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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십니까? 박일선입니다.
저의 세계 배낭여행기 카페를 (cafe.daum.net/elsonpark)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카페는 저의 세계 배낭여행과 자전거여행의 글과 사진을 올리는 곳입니다.
우선 글의 제목을 "세계를 배낭 메고 자전거 타고 21년" 이라고 했는데 그 이유를 설명 드리겠습니다. 저는 1998년부터 2021년까지 24년 동안 2001년, 2002년, 2017년, 3년을 빼고 나머지 21년 동안 매년 짧게는 1개월 반, 길게는 11개월 동안 세계 배낭여행과 자전거여행을 했습니다. 그렇게 모두 합쳐서 8년 4개월에 해당하는 약 100개월, 혹은 약 3,000일 여행을 했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많이 했다는 뜻의 글 제목으로 "세계를 배낭 메고 자전거 타고 8년", "세계를 배낭 메고 자전거 타고 3,000일"보다는 "세계를 배낭 메고 자전거 타고 21년“이라고 하는 것이 더 마음에 들어서 그렇게 했습니다.
그리고 이들 여행은 모두 혼자 한 (일부는 집사람과 함께) 자유여행이었습니다. 여행을 혼자 하면 외롭지 않으냐고 묻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다른 배낭여행자들을 많이 만나서 그런지 혼자 하는데 익숙해져서 그런지 별로 외로운 줄은 몰랐습니다.
자전거여행은 처음부터 한 것이 아니고 2013년부터 부분적으로 하다가 201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시작해서 2016년에 3,200km, 2018년에 3,000km, 2019년에 1,700km, 2021년에 2,000km, 도합 약 10,000km의 자전거여행을 했습니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부분적으로 한 자전거여행까지 합하면 약 15,000km는 됩니다.
21년 동안 여행한 곳을 여행기간과 함께 연도 순서로 나열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 1998년 일본 1개월 - 1999년 중국 4개월 - 2000년 중앙아메리카 2개월 - 2003년 중앙아메리카와 멕시코 4개월 - 2003년-2004년 남아메리카 11개월 - 2005년 인도, 네팔, 스리랑카, 방글라데시 9개월 - 2006년 중앙아시아, 코카서스 3국, 터키, 그리스,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6개월 - 2007년 몽골, 시베리아 4개월 - 2008년 중동, 북아프리카 4개월 - 2009년 동아프리카와 남아프리카 7개월, 남아메리카 1개월 - 2010년 카리브 해 2개월, 중국 Xinjiang 성과 중국 남서부 1개월 반 - 2010년-2011년 서아프리카 4개월 - 2011년 알래스카 1개월 - 2011년-2012년 동남아 5개월 - 2013년 호주-뉴질랜드 4개월 (일부 자전거여행) - 2013년 일본 Kyushu 섬 일주 자전거여행 1개월 - 2014년 서유럽, 북유럽 6개월 (일부 자전거여행) - 2015년 북유럽, 동유럽, 남유럽 4개월 반 - 2016년 유럽대륙 횡단 자전거여행 2개월 반 - 2018년 유럽대륙 횡단 자전거여행 3개월 반 - 2019년 유럽대륙 횡단 자전거여행 1개월 반 - 2020년 칠레 1개월 반 - 2020년 미국 횡단 자동차여행 2주 - 2021년 독일, 덴마크, 스웨덴 자전거여행 2개월
- 합계 약 100개월
그동안 여행한 곳들을 연 초록색 선으로 지도에 표시하면 대강 아래와 같습니다.
세계 구석구석을 다 가본 기분입니다. 그러나 아직도 못 가본 곳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아프리카에 이런 저런 이유로 못 가본 나라들이 여럿 있고 남극대륙도 못 갔고 남태평양의 조그만 섬나라들도 못 가본 곳이 많습니다. 앞으로 그중 몇 곳을 더 가볼지 모르겠지만 나이도 많고 하니 (2024년 11월 초에 만 84세) 이 정도에서 제 여행 인생을 끝내도 좋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습니다.
제 소개를 드리겠습니다. 이름은 박일선, 한자로 朴一善, 영어로는 Elson Park으로 표기합니다. 영어 이름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미국에 유학시절을 포함애서 30여 년을 살면서 미국 국적을 취득해서 한국과 미국의 2중국적자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족보상으로는 密陽 朴氏, 忠憲公 파 27세손입니다. 1940년에 서울 근교 덕소에서 (정확히는 와부면 월문리 배나무골) 태어났고 만 4살 때부터 서울에 살았습니다. 그래서 서울을 고향으로 생각하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한 번도 살지 않았지만 21대의 조상님들이 5백여 년 동안 사셨던 여주, 이천이 고향입니다. 조상님들의 마지막 고향은 경기도 이천시 백사면 송말리입니다.
저는 어릴 적부터 외국에 대한 관심이 남달리 많았던지 일찍 세계여행을 해보겠다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쯤). 초등학교 때 방바닥에 엎드려서 세계지도를 펴놓고 세계여행을 하는 상상을 하던 기억이 많이 남아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에게는 외국여행을 한다는 것은 꿈같은 일로 생각되던 때였습니다. 그러다가 외교관이 되면 세계여행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그때부터 외교관이 되겠다는 꿈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장래희망 난에 "직업외교관" 이라고 썼던 기억이 남아있습니다. 그냥 외교관도 아니고 직업외교관이라고 썼던 것을 보면 그때 벌써 외교관이 되겠다는 꿈의 농도가 제법 짙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부터 저의 공부의 초점은 외교관이 되는데 맞추어졌습니다. 그래서 학교 공부는 소홀이 하고 방과 후에 학원가를 누비면서 영어, 독일어, 프랑스어 외국어 공부에 몰입했습니다.
1959년 서울사대부고를 졸업하고 그해에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에서 분리해서 생긴 외교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이제 외교관이 되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제가 대학을 졸업한 1965년부터 (재학 중 학보병으로 1년 반 군대 생활을 마치고) 여러 해 동안 외교관이 되는 관문인 외무고시가 (혹은 행정고시 3부) 없어져서 외교관이 되는 꿈을 접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외길로 준비해왔던 꿈인데 접어야 해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더구나 외무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하겠다는 당돌한 생각까지 하고 있었을 때라 더욱 그랬습니다.
대신 저는 미국 유학을 갔습니다. 1966년 봄 Utah State University에서 MBA 전공으로 공부를 시작했으나 곧 전공을 바꾸기 시작해서 Utah State University, Oregon State University,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 University of Utah를 전전하면서 6년 동안 MBA, 전자공학, 통계학, computer science 공부를 했습니다. 전공을 그렇게 여러 번 바꾸게 된 이유는 유학 목적이 뚜렷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공부는 즐기면서 잘 했습니다. 우선 한국에서와는 달리 대학 생활을 아주 즐겼고 (특히 첫 번째로 다닌 Utah State University ) 공부도 재미있었습니다. Utah State University의 두 번째 해에는 전자공학을 그리고 세 번째 해에는 통계학을 공부했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싫어했던 화학, 수학 같은 이과 공부에도 재미를 느끼게 된 저 자신을 발견하고 무척 놀랐습니다.
1968년 Utah State University에서 서울대학교에 이어서 두 번째로 학사 학위를 (통계학) 받고 졸업할 때는 미국 전역에서 성적이 우수한 대학교 졸업생들이 초대되어 가입하는 Phi Kappa Phi Honor Society의 회원이 되었고 한국의 우등상에 해당하는 magna cum laude를 받았습니다 (Utah State University에서는 magna cum laude보다 높게 치는 summa cum laude 제도는 없었습니다.) 그리고 졸업식에서 연설을 해야 하는 Utah State University의 College of Science의 (이과대학) Valedictorian (수석졸업자) 제의도 받았으나 사양했습니다. 두 번째로 받는 학사 학위라 큰 의미를 느끼지 못했고 연설을 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도 되었던 것 같습니다. University of Southern California에서는 2년 동안 computer science 공부를 했으나 석사학위 취득 한 학기를 남기고 직장 사정으로 포기해야 했습니다. University of Utah에서도 2년 동안 computer science 공부를 했으나 역시 가정 사정으로 포기를 했을 때는 지도교수가 원하면 computer science 학사학위를 주겠다고 했는데 이미 학사학위가 둘씩이나 있기 때문에 의미를 못 느끼고 사양했습니다. 지금은 이 모든 것들이 저의 소중한 개인 역사인데 공식화 하지 않은 것이 후회가 됩니다.
처음부터 외교학이나 정치학 공부를 했더라면 어렵지 않게 박사학위를 땄었을 수도 있을 텐데 그 공부에는 전혀 흥미를 못 느꼈고 3년 안에 책임지고 박사학위를 따주겠다는 Utah State University의 한국인 사회학 교수의 제의 역시 사회학 공부에 흥미를 못 느껴서 사양했습니다. 통계학에는 약간의 흥미를 느껴서 Harvard University의 통계학과 주임교수에게 편지를 써서 석사학위 입학과 장학금 가능성을 문의했는데 수학 과목을 몇 과목 더 택하고 다시 지원하면 긍정적으로 고려를 하겠다는 답장을 받았으나 다시 1년을 Utah State University에서 보내는 것이 싫어서 Oregon State University에 장학금을 받고 통계학 석사 공부를 시작했으나 개인적인 문제로 한 학기 만에 그만두고 Los Angeles로 가서 컴퓨터 업계 직장 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의 6년 동안의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잘하긴 했지만 이상하게 결실을 맺는 데는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아마 이런 것을 운명이라고 하는 것 같습니다.
1969년부터 2001년 까지 미국 컴퓨터 업계에서 일을 하면서 Computer Sciences Corporation (소프트웨어 개발 11년, Los Angeles), TeleVideo Systems (전산관리와 소프트웨어 개발 7년, San Jose), Novell (소프트웨어 제품 마케팅 10년, Utah 주와 서울), NetScaler에서 (아태지역 인터넷 하드웨어 제품 마케팅 2년, San Jose) 일을 했고 1995년부터 1998년까지 4년 동안은 Novell의 한국지사에서 일하면서 30여 년 동안 잊어버렸던 한국을 다시 알게 되었습니다. 미국의 IT 산업 30여 년 (1969-2001) 역사를 거의 모두 경험했는데 특히 미국 IT 산업의 중심지로 불리는 Silicon Valley와 (San Jose) 제2의 Silicon Valley라고 불리었던 (지금은 Silicon Slopes라 불리는) Utah 주에서 (Provo) 보낸 20여 년은 당시의 최첨단 IT 기술의 선두주자 회사들에서 매우 의미 있는 일을 한 시기였습니다. Silicon Valley에서 일을 했을 때는 (1979-1986) 스톡옵션으로 받은 TeleVideo Systems 사의 주가 상장이 되면서 한때 주식으로 "밀리어네어"가 되는 별난 경험도 해봤습니다.
1986년부터 1989년까지 3년 동안은 Silicon Valley 직장에서 임시 은퇴를 하고 Utah 주로 돌아와서 Computer Graphics 기술의 원조로 알려졌던 University of Utah에서 computer science 박사학위 공부에 도전했습니다. 박사학위를 받은 다음에 대학교수로서 제 2의 인생을 시작해보겠다는 계획이었으나 생활밑천으로 가지고 있던 TeleVideo Systems 사의 주식이 갑자기 폭락하면서 공부를 포기하게 되고 다시 직장생활로 돌아갔습니다.
미국에 살던 30여 년 동안 외국 여행을 많이 해보긴 했지만 대부분 업무에 관련된 여행이었고 직장 일과 애들을 키우는데 바빠서 어릴 적의 꿈이었던 세계여행은 엄두도 못 냈고 흥미조차 사라지는 듯 했습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당시 세계 배낭여행자들이 제일 애용하던 여행안내서 책인 Lonely Planet을 접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옛날의 세계여행 꿈이 되살아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1998년과 1999년 직장을 두어 번 바꾸는 동안에 시간을 내어서 배낭여행을 시작했고 (일본, 중국, 중미) 2001년에 9.11 사태로 "자의 반 타의 반"의 은퇴를 하게 되면서부터 배낭여행에 전념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늦게나마 어릴 적의 꿈이었던 세계여행의 꿈을 이루어 되어서 천만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2013년 호주-뉴질랜드 여행부터는 배낭여행을 자전거여행으로 격상시켰습니다. 그전 10여 년 동안 배낭여행을 하면서 자전거여행을 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남미, 중앙아시아, 동남아시아에서) "여행은 바로 저렇게 하는 거야"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나도 해보겠다는 생각은 엄두도 못 냈고 내세가 있다면 그때는 꼭 해보겠다는 다짐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래도 한번 시작은 해볼 수 있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작했다가 못하겠으면 그만둘지언정 시작조차 안하는 것보다는 나중에 후회가 없었을 것 같았습니다.
2012년 여름에 미국 딸네 집에 갔을 때 자전거 마니아인 사위의 도움으로 옛날에 딸이 쓰던 Specialized라는 브랜드의 산악자전거를 수리해서 한국으로 가져왔습니다. 그해 7월에 동대문 전철역에서 3년 째 세계 자전거여행을 하고 있다는 미국 젊은이를 만났습니다. 그 젊은이는 지금까지 봤던 자전거 여행자들과는 달리 짐을 최경량으로 가지고 여행하고 있었습니다. 대부분 자전거여행자들의 짐 무게는 패니어라고 불리는 자전거여행용 가방과 짐받이를 포함해서 약 30kg인데 이 젊은이의 짐 무게는 놀랍게도 7kg 정도였습니다. 생각 끝에 저도 이 젊은이의 최경량 여행방법을 택하기로 결정하고 인터넷을 통해서 최경량 자전거 여행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고 짐 무게를 줄이기 시작해서 호주-뉴질랜드여행을 7.7kg 짐으로 (가방, 짐받이 포함) 시작했습니다. 여행 중에 캠핑하는 것을 포기하면서 캠핑도구를 한국으로 보내서 짐 무게는 5kg로 줄었습니다. 호주-뉴질랜드여행 직전에 실험으로 한 서울-대구 간의 400km 자전거여행도 약 7kg 짐으로 했습니다.
2013년의 호주-뉴질랜드 여행 동안에는 계획했던 만큼 자전거를 타지 못했습니다. 약 5,000km를 계획했는데 1,000km도 못 탔습니다. 그렇지만 자전거여행의 즐거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고 2014년에 한 서유럽 자전거여행에 필요한 경험을 충분히 쌓아서 성공적인 여행이었습니다.
같은 해 11월에는 계획에 없었던 한 달 동안의 일본 Kyushu 섬 일주 자전거여행을 했습니다. 이 여행은 기차나 버스를 전혀 이용하지 않고 자전거로만 1,350km를 달린 100% 자전거여행이었습니다. 이 자전거여행의 경험 역시 2014년 서유럽 자전거여행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2014년에 한 서유럽 여행은 전반기 3개월과 후반기 3개월로 나누어서 했는데 일부만 자전거여행이었습니다. 호주, 뉴질랜드, 일본 자전거여행에서 사용했던 Specialized 자전거를 가지고 갔는데 전반기 3개월 여행이 끝날 때쯤 네덜란드 Amsterdam에서 도난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후반기 3개월 여행을 시작하기 전 미국에 가서 1개월 반 쉬는 동안에 그동안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영국제 Brompton 접이식 자전거를 사서 후반기 3개월 여행 동안에 사용했습니다. Brompton 접이식 자전거는 너무 편리했습니다.
2015년 동유럽 여행에도 가져가서 편리하게 사용했습니다. 소형 자전거라 장거리 자전거여행을 하는데 문제가 없을까 하는 의문이 있었으나 전혀 없었습니다. 장점만 많고 단점은 거의 없었습니다. 적어도 제가 주로 하는 평지를 달리는 자전거여행에는 그랬습니다.
2016년에는 약 4,000km의 (프랑스 대서양 해안에서부터 루마니아 흑해 해안까지) 유럽대륙 횡단 자전거여행에 도전해서 3,200km 지점까지 Brompton 접이식 자전거로 아주 즐기면서 여행을 했으나 갑작스럽게 생긴 집안의 우환 때문에 800km를 남기고 중단해야 했습니다. 2017년에는 집안 우환이 끝나지 않아서 전혀 여행을 못했습니다.
2018년에는 유럽대륙 횡단 자전거여행을 유라시아대륙 횡단 자전거여행으로 (태평양 해안 도시 Vladivostok에서 끝나는) 격상시키고 흑해 대신 시베리아 쪽으로 코스를 바꾸어서 2018년에 약 3,000km, 2019년에 약 1,700km를 자전거로 달려서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인 우랄산맥을 넘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유라시아대륙 횡단 자전거여행을 중단했습니다 (아래 지도 참조). 중단하게 된 제일 큰 이유는 우크라이나와 남러시아 자전거여행이 너무 재미없었던 것은 둘째 치고 대형 트럭들이 너무 많아져서 자전거여행이 매우 위험해졌기 때문입니다 (아래 사진 참조). 중단하긴 했지만 원래 목표였던 유럽대륙 횡단 자전거여행을 흑해에서 끝내는 4,000km 여행 대신 우랄산맥을 넘어서 끝내는 8,000km 여행으로 격상시킨 것을 위안으로 삼았습니다. 그 후에 유라시아대륙 횡단 자전거여행을 다시 해보겠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었지만 2020년부터 여러 해 동안 지속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와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 여행이 힘들게 되어서 완전히 포기하게 되었습니다.
2018년과 2019년 자전거여행에는 그동안 사용했던 Brompton 접이식 자전거 대신 Surly LHT라는 장거리 자전거여행자들이 제일 많이 사용하는 장거리 자전거여행용 자전거를 사용했습니다.
2020년에는 다시 전에 사용했던 Brompton 접이식 자전거로 돌아가서 2020년에는 1주일 동안 칠레 자전거여행을 했고 2021년에는 2개월 동안 독일, 덴마크, 스웨덴 자전거여행을 했습니다.
2003년 여름에 부부만 귀국해서 서울 근교 분당에 아파트를 사서 살다가 2019년에는 아파트를 처분하고 현재까지 하남시 미사역 지역에 있는 오피스텔 원룸에 살고 있습니다. 집사람은 한 동안 저와 함께 배낭여행을 했으나 (일본, 중국, 남미 일부) 2002년부터 미국에서 태어나기 시작한 딸의 애들 뒷바라지에 매달리게 되면서부터 주로 미국 Utah 주 Salt Lake City 딸네 집에 살면서 가끔 한국에 나왔다 돌아가곤 하는 생활을 했습니다. 저는 여행을 안 할 때는 한국에 살면서 매년 연말연시 한 달 정도와 가끔 여름을 Utah 주 딸네 집에서 보내곤 하는 생활을 지금까지 해오고 있습니다. 2021년 마지막 여행을 끝낸 후로는 21년 동안 여행을 하면서 매일 쓴 여행기를 디지털 책으로 내는 작업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태어난 세 아이들 중에 출가한 딸은 (응급의학 의사) Utah 주에서 대학을 다닐 때 만난 사위와 (일본-중국 4세, 정형외과 의사) Utah 주 Salt Lake City에 (손녀 2, 손자 1), 큰 아들은 (가정의학 의사) Honolulu에, 작은 아들은 (교육 컨설턴트, 전 Wellesley College, Harvard University, University of Maryland에서 Asian-American Studies 교수) San Francisco 지역에서 잘 살고 있습니다.
지난 20여 년 동안 여행을 안 할 때는 산을 오르거나 달리기를 했습니다. 산은 주로 한국 산들과 미국 California와 Utah 주에 있는 산들을 올랐고 남미 여행 중에는 Andes 산맥에 있는 Inca Trail, Torres del Paine, Cordillera Blanca 산들과 베네수엘라와 가이아나 국경에 있는 Roraima 산 트레킹을 했습니다. 네팔 여행 중에는 Everest Base Camp와 Annapurna Circuit 트레킹을 했고 몽골 여행 중에는 Altai 산을 올랐고 아프리카 여행 중에는 Kilimanjaro 산 중턱까지 올랐습니다. 정상에 오르는 산행보다는 산 분위기에 빠져서 산길을 걷는 산행을 더 좋아합니다.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대강 매년 한 번씩 풀 마라톤을 12번 완주했습니다. 그중 여섯 번은 미국에서 (첫 번째는 2000년 미국 Columbus, Ohio 마라톤이었고 그 후에 New York City, Los Angeles, Napa Valley 마라톤 등), 네 번은 한국에서 (2004년 가을 춘천 마라톤, 2006년과 2007년 봄 서울 국제마라톤, 2008년 가을 서울 국제마라톤), 그리고 두 번은 중국에서 했습니다 (2010년 가을 북경 마라톤, 2012년 가을 상해 마라톤). 제일 빠른 기록은 2001년 미국 Napa Valley 마라톤의 4시간 11분이었습니다. 숙원이었던 4시간을 깨는 것과 Boston 마라톤을 뛰어보는 것을 이루지 못하고 2012년 상해 마라톤을 마지막으로 풀 마라톤은 더 이상 안 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몸이 더 이상 따라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는 하프 마라톤이나 (21km) 뛸 생각이었으나 딱 한 번 뛰고 더 이상 뛰지 못했습니다. 지금은 매주 일요일에 친구들과 북한산 등산을 하고 일주일에 5일 정도 매일 한 시간 씩 걷고 뛰기를 하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습니다. 뛰는 것에 익숙해지면 매년 봄과 가을에 한 번씩 10km 경주 대회에 나갈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제 소개를 마치겠습니다. 잃어주셔서 감사합니다.
(2024년 7월 마지막 수정)
베네수엘라, 브라질, 가이아나 국경에 위치한 Roraima 산 정상에서 (200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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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횡단 3,200km 자전거여행을 했다 (2016년)
러시아에서 스위스 자전거 여행자들과 (2019년)
유라시아 대륙 횡단 자전거여행은 러시아 도로에 트럭이 너무 많고 위험해서 시베리아의 Chelyabinsk에서 포기했다 (2019년)
우크라이나, 러시아 자전거여행에 사용했던 Surly LHT 자전거 (2018-2019)
2020년 칠레 자전거여행, 2021년 독일, 덴마크, 스웨덴 자전거여행에 사용한 6-기어 모델 Brompton 접이식 자전거
2020년 칠레 자전거여행은 잘못된 계획으로 시작한지 며칠 만에 끝났다
2020년 미국 횡단 자동차여행 지도 (전에 했던 Utah 주와 California 주 간의 자동차여행 포함)
2021년 독일 자전거여행
2021년 독일 자전거여행
2021년 덴마크 자전거여행
2021년 스웨덴 자전거여행
배낭여행자들이 애용하는 여행안내서 Lonely Planet 책을 나도 애용했다
여행 중 유일하게 여행 기념품으로 산 마그넷
나의 자랑, 마라톤 완주 메달 12개 (2000-2012)
딸과 함께 한 나의 2000년 첫 마라톤
1983년 주부생활 잡지에 실렸던 이 기사에 나온 한글 워드프로세서는 한글과 컴퓨터 사의 아래한글의 모체가 되었다
Utah State University 총장으로부터 받은 Phi Kappa Phi Honor Society 가입 축하 편지
2001년 작은아들 Vassar College 졸업식 가족사진, 왼쪽으로부터 사위, 딸, 큰아들, 작은아들, 집사람과 저 본인
우리 가족 족보 책 (Elson Park's Family History - 인터넷에서 검색 가능) 표지에 나온 2014년 가족사진
2017년 Washington, D.C. 가족사진
2023년 설악산 가족사진 Copyright (c) 2004‐ By 박일선. All Rights Reserved. 이 글과 사진은 상업적으로 이용하지 않고 글과 사진을 수정하지 않고 저작자를 박일선으로 (혹은 Elson Park) 표시하는 조건으로 아무나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습니다. |