먼 나머지 무분별하게 뿌려대는 농약은 심각한 농산물의 오염을 불러일으켜 인간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
이제는 새롭게 농민선교의 깃발을 들어야 할 때이다. 뱁새가 황새를 따라 갈 수 없듯이 도시교회의 대형화를 부러워해서는 안 된다. 선교를 하고 싶어도 예산이 없어서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예산 타령만을 해서도 안 된다. 모든 농촌교회와 성도들은 생명사랑의 정신으로 이 땅의 모든 피조물들의 생명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야 한다. 사실 이 일보다 더 소중한 일은 없을 것이다. 환경오염에 따른 모든 피조 세계의 생명들이 위협받고 있는 상황에서 생명운동을 지향하는 방향으로 농민선교는 당연히 나아가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운동을 지향하는 농민선교의 과제는 어떠한 것들이 있을까?
3). 농민선교의 과제
①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회
하나님의 선교 신학에서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요, 교회는 하나님 선교의 도구이다. 그렇다면 농촌교회 역시 농민선교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의 교회의 모습과 틀이 변화되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서는 농민선교의 사명을 감당할 수 없다. 그런데 지금의 농촌교회의 모습은 농민선교를 감당할 수 있는 틀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 어느 때보다 교회갱신이 강력히 요청된다고 하겠다.
교회는 살아 있는 생명체와 비교될 수 있다. 생명체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세포가 건강해야 생명체 전체가 건강할 수 있다. 교회 구성원을 세포로 생각해 보면 그 중의 어느 한 세포도 병들고 찌들게 놔둘 수 없다. 암은 세포 하나가 정상적인 활동을 하지 않고 이상적으로 커져서 다른 세포를 똑같이 규합해 나감으로써 몸 전체를 죽이는 것이다. 교회갱신은 이 병든 세포를 정상으로 되돌려 각자의 역할에 충실하게 하는 것이다.
오늘의 농촌교회는 너무나 지역과는 동떨어져 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교회가 자신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이다. 이런 교회는 지역에서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다. 교회가 철저하게 지역과 함께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농촌은 한정된 지역 안에서 평생을 철저히 마을공동체를 중심으로 살아가는 공간이기에 더욱 그렇다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활동의 장은 지역사회이다. 교회는 지역사회와 무관한 폐쇄적인 공동체가 아니라 교회와 지역사회는 생태학적 관점에서 보면 끊임없이 상호영향, 상호 교환적인 작용을 하는 하나의 생명체와 같다. 이런 점에서 교회는 지역사회의 개인, 가족, 집단, 조직체의 건강한 삶을 확보하고 유지케 하며 향상시키게 하기 위해 철저히 지역교회로 자리 잡아야 한다.
성서를 토대로 한 기독교의 기본원리는 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하나이다. 그러나 그 교회가 발을 딛고 선 구체적 현장은 어디냐에 따라 그 기본원리를 펼치는 방법은 달라야 한다. 때문에 절대적으로 현장에 맞는 창조적인 선교방법이 요청된다. 그것을 우리는 다음과 같은 바울의 말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매여 있지 않은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내가 유대인을 대할 때는 그들을 얻으려고 유대인처럼 되었고, 율법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을 대할 때는 나 자신은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서도 그들을 얻으려고 율법의 지배를 받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법의 지배를 받고 있으니 실상은 하나님의 율법을 떠난 사람이지만, 율법이 없는 사람들을 대할 때는, 그들을 얻으려고 율법이 없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대할 때는, 그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그들처럼 된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 중에서 다만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한 것입니다. 나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과 같이 복음의 축복을 나누려는 것입니다.”(고전 9:19-22) 지역이 필요로 하는 일들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지역욕구에 부흥하는 지역교회로 거듭날 때 농민선교는 더욱더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② 농업을 회생시키자!
농민선교의 가장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는 농업을 살리는 것이다. 박현채 선생은 농업, 농민, 농촌의 문제는 보는 관점에 따라 농업문제, 농촌문제, 농민문제 등으로 불리지만 그것이 갖는 본질은 하나라고 말했다. 다시 말하면 농업문제로 인하여 농민, 농촌문제가 생겨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농업을 살리지 않는 이상 농민이나 농촌의 문제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
농업은 두 개의 중요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첫째, 모든 농산물은 자기가 좋아하는 기후풍토가 있다. 기후 풍토에 딱 맞는 품목을 재해하면 좋은 품질의 농산물을 적은 비용으로 많이 생산해 낼 수 있는 적지적작의 원리가 적용된다. 둘째, 모든 농산물은 일정한 기간 내에 소비해야 한다. 냉장, 냉동할수 있고 가공할 수 있지만 그것도 유효기간이 있고, 비용이 커지며, 시간이 자나면 결국은 썩게 된다. 따라서 농산물은 일정한 기간 내에 소비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유통은 냉장, 냉동등 특수한 설비를 통해 유통시켜야 한다. 그래서 농업은 생산적지가 점령되고 유통망이 독점되면 누구도 도전할 수 없는 산업이다. 왜냐하면 생산적지에서 생산된 것보다 맛있고 품질이 좋은 농산물을 적은 비용으로 많이 생산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농산업이 독점구조롤 만들어지면 세계적으로 큰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며 주요 품목을 가진 기업은 영원한 독점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
예를들어 세계적인 곡물메이저인 카길기업은 세계 곡물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생명공학기업인 몬산토기업과 합작으로 사료, 곡물공급의 75%이상을 독점하고 밀, 콩, 옥수수등 곡물류와 대부분 주용 농산물의 종자산업까지 지배하고 있다. 이들은 불임성종자권(1회용 종자)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를 개발보급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더 심각한 것은 GMO(유전자조작) 농산물과 GMO종자를 대량취급하고 있으며 계속적인 재배지역 확대전략을 국제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니다. 농민과 농업을 위해서 존재해야할 농촌진흥청(전북 완주군 이서면)은 2011년부터~2015년까지 GM작물 50품종에 대해 전국적(남양주~제주)으로 시험재배를 승인하였다. 농촌진흥청은 2020년까지 80종의 품종까지 확대하려 하고 있다.
흔히들 농촌과 농촌교회의 관계를 물과 물고기의 관계로 표현한다. 물고기가 물을 떠나서 살 수 없듯이 농촌교회도 농촌사회를 떠나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물고기가 물이 더러워지고 오염되면 온전히 살 수 없듯이 농촌사회가 피폐화되면 농촌교회는 온전히 성장할 수 없다. 지금의 농촌교회의 상황은 참으로 암담하다. 적은교회, 노인교회, 영세미자립교회는 농촌교회의 대명사가 되어버렸다. 교인 수는 계속 감소하고 있으면, 교회학교 어린이부와 중고등부가 점차 사라져 가고 있다. 이것은 농촌교회에 젊은이가 없다는 것으로 농촌교회의 장래가 매우 어둡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렇게 농촌교회 상황을 어렵게 만든 원인은 무엇일까? 농촌교회의 목회자들이 도시교회의 목회자들에 비해서 무능하고 목회에 전념하지 못하기 때문일까? 아니면 농촌교회의 교인들이 신앙과 열심히 부족해서일까? 발제자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러한 요인들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보다 더 결정적인 요인은 농촌사회 자체의 피폐화이다. 농업의 몰락으로 농촌사회가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그 형편이 악화되면서 자연히 농촌교회는 어렵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197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근대화로 농촌사회에서 도시중심의 공업사회로 변화되었다. 즉 농․어업에서 공업과 제조업, 전문업과 서비스업 등으로 중심적인 산업구조가 바뀌면서 자연히 인구는 농촌에서 도시로 이동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도시의 급속한 발전과는 대조적으로 농촌은 경제적 피폐와 인구감소, 교육 및 생활환경의 낙후 등으로 도시와 농촌의 격차가 더욱 심해지게 되었다.
이 같은 산업화 도시화의 물결 속에서 농가인구는 급격히 감소하기 시작하였다. 1980년 천만을 넘던 농촌인구가 1990년 670만으로 줄고 지금은 360만 정도이다. 농가경제도 마찬가지로 파산직전에 있다. 만성적인 농가부채는 이미 농민의 개인적 상환능력 한계를 넘어서 정책적으로 농가부채탕감을 거론할 만큼 거대해졌다. 1980년에 호당 800만원이던 농가부채는 2005년 평균 3천만원대를 넘어서고 있다. 하나의 단적인 예에 불과하지만 이와 같은 농촌사회의 피폐는 곧바로 농촌교회의 피폐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농민선교는 농촌교회만을 고려하기보다는 농업과 농촌사회를 함께 소생시키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③ ‘생명농업’을 실현하자!
농업이란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양식을 생산하는 직업적 활동을 말한다. 그러기에 농업은 인간의 생명 유지를 위한 필수 산업이라 할 수 있다. 예전에는 모두가 건강한 식량을 생산하였기에 구태여 ‘생명농업’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었다. 그냥 농업이라고 해도 되었다. 그러나 화학비료가 생겨나기 시작하면서부터 달라졌다. 화학비료는 처음에는 놀라울 정도로 작물의 성장과 생산성을 높여 주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화학비료를 사용한 농사 방법은 급속도록 퍼져 나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화학비료의 효력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화학비료를 신봉하고 대량으로 사용한 결과 약 20-30년 후부터는 생산이 저하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비료를 많이 투여하면 할수록 생산이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질병과 해충이 많이 발생하게 되었다. 그래서 각종 농약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먹거리 오염이나, 환경오염의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게 되었다. 이제는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이 거의 없는 실정이고, 농약과 화학비료로 인한 환경오염은 심각한 수준에 이르게 되었다.
그래서 농산물과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깨달은 사람들에 의해 생명농업이 대두되기 시작하였다. 생명농업은 한마디로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건강한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환경을 지키는 일일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민족농업을 사수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가격을 통한 농산물 경쟁은 사실상 불가능하게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외국에서 수입되는 값싼 농산물과 경쟁하기보다는 ‘맛’과 ‘품질’과 ‘안정성’으로 경쟁한다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촌교회는 생명농업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여야 한다. 교회가 진정 천하보다 귀한 것이 생명이라고 고백한다면 농민선교의 한 방법으로 ‘생명농법’을 적극적으로 수용하고, 보급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다. 생명농업은 창조질서보존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이요, 다음에 살펴볼 직거래 운동과 더불어 농민선교의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고무적인 사실은 귀농자들과, 지역의 목회자들을 중심으로 한 생명농업살리기가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④ 생협을 활성화시키자!
최근에 와서 농산물 직거래운동은 농민선교의 중요한 한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다. 맨 처음 지구생태적 인식과 공생윤리적 각성에서 한살림운동으로 시작된 농산물 직거래운동은 198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서 대중화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하였고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교회의 중요한 실천과제로 수용 전개되었지만 의외로 그 활동은 미비하였다.
농산물 직거래운동은 생산자와 소비자 양측의 관심을 고조시키고 있다. 생산자인 농민은 유통 구조의 문제점을 절감하고 있고, 도시 소비자들은 먹거리 오염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농산물 직거래운동은 앞으로도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특히 기존의 조직체계를 이미 가지고 있는 교회의 경우, 신앙을 바탕으로 하여 잘 추진해 가면 좋은 선교(생명운동)사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농산물 직거래운동은 이 죽임의 농법을 살림의 농법으로 전환시키기 위한 운동이다. 생명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농민들과 그것을 인정해주고 뒷받침 해주며 건강한 먹거리를 공급받고자 하는 소비자들이 함께 연대하여 벌이는 생명살림의 운동인 것이다. 생명운동은 그러므로 얼굴을 모르는 소비자들에게 무차별적으로 공급하는 ‘익명성’의 차원을 넘어서서 생산자와 소비자가 서로 얼굴을 대면하면서 주고받는 ‘인격성’의 차원을 확보하게 된다. 농산물은 이제 단순한 상품이 아니며 인격과 애정이 담겨진 친교의 매개물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농산물 직거래 운동은 그 한계에 도달하였다. 도시교회의 목회자 철학으로만 진행되었던 직거래가 한계점에 도달하였다는 것이 직거래 운동을 하였던 농촌교회 목사들의 고백이다. 도시교회 여신도회장이 바뀔때마다, 농촌교회 목사들은 읍소해야하고, 가격보존이란 측면은 전혀 반영되지 않는 것이 현실이다.
농촌교회의 문제는 항상 유통에 있다. 유기농농산물을 생산하여도 소비를 위해서는 항상 읍소해야 한다. 그렇다면 이를 구조적으로 해결해야만 한다. 이를 해결할 수 있는 것이 생협운동이다. 생협은 생산자에겐 가격을 보존하고, 소비자에겐 안전한 먹거리를 제공한다. 따라서 오늘의 시장구조 속에서 농산물 유통의 한 방식으로서의 모든 직거래는 단순히 유통단계와 물류비용을 줄여서 소비자와 생산농민의 이익을 확대하는 경제적인 측면에만 있지 않다. 땅의 생명성과 농업의 공생성에 궁극적인 목적이 있다. 파괴된 땅을 지키고 되살리는 환경문제에 대한 생산자와 소비자의 자각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공생성이 합의되지 않는 생협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생명운동과 함께 생협운동은 피폐해진 농촌경제를 회복시키려는 대안운동의 한가지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농산물의 상당부분은 산지시세보다 적게는 1-2배, 많게는 5-6배가 비싸다. 중간 상인들이 부당하게 이득을 가로채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중간 상인들의 몫을 없애 실질적인 이익이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에게 돌아가게 하는 것이 생협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처음에 기형적으로 출발했던 기장생협이 다행히 지역단위의 생협운동으로 전개되고 있다.‘서울기살림’이 창립되었고, 경기, 전북, 전남지역에서도 아주 더디지만 준비중이다.
따라서 생협운동은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를 위한 운동이요 동시에 농민들에게 마음 놓고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돕기에 궁극적으로는 농촌을 살리는 운동이다. 생협은 생명운동과 우리 농축산물 먹기 운동이 결합된 것이요, 농촌을 살리는 운동이다. 이런 측면에서 농산물 직거래는 당연히 농민선교의 중요한 내용이 되어야 한다.
⑤ 창조질서를 회복하자!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인류 전체의 생존에 대한 물음을 진지하게 해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하나님께서 수고스럽게 진멸하시지 않더라도 환경오염과 생태계의 파괴로 지구촌이 종극을 맞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미 환경위기를 일련의 통계나 도표를 통해서만이 아니라 직접 오관을 통해서 느끼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누군가가 애써 강조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생태계의 위기를 심각하게 경험하게 된다. 날로 쌓이는 쓰레기, 죽어가는 하천과 바다, 탁한 공기, 산성화되어 가고 있는 땅, 물조차 한잔 마음 놓고 마시지 못하는 수질오염 등은 이제 인간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그러므로 ‘창조질서의 회복’ 운동은 생명위기에 처한 21세기의 기독교인들에게 부여된 지상 최고의 선교과제이다. 인간만이 아니라 동식물은 물론 하나님께서 선하고 아름답게 창조하신 피조물 전체가 가치와 존엄성에서 보호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발제자의 생각이다. “지구는 하나님의 성전”이라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성전을 아름답게 회복하기 위해 농촌교회는 척박한 땅을 일구어 생명의 씨앗을 움트게 하는 농부처럼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회복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농촌교회는 환경교육은 물론, 일회용품 사용하지 않기 운동, 쓰레기 재활용, 아나바다 장터, 녹색 살림터, 주말농장, 생명밥상운동 등 다양한 선교활동을 전개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⑥ 문화선교운동을 전개하자!
농촌 문제는 세 가지 영역 즉 생산 주체로서 농민, 산업으로서의 농업, 현장으로서의 농촌 등으로 구분되지만 이 모두를 포괄하는 개념은 문화이다. 그러므로 농촌문화의 현주소를 살피고 농촌문화가 갖는 생명성, 공동체성을 되살려내는 일은 농민선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의 농민문화는 한마디로 요약하면 상부상조 하는 공동체적인 성격을 가졌다. 농민 문화는 삶의 애환을 절실하게 담은 문화이며 반 외세적인 민족 자주의 문화였다. 농민문화는 생명 창조의 노동에 종사한 사람들이 더불어 같이 만들어 내며 일과 놀이가 하나로 통전 되어 삶 전체를 가식 없이 드러내 주는 문화였다.
이렇듯 건강한 농민문화가 완전히 사라지고 있다. 산업화의 영향으로 농촌사회가 분해되고 매스미디어를 타고 퇴폐적, 향락적, 소비적 문화가 흘러 들어가면서 전통문화의 맥이 끊어지고 있다. 각종 전통문화 등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노래방, 가라오케, 디스코 문화 등이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집집마다 철통같은 대문이 만들어지는 등 개인주의적인 성향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마을에 초상이라도 나면 만사를 제쳐놓고 거들었으나 이제는 논과 밭으로 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따라서 건전한 농민문화가 재생산 되어야 한다. 단순한 복고가 아니라 오늘의 삶 속에서 새로운 내용과 형태로서 재창조되어야 한다. 농민선교가 농민과 함께하는 선교가 되기 위해서는 농촌문화를 외면 할 수는 없다. 문화의 본질을 종교로 본다면 교회는 특히 농민정서와 부합하는 농촌교회 문화를 창달하는 데에도 앞장서야 한다.
⑦ 농촌복지에 힘쓰자!
‘적막강산’,‘’거대한 양로원’,‘산자는 떠나고 죽은 자는 돌아온다’는 부정적 표현들에서 나타나듯이 ‘활력 잃은 농촌, 희망 잃은 농민’은 벼랑 끝의 위기에 몰린 우리 농촌의 현주소이다. 급속한 산업화와 사회변화는 농촌인구의 감소와 이농을 불러왔고 WTO 농업협상과 쌀 수입개방, 도하개발아젠다(DDA), 자유무역협정(FTA)등의 잇따른 농업개방은 농업을 4D업종, 기피·사양산업으로 바꾸어놓으면서 농민과 농촌의 존립기반을 위협하고 있다.
2006 통계청 농림어업총조사 자료를 살펴보면 지난 10년간 농업에 종사하는 농가인구는 1995년 485만1천명에서 2005년 12월1일 기준 343만3천명으로 29.2% 감소하였다. 반면 농가인구 가운데 65세 이상 노인의 수는 2000년 87만6천명에서 2005년에는 99만9천명으로 12.3% 증가하였다. 농업경영주의 연령층은 60대가 36.2%(4만4천9백명)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고 70대 이상도 23%(2만8천5백명)나 되는 등 60세 이상의 노령경영주가 전체농가의 59.2%를 차지하고 있어 농가의 고령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50대 이하의 청`장년층 경영주는 40.8%에 불과하며 그 비율도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로 특히 40세 미만의 경영주는 2002년 5만3천명에서 2004년에는 3만8천명으로 13.6%나 감소해 전 연령층에서 가장 높은 감소율을 보여 농촌의 위기를 실증하고 있다.
생산적 측면에서 보면, 우리나라 전체 농가 가운데 농축산물의 연간 판매액이 1천만원 미만인 소규모 농가가 차지하는 비율이 68.3%(95만9천가구)에 이르고, 농지가 없거나 농지면적이 0.5ha미만의 소규모 농가가 차지하는 비중이 36.0%(45만8천가구)에 이르고 있다(통계청, 2006). 도시와 농촌간의 소득수준의 격차는 생활수준, 교육, 문화 여건의 격차로 이어지고, 따라서 보다 높은 수준의 생활을 희망하는 농촌주민들이 교육과 취업의 기회를 찾아 도시로 이동함으로 농촌인구의 감소, 인구구성의 노령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르는 악순환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러한 농촌에서 교회의 역할은 무엇인가?
먼저, 농촌의 고령화로 인한 노인복지 수요가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고 이를 바탕으로 비교적 젊은 일꾼들이 모여 있고 장소와 재정이 있는 교회가 지역사회를 위한 복지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둘째, 노인 단독세대의 증가로 경제적 어려움, 정서적 고립감, 질병 등 건강 문제가 발생하는데 관의 일방적인 복지 전달체계로는 적절한 보호를 기대하기 어렵다. 교회의 복지선교 활동을 통해 수요자 중심의 복지 활동의 필요성이 요구된다.
셋째, 노인들이 농촌에서 생활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경제적 안정화를 위한 소득 사업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갈수록 개인보다는 법인이나 작목반에 소득사업을 지원하고 있는바 적극적으로 교회가 나서 공동체를 결성하고 친환경적인 소득 창출을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넷째, 어려운 농촌현실은 어린이들에도 가혹하다. 변변하게 학원도 다니지 못하고 방치된 아이들이 많다. 또한 경제적 어려움이나 가정의 해체로 조부모와 함께 사는 어린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농촌의 교회가 이들에게 지역아동센터 등을 통해 안정적인 교육과 보호를 기울여야 한다.
다섯째, 국제결혼가정의 증가로 이주여성들의 사회적응과 그들 사이에서 태어난 혼열 자녀들의 학교생활 및 지역사회활동을 지원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복지수요가 요구되고 있다. 이주여성들이 농촌사회의 일원으로 자리매김 할 수 있도록 따뜻한 관심과 교육을 필요로 한다.
나아가는 말
지금 세계는 커다란 변화에 직면해 있다. 이 변화의 주된 내용은 체제와 이데올로기 논쟁에서 생태계의 파괴로부터 인류를 구하자는 범세계적인 새로운 문명운동으로의 변화이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은 이념이나 체제를 뛰어넘고, 국경이나 인종을 뛰어넘는다. 매일 지구상에서 생물이 1백종씩 사라지는, 생태적 위협이 가시적인 군사적 위협보다 더 무섭기 때문이다. 새로운 문명창조의 운동 없이는 살림의 길은 없다. 이제 인간, 기술, 환경, 생활은 중대한 궤도 수정을 전 지구적 차원에서 해야 한다. 내일이 아니라 오늘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동안의 인류의 생활양식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지금까지의 대량 생산, 대량 소비, 편리함 중심의 산업문명 자체를 근본적으로 바꾸어 내지 않으면 계층과 계급, 체제와 이데올로기를 떠나 모두가 끝장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인종과 국경을 뛰어넘어 전개되는 이 새로운 문명운동이 곧 생명운동이다. 생명운동은 한마디로 살림의 운동이다. 현재 만연하고 있는 죽임의 문화를 살림의 문화를 바꾸자는 운동이다. 너와 내가 그리고 모든 피조물이 함께 살자는 운동이다. 경쟁과 대립 파괴와 죽임의 현대 산업문명을 뛰어넘어 조화와 공생, 생명중심의 새로운 세계를 건설하자는 운동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이 변화되어야 한다. 사람을 새롭게 보고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한 줌의 흙을 새롭게 보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작은 것 하나라도 함부로 하지 않고 성실하게 대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최근에 우리나라도 이 문제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고 있고, 1990년대 이후 농촌교회가 중요한 선교적 과제로 삼고 있는 생명공동체 운동도 이에 대한 심각한 깨달음의 결과이다.
농촌은 강도 만난 자와 같다. 우리가 어떻게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심어줄 것인가를 생각하고 하나님 나라의 주인으로 일어서게 해야 한다.
농촌에 희망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그 말을 우리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많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쏟아야 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희망이 없는 것처럼 보일수록 더 농민의 편에서 그들을 위로하고 소망을 심어주어야 할 사명이 크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작은 희망들이 보인다. 70년대 산업화이후로 떠났던 많은 젊은 사람들이 귀농의 꿈을 꾸고 돌아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세상은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을 위대하다고 하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열정만 있으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힘을 모으고 더 많은 곳에서 같은 목적으로 헌신하는 동료들을 만들어 힘 있게 희망의 농촌과 농촌교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
또한 이 세상에는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도 많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함께 나누고 돕고자 하는 사람들도 많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교인들에게 주님께 받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우리는 문제를 발견하고 비판하는 일에는 열심이지만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노력이 부족하다. 아울러 우리 주변의 적을 발견하는 일에 힘쓰는 일보다 내 주변의 동지를 찾아내고 내가 그들의 동지가 되는 일에 힘써야 한다. 그러면 얼마나 많은 협력자들이 있는지 발견하게 될 것이다. 서로 돕고 협력하여 선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지금 농촌 교회와 기장농목은 무너지는 농촌을 살리기 위한 참여와 헌신을 강력하게 요청 받고 있으며 농촌을 살리고 세상을 살릴 마지막 보루로 그 역할이 기대되고 있다.
(위 글 중 ‘기장농목의 창립과 주요활동’은 기장농목 4대 총무이자, 23대 회장인 김승환목사의 한신대학교 신학전문대학원 목회학박사학위 논문인‘한국기독교장로회 농촌선교에 관한 연구’를 인용했고,‘농민선교의 방향과 과제’는 기장농목 전임 정책실장인 박석종목사의 2008년 정책협의회 자료를 인용했음을 밝힙니다.)
기장농목 소개글
농민-농촌-농업. 이는 민족의 뿌리요, 사회의 근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뿌리가 죽고 바닥이 흔들리는 중병을 앓고 있다. 벼랑 끝에 선 농민들은 견딜 수없는 절망감을 하늘에 호소하고 있는 현실이다.
우리는 이러한 목회의 현장에서 눈물로 기도하며, 때로는 팔을 걷어 노동으로 동참해 보기도 하였고, 때로는 피끓는 함성으로 같이 호소해 보기도 하였으나, 개인과 개교회의 힘으로는 너무나도 역부족임을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우리는 이 죄악의 현실을 막지 못한 책임을 함께 뉘우치며 통감한다.
이제 우리는 힘을 모아 함께 일하도록 부르시는 하나님의 엄숙한 음성에 복종하고자 한다. 저 난공불락의 여리고 성도 제사장들이 한마음으로 나팔을 불고 백성들이 함께 외칠 때 무너져 내렸던 성서의 말씀(수6:20)에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과 우리의 사명을 새롭게 깨닫는다.
우리는 복음이 농어민의 삶의 현장에서 희망의 근거가 되어야 한다고 믿으며 저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역사의 주인으로 서게 하고자 한다. - 창립선언문(1989.10.17)-중에서
1. 기장농목 조직
1-1. 조직.
회장 1명, 부회장 2명, 총무 1명, 부총무 1명, 정책위원장, 서기 1명, 부서기 1명, 회계, 부회계로 9명의 임원단이 있습니다.
역원단은 기존 6개의 위원회 설치되어 활동하고 있습니다.
1-2 기장농목 활동지회
- 각 노회 별로 농목이 결성되어 활발하게 지역과 기장농목이 연대하여 사업을 진행한다.
9개 지회 : 제주, 전남(전남,목포,전서), 광주남, 전북, 익산, 전북동, 대전, 충남, 충북
1-3 위원회
1). 생명공동체 위원회
농촌 목회의 현장을 생명과 평화의 장으로 확장시키고 특히 도시교회와 결연을 통하여 안전한 먹을거리의 직거래 사업 확대와 생명살림의 장을 확대하는데 노력하여 상생의 모델을 만드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주요사업:
- 한국기독교생명농업포럼 생명농업 지도자 후진양성프로그램
- 생명살림 수기 및 시문집 발간
_ 씨뿌림주일의 사업을 진행하기로하다.
- 농촌교회 현장탐방 프로그램 및 영농교육
- 쿠바 하바나 양국간 생명농업포럼 및 도시생태농업현장 탐방
2). 선교 위원회
- 국내선교 농어촌목회자자녀 학자금지원 후원지 발굴.
- 농어촌목회자 취재(그곳에 가면 목회자가 있다)
3). 교육위원회
농촌목회자의 다양한 교육을 통해 농촌목회의 필요 가능한 비전을 제시하여 21세기 반(反)생태 반(反)생명 시대환경에 대응하고 농촌목회의 자긍심을 고취시켜 연대적 생명공동체를 지향하는 농촌목회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고자 합니다.
주요사업:
-생명평화영성수련회 : 생명선교연대와 함께 진행.
-청소년 생명평화 황소걸음캠프 : 전북 지역을 중심으로 개최. 9개 교회 60여명 참여.
-신대원세미나 ‘농촌교회와 목회’
-농촌에서 청년들과 함께하는 ‘청년희망버스’ 사업
-농촌목회자 계속교육사업 : 마을 목회 소개와 사례 발표 중심으로
4). 여성위원회
- 여성농목이야기마당(목회현장나눔)
5). 연대사업위원회
기장농목과 뜻을 같이하는 대외 단체들과의 연대를 통하여 통일과 평화, 생태, 생명의 고귀한 가치를 지켜나갑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아시아생명농업포럼, 생명선교연대, 기장 생태운동본부, 기장평화공동체본부등과의 연대 사업에도 주력합니다.
* 농목연대 가입교단 현황 :
기장. 감리교. 예장통합. 예장 대신. 기독교 성결교. 기독교 침례교. 복음교단.
7) 정책위원회
기장농목 역대 총무 모임으로 기장농목의 방향을 잡아주는 역할과 중요의제에 대해서 토론한다. 총회 앞서 전임 총무의 주제로 1박 2일로 회의를 진행한다.
8) 기장농목 여름대회
- 매년 8월 중순에 지회에서 순회하며 주관하여 대회를 치른다.
목회자와 가족들간의 친교와 쉼과 충전을 통해 삶의 현장으로 돌아간다.
2. 기장농목 역할(30주년 선언)
작년 30주년 행사를 통해 지난 30년을 회고, 반성하면서 이제 기장농목 30년 동안 핵심 과제였던 정의, 생명, 공동체 운동의 실현을 시대에 맞춰 재정비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를 토대로 다음과 같이 선언한 내용을 보내드립니다.
1. 일과 기도를 통해 신앙적 영성운동을 이어가고자 한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선한 일을 위해 흘리는 땀과 생명 살림의 기도를 통해 농촌과 신앙을 연결하는 공동체를 세우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2. 사회적 경제와 함께하는 농촌교회운동을 전개한다. 시장경제체제 아래에서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로컬푸드운동 등을 통해 고통 받는 농촌과 농민들이 일어서는 경제적 정의를 위해 노력할 것이다.
3. 농민기본소득 운동에 적극 참여한다. 일방적 희생을 강요해 온 농정을 개선하여 농민기본소득과 농민기본수당을 통해 경제생활의 틀을 마련하는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4. 교단 내 농어촌 목회자 처우개선을 위해 법적, 제도적 장치를 위한 운동을 전개한다. 농촌교회를 섬기는 대다수 목회자가 생활과 자녀교육, 건강과 목회 활동을 하는데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농촌교회 목회자들이 하나님 나라 선교에 힘 있게 일할 수 있도록 교단 내 법적, 제도적 돌파구를 마련해 가고자 한다.
5. 지속가능한 지구환경을 위한 생태환경보전 운동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가장 생태적인 것이 가장 혁명적인 운동이라는 인식으로 자연환경을 보전하는 일에 위기의식을 가지고 적극 추진한다.
6. 평화통일을 위한 노력과 통일농업을 위한 활동을 전개한다. 한반도를 전쟁 위협 없는 평화공존의 땅으로, 자주적 교류와 민족 동질성 회복과 평화공동체로 이행, 그리고 평화통일을 위한 걸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아울러 통일농업을 준비하고, 민족의 식량문제 해결과 남북 농촌문제를 해결하는 일에 함께한다.
7. 도․농 농산물 직거래 운동을 활성화하고 지속적인 먹거리 네트워크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기장교단 내에 기살림을 통한 도농상생협력 기구를 현실화시키며, 도시교회와 농촌교회, 교단과 농촌교회를 이어주는 디딤돌 역할을 하고자 한다. 직거래 장터와 축제, 매장 설립, 상생 사업단을 만들어가는 데 노력한다.
8. 아시아 생명농업에 대한 관심과 협력, 생명농법을 통해 아시아적 연대의 틀을 지속시키고자 한다. 아시아생명농업포럼을 통해 구축된 연대와 협력으로 아시아 지역 농업의 문제와 지속가능한 생명농법에 대한 이해를 교류하고, 아시아 교회와 협력을 바탕으로 생명 살림의 노력을 기울이고자 한다.
9. 생명을 위한 공동체 문화예술 활동을 전개한다. 교회와 농촌에 남아있는 공동체 문화를 통해 자본의 논리를 따르는 개인주의적 소비문화와 환경파괴를 배격하고 살림의 문화 운동을 전개하고자 한다.
10. 기독교농촌개발원을 농촌운동을 위한 중심 기관으로 바로 세운다. 기장농목의 텃밭이 되어 주었던 기독교농촌개발원이 재정적인 어려움이 없도록 후원하고, 협력하여 농촌교회와 농촌교회목회자, 농촌지역 지도자들이 개발원을 통해 다시 새 힘을 얻도록 함께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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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농촌을 향한 하나님의 선교에 동참한다
기장 농목과 한신대 신대원 연합 첫 세미나 진행
http://www.ecumenian.com/news/articleView.html?idxno=206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